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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난호, 「윤예선 그 사람」 중에서

  • 작성일 2011-05-19
  • 조회수 1,678




 
이난호, 「윤예선 그 사람」 중에서
 
 
 
 
동서가 어머님 몸을 씻기거나 걸음마를 시킬 때는 주위에 누가 있건 없건 꼭 말썽꾼 어린애를 다루듯 어투도 손놀림도 거칠고 모질다. “엄니, 똥 좀 먹지 말어”하며 손가락을 넣어 어머니 입을 마구 후벼대거나 “엄니, 걸음마 안 하면 금방 앉은뱅이 된단 말여”하면서 노인의 어깻죽지를 꺼올려 억지걸음마를 시킬 땐 숫제 가혹하다. 그는 수세미로 방바닥 오물을 제거하고 젖은 걸레로 닦고 마른걸레로 닦고 방향제를 뿌린 후 어머님을 새 이불로 둥둥 말아 앉히고는 그 앞에 그득한 밥그릇을 놓는다.
어머니는 동서가 떠 넣어 주는 밥숟갈을 받아 삼키는 틈틈이 “엄마, 어디 가지 마”를 연발한다. 동서는 짐짓 볼멘소리로 “엄니 똥빨래는 누가하고 농사는 누가 짓느냐”고 대꾸한다. 태생 말투가 투박한데다 억양도 꾸밀 줄 몰라 그러려니 하면서도 나는 그가 목소리를 높일 때마다 뜨끔 한다. 저게 혹 내게 하는 시위는 아닐까? 하긴 그가 시집 온 이후 이십 년 넘게 시어머니를 모셔 오고 있지만 변죽 울리기 따위 암시로 나를 불편하게 한 적은 없다.
그가 진 짐이 너무 버거워 보였던지 동네사람 한 명이 “노인의 식탐이 정상이 아니고 배설에 분별력도 없으니 식사량을 좀 줄이면 빨래 품을 덜지 않겠냐”고 귀띔했더니 동서는 대뜸, “난 그렇게는 못 해유.” 잘라버리더라고 했다. 동서는 또 “아들 셋이 시어머니를 번갈아 모시는 게 어떻겠냐”고 꼬드길 때도 “엄니가 무슨 물건이간디? 이리 돌리구 저리 돌리게……” 하곤 푹 웃음을 터뜨리더라고 했다. 그가 어머님을 공처럼 이리저리 굴리는 연상을 하고 웃음을 터뜨렸건, 남의 일에 끼어들어 찧고 까부르는 동네사람들이 가소로워서 웃었건 나는 동서가 웃었다는 말에 콧마루가 찡해져 어금니를 꽉 물었다.
 
 
 
작가_ 이난호 - 충남 당진에서 태어났으며, 1992년부터 지금까지 ‘가족계획협회’ 청소년 진로상담과 ‘사랑의 전화’ 상담원으로 봉사활동. 1997년 「어떤 늦바람 이야기」로 《문예사조》 신인상 당선 후 작품활동 시작.
 
낭독_ 이영주 - 시인.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2000년 『문학동네』 신인상에 당선되어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108번째 사내』, 『언니에게』가 있음.
출전_ 『윤예선 그 사람』(범우사)
음악_ 박세준
애니메이션_ 민경
프로듀서_ 김태형
 
 
 

 
바야흐로 프로필의 계절입니다. 올봄 졸업을 했거나 아직 취업을 못한 친구들이 오늘도 직장을 찾느라 어디선가 열심히 프로필을 쓰고 있겠지요. 제가 일하고 있는 사무실에서도 얼마 전 구인 공고를 냈고 오늘도 몇 통의 프로필과 자기소개서가 도착했습니다. 몇 남 몇 녀 중 몇째로 시작되는, 사실로만 가득한 글도 있고 제 3자가 되어 자신을 꼼꼼히 관찰한 글도 있습니다. 엇비슷하면서도 다 달라 읽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오래 전 저도 수없이 프로필을 쓴 적이 있었습니다. 몇 줄 되지 않아 자꾸 이야기를 덧붙이곤 했지요. 소설을 쓰게 된 것도 어쩌면 프로필에서 시작되었을지 모릅니다.
윤예선 씨, 글 속의 그녀는 이제 마흔여덟입니다.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그녀에게는 하루종일 그녀의 치마꼬리를 붙들고 늘어지는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가 있습니다. 남편은 늘 술이 과해 그녀의 속을 끓입니다. 아들은 입대했고 딸은 여고 3학년 민감할 시기입니다. 거두어야 할 이십 여 마리의 각종 가축이 있고 이천 평 남짓한 전답과 자그마한 밤 동산도 있지요. 이렇듯 한 인물을 잘 표현한 프로필을 저는 어디에서도 읽은 적이 없습니다.
 
문학집배원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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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오랜 꿈 중에 하나는 아마도 자연과의 다감한 융화(融化)가 아닐까. 자본은 융화가 아니라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을 침탈(侵奪)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자연의 품속을 꿈꾼다. 특히나 도회지에 사는 사람들은 메말라가는 인성 때문인지, 아니면 시멘트 문명의 염증 때문인지 모성에 흠뻑 젖고자 한다. 시인들은 여기서 더 나아가 자연의 음과 양이 조화로운, 자기만의 새로운 세계를 시 속에서 창출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자연계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데다가 그 조홧속이 천변만화(千變萬化)라 간절함만 솟구칠 뿐, 대부분 거기에 다다르지 못한다. 시인들은 그 문턱에서 허덕이며 자기 문자속의 졸렬함이나 한탄하기 일쑤다. 그런데 달리 생각하면 이는 당연한 것 아닐까. 자연은 그저 말로만 자연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그 조홧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시인 스스로 천변만화의 변신에 능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변신이어서는 곤란하다.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아닌 듯 그러하게, 그러한 듯 아니게' 눈을 열고 귀를 열고 마침내는 마음을 열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때의 변신은 단순한 변신이 아니라 전이라는 뜻이 가미된 변전(變轉)이어야 하지 않을까. 변전, 그렇다. 변전으로 물질적 속성마저도 달라져야 비로소 '우주의 음과 양이 조화로운, 새로운 자연계'를 그려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변전은 쉽지 않다. 특히 현대사회에 살면서 변전으로 가는 길은 산 첩첩 물 첩첩이다. 자본 문명에 매몰된 비인간적이고 척박한 욕망이 자연과의 교감을 딱 가로막고 있다. 제어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증식하는 이 욕망은 범주의 경계가 없다. 이성과 감성을 두루 다 말아먹고 만다. 현대인들의 심리적 병리 현상은 다 여기서 비롯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에 비하면 변전을 주춤거리게 하는 문자의 욕망쯤은 차라리 순진하다 할 것이다. 나는 천박한 욕망의 습윤(濕潤)이 자연계로 향하는 시의 발길을 붙잡는다고 믿는다. 자연과 인간, 혹은 물(物)과 아(我)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가 드문 이유도 다 이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근래에 이르러 폭발적인 관심 대상이 된 시인 백석쯤이 거기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시인 아닐까.이렇게 생각할 때 같은 연대에 김사인 시와 호흡하고 있음은 다행스럽다. 그도 또한 백석처럼 자연의 경계를 넘나들며 교감의 기를 순환하고 있는 듯 비친다.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 김사인, 「조용한 일」 작가․낭독_ 정우영 - 1960년 태어나 1989년 《민중시》로 등단했다. 시집 『마른 것들은 제 속으로 젖는다』,『집이 떠나갔다』,『살구꽃 그림자』, 시평에세이『이 갸륵한 시들의 속삭임』,『시는 벅차다』등이 있다. * 배달하며 올겨울은 유난히 춥고 초입부터 눈도 많이 내렸죠. 겨우내 산야가 훤합니다. 북국의 정취마저 물씬하여 위뜸 살던 백석 시인의 시들이 생각납니다.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

  • 웹관리자
  • 2013-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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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3-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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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여울물 소리」중에서   신통이 녀석 언젠가부터 우리네와 좀처럼 안 어울린다네. 하는 것이 그의 첫마디였다. 박돌은 이신통을 십 년 전에 처음 만났다고 그랬다. 천안 장터에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울고 웃고 성나고 기쁘게 하기를 하늘이 여름날의 바람과 구름을 희롱하는 듯하였다. 옛말에 이야기 주머니(說囊)라고 하더니 바로 신통이 그러했다. 그는 이야기를 하다가 가장 간절한 대목에 이르러 갑자기 그치니 사람들은 뒷얘기가 너무 궁금하여 다투어 돈을 그의 발아래 내던졌다. 이신통은 당시에 한양 패거리와 헤어진 직후여서 단출한 패거리를 이끌고 다니던 박돌이 막걸리 잔이나 사면서 동무가 되었다. 신통은 다시 때와 장소를 구분하여 이를테면 장터 어구의 버드나무 아래라든가 다리 앞에라든가에서 다른 이야기로 판을 벌였다. 새 손님이 많았지만 앞서 그의 이야기를 들었던 사람들도 지나가다 다시 모여들기 마련이었다.   박돌이 자기네 패와 동행하기를 권하여 함께 다니다가 이신통과 헤어졌는데 그들은 다시 도방 대처에서 만나기를 거듭했고 나중에는 신통이가 광대물주를 하게 되었다. 그들이 전주에서 엄마의 색주가에 들렀을 때에 이신통은 광대물주를 하고 있던 무렵이었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그는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고 했다. 내가 글쎄 그 일이 뭐냐고 물었을 때, 박독은 목소리를 낮추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천지도라구 들어봤나? 신통이가 그 패거리에 들게 되었거든.  저 머신가, 나라에서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고 하는 미신인데 그것이……  그러면 예전 천주학 같은 거 말예요?  이전에는 모두 죽였다만 시방 천주학은 양귀들 때문에 묵인된 셈이고, 천지도는 처음 시작했다는 교주를 국법으로 처단을 했다 그 말여.    박돌이 이신통에 대한 불길한 소식을 남기고 떠난 뒤에 나는 뜸을 들였다가 어느 날 영업이 끝나고 엄마와 나란히 누워서 잠을 청하던 때에 슬며시 묻게 되었다.   엄마, 천지도가 뭔지 알우?   자다가 봉창 두들긴다더니, 뜬금없이 천지도는 왜...... 한번 믿어볼라구?   관에서 금한다며?   양반 것들이 저희 자리 내노랄까 봐 노심초사하는 게지. 천지도에서 사람은 누구나 하늘이다 그런다는구나. 그 말본새 하난 마음에 들더만. 나두 주문 외우는 소린 여러 번 들었다. 우리 집에 묵어가는 길손들 중에 겉으로 말은 안 해두 내가 대강 눈치를 채는데 하나둘이 아녀. 천지도인들 점잖은 사람들이더라. 소문에 듣자 허니 촌에는 동네마다 모여서 기도하구 그런다대.   하면 엄마는 왜 안 믿었어?   봄꽃두 먼저 피면 반갑고 이쁘기는 하더라만 그것이 천기를 보는 거여. 꽃샘바람 불고 눈보라 치면 속절없이 지는 법이니라. 세상이 만화방창할 제 더불어 피어나야 절기를 누리는 거란다.   그러면 어여쁜 본색을 어찌 드러낼 수 있남? &nb

  • 웹관리자
  • 2013-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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