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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의미

  • 작성일 2014-07-03
  • 조회수 509

 

 

온몸이 부서질 듯 아팠다. 불쑥불쑥 열이 오르고 쉽게 불안해졌다. 그런 날들이 며칠이고 이어졌다. 감기 몸살인가 싶어 약국에서 약을 사먹어 봤지만 약을 먹을 때만 잠깐 괜찮아질 뿐이었다. 견디다 못해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소아과 병원을 찾았다. 토요일 낮이라 그런지 사람이 넘쳐났다. 엄마와 아이가 한 쌍으로 붙어있는 모습이 대다수였고, 노인들도 많이 보였다. 나는 입구 쪽에 있는 소파의 끄트머리에 간신히 앉아서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진료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많아도 삼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 의사는 내게 몇 가지 질문을 한 뒤에, 폐경기 증상인 것 같다고 간단하게 말했다. 나는 의사에게 다시 한 번 내 증상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몸의 어디가 어떤 식으로 욱신거리는지, 열이 오르고 불안해지는 주기가 어느 정도인지, 최대한 알아듣기 쉽게 말했다. 내 설명을 듣고 더 신중하게 진단을 내려주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것이 폐경기, 다른 말로는 갱년기 증상이라고 잘라 말했다. 안경 너머 의사의 눈을 마주보며 나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형편없는 성적표를 건네자 웃음을 터뜨리던 반 아이가 떠올랐다.

갱년기가 올 것이라고 짐작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마흔 일곱 살. ‘갱년’이든 ‘폐경’이든 그런 단어가 내 몸에도 붙을 시기라고 생각했다. 옆자리에 앉는 영어 선생에게서 언젠가 들은 바에 의하면, 갱년기 증상은 사람마다 다양하고, 한여름에 추위를 느끼면서 고생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그에 비하면 내 증상은 평범하고 무난한 축에 속하는 편이었다. 병원을 나오는데 순간적으로 어지럼이 일어 계단을 붙잡고 얼마간 서 있어야했다. 몸이 제멋대로 요란을 떨고 있었다.

진료를 마치고 약국에 들러 처방된 약을 받은 뒤에 버스를 탔다. 약속장소가 있는 홍대 근처로 향하는 버스였다.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보니 여섯시가 막 넘어서고 있었다. 나는 습관적으로 너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요 며칠 사이 어느 날보다 또렷하게 떠오르는 네 이름, 네 얼굴, 네 목소리 같은 것들을. 요즘처럼 너를 자주 생각한 적은 없었다. 너를 한 번도 떠올리지 않은 계절도 있었으니 드물게 너를 생각했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그 일이 내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모르면서도 문득 나는 너를 생각하곤 했다.

밴드는 허물어지고 있었다. 아니, 이미 허물어졌는지도 모른다. 밴드의 정신도, 밴드의 젊음도, 밴드의 리듬도. 내 몸의 리듬처럼.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인가 생각해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자연스러운 일이라 쓸쓸하고, 나는 요즘에 그런 일들이 두렵다.

5년 만에 ‘이다지도’의 멤버를 불러 모은 것은 나였다. 모아봤자 모일 수 있는 멤버는 나를 포함해 셋뿐이었다. 원년 멤버에서 종수와 유정을 빼고 기혁과 대원, 나, 이렇게 셋. ‘3’이라는 숫자는 모임이라고 부르기엔 어정쩡했고, 나는 그런 어정쩡함이 우리의 만남을 자꾸 유예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세월이 꽤 흘렀으니 만난다하더라도 ‘밴드’ 말고 다른 공통점이 있을까 걱정했는데, 막상 마주하고 보니 ‘밴드’와는 공통점이 전혀 없는 인간들만 모아 놓은 것 같았다.

이다지도. 너는 그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을까. 이다지도는 내가 다니던 대학에서 1학년 학생끼리 모여 만든 아마추어 밴드였다. 종수가 드럼을 치고, 대원은 베이스를, 기혁은 기타를, 유정은 키보드 연주했다. 그리고 나는 노래를 했다. 이다지도가 만들어지고 첫 연습을 했던 여름날을 떠올려 보아도 방음이 잘 안 되는 연습실이 무척이나 더웠다는 것 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27년 전의 일이다. 그 해에 우리는 모두 스무 살이었다. 정말로 그 어린 나이에 노래를 만들고, 규칙적으로 연습을 하고, 할 수 있다면 어디에서든지 공연을 하는, 그런 생산 적인 일을 했던 걸까? 그 당시 만났던 사람들의 이름이나 얼굴처럼, 이제는 희미하다. 지나간 계절처럼 흘러가고 다시 보면 까마득하기만 한 것들.

카페 안은 조금 덥다. 에어컨이 사람의 열기를 다 감당하지 못해서인지 내 몸에만 열이 올라 그런 것인지 확실히 알 수 없다. 카페의 실내 인테리어는 어수선하지만 오히려 그런 분위기가 자연스러운 곳이다. 우리 셋은 낮게 쌓은 층에 놓인 테이블 중 하나에 자리를 잡았다. 무대에서 가깝지도 그렇다고 너무 멀지도 않은 애매한 위치,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 곳이 적당하다고 느꼈다. 카페를 들어서면서부터 기혁은 약간 위축되어 보였다. 왁자지껄한 분위기와 젊은 애들이 내뿜는 열기가 편하지 않은 것 같았다. 반면에 대원은 무심하게 안경을 벗어 셔츠로 닦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핀 조명 두개가 무대를 밝히고 있는 아담한 무대 앞에 무리지어 선 채로 노래를 듣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 가려서 무대 위가 완전히 보이지는 않지만 천장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 덕에 노래는 무리 없이 들린다. 공연은 사회자 없이 가수들이 올라와 스스로를 소개한 뒤에 노래 한두 곡을 부르고 내려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대부분 느리고 단순한 멜로디여서 오늘 밤만 지나면 완전히 잊어버릴 것 같다.

기혁은 유정이 아들의 유학을 위해 호주로 떠났다고, 그녀의 근황 말한다. 이 나라는 영어가 문제라고 푸념하는 기혁은 예전보다 몸집이 작아지고 더 마른 듯하다. 그는 20년 가까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대원은 알고 있었다는 듯 별 반응이 없다. 내가 어떤 사업이냐고 묻자 치킨 체인점이라고 약간은 쑥스러워하며 말한다. 나는 웃으며 대원에게로 고개를 돌린다. 대원은 자식의 태도와 자식의 교육 같은 것들을 말하며 목덜미가 붉어진다. 그런 그를 보며 밴드는 확실히 허물어지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얼린 잔에 맥주를 따르면서, 대원은 ‘이다지도’의 노래들에 대해서 말한다. 이제 와서 보니 ‘이다지도 외로운’이라는 노래의 타이틀이 너무 청승맞은 것 같다고, 그래서 밴드의 수명이 길지 않았던 것 같다고. 기혁은 그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린다. 누가 그 이름을 지었는지 기억하느냐고 대원이 내게 묻는다.

“이다지도 외로운?”

“응. 이다지도 외로운.”

박종수, 라고 나는 간단하게 대답한다. 아 종수, 라며 대원이 고개를 끄덕인다.

밴드 ‘이다지도’가 부른 자작곡은 총 세곡이었다. ‘이다지도 외로운’과 ‘우리 별 지구’, ‘반하지 말자’. 세 곡 모두 종수가 만든 것이었다. 이다지도 외로운. 기혁이 다시 한 번 나직이 말한다. 나도 속으로 그 이름을 한번 중얼거린다.

대원은 스물 한 살 되던 겨울에 떠났던 강릉 여행에서 기혁이 저질렀던 행동에 대해 이야기한다. 짝사랑 하던 애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얼음장 같은 파도를 몰고 오던 경포대 해수욕장으로 미친 듯이 뛰어들었던 일을 마치 어제의 일처럼 말한다. 눈물까지 나는 모양인지 안경을 벗고 손등으로 눈가를 훔친다. 나는 안경을 벗은 대원의 맨얼굴에서 그의 이십대 초반 얼굴을 본다. 그 얼굴 때문에 나도 대원처럼 고개를 젖히고 웃음을 터뜨린다. 놀라워서, 그리고 반가워서.

술을 섞어 연거푸 마신 기혁이 풀린 눈을 하고서 종수에 대해 입을 연다. 이제 와서 말인데, 하고 운을 떼더니 잠깐을 주저한다. 나는 다음 말이 나올 때까지 기혁의 붉은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박종수. 박종수가 죽은 게 나는 자꾸 찝찝하단 말이야.”

대원이 나를 본다. 나는 어색하게 미소 짓는다.

“뭐가 찝찝한데?”

내가 기혁에게 되묻는다.

“음주운전에다가 가로수를 들이받고 그렇게 허무하게. 그 녀석 답지 않잖아.”

“그래서?”

“응?”

“그게 뭐가 찝찝하다는 건데?”

“그러니까…….”

기혁은 말을 더 이상 잇지 않고 다시 잔을 든다. 대원은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다. 나는 빈 잔을 내려다보다가 무대로 시선을 옮긴다. 공연은 계속 진행되고 있다. 여자 두 명이 무대로 올라와 밴드 이름과 노래 제목을 말하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단발을 한 여자는 키보드를 두드리고, 머리를 가슴까지 기른 여자는 노래를 부른다. 저 애들은 몇 살 쯤 됐을까. 막연한 궁금증이 인다. 아마도 스물 언저리일 것이다. 나는 여자의 목소리에 집중한다. 속삭이듯 가볍고 담담한 목소리가 가게 안을 떠다닌다.

 

*

 

너의 노래를 처음 들었던 순간의 기분을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그때 나는 카페에 앉아 교육 잡지에 기고할 글을 손보는 중이었다. 카페는 노랫소리가 크지 않고 가사가 없는 음악을 주로 틀어주는 곳이었다. 작업에 딱히 열중한 건 아니었는데도 나는 두 시간 가까운 시간동안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들을 의식하지 못했다. 그것이 내가 그 카페를 선택한 이유였다. 그런데 어째서 그 노래가 나오는 순간에만 스피커에 귀를 기울였을까? 나는 노래를 듣자마자 알아차렸다. 분명히 내가 알고 있는 그 노래였다. 잊은 줄 알았는데 잊지 않고 있었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카운터에 다가가 종업원 남자에게 지금 들리는 노래의 제목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노트북화면을 들여다보더니 자장가요, 라고 말했다. 나는 믿기지 않아서 재차 물었다. 그는 다시 한 번 자장가요, 라고 말했다. 여전히 내 표정이 일그러져있자 그는 포스트잇에 무언가를 적어서 내 쪽으로 건넸다. 노란 포스트잇에는 ‘자장가-YouZian'이라는 글자가 적혀있었다. 그는 한글로 된 것이 제목이고 알파벳으로 된 것이 가수의 이름이라고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나는 대답도 하지 않고 포스트잇을 뚫어질듯 바라보았다.

자리로 돌아와서 노트북에 검색사이트를 열고 'YouZian'을 검색했다. 가장 위쪽에 젊어 보이는 남자의 사진 하나가 떴고, 그 옆으로 그를 소개하는 단어들이 나열되어있었다. ‘멤버’란에는 ‘유지안(보컬, 기타, 작곡)’이라는 이름 하나가, ‘데뷔’란에는 ‘2012년 싱글앨범 [모두가너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나는 ‘유지안’이라는 이름을 클릭해보았다. 그러자 사진만 남기고 정보 부분의 단어들이 조금 변경됐다. ‘소속그룹’이 ‘YouZian'이고 ‘출생’이 ‘1990년 7월 14일’라는 정보가 보였다. 나는 화면에 박힌 조그만 사진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억지로 흥분을 가라앉히며 ‘자장가 youzian'을 검색했다.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블로그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노트북에 이어폰을 꽂고 재생 버튼을 클릭했다. 그사이 나도 모르게 숨을 참고 있었는지, 노래가 재생되자 깊은 숨이 나왔다. 조금 전에 들었던 바로 그 노래가 또렷하게 귀를 파고들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몰랐다. 어디서부터 생각해야할지도 몰랐다. 분명한 사실은 그 노래가 확실하다는 것이었다. 눈물이 손등으로 후드득 떨어졌다.

나는 종종 그 카세트테이프를 생각했다. 종수의 장례가 끝나고 며칠 뒤에 그 카세트테이프를 발견했다. 그것은 자취방 책상의 첫째 서랍 속에 아무렇게나 놓여있었다. 종수가 살아 있었다면 그냥 지나쳐버렸을 수도 있었지만, 종수가 떠난 후로는 그와 관련된 모든 게 눈에 밟혔다. 종수가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양말, 군데군데 모서리가 접혀서 가볍게 부푼 책, 기타코드가 두서없이 적힌 메모지, 담배 한 개비가 남아있는 ‘솔’의 껍질 같은 것들은 주인 없는 방안 곳곳에서 시치미를 떼며 버티고 있었다.

카세트테이프의 네임지 위에 적혀있던 ‘자장가’라는 글씨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글씨는 정성스럽게 써서 오히려 한글을 막 배운 어린애가 쓴 것처럼 보였다. 나는 카세트에 테이프를 넣고 재생시켰다. 밀폐지 않은 곳에서 녹음했는지, 잡음이 얕게 깔려있었다. 느린 박자의 기타 소리 위로 허밍이 들렸다. 종수의 목소리였다. 노래는 삼분정도의 길이였을 것이다. 노래가 시작되고 끝나는 그 삼분이라는 시간동안 나는 종수가 죽었다는 사실을 조금이나마 실감했다. 불 꺼진 방에 노래를 틀어놓고 누워서 먹지 같은 천장을 바라보았다. 말라버린 줄 알았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쩐지 그 노래가 나에게 종수가 마지막으로 남긴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종수와 내가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자란 곳은 대부분의 사람이 어업에 종사하는 서해안의 작은 섬이었다. 그는 열한 살이 되던 해에 내가 살던 섬으로 들어왔다. 종수와 그의 어머니, 누나, 남동생. 이렇게 네 식구가 포구 근처에 방을 얻었다. 종수와 그보다 두 살 어린 남동생이 한꺼번에 우리 학교로 전학해왔다. 전교생이 50명도 안 되는 작은 학교였다. 중학교까지 우리는 같은 학교에서 공부했다. 나는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섬 근처의 소도시로 유학을 갔다. 종수도,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서부터 고향 남자애들과는 자연스레 연락이 끊겼다. 종수와 내가 멀어진 것도 그 무렵부터였다. 나는 동향 간의 유대는 보험 삼아 제쳐두고, 도시 생활의 적응과 입시공부에 온 에너지를 쏟았다. 길에서 우연히 마주치면 서로를 알면서도 스쳐 지났다.

열여덟 살 되던 겨울이었을 것이다. 종수 어머니의 부고를 전해 들었다.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던 친구 몇이 고향으로 조문을 떠난다고 했다. 나는 입시공부를 핑계로 기숙사에 남았다. 종수와는 이미 멀어졌고, 그의 어머니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종수의 어머니는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다 빙판에서 미끄러졌다고 했다. 장례에 참여하지 않은 죄책감 때문이었는지, 한동안 빙판길을 걸을 때면 종수가 생각났다. 종수의 어머니가 아니라 종수의 얼굴이 불쑥 떠올랐다.

종수와 다시 연락이 닿은 건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을 앞두고서였다. 나는 서울에 있는 한 사립대학의 사범대에 진학했다. 대학 생활뿐만 아니라 모든 게 시시했고 그런 시시함이 평생 계속되는 것은 아닐까 안달 나던 때였다. 1학기를 간신히 끝마칠 무렵, 나는 붉은색 매직으로 ‘밴드 부원 모집’이라고 적힌 벽보 아래에서 종수의 이름을 발견했다. ‘박종수 수학과 85학번.’ 유일하게 동향의 끈을 붙잡고 있던 친구에게서 종수와 내가 같은 대학교에 입학했다는 소식을 듣긴 했지만, 막상 그의 이름을 보자 기분이 묘했다. 푸른색 매직으로 적힌 종수의 이름 옆에 ‘얼굴 보고 이야기합시다, 6월 X일 토요일 2시, 종탑에서’라는 문장이 적혀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전하는 안부 인사를 받기라도 한 듯, 나는 그 앞을 모른 척 지날 수 없었다.

 

*

 

대원은 아까부터 직장인 밴드에 대해서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다.

“어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직장인 밴드들을 봤는데 그걸 보니까 ‘이다지도’가 생각나는 거야. 다시 해볼까 생각도 잠깐 했고. 근데 그걸 본 다음날 장수정 너한테서 만나자고 연락이 온 거지. 소름이 쫙 돋더라. 그때 생각했어.”

대원은 술기운에 흥분해서 말한다.

“이건 운명이 아니냐?”

운명이라는 말에 나는 피식 웃는다.

“웃지만 말고, 우리 다시 뭉쳐보자. 이제 이 자식이 드럼치고.”

대원은 아까부터 졸고 있는 기혁을 팔꿈치로 찌른다. 기혁은 별다른 반응이 없다.

“그건 그렇고 갑자기 우리는 왜 불러낸 거냐? 밴드를 다시 하고 싶어서는 아닐 테고.”

“그냥 못 본지 꽤 오래됐으니까.”

“이상하다, 너?”

“뭐가 이상해? 오랜만에 친구들 얼굴 한 번 보고 싶다는 건데.”

“장수정 네가 그러는 건 이상한거야. 종수 그렇게 되고 난 이후로는 우리가 널 불렀지, 네가 먼저 우릴 만나자고 한 적은 없었거든.”

나는 멋쩍게 웃으며 시선을 무대로 옮긴다. 그러다가 의자에 기대어 졸고 있는 기혁에게로 눈길을 돌린다. 문득 유진이가 생각난다.

“유진이는 잘 자란대?”

내가 묻는다. 유진은 기혁이 이혼 후에 혼자서 키우고 있는 딸의 이름이다. 대원은 졸고 있는 기혁을 한 번 쳐다보고는 대답한다.

“응. 벌써 열 세 살이란다. 가끔씩 연락 와. 혼자서 딸내미 키우기 너무 힘들다고.”

나는 유진의 나이를 듣고 깜짝 놀란다. 그 조그맣던 애가 어딘가에서 그렇게 열심히 자라고 있었다니. 눈동자가 유난히 까만 것이 기혁을 닮았던 유진의 얼굴을 기억해 보려하지만 쉽지 않다. 고등학교에 근무하며 하루하루를 고등학생 애들과 지지고 볶고, 때로 그들에게 시달리다 보면 내가 평생 감당해야 할 인간은 오로지 십대 끝자락의 애들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기혁은 유진에게 어떤 부모일까. 그는 좋은 아버지일까. 그런 생각을 하는데 불쑥 팔뚝에 열이 화끈하게 오르는 걸 느낀다. 나는 대원이 보지 못하게 팔을 차가운 맥주잔에 슬며시 가져다 댄다.

 

*

 

유현영. 너는 그녀를 그 이름보다는 어머니 혹은 엄마라고 부르며 자랐을 것이다. 그 이름을 처음 들은 건 종수의 장례식장에서였다. 현영은 장례식장 바닥에 멍하니 앉아 있는 내 앞에 다가와 앉았다. 주근깨가 많은 얼굴이었다. 그녀의 두 눈은 원래 얼굴이 어떤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퉁퉁 부어있었다.

“수정 언니?”

현영은 내 얼굴과 이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누군지 떠올리려 해도 나는 그녀를 알지 못했다.

“저는 종수 샘한테서 과외 받았던…….”

“아.”

나는 종수의 말에 의해 알고 있는 정보들을 올렸다. 공부는 잘하지 못하면서 꿈이 큰 아이. 종수에게 농도 짙은 애정 묘사가 있는 소설책을 선물한 아이. 나는 그녀를 그 정도밖에 알고 있지 못했다.

“유현영이에요.”

그녀가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종수가 1년 넘게 가르쳤지만, 종수에게선 늘 ‘그 애’라고 전해 들었을 뿐 유현영이라는 이름을 들은 적은 없었다. 나는 그녀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한 것과 마찬가지로 와주어서 고맙다고 말했다. 그 말에 현영의 두 눈에 눈물이 순식간에 차올랐다. 내게 무언가 말하고 싶어 보였지만 주저하는 것 같았다. 결국 현영은 한참동안 고개만 숙이고 있다가 아무 말 없이 장례식장을 떠났다.

그날이 내가 처음으로 네 엄마를 만난 날이었다. 그 때는 알지 못했다. 네 엄마가 뱃속에 너를 가졌다는 사실을. 그렇다면 그 때를 너와의 첫 만남이라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현영이 너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종수의 장례가 끝나고 2주쯤 지난 후였다. 어디에서 주소를 알아냈는지 현영이 내 자취방 문 앞에 서 있었다. 나는 그녀를 방안에 들였다. 방 한 가운데 엉거주춤 앉으며 그녀는 장례식장에서 내게 하지 못한 말이 있다고 했다. 앳된 느낌이 현영의 온 몸에서 묻어나왔다. 그제야 눈에 연하게 진 속 쌍꺼풀이 보였다. 눈이 예쁜 아이였다. 하지 못한 말이 무엇이냐고 내가 물었다. 그녀는 좁은 방 곳곳에 시선을 두며 머뭇대다가 별안간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당황했지만 장례식장에서부터 직감하고 있었다. 그녀가 종수를 진정으로 마음에 담고 있다는 걸.

“미안해요.”

현영은 흐느끼며 미안하다는 말을 뭉개어 내뱉었다.

“뭐가요?”

“나는 종수 샘이 언니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나는 현영이 무슨 말을 하나 싶어 혼란스러웠다. 스무 살이지만 아직 소녀티를 못 벗은 그녀가 하는 말은 드라마 여주인공의 대사처럼 어색한 느낌을 주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나는 잘 모르겠는데요.”

내가 설명을 요구해도 현영은 눈이 벌게질 때까지 한동안 울기만 했다. 그러다 못할 말을 내뱉듯 눈을 질끈 감고 입을 열었다.

“제가… 종수 샘 아기를 가졌어요.”

나는 치맛자락을 꽉 쥐었다.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현영은 미안해요, 미안해요, 계속 그렇게만 말했다. 무엇이 미안하다는 건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뱃속에 너를 가진 것이 미안한 일인지, 종수가 죽은 것이 미안한 일인지.

현영의 입에서 요약되어 나오는 이야기 속의 종수는 내가 아는 그가 아니었다. 종수에게 그런 일들이 일어났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현영은 모든 게 자신의 탓이라 했다. 종수의 아이를, 그러니까 너를 갖게 된 것도 모두 자신 때문이라 했다. 네 외조부와 외조모가 될 사람들이 현영의 임신 사실을 알았고, 그들에게 종수는 끊임없이 시달렸다고 했다. 시달렸다는 대목에 대해 더 묻고 싶었으나, 묻지 않았다. 한참동안 침묵만이 이어졌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가슴이 너무 뛰었다. 나는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아기는 지워요.”

무심코 내뱉은 말이었다. 지독한 말이었다고, 지금도 나는 생각한다. 현영은 빨갛게 충혈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두려움에 가득 찬 눈이었다.

나는 그 지독한 말에 진 빚을 갚아야 했다. 아직도 그 빚을 갚고 있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

 

‘이다지도’가 공식적으로 허물어지기 시작한 것은 엄밀히 말하면 종수가 죽고 난 직후라고 해야 할 것이다. 종수의 사고 이후로 자연스레 멈추어진 밴드 연습은 두 달이 넘도록 재개되지 않았다. 기혁과 대원은 차일피일 미루던 군에 입대했고 유정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나는 방문을 잠그고 전화선을 뽑아버렸다. 커튼을 치고 어둡고 어둡기만 한 방에 틀어박혀 움직이지 않았다.

잠이 오지 않을 때에는 한 가지 물음에 집중했다. 박종수는 왜 죽었는가라는 물음. 그 답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술에 잔뜩 취해서 선배의 프라이드를 몰고 가다가 가로수를 들이 받았다.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답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종수가 죽은 이유라 생각할 수 없었다. 다른 이유가 필요했다. 박종수는 왜 죽었는지, 누군가가 납득할만한 이유를 가지고 내 방으로 오기 전까지 방문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내게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비밀이 하나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알리지 않았다기보다 알릴 수 없는 것이었다. 두려움 때문이라 생각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렇게 단순한 이유는 아니었다고 여기고 있다.

종수가 없는 방에서, 잠들지 못하는 밤이면 나는 자취방에 하나밖에 없는 창문을 열고 목이 터져라 외치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다.

나는 박종수가 싫다.

나는 박종수가 보고 싶다.

나는 박종수의 아기를 가졌다.

…….

나는, 박종수를, 모르겠다.

마음속으로 수차례 외쳐도 매번 입 밖으로 나오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욕지거리뿐이었다.

 

*

 

불규칙한 간격으로 현영이 내방에 찾아왔다. 아무와도 만나지 않던 시기였다. 현영은 내 방에 들어와 아무 말도 없이 책을 읽다가 가기도 하고, 사과 몇 개를 가져와서 깎아 먹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나는 현영과 내가 나눈 대화란 셀 수 있을 만큼 적었다. 그 편이 오히려 더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녀는 쉴 곳이 필요해 보였다. 그러나 그곳이 어째서 내 방인지 알 수 없었다. 내게 어떤 유대감을 느꼈는지도, 아니면 죄책감을 느꼈는지도……. 어쨌거나 나는 그녀를 쫓아낼 수 없었다.

나는 현영에게 끝끝내 말하지 못했다. 나에게도 있다고. 종수의 아이를 나또한 가졌다고. 그녀에게 그런 농담 같은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다. 만약 현영이 그 말을 들었다면 어떻게 반응했을까, 가끔 그런 게 궁금해질 때가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먼저 나의 임신을 말했다면, 그녀는 내게 네 존재를 알려주었을까 아니면 나와 마찬가지로 숨겼을까.

나는 종수의 사십구재에 가지 못했다. 불면의 밤이 이어졌는데, 이상하게도 그 날만 깊은 잠에 빠진 것이었다. 반복되던 꿈도 꾸지 않은 단잠이었다. 잠에서 깨어 시계를 보니 오후 세 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이불 위에 앉아서 정신을 차리고 있는데, 누군가 내 방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자 현영이 이전보다 생기가 도는 얼굴을 하고 서 있었다. 그녀는 떠날 거라고 말했다. 남쪽 지방으로 내려가서 너를 낳고 기르며 살 거라고 했다. 왠지 그녀의 배가 이전보다 조금 더 부풀어 보였다. 기분 탓일지도 몰랐다. 나는 종수의 사십구재에 대해 묻지 않았다. 말하지 않기는 그녀 또한 마찬가지였다. 현영은 짐을 싸야 한다며, 다른 때와 달리 금세 내 방을 떠났다. 그것이 진짜 마지막일 줄은 몰랐다. 그 후로 그녀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현영이 그렇게 떠나고 며칠이 흘러서야, 나는 카세트테이프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됐다. 종수의 자장가가 들어있는 그 카세트테이프가 사라진 것이었다. 정신없이 방 이곳저곳을 한참동안 뒤지다가 불현듯 깨달았다. 현영이 훔쳐갔다. 그녀에게는 한 번도 들려준 적이 없었는데 그녀는 어떻게 카세트테이프의 존재를 알았을까. 그것에 대해서 종수에게 들은 말이 있었나.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가슴 깊은데서 분노가 치밀었다. 목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크고 길게.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 없었다. 너만 가진 게 아니다. 나도 있다. 나도 종수의 아이를 가졌다. 박종수의 아이를……. 그런 지독한 적의가 어디서 나왔는지 몰랐다. 어쩌면 그녀를 만나는 동안 몸 어딘가에서 줄곧 자라오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시간이 꽤 흐른 뒤에야, 그 카세트테이프를 현영에게 선물했다면 어땠을까하고 생각한 적 있었다. 결국에 그녀의 손으로 넘어갔을 바에, 그 편이 훨씬 좋았을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다시 이십삼 년 전으로 돌아간대도 그럴 수 없었을 거라는 걸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

 

카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던 네 노래를 처음 듣고 난 뒤로 며칠을 무슨 정신으로 보냈는지 모르겠다. 수업을 하다가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맥락을 놓치고 말이 끊겨 진땀을 흘리기도 했다. 당장에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막연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건 의미 없는 조급함이었다. 내가 할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나는 너를 알지만, 나는 네게 아무 것도 아니었다. 너에게 나를, 장수정을, 무어라 설명할 수 있을까. 그건 너무 어려운 문제였다.

출퇴근길에 운전을 할 때도, 주말을 침대위에 가만히 누워 흘려보낼 때도 나는 그 노래만 들었다. 네 앨범에서 오로지 그 노래만 반복 재생했다. 노래 이름은 ‘자장가’지만 그걸 듣는 동안 나는 전혀 잠들 수 없었다. 시간이 날 때면 검색 창에 네 이름을 검색해 보기도 했다. 동명이인에 관한 정보들을 제하고 나면, 몇 안 되는 정보들이 나열됐다. 그것들을 하나씩 보던 중에 인디 예술을 다룬 잡지의 블로그에서 네 인터뷰를 찾을 수 있었다. 인터뷰 내용에는 ‘자장가’에 대한 대목도 짧게 들어있었다.

 

*‘자장가’라는 노래에는 재밌는 이야기가 숨어있다고?

-재미있는지는 모르겠지만,(웃음) 나의 아버지와 관련된 노래다.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을까?

-사실 이 노래는 내가 작곡한 것이 아니고, 나의 아버지가 내 나이 즈음에 작곡한 노래다.

*와, 멋지다. 아버지께서 앨범을 보시고 무척 뿌듯해 하셨겠다.

-아쉽지만 그러지 못했다. 아버지는 내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돌아가셨다. 아버지 유품 중에 카세트테이프가 하나 있었다. 기타 반주에 아버지의 목소리가 허밍으로 깔려있는 노래가 들어있었다. 어머니는 내가 어릴 때 그 노래를 듣고 잠들곤 했다고 하시더라. 노래 제목도 앨범에 실린 것과 똑같이 ‘자장가’였다. 그 노래를 듣고 내가 가사를 붙였다.

*그러고 보니 ‘자장가’가 나머지 노래들과 분위기가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하다. 감성적인 느낌이 많이 묻어나는 것 같고. 작사할 때 특별한 마음가짐 같은 게 있었나?

-글쎄……. 제목이 ‘자장가’이고, 아버지가 나를 위해 만든 노래니까 최대한 아버지의 입장에서 쓰고 싶었다. 결과적으로는 실패한 것 같다. 아버지의 마음을 잘 모르겠더라……. 아마도 아직 아들이 없어서인 것 같다.(웃음)

 

네 말이 틀렸다고 할 수 없었다. 네 말은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 노래는 정말 너를 위해 만들어졌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갖고 싶었다. 그 노래를, 종수의 ‘자장가’를 갖고 싶었다.

 

*

 

종수가 떠난 다음 해, 그러니까 1990년 2월, 나는 학교에 휴학원서를 제출했다. 이별의 고통 때문이 아니라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임신한 몸으로 학교를 계속해서 다닐 수는 없었다. 아기를 가진 몸을 이끌고 고향집으로 내려갈 엄두도 나지 않았다. 나는 도무지 어찌해야할지 몰랐다. 어느 누구에게도 물을 수 없었다. 학교 동기들은 내가 고향에 내려간 줄, 고향에선 내가 서울에 남아 공부를 하는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아는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좁은 방안에 스스로를 가둔 채 매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그 방안에서 또 다시 나에 의해 유폐되었던 아기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나는 매순간 스스로를 멍청이라고 부르면서 빠른 속도로 멍청해졌다.

처음에는 마음의 고통이 육체에까지 스미는 줄 알았다. 배신감이든 그리움이든 두려움이든, 어떤 좋지 못한 감정이 몸에까지 고통을 주고 있다고. 어느 새벽, 아랫배의 통증을 견디다 못해 간신히 119를 부르고 정신을 잃었다. 간간히 정신이 돌아올 때마다 귀를 울리는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는 너무도 압도적이었다.

그날 아기는 떠났다. 그런 식으로 쉽게 사라질 줄 몰랐다. 종수가 떠났을 때와 다르게 온몸으로 감각할 수 있는 공허가 버티고 있었다. 눈앞을 가로막고 있는 벽에 간신히 구멍을 내었는데, 그 구멍 뒤에 존재하는 또 다른 벽을 본 것 같았다고 말하면, 너는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까? 그 시절을 어떻게 견디었는지 지금으로선 이해할 수 없다. 문득 현영과 네가 떠올랐다. 남쪽 어딘가에서 지내고 있을 두 사람의 모습이. 그리고 생각했다. 억울하다. 억울하다……. 그 심정을 표현할 말이 있다는 사실이 그 시절 나를 위로하는 몇 안 되는 것들 중에 하나였다.

 

*

 

네 이름을 검색하고 인터넷을 뒤지다가 네 트위터 주소를 알게 됐다. 이런 저런 일상과 추상적인 고민들이 오랜 간격을 두고 올라왔다. 새로운 글이 올라오지 않을 때도 나는 종종 그곳에 들어가 지나간 글들을 다시 읽곤 했다. 그걸 바탕으로 그릴 수 있는 네 삶은 한정적이고, 그건 어쩐지 가짜 같았다.

그러다 지난주에, 오늘 홍대근처 카페에서 네 공연이 있다는 새로운 글이 올라왔다. 실은 네 노래를 들은 이후로 너를 한번이라도 보고 싶었다. 사진으로가 아니라, 눈앞에서 움직이는 너를 보고 싶었다. 가슴이 무척 뛰었다. 너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그렇게 가슴 뛰게 할 줄은 몰랐다. 하지만 나는 자꾸 주저했다. 도저히 혼자서는 너를 보러 갈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그리하여 기혁과 대원에게 오랜만에 저녁을 먹자고 연락한 것이었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알겠다는 답장 메시지가 빠른 속도로 도착했다.

카페 안은 다시 어수선해진다. 또 하나의 무대가 끝났다. 다음 무대를 준비하는 동안 사람들은 자리를 옮기고, 술을 따르고, 이야기를 나누고, 웃는다. 카페 입구에서 가지고 온 리플렛에 따르면 네 공연순서는 가장 마지막이다. 나는 리플렛 가장 아래쪽에 위치한 ‘YouZian'이라는 이름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카페 안을 둘러본다. 어딘가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을 너를 찾아보지만 네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무대 뒤에 대기할 공간이 따로 있을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종수가 떠나고, 현영이 떠나고, 뱃속의 아기마저 떠난 후에 이어진 지겨운 내 삶에 대해서 말해 볼까. 현실에 느리게 적응하고, 빠르게 좌절하고, 이전보다 더 느리게 적응하던 삶에 대해서. 아무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늘 목구멍 가까이에 두고 살아야 하는 삶에 대해서. 아무도 사랑할 수 없었던 삶에 대해서. 너에게 그 말을 전할 필요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

 

내게 남아있는 종수의 마지막 모습은 그의 어두운 옆얼굴이다. 동아리방에 종수를 앉혀두고 내가 아기를 가졌다는 걸 말하자 종수는 어색하게 웃었다. 화를 내지도, 기뻐하지도 않았다. 충분히 예상한 일이었다. 네가 원하지 않으면 낳지 않을게. 나는 그렇게 말했던가. 그런 말을 듣고도 종수는 한참을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종수는 선배들과 약속이 있다고 말을 얼버무리며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그날 새벽. 종수가 내 방에 찾아왔다. 문을 여는 순간 술 냄새가 훅 끼쳤다. 나는 문 쪽을 등지고 돌아누웠다. 종수는 내가 덮고 있는 이불의 귀퉁이를 파고들었다. 그의 차가운 손이 내 팔을 스쳤다. 종수는 거칠게 숨을 마시고 내뱉었다. 그 숨소리만 빼면 방안은 어둠만큼 새카맣게 조용했다.

“수정아, 내가 우리 아버지 얘기 한적 있었어?”

종수가 잠꼬대처럼 늘어지는 말투로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상관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몇 달 전이었어. 여름이었는데, 아버지한테 전화가 오더니 나랑 어딜 좀 같이 가자며 나를 집밖으로 불러냈어. 밖으로 나가보니깐 아버지 손에 수박 한 덩이가 들려있더라. 엄청나게 큰 수박. 아버지는 별말 없이 걷기 시작했어. 나는 어디 가는 줄 묻지도 않고, 커다란 수박을 보는 데만 골똘해있었거든. 버스를 타더니 아버지가 이야기 하나를 해주더라. 내가 일곱 살, 누나가 아홉 살, 동생이 세 살이던 시절의 이야기. 무척이나 추웠던 그 해 겨울에 우리 집에 있던 연탄보일러가 고장 났었대. 종종 고장이 나던게 이제는 고칠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었나봐. 우리 다섯 식구가 지내던 방바닥이 순식간에 차가워졌고 아버지는 방이 얼어버리기 전에 새 보일러를 사야만 했겠지. 그런데 아버지는 그 보일러 새로 살돈이 없었던거야. 돈을 빌려야 했는데, 어려운 시절이니까 쉽지는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정말이지 쉽지가 않아서 아버지는 수첩을 몇 번이고 뒤적이다가 한동안 공장에서 같이 일했던 선배한테까지 전화를 걸었던 거야.

그러니까 나를 밖으로 불러낸 그 여름날,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보일러를 살 돈을 빌려주었던 선배 아저씨네 집에 수박을 선물하러 갔던 거였어. 그 집의 모습은 잘 기억 나지 않는데, 그 선배 아저씨의 아내가 잘라준 수박의 맛은 기억에 남아있어. 그 집을 찾아 가는 동안 여름 날씨에 한참이나 시달려서 미지근해진 수박의 맛 말이야. 나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그 미지근한 수박이 떠오른다? 수정아 그러니까…….”

종수는 한동안 말을 잇지 않았다. 나는 침묵을 참지 못하고 종수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의 부풀어 올랐다 가라앉았기를 반복하는 그의 가슴과, 그의 옆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한참만에야 종수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수정아, 나도 우리 아버지 같은 아버지가 될 수 있을까?”

어둠을 깨는 듯 또렷한 목소리였다.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종수의 마지막 모습이다. 그 방, 내가 그 후로도 한참을 머물렀던 그 방, 지금도 그곳에 가면 어둡던 종수의 그 옆모습이 무늬처럼 박혀있을 것 같다.

 

*

 

네가 무대에 오른다. 조금 긴장한 얼굴이다. 원래의 얼굴이 그럴지도 모른다. 나는 무심코 너에게서 종수의 흔적을 찾다가, 이내 그만 둔다. 네가 어색한 웃음을 슬쩍 흘린다. 나무로 만든 의자에 앉아 마이크의 높이를 조절한다. 자세를 바로잡고 고개 숙여 인사를 하자 박수소리가 커졌다가 금세 잦아든다.

“유지안입니다.”

네가 너의 이름을 말한다. 유지안. 나도 모르게 그 말을 따라한다. 너는 오늘밤을 잘 보내라는 의미로 자장가를 불러주겠다고 한다. 무대 앞쪽에서 어떤 여자의 환호성이 들린다. 아마도 너의 팬인 듯하다. 사람들이 크게 웃음을 터뜨린다. 너도 따라 웃는다. 시작하겠습니다, 네가 말하고 기타줄 위로 손을 스친다. 여섯 개의 음이 이어지고 얼마간 정적이 흐른다.

기타 선율로 된 익숙한 멜로디가 얼마간 이어진 뒤에 ‘조용한 밤이야’로 노래는 시작된다. 이어서 너의 목소리는 ‘나쁜 기억에 아파하지 않았으면, 숱한 고민에 밤새우지 않았으면’을 거쳐 ‘자장, 자장, 너에게 자장’으로 반복되는 후렴구까지 천천히 다다른다. 나는 어느새 외우게 된 가사를 몰래 중얼거린다.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고요하다.

 

나는 너에게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내가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그 전에, 내가 어떻게 해서 너의 노래를 듣게 되었는지를. 이십칠 년 전 겨울, 내가 어떻게 해서 종수의 카세트테이프를 발견하게 되었는지를. 그때의 내가 종수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그리고, 이 여름동안 네 노래가 어떤 식으로 나를 위로해 주었는지를.

그건 어쩌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는 계속해서, 너에게 이야기 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