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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경「내 아들의 연인」

  • 작성일 2007-09-27
  • 조회수 5,305




「내 아들의 연인」
 
  정미경
 




  계산대 앞에서 카드를 꺼내는데 전표를 건네다 보던 도란이 카운터 아가씨에게 묻는다. 자장면 9천원 아니었어요? 카운터 아가씨가 친절하게도 대답을 했다. 부가세하고 봉사료가 붙었거든요. 아니, 자장면 주제에 무슨 봉사료에요? 도란이 영 불편한 표정으로 묻는다. 도란이를 내 차에 태우고 근처의 백화점으로 간 건 자장면에 무슨 봉사료냐고 묻는 도란이를 묘한 표정으로 쳐다보던 카운터 아가씨의 태도에서 뭔가 내 속을 건드리는 게 있었기 때문일까.
(……)
  백화점에 옷을 사러 갈 땐 동창회 갈 때만큼이나 공들여 화장을 하고 제대로 차려입고 나가야 한다는 말도 있지만 특히나 이 백화점은 분위기가 유난하다. 영캐주얼 매장에 들어가 도란이를 세워 놓고서야 나는 그걸 새삼 깨닫는다. 똑같이 맨얼굴로 서 있어도 이 동네 사람과 다른 곳에서 온 사람의 피부는 때깔에서 차이가 난다.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나와도 이 동네 사람들과 아닌 사람들을 가려낼 수 있다. 그게 걸치고 있는 입성의 차이에서 나오는 느낌만은 아니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뼛속 깊은 데서 나오는 다름, 이라고 할 수 있을까. 도란이 나이는 남대문 좌판에서 산 옷을 걸쳐도 깜찍하고 눈부실 나이지만, 여기, 이곳에서는 아니었다. 졸지에 옷 하나 유행 따라 차려입지 못하는, 보살핌 없이 자란 처녀티를 내며 무르춤해서 서 있는 도란이 대신 내가 몇 가지 옷을 골라 봤다.
  이상했다. 커다란 인형처럼 현실성 없는 옷을 입혀놓은 마네킹 옆에서 도란이는 어쩐지 눈에 안기는 구석이 없는 아이, 무얼 입혀도 때깔이 나지 않을 아이처럼 미워 보였다. 싫다고도 기뻐하지도 않는 도란이 어느 순간 무언가를 견디는 것 같은 표정을 지었을 때, 매장에서 옷 파는 주제에 도란이를 업수이 여기는 듯한 턱의 표정을 판매원에게서 읽었을 때, 나는 오기 같은 열심이 나서 행거를 뒤적이며 옷을 골라 이것저것 입혀 보았다. 몇 개를 갈아입혀 보았는데도 어째 착 붙는 느낌이 오지 않았다. 노란색 계열이지만 지나치게 유아스럽진 않은 재킷을 골라 입어 보라고 하자 도란이는 거의 탈진한 듯한 표정으로 옷을 받아 들었다. 그렇게 고른 데님 바지와 겨자색 면 재킷을 입혀 놓으니 밉진 않았다. 주차장으로 내려와 차를 타고 근처 지하철역에 내려 줄 때까지 도란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앉아 있다가 내리면서 조그맣게 고맙습니다, 하고는 차문을 닫는다. 백미러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는 게 보인다. 한숨이 나왔다.


 
 
● 출전 :『2007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소설』, 작가 2007
 
 
● 작가 : 1960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나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희곡이, 2001년『세계의 문학』에 소설이 당선되어 등단함. 소설집으로『이상한 슬픔의 원더랜드』『장미빛 인생』『나의 피투성이 연인』등이 있으며, 이상문학상, 오늘의 작가상 등을 수상함.
 
● 낭독 : 성병숙- 연극배우. 영화 <이대근, 이댁은>, 연극 <늙은 부부 이야기> <에쿠우스> <친정엄마>,  MBC드라마 <문희>에 출연


서민의 딸과 부자의 아들이 연인이 됩니다. 그리고 서걱거림이 시작됩니다. 서걱거리는 소리는 빈부의 계층이 직접 맞부치는 데서 나오는 게 아닙니다. 그렇게 된다면 교양이 없는 것이겠지요. 오히려 부유층들의 문지기들이 ‘묘한’ 표정으로, 부유층이 아닌 사람들을 분별해내고 ‘업수이여기는 듯한 턱의 표정’을 짓는 데서 불화의 무늬가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이 불편함을 넘어서야만 빈부의 경계가 무너질까요? 한쪽은 오기 같은 열심이 나서, 한쪽은 탈진하도록 ‘나지 않는 때깔’을 견딥니다. 한쪽은 조그맣게,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하고 한쪽은 보내고 나서 한숨을 쉬네요. 아마도 작게.
마음과 관계의 무늬를 따라가는 눈길, 손길이 섬세합니다. ‘애인이여/멀리 있는 애인이여/이런 때는/허리에 감기는 비단도 아파라.’라고 한 박재삼 시인의 시가 생각납니다.    
 
2007. 9. 27. 문학집배원 성석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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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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