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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커스 주삭, 「책도둑」 중에서

  • 작성일 2010-06-24
  • 조회수 3,926




마커스 주삭, 「책도둑」 중에서

악몽의 교환

소녀 : “이야기 좀 해주세요. 그런 꿈을 꿀 때 뭘 보세요?”
유대인 : “······내가 몸을 돌리고 손을 흔들어 작별인사를 하는 모습을 봐.”
소녀 : “저도 악몽을 꿔요.”
유대인 : “너는 뭘 보는데?”
소녀 : “기차요. 그리고 죽은 동생.”
유대인 : “동생?”
소녀 : “남동생이 있었는데, 이곳으로 오는 길에 죽었어요.”
소녀와 유대인, 함께 : “야- 응.”

이런 작은 일을 계기로 리젤과 막스 모두 악몽을 꾸지 않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면 흐뭇할 것이다. 그러나 흐뭇하기는 하겠지만 진실은 아니다. 악몽은 평소와 다름없이 그들을 찾아왔다. 마치 상대편 최고 선수가 부상을 당하거나 아프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막상 경기장에 와보니 다른 선수들과 함께 몸을 풀며 뛸 준비를 하는 모습이 보일 때와 마찬가지다. 또는 예정대로 들어오는 기차와 마찬가지다. 밤의 플랫폼으로 들어오는 기차. 밧줄에 기억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들어오는 기차. 수많은 기억들이 질질 끌려온다. 수많은 기억들이 어색하게 바닥에 튀기면서 다가온다.
유일하게 바뀐 것이 있다면 리젤이 아빠한테 이제 자기도 많이 컸으니까 혼자 꿈을 감당하겠다고 말한 것이었다. 아빠는 잠시 상처를 받은 표정이었다. 그러나 아빠는 늘 그렇듯이 이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말을 골라내려고 애를 썼다.
“아, 다행이구나.” 아빠는 반쯤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제 나도 잠 좀 제대로 잘 수 있겠는걸. 저 의자는 너무 불편해서 말이야.” 아빠는 소녀를 안았고, 그들은 부엌으로 걸어갔다.


 

작가 : 마커스 주삭 - 1975년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 태어났으며, 1999년 『패배자들』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주로 청소년 소설을 집필하며 문학적 명성을 쌓아가던 그는 2002년 『메신저』를 발표하며 명성을 얻기 시작함. 소설로 『책도둑』『메신저』『개가 짓을 때』『싸우는 루벤 볼페』 등이 있음. 마이클 L. 프린츠 상, 캐슬린 미첼 상 등을 수상함.

낭독 : 노계현 - 성우. 외화 ‘구름 속의 산책’, ‘보통사람들’ 등에 출연.
문지현 - 배우 및 성우. 연극 ‘경숙, 경숙아버지’ 등과 극장판 만화영화 ‘쏠라원투쓰리’ 등에 출연.
출전 : 『책도둑』(문학동네)
음악 : 박세준
애니메이션 : 강성진
프로듀서 : 김태형

군복무를 마친 남자들은 대부분 다시 군대에 끌려가는 꿈을 가장 큰 악몽으로 친다지요. 나치 치하, 양부모 밑에서 자라는 귀여운 책도둑과 그 집의 지하실로 숨어든 유대인 청년도 밤마다 악몽에 시달립니다. 악몽에 쫓기는 사람들의 가느다란 유대가 맺어지는 장면이에요.
이 감동적인 이야기가 청소년 소설이라는 걸 알고 난 뒤, 교복 차림에 삼선 슬리퍼를 질질 끌고 말끝마다 욕설을 붙이는 청소년들을 보면 미안했어요.지구의 어떤 아이들이 이런 이야기를 읽으며 존재와 파시즘에 대해 눈을 뜰 때, 우리 아이들을 무한경쟁의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려놓은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요.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잃고 그저 끌려다닐 때, ‘히틀러 만세!’의 악령은 우리 곁에 성큼 다가서는 거겠죠.

문학집배원 이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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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오랜 꿈 중에 하나는 아마도 자연과의 다감한 융화(融化)가 아닐까. 자본은 융화가 아니라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을 침탈(侵奪)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자연의 품속을 꿈꾼다. 특히나 도회지에 사는 사람들은 메말라가는 인성 때문인지, 아니면 시멘트 문명의 염증 때문인지 모성에 흠뻑 젖고자 한다. 시인들은 여기서 더 나아가 자연의 음과 양이 조화로운, 자기만의 새로운 세계를 시 속에서 창출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자연계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데다가 그 조홧속이 천변만화(千變萬化)라 간절함만 솟구칠 뿐, 대부분 거기에 다다르지 못한다. 시인들은 그 문턱에서 허덕이며 자기 문자속의 졸렬함이나 한탄하기 일쑤다. 그런데 달리 생각하면 이는 당연한 것 아닐까. 자연은 그저 말로만 자연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그 조홧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시인 스스로 천변만화의 변신에 능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변신이어서는 곤란하다.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아닌 듯 그러하게, 그러한 듯 아니게' 눈을 열고 귀를 열고 마침내는 마음을 열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때의 변신은 단순한 변신이 아니라 전이라는 뜻이 가미된 변전(變轉)이어야 하지 않을까. 변전, 그렇다. 변전으로 물질적 속성마저도 달라져야 비로소 '우주의 음과 양이 조화로운, 새로운 자연계'를 그려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변전은 쉽지 않다. 특히 현대사회에 살면서 변전으로 가는 길은 산 첩첩 물 첩첩이다. 자본 문명에 매몰된 비인간적이고 척박한 욕망이 자연과의 교감을 딱 가로막고 있다. 제어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증식하는 이 욕망은 범주의 경계가 없다. 이성과 감성을 두루 다 말아먹고 만다. 현대인들의 심리적 병리 현상은 다 여기서 비롯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에 비하면 변전을 주춤거리게 하는 문자의 욕망쯤은 차라리 순진하다 할 것이다. 나는 천박한 욕망의 습윤(濕潤)이 자연계로 향하는 시의 발길을 붙잡는다고 믿는다. 자연과 인간, 혹은 물(物)과 아(我)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가 드문 이유도 다 이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근래에 이르러 폭발적인 관심 대상이 된 시인 백석쯤이 거기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시인 아닐까.이렇게 생각할 때 같은 연대에 김사인 시와 호흡하고 있음은 다행스럽다. 그도 또한 백석처럼 자연의 경계를 넘나들며 교감의 기를 순환하고 있는 듯 비친다.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 김사인, 「조용한 일」 작가․낭독_ 정우영 - 1960년 태어나 1989년 《민중시》로 등단했다. 시집 『마른 것들은 제 속으로 젖는다』,『집이 떠나갔다』,『살구꽃 그림자』, 시평에세이『이 갸륵한 시들의 속삭임』,『시는 벅차다』등이 있다. * 배달하며 올겨울은 유난히 춥고 초입부터 눈도 많이 내렸죠. 겨우내 산야가 훤합니다. 북국의 정취마저 물씬하여 위뜸 살던 백석 시인의 시들이 생각납니다.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

  • 웹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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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3-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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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3-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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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4건

  • 익명

    책도둑.. 2차세계대전 독일을 배경으로 한 내용이죠. 어렴풋이 기억이 나네요. 책으로 아픔과 고통을 달랬던 소녀, 리젤!! 리젤이 책도둑이었죠.. 읽을 당시에는 그저 어린 소녀 리젤에게 매료당했었는데~ 이렇게 다시 보니 기억이 새록새록 돋아납니다. 다시 또 읽어보면 느껴지는 게 다를 것 같네요.

    • 2010-08-10 20:18:34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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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동굴

    악몽. 생사의 고비를 넘긴 사람들이 꿈 속에서 어떤 고통을 겪을지 상상이 되네요. 더군다나 어린아이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된 슬픔이나 두려움에 관한 기억이 만들어내는 꿈이라면야... 마커스 주삭의 책도둑은 읽어보지 못했기에 낭독을 들으며 전반적인 느낌을 떠올릴 수가 없기에 아쉽군요ㅠ

    • 2010-08-02 20:52:24
    바람동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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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군복무를 마치고 다시 군대간 꿈을 꿨는데 왜 난 좋았지.. 솔직히 군대에서 갖은일 다겪어봤는데도.. 왠지 잠깐이라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젊음을 느꼈다는 그것때문이였는지 모르겠지만...

    • 2010-07-22 01:23:37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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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

    • 2010-07-22 00:32:49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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