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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은, 「단지 조금 이상한」

  • 작성일 2013-09-30
  • 조회수 2,573




강성은, 「단지 조금 이상한」



아직 이름이 없고 증상도 없는

어떤 생각에 빠져 있을 땐 멈춰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면 다시 생동하는 세계와 같은


단지 조금 이상한 병처럼

단지 조금 이상한 잠처럼


마음속에서 발생하는 계절처럼

슬픔도 없이 사라지는


위에서 아래로 읽는 시절을 지나

오른편에서 왼편으로 읽는 시절을 지나

이제는 어느 쪽으로 읽어도 무관해진

노학자의 안경알처럼 맑아진


일요일의 낮잠처럼

단지 조금 고요한

단지 조금 이상한




● 시·낭송_ 강성은 - 1973년 경북 의성 출생. 2005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 『단지 조금 이상한』이 있음.

● 출전_ 『단지 조금 이상한』(문학과지성사)

● 음악_ 최창국

● 애니메이션_ 정정화

● 프로듀서_ 김태형





배달하며


어느 해 겨울 자정 너머 대학로 모퉁이에서 우연히 만나 밤새워 찧고 까불리며 놀았는데 즉흥으로 앞날을 도모했던 바, 그녀는 드럼을 하겠다고 했고 나는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하겠다고 했었습죠. 단지 조금 불량한, 즉흥 청소년들이 되었던 거죠. 그렇게 앞날을 도모했던 시인이 드럼 공부를 마다하고 ‘단지 조금 이상한’ 시를 썼네요.

아무도 넘보지 않는 시간 혹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홀로의 인생을 살고 싶은 것이 예술가의 기본 자세. ‘이름’도 ‘증상’도 없는(없다고들 하는) 인생이지만 현실과 똑 같이 생동하는 인생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에 속하지 않는 계절을 본 적 있는지요? 있지요. 그건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고 부를 수 없는 계절입니다. 인생이라고 부를 수 없는 인생. 그러나 비극적이어서만은 아닌 까닭으로 인생이라고 부를 수 없는 인생이 있지요. 비극이 되비쳐주는 인생이라고 해 둘까요? 문장이 좀 까다롭게 흘러갔나요? 텔리비전 주말 드라마 대사조로 얘기해보면 “내 인생은 인생 같지가 않아. 왜 늘 이 모양일까? 아, 근데 있잖아. 이 지경이 되고 보니 다른, 남들은 모르는 인생이 보여. 누가 그걸 알겠니…….” 뭐 이런 거죠. ‘달통한’ 노학자의 안경알처럼 맑게 그 인생을 보았군요. ‘단지 조금 고요’한 세계일 뿐이죠.


문학집배원 장석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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