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19번 홀에 나이스 샷 하는 방법
- 작성일 2013-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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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번 홀을 알게 된것도, 18번 홀까지 있다는 사실도 얼마 전에 알았다. 블랙 홀, 맨 홀, 영어에 깜깜한 나도 앞에 붙는 명사들을 보면서 홀이 구멍을 말한다는 사실은 알겠다. 나는 골프장을 가본 적이 없어서 홀이 내 직업 홀 서빙의 홀처럼 잔디가 깔린 넓은 공간을 의미하는지, 달걀보다 좀 작은 골프공이 들어갈만한 크기의 구멍을 의미하는지 아직도 햇갈리는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 식당 사장이 사십대 중 후반의, 그 또래치고는 너무 깡 마른 날씬한 체구의 여자 손님들을 19번 홀이라고 말하는 걸로 봐서 그녀들의 몸 어디에도 홀이라는 것이 있다는 얘긴데 아마도 홀은 시티 홀에 쓰이는 홀은 될 수 없을 것 같다. 그녀들은 값비싼 골프 웨어를 늘 입고 온다. 그녀들은 거의 올 때마다 다른 남자 손님들과 함께 온다. 그녀들이 함께오는 남자 손님들은 열이면 열 그녀들보다 열살은 더 먹어 보이는, 아주 값비싼 음식을 주문하는 부자 손님들이다. 그녀들은 대부분 탤랜트 같은 미인은 아니지만 그 또래 여성들에 비하면 귀티나고 아름답다. 사장은 말한다. "언니야! 원래 골프는 18번 홀을 돌게 되어 있는데 저런 아줌마들이랑 골프 치고 모텔가는 것을 19번 홀이라고 그런데" 골프 한 번 치는데 돈이 많이 드니까 저렇게 골프를 치고 인맥을 만들어서 장사를 하거나 재주 좋은 여자들은 돈을 얻고, 집도 얻고..참 능력 있고 복도 많지...그러니까 여자는 예쁘고 봐야한다니까...." 사장의 푸념에 경멸의 느낌보다 어쩐지 부러움의 느낌이 더 짙게 묻어난다. 그러고나서 일인분 삼만오천원짜리 특수 부위를 찍어 먹을 참기름장을 들고 들어가서 다시보니 여자들의 모양새가 내가 죽었다 깨어나도 흉내낼수 없는 광채로 둘러싸여 있다. 너무 자주 먹어서 질려서 인지, 그 비싸고 맛있는 고기를 먹는 표정이 시큰둥하고, 그릇을 치우러 오면 고기도 많이 남아있을때가 많다. 그리고 밤늦은 시간까지 웃고 떠들고 마시고, 퇴근이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나에게 좋은 노래방 있으면 예약해 달라고 보챈다. 이삼십분 전에 전화한 대리운전 기사가 오고, 술이 얼큰해져 십년지기처럼 자연스럽고 꺼리낌 없어진 그 남녀들이 계산에 팁까지 얹어주며 어디론가 떠난다. 따지고 보면 비슷한 또래인데 달라도 너무 다르고 달라도 너무 다르게 보이고 느껴진다. 늘 저런 부류의 여자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핏대를 올리며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는게 아니라 죽어도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해왔던 나다. 그런데 덜컹이는 유리문의 "어서 오십시요와 함께 비치는 나의 모습은 하녀고, 안녕히 가시는 그녀들의 뒷모습은 귀부인이다. ' 좋은 데이'라는 우리 지방의 소주 로고가 그려진 앞치마를 벗는 나의 손길이 거칠고 바빠진다. 누가 그럴싸한가 앞에서 누가 그르고 누가 옳은가는 초라하고 병신같다. 골프는 그들만의 패스워드다. 그녀들은 그들과 통하고 나는 통할수 없다. 그녀들은 그들과 통하는 홀을 가졌고, 그 19번의 홀을 가졌기 때문에 나머지 18홀도 공유 할 수 있다. 나는 그녀들과 그들이 고기를 먹고 희희낙락하는 홀을 치우고, 마치 그들의 홀 따위는 진실과 순수의 블랙 홀로 여기는 양, 내 홀을 신전처럼 돌며 엎드리고 숙이고 닦고 차리고 치운다. 사장의 말로는 그 중 한 여자는 나보다 한 살이 많은데 이혼을 하고, 일정한 직업도 없는데 한달에 달세가 80만원 들어가는 고급 빌라에서 외제차를 굴리며, 명품 옷과 가방을 걸치고 산다고 한다. 입었던 앞치마를 개수대에서 컵 닦는 합성 세제로 씻어 널고, 물 방울 튄 옷 위에 아들이 입지 않는 패딩을 입고 거울을 본다. 이리저리 쫓아 다니느라 아침에 부랴부랴 발랐던 오분 메이크 업은 거의 맨 얼굴이 되었고, 추워서 풀어 헤친 머리는 묶었던 흔적 때문에 삶은 문어다리처럼 사방팔방으로 뻗쳤다. 한달전에 아예 새까맣게 염색한 머리 사이로 엄지손톱만한 흰머리들이 일인시위라도 하듯 삐죽 삐죽 서있다. 그래..서빙의 어원이 서번트라지.... 노예, 하인, 하녀...사극에서 국밥 파는 주모나, 성서 영화 같은데서 이집트 공주의 발을 씻겨 주거나 부채를 부쳐주거나 하고,,,17세기 풍선 치마 입은 귀부인들이 나오는 영화에선 하얀 에이프런을 두르고 귀부인들이 얼굴이 새파래지도록 코르셋 줄을 당겨주던, 그녀들이겠지. 그 하녀들 중 인물이 반반한 여자들은 주인이나 상전의 눈에 들어 첩이 되어 호사를 누리고, 그 주인과 상전의 안주인들을 그 매력으로 능멸하기도 했었지...그래서 어떤 화장품 광고에는 "여자의 신분은 피부가 말한다. "라는 문구가 있지,, 피부..여자의 외모가 그려지는 도화지 말이야...누구에게 자신의 홀이 선택 받고, 누구에게 자신의 홀을 여는가에 따라서 신분이 달라지고 경제가 달라지고, 미래가 달라지는 부엌데기 스토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흩어져 있지...내게도 다른 열여덟개의 홀을 거느릴 열아홉번째의 홀이 될 만한 장소가 있나?
내안에서 어떤 대답도 듣기 전에 허겁지겁 달려 도착한 버스 정류소에 막차인듯한 126번 버스가 마라톤을 하다 잠시 물을 마시는 입술처럼 거칠게 출입문을 열며 나를 흡입한다. 어느새 백원이 더 올라버린 버스 요금을 찾아 지갑에 남은 동전들을 털어낸다. "다음 내리실 곳은 주공 1차 아파트 입니다." 십팔, 십팔하며, 십팔 홀을 다 돌아온 나의 하루, 내가 잠시 쉬어 갈 19번 홀에 환한 불빛이 깃발처럼 꽂혀 있다. 개가 짖고, 나는 나이스 샷이다. 어쨌거나 바퀴벌레 끓는, 아이들이 먹은 설겆이가 산더미처럼 쌓인, 또 다시 라운딩을 시작해야하는 나의 홀...나의 신분은 골퍼가 아니라 골퍼공이다. 그런데 왜 가끔 내 눈엔 늘 골퍼보다 골프 공이 자유로워보일까? 오히려 골프공들이 골퍼를 쩔쩔매게 만들고, 골퍼들의 골머리를 썩게 만들고, 골프공을 다루는 솜씨가 골퍼의 실력을 가늠하게 만드는 일이 이상해보인다. 홀이 되어 눕는 일은 골퍼에게도 골프공에게도 밟히고 뭉개지는 일 같다. 자주 맞아가며 길을 찾지만 그들이 잘 쳐야 그들 자신을 입증하는 공으로 살아가는 일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18홀을 도는 라운딩을 끝내고 잠시 쉬어가는 식당이나 바 같은 장소를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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