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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해, 「나는 네가 지난여름 한 일을 알고 있다」 중에서

  • 작성일 2011-07-07
  • 조회수 1,782




 
이청해, 「나는 네가 지난여름 한 일을 알고 있다」 중에서
 
 
 
 
나는 투덜거리며 많이 본 이미지 순위를 클릭했다. 거기에, 어제 청룡 영화제에서 사회를 본 여배우의 파격 노출 사진 밑에, 그러니까 2위 자리에 ‘나는 네가 지난여름 한 일을 알고 있다’란 제목으로 문제의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손톱만 한 사진을 클릭해 들어갔다. 화면이 꽃피듯 떠올라 내 앞에 멎었다. 확대된 사진은 분명 여자의 둔부 사진이었고, 볼일을 보고 엉거주춤 일어서는 알궁둥이를 뒤에서 찍은 것이었다. 뿌옇게 부푼 나뭇가지들이 얼기설기 화면을 어지럽히고 있었지만 나에게는 익숙한 무엇이 감지되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이마 앞에서 뻘건 태양이 지글거렸다. 나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가슴에서 쿵쿵 북소리가 들렸다. 누가 어떻게 이걸……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 어느, 누가, 왜, 그 밤중에 어둠 속에서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었단 말인가. 나는 사연을 찾아 읽었다. 사진을 올린 사람은 동물학자이고, 현재 오소리의 생태를 연구 중인데, 초월도의 야산에 비디오카메라를 설치해 놓았다는 것. 아마도 그 민박집 뒤 비탈 숲이 오소리가 지나다니는 길목이어서 거기에도 카메라가 장착돼 있었던 것 같았다. 그는 초월도에서 최근 2년간 어느 오소리 일가를 관찰해 왔다고 했다. 카메라에 실린 사진들을 컴퓨터에 옮긴 뒤 작업하다가 우연히 오소리 대신 찍혀 있는 사람의 알궁둥이를 발견했고, 민박집 여자애가 매 맞던 당시의 소란을 떠올렸고, 아무리 봐도 이 엉덩이는 그 말라깽이 소녀의 것이 아니고 도시녀의 성숙한 엉덩이인 듯해서 사진을 올렸다고 쓰고 있었다. 참고로 그 고아 소녀는 비탈 아랫집 사람들을 모욕한 죄로 죽도록 얻어맞고 쫓겨나, 비열하고 뻔뻔한 아이라고 소문이 나, 다른 어느 집에도 발붙이지 못하고 지금 부두에서 구걸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 애가 얼마나 더 구걸을 하고 있을지 비정한 세태를 감안하면 오싹하다는 것이었다. 이 정도면 한 사람의 일생을 망쳐 놓은 게 아니냐고, 그러니 초월도에 놀러 온 어느 도시녀인지 모르지만 양심이 있다면 자수하라는 내용이었다.
 
 
 
작가_ 이청해 - 1948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1990년 중편소설 「강」으로 KBS 방송문학상 수상. 이듬해 《문학사상》에 단편소설 「하오」가 당선되고, 《세계의문학》에 단편소설 「빗소리」를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장편소설로 『초록빛 아침』, 『아비뇽의 여자들』, 『체리브라썸』, 『오로라의 환상』, 『그물』, 『막다른 골목에서 솟아오르다』가 있으며, 소설집으로 『빗소리』, 『숭어』, 『플라타너스 꽃』, 『악보 넘기는 남자』, 장편동화로 『내 친구 상하』 등이 있음.
 
낭독_ 채세라 - 배우. 연극 <우리 읍내>, 뮤지컬 <루나틱> 드라마 <궁> 등에 출연.
출전_ 『장미회 제명 사건』(민음사)
음악_ 임승태
애니메이션_ 이지오
프로듀서_ 김태형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인터넷에 자신의 사진 한 장이 떠돌아다닙니다. 그것도 은밀한 엉덩이 부분이지요. ‘엉덩녀’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모자라 한 고아 소녀의 삶을 파탄으로 빠뜨린 철면피한 인간으로 몰린 겁니다. 물론 떠도는 건 엉덩이뿐입니다. 점 하나 박힌 엉덩이뿐이지요. 그런데도 안절부절입니다. “너지?” “너 아냐?” 많은 이들이 추궁하는 듯합니다. 비밀을 담아둘 수 없어 단짝 친구들에게 털어놓고야 마는데요. 다음날 엉덩녀의 정체에 대해 파다하게 소문이 퍼지고 맙니다. 이제 더는 비밀이 없습니다. 개인의 신상을 털어올리는 무슨무슨 닷컴, 잘 아실 겁니다. 이쯤 되면 어딘가에서 텔레스크린이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1984”가 경고하려고 했던 미래의 모습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모든 일들은 당신이 모르는 사이에 일어납니다. 이 한 장의 엉덩이 사진은 우리를 조롱하는 듯합니다. 당신들은 100퍼센트 안심해도 좋으냐고, 우리에게 엉덩이를 까보이고 있는 거랄까요.
 
문학집배원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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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오랜 꿈 중에 하나는 아마도 자연과의 다감한 융화(融化)가 아닐까. 자본은 융화가 아니라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을 침탈(侵奪)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자연의 품속을 꿈꾼다. 특히나 도회지에 사는 사람들은 메말라가는 인성 때문인지, 아니면 시멘트 문명의 염증 때문인지 모성에 흠뻑 젖고자 한다. 시인들은 여기서 더 나아가 자연의 음과 양이 조화로운, 자기만의 새로운 세계를 시 속에서 창출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자연계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데다가 그 조홧속이 천변만화(千變萬化)라 간절함만 솟구칠 뿐, 대부분 거기에 다다르지 못한다. 시인들은 그 문턱에서 허덕이며 자기 문자속의 졸렬함이나 한탄하기 일쑤다. 그런데 달리 생각하면 이는 당연한 것 아닐까. 자연은 그저 말로만 자연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그 조홧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시인 스스로 천변만화의 변신에 능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변신이어서는 곤란하다.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아닌 듯 그러하게, 그러한 듯 아니게' 눈을 열고 귀를 열고 마침내는 마음을 열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때의 변신은 단순한 변신이 아니라 전이라는 뜻이 가미된 변전(變轉)이어야 하지 않을까. 변전, 그렇다. 변전으로 물질적 속성마저도 달라져야 비로소 '우주의 음과 양이 조화로운, 새로운 자연계'를 그려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변전은 쉽지 않다. 특히 현대사회에 살면서 변전으로 가는 길은 산 첩첩 물 첩첩이다. 자본 문명에 매몰된 비인간적이고 척박한 욕망이 자연과의 교감을 딱 가로막고 있다. 제어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증식하는 이 욕망은 범주의 경계가 없다. 이성과 감성을 두루 다 말아먹고 만다. 현대인들의 심리적 병리 현상은 다 여기서 비롯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에 비하면 변전을 주춤거리게 하는 문자의 욕망쯤은 차라리 순진하다 할 것이다. 나는 천박한 욕망의 습윤(濕潤)이 자연계로 향하는 시의 발길을 붙잡는다고 믿는다. 자연과 인간, 혹은 물(物)과 아(我)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가 드문 이유도 다 이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근래에 이르러 폭발적인 관심 대상이 된 시인 백석쯤이 거기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시인 아닐까.이렇게 생각할 때 같은 연대에 김사인 시와 호흡하고 있음은 다행스럽다. 그도 또한 백석처럼 자연의 경계를 넘나들며 교감의 기를 순환하고 있는 듯 비친다.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 김사인, 「조용한 일」 작가․낭독_ 정우영 - 1960년 태어나 1989년 《민중시》로 등단했다. 시집 『마른 것들은 제 속으로 젖는다』,『집이 떠나갔다』,『살구꽃 그림자』, 시평에세이『이 갸륵한 시들의 속삭임』,『시는 벅차다』등이 있다. * 배달하며 올겨울은 유난히 춥고 초입부터 눈도 많이 내렸죠. 겨우내 산야가 훤합니다. 북국의 정취마저 물씬하여 위뜸 살던 백석 시인의 시들이 생각납니다.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

  • 웹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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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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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3-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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