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한승오, 「호미 도둑」

  • 작성일 2012-11-22
  • 조회수 1,123




  한승오, 「호미 도둑」
 
  대문 밖 벽에 걸어둔 호미가 없어졌다. 벽에 못을 박아, 거기에 삽, 낫, 호미 따위를 걸어두었더니, 이웃 아주머니가 도둑이 훔쳐갈지 모르니 그러지 말라고 했었다. 그 말을 듣고는, 설마 어떤 도둑이 낫이나 호미를 가져갈까 싶었다. 그런데 정말 호미가 없어졌다. 그것도 며칠 전 오일장에 나가서 산 새 호미가.
  그런데 몰래 호미를 들고 간 도둑이 자기 흔적을 뚜렷이 남겼다. 어쩌다 남을지 모를 흔적조차 깨끗이 지우려는 게 도둑의 일반적인 심리인데, 그렇다면 보란듯이 흔적을 남긴 이 도둑은 보통의 도둑이 아닌 걸까?
  도둑은 내 호미가 있던 자리에 자기 호미를 대신 걸어놓았다. 그 호미는 오랜 세월 속에 닳고 닳은 것이었다. 원래 호미 날은 세모난 모양이고 그 크기는 손바닥만하다. 그런데 도둑의 호미는 그 날이 동그란 모양으로 변했고 크기가 아기 주먹만하게 작아졌다. 마치 손가락이 뭉그러진 문둥이의 손 같았다. 모양새로 보아서는 도저히 호미라고 부를 수조차 없는 호미였다. 호미 날이 이렇게까지 되자면 얼마나 오랫동안 호미를 사용해야 할까. 나의 머리로는 계산이 되지 않았다. 내가 사용하는 호미는 아직도 그 날이 날카롭게 곤두선 생생하고 젊은 것이었다.
버젓이 벽에 걸려 있는 도둑의 호미를 보면서, 도둑이 누구일까 생각해보았다. 호미질을 주로 여자가 하는 일이므로, 이 도둑은 여자일 가능성이 크다. 또 닳고 닳도록 호미를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도둑은 나이 든 할머니일 공산이 크다. 젊은 여자들은 쉬 호미를 사고 쉬 호미를 버린다. 할머니들만이 한번 산 호미를 자기 손처럼 애지중지하며 마르고 닳도록 사용한다. 머릿속에서 도둑의 몽타주가 어렴풋이 떠오른다. 늙어서 얼굴이 쪼글쪼글하고 키가 작다. 허리는 구부정하고 지팡이를 짚고 있다. 그런데 우리 마을에 이런 할머니는 한둘이 아니다. 그 정도의 몽타주만으로는 도둑을 찾을 수 없다.
  다시 벽에 걸린 도둑의 호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마치 거센 세파에 시달린 할머니의 자그마하고 힘없는 손이 벽에 걸려 있는 것 같았다. 내 호미 대신 그 자리에 자기 자신을 걸어둔 도둑을 정말 도둑이라 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 도둑은 자기 호미를 담보로 잡히고 내 호미를 잠시 빌려간 것이 아닐까? 하지만 없어진 호미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어쩌면 도둑은 자기 호미와 내 호미를 맞바꾼 것으로 생각하는지도 몰랐다. 등가의 물건으로 말이다. 물론 시장 가격으로 따지면 내 것이 월등하다. 하지만 모든 물건의 가치가 시장가격만으로만 가늠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호미 날 속에 포함된 세월의 무게로 그 가치를 매긴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그래도 내 호미가 월등할까? 젊음이 늙음을 늘 앞서는 것은 아닐 것이다.
  호미 도둑이 지나간 다음부터는 모든 농기구들을 집 안에 들여놓았다. 도둑이 남긴 늙은 호미도 여전히 내 젊은 호미들과 함께 걸려 있다. 가끔 그 호미를 볼 때마다, 둥그렇게 뭉그러진 날 속에서 주인 몰래 세월을 훔쳐가는 또 다른 도둑의 그림자를 언뜻언뜻 보곤 한다.
 
작가_ 한승오 - 1960년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대에서 국어국문학을 공부. 통신수리와 출판 일을 하다가 2001년부터 시골에서 논농사와 밭농사를 지음. 산문집 『그래, 땅이 받아줍디까』,『몸살』등이 있음.
낭독_ 남도형 - 성우. SBS <내 친구 해치>, KBS <슬럼독 밀리어네어> 등에 출연.
출전_ 『삼킨 꿈』(도서출판 강)
음악_ Digital Juice - BackTraxx
애니메이션_ 강성진
프로듀서- 김태형

늙은 농부를 소개하자면 그이의 주름진 얼굴과 손을 사진에 담아도 좋겠지만 무질어진 호미 한 자루도 좋겠지요. 저도 아파트 베란다에 호미 한 자루를 두고 있습니다만, 텃밭 한 평 가꾸어보지 못한 제 호미는 무기처럼 날이 서 있습니다. 오래 된 연장은 주인의 적막한 인생을 들려줍니다. 문학관에서 고인의 만년필, 안경, 타자기, 낡은 책상 따위를 마주할 때 작품으로도 다 환원되지 않은 인생이 엿보이고는 합니다. 얼마 전 서울도서관에서 열린 염상섭 자료 전시회에서 보니 여러 자료들 가운데 졸박한 나무 문패가 눈에 띄었습니다. 생전에 술 좋아해 ‘횡보(橫步)’라는 호를 얻은 작가가 저문 밤 돈암동 문간에서 삐딱하니 바라보고는 했을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서울토박이로 태어나 만주와 신의주, 그리고 피란지로 옮겨 다닌 작가에게 그 문패는 얼마나 듬직했을까요. 책상에 앉아 저는 곁을 둘러봅니다. 저에게는 노란 몽당연필이 있군요.
 
문학집배원 전성태

추천 콘텐츠

정우영,「그 가녀린 것들의 외로운 떨림」중에서

인류의 오랜 꿈 중에 하나는 아마도 자연과의 다감한 융화(融化)가 아닐까. 자본은 융화가 아니라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을 침탈(侵奪)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자연의 품속을 꿈꾼다. 특히나 도회지에 사는 사람들은 메말라가는 인성 때문인지, 아니면 시멘트 문명의 염증 때문인지 모성에 흠뻑 젖고자 한다. 시인들은 여기서 더 나아가 자연의 음과 양이 조화로운, 자기만의 새로운 세계를 시 속에서 창출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자연계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데다가 그 조홧속이 천변만화(千變萬化)라 간절함만 솟구칠 뿐, 대부분 거기에 다다르지 못한다. 시인들은 그 문턱에서 허덕이며 자기 문자속의 졸렬함이나 한탄하기 일쑤다. 그런데 달리 생각하면 이는 당연한 것 아닐까. 자연은 그저 말로만 자연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그 조홧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시인 스스로 천변만화의 변신에 능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변신이어서는 곤란하다.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아닌 듯 그러하게, 그러한 듯 아니게' 눈을 열고 귀를 열고 마침내는 마음을 열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때의 변신은 단순한 변신이 아니라 전이라는 뜻이 가미된 변전(變轉)이어야 하지 않을까. 변전, 그렇다. 변전으로 물질적 속성마저도 달라져야 비로소 '우주의 음과 양이 조화로운, 새로운 자연계'를 그려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변전은 쉽지 않다. 특히 현대사회에 살면서 변전으로 가는 길은 산 첩첩 물 첩첩이다. 자본 문명에 매몰된 비인간적이고 척박한 욕망이 자연과의 교감을 딱 가로막고 있다. 제어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증식하는 이 욕망은 범주의 경계가 없다. 이성과 감성을 두루 다 말아먹고 만다. 현대인들의 심리적 병리 현상은 다 여기서 비롯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에 비하면 변전을 주춤거리게 하는 문자의 욕망쯤은 차라리 순진하다 할 것이다. 나는 천박한 욕망의 습윤(濕潤)이 자연계로 향하는 시의 발길을 붙잡는다고 믿는다. 자연과 인간, 혹은 물(物)과 아(我)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가 드문 이유도 다 이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근래에 이르러 폭발적인 관심 대상이 된 시인 백석쯤이 거기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시인 아닐까.이렇게 생각할 때 같은 연대에 김사인 시와 호흡하고 있음은 다행스럽다. 그도 또한 백석처럼 자연의 경계를 넘나들며 교감의 기를 순환하고 있는 듯 비친다.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 김사인, 「조용한 일」 작가․낭독_ 정우영 - 1960년 태어나 1989년 《민중시》로 등단했다. 시집 『마른 것들은 제 속으로 젖는다』,『집이 떠나갔다』,『살구꽃 그림자』, 시평에세이『이 갸륵한 시들의 속삭임』,『시는 벅차다』등이 있다. * 배달하며 올겨울은 유난히 춥고 초입부터 눈도 많이 내렸죠. 겨우내 산야가 훤합니다. 북국의 정취마저 물씬하여 위뜸 살던 백석 시인의 시들이 생각납니다.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

  • 웹관리자
  • 2013-01-17
모옌,「인생은 고달파」중에서

 모옌,「인생은 고달파」중에서       아버지 눈에 눈물이 비쳤다.“우리가 가진 땅이 3무 2푼이니 너한테 1무 6푼을 주마. 가지고 가서 입사해라. 저 파종기는 토지개혁 때 우리집에 ‘승리의 선물’로 나누어준 것이니, 같이 지고 가거라. 저 방도 네가 가져라. 가져갈 만한 것은 다 가져가라. 입사하고, 네 어머니하고 합치고 싶으면 합치고, 합치고 싶지 않으면 너 혼자 살아라. 아비는 아무것도 필요없다. 이 소하고 저 외양간만 있으면 된다……”“아버지, 왜요, 무엇 때문에 그러세요?” 나는 우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혼자 개인농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아버지가 조용히 말했다. “아무 의미 없다. 그저 조용히 살고 싶어 그런다. 내가 나의 주인이 되고 싶어 그런다. 다른 사람 간섭을 받고 싶지 않아서 그런단 말이다.”(……)“어쩌면 자네들이 전부 옳고 나만 틀린 건지도 몰라. 하지만 난 맹세했어. 이것이 틀린 것이라도 끝까지 틀리자고.”“얘아버지, 보봉마저 시집가고 나면 내가 인민공사에서 퇴사하여 당신 동무가 되어드릴게요”“아냐, 개인농을 하려면 철저히 해야 해, 나 혼자 말이야. 누구도 필요없어. 나는 공산당을 반대하지도 않고 모주석은 더더욱 반대하지 않아. 인민공사도 반대하지 않고, 집단화도 반대하지 않아. 그저 나 혼자 일하는 것을 좋아할 뿐이야. 세상 새와 까마귀 들이 다 까맣다고 해도 어찌 하얀 것이 하나도 없겠어? 내가 바로 그 하얀 새와 까마귀야!”(……)모든 사람들이 태양을 찬송하는 그 시절에, 한사람이 달과 이렇게 깊은 정을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모주석의 사망 소식을 듣고도 울지 않는 또 한사람은 바로 남검이었다. 서문저택 앞마당을 둘러싸고 모두 비통한 울부짖음을 토해낼 때에도 그는 서쪽 행랑채 문틀에 앉아 청색 숫돌에 녹이 시퍼렇게 슨 낫을 갈고 있었다. ‘슥삭슥삭’ 하는 숫돌 소리가 크게 사람들 귀에 거슬리면서 오싹한 마음조차 들게 했다. 이는 상황과 맞아떨어지지도 않을뿐더러 많은 것을 암시해주고 있었다. 더이상 분노를 참지 못한 금룡이 라디오를 아내인 황호조 품에 넘기고는 온 동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남검에게 달려가 숫돌을 빼앗아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숫돌이 두 동강이 나자 금룡이 꽉 다문 이 사이로 외쳤다.“이러고도 당신이 사람입니까!”남검이 가늘게 뜬 실눈으로 분노로 몸을 바들바들 떠는 금룡을 훑어보며 낫을 들고 천천히 일어나면서 말했다.“주석님이 돌아가셨어도 난 살아야 하지 않겠어? 저기 저 벼들도 다 베야 하고.”(……)   “이봐, 남검, 말을 어찌 그리하나?”남검의 눈에서 천천히 눈물이 쏟아져 흘렀다. 그가 두 다리를 굽힌 채 땅에 무릎 꿇고 앉아 비통하게 울부짖었다.“이 세상에서 모주석님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당신네들이 아니라 바로 저예요!”사람들은 잠시 할말을 잊은 채 멍하니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남검이 손으로 땅바닥을 치며 통곡했다.“모주

  • 웹관리자
  • 2013-01-10
황석영,「여울물 소리」중에서

황석영,「여울물 소리」중에서   신통이 녀석 언젠가부터 우리네와 좀처럼 안 어울린다네. 하는 것이 그의 첫마디였다. 박돌은 이신통을 십 년 전에 처음 만났다고 그랬다. 천안 장터에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울고 웃고 성나고 기쁘게 하기를 하늘이 여름날의 바람과 구름을 희롱하는 듯하였다. 옛말에 이야기 주머니(說囊)라고 하더니 바로 신통이 그러했다. 그는 이야기를 하다가 가장 간절한 대목에 이르러 갑자기 그치니 사람들은 뒷얘기가 너무 궁금하여 다투어 돈을 그의 발아래 내던졌다. 이신통은 당시에 한양 패거리와 헤어진 직후여서 단출한 패거리를 이끌고 다니던 박돌이 막걸리 잔이나 사면서 동무가 되었다. 신통은 다시 때와 장소를 구분하여 이를테면 장터 어구의 버드나무 아래라든가 다리 앞에라든가에서 다른 이야기로 판을 벌였다. 새 손님이 많았지만 앞서 그의 이야기를 들었던 사람들도 지나가다 다시 모여들기 마련이었다.   박돌이 자기네 패와 동행하기를 권하여 함께 다니다가 이신통과 헤어졌는데 그들은 다시 도방 대처에서 만나기를 거듭했고 나중에는 신통이가 광대물주를 하게 되었다. 그들이 전주에서 엄마의 색주가에 들렀을 때에 이신통은 광대물주를 하고 있던 무렵이었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그는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고 했다. 내가 글쎄 그 일이 뭐냐고 물었을 때, 박독은 목소리를 낮추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천지도라구 들어봤나? 신통이가 그 패거리에 들게 되었거든.  저 머신가, 나라에서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고 하는 미신인데 그것이……  그러면 예전 천주학 같은 거 말예요?  이전에는 모두 죽였다만 시방 천주학은 양귀들 때문에 묵인된 셈이고, 천지도는 처음 시작했다는 교주를 국법으로 처단을 했다 그 말여.    박돌이 이신통에 대한 불길한 소식을 남기고 떠난 뒤에 나는 뜸을 들였다가 어느 날 영업이 끝나고 엄마와 나란히 누워서 잠을 청하던 때에 슬며시 묻게 되었다.   엄마, 천지도가 뭔지 알우?   자다가 봉창 두들긴다더니, 뜬금없이 천지도는 왜...... 한번 믿어볼라구?   관에서 금한다며?   양반 것들이 저희 자리 내노랄까 봐 노심초사하는 게지. 천지도에서 사람은 누구나 하늘이다 그런다는구나. 그 말본새 하난 마음에 들더만. 나두 주문 외우는 소린 여러 번 들었다. 우리 집에 묵어가는 길손들 중에 겉으로 말은 안 해두 내가 대강 눈치를 채는데 하나둘이 아녀. 천지도인들 점잖은 사람들이더라. 소문에 듣자 허니 촌에는 동네마다 모여서 기도하구 그런다대.   하면 엄마는 왜 안 믿었어?   봄꽃두 먼저 피면 반갑고 이쁘기는 하더라만 그것이 천기를 보는 거여. 꽃샘바람 불고 눈보라 치면 속절없이 지는 법이니라. 세상이 만화방창할 제 더불어 피어나야 절기를 누리는 거란다.   그러면 어여쁜 본색을 어찌 드러낼 수 있남? &nb

  • 웹관리자
  • 2013-01-03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