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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약

  • 작성일 2014-10-07
  • 조회수 16,427

자살약

 

1

아무런 고통과 비난, 죄책감 없이 세상을 떠날 수 있다면, 당신은 지금 죽으시겠습니까?

누군가 당신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당신에게 약을 건네었다.

이 약을 먹으면 아무런 고통 없이 죽을 수 있습니다. 마치 잠을 자듯 스르륵 눈을 감기만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목이 졸리는 압박도, 몸에 구멍이 나는 고통도, 살이 찢어지거나 피를 흘릴 필요도 없다. 더구나 내장이 녹아 내린다거나, 약물이 신경을 건드려서 고통을 주지도 않는다. 당신은 그저 졸릴 뿐이고 편안히 누워 잠에 들기만 하면 된다. 바닥이 흥건하게 피로 고이는 일도 없고, 주변에 대소변이나 토사물이 뿌려지는 일도 없다. 잠을 자는 모습 그대로 깨끗하게 세상을 떠나는 것이다.

당신이 이 약을 쉽게 구할 수 있고, 그에 대한 도덕적 책임도 없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주었다고 비난 받거나, 내가 죽으면 가족들은 어떡할지 걱정할 필요도 없다. 왜나면 이 약은 합법이기 때문이다. 신분증을 들고 동네 약국으로 가면 쉽게 구입할 수 있다.

당신은 안락할 죽음으로 갈 생각이 있는가?

 

이 글은 흔히 ‘자살약’으로 불리는 ‘자유와 선택 5.0’이 시판되기 일주일 전에 내가 썼던 기사이다. 난 자살약이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해왔고, 그 과정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 봐왔다. 그렇기에 약에 대한 이야기들을 담은 이 칼럼은 내가 적어야만 한다.

 

2

“안녕하세요. 송교수님이시죠? 전화 드렸던 한상수기자입니다.”

이 약의 취재를 시작한 것은 1년도 더 된 일이다. 난 약학과 교수로 재임중인 송교수가 사람을 죽이는 약을 개발 중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와 인터뷰를 하기 위해 찾아갔다.

송교수의 개인 연구실은 특별할 것이 없어 보였다. 창가를 등지고 있는 넓은 원목책상이 교수의 권위처럼 자리잡고 있었고, 벽면에는 각종 원서들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방의 중간중간에 있는 화분들은 선물 받은 것인지 인사말이 적힌 리본이 그대로 매달려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약학교수의 방이라고 하면 소독약 냄새가 풍길 것 같았는데, 송교수의 연구실은 오히려 진한 방향제 향기가 진동했다.

“반갑습니다. 이쪽으로 앉으세요.”

송교수가 연구실 중앙에 있는 테이블과 소파를 가리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50대 초반 정도되는 남자였다. 연구를 할 때나 입을 흰색가운을 평상시에도 걸치고 있었지만, 그 아래로 비치는 옷들은 허름한 정장바지와 오래된 슬리퍼이다. 그의 얼굴은 굵은 몇 개의 주름이 눈에 띄게 보였고, 눈 아래에는 작은 검버섯이 피어나있다. 살집이 조금 있는 그는 운동과 거리가 먼 사람처럼 몇 발자국도 되지 않는 거리를 뒤뚱거리며 걸어왔다.

내가 소파에 앉자 송교수는 책상과 가까운 곳에 있는 자신의 지정석에 앉으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제가 개발중인 약을 취재하고 싶으시다고요.” 송교수가 말했다.

“네. 상당히 위험하면서도 독특한 약을 연구 중이시라고 들었습니다. 자살을 하는 약이라고…… 아, 죄송하지만 보이스레코더를 사용해도 될까요? 나중에 기사를 적을 때 필요하거든요.”

“그렇게 하세요.”

나는 양복 안주머니에 들어있는 손가락 크기의 기계를 꺼내 버튼을 누르고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송교수의 얼굴이 긴장한 듯 살짝 굳는다.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한다고 했을 때, 인터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반응을 보였다.

“실내 향기가 참 좋네요. 전 약학교수님의 방이라고 해서 딱딱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송교수님 연구실은 편안하게 느껴집니다.”

“감사합니다. 인터뷰를 시작하시죠.”

송교수는 내가 일상적으로 건네는 칭찬에도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인터뷰를 많이 하다 보면 첫마디로 사람의 성격을 대충 파악할 수 있는데, 그는 유머와는 거리가 한참 먼 사람으로 보였다. 그의 안개처럼 내려앉은 목소리뿐 아니라 얼굴에 있는 주름 형태만 봐도, 그가 깐깐하고 내성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난 통하지도 않을 잡담이나 유머들은 집어치우고 본론으로 넘어갔다.

“그럼 인터뷰를 시작하겠습니다. 지금 개발중인 약이 어떤 것인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사람들에게 안식을 줄 수 있는 약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자살약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이 약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서 만들었다는 거죠? 그럼 독약이 아닌가요?”

송교수는 독약이라는 말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습관처럼 자신의 왼손을 오른손으로 비비듯 주물렀다.

“독약이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습니다. 독약이라는 건 사람의 건강에 해가 되는 약을 말하는 것인데, 이 약은 그렇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수면제와 신경안정제 그리고 마비제의 복합적인 약이라고 말하고 싶군요.”

“사람을 죽게 하는 약이지만 독은 아니다. 그런 말씀이시죠? 하하. 저는 잘 이해하기가 힘드네요. 일반 사용자들을 위해서 조금 쉽게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내가 조금이라도 분위기를 풀어보고자 웃으며 얘기했다. 그러자 송교수도 고개를 미세하게 위아래로 움직이며 웃음을 지어보려고 애썼다. 그럴수록 그는 더욱 불편하게 보이기도 한다.

“지금 개발하고 있는 신약은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는 약입니다. 사람들은 많은 억압을 받고 있지요. 심지어 자기 마음대로 죽지도 못합니다. 오히려 이런 것이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고 봅니다.”

“일부에서는 교수님의 말씀이 생명을 쉽게 여기는 거라고 반론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렇겠죠. 생명은 분명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그리고 지극히 개인의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내 생명이 끝나는 것에 엄청난 고통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시선까지 생각해야 한다는 건 인간의 존엄성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하고 있어요. 이 약은 그런 사람들을 고통에서부터 해방시켜줄 겁니다. 독약이라 함은 몸에 해를 끼치는 약이지만 이 약은 사람들의 고통을 사라지게 해주는 약입니다. 그렇기에 독약(毒藥)이 아니라 선약(仙藥)이라고 할 수 있는 겁니다.”

송교수는 약에 대해 설명할 때만큼은 긴장하지 않고 자신감이 넘쳤다. 난 그의 직설적인 모습이 되려 당황스럽다. 그는 한참 열변을 토하다가 목을 축이기 위해 커피잔을 왼손으로 집었다. 그러더니 어디가 불편한지 다시 오른손으로 집어 한번에 마셔버린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약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네.” 그는 숨을 한번 내쉬더니 처음처럼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개발중인 약은 총 3개의 정제로 되어있습니다. 각 약마다 먹는 시간이 달라요.”

송교수는 자신의 책상으로 가서 알약 세 개를 가지고 나왔다. 그 약은 모두 크기와 모양이 같았지만 색은 각기 달랐다.

“약이 세 개나 되는 이유가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첫 번째 복용하는 붉은색 알약은 마취와 수면효과가 있습니다. 이 약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면서 근육이 이완되고 잠이 오게 됩니다. 신약의 가장 큰 장점인 고통이 없는 것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약입니다. 이 첫 번째 약을 복용하고 30분에서 1시간 사이에 다른 약을 먹어야 합니다. 하지만 붉은 약에도 신경을 마비시키는 활성제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결코 함부로 먹어선 안됩니다. 두 번째 검정색 약은 첫 번째 약의 효과로 곧 잠이 들것 같을 때 복용을 하게 됩니다. 그럼 중추신경계와 심장이 천천히 마비되어 사망에 이릅니다. 이때 복용자는 그냥 잠을 자고 있다고 느낄 뿐 아무런 고통이나 감각도 인식할 수 없습니다.”

“그럼 저기 흰색 약이 남게 되는데요. 저건 어떤 기능을 하는 겁니까? 사람은 이미 사망하였는데요.”

“저건 해독제 입니다.”

난 송교수를 바라보았다. 자살하는 약과 해독제를 함께 판매하다니, 이것 역시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부분이었다. 하지만 송교수는 흔들림 없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이번 신약의 핵심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약을 먹고 그 효과가 완전히 퍼지는 1시간 안에 세 번째 약인 이 흰색 정제를 먹으면 아무런 후유증 없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충분한 선택의 시간을 주는 겁니다. 우발적인 자살을 막는 방법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검은 약을 이미 먹어버린 상태라면 하얀 약이나 위 세척으로도 사람을 살릴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더 고통스러울 테니까요. 이런 점들로 인해서 저는 약 이름을 ‘자유와 선택’이라고 지었습니다.”

 

3

내가 이제까지 기사로 쓰지 않았던 일들을 칼럼으로 써보자고 마음먹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한 달 전부터이다. 그 날,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지만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던 나는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상수야, 너무 늦은 시간에 전화했지?” 그 목소리는 나와 항상 모이는 친구 중 한명인 형수였다. 형수는 잠에 취한 것인지 아니면 무슨 다른 일이 있는지, 밤의 고요함 속에서도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아니야. 안자고 있었어. 무슨 일이야?”

“그게……” 형수는 쉽게 말을 열지 못했다. 그러다가 떨리는 음성이 겨우 들려온다. “윤호가…… 죽었어.”

“죽었다고……? 어떻게?” 친구 부고에 대한 반응이라고 하기에 내 대답은 너무 침착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그 충격은 크고 무겁게 다가오고 있었다.

“후……. 아직 조사가 끝난 건 아닌데, 하루 정도 된 것 같아. 경찰 말이 어제 저녁쯤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 같다고 하네. 도통 연락이 안되길래 윤호가 사는 원룸에 찾아왔는데, 녀석이…… 쓰러져 있더라고. 처음엔 자는 줄 알았어.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니까 싸늘한 공기가 느껴지는 게 이상한 직감이 들더라. 나, 나도 지금 정신이 하나도 없어. 사람 죽은 건 처음 본 거라서. 윤호 부모님께는 겨우겨우 연락을 드렸는데, 나머지 친구들한테는 네가 좀 말해주라. 난, 조금 숨을 돌려야 될 것 같아.”

나는 전화를 끊고 형수의 말대로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나처럼 결혼을 한 사람들은 전화를 안 받는 경우도 있었으나, 대부분 연락을 할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난 거실에 있는 소파에 몸을 쓰러뜨렸다. 푹신하지만 차가운 쿠션 속에 내 몸이 잠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난 익사를 할 것처럼 숨이 막혔다.

다음날, 친구들과 시간을 맞추어 장례식장에 찾아갔다. 몇몇 친구들은 그날 새벽에 바로 가서 장례를 도와주어야 한다고 했지만, 직장 때문에 안 되는 사람이 더 많았기에 다음날로 시간을 늦추었다. 병원 지하에 위치한 장례식장은 진한 향냄새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깊이 가라앉아있었다.

나와 함께 온 친구들은 떠나가버린 윤호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경찰은 뭐라고 해?” 한 친구가 물었다.

“어제랑 별반 다르지 않아. 자살로 보이는데 윤호 부모님이 원치 않으셔서 부검은 안 하기로 했어.”

어젯밤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던 형수가 대답했다. 형수는 윤호와 가장 오래된 친구였다. 우리는 그에게 위로의 말과 고생했다는 인사를 건네고 술잔을 투명한 액체로 채웠다. 유리가 부딪치는 소리 없이 모두가 잔을 비웠을 때 다른 친구가 말했다.

“윤호 자식, 맨날 죽고 싶다 어쩐다 입에 달고 살더니만 결국 이렇게 됐네.” 그는 자신의 술잔을 채우자 마자 다시 입에 털어 넣었다.

“뭐 때문에 그런 거래?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퉁명스런 표정으로 있던 친구가 말했다. 그것에 관하여 유일하게 알법한 형수는 술을 연거푸 들이키며 침묵을 지키다가 어렵사리 입을 땠다.

“경찰 조사가 완전히 끝나진 않았어. 자살로 추정되는데 그 방법이 뭔지는 아직 모르고. 부검을 하지 않기로 했으니 시간이 지나도 알 수 없겠지. 윤호는 평상시와 별로 다르진 않았어. 마지막으로 통화했던 게 일주일 전이었는데, 오히려 목소리가 편안하게 들렸거든. 윤호 알잖아. 뭔가 툭툭 거리는 게 불만도 많고 우울한 구석도 있는 놈이지만 속은 여리고 착한 거. 그런데 그날 통화를 할 때는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 보였어. 그리고 다음주 목요일에 집에 들러달라는 말을 남겼지. 난, 이런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어. 윤호 목소리가 밝길래 좋은 일 있나 보다 생각했었거든. 그 자식 왜 이런 짓을……”

난 그 자리에서 아무 말 없이 술만 넘겼다. 밤이 새고 아침이 되도록, 난 다른 친구들의 얼굴과 윤호의 영정을 바라 볼 수 없었다.

 

4

송교수와의 첫 번째 취재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난 다시 그의 연락을 받게 되었다. 임상실험을 할 예정인데 취재를 올 생각이 있냐는 전화였다. 난 사람을 죽게 만드는 약의 임상실험이라는 점에 호기심을 느껴 좋다고 말했고, 송교수와 함께 어느 구치소로 향하게 되었다. 송교수는 그곳으로 향하는 자동차 안에서 나에게 말했다.

“임상실험을 할 사람을 구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어요. 동물실험에서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성과를 이루었지만, 이것이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된다고 보기는 힘드니까요. 이전에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을 한 적이 있기는 합니다. 뇌사상태의 환자에게 약의 성분을 주사하는 것이었는데, 호흡기를 제거하는 것보다 제가 만든 약이 더 고통이 없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이 실험, 아니 환자에게서도 약의 문제점은 찾을 수 없었어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될 수 있지만, 뇌사환자의 경우에는 신경학적인 반응 말고 다른 고통은 알 수 없고, 구강복용으로 일어나는 작용을 알아봐야 하기 때문에 건강한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찾은 것이 이번 실험 대상자입니다.”

우리가 탄 승용차는 높은 벽과 사람들이 굳건히 지키고 있는 회색건물 속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구치소장을 만나 이야기를 하고 실험대상자와 인터뷰를 해도 된다는 승낙을 받았다. 그러나 몇 가지 주의사항이 따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 사람의 경우는 연쇄살인혐의로 2년 전에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 받았고, 저번 달에 집행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고통이 없다는 말에 이번 실험에 지원하게 된 것입니다. 처음에 비해서 독기가 많이 사라졌지만, 자극적인 말은 하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가능하면 약과 실험에 관련된 이야기만 해 주시고, 왜 살인을 했는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지, 이런 질문은 삼가 해주십시오.”

엄숙한 분위기의 구치소장이 말을 끝내자, 송교수와 나는 피실험자를 만날 수 있었다. 철문으로 가두어진 작은 방에는 네모난 테이블 하나가 놓여 있었고, 젊은 교도관 둘이 굳은 자세로 피실험자의 양쪽 뒤에 서있다.

피실험자는 의자에 앉아 포박되어있는 손을 테이블 아래로 내리고 있었다. 그는 덥수룩한 정수리가 보이도록 얼굴을 살짝 내리고 있었는데, 우리가 들어오자 아무렇지 않은 듯 고개를 들었다. 40대 중 후반으로 보이는 피실험자는 마지막이라고 몸을 단정히 치장했지만, 그럼에도 얼굴에 그림자가 끼어있는 것이 초췌하다는 인상을 풍긴다. 그는 살인마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람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평범한 눈매를 가지고 있었다. 코는 펑퍼짐했으며 보라색이 감도는 입술은 담배 때문이거나 긴장한 탓으로 보였다.

“잘 지내셨어요? 저번에 한번 봤었죠?” 송교수가 먼저 말을 꺼냈다.

“네.” 그에 피실험자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이쪽은 A신문에서 나온 한상수기자입니다. 교도관에게 말은 들었겠지만 이번 임상실험에 대한 기사를 쓰고 간단한 인터뷰도 진행할 예정입니다.”

“반갑습니다. 한상수기자입니다.”

송교수의 소개가 끝나자 내가 피실험자의 눈을 보며 말했다. 그건 평범한 인사였지만 난 그의 말라버린 눈빛을 보자 위축되고 말았다. 그리고 송교수는 준비할 일이 많다며 방에서 나가버렸다. 난 송교수가 없는 편이 인터뷰하기가 수월했지만, 그와 단 둘이 마주보고 애기하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하다.

“어…… 그럼, 간단한 질문을 몇 개 드릴 텐데요. 편하게 대답하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가 간략하게 대답했다. 그 목소리는 굵지 않았지만 무겁고 어둡다. 나는 맹수 앞에 놓여진 먹이처럼 긴장되었으나, 곧 죽어버릴 사람과 인터뷰를 하게 된 기회를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어떤 계기로 실험에 참여하게 되었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난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대화를 진행하였다.

“고통이 없다는 게 가장 크게 작용한 것 같아요. 어차피 죽는 거라면 편안하게 가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그는 선뜻 인터뷰에 응한 사람이라고 하기엔 질문에 관심도 없고 퉁명스럽다. 난 피실험자가 반응을 할 수 있겠끔 원래의 질문에서 조금 더 깊이 들어가보기로 했다.

“일부 사람들은 어차피 죽는데 고통이 그렇게 중요하냐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내가 이 말을 꺼내자 좀 전까지 무덤덤했던 피실험자의 표정이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나는 그가 어떤 짓을 저질렀었는지 알고 있었기에 그의 보잘것없는 표정변화에도 빠르게 반응하였다.

“아니, 그냥 한간에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질문이든 답변하기 싫으신 것은 그냥 넘어가셔도 됩니다.”

사형수의 시선이 내 미간을 관통한다. 그는 양 옆에 있는 교도관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럴만한 것이 무슨 짓을 저지른다고 해도 그에게 정해진 운명은 바뀌지 않을 터였다.

“기자양반, 사람이 죽는 걸 본적 있나?”

나는 그의 말에 흠칫, 고개를 뒤로 빼었다. 그는 코웃음을 치며 이야기를 계속한다.

“기껏 해봐야 영안실에 놓여진 깨끗한 시체를 한두 번 봤겠지. 요즘 사람들은 말이야, 사람이 죽는 게 어떤 일인지 알지를 못해. 백 년 전만 하더라도 주변에 시체가 굴러다니는 걸 한번씩은 봤을 건데 말이야. 지금은 전문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만이 그 장관을 보지. 텔레비 속에서 아무리 사람이 죽고 찢기고 불타오르는 걸 봐도 그건 현실이 아니야. 사람들은 영혼을 기계 속에 넣고 다니지만 현실은 현실이거든. 그 괴리를 극복하지는 못해.”

“그, 그렇겠죠. 세상이 변했으니까.”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야. 그치만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잘 모른다는 건 문제가 있지 않겠어? 기자양반, 목이 매달려 죽어가는 사람을 본적 있나? 난 있어. 내가 매달았거든. 그런데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게 있다? 목 매달려 죽으면 그냥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지? 아니면 동맥이 막혀서 어질어질 하다가 픽하고 죽어버리거나. 사실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아. 사람의 목 근육은 머리무게를 버티도록 만들어져 있거든. 그런데 그게 몸 전체의 무게를 지탱하면 어떻게 될까? 근육이 다 찢어지는 거야. 살이며 핏줄이며 다 터지지. 교수형을 당하면 그렇게 죽어버리는 거야. 떨어지는 충격으로 목뼈가 부려져서 죽는다곤 하는데, 그걸 누가 믿겠어. 외국에는 공개 처형을 실행했다가 목이 댕강하고 떨어져나간 일도 있었다지. 이게 별 상관 없어 보이나? 죽으면 그냥 휘리릭 영혼이 빠져나가고 끝일 것 같아? 천만해.”

“아, 네. 죄송합니다. 제가 말을 잘못 꺼냈네요. 흠… 흠……”

난 어쩔 수 없이 나와버린 헛기침을 삼키고 생수로 마른 목을 적신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잘 넘어가지 않았다. 내 와이셔츠는 소화되지 않은 물들이 그쪽으로 나와버린 것처럼 축축하게 젖어갔다.

“그럼, 다시 약에 대해서 질문 드리겠습니다. 약이 몇 번의 실험을 거쳤다곤 하지만, 완전히 검증 받은 것은 아닌데요. 그에 대한 거부감이나 두려움은 없으셨나요?”

“두려움…… 내가 죽는 게 두려웠다면 이미 여기 있지도 못했겠지. 아마 미쳐서 제정신이 아니었을 거야. 죽는 게 두렵다거나 약이 무섭다거나 그렇진 않아. 난 다른 사람들하고 조금 다르거든. 그런 건 생각해 본 적도 없어. 이미 포기해버렸지.

그는 약에 대한 답변이 아니라 자기 죽음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난 그가 약이나 기사에 관심이 있기 보다,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려고 인터뷰를 승낙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신약을 먹는데 거부감이 없단 말씀이시죠?”

“이 약이 자살약이라고 불린다지? 자살이라…. 하하. 사람들은 자살에 대해서도 잘못 알고 있어. 마음이 약해져서 자살을 한다느니, 자살할 용기로 열심히 살라느니, 다 개소리일 뿐이지. 그렇게 따지면 인구의 반 이상은 다 자살로 죽어버렸을 거야. 과거의 천민이나 노예는 모두 자살을 했을 거고, 지금 노숙자들도 모두 자살해서 죽었겠지. 자살을 하냐 안 하냐는 개인의 의지나 용기 그딴 게 아니야. 죽음에 대해 아느냐 모르냐의 차이라고.”

“무슨 말입니까?”

“내가 죽인 사람들 말이야. 자기 잘난 맛에 살던 사람도 있었고, 인생을 포기한 사람도 있었어. 그런데 죽을 땐 하나같이 처절하게 목숨을 구걸하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거든. 그게 본능이라는 거겠지. 헌데 말이야, 그 죽음이란 칼날이 자기 목 끝에 닫기 전까지는 그 사람들도 자신이 목숨에 그렇게 집착할 거라는 걸 몰라. 자기가 목숨을 얼마나 소중히 생각하는지 조차 모르고 살았던 거야. 죽음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지. 난 죽음이 뭔지 알고 있어. 그래서……”

피실험자가 말을 마치기 전에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구치소장이었다. 그는 시간이 다되었으니 인터뷰를 그만해 달라고 했다. 난 시간을 약속한 적도 없을뿐더러 얼마 지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마 소장은 나와 그의 대화를 다 듣고 있었을 것이다.

그 방에서 나와 바깥바람을 씌면서 숨을 돌리자, 사형수가 왜 그리 말이 많았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내가 싫었을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죽기 전에 다 하지 못한 게 한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라면 그는 자신의 말과 다르게 두려움에 떨고 있었을 것이다.

그를 다시 보게 된 것은 2시간이 지난 후였다. 그때는 우리가 얼굴을 마주보고 있지는 않았다. 그는 치과용 진찰 의자 같이 생긴 것에 반쯤 누워 있었고, 나는 내 모습이 보이지 않는 특수창문 너머에서 그를 바라보았다. 구치소장의 말에 따르면 피실험자는 자신의 죽음이 구경거리가 되길 바라지 않아서 최소한의 사람만 남기고 모두 밖으로 보내길 요청했다고 한다.

피실험자의 몸에는 각종 장치를 붙여 심박수와 혈압, 스트레스 지수 등을 실시간으로 분석하였다. 사형집행이 일반병원에서 이루어 질 수 없기에 이 장비들은 모두 송교수의 연구진들이 가져온 것이었다. 송교수는 피실험자의 옆에서 그 데이터를 분석하였고 필요에 따라 질문을 하기도 했다.

“아프거나 불편한 것이 있으면 말하면 됩니다. 몸에 작은 변화라도 상관 없으니 무엇이든 괜찮습니다.”

“그냥 나른하고 잠이 오는 것 말고는 없네요. 기분도 썩 나쁘지 않습니다.” 피실험자는 나와 인터뷰를 할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굴었다. 표정도 한결 편안해 보였고 목소리도 차분하다. 송교수는 첫 번째 약의 효과라고 말했지만 난 그것이 다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붉은 약을 먹은 지 50분이 넘었을 때, 피실험자는 반쯤 감긴 눈으로 다음 약을 달라고 했다. 내 눈에 담긴 그의 모습은 최대한 버티고 버티다가 말을 한 것 같았다.

송교수가 묶여있는 피실험자의 손 대신에 그의 입에 검정색 알약을 넣어주었다. 그의 턱이 떨리면서 겨우 닫힌다. 피실험자는 목과 얼굴 전체를 진동하며 힘겹게 약을 넘겼다. 그건 간질발작이라도 일어난 사람처럼 보였다. 그 모습에 놀란 송교수는 데이터를 체크해보았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왜 그러죠? 통증이 있습니까?”

“아니요. 전혀 없습니다. 그냥…… 아니 전 괜찮습니다. 아픈 곳도 불편한 것도 없어요. 그냥 좀 자야겠습니다.”

피실험자는 그렇게 말하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의 표정은 내가 본 어느 때보다 편안하게 바뀌어져 있었다. 나는 그의 눈에 물방울 하나가 맺히는 것을 볼 수 있었지만, 그것이 약에 의한 반응인지, 피실험자의 감정인지는 알 수 없었다. 피실험자가 눈을 감은 지 10분 후, 심장이 완전히 멈추고 구치소장은 사형집행이 끝났음을 알렸다.

 

5

‘자유와 선택’의 임상실험이 끝나고 내가 쓴 기사가 보도되자, 자살약은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때 맞추어 정부에 신약허가를 요청한 송교수는 단연 논란의 중심에 설 수밖에 없었다.

“저는 사람의 생명이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자신의 목숨이 스스로에 의해서 판단되고 지켜지고 보장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약을 개발하게 되었고, 이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주게 될 것입니다.”

송교수의 발언은 사람들 사이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자신의 생명은 자신의 손에 맡겨야 한다는 움직임이 서서히 확산되어갔다. 종교단체에서는 목숨이 자기 것이 아니라는 의견을 공식적으로 내놓았고, 사람들 중에서는 자신의 목숨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은 자유와 인권을 침해한다는 견해도 나타났다.

신약 허가신청은 보건복지부에서 결정할 문제를 넘어, 자살법이라는 이름으로 국회에 상정되기에 이른다. 국회는 자신의 목숨을 자기 손으로 끊는 것이 합법이냐는 주제에 대해 오랜 기간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나는 정치부 기자가 아니었기에 국회 출입을 할 수 없었지만, 동료의 말에 의하면 양쪽의견이 워낙 팽팽해서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또한 여야 상관 없이 의원들이 자신의 개인적인 관점에 따라 행동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도 말했다.

자살법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불거지자 방송사에서는 정치인, 시민단체, 종교계, 의사, 철학자 등 각종 인사들을 모아놓고 토론을 하기도 하였다. 난 그곳에 기자 혹은 증인 신분으로 참석할 수 있었다.

“자살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그 약을 판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나라는 자살하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동네에서는 매일같이 시체를 치워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한계치라고 보여질 만큼 높아졌어요. 이제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약을 팔지 않는다고 자살이 없어질까요? 어차피 죽을 사람들은 죽게 된다는 거에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살을 인정을 하고 그 사람들을 편히 보내주는 것입니다.”

“사회는 혼자 사는 곳이 아닙니다. 사람 한 명 죽는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죽은 사람이 다른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 입니다. 사람들이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합법적으로 자살할 수 있게 된다면 사회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이 사회가 무너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다수를 위해서 개인이 희생되어야 한다는 말은 지겹도록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희생해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람들이 행복해 졌나요? 자살률이 낮아 졌습니까? 이제는 희생이 아니라 개인의 행복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사람들이 행복하기 위해 도와주지도 못하면서, 죽지도 못하게 하는 건 지나친 것 아닙니까? 사람은 평생 고통만 견디면서 죽지 못해 사는 좀비가 아니에요.”

“지금은 자살인정법이 아니라 자살금지법을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자살하는 사람의 가족, 친척 혹은 친구에게까지 자살로 인해 생기는 사회적 피해를 물어, 자살을 줄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 문제는 이성적으로 봐야 한다고 봅니다. 사람이 죽었을 때 생기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어떤 게 필요할까요? 죽지 않도록 비용을 쏟아 붓는 것이 아니라, 깨끗하게 자살을 하는 게 더 경제적이라는 뜻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자살약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토론은 서로의 합의 없이 6시간 넘게 논쟁이 계속되었다. 국회에서는 개인의 생명을 법으로 제제할 수 없다는 이유로 자살법이 통과 아닌 통과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자유와 선택’은 자연스럽게 정부의 허가를 받게 된다.

 

6

자살약의 판매허가가 떨어지자 송교수는 돈방석에 앉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대형 제약회사와 계약을 맺었고, 약에 대한 대부분의 지분을 가지게 되었다. 그럴수록 송교수는 나한테 연락이 잦아졌다. 그는 일부 제약회사와 언론들이 자신을 악마나 살인자 정도로 표현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내가 반박 기사를 내주길 원했다. 다행히 우리 신문사와 송교수가 계약한 제약회사가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에 그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던 도중 나는 뜻밖의 초대를 받게 되었다. 윤호가 둘이서 저녁이라도 같이 먹자고 연락한 것이다. 윤호는 내 고등학교 동창으로 10년 넘게 그를 지켜봐 왔지만, 단둘이 만난 것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친구 다수와의 모임에서 만나는 게 대부분이었고, 윤호는 형수와, 나는 또 다른 친구와, 각자가 더 친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었다. 난 윤호의 연락에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 윤호가 술 한잔하고 싶은데 형수이가 바쁜가 보다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래서 부담 없이 집에서 입는 츄리닝을 대충 걸치고 근처 삼겹살 집에서 윤호를 만났다.

밤이 깊어가는 시간이었지만 고깃집은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먼저 도착한 윤호는 숯불 앞에 앉아 이미 주문을 끝내놓았다.

“야, 너 웬일로 빨리 나왔다?” 나는 윤호에게 대충 인사를 건네고 방석을 하나 꺼내 자리에 앉았다.

“어, 왔어? 삼겹살이 먹고 싶지 뭐야. 하하.” 윤호도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반긴다.

윤호가 미리 주문해둔 삼겹살을 불판 위에 올리는 동안 나는 상차림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소주 한 병이 벌써 따져 있었고 절반은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너는 청승맞게 혼자 소주를 까고 그러냐. 조금만 기다리지.”

난 바닥이 보이는 윤호의 잔을 채워주고 내 것도 하나 채운다. 윤호는 고기가 익기 전에 소주 한 잔을 더 비웠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불었길래 소주를 그리 급하게 먹고 있어?” 난 다 익은 삼겹살 한 점을 우물거리며 말했다.

“그냥. 너도 한번 보고 싶고, 기분도 좋고 해서.”

우리는 삼겹살 2인분을 비우고 다시 1인분을 더 시켰다. 그러는 동안에 나는 신문사에서 주워들은 농담이나, 고기와 함께 질겅질겅 씹을 만한 가십거리를 떠들어댔다. 윤호는 평소처럼 대화를 이었지만, 중간중간 말이 끊기는 것이 어떤 기회를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너 요즘 기사 많이 올라오더라?” 얼굴이 완전히 붉어진 윤호가 말했다. 윤호는 만취한 것처럼 보였지만 술이 원체 쌘 체질이라 흐트러지지는 않았다.

“그냥 일이 좀 늘어난 것뿐이야. 기자 생활하다 보니까 별 이상한 기사를 다 적고 다닌다, 내가.”

나는 적당히 넘어가려 했는데 윤호는 그럴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는 술을 또 한 잔 비우고 그 기운으로 얼굴을 한껏 구겼다 피며 말했다.

“네가 나 좀 도와주면 안 되니?”

윤호의 그 말을 들었을 때 난 그가 돈이라도 꿔달라고 하는 건가 생각했다. 그리고 어떻게 거절해야 할 지까지 생각했다. 그러나 윤호의 얘기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나, 그 약 좀 구해주라.”

“뭐하게. 팔아먹게? 에이, 그거 좀 있으면 시판될 거라서 돈 안돼.” 난 그렇게, 농담처럼 지나쳐가고 싶었다.

“아니. 내가 쓰려고.”

“너, 그러니까. 지금 그 약 먹고 죽겠단 말을 하는 거야?”

그때부터 우리의 시간은 멈추어 버렸다. 고기는 숯과 함께 거멓게 타들어갔고, 그러는 와중에도 술병은 늘어만 간다.

“윤호야. 너 취했어. 한숨 푹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 질 거야.”

“취하긴 인마. 이거 말하려고 너 부른 건데. 나 멀쩡해.”

내가 부정하려 애를 써봤지만 윤호의 의지는 좀처럼 흔들리지 않았다. 난 그를 오랫동안 봐왔기에 그가 허튼소리하는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왜 그러는데. 네가 뭐가 부족해서. 멀쩡한 직장 있지. 모아놓은 돈 있지. 부모님도 건강하시지. 부르면 나오는 친구들도 있잖아.”

윤호는 내 말에 고개를 돌리고는 깊은 숨을 내쉰다.

“나도 이유를 잘 모르겠어. 머릿속이 죽어야 한다는 말로 가득 찬 기분을 아니? 상사가 지랄 한번 해도 ‘죽어버릴까 보다.’ 혼자서 집에 들어올 때도 ‘그냥 죽는 게 좋을까?’ 너희랑 술 먹다가도 ‘죽고 싶다.’ 아침에 눈을 뜨면 ‘죽자, 죽어!’ 온통 그 생각뿐이야. 네가 쓴 기사 보니까 그러더구만. 힘든 사람에게 자유와 선택을 줄 수 있는 약이라고.”

“윤호야, 그건……”

“그런데 그거 아니? 그 기사는 네가 몰라서 하는 말이야. 스스로 목숨을 끊는 다는 건, 자유나 선택의 문제가 아니야. 생각을 해봐. 누가 죽음을 선택하겠어? 선택할 수 없기 때문에 죽는 거야. 극단적인 선택? 웃기고 있네. 사람들은 자살의 이유가 뭔지 알아내려고 애를 쓰는데, 생활고? 인간관계? 스트레스? 그딴 건 다 필요 없어. 죽는 이유가 뭐겠어. 살 수 없기 때문 아니야? 그러니까 상수야. 내가 마지막으로 부탁할게. 제발, 제발 나 좀 도와주라. 너 밖에 없어.”

윤호는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그 손은 알콜이 날아가버릴 정도로 뜨거운 체온이 느껴졌다.

 

7

윤호의 장례가 끝나고 얼마 뒤부터 송교수와 제약회사는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다.

“걱정하지 마세요. ‘자유와 선택 5.0’이 있습니다.”

“아무런 고통도 법적 문제도 없습니다. 유서 하나만 준비하세요.”

이런 문구가 담긴 광고가 우리 신문에도 매일 같이 올라왔다. 송교수는 내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면서 감사의 인사도 잊지 않았다.

자살약이 시판되고 일주일간, 약을 먹고 사망한 사람은 350명에 이른다. 그러나 이 수치는 생각보다 높지 않은 것이었다. 약이 발매되기 이전에도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의 숫자는 이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보다 놀라운 것은 그 일주일간 판매된 자살약이 2000개가 넘었다는 점이다. 호기심에 산 사람도 있었겠으나, 그렇다고 해도 죽은 사람에 비하면 월등히 많은 숫자였다. 언론에서는 잠재적 자살자가 늘어난 것이라고 보도했고, 제약회사에서는 첫 번째 약만 먹고 해독약을 먹은 사람들이 재구매를 했을 것이라 밝혔다.

송교수는 나에게 보답을 하겠다며 기대하라고 했지만, 다른 소식이 먼저 나를 찾아왔다. 송교수의 연구원에게 들은 것으로 그가 병원에 입원했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 동안 송교수가 과로한 까닭에 탈이 났겠구나 싶어, 음료수 상자를 하나 들고 인사차 병원을 찾았다. 그는 독실에 홀로 누워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는데, 어디가 아픈지는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교수님 몸은 좀 어떠세요?”

“한기자님이 여긴 어떻게 알고 오셨습니까?” 송교수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는 내가 이곳에 온 것이 의외라는 눈치다. 내가 농담 삼아 “제가 기자 아닙니까. 하하.” 라고 말하자 송교수는 이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었다. 그러자 나는 사실대로 얘기한다.

“연구원에게 들었습니다. 입원하셨다고요.”

“어디 다른데 말하신 건 아니죠?” 송교수의 눈이 동그랗게 커진다.

“네, 네.” 내가 대답을 하고 나서야 송교수는 긴장이 풀린 듯 허리가 구부정하게 늘어졌다. “이게 비밀이었나요? 전 그저 송교수님이 편찮으시다 해서……”

“아니에요.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며칠째 혼자 독방에 갇혀있으니 답답할 참이었습니다.”

난 보조 의자에 앉아, 가져온 오렌지 주스를 한 병 꺼내 송교수에게 건네었다.

“어디가 편찮으셔서 입원하신 건가요?”

내가 물어보자 송교수는 쩝쩝거리며 주스 맛을 음미하고는 목청을 가다듬었다.

“이거는 기사로 쓰시면 안됩니다. 다른 사람한테 말해도 안되고요.”

“아, 네. 알겠습니다.”

송교수는 내 대답을 두 번이나 더 듣고서야 말을 꺼냈다. 그럼에도 내가 지금처럼 이 일을 글로 쓰고 있는 것은 그만한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기록하지 않으면 이것들은 영원히 사라질 이야기였다.

“약을 만든 사람이 그걸 먹고 죽으려 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비밀로 해야지요.” 송교수는 마른침을 삼키며 말했다.

“약을 드셨다고요?” 난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예. 제가 왜 약을 만들게 됐는지 이야기한 적 있나요?”

“사람들에게 자유와 선택을 주기 위해서라고……”

“허허, 그렇지요. 기억하고 계시네요.” 송교수는 힘이 빠진 듯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건 변명일 뿐입니다. 제가 약을 만든 이유는 직접사용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게 오 년 전 일일 겁니다. 제가 연구하던 신약을 빼앗긴 적이 있었어요. 그건 지금처럼 자살약이 아니었습니다. 정상적인 사람을 살리는 약이었지. 거기에 모든 걸 쏟아 부었는데 추악한 사기꾼들에게 빼앗기고 나니까, 죽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남았습니다. 빚은 쌓여있지, 아내는 이혼하고 도망가 버렸지. 지켜야 할 자식이 있는 것도 아니었어요. 그래서 죽으려고 하는데, 이게 너무 무서운 겁니다. 그래서 고통 없이 죽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지금의 약을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살아 계시지 않습니까.”

“그렇죠. 허허. 그러게나 말입니다.” 송교수는 이상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창가에서 불어오는 햇볕에 비친 그의 모습은 살아있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영혼이 사라진 사람이 있다면 분명 그와 같은 모습일 것이다.

“제가 쓸데없는 소릴 했군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연구원들에게도 이런 얘기를 한 적은 없거든요. 정말 답답했는데 이제야 풀리는 것 같습니다. 전 이번에도 죽지 못했어요. 약이 완성되었으니까, 분명 죽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는데도요. 붉은 약을 삼키고 30분이 지나자, 거대한 공포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아마 한기자님은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없을 겁니다. 공포영화를 보거나 어두운 곳을 걸을 때 느끼는 감정과는 전혀 달라요. 결국 저는 검은 약 대신에 하얀 약을 목에 넣었습니다. 그런데 이 짓도 여러 번 하다 보니, 예전에 생긴 후유증이 심해져서 병원신세까지 지고 있네요.”

“여러 번 이라고요?”

“벌써 다섯 번째입니다. 그래서 약 이름에 5.0이 붙어요. 제가 실패할 때마다 대대적으로 약을 바꾸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무서워서 자살에 실패했다고 하면 비웃고는 합니다. 그런데 그건 그들이 공포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이에요. 사람의 가장 근원적인 감정이 무엇인지 압니까? 바로 공포입니다. 기쁨, 슬픔과 같은 다른 감정을 배우기 전에는 그 모든 게 공포라는 감정으로 되어있지요. 공포는 사람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가지는 기본적인 감정입니다. 그 공포의 근원이 죽음이고요. 죽음과 마주하였을 때 느끼는 공포는 그 어떤 것과도 비견될 수가 없습니다. 지옥에 떨어져서 매일 같이 악마와 병원놀이를 한다고 해도 그것엔 미치지 못할 거에요. 그 공포가 저를 죽지 못하도록 막고 있습니다. 약의 실험단계부터 저는 자살을 시도해 왔었습니다. 흰색 약이 생기기 전에 먹었던 후유증 때문에 지금 제 왼손에는 감각이 없어요. 그 일 이후 약을 3개로 나누게 된 겁니다. 한기자님, 제가 참 우습지 않습니까? 죽기 위해서 약을 만들고, 그 약 때문에 수백 명이 죽어가고 있는데, 정작 자신은 죽지도 못하다니.”

송교수의 목소리가 쓸쓸하게 울렸고 나는 되지도 않는 위로를 쏟아냈다. 그 위로는 비단 송교수를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8

이제 이 글을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 온 것 같다. 첫 번째 약을 먹은 지 40분이 흘렀다. 난 가족들 몰래 홀로 컴퓨터 앞에 앉았고 내 앞에는 유서인지 칼럼인지 모를 글 한편이 신문사로 전해지길 기다리고 있다.

난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두 개의 알약을 내려다본다.

메일의 보내기 버튼을 누르고 약을 삼킬 때까지는 아직 여유가 남아있다. 지금처럼 1분이 느리면서도 빠르게 느껴진 적은 처음이다. 이것 역시 안정제가 들어있는 붉은 약의 효과일까.

사람들은 내가 왜 자살약을 먹게 된 것인지 의문을 가질 지도 모르겠다. 윤호에 대한 죄책감이나, 세상에 대한 한탄, 혹은 어떤 의미를 찾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는 않다.

난 아무런 생각 없이 붉은색 알약을 입안에 털어 넣었고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죽음이 약을 만드는 것인가? 약이 죽음을 만드는 것인가?

난 흰 것과 검은 것 중 하나에 손을 뻗었다. 약을 삼키는 것보다 글을 완성하는 것이 먼저이기에, 이곳에 내가 무슨 약을 먹었는지 밝힐 수는 없다. 그러나 당신이 생각하는 그 약이 아마 맞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