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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정「커브」

  • 작성일 2009-06-15
  • 조회수 3,698




커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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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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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고 하는 커어브가 나는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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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주 앞에서 커어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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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다른 골목인 줄 뻔히 알면서도 영광문구 지나 청과상회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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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집 꺾어 들어 커어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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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장원 앞에서 커어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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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은숙이가 오기에 은숙이 앞에서 커어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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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 앞에서 커어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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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같이 내달리다가 우체국 앞에서 커어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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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나 앞에서 커어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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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나가 팔 높이 쳐들고 있기에 나도 팔 쳐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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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으로 커어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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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바보사막』, 랜덤하우스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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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詩 / 낭송 : 신현정 - 서울에서 태어나 1974년『월간문학』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 시집 『대립』 『염소와 풀밭』 『자전거 도둑』 『바보사막』 등이 있으며, 한국시협상을 수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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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읽으면서 내게도 커브를 도는 마음이 아직 남아 있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부끄럼을 타는 마음이 남아 있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정면으로 내달리다가 수줍어서 살짝 휘어져 돌아나가는 마음. 다음에, 다음에 하자는 마음. 그것 참 귀해졌습니다. 저기서 은숙이가 옵니다. 때마침 은숙이가 온 것이 아니라, 골목 모퉁이에서 내내 기다리고 있던 은숙이입니다. 미루어 놓기만 해서 오늘은 어쭙잖게 짧은 말이라도 한 마디 꼭 붙여보고 싶은 은숙이! 그러나 가슴이 콩닥콩닥 뛰어서 어유, 또 은숙이 코앞에서 커브를 틀고 말았습니다. 은숙이를 비켜나 은숙이 같은 칸나 앞에서나 짐짓 팔을 쳐들고 알은체를 하고 말았습니다.

오늘은 어칠비칠 자전거를 타는 소녀, 소년이 되고 싶습니다. 휘파람을 불면서 투명한 햇살 속을 가르며 '커어브'를 하면서.

 

2009. 6. 15. 문학집배원 문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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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3-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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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2-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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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6건

  • 익명

    마치 방금 전에 자전거를 타고 온 듯한 기분이네요~잘 들었습니다^^시가 너무 재밌고,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가 않네요,...이러다 시 다 외우는 건 아닌지...ㅎㅎ어릴 때 세발자전거 타고 동네 한 바퀴 돌고 그랬었는데...그 기억이 생생히 떠오르네요...^^

    • 2010-03-14 12:50:05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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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재미난 시인것 같아요.'커어브'라는 반복적인 단어사용으로지루하지 않게 하고 오히려 재미나게 만드는것 같아요.나의 '커어브'는 어디였을까 생각해봅니다.

    • 2009-08-26 12:00:35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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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커어브의 반복이 재밌습니다자전거를 아직 잘 타지 못하는데 날 선선해지면 마저 연습해야겠네요

    • 2009-08-23 16:09:43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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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움..늘 발전, 개발, 향상, 노력..이란 단어만 안고 지내는 나를 돌아보게합니다오직 직진 말고..가끔씩 돌아서가라...

    • 2009-08-21 17:48:22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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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자전거를 좋아하는 저인지라 더욱 공감이 가고 관심있게 잘 읽었네요. 표현이 반복적이면서 읽는 사람의 마음을 쏙 빼놓는 표현이 너무 좋아요. 자전거를 타면서 커어브를 한다는건 그 앞에 장애물이나 무언가 난관이 봉착했다는거잖아요. 더이상 갈 수없거나 가려해도 망설여지는 무엇.... 자전거를 탄냥 그 설레임을 공유해보네요.

    • 2009-07-12 21:48:53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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