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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빠는 여고생?

  • 작성일 2014-07-15
  • 조회수 414

 

  어느날 엄마가 "아빠가 있으면 좋겠니?" 하고 얘기를 꺼내, 동생은 어 엄마 누구 만나는 사람 생긴 거야─? 누구누구? 하고 호들갑을 떨었다. 새아빠라. 아빠에 대해서는 전혀 기억이 없고, 여태까지도 우리 셋이서 잘 살아 왔지만, 텔레비전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는 가족들을 보고 있을 때면 한편으로는 역시 한번쯤 아버지란 걸 가져 보아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있고, 아빠가 있고, 같이 놀이공원에 놀러가거나 영화를 보러 가는 광경을 떠올리자 어쩐지 간지러워져 웃음이 날 것 같았다. 이전에 내 의향과는 별개로 엄마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최대한 존중해 주고자 생각하고, 이제 우리도 하나하나 챙겨줘야 하는 어린애에서는 벗어났기에, 엄마도 이제 엄마 개인의 삶을 누려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만, 그 데려온 새아빠라는 게 나랑 비슷한 나이의 여자애인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던 것이다. 주말, 집에 돌아온 엄마가 여자애를 대동하고 왔을 때는 누구지, 혹시 동생 친구인가, 싶었는데 동생도 모르는 눈치라, "그쪽은 누구야?" 하고 내가 묻자 엄마는 호호 웃으면서 "소파에 좀 앉을래? 할 얘기가 있어." 라고 말해서, 나와 동생은 순순히 소파에 앉았다.

  엄마랑 여자애가 바닥에 앉아, 나는 여자애를 보았다. 흰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나이는 역시 나랑 비슷한 정도로, 그렇게까지 미녀는 아니더라도 정돈된 얼굴에 피부가 깨끗했다. 눈이 마주치자 나한테 살짝 웃어줘서 나도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내 "새아빠란다." 하고 엄마가 말했다. 응? 무슨 말?, 하고 생각하고 있으려니 여자애가 "그, 만나서 반가워. 얘기는 많이 들었어. 정희 씨랑은 곧 결혼하기로 했어. 너희한테 먼저 얘기해 주지 못해서 미안해." 그렇게 말하고선 얼굴을 붉혔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옆에 앉은 동생을 보았지만 동생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아, 나는 콜록 헛기침을 한두번 하고서, 입을 열었다.

  "…어, 아니, 그, 이사람, …농담이지?"

  "아니, 정말이란다." 하고 엄마가 대답했지만, 아무래도 농담으로밖에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하도 지적할 게 많아서 뭐부터 얘기를 꺼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농담하지 말고. 누구야?" 내가 조금 더 큰 목소리로 말하자 이번에는 엄마가 진지한 목소리로 "농담 아니야. 이쪽은 리나 씨. 너희 새아빠란다." 하고 딱 잘라 말해, 나는 답답해서 소리쳤다. "농담하지 말라고!" 아니, 그러니까, 이사람, 여자잖아? 나이도 아무리 많아봐야 스무 살 정도로밖에 안 보이잖아? 법적으로도 결혼 못 하잖아? 내가 큰 소리를 내자 정적 가운데 동생도 어머니도 리나라는 여자도 나를 쳐다보고 있어서, 나는 진정하고 잠깐 생각했다. 냉정히 생각해 보면 생긴 것도 목소리도 여자고 치마를 입고 있지만, 남자일 수도 있는 것이다. 나이도 스물만 넘는다면 성인이고, 힘들겠지만 이해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그냥 좀 여성스러운 사람일지도 모르겠다고 일단락짓고 "저기, 리나 씨라고 했죠? 자기소개좀 해 줄 수 있을까요?" 하고 침착하게 얘기하자, "응, 이리나라고 해. 나이는 열일곱 살이고 성남여고에 다니고 있어." 라고 대답해서, 나는 화분을 집어던졌다. "장난하지 말라고 했잖아!" 다들 놀란 듯 움츠러들었다. 화분은 펠트 재질이고 꽃은 조화라서 깨지거나 하지는 않고, 바닥에 부딪히며 푹신 소리를 냈다. "언니, 그렇게 흥분하지 말고……." "지금 흥분 안 하게 생겼냐고!" 동생이 짜증나게 굴어서 이번에는 방석을 집어던졌다. 그러려니 왠지 더 짜증이 나서 곰인형, 종이 연필꽂이, 쇼핑백, 뜨개질용 털실, 주위에 있는 걸 잡히는대로 집어던지고, 그러자 엄마도 "뭐 하는 거니!" 하고 소리치고, 여자는 어쩔줄 몰라서 당황하고 있고, 나는 더 흥분해서 엄마를 한대 치려다가 그럴 수는 없어서 앉아있는 여자를 발로 찼다. 여자는 옆구리를 맞고 비명을 지르며 고꾸라졌다. 그쯤 되니 엄마도 동생도 내 팔을 잡고서 말려, 나는 다시 소리쳤다.

  "새아빠니 뭐니 헛소리 하지 말고, 누군지 말하라고 했잖아! 이딴 거 하나도 재미 없거든?"

  이리나라는 여자는 바닥에서 히끅 소리를 내면서 움찔거렸다. 엄마가 나를 붙잡고서 "정말이야. 왜 믿어주질 못하는 거니……." 하고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말해, 나는 일단 거칠어진 숨을 골랐다.

  "장난치는 게 아니라고?"

  내가 말하자 옆구리를 부여잡고 있던 이리나가 바닥에 널브러진 채로 "…미안해. 미안해……." 하고 훌쩍이면서 중얼거렸다. 나는 머릿속이 뒤죽박죽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 뒤 이리나는 엄마의 배웅을 받으며 돌아가고, 나는 엄마랑은 아무 얘기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방으로 들어갔다. 물어보고 싶은 게 한가득이었지만, 그런 짓을 해 버린 이상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야만 하고, 지금은 냉정히 얘기할 기분이 들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 동생에게 물었다.

  "너, 어떻게 생각해?"

  "뭐가?"

  "뭐냐니. 뭐가 또 있어? 그 여자 얘기지."

  동생은 잠깐 생각하고서, "잘 모르겠어." 하고 대답했다. 그야 당연하다. 더 물을 의미도 없는 것 같아, 나는 거기서 말을 끊었다.

  하지만 다음날 집에 돌아오자 거실 소파에 이리나가 앉아 있고, 엄마랑 동생이 사과를 먹으면서 이리나랑 같이 웃고 떠들고 있어서, 나는 다시 화가 솟구쳐 사과 접시를 엎으면서 난동을 부렸다.

  "그렇게 리나 씨가 마음에 안 드는 거니?"

  엄마가 말해, 나는 "당연한 거 아냐?" 하고 기가 차 대답했다. "애초 말이 된다고 생각해? 이 사람, 여자잖아? 열일곱 살이면 나보다 한 살 어리고. 나는 엄마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하지만 사랑하는걸."

  엄마의 그 말에, 나는 뭐라고 얘기를 이을 수 없었다. 나는 그대로 멈춰서 엄마와 이리나를 바라보았다. 머릿속에 여러가지 생각이 소용돌이쳤지만, 나는 뭐라고도 말하지 못하고, 현관을 가리키면서 이리나에게 "…나가." 라고 한 마디를 할 뿐이었다.

 

 

  "너는 왜 그 여자랑 히히덕거리는데?"

  엄마랑은 오늘도 아무 얘기도 하지 못했다. 방 문을 닫고 동생에게 말했다. 동생은 잠깐 머뭇했지만, "그치만, 리나 씨, 좋은 사람이고." 하고 대답했다.

  "뭐, 새아빠로 인정이라도 하겠다는 소리야?"

  "엄마만 좋다면 상관 없는 거잖아."

  또다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이녀석 지금 진심으로 얘기하는 건가?

  "아니, 그래도, 여자잖아?"

  "나는 잘 모르겠지만, 동성끼리도 좋아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

  "나이도 나보다 어리잖아. 너 언니보다 어린 아빠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거야?"

  "사랑에 나이는 관계 없지 않을까?"

  "미성년자면 원조교제라고."

  "합의하에는 상관없어."

  "법적으로 결혼도 할 수 없어."

  "혼인신고는 하지 않고 사실혼 관계로만 있는 부부도 많이 있는걸."

  "아빠면 돈을 벌어와야 하잖아? 취직도 못 해."

  "엄마가 벌고 있으니까 괜찮아."

  "그것만이 아니라……" 계속 얘기하려 했을 때, "언니." 하고 동생이 중간에 말을 끊었다.

  "나도 언니가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있어. 그치만, 엄마가 좋다면 그걸로 된거 아닐까? 엄마도엄마이기 이전에 한 명의 사람이잖아. 여태 아빠도 없이 우리를 키우느라 하고싶은 것도 많이 참았을 거야. 한번쯤은 우리도 엄마를 배려해 주고, 이해해 줘도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말하는 동생에게 짜증이 나서, "네가 뭘 안다고 나한테 설교야?" 하고 소리치면서 뺨을 때렸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저질러버린 거고, 이대로 미안하다고 하기는 무안하고, 어쨌든 화나는 건 사실이라 나는 그대로 밖으로 나가 버렸다. 밤이 되어 주위는 깜깜했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길을 걸었다.

  엄마는, 동성애자였던 건가? 그럼 아빠는 뭐지? 진심으로 그 여자를 좋아하는 건가? 만일 그런 나이대의 여자애를 좋아하는 거라면, 나나 동생도 그런 눈으로 보고 있던 건가?

  떠오르는 게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이렇게 혼자 생각하고 있을 게 아니라 엄마한테 직접 물으면 되는 일이다.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질문에 긍정을 받아도 전혀 기쁘지 않다. 차라리 아무것도 묻지 않는 게 마음이 편하다.

  재혼은 엄마의 일이니까, 물론 엄마의 의향이 가장 우선시되어야 할 사항이다. 동생의 말을 나는 이해할 수 있지만,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연애라면 몰라도 결혼은 가족 전부의 문제고, 나에게는 아빠가 생기는 것의 문제다. 평범한 아저씨라면 마음에는 안 들더라도 응원해줄 수 있다. 그래도 여고생은……, 아니, 나는 왜 이런 걸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거지?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것이다. 세상에 이런 고민거리를 가진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렇지만 이건 현실에 일어나고 있는 일이고, 내가 맞닥뜨리고 있는 실재하는 문제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도 정말로 일어나는 이상, 나는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학교에서 친구랑 이야기하던 중, 문득 물었다.

  "너, 만약에 너네 부모님중에 하나가 동성애자라서 엄마가 여자를 새아빠라면서 데려오면 어떻게 할래?"

  친구는 잠깐 나를 빤히 보고서는 푸 웃음을 터트렸다. "와하하, 무슨 소리야? 에이, 안 되지 그야. 그럼 내가 집 나간다."

  "역시 그렇지."

  "뭘 그런 걸 물어?"

  "아니, 뭐. 아무것도 아니야."

  그래, 잠깐 내가 이상한 건가 착각이 들었지만, 상식적으로 내가 맞는 것이다. 그런 게 용납될 리가 없다. 엄마랑 동생이 이상한 거고, 나는 정상이다.

  나는 친구를 바라보았다. 엄마는 여자애를 상대로 이성적인 끌림을 느끼는 건가? 나는 친구나 주위의 여자애를 봐도 그런 식의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여자랑 그런 걸 한다고 생각하자 구역질이 났다. 남자랑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별로 기분좋지는 않지만, 그래도 동성끼리는 이해할 수 없다. 나이도 마찬가지다. 엄마와 이리나의 나이차는 나로 치환해 보면 연령으로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고, 비유하자면 열 살도 안 된 어린애를 상대로 사랑을 느끼는 거나 마찬가지다. 정말 엄마는 나를 보면서도 이런 생각을 하는 건가? 엄마는 변태였던 건가? 그래서 우리를 키웠던 건가? 엄마는 여태까지 교과서에나 나올 것 같은 좋은 엄마였고, 상냥하고, 나나 동생에게도 잘 대해 주었다. 헌신적으로 우리를 키운 것도 사실이다. 난폭하게 대할 때도 있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존경하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엄마가 내 또래의 여자애를 좋아한다고 생각하자 역겨움이 올라왔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 했을 때, 이리나가 교문 앞에 서 있었다. 다른 학교 교복을 입고 있었다.

  이리나는 나를 알아보고 저기, 하고 다가왔지만, 나는 무시했다. 보고도 못본 척 성큼성큼 걸어갔다. 이리나는 따라오지 않았다.

  다음날에도, 다다음날에도, 이리나는 매일마다 학교 앞에서 기다렸다. 나는 마찬가지로 무시했다. 얘기를 한다고 해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물어보려면 물어볼 수 있는 게 한가득이었지만, 이리나랑 진지하게 이야기하려 하는 순간 조금이라도 이리나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싫었다. 며칠이 지나자 학교에 가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되고, 전에는 빨리 끝나기를 바라마지 않던 수업이 하교시간이 가까워지면 초조해졌다. 결국 나는 교문 앞에 있는 이리나에게 가서, "너, 지금 뭐 하자는 거야?" 하고 소리쳤다. 주위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렸다.

  이리나는 당황한 낌새였지만, 이내 "얘기를 좀 하고 싶어." 하고 차분하게 말했다.

  "너랑 할 얘기같은 거 없거든."

  "나는 있어."

  이리나가 단호하게 말하는 게 짜증나서, "뭐, 한대 더 맞고 싶냐?" 하고 이리나의 멱살을 잡았다. 이리나는 나보다 손가락 하나정도 더 키가 작았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보자 체구도 나에 비해 정말로 작다는 게 느껴졌다.

  "…계속 이렇게 피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이리나는 목소리를 떨면서도, 나를 곧장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그날, 결국 이리나와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리나를 밀치고서 나는 그대로 집으로 돌아갔다.

  아아, 짜증나는 일 투성이다. 그녀석 때문에 쓸데없이 신경이 곤두서고, 엄마한테도 동생한테도 난폭하게 대하고, 너무 현실감이 없는 얘기라 더 짜증이 솟구친다. 여기에 신경쓰느라 남자친구랑도 이전에 싸운 이래 계속 연락하지 않고 있다.

  엄마도 엄마지만, 그녀석은 대체 왜 엄마를 좋아한다는 거지? 내가 말하기는 뭐하지만 나이든 아줌마고, 별로 예쁜 것도 아니다. 결혼을 할 수 없으니까 재산을 노리는 것도 아니다.

  정말로 엄마랑 이리나는 서로 좋아하는 사이인 건가?

  나는 수업을 제끼고 이리나가 다닌다는 성남여고로 갔다. 정말 다니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교복을 입고 있었고, 거기밖에 찾을 곳은 없다. 1학년 교실을 돌면서 이리나를 찾았다. 복도를 걷고 있자 다른 학교 교복을 입고 있어서인지 지나가는 애들이 힐끔힐끔 쳐다봤다. 좀 돌아다니다 보니 이리나를 아는 애가 있어서, 나는 교실로 찾아갔다. 이리나는 자리에 앉아 다른 여자애들이랑 이야기하고 있었다. 다가가자 이리나는 나를 보고서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와."

  손목을 잡고 밖으로 끌고나가자 여기저기서 뭐야 뭐 하고 수군대는 소리가 들리고, 눈길이 집중됐다. 이리나는 얘기하고 있던 애들에게 미안해, 잠깐 다녀올게, 하고 말하고서 나를 따라왔다.

  "네 쪽에서 나를 찾아올 줄은 몰랐어……."

  학교 뒤편으로 가자 이리나가 쑥쓰러운 듯이 말했다. 나는 그런 녀석이 짜증나서, 이리나를 벽에 확 밀쳤다. 한쪽 팔을 이리나의 얼굴 옆 벽에 짚었다.

  "하나만 물어보자. 너, …우리 엄마를 좋아한다느니 하는 거, …진심이야?"

  이리나는 우물쭈물하면서도 작게 끄덕였다. "응."

  "왜?"

  "어?"

  "왜 그런 아줌마를 좋아한다는 건데?"

  "그야 정희 씨, 굉장히 착하고, 좋은 사람이잖아. 그런 점이 좋았어. 어, 그리고, 어머니한테 아줌마라느니 그런 식으로 얘기하는 건 좋지 않아."

  "지금 내가 너한테 설교나 듣자고 온 줄 알아?"

  내가 발로 벽을 차면서 위협하자 이리나는 움츠러들었다. 나는 말을 이었다. "뭐, 됐어. 그러니까 간단히 말해서, 엄마는 너같은 어린 여자애나 좋아하는 변태고, 너는 나이든 아줌마를 좋아하는 변태라 그거지? 아, 그거 진짜 잘 어울리네. 비슷한 부류끼리 끼리끼리 어울리고."

  "사람이 누군가를 좋아하는 데 자격같은 건 필요하지 않아."

  "그럼 너는 당당하다 그거야?"

  "당당해."

  "그럼 지금 너네 반으로 가서, 학교 애들 전부한테 네가 우리 엄마랑 사귀고 있다고 얘기할 수 있어? 그럼 나도 인정해 줄게."

  "…그건……." 이리나는 말을 흐렸다.

  "거 봐. 말 못 하잖아. 당당하면 할 수 있는 거잖아? 너도 잘못됐다고 생각하니까 못하는 거잖아?"

  이리나는 잠깐 있다가, "그야, 너처럼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이리나는 울먹이기 시작했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이해해 줬으면 하는 게 아니야. 성별도, 나이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는 건 알고 있어. 물론 그러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어. 하지만, 적어도, 너희들만은 이해해 줬으면 싶을 뿐이야. 정희 씨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이리나는 거기까지 말하고서 울기 시작해, 나는 "뭘 잘했다고 우는데?" 하고 말했지만, 이건 그냥 트집이다. 뭔가 잘한 일이 있으면 울 필요도 없고, 우는 데 조건같은 건 필요하지 않다. 이렇게 울고 있는 이리나를 보려니 진심으로 엄마를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지만, 내가 제일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것정도는 당연한 거 아닌가? 차라리 생판 남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기더라도, 당사자인 나로서는 그런 식으로 간단하게 넘길 수 있는 게 아닌 것이다.

  "애초 너, 그냥 착각하고 있는 거 아냐? 엄마가 좀 친절하게 대해 줬다고 해서 그걸 좋아하는 거라고 믿어버린 거 아니냐고. 사춘기에 그런 식으로 자기 정체성에 대해 착란을 겪는 건 흔히 있는 일이잖아? 우리 엄마랑 결혼하더라도, 물론 결혼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나중에 네가 착각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아 버리면, 그때는 엄마는 어떻게 되는 건데?"

  "……." 이리나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시선을 내렸다. 분위기에 타, 나는 말을 이었다.

  "어? 대답해 보라고. 어린애의 잠깐의 변덕에 어울려줄 만큼, 우리 가족들은 한가하지 않아."

  이리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눈동자 너머에 내 얼굴이 비쳤다. 훌쩍이는 소리만이 들리고, 이리나는 입을 열었다.

  "…나도, 노력했어."

  이리나는 눈물을 닦고서, 말했다. "나도 부끄럽지 않은 게 아냐.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도는 알고 있어. 너한테 발로 차였을 때도 정말로 아팠고, 집에 찾아갔을 때도 정말정말 큰 용기가 필요했어. 상대도 해 주지 않는 너를 만나려고 매일 너희 학교 앞에서 기다렸어. 우리의 관계를,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않아도 상관 없어. 받아들이지 않아도 상관 없어. 하지만 너희만은 알아 주었으면 했어. 너는 그 사람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사람이고, 너한테도 마찬가지일 테니까."

  "왜 나한테 그렇게까지 하는 건데? 그러는 의미가 있어? "

  "그야……."

  "뭐?"

  이리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야, 가족인걸."

  그렇게 말하고, 이리나는 달려가 버렸다. 나는 학교 뒤편에 혼자 남아, 당분간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집에 돌아가던 도중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남자친구였다. 전화를 받자 지난번에는 미안했다고, 다시 한번 잘 해보자고 사과를 해 왔다. 가만 남자친구의 입발린 소리를 듣고 있다가, 나는 말했다.

  "너, 나 좋아하는 거 맞아?"

  "어? 당연하지."

  "그럼 만약 내가 남자면 어떻게 할 거야?"

  "뭐?"

  "그러니까, 사실 내가 남자라고 하면, 그래도 나랑 계속 사귈 수 있어?"

  "갑자기 무슨 말이야?"

  "질문에 대답해."

  "그야 사귈 수는 없지. 아니, 그런 얘기는 됐고……"

  "그래. 알겠어. 우리 잘 안 맞는 거 같다. 이만 헤어지자."

  나는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곧바로 다시 전화가 걸려와서 전원을 꺼 버렸다.

  애초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대체 뭐지? 이전 과학 수업에서 들은 적이 있다. 사랑이란 건 뇌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의 작용이고, 곧잘 이야기하는 여성성이나 남성성같은 것도 모두 호르몬의 분비에 따라 생기는 차이라고. 익숙한 사회적 관념들이 결국 화학물질이 어떻게, 얼마나 분비되냐에 따른 결과라면, 거기에 의미는 있는 건가? 고대인들이 기상현상이나 병을 신의 노여움이라고 여긴 것처럼, 그저 잘 모르는 현상에 대한 의미부여에 지나지 않는 거 아닌가?

  나는 엄마가 엄마랑 비슷한 나이대의 남자랑 결혼하는 걸 바라는 게 아니다. 별로 번듯한 아빠가 생겼으면 싶지도 않다. 그저 엄마가 행복해 졌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엄마는 엄마 나름대로의 사상이 있고, 기호가 있고, 정의가 있는 것으로, 엄마가 정말로 이리나를 좋아한다면, 나는 엄마의 마음에까지는 관여할 수 없다.

 

 

  이후로도 이리나는 계속해서 찾아왔다. 엄마도 나를 설득했다. 동생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이리나를 잘 따랐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알 수 없다.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고, 해 줄수도 없다. 내가 결론을 지어야만 하는 문제다.

  얼마 후, 이리나는 집에서 같이 살게 됐다. 그 소식을 듣고서 나는 반대하지 않고 그냥 집을 나가 버렸다. 이제 뭐라고 하기에도 질린 것이다. 어차피 이리나가 정말 내 아빠가 될 일 따위는 없으니까, 좋을대로 두기로 했다.

  내 생일을 며칠 앞두고 이리나가 내 자취방에 찾아와 "뭐 가지고 싶은 거 있어?" 하고 물어, 나는 말했다.

  "근데 너, 나보다 어린 주제에 왜 나한테 계속 반말이야?"

  "그야 내가 아빠니까." 하고 이리나는 헤 웃었다. "아, 아빠라고는 해도, 너희가 이해하기 쉽도록 편의상 아빠라고 하는 것뿐이니까, 정말로 나를 아빠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어."

  그럼 뭐라는 건데?

  엄마랑 이리나는 진지하게 결혼을 생각하고 있던 모양으로, 정말 혼인신고를 하거나 식장에서 식을 올릴 수는 없으니까, 가족들만 있는 자리에서 형식상의 혼례를 계획하고 있었다. 내가 집을 나간 이후 동생이 "언니도 엄마랑은 연을 끊을 생각인 것 같은데, 그냥 결혼해 버려도 상관 없지 않아?" 하고 말한 모양이지만, 이리나가 이건 가족끼리의 일이니까 같은 가족인 내게도 허락을 구해야 한다면서 계속 나를 만나러 왔다.

  어쨌든 받아들일 수 없는 건 받아들일 수 없는 거다. 나보다 어린 여자애가 새아빠라는 건 배려라든가 이해의 범주를 넘어섰다.

  내 생일날, 케이크를 가지고 엄마랑 이리나랑 동생이 찾아왔다. 케이크를 나눠먹고 노래를 불러 주었다.

  그래도, 가족인 것이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더라도, 이성적으로는 아니지만 나는 가족으로서 엄마를 좋아하기에, 엄마를 이해하도록 노력해 보기로 했다. 이해할 수 없다면 어쩔 수 없는 거지만, 그래도 시도는 해 보기로 한다. 하나를 이해하면 다른 것도 이해해 보도록 노력한다. 이리나가 내 아빠가 되는 건 거부하더라도, 엄마는 내가 거부해도 내 엄마인 건 변하지 않으니까.

  "이거 선물이야." 하고 이리나가 상자를 건넸다. 내가 전에 받고 싶다고 했던 곰인형이었다. 나는 잠깐 곰돌이를 보고서, "고마워." 하고 작게 말했다.

  언젠가, 엄마를 이해하게 되면, 이리나도 같은 가족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있을지 어떨지 모르는 먼 훗날의 일이고, 어쨌든 아직은 아니다. 엄마를 이해하든, 이해할 수 없든, 애초 정답이 있는 문제가 아니고,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니니까, 나는 나름의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 그 답이 어떤 형태이든, 일단은 나도 엄마나 이리나가 나에 대해 노력하는 만큼은 노력해 보자고, 그렇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