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 「마음사전」
- 작성일 2009-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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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마음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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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 : 연민 / 동정은 행동으로 표출되고 연민은 마음으로 표출된다. 동정보다는 연민 때문에 우리는 더 마음이 아프고 마음이 묶인다. 마음이 묶여버려서 연민은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동정하는 사람은 타자를 통해 내 자신은 그것을 이미 갖고 있거나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자긍심을 느낀다면, 연민하는 사람은 타자를 통해 내 자신도 그것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결핍감을 느낀다. 요컨대 동정은 이질감을 은연중에 과시한다면 연민은 동질감을 사무치게 형상화한다. 물에 빠진 사람을 동정한다면 우리는 119 구조대를 부를 테지만, 물에 빠진 사람을 연민한다면 우리는 팔을 뻗어 손을 내밀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지독한 동정은 오직 사랑 때문에, 사랑의 내용을 망치는 쪽으로 나아간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지독한 연민은 사랑의 형식을 망가뜨릴지라도 내용을 채우려는 쪽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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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하다 / ‘반하다’는 말 앞에는 ‘홀딱’이란 수식어가 적격이다. ‘홀림’의 발단 단계. 그 어떤 호감들에 비해, 그만큼 순도 백 퍼센트 감정에만 의존된(‘의존한’이 아니라) 선택인 셈이다. 순식간에 이루어지지만, 그리 쉽게 끝나지 않는다. 어차피 아무런 판단을 동원하지 않고 행한 호감의 의식이므로, 벼락처럼, 자연재해처럼 한순간에 완결되는 감정이지만, 수습은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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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 / ‘홀림’이 근거를 찾아나선 상태. ‘반한다’는 것이 근거를 아직 갖지 못해 불안정한 것이라면, ‘매혹’은 근거들의 수집이 충분히 진행된 상태다. 풍부하게 제시되는 근거 때문에 매혹된 자는 뿌듯하고 안정적이다. 그러므로 매혹은 즐길 만한 것, 떠벌리고 싶은 것이 된다. 게다가 중독된 상태와 비슷해서, 종료되는 순간은 쉽게 오지 않는다. 실망의 언저리를 맴돌다가도 어느새 다시 감정은 복원된다. 매혹되어 있어서 자신이 망가지는 느낌이 들거나 매혹으로 인해 포만감을 느껴본 이후라면, 홀연히 매혹의 올가미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도 있다. 그럴 땐 매혹에의 경험이, 가슴에서 반짝이는 자랑스런 금색 훈장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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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 /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이별 후에도, 목숨을 버리고 싶은 이별 후에도, 우리는 살겠노라 호흡을 하고, 밥을 먹고, 사람을 만나고, 일을 한다. 웃기면 웃고, 가려우면 긁고, 다리가 저리면 고쳐 앉는다. 그 속에서 그럴 듯한 망각을 몸소 실천하는 듯하지만, 망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마음의 가역(可逆) 작용은 불완전하다. 언제나 흔적이 남는다. 통증과 환희, 쾌감과 분노 따위가 느껴지지 않을 뿐, 즉, 그 자리가 상처가 아닐 뿐, 흉터로서 남는다. 사랑하는 동안 급하게 흘러갔던 시간이 한없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을 무능하게 바라보면서, 시간의 완급을 수십 번 되풀이하여 바라보면서, 흉터가 비로소 흔적으로 남는다. 그것을 우리는 망각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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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낭송 /?김소연
1967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났으며, 1993년 『현대시사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극에 달하다』『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가 있으며, 산문집 『마음사전』과 장편동화 『오징어섬의 어린왕자』, 그림책 『은행나무처럼』 등이 있음.
● 출전?/ 『마음사전』, 마음산책
● 음악 /?권재욱
● 프로듀서 /?김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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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그렇듯이 저도 독서를 통해서 단어를 습득했어요. ‘연민의 정’을 중학생 때까지도 ‘사랑’과 동의어인 줄 알았던 것은, ‘연민’이란 단어가 으레 ‘사랑’이라는 말이 들어갈 자리에 쓰였기 때문이죠. 연민이 동정의 뜻이란 걸 알고 얼마나 창피했던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다시금 연민이 사랑과 크게 멀지는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죠.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도 비슷한 얘기가 있어요. 라틴어에 뿌리를 두고 있는 언어들은 모두가 동정이란 단어를 ‘함께’라는 뜻의 com과, ‘참고 견딤’이라는 뜻의 passio로 만들었다고 해요. 타인의 감정을 함께 느낀다는 거죠. 토마스는 테레사에게 이런 동정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질투에 찬 테레사가 자신의 서랍을 뒤졌을 때 그녀에게 화를 낼 수 없었을 뿐 아니라 그녀를 오히려 더욱더 사랑했다고 하네요. 감정이란 정말 미묘하고 섬세한 거죠? 사전으로 만들 수 있을 만큼 말예요. 김소연의 사전에 의하면 ‘호감’에 대한 것만 해도 존경, 동경, 흠모와 열광, 옹호, 좋아하다, 반하다, 매혹되다, 아끼다, 매력, 보은, 신뢰 등등 끝없이 나눠볼 수 있어요. 우리는 그것들을 다 느껴본 걸까요? 못 느껴본 감정이 의외로 많을지도 모릅니다. 저만 해도 아직 ‘첫눈에 반하다’는 감정은 잘 모르겠거든요. 거기 대해 누군가는 ‘그거 위험한데’라고 논평하더군요. 제 인생에, 첫눈에 반할 일이 아직 남아 있다는 뜻인가봐요. 여러분은 얼마나 많은 감정의 단어를 알고 있나요? 우리 설마 ‘사랑’이란 단어를 모르는 건, 아니겠지요?
2009. 9. 10. 문학집배원 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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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4건
김소연 시인 화이팅 화이팅
연민과 동정, 비슷한 감정의 기폭아닌가요? 연민하다 동정으로 변하고, 동정하다 연민이 생겨 사랑하고 그런 것 아닌가
그러고보면 망각이란 단어가 제게는 존재하는 것 같아요첫사랑을 완전히 잊은걸 보면..가끔 생각조차 나지 않는걸 보면..그것은현재의 나의 사람, 나의 사랑이무척 많은 감정들을 제게 선물해주고 있기 때문이겠죠어쩌면사랑,슬픔,분노,기쁨,환희,절망,환호.. 이런 모든 감정들이 동의어가 아닐런지요아무리 극한 상황에 처해도결국 사람은 제자리로 돌아오니까요
사랑 그 위대함---홀딱 반한 사람과 지금 사랑에 빠져있어서인지내용에 공감이 많이 갑니다연민으로 시작된 감정이 나중엔 동정으로 변해버린 첫사랑의 실패하지만 동정으로는 연민으로 이어지지 않고 또한 사랑도 아니더군요이별 후 금방이라도 죽을것만 같지만그 사람 없인 아무것도 못하겠고이별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먹을수도 잘수도 없는 내가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라는 생각의맽 밑바닥까지 가서 바닥을 치고 와서야 깨닫습니다남자가 너하나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