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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바라, 샤이에 롱, 「조선기행」 중에서

  • 작성일 2011-06-30
  • 조회수 1,791




 
샤를 바라, 샤이에 롱, 「조선기행」 중에서
 
 
 
 
뒤에는 하인 한 명이 끈으로 묶은 망태를 어깨에 맨 채 걸어오고 있었는데, 그 안에는 지름 25센티미터에 깊이 12센티미터 정도 되는 둥그스름한 구리 단지가 금빛이 감도는 가운데 지는 석양에 반짝거리고 있었다. 이 새로운 일행의 모습에 호기심을 느낀 나는 옆 친구에게 저것이 무슨 통조림통이 아니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껄껄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하하! 차라리 내가 보기엔 커다란 당과 그릇 같은데요! 모르고 계셨군요. 저런 단지는 대개 저렇게 뚜껑은 있고 손잡이는 없는데 항상 금속으로 되어 있죠. 조선인의 생활에 있어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도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죠. 각자 자기 것이 있고, 어디를 나서든지, 여행을 떠날 때도 항상 지참하고 다닌 답니다. 가난한 사람은 손수 들고 다니지만, 부자의 경우는 저렇게 특별한 하인을 시켜서 늘 청결한 상태로 그것만 관리하게 하지요. 언제라도 주인이 쓸 수 있게 말입니다. 나라의 관리조차도 온갖 공식 행렬 중에 거의 자신의 인장과 동등하게 그것을 관리합니다.”
“대체 어디다 쓰는 건데요?”
“밤이든 낮이든, 혼자 있을 때든 여럿이 있을 때든, 필요하면 곧장 사용하지요. 예컨대 주인이 신호를 보내면 그것을 담당하는 하인이 얼른 다가와 직접 손에 넘겨줍니다. 그러면 주인은 슬그머니 그것을 긴 외투자락 속으로 집어넣지요. 잠시 후 그 기능을 다한 단지는 조심스레 뚜껑이 닫힌 채, 그것이 들어갔던 깊숙한 옷자락에서 다시 나와 주의깊은 하인의 손에 넘겨진답니다 그 하인이 해야 할 일이 따로 남아 있는 거죠. 주인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사람들과 대화를 계속하는 동안 말입니다. 그 단지는 타구용으로도 쓰이고, 뚜껑 안쪽에 약간의 장치만 만들면 휴대용 촛대로도 활용이 가능하답니다. 정말이지 소중한 보물 단지인 셈이죠! 가끔은 부랑자들이 베개로 삼는 광경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다용도로 쓰이는 걸 보면, 앞으로 저걸 부를 때 아마 ‘국민의 그릇’(vase national)이라고 해도 될 겁니다!”
“이리저리 자유자재로 가지고 다니고 캄캄한 밤엔 안 보이더니 낮에는 버젓이 들고 다닌 걸로 봐서, 차라리 ‘필수 휴대품’이라고 하는 편이 더 낫겠네요.”
서로 말장난을 하는 동안 저녁 어스름이 점점 내려앉았고 우리는 서둘러 숙소로 발길을 돌렸다.
 
 
 
◆ 작가_ 샤를 바라 - 프랑스의 여행가로, 지리학자이자 민속학자. 유럽과 아메리카, 북아프리카, 인도, 캄보디아 등의 동남아시아를 두루 여행하였으며, 특히 북부 러시아와 시베리아를 횡단함.
샤이에 롱 - 미국 메릴랜드에서 태어났으며, 남북전쟁에서 대위로 제대한 후 이집트 주둔 영국군에서 대령까지 진급하지만 영국의 아프리카 정책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퇴역당함. 변호사로 이집트에서 활동하다가 1887년에서 1889년까지 미국의 한성 주재 총영사이자 공사관의 서기관으로 부임함. 1892년에서 1902년 사이 파리에 있는 동안 미국의 독립전쟁에 참전한 프랑스 군인들의 비망록을 만들어 1901년 레종도뇌르 훈장을 받음.
 



 샤를 바라, 샤이에 롱, 「조선기행」 중에서
 

뒤에는 하인 한 명이 끈으로 묶은 망태를 어깨에 맨 채 걸어오고 있었는데, 그 안에는 지름 25센티미터에 깊이 12센티미터 정도 되는 둥그스름한 구리 단지가 금빛이 감도는 가운데 지는 석양에 반짝거리고 있었다. 이 새로운 일행의 모습에 호기심을 느낀 나는 옆 친구에게 저것이 무슨 통조림통이 아니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껄껄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하하! 차라리 내가 보기엔 커다란 당과 그릇 같은데요! 모르고 계셨군요. 저런 단지는 대개 저렇게 뚜껑은 있고 손잡이는 없는데 항상 금속으로 되어 있죠. 조선인의 생활에 있어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도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죠. 각자 자기 것이 있고, 어디를 나서든지, 여행을 떠날 때도 항상 지참하고 다닌 답니다. 가난한 사람은 손수 들고 다니지만, 부자의 경우는 저렇게 특별한 하인을 시켜서 늘 청결한 상태로 그것만 관리하게 하지요. 언제라도 주인이 쓸 수 있게 말입니다. 나라의 관리조차도 온갖 공식 행렬 중에 거의 자신의 인장과 동등하게 그것을 관리합니다.”
“대체 어디다 쓰는 건데요?”
“밤이든 낮이든, 혼자 있을 때든 여럿이 있을 때든, 필요하면 곧장 사용하지요. 예컨대 주인이 신호를 보내면 그것을 담당하는 하인이 얼른 다가와 직접 손에 넘겨줍니다. 그러면 주인은 슬그머니 그것을 긴 외투자락 속으로 집어넣지요. 잠시 후 그 기능을 다한 단지는 조심스레 뚜껑이 닫힌 채, 그것이 들어갔던 깊숙한 옷자락에서 다시 나와 주의깊은 하인의 손에 넘겨진답니다 그 하인이 해야 할 일이 따로 남아 있는 거죠. 주인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사람들과 대화를 계속하는 동안 말입니다. 그 단지는 타구용으로도 쓰이고, 뚜껑 안쪽에 약간의 장치만 만들면 휴대용 촛대로도 활용이 가능하답니다. 정말이지 소중한 보물 단지인 셈이죠! 가끔은 부랑자들이 베개로 삼는 광경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다용도로 쓰이는 걸 보면, 앞으로 저걸 부를 때 아마 ‘국민의 그릇’(vase national)이라고 해도 될 겁니다!”
“이리저리 자유자재로 가지고 다니고 캄캄한 밤엔 안 보이더니 낮에는 버젓이 들고 다닌 걸로 봐서, 차라리 ‘필수 휴대품’이라고 하는 편이 더 낫겠네요.”
서로 말장난을 하는 동안 저녁 어스름이 점점 내려앉았고 우리는 서둘러 숙소로 발길을 돌렸다.

 
 
◆ 작가_ 샤를 바라 - 프랑스의 여행가로, 지리학자이자 민속학자. 유럽과 아메리카, 북아프리카, 인도, 캄보디아 등의 동남아시아를 두루 여행하였으며, 특히 북부 러시아와 시베리아를 횡단함.
샤이에 롱 - 미국 메릴랜드에서 태어났으며, 남북전쟁에서 대위로 제대한 후 이집트 주둔 영국군에서 대령까지 진급하지만 영국의 아프리카 정책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퇴역당함. 변호사로 이집트에서 활동하다가 1887년에서 1889년까지 미국의 한성 주재 총영사이자 공사관의 서기관으로 부임함. 1892년에서 1902년 사이 파리에 있는 동안 미국의 독립전쟁에 참전한 프랑스 군인들의 비망록을 만들어 1901년 레종도뇌르 훈장을 받음.
 
◆ 낭독_ 김민성 - 성우. 〈격동50년〉, 〈내셔널지오그래픽〉 등에 출연.
이현우 - 배우. 〈한 여름 밤의 꿈〉, 〈휘가로의 결혼〉, 〈택시드리벌〉 등에 출연
◆ 출전_ 『조선기행』(눈빛)
◆ 음악_ 권재욱
◆ 애니메이션_ 민경
◆ 프로듀서_ 김태형
 
 

 
연배가 좀 되신 분이라면 이들의 대화가 무엇을 두고 이루어지고 있는지 아시겠지요? 백여 년 전 조선을 여행한 프랑스인에게 비친 한양의 모습입니다. 요강이라는 것이 희한한 물건처럼 묘사되고 있는데요, 길거리에서 볼일을 봐 걷는 일조차 쉽지 않다는 프랑스에 비하면 오히려 청결하다는 느낌마저 줍니다. 지금처럼 화장실이 집안에 없던 시절에는 집집마다 요강이 있었습니다. 종류도 다양했고 엉덩이에 닿던 감촉도 다 달랐지요. 어린 시절, 외갓집 툇마루에도 밤이면 요강이 나와 앉았습니다. 한겨울이었습니다. 눈을 비비고 마루로 나와 요강에 걸터앉았지요. 밤새 한 데 나와 차가워질 데로 차가워진 요강에 엉덩이가 얼어붙을 것만 같았습니다. 쨍하고 차갑던 그 동그라미는 아직도 엉덩이가 기억하고 있습니다. 정신이 번쩍 났지요. 그제야 보았습니다. 밤새 내린 눈으로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해 있었지요. 멀게만 보이던 앞산이 바로 사립문 밖에 있었습니다.
모든 경계가 사라진 세상엔 하얀 눈과 저와 그리고 요강뿐이었습니다.
 
문학집배원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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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오랜 꿈 중에 하나는 아마도 자연과의 다감한 융화(融化)가 아닐까. 자본은 융화가 아니라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을 침탈(侵奪)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자연의 품속을 꿈꾼다. 특히나 도회지에 사는 사람들은 메말라가는 인성 때문인지, 아니면 시멘트 문명의 염증 때문인지 모성에 흠뻑 젖고자 한다. 시인들은 여기서 더 나아가 자연의 음과 양이 조화로운, 자기만의 새로운 세계를 시 속에서 창출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자연계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데다가 그 조홧속이 천변만화(千變萬化)라 간절함만 솟구칠 뿐, 대부분 거기에 다다르지 못한다. 시인들은 그 문턱에서 허덕이며 자기 문자속의 졸렬함이나 한탄하기 일쑤다. 그런데 달리 생각하면 이는 당연한 것 아닐까. 자연은 그저 말로만 자연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그 조홧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시인 스스로 천변만화의 변신에 능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변신이어서는 곤란하다.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아닌 듯 그러하게, 그러한 듯 아니게' 눈을 열고 귀를 열고 마침내는 마음을 열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때의 변신은 단순한 변신이 아니라 전이라는 뜻이 가미된 변전(變轉)이어야 하지 않을까. 변전, 그렇다. 변전으로 물질적 속성마저도 달라져야 비로소 '우주의 음과 양이 조화로운, 새로운 자연계'를 그려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변전은 쉽지 않다. 특히 현대사회에 살면서 변전으로 가는 길은 산 첩첩 물 첩첩이다. 자본 문명에 매몰된 비인간적이고 척박한 욕망이 자연과의 교감을 딱 가로막고 있다. 제어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증식하는 이 욕망은 범주의 경계가 없다. 이성과 감성을 두루 다 말아먹고 만다. 현대인들의 심리적 병리 현상은 다 여기서 비롯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에 비하면 변전을 주춤거리게 하는 문자의 욕망쯤은 차라리 순진하다 할 것이다. 나는 천박한 욕망의 습윤(濕潤)이 자연계로 향하는 시의 발길을 붙잡는다고 믿는다. 자연과 인간, 혹은 물(物)과 아(我)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가 드문 이유도 다 이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근래에 이르러 폭발적인 관심 대상이 된 시인 백석쯤이 거기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시인 아닐까.이렇게 생각할 때 같은 연대에 김사인 시와 호흡하고 있음은 다행스럽다. 그도 또한 백석처럼 자연의 경계를 넘나들며 교감의 기를 순환하고 있는 듯 비친다.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 김사인, 「조용한 일」 작가․낭독_ 정우영 - 1960년 태어나 1989년 《민중시》로 등단했다. 시집 『마른 것들은 제 속으로 젖는다』,『집이 떠나갔다』,『살구꽃 그림자』, 시평에세이『이 갸륵한 시들의 속삭임』,『시는 벅차다』등이 있다. * 배달하며 올겨울은 유난히 춥고 초입부터 눈도 많이 내렸죠. 겨우내 산야가 훤합니다. 북국의 정취마저 물씬하여 위뜸 살던 백석 시인의 시들이 생각납니다.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

  • 웹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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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3-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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