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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가 된 여자

  • 작성일 2013-02-26
  • 조회수 442

 

나는 버스 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중이다. 친구 A와 B, 그리고 B의 친구 C가 내 옆에서 시답잖은 얘기를 나누고 있다. 소녀시대와 카라 중 누가 더 좋냐는 A의 질문에 B는 카라라 답하고, A는 소녀시대가 더 낫지 않냐고 되묻고, C는 에프엑스가 짱이라고 껴드는 식이다. 소녀시대와 카라, 에프엑스 중에서 나는 어느 그룹을 제일 좋아하더라, 아무래도 소녀시대가 낫지, 혼자 생각해보는데 저 멀리서 한 여자가 손을 흔든다. 그런 질문을 왜 해, 네가 윤아보다 더 예뻐. 저 여자가 누구지 보는데 느닷없이 그러한 목소리가 귓가에 들린다. 내 목소리다. 여자가 반갑게 뛰어온다. 너다. 아, 너라니. 말도 안 된다. 왜냐면, 너는 죽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 죽은 “사람”이라니. 그거야 말로 말도 안 된다. 죽었는데, 어떻게 사람일 수가 있을까. 

소녀시대가 좋아, 내가 좋아? 라고 물었던 너는, 당연히 네가 좋지, 라는 내 대답에 그럼 윤아가 예뻐, 내가 예뻐? 라고 물었던 너는, 죽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내 눈에 죽은 네가 나타난 것이다. 죽지 않았다는 듯,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듯. 

어디 가는 길이야? 네가 묻는다. 당황한 내가 미처 대답하기 전에 너는 친구 A에게 인사를 건넨다. 당연하게도 친구 A는 대답이 없다. 너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너는 친구 B 쪽으로 다가가 그의 어깨를 툭 치며 아는 체를 한다. 하지만 B는 슬쩍 어깨를 으쓱할 뿐, 카라의 구하라가 얼마나 귀여운지에 대한 얘기를 계속한다. 구하라 뭐가 귀여워, 난 걔 너무 말라서 싫던데. 이상해, 개구리 같아. 너는 어른들의 대화에 동참하고 싶은 아이처럼 A와 B의 대화에 수다스럽게 껴든다. 친구 C가 너의 대화를 듣기라도 한 건지 난 구하라 별로던데, 라 대꾸한다. 네가 C를 보며 신나게 맞장구를 친다. 그치! 구하라 별로라니까! 하지만 C는 너를 보지 않는다. 근데 네가 C를 만난 적이 있었던가. 너는 왜 다른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고 내 눈에만 보이는가. 내가 죽은 너를 그리워하고 있단 걸 알고 하느님이 선물로 너를 보내준 걸까. 그렇다면 하느님, 실수한 거예요. 나는 그녀를 그리워하지 않았어요. 문득 A가 나를 보며 묻는다. 야, 왜 이렇게 안 와. 여기 맞아? B와 C도 내 대답을 기다리는 듯 나를 보고, 너도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여기는 버스 정거장이 맞으니, 여기가 맞을 테다. 하지만 오래 기다린 것 같은데 여태 버스는 오지 않고 있다. 그러고 보니 지나가는 차들도 없다. 나는 너를 보며 답한다.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 A, B, C는 나를 향한 시선을 거두고 한 대의 차도 지나가지 않는 도로 쪽을 바라본다. 여전히 나를 빤히 보고 있던 너는 내 옆으로 다가온다. 너는 풀 죽은 목소리로 애들이 나랑은 안 놀아 줘, 한다. 삐죽대는 입술이 어린이집을 다녀와 엄마에게 고자질하는 어린 아이 같다. 우리가 헤어졌다고 나랑은 말도 섞기 싫은 건가 봐. 네가 그렇게 말하며 슬픈 눈빛으로 나를 본다. 들었죠, 하느님. 우리는 헤어졌거든요. 그러니 나는 그녀를 그다지 그리워하지 않는답니다. 그러니 너까지 나 모른 척 하지마, 너는 그렇게 말하며 내 손을 가만히 잡는다. 젠장. 촉감이 너무 생생하다. 말캉하고 부드러운 느낌, 그러면서도 손끝은 찬. 네 손이 분명하다. 아, 하느님. 나는 네 손을 잡고 내 코로 가져간다. 망할. 냄새까지 그대로다. 

네 손에선 언제나 좋은 냄새가 나. 아마 사귄지 백 일도 채 안 됐을 때였을 것이다. 나는 네가 좋아 죽겠다, 는 말 대신 붙잡은 너의 손을 코에 갖다 대고 그렇게 고백했었다. 너는 검지로 내 코를 툭 건드리며 그냥 핸드크림 냄새일 거야, 답했다. 쑥스러워서였을까. 하지만 그건 화장품 냄새가 아니라 너의 냄새였다. 나는 네 특유의 냄새가 참 좋았다. 그때 난 정말로 네가 좋아죽을 것 같았다. 하지만 죽은 건, 내가 아니라 너였다. 

그러니까 하느님, 제발. 난 죽은 그녀를 보고 싶지 않아요. 이렇게 생생하게 나타나다니 원치 않는 일이에요. 당장 내 눈 앞에서 사라지게 해주세요. 나는 가만히 너의 손을 놓으며 눈을 감고 기도한다. 야, 왔다. A인지 B인지 C인지 누군가의 소리에 천천히 눈을 뜬다. 계속 나를 보고 있던 듯, 내 눈 앞엔 말간 얼굴의 네가 있다. 내가, 그렇게 싫어? 내 기도를 하느님 대신 네가 듣기라도 한 걸까. 나는 모른 척 다가오는 버스에 올라탄다. A 무리들이 맨 뒷좌석에 나란히 앉고 나는 그 앞에 앉는다. 너는 수많은 빈 자리를 두고 당연히 여기가 네 자리라는 듯 내 옆에 앉는다. 그래, 불과 얼마 전까지 여기가 네 자리였다. 내 옆은 항상 네 자리였고, 네 옆은 항상 내 자리였다. 하지만, 말했다시피 얼마 전까지의 일이다. 우리는 헤어졌고, 너는 죽었고, 지금 이렇게 보이는 네가 나는 반갑지 않다. 넌 이미 죽었어. 나는 너에게 말한다. 그래서 쟤네들은 널 못 보는 거야. 하느님이 무슨 장난을 치는 건지 모르겠는데, 내 눈에만 네가 보이는 거야. 멍한 눈으로 너는 자기들끼리 얘기하고 있는 뒷좌석의 친구들을 보다가 나를 본다. 기억 안 나? 그때, 바닷가에서. 내가 거기까지 말하자 너의 표정이 변한다. 텅 빈 얼굴. 너는 꿈인 줄 알았어, 라고 중얼대듯 말한다. 수면제 먹었던 그때, 수많은 꿈을 꿨었는데, 너무도 생생했거든. 근데 깨고 보니 다 꿈인 거야. 그래서, 바닷가에 빠졌던 그 일도 꿈인 줄 알았어. 네가 나를 본다. 정말, 죽은 거였구나, 나. 쓸쓸하게 말하는 너를 마주볼 수가 없어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다. 한데 창가에 네가 비치지 않는다. 다시 고개를 돌리는데, 네가 없다. 어디 간 거지? 하느님이 그녀를 사라지게 한 걸까. 아니 하느님, 잠시만요.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렇게 생생하게 나타나게 할 거면 그녀를 진짜로 살아나게 해달라는 거예요. 제발, 그녀를 살려 주세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는데 뜬금없이 개구리 소리가 들린다. 개굴. 나는 소리가 나는 쪽을 내려다본다. 내 옆 의자 아래에 작은 개구리가 한 마리 있다. 개굴, 개굴. 개구리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본다. 눈이 하나다. 큰 눈 하나가 그렁그렁하다. 무섭고 징그럽기보다, 놀랍고 당황스럽기보다, 슬프고 안타깝다. 나는 몸을 낮춰 개구리를 가만히 쓰다듬는다. 너의 입술처럼 촉촉하다. 너의 혀처럼 축축하다. 개구리는 당연하게도 말을 하지 못한다. 내 손길에 개굴, 개굴 소리만 낼 뿐이다. 그게 좋다는 건지 싫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아니 개구리도 말을 하고 있을 텐데 내가 못 알아듣는 것뿐이겠지. 생각해보면 생전의 너와의 대화도 그랬다. 

사귄지 6개월이 지나면서부터 결혼 얘기를 꺼냈던 너는 이 년이 지나면서는 집착에 가까울 만큼 심하게 굴었다. 식은 안 올려도 좋으니 동거라도 하자고 했다. 그냥 같이 살면 안 돼? 안 돼. 왜 안 되는데? 아직 전셋집 마련할 돈도 없어. 그냥 나 사는 원룸에서 시작하면 되잖아. 그게 말이 돼? 왜 안 되는데? 너 나 안 사랑하니? 사랑하니까, 일단 일 이년 후에. 그 얘기 일 년 전에도 했어. 그럼 일 년 후에 다시 하자. 너 지금 나랑 말장난 하자는 거니? 말장난은 네가 하고 있잖아. 네가 나 좀 이해해주면 안 돼? 나 요새 힘들어. 내가 얼마나 널 이해하려고 애쓰는지 몰라서 그러는 거야? 

내가 얼마나 널 이해하려고 애쓰는지 몰라서 그러는 거야?, 라고 묻는 네 눈엔 언뜻 눈물이 비쳤지만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솔직히 얼마나 애쓰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네가 날 이해하려고 애쓴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대답하면 네가 눈물을 쏟을 게 뻔했기에 그쯤에서 멈췄다. 우는 네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너를 사랑해서? 글쎄, 달래주기 귀찮아서, 라 말하는 게 사실에 더 가까울 것이다. 나는 결혼에 목매는 네가 점점 귀찮아졌다. 

개굴, 개굴, 개굴개굴. 의자 아래 개구리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으며 자꾸만 울어댄다. 아니 우는 건지 웃는 건지 알 수 없다. 너는 개구리로 변한 걸까. 개구리를 보는 마음이 불편해진 나는 다시 창 쪽으로 시선을 던진다. 창밖엔 아무것도 없다. 버스가 움직이고 있을 텐데 왜 창밖에는 아무것도 없는 거지. 근데 잠깐, 이 버스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내가 어디 가는 길이었더라. 

 

번쩍. 눈을 뜬다. 순간적으로 모든 것이 낯설어 가위에 눌린 것 마냥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눈만 몇 번 꿈뻑꿈뻑한다. 천천히, 천장의 익숙한 무늬가 눈에 들어온다. 너와 붙였던 야광 별 스티커가 반쯤은 떨어진 채 용케도 매달려 있는 모습도 보인다. 아, 꿈이었구나. 옆자리를 돌아본다. 입을 살짝 벌린 채 네가 잠들어 있다. 아, 꿈이었어. 정말 다행이다. 근데 꿈에서 넌 왜 죽었던 걸까. 난 왜 너의 죽음을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걸까. 고등학교 때, 수면제를 먹었다는 그 일이 내 무의식에 오래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A가 그러던데, 너 약 먹은 적 있다고. 진짜야?

나는 네가 끓여 준 라면을 다 먹어갈 때쯤, 네가 라면을 끓여가지고 올 때 김치는 안 꺼내도 돼, 라고 말했던 톤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다.

무슨 약? 우울증 약? 그거 너도 알잖아.

아니, 그거 말고.

나는 말을 멈추었다. 너 역시 말이 없었고 나는 라면을 마저 먹었다. 잠시 후 그제야 네가 뭘 말하는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아, 수면제. 응, 있어.

너는 대답 끝에 내가 라면을 다 먹은 것을 확인하고는 밥 갖다 줄까? 물었다. 괜찮아, 배 불러, 나는 말했고, 너는 냄비와 수저를 챙겨 싱크대로 갔다. 나도 일어서 네 쪽으로 갔다. 쏴아. 라면 국물을 버리고 빈 냄비에 물이 쏟아지는 모습을 네 뒤에서 지켜봤다. 나는 뒤에서 가만히 너를 안았다.

죽고 싶었던 거 아냐, 그냥 살고 싶지 않았어.

왜 그랬냐고 묻지 않았지만, 너는 수도꼭지를 잠그며 변명하듯 말했다. 나는 너를 더 꼭 안았다.

수면제 서른 알 먹는다고 안 죽는다는 거, 나도 알았어. 한참을 잤어. 꿈에서 내가 죽은 거야. 아빠가 나타나서 내 목을 졸랐어. 망할 년, 너 때문이라고 하면서. 근데 우리 아빠는 죽었잖아. 그래서 난 내가 죽었다고 생각한 거야. 꿈이니까, 나도 내 맘대로 해야지, 싶어서 발버둥 치면서 아빠를 발로 찼어. 아빠가 그대로 쓰러졌어. 그래서 아빠를 마구 밟았어. 아빤 네가 어떻게 아빠한테 이럴 수 있냐고 소리쳤어. 세상에, 살아 있을 땐 툭하면 술에 취해 친자확인 하자고 넌 그 새끼의 자식이라고 할 땐 언제고. 그래서 더 세게 아빠를 밟았는데, 그러다 문득 무서워 진 거야. 아빠가 이대로 정말 죽어버릴까 봐. 아니지, 근데 아빠는 교통사고로 죽었는데. 그러다 깬 거야. 다 꿈이었던 거야, 다행이지.

 

그래, 다 꿈이었던 거다. 참 다행이다. 나는 잠들어 있는 너를 가만히 본다. 너는 그토록 증오하던 아빠가 교통사고로 죽었는데, 까짓 거 이 세상에 혼자면 어떠냐, 열심히 살자, 생각했다고 했다. 덕분에 나를 만날 수 있었다고, 너는 돌아보며 웃었다. 나는 네 입술에 입을 맞추고는 절대 나보다 먼저 죽지 말라고 속삭댔다. 너도 내 귀에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속삭댔다. 나는 꿈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너의 입 안에 검지를 집어넣는다. 그리고 가만히 네 손 냄새를 맡는다. 그래, 이 냄새야. 너의 냄새. 나는 네 손에 코를 박고 강아지처럼 킁킁댄다. 그 바람에 네가 잠에서 깬다. 뭐야. 뭐긴 뭐야 나지. 내가 짓궂게 답한다. 아직 몽롱한 너는 왜 이렇게 일찍 깼어, 물으며 다시 눈을 감는다. 내 품으로 파고드는 너를 깊이 안으며 이상한 꿈을 꿔서, 라고 답한다. 무슨 꿈. 네가 개구리가 되었어. 나는 네가 꿈속에서 죽었었다고, 그런데 내 눈에만 보였었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개구리? 네가 눈을 뜨고 나를 올려다본다. 징그럽게 웬 개구리. 너는 입술을 삐죽인다. 개구리로 변하지마. 나는 밑도 끝도 없이 그렇게 말한다. 개구리로 변하면 자기가 키스해주면 되지. 동화도 몰라? 네가 검지로 내 코 끝을 툭툭 건드리며 말한다. 그건 개구리가 된 왕자잖아. 공주가 키스하면 왕자로 돌아오는 거. 내 답에 너는 상관없다는 듯 대꾸한다. 왕자든 공주든. 난 개구리가 되지 않을 거야. 만약 된다고 해도 자기가 키스하면 돌아올 거야. 나는 그녀에게 키스하려 한다. 안 돼, 입 냄새 나. 너는 내 입술을 막는다. 나 지금 개구리 아니거든? 장난스럽게 덧붙이면서. 피식 나는 웃으며 다시 너에게 다가간다. 이번에는 너도 막지 않는다. 우리는 눈을 감고 키스한다. 혀와 혀가 엉킨다. 달콤한 키스가 이어지는데, 아, 갑자기 숨이 막힐 것 같다. 숨이 막힐 것 같은 키스가 아니라 정말로 숨이 막힌다. 이대로 죽을 것만 같다. 목으로 물이 가득 차올라 코까지 올라오는 기분이다. 입술을 떼고 싶은데 맘대로 되지 않는다. 너와 혀가 엉켜버린 그대로 굳어버린 것 같다. 갑갑하다. 와락, 다 토해내고 싶은데 맘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온 몸이 물에 잠긴 것처럼 한없이 까라진다. 물에 잠긴 것 같은 게 아니라 정말로 잠겨 간다. 침대는 물로 변하고 우리는 그대로 서서히 가라앉는다. 살고 싶은데, 허우적대고 싶은데, 팔다리는 굳은 듯 움직이지 않는다. 심연 속으로 그렇게 떨어진다. 떨어지고 또 떨어져 마침내 바닥에 닿는 순간, 차가움에 몸서리가 처진다. 다시 번쩍. 

 

춥다. 해가 바다로 천천히 떨어지고 있다. 내가 눈을 뜬 곳은 여름 시즌이 끝난 한적한 해수욕장.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본다. 멀리 나란히 앉아 있는 커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모래밭에 누워 그대로 잠이 들었나 보다. 꿈을 꿨고, 꿈속에서 또 꿈을 꿨다. 네가 떠나고 벌써 세 번째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3년 전 우리는 이곳으로 늦은 여름휴가를 왔었다. 해질 무렵, 너는 갑자기 바다로 뛰어 들어갔다. 물장난을 치려는 거라고 생각했다. 늦게 도착해 내일 하기로 한 수영이 갑자기 하고 싶어진 건지도 몰랐다. 넌 원래 즉흥적이었으니까. 하지만 너는 몇 걸음 물에 들어가 나를 부를 거란 예상과 달리, 자꾸만 더 들어갔다. 수영을 하지도 않고 천천히 계속 걸어 들어갔다. 무언가 이상한 것을 감지하고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 이미 너는 머리까지 잠길 정도로 깊이 들어간 상태였다. 너는, 허우적대지 않았다. 수영을 잘 하는 네가 잠수를 하는 거라고, 곧 얼굴을 들이밀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다. 실은 자리에서 일어서는 순간, 이미 불안함을 감지했던 건지도. 아니 바닷가로 여행을 가자고 네가 말했을 때 이미 우리의 이별을 느꼈던 건지도. 그래, 나는 네게 말하진 않았지만 내심 마지막 여행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바다에 가자는 네 말에 그러마 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 너는 바다 속에서 움직임이 없었다. 나의 몸도, 입술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너를 향해 달려가지도,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았다. 잠시 후 두둥실 네 몸이 떠올랐다. 근처에서 튜브를 타고 수영하던 한 사람이 소리를 질렀다. 해양 구조대원이 달려왔다. 먼 곳에 떨어져 있던 나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멍하니 있었다. 영화 속 장면을 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니 그때의 내가 스톱 모션을 걸어 놓은 영화 속 주인공의 모습일지도 몰랐다. 해양 구조대원이 너를 구했다. 나는 겨우 한 걸음씩 떼 해변으로 다가갔다. 반듯이 놓여 있는 너는 잠이라도 자는 것처럼 편안한 모습이었다. 구조대원이 인공호흡을 했다. 내가 키스하면, 너는 깨어날 텐데. 속으로 그런 생각을 띄엄띄엄 했다. 그런 급박한 상황 속에서 어이없게 그런 생각을 했는데, 그나마도 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치매 노인처럼 느렸다. 정신을 차렸을 때나는 앰뷸런스를 타고 구급대원과 함께 병원으로 가고 있었다. 물에 빠진 건 넌데 내 귀에 물이 가득 들어찬 건지 구급대원이 하는 말이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뭐라고 말을 하던 구급대원은 가만히 너의 입가에 씌워져 있던 산소 호흡기를 뗐다.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지? 일단은 병원으로 가겠습니다, 내 귀에 들어온 구급대원의 말은 그게 전부였다. 너는 이미 사망한 것이다. 아닌데, 그럴 리가 없는데. 호흡기를 뗀 네 입은 살짝 벌어져 있었다. 얘 자고 있는 거예요. 원래 잘 때 입 조금 벌리고 자거든요. 나는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는 말을 속으로 띄엄띄엄하면서 너의 입술 사이로 검지를 집어넣었다. 너는 깨어나지 않았다. 나는 보라색이 된 너의 입술에 그제야 입을 맞췄다. 그래도 너는 깨어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너의 죽음은 단순한 물놀이 사고로 뉴스에 짧게 나왔다. 아닌데. 넌 나보다 수영을 잘하는데. 물론 수영을 잘 하는 사람이 사고로 죽을 확률이 높다는 것을 알지만, 너는 신중한 성격이었다. 때때로 즉흥적이긴 했지만 그건 수십 번 수백 번 고민했던 것을 행동으로 옮길 때 그렇게 보일 뿐이란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알고 있었다.

어둠이 내려앉는 바다를 보며 나는 알고 있었어, 라고 중얼댄다. 나는 너를 이해하지 못했다. 한동안 이해한다고 착각했었던 적도 있지만, 실은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과 엄마의 재혼은 그래, 너를 우울하게 만들 수 있었다. 재혼 후 이민을 갔다는 소식 이후 연락이 끊겨 버린 엄마와 바람 피워 낳아 온 자식이라는 오해로 언어폭력을 일삼던 아버지가 네게는 상상도 못할 만큼 고통스러웠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엄마의 연락이 끊긴 지는 오래였고, 괴롭게 만들던 아버지가 죽은 지도 몇 년 이었다. 보험금으로 나온 돈은 꽤 많았고 너는 괜찮은 오피스텔에서 자취하면서 전문대를 걱정 없이 졸업할 수 있었다. 치기공을 전공한 덕에 치과에 취직해 월급도 나보다 많았다. 부모가 없다는 것은 세상에 홀로 남은 것 같은 외로움을 안겨 줄 수도 있지만, 후련함을 줄 수도 있을 터였다. 그리고 네게는 내가 있었다. 너를 사랑하는 내가 있었다. 아, 그래, 너를 떠나려는 내가 있었다. 나는 너를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너를 알 수는 있었다. 네가 어떤 선택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알 수 있었는데, 막지 못했다. 아마 너는 나를 알지 못했지만 나를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너를 떠나려는 나를. 젠장. 네가 바다 속으로 가까이, 더 가까이 걸어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내게 뭐라고 말했던가. 우리의 마지막 대화를 떠올려본다. 의미 없이 요란한 개구리 울음소리처럼 웅웅대는 소리가 떠돌 뿐,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즈음 우리의 대화란 네가 주로 말을 하고 나는 듣는 쪽이었다. 아니 나는 네 말을 듣는 척 적당히 대꾸하면서 다른 생각에 잠겨 있고는 했다. 나는 네가 말하는 동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가. 이직을 준비 중인 상황에서 아버지가 전립선 암 선고를 받았고, 수술에 대한 고민과 수술비에 대한 걱정을 했다. 너와의 결혼은 내년으로 미루자고 말해야지 생각했고, 네가 지난번처럼 울고 화낸다면, 그래 이대로 이별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혹은 이별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너와 정말로 이별하고 싶은 건가, 하는 생각. 사실 산다는 게 너에게만 괴로운 일은 아니었다. 우리 부모님은 이혼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서로 사랑하지도 않았다.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각방을 썼고, 종종 서로 다른 애인을 만난다는 것도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알았다. 여동생은 고등학교 때 가출 해 덜컥 아빠도 모르는 아이를 임신했고, 부모님은 여동생을 받아주지 않았으며, 그녀는 아이를 혼자 낳아 키우고 있었다. 여동생은 나에게만 종종 연락을 해왔는데, 돈이 필요할 때뿐이었다. 나는 기분에 따라 단답형으로 말하거나 때로는 욕설로 대꾸하면서도 그녀가 연락을 해올 때면 꼬박꼬박 돈을 보내주었다. 내게도 네가 있었다. 너를 만나 많이 사랑했다. 하지만 너를 만나는 게 피로해진 것도 사실이었다. 산다는 게 몹시도 피로했고 사랑하기에도 피로했다, 정말 몹시도. 그러니까, 매일 밤 하느님 차라리 내일 아침에 눈뜨지 않게 해주세요, 기도할 만큼. 나도, 너처럼, 피로했다. 

바보. 문득 어떤 목소리가 재생된다. 네 목소리다. 바보, 너는 그 말을 끝으로 바다로 걸어 들어갔다. 장난을 치려던 거였을까, 화를 내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아니면 뭐. 이제 와 다 지난 일, 상관없는 일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온 몸에 모래를 털어내며 너도 털어낸다. 이제 다시는 너의 기일이 되어도 이곳에 오지 않으리라. 바람이 많이 차다. 이제 정말 안 올 거야. 너를 뿌린 바다를 향해 나는 소리 내어 말한다. 차로 돌아가려는데 어디선가 대답처럼 개굴, 소리가 들린다. 소리가 나는 쪽을 돌아보니 발 옆에 개구리 한 마리가 있다. 어디에서 나타난 걸까. 언제 왔던 거지. 아까부터 있었던 건가. 꿈에서 개구리 소리를 들었던 게 너 때문이겠구나, 나는 나름대로 과학적으로 추측해본다. 개구리는 자신을 보는 내 시선을 피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 대답인지 나를 부르는 건지 개굴, 한 번 했던 개구리는 이후로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다. 개구리를 쓰다듬는다. 축축한 촉감이 나쁘지 않다. 개구리는 도망치지 않는다. 대신 개굴, 개굴할 뿐이다. 우는 건지 웃는 건지 알 수 없다. 그 개구리를 멍하니 보던 내게서 비죽 새어나오는 것이 울음인지 웃음인지 나도 모르겠다. 개구리가 뭐라 하는지 나는 알아듣지 못한다. 너의 언어 역시 내게 닿지 못했다. 너의 죽음도 실은 아직까지 내게 닿지 못했다. 아버지가 죽으면 어쩌지? 그때 나는 너에게 말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고민했었다. 말하면 현실이 될 것 같아 두려웠다. 후련할 것 같다는 생각이 비집고 올라오면, 그러한 생각 때문에 정말로 아버지가 죽게 될까 봐 무서웠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무사히 수술을 마친 아버지는 지금도 살아계시다. 나도 살아 있다. 나는 이직하지 않았고, 그 회사를 그 후로도 이 년을 더 다녔다. 작년에야 아는 형의 가게로 옮겨 동업 형태로 일을 하고 있다. 벌이는 나아졌고, 이제 전셋집을 마련할 만큼 돈도 모았다. 얼마 전 처음으로 만난 여동생의 아이는 구김살 없이 잘 자라 있었다. 외삼촌, 감사합니다, 살갑게 인사하며 조카가 전해준 편지는 지금 내 지갑 속에 고이 간직돼 있었다. 너와의 이별을 생각할 정도로 날 힘들게 여겼던 고민들은 어깨에 내려앉은 작은 피로에 불과했다. 지나고 보니 사우나에서 한숨 자고 일어나면 풀릴 정도의 고민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땐, 네가 곁에 있었으니까, 네가 곁에 있어서 피로하다고 여겼었는데, 실은 네가 곁에 있어서 견딜 수 있었던 거였다. 피로는 언제고 쌓이는 법인데, 왜 그렇게 무거웠던 걸까. 왜 너와 이별하면 모든 피로가 풀릴 것처럼 여겼던 걸까. 제일 무거운 게 너라고, 착각하면서. 그래, 어쩌면 그건 맞는지도 모른다. 제일 무거운 건 너였고, 너였으며, 앞으로도 너일 것이다. 나는 네가 자주 내 코를 톡톡 건드렸듯이, 검지로 개구리의 등을 톡톡 건드려본다. 개구리가 기다렸다는 듯 뛰어 간다. 바다 쪽으로, 바다 쪽으로, 가까이. 한눈을 판 건도 아닌데 개구리는 금세 시야에서 사라져 버리고 만다. 어디로 간 것일까, 개구리는. 아니 너는. 아니 그때의 나는. 아니 사랑했던 우리는. 

어쩐지 내년에도 다시 이곳에 올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