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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효인,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

  • 작성일 2012-01-26
  • 조회수 1,345




 
서효인, 「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
 
 
 
 
  ‘내가 왜 그랬지……’
 그런 의문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내 안에 울리는 내면의 목소리를 듣겠다고? 그런 여유는 휴식일 오전 사우나에서나 부려야 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은, 그를 향한 질책과 조소가 그라운드를 지배한다. 그는 지금 바보다. 여기서 그는 멍청이다. 그는 야구장의 얼간이다. 본헤드다.
 본헤드는 일반적인 에러나 부진을 벗어난 범주에 속한다. 도저히 저런 플레이를 할 수 없는데, 귀신에 홀린 것처럼 행해져야 얻을 수 있는 칭호다. 쉬운 땅볼 타구를 놓쳤다면, 그는 그저 실수한 선수에 불과하지, 얼간이의 수준에 이르지 못한다. 내야 뜬공을 바람 때문에 놓친 선수는 일말의 동정을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본헤드에게는 관대함이 없다. 4연속 삼진을 당한 4번 타자에게도 본헤드라는 표현은 쓰지 않는다. 그는 슬럼프에 빠져 있을 뿐이지, 멍청이는 아니다.
 그러나 지금 이 선수는 어떤가.
 그는 단지 방금까지 1루 주자였고, 뒤이은 타자의 천금 같은 안타에 열심히 뛰었을 뿐이다. 3루까지 내달려도 살 수 있을 것만 같았고, 다소 느린 걸음의 그는 최선을 다해 뛰었다. 그의 눈에는 3루 베이스만 보였고, 그 순간 왜 2루를 밟지 않고 지나갔는지는, 전지전능한 신만이 알 것이다.
 그는 팀의 두 번째 포수고, 오랜만에 잡은 기회가 하필이면 접전 상황이라 온몸이 흥분상태다. 수비형 포수로 정평이 나 있는 그가 투수에게 주문한 공은 각도 큰 변화구. 홈플레이트에서 바운드 된 공에 타자는 헛스윙 삼진을 당했지만 포수인 그는 공을 잃어버렸다. 그가 왜 공을 내버려두고 심판과 대화를 나눴는지는 신도 모를 것이다.
 그가 본헤드가 된 것은 순식간의 일이고, 그의 그런 행동 때문에 그의 팀은 플레이오프에 나갈 수 없게 되었다. 그가 멍청이가 된 것은 찰나의 순간이었으나 그 멍청함 덕에 그의 팀은 한국시리즈 한 게임을 내줬다. 그가 원래 중장거리 안타를 잘 때려내고 타석에서 수 싸움에 능한, 머리가 좋은 타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원래 블로킹과 도루저지에 일가견이 있고 투수에게 안정감을 주는 좋은 포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금 본헤드고, 이 순간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우리는 때로 쉽게 본헤드가 된다.
 
 
 
작가ㆍ낭독_ 서효인 - 1981년 전남 광주 출생. 2006년 《시인세계》로 등단.
시집으로 『소년 파르티잔 행동 지침』 , 『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 이 있음. 제30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함.  
낭독_ 정인겸 - 배우. 연극 [2009 유리동물원], [맹목] 등에 출연.
 
출전_『이게 다 야구 때문이다 』  (다산책방)
음악_ Digital Juice - BackTraxx
애니메이션_ 강성진
프로듀서_ 김태형
 
 

 
  돌이켜보니 정말 아찔했던 순간이 많았네요. 백여 명이 넘는 대형 강의실에서 별안간 치마의 단추들이 풀리기 시작한 거예요. 앞에 단추들이 쪼르륵 달린 청치마였지요. 멋을 낸다고 사 입은 치마였는데. 어머, 라고 소리를 치기도 전에 한 개가 풀리자 기다렸다는 듯, 또다른 단추들이 차례로, 순식간에. 치마는 더 이상 치마라고 불릴 수 없는 것이 되어 있었지요. 옆의 남학생이 놀라 황급히 고개를 돌렸어요. 목덜미가 붉어졌더군요. 마음과는 달리 몸은 움직이지 않아요.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어요. 그 어떤 조치도 취하지 못한 채 망연자실 앉아 있었어요. 머릿속이 멍해지고 꼭 남의 일만 같았지요. 옆의 여학생이 기지를 발휘해 재빨리 자신의 점퍼를 던져 제 몸을 가려주지 않았다면…… 얼마 전 비행기 화장실에서였어요. 화장실에 들어가 분명 문을 닫았는데, 몇 번 비행기가 흔들리자 닫혀 있던 문이 스르륵 열리고 말았어요. 승객들이 눈이 쏠린 앞의 화장실이 아니라 다행이었지요. 너무도 놀랐는데, 잠시 미국 여행 중이라고 엄마, 가 아닌 오 마이 갓, 이라는 말이 튀어나와 더 어이가 없었네요. 이런 일 이야기하자면 날이 새도 모자랄 거예요. 그럴 때마다 정말 지상에서 사라지고 싶었는데 어느새 다 잊고 이렇듯 얼굴 들고 아무렇지도 않게 다니고 있네요. 돌이켜보니 그런 대로 참을 수 있는, 에피소드였어요. 지금은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문학집배원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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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3-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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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 익명

    대학수학능력시험 당일, 결혼 상대를 선택하는 순간 등등 본헤드가 되어버린 수많은 청춘들을 위하여….

    • 2012-01-26 16:03:15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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