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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와라 신야, 『인도방랑』 중에서

  • 작성일 2010-01-21
  • 조회수 3,513




후지와라 신야, 『인도방랑』 중에서 

 

 

마약보다 더 굉장한 건 인간을 태운 재입니다.

-그런가요?

줄곧 시신을 찍으면서 불타고 있는 것만 의식했지 재는 의식하지 않았어요. 머리가 불타고 있다거나 발이 불타고 있다거나 하는, 요컨대 살아 있는 자 쪽에서 보았던 거지요. 그렇게 일 년쯤 지났을 때, 불타고 남은 재로 눈이 가더군요. 현지에는 케사리 달이라는 세모난 콩이 있습니다. 번식력이 강해 아무 데서나 잘 자라는데, 그걸 삼십 년쯤 먹으면 뼈가 휘거나 기형아를 낳기도 합니다. 인도의 기형은 비교적 이 케이스가 많아요. 당시 나는 돈 없이 여행하던 터라 늘 이 값싼 콩을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먹었어요. 한번은 사진을 다 찍고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시신을 태운 재를 집어 콩에다 뿌렸어요.

-먹었나요?

예, 먹다 보니 묘한 감정이 들어서 이번에는 재만 핥았지요.

-맛이 어땠어요?

아무 맛도 안 나요. 그냥 혀에 스윽 스며드는 느낌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재라는 건 참 이상한 물체예요. 무색, 무취, 무미이니까요. 우리가 사는 삼차원 세계 물건이 아니에요. 그런 일종의 반세계(反世界) 같은 걸 입안에 털어넣은 셈이지요. 그때 의식이 확 변해버린 느낌이 들었어요. 더구나 그건 인간의 맛이잖아요. 이제 시신은 그만 찍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후로 하시시니 간자니 하는 세계에도 시들해져버렸어요. 그 사건이 내게는 다행한 일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보통의 생활로 돌아왔으니까요.

-후지와라 씨의 사진에는 분명 사물이 찍혀 있지만, 그게 자신의 눈 속 스크린과 바깥 세계의 피사체가 이중으로 찍혀 있는 느낌이 듭니다. 어떻게 그런 사진이 찍히는 건가요?

굳이 설명하자면 이렇게 말할 순 있겠지요. 내 생각에 오른쪽 눈과 왼쪽 눈이 갖는 사상이 다른 것 같습니다. 사람에게는 잘 쓰는 눈이 있어요. 내 경우에는 왼쪽 눈이 잘 쓰는 눈이면서 약한 눈입니다. 몸의 생명력도 오른쪽과 왼쪽이 차이가 난다는 걸 인도에 있으면서 자각했는데, 내 경우에는 확실히 왼쪽이 약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내 아버지는 올해 아흔두 살인데, 나는 체형도 성격도 아버지를 꼭 닮았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를 보고 있으면 몸의 왼쪽 부분이 먼저 죽어가는 걸 알 수 있어요. 아버지에게서 나는 수십 년 후의 내 모습을 봅니다. 즉 여기에 내가 왼쪽의 약한 눈으로 사진을 찍는다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리고 왼쪽 눈은 잘 쓰는 눈입니다. 내가 생각해도 이건 흥미로운 일이에요. 먼저 죽을 눈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겁니다.

 

작가 / 후지와라 신야 - 1944년 후쿠오카 현에서 태어났으며, 인도를 출발점으로 아시아 각지를 여행한 후 『동양기행』『인도방랑』『티베트방랑』 등을 저술함. 이 밖에 주요 저서로 『도쿄표류』, 『메멘토 모리』, 『아메리카』, 『침사방황』, 『후지와라 악마』등이 있고, 사진집으로 『남명』, 『소년의 항구』, 『일본풍경 이세』, 『전동양사진』 등이 있음. 기무라 이헤에 사진상, 마이니치 예술상 등을 수상함.

낭독 / 홍서준 - 배우. ‘뮤지컬’, '우리 동네‘, ’위대한 캐츠비‘ 등 출연.

김신용 - 배우. ‘격정만리’, ‘바람의 정거장’ 등 출연.

출전 / 『인도방랑』(작가정신)

음악 / 최창국

애니메이션 / 강성진

프로듀서 / 김태형

보통은 사진 찍는 이가 렌즈로 피사체를 엿본다고들 하지만, 저는 사진을 찍히면서 그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의 몰두한 모습을 엿본답니다. 사진 찍는 포즈는 사람마다 다르거든요. 삐딱하기도 하고 섹시하기도 하고 시건방지거나 혹은 천진해 보이기도 해요. 하지만 어쨌든 대개는 오른쪽 눈으로 사진을 찍지요. 카메라도 거기 맞춰 설계돼 있구요. 그런데 굳이 약한 눈, 그리고 먼저 기능이 떨어져가는 눈으로 사물을 포착하는 작가의 방식이 의미심장하군요. 제가 사랑하는 한 청년도 왼쪽 눈으로 사진을 찍는데요. 오른쪽 눈으로 찍게 되면 왼쪽 눈을 감아야 하는데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가 벌어져서 표정이 추해진다나요. 왼쪽으로 찍으면 손이 오른쪽 얼굴을 다 가려주고요. 그래서 왼눈으로 찍는 연습을 했대요. ‘간지’ 때문에. 글쎄요, 이 청년, 재 뿌린 콩 같은 건 안 먹을 것 같군요. 하지만 이 글을 읽으면 분명 해골 속의 물을 마신 원효를 떠올릴 거예요. 인간의 맛과 반세계라니……

문학집배원 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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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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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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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3-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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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 익명

    앗... 저도 사진을 찍을 때 왼쪽 눈으로 사진을 찍는데요~~ 부모님의 몸을 잘 관찰해봐야겠어요.. 노후의 내 몸일테니 말예요~*^ ^*

    • 2010-01-14 11:23:47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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