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자라 이야기

  • 작성일 2013-12-29
  • 조회수 592

연전에 중국 안후이성安徽省의 성도 허페이合肥로 출장을 갔을 때 일이다.

상담 상대회사 진출구 소유의 5성급 호텔 식당에서 저녁 대접을 받게 되었다.

호텔의 규모가 크고 깨끗했고 식당 분위기도 아주 훌륭했다.

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그들은 진출구 소유의 공장에서 제조 판매한다는 53도짜리 고량주를 박스 채 풀어 헤쳐 놓는 호기를 부렸다.

이어서 음식들이 차려졌다.

입이 짧은 나는 차려지는 음식들의 성분이 우선 궁금했다.

뱀이나 개고기 따위가 아닐까 하는 의심으로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옆자리의 조선족 통역에게 작은 소리로 음식의 재료를 물었다.

그는 자신이 먹어 봐서 알고 있는 음식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알려 줬지만 그 자신도 난생 처음 듣고 보는 음식은 재료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연변 구석의 가난한 농부 집안 출신이 제대로 된 고급 중국 요리를 먹어 본 적이 없으니 처음 보는 고급 요리의 재료를 알 수 없는 건 당연했다.

문제는 이름도 재료도 모르는 요리가 아니다.

처음 보는 팔뚝만한 크기의 생선을 통째로 삶아서 커다란 그릇에 떡 하니 올려 놓고 먹기를 권한다.

통역이 말했다.

“여기서는 귀한 음식은 손님이 먼저 먹는 걸 본 후 그들도 따라 먹습니다.

조금이라도 먼저 드십시오.”

비위가 좋지 않은 내가 생선의 이름이 무언지 민물생선인지 바다생선인지를 빠르게 물어 봤다.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여기는 바다와 먼 곳이니 민물고기일 확률이 많습니다.”

고추 가루는 전혀 사용하지 않은 허연 국물에 반쯤 잠겨있는 생선의 눈깔도 허옇고 큼직한 비늘도 허옇다.

국물 위에 누런 기름도 몇 방울 둥둥 떠 있다.

민물고기라면 더더구나 입에 대지 않는 내게 고역이 아닐 수 없다.

둘러 앉은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며 아주 조금, 정말 먹는 흉내를 내기 위해 최소한의 크기로 생선 배 부위의 살점을 뜯어 냈다.

건너편의 누군가 소리쳤다.

통역이 말했다.

“생선은 머리가 맛있으니 머리 쪽 고기를 드시랍니다.”

나는 억지 웃음을 지어 보이며 고맙지만 사양한다며 몸짓으로 대답했다.

그들이 들어도 알 수 없는 우리 말로

“생선에 머리가 어디 있냐? 대가리다 대가리.”라고 중얼거리며 떼낸 생선을 입에 넣었다.

맛을 보지 않으려 씹지도 않고 생선 살을 꿀꺽 삼키곤 상위에 놓여져 있던 고량주 잔을 들어 얼른 입 안에 털어 넣었다.

이어서 몇 가지 요리가 더 나왔다.

큼직한 그릇 하나가 원형 식탁에 올려 졌고 누군가 식탁을 빙그르르 돌리더니 큰

그릇이 내 앞에 오자 회전을 멈추게 했다.

무심코 그릇 속을 들여다 보던 나는 질색했다.

이 번엔 정말 끔찍한 요리였다..

끔찍하다는 표현은 내 경우에 해당하는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외면하고 싶은 요리였다.

본래 모습이 훼손 되지 않은 손바닥 두 개 보다 더 큰 자라 한 마리가 피부 색깔

만 누리끼리 하게 바뀐 채 그릇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몸통은 누런 국물에 잠겨있고 대가리는 국물 밖에 나와 나를 향해 희멀건 눈깔을

부릅뜨고 있었다.

진저리 치는 내게 통역이 말했다.

“이 자라탕도 귀한 음식이니 손님이 먼저 먹어야 한답니다.”

대 놓고 거절하는 모습을 보일 수가 없어 난감했다.

욕이 나와 참을 수가 없었다.

웃음 진 얼굴을 하고 욕을 쏟아 냈다.

아까 생선 먹을 때처럼 시늉이라도 하고자 자라탕 그릇에 담긴 수저로 자라고기

를 떼내는 시늉을 했다.

고기가 질긴지 쉽게 살점이 떼 지지가 않는다.

희멀건 국물만 한 숟가락 떠내어 앞 공기에 담았다.

“시x 놈들아, 너거나 많이 처 먹어라.”

웃음 띤 얼굴로 욕지기를 중얼거리며 원형 식탁을 빙그르르 돌려 버렸다.

자라가 고개를 끄덕이며 옆자리로 옮겨가고 있었다.

자라탕은 입에 대지도 않았지만 식욕은 싹 가셨다.

상한 비위를 달려려고 애꿎은 고량주만 연거푸 마셔댔다.

나중에 중국 사람들이 정말 술 잘 마시는 사람으로 나를 기억하고 있더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으니 마시긴 많이 마셨던 모양이다.

 

자라탕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릴 때 보고 잡았던 자라 생각이 난다.

외갓집 근처 수로나 웅덩이에는 자라가 많았다.

강에서도 자라를 볼 수 있었다

물결이 잔잔한 강 수면에 자라가 모가지만 쏙 내 놓고 숨쉬고 있는 것을 자주 보

았다.

어른들은 낚시를 하다 자라가 걸리면 재수 없다고 했다.

낚시에 걸린 자라를 떼 내려면 아예 낚시 줄을 끊어야 한다.

자라가 삼킨 낚시를 빼 낼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외가 옆집에 사는 이씨 노인은 자라 생 피를 즐겨 마셨다.

어린 우리들은 이씨 노인이 자라 피를 뽑는 방법이 신기하고 재미 있었다.

자라를 잡게 되면 산채로 노인에게 가져가서 자라 잡는 광경을 구경했다.

노인은 자라를 도마 위에 올려 놓고 자라의 목을 칠 기회를 엿 본다.

겁을 먹은 자라는 목을 몸통 속에 집어 넣고 꼼짝도 하지 않는다.

노인은 몸통 속에 숨긴 자라 대가리 앞쪽에 왼손에 쥐고 있던 강아지 풀을 까불

댄다.

오른손엔 시퍼렇게 날을 세운 부엌칼로 자라 목을 내리 칠 준비를 하고 있다.

노인이 쭈그려 앉아 자라가 목을 내 밀기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들도 덩달아 쭈그

리고 앉아 노인의 행동을 주시한다.

오래 쭈그려 앉기가 힘든 친구가 땅 바닥에 퍼져 앉으면서 꼴깍하고 침을 삼킨다.

아무도 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한참을 기다렸다.

이윽고 자라의 목이 슬그머니 몸통 박으로 빠져 나온다.

눈앞에서 까불대는 강아지 풀에 자라가 호기심을 느낀 것이다.

조심스럽게 빠져 나온 대가리 끝의 입이 순식간에 강아지 풀을 덥석 무는 순간

노인은 재빨리 칼을 내리친다.

단칼에 자라 목이 날아 가 버렸다.

노인은 얼른 사발에다 자라 몸통에서 쏟아지는 피를 받는다.

자라의 크기에 따라 피의 양이 다르겠지만 어떤 놈의 피는 반사발도 넘게 모인다.

피가 담긴 사발에다 미리 준비 해 둔 댓병 막소주를 가득 부어 새끼 손가락으로

휘젓는다.

휘저은 새끼 손가락을 쪽 소리 나게 빨아 먹고 입맛을 다신다.

이어서 사발을 들어 벌컥벌컥 들이키기 시작 한다.

구경하던 우리들 중 대부분 입맛을 다시고 침을 삼킨다.

손등으로 입술을 훔치고 노인은 우리들을 집밖으로 내 몬다 

 

자라는 보리누름에 알을 낳고 그 알은 땅콩을 수확할 즈음에 부화되는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외가에서 읍으로 가는 길목에 장늪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장늪 못 미쳐 세 곳에서 강물이 흘러와 월연정 앞에서 합쳐져 깊은 강이 된다.

세 줄기 강물이 합쳐지기 전의 두 줄기 강물은 넓은 밤 밭을 끼고 있다.

밤밭을 끼고 흐르는 작은 물 줄기를 따라 올라가면 물레방앗간이 나오고 그 위엔 오래된 폐 양어장이 있다.

이 물줄기에는 고기도 많고 자라도 많다.

자라 알 낳는 시기를 보리누름으로 기억 하는 것은 이 물줄기 때문이다.

보리 수확 때면 가정실습이라 하여 며칠 방학을 했던 걸 기억 할 것이다.

농사를 짓던 안 짓던 모두 학교에 가지 않는다.

나는 바로 외가로 달려 간다.

농사 일을 도우러 가는 것이 아니라 시골 생활을 즐기려 가는 것이다.

하루 종일 들로 산으로 돌아 다녀도 간섭하는 사람이 없으니 세상에 그런 천국이 어디 있을까?

싸리로 만든 소쿠리를 이용하여 고기잡이 하는 것도 재미있다.

가끔 물속 풀섶에 숨어있던 물뱀이 혀를 날름대며 소쿠리에 잡히기도 한다.

기겁을 하고 소쿠리를 냅다 팽개치고 물뱀이 소쿠리에서 빠져 나갈 때까지 가슴을 콩닥대며 겁 먹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재미가 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렇게 고기 잡이를 하다가 물레방앗간 아래 밤밭까지 가게 되었다.

여름이 시작되어 날씨는 덥지만 물속에서 놀고 있으니 더운 줄도 모른다.

밤나무 그늘이 강의 반쯤까지 드리워져 있었다.

그림자기 미치지 않은 쪽의 조용히 흐르는 강물 위엔 고루 내려 앉는 햇빛이 수천 수만 개의 보석이 되어 빤짝 대고 있었다.

강물을 따라 깨끗한 모래밭이 눈 가는데 까지 이어져 있었다.

알갱이가 잘고 고운 모래밭에도 햇빛이 조용히 내려 앉아 있었다.

물기에 젖어 있는 강 가장자리 모래 위에 발자국을 찍으며 천천히 걷고 있다가 검은 물체들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것을 발견했다.

처음엔 놀랐으나 이내 자라들이 엉금엉금, 그러나 동화 속의 엉금엉금이 아니라

빠른 속도로 강물로 향해 달려 가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알을 낳으러 모래 밭에 올라 왔다가 예기치 않은 인적에 놀라서 달아나는 자라들을 목격한 나는 흥분이 되었다.

도망 가는 자라를 향해 잽싸게 달려가서 얼른 자라 몸통을 잡고 뒤집은 채 모래 바닥에 내려 놓았다.

한 놈이 모래 바닥에서 버둥대는 동안 다음 놈에게 달려가서 같은 짓을 했다.

혼자서 숨이 찰 정도로 뛰어 다니면서 자라를 잡았지만 자라를 담을 그릇이 없었다.

결국 포기하고 그 중 큰 놈 한 마리만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서 묶었다.

줄기로 뻗어나는 물풀로 얼기 설기 묶은 놈을 외갓집까지 들고 가는 데 애를 먹었다.

자라를 잡은 무용담을 신나게 늘어 놓는 내게 외삼촌이 알 낳으러 올라온 자라를 잡아 오는 놈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고 호통을 치셨다.

당장 풀어 주라고 해서 강으로 가는 길이 한 없이 멀기만 했다.

 

외가의 땅콩 밭은 깨밭 너머에 있다.

땅콩 밭에서 강은 50미터도 더 떨어져 있다.

당콩밭 앞의 강변에는 군데군데 물이 얕은 웅덩이가 산재해 있어 고기도 잡고 놀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장마 때는 땅콩밭 앞에까지 강물이 차고 올라 온다.

어른들이 땅콩 밭에서 수확을 하는 동안 소 풀을 먹이면서 밭 아래 언덕에서 모래 장난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모래를 끌어 모아 길도 닦고 집도 지었다

모자라는 모래를 퍼오려고 언덕 쪽의 모래를 파내다 깜짝 놀랐다.

십리사탕이 소복이 모래 속에 묻혀 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십리사탕을 모른다고 하진 않겠지?

크기는 어른 엄지 손톱 정도에 동그랗고 흰색으로 광채가 나는 사탕.

하도 딱딱하고 단단하여 도저히 깨트려 먹을 수가 없어 입 속에 넣고 빨아 먹으면 사탕이 녹을 때까지 십 리는 갈 수 있다고 해서 갖다 붙인 이름 십리사탕.

십리사탕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십리사탕과 아주 흡사한 것들이 모래 속에 묻혀있다니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신기하여 꼬챙이로 십리사탕을 톡 건드렸더니 어렵소 사탕이 깨지면서 무언가가 고개를 쏘옥 내민다.

들여다 보니 자라 새끼다.

십리사탕이 아니고 자라의 알이었던 거다.

꼬챙이로 건드리는 것 마다 알이 깨지고 새끼들이 꾸역꾸역 기어 나온다.

하나같이 탯줄(?)을 달고 강 쪽으로 향해 기어간다.

한 놈을 집어 방향을 바꿔 놓으면 어느새 강 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기어 간다.

신기하고 재미가 있어서 몇 군데 더 모래를 파 보았다.

한곳의 알은 부화시기가 되지 않았는지 꼬챙이로 건드려도 알이 쉬 깨지지 않아서 다시 모래를 덮어 주었다.

그 날 내가 부화 시킨 자라 새끼는 50마리도 넘었을 거다.

동물들은 태어나면서 제일 처음 보는 것을 엄마로 알고 자란다는데 그 날 깨어 난 50마리에 가까운 자라새끼들 지들 엄마인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자라가 동물인지는 모르겠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