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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호

  • 작성일 2020-01-01

기획의 말

2020년 커버스토리에서는 웹툰, 사진작가, 일러스트레이터 등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을 모시고, 《문장 웹진》 과월 호 수록작 중 1편을 선정해 시각화 해주시기를 요청 드렸습니다. 문학 작품에 대한 감상을 이미지로 다시 되새기는 작업 속에서 폭넓은 독자층과 소통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이소연, 「철 1~6」(《문장 웹진》, 12월호)

철 1~6

나미나

우리들 마음속엔 언제나 아직 터지지 않은 수류탄이 담겨 있다. 이 불안함 속에서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기에 이런 마음들을 하나씩 밖으로 꺼내어 놓기로 했다. 이소연 시인과는 올해 협업을 두 번 했었고, 이 시들은 본인의 영상 작품 〈Sun Cruises〉를 위해 만들어진 시를 6개의 시로 나눈 것이다. 그래서 이 시들은 눈 감고도 귀로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 이 시구가 어떻게 나왔는지 알기에 내 안에서 중첩된 이미지를 하나 꺼내어 놓는다.

문장웹진 1월호 살펴보기

문학 분야 창작 발표 및 유통 확대를 위한 공공 플랫폼 제2차 좌담

[기획특집 / 좌담] 본 좌담은 2019년 7월 중 페이스북을 통해 작가들에게 도움이 될 온라인 플랫폼의 가능성에 대한 의견을 개진한 김서령 작가의 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등단제도, 출판과 결합된 문예지 시스템 등 기존 문학장의 물적 토대를 이루는 체제의 한계적 상황, 매체 환경의 변화에 따른 작가의 존재 양식 변화와 문학 생태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독자들의 등장 등 최근 한층 강화되고 있는 문학계 내의 흐름과 변화에 부응하여 해당 의견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지원부의 검토를 거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현장소통소위원회에 상정되어 주요 의제로 논의되었다. 이후 지금까지의 정부의 문학 지원 방식에 대한 전반적인 점검과 함께, 작가는 물론 문학 생태계 내의 다양한 주체들이 함께 참여함으로써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새로운 방식의 지원 패러다임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기 위해 현장소통소위원회 주관으로 마련된 이번 좌담은 모두 세 차례(11.18, 12.16, 12.27)에 걸쳐 진행되었으며, 그 내용은 1.1, 1.8, 1.15, 모두 3회로 연이어 게재할 예정이다. 끝으로, 이번 좌담에 귀한 의견으로 참여해 준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이 논의가 보다 많은 분들이 참여하여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단계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 좌담 참여자 명단(회차별, 가나다순) · (1차 좌담) 김대현, 김서령, 오창은, 이민호, 이설야, 정훈교, 황규관 · (2차 좌담) 김지윤, 박서련, 박소란, 신지영, 유희경, 허 희 · (3차 좌담) 김미정, 김태형, 배명훈, 최진석, 최하연, 하명희 문학 분야 창작 발표 및 유통 확대를 위한공공 플랫폼 제2차 좌담 플랫폼 기반 사업의 가능성과 올바른 방향설정을 위해·Ⅰ 사회자 : 허희(문학평론가) 좌담자 : 김지윤(시인, 문학평론가), 박서련(소설가), 박소란(시인),유희경(시인), 신지영(아동문학가) 허 희 : 안녕하십니까, 문학 분야 창작 발표 및 유통 확대를 위한 공공 플랫폼 제2차 좌담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진행을 맡은 문학평론가 허희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나누기에 앞서 먼저 참여하신 분들 돌아가면서 각자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박소란 : 시 쓰는 박소란이라고 합니다. 프리랜서로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김지윤 : 반갑습니다. 저는 문학평론도 하고, 시도 쓰고, 강의도 하는 김지윤이라고 합니다. 박서련 : 안녕하세요. 소설 쓰는 박서련입니다. 온라인 문학 플랫폼 '던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유희경 : 안녕하세요. 저는 시인 유희경이구요, 작은 서점을 하나 운영하고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신지영 : 저는 신지영이구요, 청소년 소설과 동화를 쓰고 다원예술단체 대표로 있습니다. 허 희 :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고 계신 분들이 모여서 문학 플랫폼에 관련된 여러 좋은 말씀을 해주실 거라 생각하는데요, 먼저 김지윤 선생님이 준비하신 기초

  • 2020-01-08
피투성

피투성 나희덕 흙속에서 그 얼굴을 알아보았네 끝이 거의 문드러져 아무것도 열 수 없게 된 열쇠 하나를 집어 들었네 어떤 화염이 지나갔을까 누군가 긋고 간 성냥처럼 먼 곳에서 던져진, 던져진, 던져진, 내던져진 불꽃 세상의 문들이 일제히 눈앞에서 닫혔을 때 그는 흙투성이가 되어 깨달았을지도 모르지 피투성은 우리를 피투성이로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것을 사람들이 밟고 가는 흙속에서 언뜻 그를 알아보았네 어디로도 돌아갈 수 없게 된 그는 미움으로 눈멀었으리라 뿔과 발톱과 견치로 싸우던 시절, 피투성이 되어 싸울수록 세계의 핏물은 점점 진해지고 흥건해지고 핏물 속에서 간신히 건져 올린 부서진 얼굴 여기서는 던져진 돌조차 땀을 흘린다

  • 나희덕
  • 2020-01-08
벽의 반대말

벽의 반대말 나희덕 벽의 반대말은 해변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해변은 무한히 열려 있는 어떤 곳이라고 해변은 어디에나 있다고 그리고는 아스팔트 위에 모래를 퍼나르고 나무를 심고 파라솔을 꽂고 수영복 차림의 사람들을 데려다 해변을 만들었다 강렬한 태양을 박아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녀가 완성한 해변에서 사람들은 벽을 잊은 채 누워 있고 파도처럼 어디선가 밀려오고 어디론가 밀려가고 삶이라는 질병에서 잠시 놓여나고 이 해변에는 벽을 두려워하는 영혼들이 모여들었다 어쩌면 벽을 사랑하는 영혼들이 어머니의 장례식을 끝내고 이제는 잠자리에 들어 열두 시간 동안 실컷 잘 수 있겠구나,* 생각할 때의 은밀한 기쁨이라든가 해변의 발코니에서 소금기 가득한 바람을 맞으며 새나 구름, 빗방울을 기다리며 앉아 있을 때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게 된 어떤 삶**을 알아차리게도 되는 것이다 그러니 벽의 반대말은 집도 방도 문도 창문도 천장도 바닥도 아니다 차라리 해변에서 들려오는 슬픈 노랫소리나 견딜 수 없는 눈동자 같은 것 더 이상 어디로도 가지 않으려 할 때 벽은 문득 사라지니까 *는 45쪽, **는 154쪽에서 인용(알베르 카뮈, 『이방인』, 김화영 역, 책세상, 2015.)

  • 나희덕
  • 2020-01-08
2010년대 결산특집 연속 좌담ㆍⅢ ― 장편소설 부문

[기획좌담] 이번 좌담은 지난 10년간(2010-2019) 출간된 다양하고 개성이 뚜렷한 한국 문학 작품을 재조명함으로써 해당기간의 우리 문학을 총결산해 보려는 취지로 기획되었다. 2019. 11. 6부터 12. 9까지(34일간), 지난 10년간 《문장 웹진》에 필진으로 참여한 평론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으며, 64명의 평론가가 보내온 설문의 취합 결과를 토대로 시집(12. 20), 소설집(12. 17), 장편소설(12. 18) 각 영역별로 3차에 걸쳐 좌담을 진행했다. 좌담 내용은 이번 소설집과 시집(1.1)을 시작으로 장편소설(1.8) 순으로 각각 게재할 예정이며, 이번 설문과 좌담을 통해 호출된 개별 작품의 상세 목록은 2020. 2월호(2.1 발행)에 발표하고자 한다. 끝으로, 설문에 참여한 64명의 평론가와 좌담에 참여한 모든 분께 감사의 말을 전한다. ⁃ 설문 참여자 명단 (가나다순) ㆍ 강지희, 고봉준, 김건형, 김남혁, 김 녕, 김문주, 김미정, 김수이, 김영삼, 김영임, 김요섭, 김정현, 김주선, 김태선, 김형중, 김효숙, 노대원, 노태훈, 민경환, 박다솜, 박동억, 박수연, 박신영, 박윤영, 박인성, 백지은, 복도훈, 서희원, 소유정, 손정수, 송민우, 신샛별, 신수진, 신형철, 안지영, 양순모, 양윤의, 양재훈, 염승숙, 오연경, 오은교, 오창은, 오혜진, 유성호, 이병국, 이성혁, 이소연, 이은지, 이지은, 이철주, 인아영, 장예원, 장은영, 전소영, 정영훈, 정은경, 정홍수, 조대한, 조재룡, 조형래, 최선영, 한 설, 한영인, 허 희 ⁃ 좌담 참여자 명단 (분야별, 가나다순) ㆍ 노태훈, 박선우, 이원석, 장희원, 조시현 ㆍ 강지혜, 김태선, 양안다, 이병국, 정다연 ㆍ 김수온, 염승숙, 은모든, 이현석, 임국영 2010년대 결산특집 연속 좌담ㆍⅢ ― 장편소설 부문 일시 : 2019년 12월 18일(수) 13시 장소 : 대학로 공공그라운드 001스튜디오참여자 : 염승숙(사회), 김수온, 은모든, 이현석, 임국영 염승숙 : 《문장》 웹진의 기획으로 신인작가분들을 모시고 한국문학의 2010년대 장편소설에 대해서 총결산하는 자리를 마련해봤습니다. 저는 소설과 평론을 쓰고 있는 염승숙이라고 합니다. 지금 여기 네 분의 작가님들이 앉아 계시는데, 돌아가면서 자기소개 한 번씩 부탁드릴게요. 은모든 : 네, 안녕하세요. 저는 지난해에 《한국경제신문》 신춘문예에 『애주가의 결심』이라는 작품으로 등단했고요. 은모든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김수온 : 안녕하세요. 저는 2018년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라는 단편소설로 등단한 김수온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임국영 : 안녕하세요. 저는 2017년도 《창작과비평》 신인문학상 소설 부문으로 등단한 임국영이라고 합니다. 이현석 : 안녕하세요. 저는 이현석이라고 합니다. 2017년도에 《중앙일보》의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데뷔했고요. 마찬가지로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염승숙 : 여기 참석자분들 중에

  • 2020-01-08
수동적 소비자에서 문학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독자들의 증가와 그 대응 방안에 대하여

[특별기고] 수동적 소비자에서 문학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독자들의 증가와 그 대응 방안에 대하여 이설야 최근 몇 년간 문학장에는 '표절(2015)'과 '#문단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2016) 등 중대한 사건들이 있었다. 이 사건들 이후로 문학장 중심에 있던 대형 출판사나 문단권력에 대한 비판이 확산되었고, 비평의 위기와 함께 비평의 종말론까지 대두되기도 했다. 이로 인해 문단 안팎의 누적된 문제들이 하나씩 표출되었고, 자성의 목소리와 함께 문단권력 재편에 대한 움직임이 서서히 진행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수동적 소비자에서 문학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독자들이 증가하였고, 작가들은 SNS 환경에 맞게 자유로운 방식과 독립된 형식으로 자신의 작품세계를 표출하고 있다. 테크놀로지의 변화와 발전, 독립 서점과 독립 출판의 성장, 취향이 같은 사람들이 모인 유료 커뮤니티의 등장 등은 새로운 문학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프로슈머로서의 새로운 독자를 잉태시켰다. 이와 관련한 몇 가지 연관성들에 주목하면서, 수동적 소비자에서 문학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독자들의 증가와 그 대응 방안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1. 독립 잡지와 독립 서점 문예지의 쇠퇴와 새로운 독자들의 증가는 문학 매체에 대한 여러 가지 실험을 가능케 한 동인이 되었다. 비평 없는 잡지를 표방하면서 등장한 출판사 은행나무의 『악스트』(2015년 5월 26일 창간호)와 2015년 11월 『세계문학』 폐간 이후 비평가 없이 편집자가 주도하여 만든 민음사의 『릿터』(2016년 8월 1일 창간호)는 새로운 감각과 파격적인 편집으로 젊은 독자층에게 호응을 얻었다. 이와 함께 독립 잡지의 등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작가들이 만든 독립 잡지인 『더 멀리』(2015년 4월 30일)와 『후장사실주의』를 위시하여,'페미니스트-퀴어 독립 문예지' 『소녀문학』, '평화롭고 게으른 문예공동체'를 표방한 『베개』, '키친테이블라이팅 계간 문예지' 『영향력』, 그리고 『젤리와 만년필』, 『자정작용』, 『시인보호구역』 등이 꾸준히 출간되었다. 이들은 대부분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 텀블벅을 통해 후원을 받거나, 개인이 직접 비용을 마련하여 잡지를 제작한 후, 독립 서점에 위탁 판매한다. 이 독립 잡지들의 특징은 등단과 비등단의 구분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독립 잡지를 운영하거나 참여하는 주체들은 등단 여부를 떠나서 작가가 되기도 하고, 독자로 남기도 한다. 스스로 만든 지면이므로 기존의 문단 질서로부터도 자유롭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에서 2년마다 발간하는 '한국서점편람 2018'에 따르면 2017년 전국에 서점은 2,050곳(문구 비중이 10% 미만인 순수 서점은 1,536곳)이라고 한다. 여기에 독립 서점 300여 곳을 합하면 2,350곳이다. 독립 서점은 동네서점(동네책방)이나 작은서점으로 명칭을 혼용해서 쓰기도 한다.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책방넷)는 2018년 결성되었다. 동네서점 지도에 등록된 동네서점은 2019년 9월 말

  • 이설야
  • 2020-01-08
2010년대 결산특집 연속 좌담ㆍⅡ ― 시집 부문

[기획좌담] 이번 좌담은 지난 10년간(2010-2019) 출간된 다양하고 개성이 뚜렷한 한국 문학 작품을 재조명함으로써 해당기간의 우리 문학을 총결산해 보려는 취지로 기획되었다. 2019. 11. 6부터 12. 9까지(34일간), 지난 10년간 《문장 웹진》에 필진으로 참여한 평론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으며, 64명의 평론가가 보내온 설문의 취합 결과를 토대로 시집(12. 20), 소설집(12. 17), 장편소설(12. 18) 각 영역별로 3차에 걸쳐 좌담을 진행했다. 좌담 내용은 이번 소설집과 시집(1.1)을 시작으로 장편소설(1.8) 순으로 각각 게재할 예정이며, 이번 설문과 좌담을 통해 호출된 개별 작품의 상세 목록은 2020. 2월호(2.1 발행)에 발표하고자 한다. 끝으로, 설문에 참여한 64명의 평론가와 좌담에 참여한 모든 분께 감사의 말을 전한다. ⁃ 설문 참여자 명단 (가나다순) ㆍ 강지희, 고봉준, 김건형, 김남혁, 김 녕, 김문주, 김미정, 김수이, 김영삼, 김영임, 김요섭, 김정현, 김주선, 김태선, 김형중, 김효숙, 노대원, 노태훈, 민경환, 박다솜, 박동억, 박수연, 박신영, 박윤영, 박인성, 백지은, 복도훈, 서희원, 소유정, 손정수, 송민우, 신샛별, 신수진, 신형철, 안지영, 양순모, 양윤의, 양재훈, 염승숙, 오연경, 오은교, 오창은, 오혜진, 유성호, 이병국, 이성혁, 이소연, 이은지, 이지은, 이철주, 인아영, 장예원, 장은영, 전소영, 정영훈, 정은경, 정홍수, 조대한, 조재룡, 조형래, 최선영, 한 설, 한영인, 허 희 ⁃ 좌담 참여자 명단 (분야별, 가나다순) ㆍ 노태훈, 박선우, 이원석, 장희원, 조시현 ㆍ 강지혜, 김태선, 양안다, 이병국, 정다연 ㆍ 김수온, 염승숙, 은모든, 이현석, 임국영 2010년대 결산특집 연속 좌담ㆍⅡ ― 시집 부문 일시 : 2019년 12월 20일(금) 14시 장소 : 대학로 공공그라운드 001스튜디오참여자 : 김태선(사회), 강지혜, 양안다, 이병국, 정다연 김태선 : 안녕하세요. 문학평론을 하는 김태선입니다. 오늘 네 분의 시인들과 함께 2010년대 한국 문학 시집 분야를 총결산하는 좌담을 진행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 좌담을 위해 사전에 평론가분들께 2010년대에 괄목할 만한 시집을 몇 권 추천해 달라는 설문조사를 진행했었습니다. 평론가 한 명당 세 권 정도 추천을 해주셔서 총 184건의 추천이 있었고요. 그 결과 추천된 시집이 총 92권, 그리고 추천된 시인의 수는 69명이었어요. 69명이나 된다는 건 굉장히 놀라운 숫자인 것 같아요. 하나하나 이름을 기억해서 열거하기에도 많은 숫자잖아요. 아마 이 부분이 앞서 진행되었던 소설집이나 장편소설의 경우와는 많은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중에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시집 열한 권을 주요 시집으로 뽑아 보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자료 외에도 시집 출간 경로의 다양화에 대해서도 한번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고, 최근 시인들의 글쓰기 외의 활동

  • 2020-01-02
2010년대 결산특집 연속 좌담ㆍⅠ ― 단편소설 부문

[기획좌담] 이번 좌담은 지난 10년간(2010-2019) 출간된 다양하고 개성이 뚜렷한 한국 문학 작품을 재조명함으로써 해당기간의 우리 문학을 총결산해 보려는 취지로 기획되었다. 2019. 11. 6부터 12. 9까지(34일간), 지난 10년간 《문장 웹진》에 필진으로 참여한 평론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으며, 64명의 평론가가 보내온 설문의 취합 결과를 토대로 시집(12. 20), 소설집(12. 17), 장편소설(12. 18) 각 영역별로 3차에 걸쳐 좌담을 진행했다. 좌담 내용은 이번 소설집과 시집(1.1)을 시작으로 장편소설(1.8) 순으로 각각 게재할 예정이며, 이번 설문과 좌담을 통해 호출된 개별 작품의 상세 목록은 2020. 2월호(2.1 발행)에 발표하고자 한다. 끝으로, 설문에 참여한 64명의 평론가와 좌담에 참여한 모든 분께 감사의 말을 전한다. ⁃ 설문 참여자 명단 (가나다순) ㆍ 강지희, 고봉준, 김건형, 김남혁, 김 녕, 김문주, 김미정, 김수이, 김영삼, 김영임, 김요섭, 김정현, 김주선, 김태선, 김형중, 김효숙, 노대원, 노태훈, 민경환, 박다솜, 박동억, 박수연, 박신영, 박윤영, 박인성, 백지은, 복도훈, 서희원, 소유정, 손정수, 송민우, 신샛별, 신수진, 신형철, 안지영, 양순모, 양윤의, 양재훈, 염승숙, 오연경, 오은교, 오창은, 오혜진, 유성호, 이병국, 이성혁, 이소연, 이은지, 이지은, 이철주, 인아영, 장예원, 장은영, 전소영, 정영훈, 정은경, 정홍수, 조대한, 조재룡, 조형래, 최선영, 한 설, 한영인, 허 희 ⁃ 좌담 참여자 명단 (분야별, 가나다순) ㆍ 노태훈, 박선우, 이원석, 장희원, 조시현 ㆍ 강지혜, 김태선, 양안다, 이병국, 정다연 ㆍ 김수온, 염승숙, 은모든, 이현석, 임국영 2010년대 결산특집 연속 좌담ㆍⅠ ― 단편소설 부문 일시 : 2019년 12월 17일(화) 14시 장소 : 대학로 공공그라운드 001스튜디오참여자 : 노태훈(사회), 박선우, 이원석, 장희원, 조시현 노태훈 : 안녕하세요. 《문장 웹진》 편집위원을 맡고 있는 노태훈입니다. 오늘은 2010년대 "한국 문학 총결산"이라는 이름으로 그중 소설집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일단 이 기획의 취지를 간단히 설명해 드려야 할 것 같아요. 이 좌담이 업로드 될 때는 2020년이 되어 있겠네요. 햇수가 바뀌는 것을 기념 삼아 지난 2010년대 한국 문학에는 어떤 작품과 작가들이 있었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 보려고 합니다. 저희가 2010년대에 《문장 웹진》에 글을 주신 평론가분들께 소설집(단편), 장편소설, 시집, 이렇게 3개 부문에 걸쳐 가장 인상적이었던 단행본을 3개씩 뽑아 달라고 요청을 드렸어요. 그 결과 60명이 넘는 평론가분들께서 회신을 주셨고요. 오늘은 그 결과를 토대로 소설집 부문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어떻게 좌담을 진행하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이제 막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신인작가분들과 조금

  • 2020-01-02
지역과 문학 밖의 이야기를 함께 듣자

[특별기고 / 좌담에 부쳐] 공유경제 문학 플랫폼,지역과 문학 밖의 이야기를 함께 듣자 정훈교 매년 수만 편의 시가 발표된다고 한다. 물론 그 수만 편 중에 필자의 시는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청탁이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어떤 분은 한 계절에 20편 가까이 청탁이 들어온다고 한다. 슬픈 일이다. 하여튼 그 수만 편에는 작가 개인이 출판하는 독립 출판물도 포함되어 있다. 이런 홍수(?)의 시대에서도 시는 여전히 발표할 수 있는 시스템이 그리 많지 않다. 대개가 지면 발표이지만, 시대는 이제 텍스트만 고집하지 않는다. 반드시 지면에만 발표할 필요는 없다. 이미 문학계 바깥에서는 시나 소설을 유튜브, 라디오, 사진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문학계에서만 현실을 못 따라가고 있는 듯하다. 이제는 문학계도 이러한 다양한 방식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막다른 길에 있다. 지면, 그리고 특정 출판사 등 우리 스스로가 메이저(?)에 연이 닿았으면 하는 마음을 내려놓지 않는다면, 제한된 지면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손해 아닌 손해를 끼치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문학의 새로운 패러다임 또는 플랫폼. 이런 논의는 진작 진행되어야 했다. 글쓰기가 업이 될 수 없음은 이미 한국 문학사史가 여실히 말해 주고 있다. 사실 글쓰기 노동자라는 말 자체가 요즘 시대에 맞지 않는다. 노동자라고 하면 노동력의 대가로 일정한 급여를 받아야 하는데, 작가는 노동력을 투입했다고 하더라도 그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고료를 받는다. 심지어 고료가 없을 때도 있지 않은가. 필자는 앞으로의 문학 플랫폼은 유통 및 중간자의 역할로 크게 세 가지로 보고 있다. 읽든지, 보든지, 듣든지 이 세 가지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모쪼록 많은 고민이 필요하겠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장차 플랫폼을 개발할 때, 출판사를 등록하지 않고 책을 발간하고 파는 불공정이 없도록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이외에도 특히 비평의 경우, 어떤 장르보다 플랫폼이 절실할 듯하다. 시집도 안 읽는데 비평은 오죽하겠는가. 독자가 보지 않는 비평을 우리는 어디까지 보듬고 갈 것인가에 대한 물음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비평 또한 문학의 한 범주이긴 하나 시대가 거부하고 있다. 요즘에는 시집 출간 때 해설조차 싣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번 기회에 방식에 대한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고민을 했으면 한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플랫폼이 탄생하더라도 그 방향이 문학의 하향평준화로 가는 길이면 곤란하다. 필자 개인적으로 독립 문예지를 발행하고 있는데 주로 원고 투고를 받는다. 소설의 경우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이 많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원고 투고를 하는 상당수는 독립 출판 작가이거나 장차 독립 출판을 생각하는 분들이 아닐까 싶다. 2020년 이후 한국 문학의 미래가 그렇게 밝아 보이지 않는다. 대학교에 문예창작학과나 국문학과과 사라지거나 통폐합되고 있다. 국내에서 문학창작학과가 남아 있는 곳, 그리고 그 비슷한 곳을 조사해 보니, 신라대학교에 문학창작비평학

  • 정훈교
  • 2020-01-01
온라인 플랫폼에서 한국문학을 만나다

[특별기고 / 좌담에 부쳐] 온라인 플랫폼에서 한국 문학을 만나다 김서령 2016년 신춘문예로 등단한 후배는 이후 3년 동안 8편의 단편소설을 문예지에 발표했다. 다들 발표 지면이 부족하다고 하소연을 하는 판국에 그 정도면 놀라운 성과다. 하지만 첫 책을 아직 출간하지 못한 후배는 내 앞에서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내가 소설가인 걸 아무도 몰라요. 내 소설을 읽은 사람이 없어요." 그럴밖에. 몇몇 문예지를 빼고는 서점에서 사기도 어렵고 소설깨나 읽는 독자라고 한들 대부분 문예지의 존재 여부도 모르니까. "내 소설은 나랑 편집자만 읽어요." 어느 작가의 말이 농담이 아닌 거다. 이번 1차 좌담회를 거치며 2016년 문예지에 발표된 단편소설이 자그마치 3,300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 역시 발표 지면이 턱없이 적다고 투덜대던 쪽이었는데, 한 해 발표 편수가 3,300편이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건 3,300편을 아무도 못 보게 꽁꽁 숨겨 둘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그 소설들은 대체 어디로 간 걸까. 얼마 전 젊은 작가들과 한자리에 모일 기회가 있었다. 열두 명의 작가들이 한참 이야기를 한 건 '개인 아카이브'와 '독립 출판'이었다. (한 해 문예지에 발표되는 단편소설이 3,300편이라는 것을 몰랐던) 그들은 작품을 써도 발표할 곳이 없어 묵혀 두는 것이 아깝고, 청탁이 오지 않아 쓰지 않게 되는 스스로가 미워 온라인에 개인 아카이브를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출판사의 개입 없이 혼자 책을 편집하고 제작하는 독립 출판을 겪고 싶다고도 했다. 나 역시 개인 아카이브와 독립 출판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터라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실제 개인 아카이브를 운영하는 작가들이 이미 있다. A 작가가 운영하는 개인 아카이브에서는 2000원 내외의 금액으로 단편소설 한 편을 읽을 수 있다. 무료로 제공되는 소설과 에세이도 있다. 독자와 전면전을 벌이고 있는 셈인데 그 모습이 흥미로워 나도 작가의 소설을 구매했다. 다만 개인이 운영하는 시스템이다 보니 불편한 점이 많다. 작가의 계좌로 송금을 하면 이메일로 원고를 보내주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이런 방식을 원하는 작가들의 아카이브를 한데 모으는 플랫폼은 어떨까. 온라인 플랫폼은 그 고민에서 시작되었다. 1. 편의점 알바 대신, 대필 알바 대신 내 글만 쓸 수 있다면 부끄럽지만 터놓고 말해 보자. 어디 가서 작가랍시고 엣헴, 하기에는 가난하다. 잘난 척할 처지가 아니다. 일 년에 한두 번 올까 말까 한 청탁 때에만 원고료가 들어오는데, 그걸로는 대한민국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내가 쓰고 싶을 때 쓰고, 쓰기만 하면 원고료가 들어오는 판타지 같은 날이 온다면 이 땅의 작가들은 한없이 부지런해질 것이다. 독자들은 읽을거리가 없다고 투덜거리는데 대한민국 이 많은 작가들은 왜 안 쓰는가. 바빴다. 돈 버느라 바빴다. 그런데 온라인 플랫폼이 생기고, 내가 작품을 쓰면 원고료를 주겠단다. 그럼 편의

  • 2020-01-01
최근 문학계 주요 현황 분석

[특별기고 / 좌담에 부쳐] 최근 문학계 주요 현황 분석 이민호 1. 문학 단행본 발간 현황 (사)대한출판문화협회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8년도 출판 현황은 다음과 같다. 신간 도서의 발행 종수는 총 63,476종(2017년 59,724종)이며, 발행 부수는 101,737,114부(2017년 83,656,330부)다. 2017년에 비해 발행 종수는 6.3% 증가하였고(전년 대비 2017년 1.9% 감소), 발행 부수는 21.6% 증가하였다(전년 대비 2017년 5.7% 감소). 종당 평균 발행 부수는 1,603부로 전년(1,401부) 대비 14.4% 증가하였고, 권당 평균 정가는 1만 6,347원으로 전년(1만 6,091원) 대비 1.6% 증가하였으며, 평균 면수는 279쪽으로 전년(284쪽)보다 1.6% 줄었다.(〈표1〉 참조) 이러한 통계를 볼 때 지난해와 비교해 발행 종수의 증가에 비해 발행 부수의 증가 폭이 큰 현상을 보였다. 발행 종수에 비해 발행 부수가 비례 수치를 넘어 증가한 것은 권당 평균 정가의 소폭 증가에도 새로운 책의 출판 욕구는 어느 정도 유지되었다고 볼 수 있다. 권당 평균 정가의 상승을 볼 때 평균 면수를 줄여 발행 부수를 늘렸다. 책 경량화 추세와도 관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표1. 2018년도 출판 현황〉 * 출처 : (사)대한출판문화협회 이러한 출판 상황에서 문학도서의 경우를 살펴보면 신간 발행 종수는 2017년 12,904종에서 3.4% 소폭 증가했다. 그러나 발행 부수는 2017년 15,416,048부에서 7.5% 감소하였다. 출판 종수는 늘었지만 부수는 줄어든 상황이다. 이는 새로운 출판 생산자의 진입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반면에 소비 욕구는 그에 따르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17년 신간 발행 종수 점유율 21.61%에서 2018년 21.03%로 감소추세인 것에서도 문학도서의 출판 위축을 확인할 수 있다. 신간 발행 종수 점유율의 감소 추세 또한 전년에 18.43%에서 14.02%로 급격하게 감소했다. 문학도서의 평균 부수는 1,086권으로 전년 대비 10.6% 감소했다. 그러나 책값은 평균 12,419원으로 3.5% 증가했다. 종수를 늘리는 데서 오는 출판 부담을 부수를 줄이고 책값을 높게 책정하는 데서 보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문학 공공 분야 '공유경제 플랫폼' 기획 취지가 창작 활성화와 유통확대에 있는 것에서 볼 때 문학 종수를 꾸준히 늘려가려는 생산 주체들의 성향과 출판 인프라를 면밀히 검토함으로써 독자들과의 공유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도서정가제와 관련해 출판유통의 모순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높은 책값 책정에서 짐작할 수 있다. 독자의 소비 가능 기대치를 만족시킬 수 있는 정적선의 책값 유통이 플랫폼에서 만들어져야 서로 이익을 공유하는 체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철학 도서의 증가율이 전년 대비 19.4%를 넘어 증가한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비록 전체 출판 도서에서 점유율이 3.54%

  • 이민호
  • 2020-01-01
새끼돼지

[단편소설] 새끼돼지 장진영 나는 살면서 호아를 단 한 번 보았다. 그때 나는 고등학생이었고, 호아는 눈부시게 비참한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마을회관에서 조촐히 치러진 결혼식이었다. 호아는 더운 나라에서 왔고 나와 같은 나이였다. 배 속에는 하엘이 있었다. 어른들이 나를 새 신부 앞으로 떠밀었을 때 호아는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예브다, 예브다, 하고 내 몸을 만지며 탄성을 터뜨렸다. 나는 교복 치마를 움켜쥔 채 입을 꾹 다물었다. 그때 나를 수치스럽게 한 게 호아의 피부색이었는지 어린 나이와 천진난만함이었는지 배 속의 아기였는지 타인에 스스럼없는 태도였는지 나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순철 오빠는 형광에 가까울 정도로 피부가 하얬다. 비만한 체형이 피부색을 더욱 부각시켰다. 사진기사가 노출을 맞추느라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검은 턱시도를 입은 흰 남자와 흰 드레스를 입은 검은 여자. 둘은 잘 어울렸다. 순철 오빠의 발음이 아내인 호아만큼이나 어눌하다는 것도 하나의 증거처럼 느껴졌다. 나는 순철 오빠가 고모의 아들이라는 걸 그 결혼식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순철 오빠가 고모와 함께 있는 모습을 전에는 본 적이 없었다. 내 기억 속 순철 오빠는 누구의 아들이 아니라 그냥 '순철 오빠'였다. 순철 오빠는 나이가 많기도 했지만 많아 보이기도 했다. 고모와 비슷한 연배로 보일 정도였다. 명절이나 집안 행사 자리에서 마주칠 때면 나는 존댓말을 쓰지 않기 위해 항상 말끝을 흐리곤 했었다. 턱과 목 사이에 자리 잡은, 인두에 덴 듯한 흉터를 보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나는 본가에 내려갈 때마다 하엘의 성장을 매번 놀라며 확인했다. 나는 첫 조카인 하엘에게 어떤 애틋함도 느끼지 못했다. 나와 무관한 생명체라고 느껴졌다. 피부색은 아빠, 이목구비는 엄마를 닮은 생김새가 이질적이어서였을까. 어쩌면 우리는 서로에게 쑥스러웠는지도 모른다. 부부는 언제나 각자의 이유로 부재중이었다. 호아는 여기저기 마실 다니느라 바빴고 순철 오빠는 전국의 축제와 행사장을 돌아다니며 싸구려 플라스틱 장난감이나 색소가 든 달아빠진 불량식품을 팔았다. 호아는 늘 누군가의 수화기 너머에서 쩌렁쩌렁 울리는 화사한 목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순철 오빠는 유순하고 주눅 든 대형견 같은 모습으로 가끔씩 모습을 드러냈다. 호아가 내게 전화를 걸어왔을 때는 그 결혼식으로부터 십 년이 더 넘게 지난 시점이었다. 그때 우리 식구들은 이미 고모네 일가와 인연을 끊은 뒤였다. 호아는 남편과 아들을 데리고 베트남으로 떠날 계획을 세웠다고 말했다. 부자의 체류 문제를 알아보러 자기가 먼저 친정에 들를 예정이라고 했다. 호아는 내게 그간 겪은 고초를 토로했다. 우리가 고모네와 절연한 이유와 대부분 일치했다. 고모의 딸이자 순철 오빠의 여동생인 정아 언니는 목회자와 결혼했다. 사촌형부는 가슴이 단단하고 자신만만하고 능글거리고 목청 좋은 사기꾼 스타일의 남자였다. 사촌형부는 시 변두리 논두렁에 좀 뚱딴지같은 교회를 지었다. 정아 언니와 사촌형부는 내 할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사실상 인질

  • 장진영
  • 2020-01-01
이지의 다카코

[단편소설] 이지의 다카코 정은우 이지는 다카코의 전화를 제때 받지 못했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사무실에는 이지와 케빈뿐이었다. 이지는 케빈에게 양해를 구한 후 다카코에게 전화했다. 다카코가 있는 서울과 이지가 있는 뉴욕 사이에는 열세 시간의 시차가 있었다. 그러나 다카코는 통화연결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입원 중이라고 했다. "괜찮으신 거예요?" "고작 일사병이야." 다카코는 별일 아니라는 양 코웃음을 쳤다. 그녀는 집 바깥에 둔 선인장 화분에 물을 주러 나갔다가 쓰러졌다고 했다. 옆집 대학생이 그녀를 발견해 병원까지 데려다주었다. 이제는 옆집에서 아무리 시끄럽게 굴어도 불평할 수 없겠네, 다카코는 진심으로 분한 눈치였다. 그녀는 이지에게 제주행 비행기 탑승 일자와 퇴원 예정일이 겹치는지 확인해 보라고 채근했다. "괜찮으신 거예요?" "당연하지. 고작 일사병인데. 너희 외할머니한테 말하지 마라." "제주도랑 병원 중 어떤 거요?" "둘 다지. 언니 뒤집어져." "지금이라도 솔직하게 털어놓으시는 건 어때요?" "뒷감당은 어쩌고?" 다카코의 말마따나 고백 후 마주할 상황이 더 난처했다. 몇 년 전 이지의 남동생 영수가 친구들과 한국으로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때 외할머니는 입에 거품을 물 정도로 화를 냈다. 영수는 외할머니에게 한국이 얼마나 안전한 곳인지 해명하려 들었다. 자정이 지나도 거리는 밝고 사람들도 많이 다닌다고. 외할머니는 좀처럼 화를 누그러뜨리지 않았다. 영수는 결국 다시는 한국에 가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서울만 해도 난리법석을 떠는데 제주도라니. 이지는 외할머니가 얼마나 화를 낼지 상상조차 하기 두려웠다. "그런데 선인장은 사막에 사니까 더위에 강하잖아요." "강하면 뭐 하니?" 다카코가 가당찮다는 어조로 말했다. "한국 날씨가 얼마나 더운데. 선인장도 가시 끄트머리가 갈색으로 탈 정도야." 그녀는 통화 마지막에 여권을 꼭 챙기라고 당부했다. 이지가 스마트폰을 내려놓자 맞은편 파티션에 앉은 케빈이 그녀에게 과자 봉지를 내밀었다. 얼마든지 가져가. 이지는 사양하지 않았다. 케빈은 누구와 통화했는지 물었다 "이모할머니." "맞다. 같이 여행 간다고 했지. 대단하네. 난 우리 이모할머니와 함께라면 근처 월마트도 가고 싶지 않은데." 케빈이 울먹거리는 척했다. "꼭 돌아와야 해. 이지." "그사이에 설계도가 통과되면 생각해 볼게." "망했네. 도안 보니까 한 층 다 뜯어야 하던데." 그가 투덜거렸다. "안 돼, 내 아시안 동포가 사라지면 난 멸종 위기라고." 케빈다운 농담이었다. 작년 말 그는 친형의 파혼 때문에 가족들의 전화에 수시로 시달려야만 했다. 설계사무소 동료들은 대체로 좋은 사람들이었다. 다만 그들은 케빈이 그 전화를 한 통이라도 못 받거나 도중에 끊을 경우 어떤 참사를 맞게 될지 상상하지 못했다. 소장은 케빈이 클라이언트와 회의 도중 전화를 받으러 나가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케빈은 특유의 익살로 푸념과 하소연을 섞어 열심히 사과했다. 덕분에 소장을 비롯한 모두가 웃으면서 사건

  • 2020-01-01
어린 이의 희박한 자리

[단편소설] 어린 이의 희박한 자리 최미래 묵인은 많은 것을 자라나게 한다. 나는 키가 큰 사람이 되었다. 두애는 방문을 잠그고 한나절 동안 나오지 않는다. 종종 이런 시간이 필요하다. 월경 주기처럼 규칙적으로 그러나 불현듯 찾아오는 이 날에 나는 그다지 날카롭지 않은 칼을 쥐고 두애를 기다린다. 껍질이 끊어지지 않고 길게 길게 이어지도록 사과를 깎는다. 칼은 순간의 세계. 방 쪽에 귀 기울이며 멈칫하다가는 손가락이 베이거나 껍질이 끊어질 것이다. 두애는 자기만의 시간과 생각 속에서 내가 모르는 불행을 견디고 있다. 그런 시간들을 보내고 문을 열 때마다 완전히 지친 모습이고, 먼 미래를 미리 보고 온 사람처럼 허탈한 동작과 표정으로 걸어 나온다.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나마 덜 갈변된 사과를 한 조각 건넬 것이다. 두애는 사과를 손바닥에 올린 채로 소파에 늘어져 있다가 결국 먹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 과정은 조립식 가구를 만드는 것처럼 당연한 절차가 되어버렸다. 나는 사과의 속살로 미끄러지는 칼날과 그 감각에 집중한다. 두애의 방문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 껍질이 끊어지지 않게 사과를 깎는다는 것은 한 순간 순간이 길게 이어져야 하는 일이다. 이 순간들에 몰두하기 위해서는 그냥 지나쳐야 하는 다른 순간들이 있기 마련이다. 비가 잠깐 쏟아졌다 그치고 해가 어느 쪽으로 기울며 가라앉고 잠자리가 베란다 창에 부딪히는 일들을 모르는 하루. 나는 두애가 나오기 전까지 계속해서 몰두한다. 간단한 일도 몰두해서 하려고 한다. 온갖 쓰레기가 널브러진 거실을 걸으면서 재활용이 가능한 쓰레기만 줍고 그다음엔 종이로 된 것만 줍고, 그러다 보면 신발장 앞에 쓰레기봉투가 여섯 개 정도는 금방 쌓인다. 그래도 혼자는 외롭고 시간이 잘 가지 않는다. 두애의 방문 그 단단한 손잡이를 바라보고 있으면 간신히 먼 곳에 떨어뜨려 놓았던 어떤 기분들이 머릿속으로 밀려들기 시작한다. 미루어 놓았던 만큼 매끈하게 성장해 있는 그것들은 작고 단단한 돌멩이 같은 것이다. 어렸을 때의 나는 미끄럼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시간을 때우는 것에 익숙했다. 벤치에는 옆집 할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그와 나는 서로에게 단 한 번도 먼저 인사를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른 새벽 분리수거함을 뒤지는 것, 경비와 사이가 좋지 않은 것, 혼자 사는데 찾아오는 손님조차 없다는 그의 사정을 내가 알고 있듯이 그도 나의 지난한 가정사를 알고 있을 게 뻔했다. 어둑어둑 해가 다 저문 뒤의 놀이터에 끝까지 남아 있는 사람은 우리 둘밖에 없었다. 할아버지는 계속해서 터져 나오는 기침 때문에 손으로 입을 막았다. 휴지나 물, 뭐든지 간에 도움이 필요해 보였지만 나는 미끄럼틀에 가만히 앉아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이'의 어디쯤에서 생각이 멈춰 있었다. 할아버지는 내 쪽으로 걸어오면서 토를 했다. 토사물은 별것 없이 묽게 흘렀다. 그는 내게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토하기라도 한

  • 최미래
  • 2020-01-01
갈매책방(1화)_그림책으로 철학하기

[책방곡곡] 구리 갈매책방 북적북적 그림책으로 철학하기(제1화) - 『더 높은 곳의 고양이』, 이주혜, 국민서관, 2019. 진행 : 한상선(늘 책과 함께 있고 싶은 책방지기)참여 : 김선화, 김연희, 김은미, 마혜경 일평생 세 번 그림책을 읽는다고 합니다. 어릴 적 부모님께서 읽어 주실 때, 부모가 되어 자녀에게 읽어 줄 책을 고를 때, 그리고 나이가 들어 스스로 그림책을 보게 되는 경우입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경우인 멤버들로 구성된 우리 모임은 '그림책으로 철학하기'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내걸고 그림책을 읽고 생각을 나눕니다. 짧은 그림과 글 속에는 결코 얕지 않은 삶의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동일한 현상을 다양한 시선과 생각으로 해석하는 타인을 경험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이해를 넘어 타인에 대한 이해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삶의 태도에 유연함을 불어넣어 주니 그림책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은 값지게 다가옵니다. 사회자 : 이번 주에는 『더 높은 곳의 고양이』라는 책을 읽고 나누고 싶은 얘기를 하려 합니다. 제가 읽는 것보다 집중력 향상을 위해 마혜경 님께서 읽어 주시죠. 마혜경 : 『더 높은 곳의 고양이』 일독 사회자 : 책의 마지막 부분에 행복해 하는 고양이가 나오는데 도대체 행복이란 무엇일까? 이것이 왜 궁금한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여러 그림책을 나누면서 많이 언급됐던 질문 중 하나가 '행복이란 무엇일까?'입니다. 여러 번 나눠 본 이야기였기에 더 이상 질문화 하지는 못하겠습니다. 김선화 : 높은 곳의 의미가 뭔지 참 어렵네요. 저는 다양한 부분에 관심이 많고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강합니다. 그러한 배움이 누적되어 더 높은 곳에 올라갔을 때 많은 것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폭넓은 시야와 사고의 확장으로 연결되고 내 삶을 더 풍요롭게 하는 통로가 되는 것 같아요. 하나씩 배워 나가며 경험을 쌓아 가면서 나를 성장시키는 것이 높이 올라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연희 : 제가 생각하는 높이 올라간다는 것은 남들을 뛰어넘는다는 게 아니라 어제의 나와 비교해서 더 나은 내가 되는 것입니다. 더 나은 나의 기준이 타인이 아니라 나 자신인 거죠. 마혜경 : 글쎄요. 저는 이 책을 보면서 더 높은 곳이라고 하는 것은 개인의 성장보다는 흔히 사람들이 추구하는 성공이나 지위, 권력으로 보입니다. 더 높은 곳을 향해 오르려는 고양이의 모습이 권력다툼을 하는 인간의 모습으로 보입니다. 앞의 두 선생님의 해석과 다소 다르네요. 김은미 : 사회구조상 타인과의 비교나 경쟁에서 자유롭기는 힘든 것 같아요. 무한경쟁 속에서 살아가면서 남들보다 더 높아지려고 하는 것은 본능에 가까운 행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회자 : '높은 곳'에 대한 개념이 두 가지로 양분되는데요. 그건 각자가 겪은 경험이나 생각, 책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기에 단정 짓기는 어렵습니다. 여기 다양한 생각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우리는 왜 높이 올라가야 하지?'라는 주제

  • 2020-01-01
너무 많은 날들

[단편소설] 너무 많은 날들 임선우 너는 지금 죽은 거야. 끽하고 죽은 거지. 집에서, 거실 한가운데서. 냉장고 모터 돌아가는 소리, 옆집 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들려. 그래도 넌 꼼짝 않는 거야, 죽었으니까. 그때 여자가 들어와. 휘청거리는 여자. 악귀 같은 여자. 너를 죽인 여자. 죽은 네 배를 깔고 앉아 진이라도 한 모금 넘길 수 있는 여자가. 그리고 남자가 들어오지. 부드러운 남자. 여자를 달래고 네 배 위에서 일으켜 침대에 눕혀 주는 남자. 그런 다음 문득 서러워져 부엌에 서서 눈물 흘리는 남자. 다음날이 되면 아무렇지 않은 듯 여자를 부드럽게 깨우는 남자가. 둘은 아침을 먹고 춤을 추고 쓰리 샷이 들어간 커피를 마셔. 그리고 밖으로 나가서 다시 시작하는 거야. 살인, 방화, 강도, 끔찍한 일들을. 그러면 제가 일어나서 복수를 하는 건가요? 과자를 먹으며 설명을 듣고 있던 내가 물었다. 아니지. 너는 죽었다니까. 그러면 저는 왜 그 여자와 그 남자의 집에 누워 있나요? 네 역할은, 하고 감독은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분위기지, 분위기. 스물여섯 번의 연극을 하는 동안 나는 무대 바닥에 누워 있었다. 눈을 감았는데도 조명이 너무 환했다. 나는 똑바로 누워서 악귀 같은 여자와 부드러운 남자가 오가는 소리를 들었다. 저 여자는 구두 앞굽에 힘을 실어 걷는구나, 저 남자는 왼쪽 다리를 살짝 저는구나, 속으로 생각하면서. 공연 중 어깨를 밟힌 적도 있었지만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그 순간 작게 비명을 지른 것 외에, 나는 한 번도 입을 열지 않았다. 하염없이 누워서 나는 감독과 했던 약속만을 되새겼다. 감독은 시체 역할을 잘 해내고 나면 다음번에 주연을 시켜 주겠다고 했다. * 두 달이 지나고 나는 주연은 무슨······ 그냥 사기꾼이 되었다. 지난번 공연이 완전히 망하는 바람에 극단은 파산 위기에 처했다. 어떻게든 극단을 살리고 싶었던 감독은, 대체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사이트를 하나 만들었다. 사이트의 메인 문구는 다음과 같았다. 〈고급 역할 대행. 숙련된 전문가들이 당신 앞에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감독은 우리에게 역할 대행 사업을 제안했다. 역할 대행으로 자금을 모으는 즉시 연극을 하겠다고 했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다. 주연 배우들은 전부 떠났고, 조명 감독과 스태프 한 명, 조연 남자 배우 한 명, 그리고 내가 남았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다들 같은 생각이었다.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기 전, 딱 그때까지만 하자고. 감독이 우리에게 준 첫 번째 미션은 김치찌개 먹기였다. 감독 어머니가 운영하는 김치찌개 집에 가서 손님인 척 먹고 오라는 것이었다. 요즘 장사가 안 되어 힘들어 하신다고 했다. 감독님 어머니께서 식당을 하셨어요? 그런데 왜 여태 우리를 안 데려가셨어요? 내가 물었다. 그게, 하고 감독은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내가 감독 되는 걸 반대하시거든. 내가 감독이 되었는데도 감독 되는 걸 반대하셔. 며칠 뒤 혼자서

  • 2020-01-01
그러나 러브스토리

그러나 러브스토리 장수진 비늘이 없는 절벽과 파도가 없는 퉁퉁 불은 발목과 뛰어오는 아이가 없는 잠듦 아무도 없는 물속 벤치에서 청년 차이코는 프스키를 연주한다 털이 무성한 동물의 목을 어루만지듯 물이 털이 아닐 리 없다는 듯 꽁꽁 언 고양이 한 마리가 떠오르고 기린 두 마리가 서로의 목을 감아 조른다 증오가 사랑이 아닐 리 없다는 듯 연거푸 차이코의 부러진 열 손가락이 작은 원을 그린다 원은 곧 추락하고 그렇게 파도 그렇게 음악 그렇게 해변 깊은 바다로부터 밀려 나온 손잡이들 잠든 사람들의 귓속으로 푸른 모래가 끝없이 들어간다 누군가는 근처 병원을 가고 누군가는 무의식에 음악을 둔다 그들 코끝의 소금 한 톨

  • 장수진
  • 2020-01-01
작가는 ‘쓴다’, 그러기에 ‘항상 새로운 존재’여야 한다

[특별기고 / 좌담에 부쳐] 작가는 '쓴다', 그러기에 '항상 새로운 존재'여야 한다 오창은 1. 글쓰기 환경의 변화 작가는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독자와 사회와 소통하는 존재입니다. '쓰기'라는 노동의 본질은 변화하지 않았지만, 작가의 정체성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변화했습니다. 문예지의 잇단 폐간 등 매체의 환경, 문학 활동을 둘러싼 글쓰기 노동의 환경,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으로 인한 테크놀로지의 변화가 급격합니다. 또한,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 진전으로 지식인으로서의 작가라는 기존의 관점도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매체의 축소는 작가들의 활동 영역 위축을 의미하며, 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은 작가의 글쓰기 활동 위축으로 나타납니다. 새로운 글쓰기 환경 속에서 작가 개인의 고투만으로는 극복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변화하는 환경에 조응하는 작가의 존재 양상, 한국 문학의 환경, 이에 대한 공적·사적 영역의 대응이 보다 적극적일 필요가 있습니다. 문학의 존재 이유가 문화적 공공성과 관련이 있다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변화의 지점에 서 있다고 봅니다. 2. '쓰기' 노동의 문제 작가들은 이전과 다른 환경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대응하는 작가들의 다양한 존재 양식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작가들은 작가의 정체성 변화, '쓰기'와 노동의 관계 변화, 이전 세대 작가와 동시대 작가의 존재 양식 변화에 예민하게 대응할 필요조건들이 많아졌습니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작가들은 기존의 문단 질서에서 작동하는 방식과는 다른 형태로 독자와 대면하고 있습니다. 작가들이 경제적 풍요를 누렸던 특별한 시기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경제적 층위에서 작가들도 위계화 되어 있고, '쓰기' 노동에 대한 보상도 차별적입니다. 문제는 '쓰기' 노동 일반의 위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쓴다'는 행위 자체에 대한 보상 시스템이 위기를 맞이하면, 시장 중심으로 구축되어 있는 한국 문학 시스템도 위기를 맞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3. 작가의 정체성, 존재 변화 양상 구축된 기성의 문학 질서에서는 신춘문예를 통한 등단, 각 문예지의 신인상을 통한 등단 등으로 문단 진입 과정을 거쳤습니다. 〈문학과사회〉, 〈문학동네〉, 〈문학사상〉, 〈자음과모음〉, 〈창작과비평〉, 〈현대문학〉, 〈현대시학〉 등의 매체를 통해 작품을 발표하고, 주요 출판사에서 작품집을 발간하는 형식이었습니다. 발간된 작품집을 대상으로 각종 문학상의 심사가 이뤄지고, 수상을 하면 문학적 위상이 더욱 높아졌습니다. 현대의 작가들은 등단 시스템 내에 있지만, 매체나 문학 출판사의 질서에 조응하는 방식으로 활동을 하고 있지는 않은 듯합니다. 일단 작가로서의 지위를 확보하면, 작가의 현대적 존재 증명을 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합니다. 웹을 기반으로 변화하는 매체 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활동도 중요한 사례입니다. 웹을 기반으로 발간하는 매체로는 〈삼각대〉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자신의 문

  • 오창은
  • 2020-01-01
문학분야 창작발표 및 유통 확대를 위한 공공 플랫폼 제1차 좌담회

[기획특집 / 좌담] 본 좌담은 2019년 7월 중 페이스북을 통해 작가들에게 도움이 될 온라인 플랫폼의 가능성에 대한 의견을 개진한 김서령 작가의 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등단제도, 출판과 결합된 문예지 시스템 등 기존 문학장의 물적 토대를 이루는 체제의 한계적 상황, 매체 환경의 변화에 따른 작가의 존재 양식 변화와 문학 생태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독자들의 등장 등 최근 한층 강화되고 있는 문학계 내의 흐름과 변화에 부응하여 해당 의견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지원부의 검토를 거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현장소통소위원회에 상정되어 주요 의제로 논의되었다. 이후 지금까지의 정부의 문학 지원 방식에 대한 전반적인 점검과 함께, 작가는 물론 문학 생태계 내의 다양한 주체들이 함께 참여함으로써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새로운 방식의 지원 패러다임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기 위해 현장소통소위원회 주관으로 마련된 이번 좌담은 모두 세 차례(11.18, 12.16, 12.27)에 걸쳐 진행되었으며, 그 내용은 1.1, 1.8, 1.15, 모두 3회로 연이어 게재할 예정이다. 끝으로, 이번 좌담에 귀한 의견으로 참여해 준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이 논의가 보다 많은 분들이 참여하여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단계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 좌담 참여자 명단(회차별, 가나다순) · (1차 좌담) 김대현, 김서령, 오창은, 이민호, 이설야, 정훈교, 황규관 · (2차 좌담) 김지윤, 박서련, 박소란, 신지영, 유희경, 허 희 · (3차 좌담) 김미정, 김태형, 배명훈, 최진석, 최하연, 하명희 문학 공공 분야 창작 발표 및 유통 확대를 위한'공유경제 플랫폼' 제1차 좌담회 사회 : 김대현(문학평론가, 현장소통위원회 민간위원)좌담 : 이민호(시인, 문학평론가), 정훈교(시인), 이설야(시인), 오창은(문학평론가), 김서령(소설가), 황규관(시인) 김대현 : 문학 공공 분야 창작 발표 및 유통 확대를 위한 '공유경제 플랫폼' 도입 관련 연속 좌담회 중 제1차 좌담회 사회를 맡은 문학평론 하는 김대현입니다. 이 좌담회는 작가 발굴 수단으로서 등단제도와 문예지, 일부 문학 전문 출판사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작품 발표와 유통체제 등 그동안 기존 문학장의 물적 토대를 이루었던 다양한 시스템들이 한계에 봉착하고 있으며, 이에 따른 동시대 작가들의 존재 양식도 변화하고 있다는 진단에 따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학 분야 지원제도의 개선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좌담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 현재 문학장이 직면하고 있는 몇 가지 문제들을 설정하고 이 문제들에 대해 전문성을 가지고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선생님들을 모셨습니다. 이민호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이설야 시인, 오창은 문학평론가, 황규관 시인, 김서령 소설가, 정훈교 시인입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어려운 자리에 오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각 선생님들께는 제시된 주제에 대해서 개별적으로 발제 부탁드렸습니

  • 2020-01-01
서서히 개가 되는 날들

서서히 개가 되는 날들 장수진 재난 영화의 첫 장면처럼 무너지는 책장 아래 너는 웅크려 있었다 멋쩍게 손을 올린 자세가 괜찮아 보였다 쏟아지는 책들에 흠씬 두드려 맞던 너는 바람이 휘갈긴 책 한 페이지를 보며 말했다 이 엉터리 작가 새끼 나는 슬픈데? 포크 같은 년 그 그리스 요리나 해먹어라. 너는 너를 고독과 파멸의 천재라고 했다 죽었다 개죽음개개죽음 밥 먹듯이 말하고 다니더니 진짜 개죽음이었다 나쁜 의미의 개 세상에서 제일 슬픈 개였다 문제는 역시 죽음보다 개였다. 상냥했지 시비가 붙으면 여자든 남자든 애든 개든 공평하게 따귀부터 갈기던 너는 매우 상냥했다 봄에 밤에 딱 한 번 이유가 없었다 천사 같던 너 투견처럼 뛰어올라 목 맨 벚꽃을 따먹고 헤헤 돌아버렸지 존댓말도 썼지 아, 좋습니다. 천사, 자신을 천상으로 쏘아올린 지상의 진상들. 너는 죽은 청년이다 흰바지를 입고 꿈에 나타나 헤헤거린다 너는 두 사람이다 죽은 시인이고 죽은 배우이다 너는 스물일곱이고 아니고 노래를 잘 불렀고. 나는 오십 육십에도 너와 꼬냑 마시려 했는데 나만 늙는다 나만 시를 쓰고 마음이나 헛소리가 내게만 존재한다 그리고 너처럼 죽음에 흘레붙은 개가 되어 간다.

  • 장수진
  • 2020-01-01
오늘의 시가

[단편소설] 오늘의 시가 이원석 내 경우는 낙지볶음이었어. 선명이 말했다. 혀가 잔뜩 꼬여 있었고 나는 선명이 꼬인 혀를 꿈틀거리며 낙지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는 게 우스워 크게 웃었다. 선명은 언제나처럼 내가 실컷 웃을 수 있게 조용히 기다렸다. 선명이 소주를 한 잔 마시고 다시 잔을 채워 두 잔째를 막 마시려고 할 때 내 웃음이 멈췄다. 선명은 술잔을 다시 테이블에 내려 둔 후 말을 계속 이어 갔다. 그날 내가 혼자 낙지볶음을 먹었거든. 그날이 언젠데? 너 취했어? 아니, 그날 알아. 알지. 그래, 그날. 문을 열기도 전에 비린내가 나던 식당이었어. 들어서자마자 앞치마를 두른 남자가 나한테 왔고. 가게 내부에는 수조가 있었고 나는 낙지볶음을 좀 먹을 수 있겠냐고 남자에게 물었어. 남자는 대답을 생략하고 다시 내게 물었어. 볶음은 산 것으로도 하고 냉동한 것으로도 하는데 그중에서 무엇을 먹겠냐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이었고 나는 고민하느라 대답이 늦었지. 점심시간이 한참 지났고 저녁시간은 한참 남은 시간이었어. 손님이 한 팀도 없었는데 그런데도 남자는 내게 다시 한 번 물으며 대답을 재촉했어. 산 것과 죽은 것 중에 어떤 것이 좋으냐고. 결국 나는 그 둘이 어떤 차이가 있느냐고 남자에게 물었어. 남자는 별 고민도 하지 않고 대답했어. 가격이 다르죠. 그렇겠지. 아무래도 다르지. 근데 나는 그런 걸 물어본 게 아니었거든. 그게 제일 다르고 제일 중요하긴 하니까. 다른 무엇보다도? 이를테면 서로 다른 맛보다도 가격이 더 중요해? 당연히 중요하지. 아닌가? 아니야, 맞아. 산 것이 더 귀한가요? 아무래도 더 비싸죠? 내가 물었고 남자는 그렇다고 말하면서 덧붙였어. 지금 낙지가 철이라고. 낙지는 언제든 먹을 수 있지만 지금의 낙지는 더 특별하고 맛있다고. 어떤 부위는 쫄깃하고 어떤 부위는 씹기도 전에 입안에서 녹아요. 먹다가 남으면 포장까지 해줄게. 그러니 가능하면 산 것으로 드세요. 남자가 웃으면서 말했고 나는 남자의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입에 침이 고였어. 그럼 산 것으로 주세요. 그렇게 말한 후에 남자가 안내해 준 자리에 가 앉았어. 버너에 불을 붙이고 불판이 달궈지는 동안 테이블을 둘러봤는데 메뉴판이 보였어. 갑자기 궁금해지더라. 도대체 얼말까. 지금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그 대단한 맛은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을까. 나는 손을 뻗어 테이블 구석에 놓인 메뉴판을 잡고 펼쳤어. 메뉴판에서도 낙지볶음은 제일 마지막에 있었고 냉동과 생물의 가격이 따로 적혀 있었어. 냉동은 나도 기억이 안 나고. 생물은 얼마였는지 알아? 그렇게 맛있다면 엄청 비쌌을 것 같은데. 아니. 그럼 생각보다 쌌어? 그것도 아니고, 그냥 시가라고 적혀 있었어. 싱겁네. 싱겁다고? 나는 전혀 싱겁지 않았고 아주 비싸거나 너무 싼 것보다 그 시가라는 말에 충격을 받았어. 그렇게 귀하고 그렇게 부드럽고 그렇게 맛있는데 정확한 가격은 적히지도 않았다니. 얼마나 귀한지 알지도 못하고 얼마나 귀한지가 매일 달라지는, 그렇게 살아 있는 것이 존재한다는 게 너무

  • 2020-01-01

[단편소설] 옴 홍성욱 나는 힌두교에 대해 잘 모르지만 힌두교를 잘 알 것 같은 사람을 안다. 그는 오십대 중후반의 한국 남성으로, 아직도 타지에서 패션 관련 사업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내가 그에 대해서 들었을 때는 그랬으니, 그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옷과 관련된 것들이다. 실제로 그가 만든 옷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지만 항상 옷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에 대한 생각은 그보다 중요한 다른 사람을 생각할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생각이었으니까. 그는 내게 중요했던 사람과 관련된 사람일 뿐 중요한 사람은 아니었다. 이렇게까지 말하고 보니, 내가 그를 알고 있기는 한 건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알기는 하지만 잘 알지 못하는 것은 확실하다. 그에 대해서 내가 아는 것은 모두 들은 이야기뿐이다. 나는 그를 실제로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가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는 이제는 알 수 없다. 반반이다.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다. 그에 대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나도 그를 잘 아는 편이 아니라는 사실만 확실해졌지만, 아무튼 이것 하나는 말할 수 있다. 그는 힌두교에 대해서는 잘 알 것이다. 그는 한국에서 패션 사업을 할 때부터 중동, 동양사상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항상 원초적인 작업보다는 창의적인 작업을 원했던 그는 한국에서 사업이 잘 풀리지 않자 사우디아라비아로 넘어갔다. 이미 그쪽 관련해서는 대학교 시절 부전공으로 공부한 적이 있어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그가 그곳에 가서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이슬람교 교단 조직의 지도자인 수많은 이맘(lmām) 중 한 명을 찾아간 것이었다. 그는, 이것은 내 예상인데, 단도직입적으로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이슬람 여성 복장에 대한 규정이 있다면 보고 싶습니다. 그의 목적은 역시 패션이었다. 그는 이슬람 국가에서 아주 널리 퍼져 있지만 천편일률적인 패션 문화를 바꾸고 싶어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바꿔서 돈을 벌고 싶어 했다. 그때 그 이맘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별 탈 없이 히잡, 차도르, 부르카 등에 대한 규정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고 그 규정을 넘지 않는 선에서 옷을 최대한 예쁘게 디자인했다. 다 만들고 나서 다시 한 번 이맘에게 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팔았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슬람 여성들은 그동안 입어 왔던 지겨운 디자인의 복장을 벗어던지고 생전 처음 보는 한국인이 만든 아름다운 히잡을 썼다. 이맘에게 인증 받은 제품이라는 보증이 있었기에 망설일 필요도 없었다. 모두에게 좋은 일이었다. 그는 돈을 많이 벌었다. 번 돈 중 얼마는 자신이 타지에서 쓰고, 얼마는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송금했다. 힘들게 일을 하지 않아도 생활이 가능할 정도의 금액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타지에서의 패션 사업이 아니라 가족에게 보내는 선물이. 그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남아 있는 가족들은 알 수 없는 생활을 그곳에서 계속했다. 그들은 어쨌든 아직 가족이었지만 아주 오랫동안 볼 수 없게 되었다. 가

  • 2020-01-01
지금은 새로운 들판을 찾기 위한 새로운 들판이 필요한 시기

[특별기고 / 좌담에 부쳐] 지금은 새로운 들판을 찾기 위한 새로운 들판이 필요한 시기 황규관 현 단계 한국 문학에 담론은 있는가? 내게 이런 물음이 던져진다면, 서슴없이 '없다'고 대답할 것 같다. 어떤 이들은 '미투 운동' 이후 불기 시작한 페미니즘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페미니즘이 최근 몇 년간 우리 사회를 강력하게 뒤흔들어 놓은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페미니즘과 함께 성소수자 운동을 제시해야 보다 더 정확할 것이다. 이 둘은 우리 사회와 사회를 운영하는 국가가 그동안 가해자 그 자체였음을 여지없이 폭로하는 값진 성과를 낳았다. 또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도 결합해 청(소)년 여성들이 일본군 '위안부' 운동에 함께하는 결과도 낳았다. 거칠게 되돌아보면, 페미니즘과 성소수자 운동은 우리 사회의 저변에 존재하던 폭력적인 무의식을 격하게 흔들어 놨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이런저런 백래시(backlash)를 모두 반동으로만 해석하면 남성/이성애적 신체를 가진 사회의 자아에 생긴 균열을 보지 못하는 소심한 해석을 낳을 수 있다. 긍정적으로 균열을 보지 못하고 소심하게 반동만 봤을 때 페미니즘과 성소수자 운동은 자기방어에 보다 더 치중할 수밖에 없으며, 안으로 방향을 잡은 운동은 그만큼 폐쇄적일 가능성도 커지기 마련이다. 이는 페미니즘과 성소수자 운동이, 옛날식 표현을 쓰자면, 부문 운동에 머물 개연성을 점점 더 높일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세계 자체를 페미니즘적으로, 그리고 성소수자적인 질서로 재편하는 게 보다 더 깊은 변화라면 페미니즘과 성소수자 운동은 그 '운동 자체'를 동시에 넘는 파고(波高)를 가짐으로써 대안적인 담론을 생산해 낼 것이다.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자본주의를 극복하자는 운동과 선을 긋거나 심지어 성소수자 운동과 대립하는 현상은 그래서 건강하지 못한 것이다. 물론 이런 현실의 큰 원인은 여전히 굳건한 '남성 동맹'이고 이 '남성 동맹'의 상징적 결정체로서 국가가 기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남성-국가를 내면화해 온 미시적인 남성-자아들이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한국 문학 안쪽으로 끌어들여와 보면 상황은 어떨까. 한국 문학장 내에서 벌어진 페미니즘 논의와 동떨어진 자리에서 입장을 말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지만 앎의 한계를 고백하면서 의견을 덧붙이는 것은 배움을 청하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봤을 때, 이 글의 목적과도 부합되는 일이기도 하지만, 한국의 문학장 안에서 벌어진 거개의 논의는 페미니즘이었던 것 같다. 분명히 환영할 만한 일이기는 하나 이른바 촛불 이후에 우리 사회에서 벌어진 슬픈 현상들이 숱한데도 문학장 안에서는 왠지 페미니즘만 '홀로' 발화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 문학의 주요 매체들은 페미니즘 외의 다른 사회 문제는 등한시했다. 이제는 사회적 피살이라고 말하는 게 맞을 노동자들의 죽음에는 아예 입을 닫았으며, 근대 산업문명이 야기한 기후 위기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무기력했다. 단적

  • 황규관
  • 2020-01-01
뜨거운 커피를 엎지른다

뜨거운 커피를 엎지른다 고성만 일생을 울듯 무거운 하늘이 잠시 그늘을 드리웠지만 지기 전의 햇살은 아주 뜨거워서 입술이 말라 간다 여백이 부족하여 마음 놓을 수 없기는 한 달 전이나 어제나 마찬가지 지난 일에 미련을 갖는 것은 나쁜 습관이다 밤늦게 손톱을 깎는다거나 아침 일찍 전화를 거는 일 갑자기 날아온 문서에 서명하는 순간 눈은 내려 수많은 꽃송이 바람에 실려 보내는데 침엽수림의 표정 닮은 구름이 정박하여 움직이지 않는 오후는 가끔씩 정원을 산책하는 새의 노래보다 신선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오늘 나는 나무뿌리가 얼마나 깊어졌는지 모르고 서둘러 찾아온 밤은 검은 등불 켠 채 움켜쥔 손 후들후들 떨면서 발등에 뜨거운 커피를 엎지르고

  • 고성만
  • 2020-01-01
붉은 강

붉은 강 고성만 저물녘 강에 간다 그는 터럭 수북한 몸으로 버스럭거린다 은빛 물고기 대신 악보 수집하러 다니느라 물컹한 구덩이에 빠진 달 위태롭게 출렁이는 다리를 건너면 개처럼 으르렁거린다 우선 다급한 대로 아가리에 검정봉지 씌워둔 채 알함브라 궁전을 찾아간다 추억은 안개에 섞인 바람 집단으로 생매장된 돼지들이 살려달라고 울부짖고 울부짖다가 절망하는 사이 피는 강으로 흘러들어 온통 캄캄한 노을 속 벌겋게 채색된 냇가에서 씻어도 씻겨 내려가지 않는 꿈을 피워 올린 채 바삭바삭 말라버린 갈대들 잠에 소금 뿌릴 때마다 아으, 날카로운 이빨 드러내는 그를 위해 가녀린 등불 밝혀 어둠을 연주하는 저녁

  • 고성만
  • 2020-01-01
순두부

순두부 이장근 스치기만 해도 자국이 남는다 숟가락이 닿자마자 숟가락을 문다 한 숟가락 푹 떠서 입에 넣는다 이가 푹푹 빠진다 말이 푹푹 빠진다 씹지 않아도 되는 말을 알고 있다 이보다 잇몸이 찾는 말 아이의 입속에는 옹알옹알 돌에 눌리지 않은 말들이 가득했다 귓구멍에 박힌 가시를 녹여 줄 것 같아 귀 기울여 듣곤 했다 석 달째 치과에 다니고 있다 의사는 야문 것을 피하라고 했다 단단한 말을 입에 물고 살았다 단단했던 날이 없었기에 돌의 무게가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 말도 차츰 물러져야 한다 이가 푹푹 빠지도록 말이 푹푹 빠지도록 날마다 옹알이를 연습해야겠다 틀니를 빼고 잠든 아버지의 잠꼬대가 그립다

  • 이장근
  • 2020-01-01
보조개

보조개 이장근 편의점에 들어가려는데 문을 열고 나오려는 학생과 마주쳤다 옆으로 비켜서니 문 밖으로 나온 학생이 내가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문을 잡아 준다 그 마음이 예뻐 미소를 보내니 미소로 답례한다 한쪽 볼에 파인 보조개가 깊다 눈물이 떨어져 파인 자국일까 벌써 속이 깊다 보조개 속으로 들어가면 울음소리가 들리는 방이 나올 것 같다 그곳에 나의 소년을 보내고 싶다 자기 울음소리를 들으며 우는 게 가장 서러웠던 소년 소녀의 울음 옆에 소년의 울음을 앉히고 싶다 울음과 울음 사이의 적막을 울음으로 메워 주고 싶다 단짝 울음이 되고 싶다

  • 이장근
  • 2020-01-01
생장

생장 — 머신 러닝 3 정우신 페인트가 벗겨진 지붕 풀이 자란다 축사를 지나 감나무가 있는 폐가를 지나 둑길을 따라 풀이 자란다 냇가는 시간을 물결로 바꾸는 중 얼굴을 건져 본다 엄마 엄마야? 엄마가 맞아? 엄마 어디 갔어? 어디야? 안 갈 거야? 나 좀 데리고 가…… 나 좀…… 작업복의 나프탈렌 냄새 너는 올해도 벌초를 하는구나 개가 짖고 고추가 말라 가고 새로운 무덤에 풀이 자란다 방금 전까지 밥을 지어먹었는데 중절모를 고쳐 쓰며 숨을 고르고 있었는데 믐, 믐, 믐, 므음, 믐, 믐, 믐, 믐, 므음 얼음! 얼음! 양에게 먹이던 지푸라기를 토끼에게 주지 마라 바람이 죽었잖니 풀은 자랄까 내 위로? 아래로? 나보다 먼저? 아냐 아냐 막걸리를 한잔 더 마셔야 해 안으로 안으로 조금 더 깊숙한 곳에서…… 풀은 자란다

  • 정우신
  • 2020-01-01
가타카

가타카 정우신 살아남은 포유류의 척수에 바늘을 꽂고 이동 중이었지 피로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은 피를 돌리지 않아야 한다는 걸 늦게나마 깨달았다네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는 거 아니었겠나 분해되고 싶었지 우주처럼 꽃잎을 떨어트리려는지 다른 꽃잎과 묶으려는지 알 수 없는 바람이 불고 사랑이라는 말은 미래를 속이기 좋았네 당신은 일찍이 그걸 믿지 않았지 아니면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에게 피부를 내주었던가 한쪽 눈을 감으면 아직도 당신이 바라보던 세계가 보인다네 세계라는 말도 역시 참 질기고 우리의 욕망을 분배하기 좋았지 꽃잎을 하나 둘씩 흩날리며 더 해보라는 듯이 당신은 나의 얼굴로 미소를 짓고 있네 내가 비난했던 사람들 대부분은 나의 얼굴을 하고 있었지 덩어리가 완성되길 기대했다네 과연 나는 먹음직스러운가 종교를 알아보게 피를 교체한 다음날은 당신이 살던 시절이 자꾸만 나타나 끔찍하다네 그럴 때면 샐러드를 만들고 술을 데우지 목숨이 하나밖에 없던 시절…… 불행을 물려줄 수 있었던 인간의 마지막 세기…… 당신은 무슨 일이든 항상 여지를 두었으니 내가 생각하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겠지 사실 그 비겁함을 닮고 싶었네 더 취하기 전에 자화상이나 그려 보게 무책임하고 완벽한 시스템을 가장 왜곡된 나의 진실을 뽑아낼 수 있지 않겠나 내가 유전시키고 있는 이 포유류의 낭만은 무엇이었을까 다음 새떼를 아직도 기다리는지 당신은 긴 잠에서 깨어나질 않고 나는 절단된 나의 다리로 기어가 군침을 흘려 보는 것이네

  • 정우신
  • 2020-01-01
바다가 토미한테 오지 않으니 토미가 바다로 가는 거로군, 어떻습니까

[신작시] 바다가 토미한테 오지 않으니 토미가 바다로 가는 거로군, 어떻습니까? * 김륭 어머니, 누워서 밀고 있다. 요양병원 침상에 누워서 자꾸 아버지를 밀고 있다. 이젠 나도 좀 누워 봐요. 죽기 전에 다리라도 좀 편히 뻗어 봐요. 물갈퀴가 비치기 시작한 어머니 발에 채여 둥둥 떠내려가는 아버지, 아버지 무덤을 나는 모르는 척 눈감아 주는 것인데, 밤새 보호자용 간이침대에 누워 밑줄 그었던 문장을 따라가다 문득 막다른 골목 시멘트벽에 그려 놓은 바다를 떠올린 것인데, 요양보호사가 말했다. 식사 시간이에요. 침대 좀 세워 주시겠어요? 나는 토미가 아닌데 나는 어머니 발밑에서 으르렁거리는 바다를 잡아와 미역국 끓이고 조기라도 한 마리 굽고 싶었을 뿐인데, 나는 정말 토미가 아닌데, 떠내려가는 아버지를 잡아와 어머니 곁에 가만히 눕히고 싶었을 뿐인데, 요양보호사가 또 말했다. 이봐요, 침대를 좀 더 세워 주시겠어요. * 안토니오 타부기, 『인도 야상곡』에서 부고 눈싸움하는 아이들을 보고 눈사람이 말했다 곧 봄이 올 것이다, 눈사람은 햇빛 어른거리는 길 위의 코끼리처럼 * 우아하게 내가 가장 추웠거나 뜨거웠던 날의 기억들을 가만히 식탁 위에 올려놓을 것이다 꽃들이 국밥 먹으러 오길 기다릴 것이다 * 우밍이, 소설 제목 「햇빛 어른거리는 길 위의 코끼리처럼」에서 차용 작가소개 / 김륭 200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2007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 2013년 제2회 문학동네 동시문학상 대상·2014년 제9회 지리산문학상 수상. 시집 『살구나무에 살구비누 열리고』(2012년)·『원숭이의 원숭이』(2018년), 청소년 시집 『사랑이 으르렁』(2019년), 동시집 『프라이팬을 타고 가는 도둑고양이』(2009년)·『삐뽀삐뽀 눈물이 달려온다』(2012년)·『별에 다녀오겠습니다』(2014년)·『엄마의 법칙』(2014년)·『첫사랑은 선생님도 일 학년』(2018년), 이야기동시집 『달에서 온 아이 엄동수』(2016년). 《문장웹진 2020년 1월호》

  • 2020-01-01
얼굴의 물성

얼굴의 물성 김지연 정말 사람 같아 잠든 개의 얼굴을 보던 우리 중 하나가 말했다 모두가 창밖 공작새의 아름다움에 감탄할 때 공작새는 끼요끼요 기괴한 목소리로 운다 사람들은 이것이 이 아름다운 순간을 부서트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여기 똑같아 말하는 세 살의 작고 말캉한 새끼손가락은 인중에 꼭 들어맞고 우리의 얼굴은 인간으로서 서로를 닮는다 깜지는 왜 인중 없어? 깜지는 강아지라서 그래 모든 강아지들은 천사래 캥거루 맛 사료를 먹는 천사 캥거루보다 작고 약한 앞발을 가진 천사 인간이 데려가는 곳에만 있는 천사야 객실과 객실 사이에서 강아지만큼 작은 인간이 커다랗게 운다 나는 세상이 통째로 발등에 떨어진 것처럼 운다고 쓴다 그건 그냥 배가 고프다는 뜻 네게 조용하고 예쁘게 우는 방법 같은 건 절대로 가르치지 않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의 옆얼굴 뒤로 오늘이 타오르고 있다 새들은 말할 수 없기 때문에 노래하는 것이 아니다 노래 자체가 일차적으로 새들에게 속하기 때문에 노래한다 * 창밖의 공작새는 노래한다 창가에는 며칠째 그대로인 물병이 놓여 있다 그것은 햇빛과 함께 간이테이블 위에 물의 형태를 찍어낸다 물은 상한 채로 계속 투명하지 신발 앞코로 바스러지는 눈을 볼 때 왜 흰 빛보다 곤죽이 된 회색 액체를 밟는 감각이 더 생생한지 집에 온 나를 반기는 천사의 축축한 코가 입술 위를 누를 때 깊어지는 인중은 인간의 것으로써 서로를 흉내 낸다 세수를 마친 너의 인중에는 한 방울의 맑은 물이 고여 있다 * 막스 피카르트

  • 김지연
  • 2020-01-01
재세계

재세계(reworlding) 김지연 지나간 일은 다 잊자 지나간 일은 다 잊는 거야 그는 이 대사의 다음 장면에서 죽었다 영화 속에서 영화는 계속될 것 같았고 그 사람은 영원히 아무것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모든 것을 영원히 잊게 될 것이다 핸드폰 불빛이 신경 쓰여서 도무지 영화에 집중할 수 없었어 극장에 꽉 들어찬 어둠은 그 작은 불빛 하나 숨겨 주지 못하고 주인공은 십이월 밤거리의 쏟아지는 불빛 때문에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것도 알아보지 못한다 오래된 거리를 걸으면 가로수들은 영원히 자랄 것 같다 정원수의 손에서 떨어지는 잎사귀와 뚝뚝 분질러지는 나뭇가지의 미래를, 잔디가 깎이는 동안 우수수 떨어지는 머리통을 다 기억하면서 십이월은 어디에서나 커다란 나무에 작은 전구들이 주렁주렁 매달리고 불빛이 들어오고 빛을 끄고 불을 켜면 다 똑같아 보이는 세계의 근원은 이제 전기라고 인간은 빛보다 한참 느린 속도로 움직이면서 원하는 만큼의 빛을 만들 수 있다 운전자가 죽은 다음에도 계속 달릴 자동차를 가질 수 있다 이것은 생명의 낭비를 줄여 주는 기술입니다 그러나 너무 환한 곳에서는 생명을 낭비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높은 조도에서는 사물을 정확하게 인지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밝게 빛나는 하늘과 흰옷을 입은 사람을 구별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세계는 점점 더 낮은 조도로 진화하고 있어 매년 이십 퍼센트 정도의 광량이 감소하고 있대 희박한 태양광 아래에서 낮아지는 조도의 세계에서 우리는 함께 희박해지겠지 정말 좋은 일이다 좋은 미래가 오면, 도로 위에서 공들여 식별해야 할 산 것들이 없는 그런 미래가 온다면 생명이 낭비되는 일도 없을 거야 앞서 걸어가는 사람의 등에 죽은 짐승의 등이 포개져 있다 너는 어쩜 죽어서도 이렇게 따뜻하고 부드러운지 짐승의 등을 어루만지며 아름답다 감탄하는 사람들이 모두 사라진 자리에서 아름다움은 시작되었다 이것은 전기로 작동되는 신이 들려준 이야기다

  • 김지연
  • 2020-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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