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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월, 「프라자 호텔」 중에서

  • 작성일 2011-07-21
  • 조회수 1,574




 
김미월, 「프라자 호텔」 중에서
 
 
 
 
그러고 보니 서울살이 어느새 석달째였다. 어린 시절 조용필의 ‘서울 서울 서울’이나 이용의 ‘우리의 서울’ 노래를 들으면서 품었던 환상 속의 서울과는 좀 달랐지만 그래도 나쁘지는 않았다. 윤서는 서울이 고향이라고 했다.
“난 여기가 싫어. 사람도 너무 많고 너무 시끄러워. 거리에는 똑같이 생긴 아파트들밖에 없고 공기는 탁하고. 밤에도 너무 밝아 잠을 잘 수가 없어.”
사람이 많고 시끄러워서 나는 오히려 좋았다. 나까지 덩달아 흥이 났으니까. 서울은 어디를 가도 똑같은 곳이 한 군데도 없고 마음만 먹으면 1년 365일 데이트 코스를 365가지로 짤 수도 있었다. 밤에도 밝으니 혼자 있어도 덜 외로운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굳이 윤서에게 반대 의견을 내놓을 필요는 없었다. 아니, 윤서에게라면 무엇이든 그녀 뜻대로 설득당해도 좋았다. 저만치 프라자 호텔 빌딩의 측면이 보였다.
“너 그때 저긴 왜 가고 싶다고 했어?”
윤서의 표정은 진지했다.
“예컨대, 내가 이십 년 전 부모에게 버림받고 외국으로 입양된 고아인데……”
“니가? 진짜?”
“아이 참, 예를 들어서 말이야.”
그녀의 목소리는 나직했다.
“스무 살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고국을 찾았어. 친부모를 만나러 온 거지. 그래서 프라자 호텔에 묵어. 서울 한복판에 있으니까 상징적이잖아. 시청 바로 앞이기도 하고 포인트제로도 가깝고. 아무튼 그래서 부모님을 만나기로 한 전날 밤, 호텔에서 고국의 수도 야경을 내려다보며 상념에 잠기는 거야.”
윤서는 말 끝에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런 상황에서 바라보는 서울은 굉장히 낯설고 새롭겠지.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곳 같을 거야. 이십 년간 부대끼며 살아온 익숙한 고향 땅이 아니라 난생처음 보는 어떤 매혹적인 이방의 땅. 하지만 나를 버린 비정한 도시. 그걸 보고 싶은 거야.”
 
 
 
 
작가_ 김미월 - 1977년 강릉에서 태어났으며, 200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정원에 길을 묻다」가 당선되어 작품활동 시작. 소설집으로 『서울 동굴 가이드』, 장편소설로 『여덟 번째 방』이 있음.
 
낭독_ 홍서준 - 배우. 뮤지컬 <우리 동네>, <위대한 캐츠비> 등에 출연.
황혜영 - 배우. 연극 <타이피스트>, <죽기살기>, 등과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하모니> 등에 출연.
출전_ 『서울, 밤의 산책자들』(강)
음악_ 김권한(COMPANY K)
애니메이션_ 송승리
프로듀서_ 김태형
 
 
 

 
‘플라자 호텔’이 아니라 ‘프라자 호텔’입니다. 태평로에 서 있는, 리모델링 되기 이전의 호텔이라는 느낌이 드는, 제 표기법을 찾았어도 우리에겐 언제나 ‘프라자’인 거죠. 프라자 호텔을 처음 본 건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이었지요.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되고 시청역까지 쉽게 올 수 있었지요. 플라자의 뜻을 안 건 그 뒤로도 한참 뒤였구요. 조금은 근접하기 어려워 보이던 호텔의 이름이 ‘광장 호텔’이었다는 걸 아는 순간, 뭐랄까 좀 가깝게 느껴졌달까요. 아무튼 프라자 호텔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그 앞을 돌아 한국은행이나 중앙우체국까지 걸어다니기도 했구요, 눈이 내리던 어느 날, 신춘문예 투고 원고가 든 서류봉투를 들고가다 그 앞에서 찍 미끄러지기도 했구요, 한참 뒤 이층 찻집에서 맞선이라는 걸 본 적도 있구요…… 정말 숱하게도 그 앞을 지나다녔네요.
이쯤 되면 내 마음의 포인트 제로라고 해도 무방할 테지요. 그 호텔에서 묵은 적은 없지만, 그 앞을 지날 때면 왠지 좀 쓸쓸해졌는데요, 그것이 호텔의 긴 그림자 때문이라고 늘 생각해 왔었는데, 그게 혹 이방인의 심정은 아니었을까요.
 
문학집배원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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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3-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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