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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 로맨스] 재회

  • 작성일 2014-11-27
  • 조회수 1,436

 

 

   내가 그를 처음 만났던 것은 여고 3학년 늦가을 때였다. 단짝이던 친구가 집안 오빠가 군대에서 휴가 나왔는데 한번 만나보라고 소개했다. 얼마 안 있으면 졸업이라지만 아직은 학생 신분이었고 좁은 도시에서 사람의 눈에 띌까 두려웠다. 망설이는 내 마음을 알아챘는지 친구는 일요일에 시골 자기 집으로 오라고 했다. 식구도 많은 친구의 집이라니! 내가 대뜸 싫다고 하자 친구는 웃으면서 그 오빠의 집으로 갈 거라고 했다. 처음 만나는 사람을, 그것도 그 오빠의 집에서? 내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친구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보지 마! 가벼운 기분으로 한번 만나 봐! 그리고 그 오빠 엄마 혼자 사시는데 일요일에는 교회 나가시니 집이 비거든. 친구가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장황하게 부연 설명까지 했다. 친구의 안내를 받아서 간 그의 집은 흙담 위로 호박 넝쿨이 어우러져 있었고, 낡은 판자문은 반쯤 열린 채 기울어져 있었다.

 

   어느새 33년이나 흐른 것일까? 이젠 늙은이가 되어서, 나는 33년 전 그 시골 마을 골목길을 다시 걷고 있었다. 며칠 전 친구와 전화하는데 우연히 그 오빠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처음 만나던 그 모습으로 떠올렸는데 생각해 보니 그도 이제는 노인이 되었을 나이었다. 그가 정확하게 몇 살인지는 기억에 없지만 처음 만났을 때 군인이었으니 아마 나보다 두세 살 정도는 더 먹었으리라고 생각되었다. 그런데 그 오빠가 혼자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오빠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거냐고 물으니, 그 오빠 어머니 돌아가신 것이 언제 적 이야기냐며 친구는 실소했다. 그 오빠의 어머니가 아니라 아내가 죽은 것이라고 했다. 그 아내도 죽은 지 벌써 10년은 넘었다고 했다. 아내가 죽은 후 그는 옛날에 만났던 그 집에서 농사지으며 혼자 살고 있다고 했다. 자식들은 없느냐고 물으니, 딸이 둘 있는데 모두 장성해서 시집가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33년 전에 친구의 뒤를 따라서 낡은 판자문을 밀치고 마당으로 들어서자, 그는 마루에 앉아 있다가 어정쩡하게 어색한 표정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그는 허름한 쥐색 작업복을 걸치고 있었는데, 짧게 깎은 머리카락과 검게 그은 얼굴에 하얗게 드러나는 치아가 꽤 상큼한 첫인상으로 다가왔다. 친구는 우리 둘만 남겨두고 바로 가버렸다. 앙큼한 계집애. 가볍게 만나보라면서, 같이 앉아서 이야기하면 안 되나? 둘만 남겨 두고 가 버린다니. 나는 그가 안내하는 대로 마루에 걸터앉았다. 날씨는 제법 쌀쌀했지만, 한낮의 밝은 햇볕이 따뜻하게 마루를 내리쬐고 있었다. 무슨 이야기를 서로 나누었던가 내용은 기억에 없다. 다만 그가 계속 혼자 이야기하고 나는 그저 듣고만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야기하는 도중 그의 한쪽 손이 마루를 짚고 있는 내 손 근처에서만 자꾸 맴도는 느낌이었다. 서로 손등이 스칠 때 그가 말을 더듬는 것 같더니 끝을 맺지 못하고 멈추었다. 세상에나, 그가 떨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손을 치우지 않았는데도, 그가 손을 거두어 갔다.

   어색한 분위기를 떨쳐버리려는 듯 그가 앉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마루 옆 부엌 바라지 문을 열고 들어갔다. 부엌에서 그는 조그만 바구니에 삶은 밤을 담아 내왔다. 그가 밤 바구니를 내 앞으로 내밀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잡히는 대로 밤톨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어금니에 넣고 깨물었다. 물씬 풍기는 구린 냄새, 부서진 껍질 속에는 덜 찬 알맹이가 검게 썩어 있었다. 그는 자기 잘못이 아닌데도 내가 들고 있는 썩은 밤알을 보며 안절부절못하였다. 그가 밤 바구니를 뒤적거리더니 가장 크고 튼실하게 보이는 밤톨을 골라서 내 손바닥에 올려 주었다. 밤톨을 올려놓으면서 그의 손가락 끝이 내 손바닥에 닿았다. 그가 움찔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밤톨을 까고 먹고 이야기하고, 그런데 그는 계속 밤톨을 까서 내 손에 건네다는 손이 머물더니 내 손을 살며시 쥐었다. 손바닥으로 들어온 전류가 전신을 타고 돌아 나는 깜짝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그에게 잡힌 손을 뿌리치지는 않았다.

 

   그의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길은 33년 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길바닥은 콘크리트로 포장되어 있었고 주변의 집들도 초가 대신 기와집이나 슬래브집으로 들어서 있었다. 그런데도 골목길은 옛 모습을 어느 정도 간직하고 있었다. 옛 기억을 더듬으며 그가 살던 집으로 생각되는 집 앞에 멈춰 섰다. 호박 넝쿨로 뒤덮였던 돌담은 블록 담으로 바뀌어 있었고, 대문도 푸른 색 철제 대문으로 바뀌어 있었다. 바뀐 담과 대문이 낯설어, 나는 닫혀 있는 철제 대문 앞에서 쭈뼛거렸다. 지나가는 마을 사람이라도 있다면 물어서 확인하고 싶은데, 지나다니는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마을은 괴괴할 정도로 적막에 잠겨 있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나는 철제 대문을 밀어 보았다. 대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열린 대문 안으로 마당이 있고 마당 건너편에 마루가 한눈에 들어왔다. 옛날 그와 함께 앉아서 밤을 까먹던 바로 그 마루였다. 나는 자신도 모르는 새에 마당 안으로 들어서 있었다. 집 안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가 기다리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나는 마당 한가운데에 서서 한참 동안 집안을 둘러보았지만 맞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마루로 다가가서 마루판 위를 더듬어 살피다가 옛날 내가 앉았던 자리에 앉았다.

   마루 기둥에 기대앉아 망연히 눈을 감자, 아침에 욕실 안에서 거울에 비치던 내 알몸이 떠올랐다. 윤기 없이 푸석푸석한 머리카락 밑으로 핏기 없이 까칠해 보이던 나이 든 얼굴. 그런데도 가슴에는 토실토실한 젖무덤이 표주박을 엎어 놓은 것처럼 둥글게 솟아 있었다. 왜 가슴만 아직껏 나이를 먹지 않는 걸까?

 

   군대에 복귀한 그가 편지를 보내왔다. 밤을 까먹을 때는 그렇게 숫기 없던 그가 딴 사람이라도 된 듯 거침없이 편지를 썼다. 내가 그리워서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고, 나를 만날 생각으로 힘든 군대 생활에서도 용기를 얻는다고 했다. 편지를 주고받으며 점점 그가 내 몸속으로 파고들어 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뒷산에 산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던 어느 봄날, 그가 기별도 없이 불쑥 집으로 찾아왔다. 나는 산벚나무 밑으로 그를 데려갔고, 시가지가 환히 내려다보이는 산벚나무 밑에서 그가 나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엇갈린 손바닥으로 내 가슴을 누르더니 손아귀 가득 몽실한 내 젖가슴을 꼭 움켜쥐었다. 움켜쥔 손이 밤톨을 까던 날처럼 떨고 있었다. 아니 손만이 아니라 그의 몸 전체가 떨리고 있었다. 한참을 그런 자세로 서 있던 그가 나를 돌려세우고 고개를 숙여 내 입술을 더듬어 찾았다. 그의 입술이 내 입술 위로 포개지는가 하더니, 그의 단단한 혀가 내 입술을 벌리며 입안으로 파고들어 왔다. 그는 사나흘 굶은 사람처럼 혀로 내 입안 이곳저곳을 더듬고 내 혀를 자신의 입안으로 끌어들여 빨아댔다. 그의 침은 복숭아즙처럼 달콤하고 향기가 났다. 어느새 앞가슴으로 더듬어 들어온 그의 손이 내 맨살 젖가슴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빳빳하게 일어선 그의 아랫부분이, 그가 몸을 비비적거릴 적마다 내 하복부의 이곳저곳을 찔러댔다. 젖가슴을 쥐고 있던 그의 손 하나가 내 허리 아래로 더듬어 내려오더니 바지춤 속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퍼뜩 정신이 들어 그의 손목을 꽉 움켜쥐었다. 속마음을 들켜 무안하기라도 한 듯 그의 몸이 옴찔하고 굳어졌다. 나는 두 팔로 그의 목을 끌어안고 매달린 채 그의 얼굴에 내 볼을 대고 비벼 주었다.

 

   그때 그를 받아들였더라면 우리는 부부가 되어 살고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골몰한 채 한참을 기다리는데도 집주인은 쉽게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었다. 설마 오늘 내가 방문하기로 한 걸 잊어버린 것은 아닐 텐데. 얼마쯤 그렇게 멍한 자세로 마루에 앉아 있는데 웬 남자가 열려 있는 대문으로 고개를 불쑥 디밀고 들어섰다. 서로 얼굴이 마주치는 순간, 나는 자신도 몰래 아~, 하고 한숨을 터트렸다. 얼굴이 주굴주굴하고 머리카락은 하얗게 세서 쑥대강이처럼 텁수룩한 노인네가 놀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유성 오빠?’ 하지만 나는 소리를 내어 부르지는 않았다. ‘이렇게 변해버릴 수가!’ 긴 세월이 흘렀다고는 하지만 내가 기대하던 그의 모습은 아니었다. ‘키는 또 왜 이리 작아진 것일까?’ 그래도 실망스럽게 변해버린 그의 얼굴에서 옛 모습의 흔적을 더듬어보려 애쓰는데, 노인이 고개를 획 돌리며 불쑥 물었다. “유성이 어디 갔소?” 내가 알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아, 형님! 여기 와 계시는걸. 동네를 다 뒤졌지 뭐요.” 내가 머뭇거리고 대답을 못 하고 있는데, 또 한 사내가 대문 안으로 고개를 디밀고 들어섰다. “유성 오빠!” 들어서는 사내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나는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한눈에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머리칼은 반백이 되었지만, 눈과 볼과 코와 입술이 내 기억에 들어있던 그대로 내 앞에 있었다. 키도 줄지 않은 그가 “미림 씨!” 부르며 반가운 눈빛으로 다가서다가 퍼뜩 깨닫기라도 한 듯, 마당 가운데서 오뚝하니 멈춰 섰다. 우리 사이에는 흘러간 세월이 있었고, 이제는 애인 사이도 아니었다. “산장에 장작 쌓아 놓으라더니 손님 맞을 계획이었남? 군불도 때 놓고, 삶은 밤도 가져다 놓았어.” 우리 하는 양을 지켜보던 노인네가 말했다. “형님, 아침 일찍부터 수고하셨어요. 고마워요.” 그가 노인네를 치하하며 웃었다. 자리를 비켜 주어야 한다고 생각됐는지 노인네는 서둘러 가버렸다.

   “산장이 있나요?” 나는 찬찬히 그를 더듬어 보며 물었다.

   “산장은 무슨. 뒷산에다가 조그마한 집 하나 지었어.” 그가 다가오더니 내 옆 마루판 위로 걸터앉았다.

   햇볕이 내리쬐는 마루가 33년 전으로 우리를 데려다 놓았다. 나는 지그시 눈을 감고 한참 동안 침묵했다. 그도 내 마음을 느끼기라도 하는 듯 조용히 앉아 있었다. 나는 슬며시 손을 뻗어서 손가락으로 그의 손등을 건드렸다. 그가 꼬물거리는 내 손가락을 더듬어 내 손을 통째로 감싸 쥐었다. 크고 살집이 두꺼운 그의 손바닥이 따뜻하게 체온을 전해 왔다. 이제는 예전처럼 떨지도 않았다. 한때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던가? 내가 그를 마음속에 품었던 것처럼 그도 나를 담았을까? 그가 나를 사랑했다는 말은 내가 남편과 결혼한 후에 친구로부터 전해 들은 말이었다. 왜 그는 내가 결혼한 후에야 그런 말을 전해 주었을까? 그가 불쑥 찾아왔던 그 날, 산벚나무 밑에서 내가 그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내가 그를 사랑하지 않은 탓이라고 여겼던 것일까? 하지만 먼저 결혼해 버린 것은 그가 아니었던가? 왜 그는 나에게 말 한마디 없이 결혼해 버렸을까? 처음 만났던 날, 처음 집어 든 밤알이 썩어 있던 게 두고두고 생각났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 밤알이 우리의 운명을 암시한 것이라는 강박 관념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산장에 가보지 않겠어?”

   손을 잡은 채 그가 물었다. 그는 존댓말을 쓰지 않고 있었다.

   마을 골목길을 지나쳐올 때 그는 손을 놓았다. 하지만 인적이 없는 산길로 접어들자 다시 내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은 따뜻했지만, 가을 햇볕처럼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

   “포도 넝쿨을 올렸어.”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며 그가 숨이 차는 듯 잠시 쉬었다가 말을 이었다.

   “마당에는 금잔디를 심고, 벽은 크림색으로 칠하고, 현관 앞에는 아치형 터널 길을 만들었어. 터널 길 위로 포도 넝쿨을 올려서 지붕을 만들었지. 너에게 보여주고 싶었어. 꼭 한 번만이라도 그 집에 널 데려오고 싶었어.”

   그래, 그가 말했었지. 마당에는 금잔디를 심고, 크림색으로 벽을 칠한 집의 현관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아치형 터널 길을 만들고, 그 위에 포도 넝쿨로 지붕을 올리고 싶다고. 그런데 그런 집이 나를 위해서 마련하고 싶었던 것일까? 하지만 그는 왜 그때 자신의 속마음을 다 털어놓지 않았던 것일까?

   내가 친구에게 최근에 그가 지내는 이야기를 듣고 전화번호를 건네받아 전화를 넣었을 때, 그는 첫마디에 내 목소리를 알아들었다. 33년의 세월을 한꺼번에 뛰어넘어 아주 가까이에서 그가 숨 쉬고 있었다. 내 입안 가득 휘젓던 달콤한 혀의 감촉과 함께 뜨거운 숨소리의 기억이 전류처럼 전신을 타고 돌며 내 몸의 잠들던 감각을 일깨웠다.

   그에게 손을 잡혀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며, 나는 그동안 살아온 그의 삶이 궁금했다. 하지만 묻지 않았다. 그도 나의 생활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묻지 않았다. 화난 표정으로, 그는 꼭 움켜쥔 내 손을 놓지 않았다.

   구불구불 가파른 산길을 따라서 한참을 숲을 뚫고 지나자, 갑자기 시야가 터지며 아담한 집 한 채가 나타났다. 크림색 판잣집, 산장이라기보다는 오두막에 가까웠다. 울타리는 없지만, 집 주위로 단풍나무며 소나무, 상수리나무, 아카시아, 억새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포근한 분위기로 감싸 안고 있었다.

   타오르는 불빛처럼 환한 금잔디 마당을 가로질러 징검다리처럼 띄엄띄엄 깔린 널돌을 디뎌 가자, 그가 자랑하는 포도 넝쿨을 올린 아치형 터널 길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포도 넝쿨 지붕 밑에서 우리는 잠시 멈춰 섰다가. 그가 이끄는 대로 크림색 나무문을 밀치고 현관 안으로 들어섰다. 현관 옆으로 조그만 신발장이 놓여 있고, 마루 무늬 장판을 깐 거실이 먼저 우리를 받아들였다. 거실 안쪽에는 뒤창이 있고 그 창 밑에 탁자가 놓여 있었다.

   “우리 따끈한 차나 한잔 할까?” 탁자 앞에 이르러서야 그가 겨우 잡은 손을 놓았다. 거실 옆으로는 복도처럼 좁은 주방이 보이고, 그 옆으로는 안방인 듯, 손잡이 달린 문이 보였다. 나는 그가 주방에서 차를 끓이는 동안, 뒤창으로 가서 뒤뜰을 내다보았다. 뒤뜰은 그대로 산으로 이어지고 있었는데, 커다란 은행나무 한 그루가 우뚝 솟아 있었다. 노란 은행잎이 나무 밑에 떨어져 소복하게 쌓여 있었다. 은행나무 주변의 활엽수들은 아직 잎사귀가 무성한 채 붉게 물든 단풍으로 불타는 듯했다. 아름다운 절경에 정신없이 빠져들고 있는데, 누군가 뒤로 와서 끌어안았다. 33년 전에 느꼈던 그의 손길이었다. 가볍게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어 꼭 조이며 두 손바닥으로 내 젖가슴을 눌렀다. 아침에 거울 속에서 봤던 보름달 같던 내 젖가슴이 그의 손을 기억하는 듯, 껴입은 코트 밑 티셔츠 속에서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그의 품속에서 뒤돌아서자, 그의 입술이 거침없이 내 입술을 더듬었다. 다 늙은 사람들이 키스는 무슨 키스? 깜작 정신이 들었지만, 이미 내 입안으로 파고들어 온 그의 혀는 옛날처럼 달콤했고, 주름을 보기에는 그의 얼굴이 너무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그가 내 코트를 벗기고 티셔츠를 말아 올렸다. 활짝 드러난 내 젖가슴에 얼굴을 묻고 젖꼭지를 빨았다. 아랫배로 쩌르르 전류가 타고 돌았다. 나는 젖을 빨고 있는 그의 머리를 두 팔로 감싸 안았다. 순간 그가 나를 번쩍 들어 올려 탁자 위에 눕혔다. 젖꼭지를 빨면서 한 손바닥으로 배꼽 언저리를 쓰다듬더니 내 바지춤을 들추고 사타구니로 더듬어 들어왔다. 잠시 움찔했지만 나는 예전처럼 그의 손을 잡지는 않았다. 그는 거침없이 내 사타구니를 손바닥으로 더듬더니 내 도드라진 둔덕을 손아귀 가득 움켜쥐었다. 이어서 미처 저항할 사이도 없이 곧추선 그의 중심이 내 샘 속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왔다. 전희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의 중심을 받아들인 내 샘 안은 온통 환희의 눈물로 젖어 있었다. 33년 만에 우리는 그렇게 우리 사랑의 마지막 부분을 완성했다.

   창밖에서 까치 소리가 들렸다. 앙상하게 잎이 져버린 은행나무 가지에 까치 한 마리가 앉아서, 창 안의 우리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가 나의 상체를 일으키더니 가슴 가득 나를 끌어안았다. 내 샘 안을 그의 생명체가 꽉 채우고 있었다. 우리는 자세를 계속 유지하며 가슴을 밀착했다. 그가 내 귓전을 입술로 더듬고 입안 가득 귓바퀴를 머금더니 볼을 맞대고 격렬하게 비벼댔다. 가까이 좀 더 가까이, 우리는 서로에게 밀착해서 영원히 한 몸인 채로 굳어지고 싶었다. 은행나무에는 지켜보던 까치도 날아가 버리고, 텅 빈 산 속은 붉은 단풍만 흐드러지던 늦가을 오후였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