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우수작(2014.5.19~5.31) 2편 및 월간 우수작
- 작성일 2014-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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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우수작(2014.5.19~5.31) 2편 및 월간 우수작
케르겔렌군도, 「맹신의 계절」
릴리스, 「조르바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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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르겔렌군도님의 「맹신의 계절」을 새겨 읽습니다. 종교와 사회를 구분하고 양자 모두에 해당하는 비뚤어진 연대를 비판하는 글입니다. 그 중심에는 ‘세월호 참사’가 놓여 있습니다. 구성도 표현도 논리도 참된 마음도 모두 훌륭하다고 하기에 민망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그렇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새로운 연대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기심과 부정과 더러운 욕망에 사로잡힌 비뚤어진 연대가 아니지요. “당장 눈앞의 이익에 급급하여 자기만을 챙기려할 경우 공동체 구성원들이 공멸의 길을 갈 수 있지만, 남을 배려하는 마음과 희생정신으로 연대할 경우 그에 속한 개개인은 물론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증진한다”는 말씀을 뼈아프게 새겨 봅니다. 앞으로 좋은 글로 계속 뵙기를 바랍니다.
위나님의 「진안 마이산 탑사와 부안 직소폭포를 다녀와서」는 짧은 여행기입니다. 마이산과 부안은 많은 분들이 다녀가시는 곳이지요. 마인산에 돌탑을 쌓은 이와 그곳에 찾아오는 모든 이가 함께 어떤 소원을 빌고 있습니다. 그 소원을 품은 마음이 행복의 근원이 되겠네요. 직소폭로를 찾아가는 길도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을 부풀어 오르게 했던 마음속의 물줄기”가 있으니 아무리 힘든 길도 견뎌낼 수 있겠지요. “결과보다는 그 과정에서 만족과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여행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건이 보이지 않네요. 평범한 경험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예사롭지 않은 경험이 중요합니다. 한 문장을 한 문단으로 삼지 마시고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문단을 구성해보세요.
벨.님의 「떡을 먹는 사람은 어떻게 잔인한가?」을 읽고 나니 “세상은 이런 방식으로 알게 모르게 늘 어렵다”는 말씀에 도달하게 되네요. “좀 더 차원 높은 복잡성에 이르면 무슨 말을 할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러 있을 것”입니다. 결론은 “참다운 삶의 방식”이란 보이지 않는 내면을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편견도 오해도 다툼도 극복해나갈 수 있겠지요. 다만 떡과 고기의 비교가 아니라 보다 납득하기 쉬운 예를 들어주셨으면 좋았을 듯하네요. 결론은 충분히 이해하겠는데, 그 예가 어쩐지 착 달라붙지 않습니다. 육식을 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낱알을 거두어야 하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니까요. 어쩌면 애매한 논리가 될 수 있을 텐데, 그보다는 확연한 증례가 필요한 글입니다.
릴리스님의 「조르바에게」를 읽는 동안 마치 두 사람이 가까이 앉아서 이야기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자유를 누렸던 조르바에게서 어느덧 화자는 해방의 기쁨을 찾아냅니다. 이성에 갇혀 있는 한 존재를 그 굴레로부터 풀어놓게 된 것이지요. 하지만 조르바와 카잔차키스를 오갈 뿐입니다. “아슬아슬하게” 말이지요. 그래서 “가끔씩 당신 생각을 할 것이며 아주 잊지는 못할 겁니다.”라고 말하게 됩니다. 조르바의 자유는 우리에게 그대로 그 자유를 누리게 하지는 못하지만, 우리로 하여금 어떤 자유의 기억을 갖게 합니다. 편지글 형식의 글이라서 그런지 글에 담긴 마음에 진정성이 느껴집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기경님의 「압바, 힌내세여」를 읽다가 저도 똑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어서 빙그레 미소를 지어 봅니다. 제 아이는 욕조에 똥을 싸고서 그 똥이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었지요. 그래도 아이들이 겁이 많지는 않은 듯합니다. 아빠를 위해 노래도 불러줄 줄 알고, 기특하네요. 그런 마음이 한 가족을 이루는 것이겠지요. 힘내세요. 남의 아이들은 쑥쑥 큰다고 하지요. 그래도 분명 어느 순간에 쑥쑥 커 있더군요.
배수진님의 「향기를 찾아서」는 이미 ‘향기’를 먼저 베풀고 있는 내용입니다. 쇼윈도에 붙여 놓은 시가 지나가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것 같습니다. 담배꽁초에 관한 시도 재밌지만, 골목에 좌판을 펼친 할머니에 관한 시는 다시 한번 골목 구석에 앉아 있는 할머니를 보게 만들 것 같습니다. 이미 이렇게 그 골목에 향기를 먼저 만들어내고 계셨네요. 이웃들과 인사라도 나눌 겸 찾아간 아귀찜 명가에 관한 내용을 보면 자신이 먼저 골목에 향기를 피운 것을 슬쩍 부끄러운 듯 감추는 효과를 주고 있네요. 글쓴이의 겸양이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뭔가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골목입니다.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새로 이사하신 동네의 이야기가 점점 더 기다려집니다.
둠벙에빠진달님의 「인쇄체 글씨」를 읽다 보면 눈앞에 그 글씨체가 보이는 듯합니다. 한 자 한 자 정성껏 쓰는 것이 좋은 글씨체의 비결이었네요. 그런데 마지막 문단은 조금 엉뚱합니다. 그 문단 대신 타자기와 컴퓨터로 이어지는 동안 쓰지 않았던 글씨체를 다시 만나게 된 이야기가 이어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주제는 역시나 ‘글씨체’니까요.
이은서님의 「14번 벤치」는 소설인데, 소설의 매력이 있다면 일단 흥미롭게 읽힌다는 것이겠지요. “지루한 속편”이 되지 않도록 독자의 시선을 잡아둘 수 있는 이야기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박완서님의 「남겨진 자의 기억」은 이전에 보았던 타짜 아버지에게 부치는 편지입니다. 너무나 절절합니다. 아버지의 삶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그 가족이라는 굴레로부터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아버지가 어느 순간 타짜의 삶을 정리하고 본래의 일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면 아마도 원망은 그 끝을 보지 못했을 것 같네요. 아니 그래도 아버지를 그리워할 수밖에 없겠지요. 누구보다도 가족을 위해 헌신한 분이었으니까요. 이제 화자는 아버지를 이해하려고 합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던 아버지를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그 그리움과 사랑의 언어는 절절합니다.
서리님의 「나의 봄」은 어떤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간 일이 그리 행복한 이유 때문은 아니었나 봅니다. 스스로 열매를 맺은 배나무를 보며 어떤 각오를 새기고 있습니다. 그 뜻이 곧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번 글에서는 군데군데 정갈하지 않은 문장들이 보이네요. “뭉크의 절규처럼”과 같은 클리셰는 산문에서도 피하는 게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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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우수작
배수진, 「향기를 찾아서」
2주를 묶어서 심사평을 올립니다. 주간 우수작은 2편입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주간 우수작 외에 월간 우수작을 별도로 뽑았습니다. 은근한 삶의 향기가 있는 글입니다.
좋은 글 읽게 되어 고맙습니다. 무더운 여름, 건강하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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