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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빠의 두번째 결혼

  • 작성일 2014-12-17
  • 조회수 455

큰 아빠의 두번째 결혼

 

내일이면 추석이다. 혼자 부엌에 서 끊임없이 음식을 만들어낸 엄마가 퀭한 눈을 달고 이불 속으로 쓰러져 들어왔다.  아빠가 불을 껐다. 어둠속이였지만 엄마의 눈두덩이에는 훨씬 짙은 어둠이 들어 있었다. 나는 잠속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엄마와 아빠가 소곤대는 소리가 들렸다.

  • 내일 형수 될 사람 온대.

  • 형수 될 사람? 응… 그나저나 잡채 다 못했네. 너무 피곤해서.

엄마의 코고는 소리가 피곤하다. 아빠는 몸을 여러번 뒤쳑이는지 이불 부스럭 거리는 소리를 계속 내고 있었다. 그러다 결국 엄마를 등지고 돌아누었다. 아빠는 허공에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리고 또 내쉬었다. 다시 내쉬었다. 나는 아빠 한숨소리에 잠이들었다.

*

추석날  오전, 차례가 끝나고 제사상이 치워지고 있었다. 나와 아빠는, 엄마를 도와 상을 가득 메운 제사 음식을 부엌으로 나르느라 분주하였다. 형제가 없는 외동인것에 대해 좋다거나 싫다거나 한번도 깊이 생각해 본적은 없었지만 오늘 같은 날은 한명 정도는 있었으면 했다. 사촌도 없으니 엄마를 돕는 일이 제법 힘들었다.

그러고보니 사촌이란게 처음부터 없었던 건 아니었다. 큰 엄마가 있을때는 사촌 누나하고 사촌 형도 함께였다. 사촌누나하고는 8살, 사촌 형하고는 5살차이였다. 엄마는 나를 어떡하든 사촌들과 잘 어울리게 하려고 처음보는 알록달록한 지팡이 사탕이나 초코를 마음대로 찍어먹을 수 있는 과자같은 것을 가져와서 사촌 들 보는 앞에서 내 손에만 쥐어주었다. 그러면 사촌들이 내게 다가와 과자를 구경하고, 나눠 달라고 하고, 그렇게 셋이 어울리게 하는 게 엄마의 계획이었던 것 같았다. 엄마가 자리를 비우면 그 과자는 어느새 내 손에서 사촌 누나의 손에 가 있었고 누나의 동생이던 사촌 형이 그 옆에서 누나의 겨드랑이에 머리를 파묻고  과자를 먹고 있었다. 나는 그들하고는 멀찍이 떨어져 혼자 레고 블럭으로 자동차를 만들고 있었다. 그런 모양새로 있던 나는, 혹시나 해서 뾔금 들여다본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그런 일이 몇번있고는 지팡이 사탕은 오로지 집에서만 먹을 수 있었다.

  사촌누나와 형이 사라졌다. 5년전 큰아빠와 큰 엄마가 이혼을 하면서 큰 아빠 집에 가도 사촌누나와 형을 만날 수 가 없었다. 큰 엄마랑 살고 있다고만 들었다. 사촌도 가족이니 늘 사이좋게 지내라던 엄마나 아빠 , 할머니, 고모들은 큰 엄마와 사촌들이 사라진 것에 대해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눈치있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부터는명절에 십대라고는 나 혼자겠구나 생각했다. 작년부터는 원래 그들이 없었던 것 같기도 했다. 대신 나는 엄마의 일을 도우며 받는 친척들의 소나기 칭찬과 두둑한 용돈에 몰두했다.

큰엄마와 사촌들의 부재는 부부의 결혼으로 구성된 가족이 이혼을 통해 사라질 수 있음을 수학문제처럼 정확하게 증명해주었다. 간단했지만 난 뭘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 알길이 없었다.  그렇다고 내 주변에는 누구도 그럴 만한 능력을 갖고 있는것 같지도 않았다.

  아침식사가 끝나고 거실에 아빠, 엄마, 할머니, 큰아빠, 나 이렇게 모여 커피를 마셨다. 나도 믹스 커피를 한잔 했다. 큰아빠가 쇼파 중앙에 앉았고 옆에 할머니가 콩이 가득 들은 다라이에서 콩을 고르고 계셨다. 깨지거나 쭈글거리거나 하는 것들은 옆으로 따로 두셨다. 불려서  닭을 주신다고 했다.할머니는 음식 버리는 걸 도둑질과 같은 레벨로 생각하는 분이시다.  한번은 내가 먹다 남긴- 국물만 남은 - 김치찌개를 엄마가 버리는 것을 보고 집안 말아먹을 년이라며 욕을 하신 적이 있었다. 큰아빠  다른 편으로 아빠가 티비를 보고 있었고 나는 아빠  다리에 등을 붙이고 앉아 친구들과 카톡을 주고 받고 있었다.

  갑자기 티비소리를 뚫고 큰 아빠의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들렸다.

  • 오늘, 점심 때 올겁니다.

  • 커피로 할까요 아니면 차로 할까요?

엄마는 조그맣지만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큰아빠에게 물었다.

  • 제수씨 편한것으로 하세요. 다 괜찮습니다.

  큰아빠는 엄마에게 고마워하는 미소를 지었다. 아빠는 입을 지퍼로 채운채 티비 채널을 돌려대기 시작했다. 나는  채널이 돌아갈때마다 번쩍거리는 화면이 거슬려서 아빠손에 있는 리모콘을 잡아챘다. 아빠는 그제야 큰아빠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는 콩 고르는 일에 여전히 열중하시면서 마치 남의 집 손님 이야기하듯 멀리 말씀하셨다.

  • 점심때 온다고야? 개고리 끓일란다.

  • 그 사람 개고기 못 먹는거 어제 말씀드렸잖아요.

  • 여자 혼자 식당하고 살았으믄…

  • ......

  • 같이 살던 남편이 죽었담서, 자석도 둘 썩있고. 니 누이한테 들었고마.

  • ......

  • 여작도 남자 홀랑 벗겨불고 날라뿌는 여시들이 겁나 많아야.

듣고만 있던 큰아빠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 만나보지도 않고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세요. 좀!

큰 아빠는 두 콧구멍으로 뜨거운 바람이 나오는 것이 보일 정도로 화가 나 있었다. 그런 큰 아빠를 할머니는 못 보신건지, 안보신건지 여전히 콩 손질에만 열중하고 계셧다.

  • 그런말 할거면 나.가.세.요.!!”

큰 아빠는 벌겋게 된 얼굴로 두 주먹을 쥔채 할머니에게 쩌렁쩌렁하게 대들었다. 51세의 큰 아빠는 이십대의 작은 외삼촌 처럼 보였다. 할머니도, 나도 안보이는 듯 큰아빠는 소리를 질러댔다. 눈이 빨개진게 굉장히 흥분해 있었다.

  할머니가 놀라 큰 아빠를 쳐다보았다. 엄마는 놀란 나를 감싸 안았다.

  갑자기 할머니가 콩을 들고 일어나셨다. 콩이 무거우셨는지 허리를 한껏 굽히셨다. 평소같으면 큰아빠가 거의 반사신경으로 튕겨 콩을 대신 들었겟지만 지금은 꼼짝을 안했다. 아빠도 정지 상태였다. 나라도 해야 하나 했는데 엄마가 할머니한테 얼른 다가갔다.  “이리 주세요!”하며 콩을 들으려는 순간이었다.

  할머니는  발악하는 늙은 고양이처럼 ‘됬다!’ 찢어지는 쇳소리를 지르며 엄마에게서 콩을 획 뺏어왔다. 바로 그때, 할머니가 휘청이시더니 할머니가 들고있던 콩들이 쏴르르 쏟아졌다. 거실바닥은 콩바다가 되었다. 할머니가 너무 쎄게 잡아 당긴 거였다. “어맛!” 엄마는 비명을 질렀고 여기저기 살아있는 것 같이 튀어다니는 콩들 사이에서 나는 할머니 다리가 덜덜 떨리는 것을 보았다.

엄마가 “어떡해, 어떡해.” 안타까움에 어쩔 줄 모르며 콩을 주워담고 있는데,

  • 다 갖다 버렷 뿌러라!

할머니가 별안간 엄마 손에 있는 콩들을 바닥에 확 내던졌다. 콩들이 바닥에서 쏴르르  쏴르르 사방으로 어지럽게 구르고 튀었다.

  • 하필 온것들이 쏟아질 게  뭣이여!

할머니는 신경질이 뒤섞인 거친 숨을 뱉으며 현관문을 쾅! 닫고 나가버리셨다.

순간 아메바가떠올랐다. 단 세포인 이 녀석은 감각과 행동이 같은 세포속에 존재한다. 무엇인가를 느낌과 동시에 즉시 반응 한다는 것이다. 인식하고 관조할 수 없게 만들어진 가엾은 아메바가 할머니와 겹쳐졌다.

*

엄마는 화장을  하고 있었다. 명절에는 어차피 기름에, 땀에 다 지워진다고 엄마는 절대 화장을 하지 않았다. ‘지금도 개 고생하고 있으니, 뭔가 나에게 더 요구하려거든 내 얼굴을 먼저 보라.’는 엄마의 소심한 반항같은 거였다.

“어디 간다냐? 벌써 가려는 건 아니재?”

호박을 썰던 할머니가 엄마를 놀란눈으로 바라보셨다.

차례를 지내고 매번 같은 때에 시골집을 떠나와도 할머니는 도저히 그것이 습관이 될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매번 처음인냥 낯설어 하시면서 “벌써 가려는 건 아니재?”라고 물으셨다.

한번은 시댁에서 일치감치 돌아온 고모가 할머니와 다정히 잡채를 나눠먹는 것을 보고,  엄마는-  할머니 성화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추석날 저녁을 준비하고 있던 - 어이없는 표정을 짓더니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적이 있었다.

  • 저희 이제 그만 가봐야겠어요.

핏기가 싹 가실정도의 바짝 마른 음성이었다.

  • 너만 가라…...

할머니는 엄마를 똑바로 바라보며 진심을 전달했다. 할머니는 정직한 순간에 늘 자연스럽고 침착했다.

나는 놀랐고 아빠는 기겁했다. 아빠는 허둥대며 미쳐 잠그지도 못한 가방을 들고나와,  나와 엄마를 차에 태우고 서둘러 큰 아빠 집을 나섰다. 내 핸드폰 충전기를 놓고 왔다는 다급함을 알리지 못할 정도로  차 안은 너무 덥기도 하고 너무 춥기도 했다.

  • 화났어? 난 엄마를 살폈다.

엄마는 메마르게 웃었다.

  • 어떻게 그렇게 다 까보이실 수가 있니? 호호호.

  엄마의 눈두덩이가 퀭해지고 검어졌다. 나는 엄마가 쓸쓸해 보였다.  할머니에겐 나하고 아빠만 가족인 것 같았다. 나는 엄마에게 미안했다. 왜 내가 미안해야 할까는 잘 몰랐지만 서둘러 정리해버리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할머니 댁에선 손님이면서도 부엌에서 나오지 못하는 엄마였다. 할머니에게 엄마는 낯선 가족이었다. 아들이 데리고 온 여자, 손자의 엄마, 할머니 입장에서보면 엄마와는 직접적인 접촉의 면이 없었다. 할머니에게, 며느리라 부르는 이 젊은 여자는 아들과의 관계에 의해 언제든 분리될 수 있는 느슨한 관계였다. 엄마에게도, 어머니라 부르는 할머니는 남편과의 연결에 의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사람이었다.

  • 형님 될 분, 아니 손님 오신다고 하셔서요.

  • 너라도 그러고 있어야재.

할머니 손에서큰 늙은 호박이 조각나고 있었다.

  • 어머니도 옷 갈아입으셔야지요?

  • 늙은이는 다 필요없는 거여. 젊어야 이삐재. 늙으면 얼렁 죽어야 하는 거여.

할머니가 입고 있는 구멍난 낡은 런닝이 내 눈에 들어왔다. 익숙한 차림이었지만 손님이 방문한다는  오늘은 그것이 할머니의  입가 주름만큼이나 후줄근해보였다.

엄마는 더 이상 할머니에게 권유하지 않았다. 엄마가 아빠와 나에게, 거실 청소를 하라며 청소기와 걸레를 건네 주었다. 아빠는 청소기를 돌리면서 계속 투덜 거렸다.

  • 난데 없이 웬 청소야, 그냥 사는 그대로 보여줘야지. 가족될 사람인데 뭘!

청소기 소리에 자신의 말이 묻히는 것을 알면서도 아빠는 청소가 끝날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아빠의 가족이 된다는 것은 할머니가 캭 하고 뱉어놓은 누런 가래가 담긴 휴지들을 그대로 보여줄 권리와 그것을 봐야할 의무가 부여된다는 것이었다.

*

밖에 나갈라요?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태운 휠체어를  방에서 거실로 밀고 나오셨다. 따뜻한 햇살을 좋아하는 할아버지는 현재  정신연령이 네살에서 다섯살이며 해마다 어려지고 있다고 했다. 엄마 말로는 5년전 치매 판정 이후 급격히 과거를 잊기 시작하셨고, 이제는 할머니를 뺀 나머지 가족들은  알아보지 못한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게 환갑때 찍은 가족사진을 보여주며,

하루에도 몇번씩,

  • 야가 누군지 아시요? 야가 명석이요, 야는? 순이요, 야는? 용석이 색시고,

하신다. 명석이는 아빠, 순이는 고모이고 용석이는 큰 아빠이다. 할아버지가 가족을 잊지 않도록 하시는 것이었다. 사진속에서 할아버지는 매일 아니 매 순간 새롭게 가족을  만들고 있는 듯 했다, 비록 내일이 되면 아니 오후가 되면 잊혀질 가족이긴 하지만.  할아버지 환갑잔치는 엄마와 아빠가 결혼하기 전에 치뤄진 일이었고 따라서 나와  엄마는 그 사진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 사진속에는, 지금은 이 집에 오지 않는 큰 엄마와 큰 엄마 품에 안겨있는 사촌 누나와 사촌 형이 할아버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

손님을 태우러 갔던 큰아빠의  차가 마당에 도착했다. 나는 살짝 긴장이 되었다. 할머니는  손님과 큰 아빠가 걸어들어오는 것을 거실창을 통해 보시더니 끓는 개고기가 있는 마당으로 나가버리셨다. 할머니가 뚜껑을 열자 된장에 익어가는 개가 바람을 타고 거실로 달려들었다. 나는 웁 !하고 손으로 코와 입을 막았다. 하필 그때, 손님과  큰아빠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거실을 점령한 개 냄세에 코를 쥐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손님과 눈이 마주친 나는 몹시 당황했다.

큰아빠는 해바라기를 하시던 5살 할아버지께 큰 소리로 손님을 인사 시켰다. 할아버지는 귀도 잘 안들리셨다.

  • 아버지, 결혼할 여자예요.

할아버지는 손님을 촘촘히 살피더니 품에 안은 가족사진으로 옮겨가 손님을 찾기 시작했다. 한참을 그러고 있던  할아버지는 사진에서 손님을 찾을 수 없자 창밖으로 고개를 돌려버리셨다.  할머니가 사뭇 마당에 쭈그려 앉아 끓는 개고기만 바라보고 계셨다.

  엄마가 능숙하게 커피와 과일을 가져왔다.

  큰 아빠는 이미 잘 섞인 커피를  계속 젓고 있었다. 거실에는 침이 넘어가는 소리, 아빠에서 큰 아빠로 다시 아빠로 이어지는 헛 기침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마당에는 늦 여름 매미가 발악하며 울고 있었고, 마당을 지키는 누렁이가 컹컹거리고 있었다. 큰아빠, 엄마, 아빠, 손님도 아무말이 없었다.

엄마는  마당에서 끓는 개 앞에 쪼그린 할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무엇인가 결심한 듯 손님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웃었다.

  • 오시느라 힘드셨죠? 환영해요. 저는 준하 엄마에요, 김 수현이라고해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 김춘희에요.

  • 성함이 예쁘세요. 나이는 어떻게? 아…다른게 아니고 저 보다 어려보이셔서요. 호호호.

분위기를 띄우려는 속셈이 노골적인 멘트였다. 내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였다. 손님의 흰 머리가 햇빛에 반짝였고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만들어낸 그림자가 검버섯처럼 거뭇거뭇했는데도 말이다.

  • 용석씨보다 두살 아래요.

  • 그러세요? 그렇게 안 보여요, 요즘 애들말로  완전 동안이세요. 아차, 여기는 준하아빠고요, 여기는 준하, 올해 열일곱이에요. 준하야 인사해라. 큰 엄마셔.

나는 일어나서 손님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손님은 방긋 웃으며 내게 악수를 청했다.

  • 착하게 생겼네. 이제부터 우리는 가족이니까 잘 지내보자.

손님이 들어간 가족 사진을 다시 찍으면 할아버지 품안에도 하나 안길 것이다. 할아버지는 용석이 색시 얼굴을 새로 익혀야 할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어눌한 말로 할머니에게 항의할 것이다. “아니여, 아니여.” 라고. 큰아들의 며느리를  순식간에 바꿔치기 당한 기분을 나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큰아빠는 창문으로 할머니를 계속 흘끗 거렸다. 엄마는 그런 큰 아빠를 보고 내게 “할머니 들어 오시라고 해라”,며 심부름을 시켰다. 쭈구려 앉아 개를 보고 계시는 뒷모습에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발로 마당을 긁었다. 그 소리에 할머니가 내 쪽을 돌아보셨다. 연기때문이지 할머니 눈가에 눈물이 얼룩덜룩했다.  나는 ‘할머니 들어오시래요.’ 를 단숨에 말해버리고는 거실로 뛰어 들어왔다.  할머니는 다들 안오시겠구나 생각하고 있을때 들어오셨다. 할머니가 거실 쇼파에 앉으셨다. 엄마가 손님에게

  • 어머니세요.

라고 소개를 하자 손님은 일어나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를 했다.

  • 안녕하세요.

할머니는 손님을 아래위로 훑어보셨다. 그리고는 아무말도 하지 않으셨다.  며느리라는 연결고리를 다시 셋팅해야만 하는 손님에게서 할머니는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할지 마음속에서 이것저것 찾고 있는 눈치셨다. 가벼운 녹내장이 있는 할머니의 눈동자가 좌우로 부르르 떨리면서 혼탁해졌다. 할머니는 뿌옇게 되는 시야를 바로 잡으려고 자꾸 손으로 눈을 비비셨다.

  자기 결정이 단 일퍼센트도 들어가 있지 않은 새로운 연결고리에  할머니는 버거워 하시는 듯 했다. 나는 그런 할머니에게 동질감 같은 것을 느꼈다.

처음 누군가와 연결되는 것이, 동시에 가족이 된다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할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몸을 틀어 손님을 반쯤 등지게 고쳐 앉으셨다. 적개심을 애써 누르는 어린아이처럼 말이다.

할머니가 접시의 한과를 상에 대고 부쉈다. 이가 안좋은 할머니가 한과를 드시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할머니는 부순 한과를 드시지 않고 다시 새거를 꺼내 상에 대고 부쉈다. 할머니 손에서 녹은 끈적끈적한 한과 가루들이 지저분하게 상에 굴러다녔다.

*

  띠릭띠릭 현관문에서 전자음이 들리며 큰 아빠 옆집에 사는 고모와 고모부가 들어왔다.

  • 시댁에서 이자 오냐. 일찌감치 와부렀네. 일쩍하게 오니 참 좋다.

  • 응, 우리집은 아침 먹고 헤어져. 그렇게 해야지 안 그러면 명절에 차 막히고 못써.

나는 고모 이야기를 들으며 커피잔에서 눈을 못떼고 있는 엄마를 얼굴을 살폈다.

고모가 손님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큰 아빠가 올케 될 사람이라고 소개하자 고모는 손님과 목례를 나눴다. 그 뿐이었다. 고모는 할아버지한테 다가가더니 높은 톤의 목소리로 깔깔댔다.

  • 아버지, 뭐 좀 잡쉈어요? 내가 누구지 알아요?

할아버지는  선뜻 말하지 못했다. 사진에서 고모를 찾고 있는 중일 것이다. 시간이 좀 걸리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사실 내가 큰 아빠 집에 있는 동안 고모가  할아버지 근처에 간 것을 보지 못했다. 그런 고모가 갑자기 할아버지에게 왜 이렇게 다정하게 대하는지 의아했다. 고모는 손님쪽으로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할아버지와 할머니하고만 대화를 했다. 할아버지가 뒤늦게 고모를 알아보고 고모를 향해 다정하게 웃어보이자,  고모는 굉장히 기분이 좋은지 목소리가 한 옥타브 더 올라갔다.

  • 그래 아부지, 나 순이. 요플레 드실래요? 맛있죠?

할머니와 고모의 감정의 물줄기는 한 곳에서 발원하듯 생김새가 같아 보였다.

고모부가 난처한 얼굴로 고모를 불렀다.

  • 그만 이리와 앉지.

  • 됐어!

고모는 날카롭게 쏘아붙이고 계속 할아버지 옆에만 있었다.

  • 어허, 고집부리지 말고.

고모부는 고모에게 조용히 화를 냈다. 그래도 고모가 꿈쩍하지 않자 체념하고서는 손님에게 조곤조곤 말을 걸었다.

  • 안녕하세요. 형님에게 말씀 들었습니다. 고향은 어디세요? 식당하는 거 힘드시지 않으세요?

  • 문경이에요. 식당은 단골들이 있어서 그럭저럭 유지하고 있어요. 이젠 인이박여 할 만 해요.

  • 두 분 어떻게 만나셨어요? 형님이 좀 무뚝뚝하죠? 남자가 보면 진국인데 여자들은 매력없어 합니다. 하하하..

  • 사진 동호회에서 친구처럼 만났어요. 그러다가… 진중하고  서로 사정 다 알고,  외롭고 그러다보니....

  • 그렇죠 인생 뭐 있습니까… 세상 풍파 같이 맞을 좋은 옆 지기 하나 있으면 그걸로 된 거죠... 하하하.

엄마도 어느새 고모부와 손님이 나누는 음식얘기, 날씨 얘기에 한껏 껴들어갔다.

  • 어머, 들깨 삼계탕? 그런것도 하세요? 형님. 대단하시다.  한식당 하시니 못하는 음식이 없으시네요. 전 맨날 부엌에 살다시피해도 맨날 뭐해 먹나 하는데... 호호호

  • 말 나온김에들깨 삼계탕으로 저녁 제가 준비할께요, 별로 어렵지도 않은데요 뭘. 재료도 제가 챙겨왔거든요.

  • 아이고 제가 신납니다. 이제 처남댁이 해주는 들깨 삼계탕, 벌써 부터 입에 침이 흥건한데요, 복날에만 먹으라는 법 있습니까?

들깨 삼계탕이라면 엄마가 몇번 해준적이 있었는데 나는 엄마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진지하고 즐거워 보였다.

*

17년을 살며 외할아버지를 만나본지 못한 나는, 올초 엄마에게 그분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었다.

  • 돌아가셨다는 말은  이제  하지마요, 내가 가족관계 증명서 다 확인해 봤으니까.

 가족 관계 증명서란 단어에  엄마는 이제 내게 진실말고는 아무것도 통하지 않는 사실에 굴복했다.  그리고선 엄마는 소녀의 말간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았다.

*

  • 인사드려. 이제부터 네 아빠야.

엄마는 내가 중학교 2학년인 16살때  새 아빠를 선물해 주었다. 그는 나의 생물학적 아빠보다 젊었고 무척 선한 인상이었다. 나는 웃지 않아도 웃고 있는 사람을 태어나서 처음 보았다. 그는 나와 남동생를 항상 웃으며 쳐다보았다. 나는 그의 표정이 헷갈렸다. 멍하니 있어도 그는 웃고 있었다. 매운 고추를 먹다가 얼굴이 벌개져 물을  정신없이 들이킬때도 그의 표정은 스마일이었다. 동생은 그런 그를  수박같다고 했다. 겉은 초록색인데 안은 빨간색,

  • 뿌갈라 봐야 알 수 있는 게 수박하고 똑같애.

아빠라는 게 이렇게 바꿔치기가 가능한 것인지, 나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피가 섞어야 아빠인데. 부모와 자식은 시작을 알 수 없을 만큼 오래된 유전자를 찻 숟가락에 탁구공을 넘기듯 주고 받는 사이인데. 세상엔 아빠가 하나가 아닌 거였다. 이번엔 아빠가 바뀌었으니 다음번엔 누가 바뀔지 몰랐다. 혈연이 동반되지 않는 나와 그의 관계가 가족인지가 헛갈리고 혼란스러웠다.

그래도 나는 그를 ‘아빠’라고 불러야 했다.

  • 아빠라고 불러!

젊은 엄마는 그에 대한 호칭 문제로  동생과 나를 매일 윽박질렀다. 아빠라고 말을 자꾸해야 익숙해 진다고 했다. 익숙해져야 정이 든다면서. 나는 ‘아’하고 ‘빠’는 따로 말할 수 있었지만, 그를 보며 ‘아’와 ‘빠’를 붙여 말할 수가 없었다. 혼란은 나의 사고를 헝클어놓았고 그 영향으로 언어를 담당하는 뇌의 한 부분이 묘하게 망가진거 같았다. 진짜 맹세하는데 난 생물학적 아빠를 무척 싫어했다. 아니 증오했다고가 맞을 것이다. 술을 먹고 엄마를 때렸다. 술을 먹지 않을 때도 엄마를 때렸다. 아빠는 자신의 아내에게 그리고 자기 자식의 엄마에게 파이프를 휘둘렀다. 타격감에 취한 아빠의 표정은 묘했다. 여리한 젊은 엄마의 온몸은 파란색으로 물들었다가 보라색으로 변하고 다시 노란색으로 그리고 다시 파란색으로 뒤덮였다. 엄마는 가족이니까 타인의 무자비한 폭행을 관대한 마음으로 용서할 수 있었고 아빠는 가족이니까 다음날 다시 파이프를 들수 있었다. 집에 엄마가 죽어있으면 어떡하나를 걱정하면서 차라리 미쳐버릴까를 생각하던 즈음이였다. 룰렛 게임처럼 모든 것을 운에 맡겨야 하는, 내겐 그것이 가족이었다.

  엄마는 아비 없는 자식을 만들 수 없다면서 견디고 견뎠다.  결국 주먹으로 맞은 엄마의 한쪽 눈이 실명이 되면서, 비로소 나는 아비 없는 자식이 될 수 있었다. ‘아’,’빠’라고 불리워야 하는 그는 우리에게 살갑지 않았다. 그렇다고 화를 내지도 않았다. 나와 남동생은 그가 화를 냈으면 악을 쓰며 분노했을텐데도,  그러지 않은 그에게 섭섭함을 느꼈다. 그가 우리를 살갑게 챙겼더라면 부담스러워 했을 텐데도 오히려 그러지 않은 것에 나와 남동생은 흰자를 드러내며 그를 쏘아보았다.

  점점 그의 웃는 얼굴은 그늘이 지고 푸석해보였다. 엄마가 우리에게 내지르는 잔소리에도 끊임없이 그를 ‘아’,’빠’라고 부르는 나였다. 그런 나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나를 통과해 나의 뒷편 어디를 보고 있는 듯 했다.

그럴때면 얼음 물 한방울이 내 등뼈를 타고 주르르 미끄러져 내려가는 듯 했다. 어린 동생은 말로 할 수 없는 혼란을 동물적으로 감각하며 매일의 악몽으로 견디고 있었다. 나는 젊은엄마에게 동생의 상태를 알렸다.

  • 그 사람때문에 준영이가 아파. 매일 밤 소리를 지른다고!

엄마는 나에게 도리어 날카롭게 화를 냈다.

  • ‘그 사람이 뭐야! 아빠라고 하라고! 아빠를 붙여서 다시 얘기하봐. 아빠, 아빠.!’

엄마의 불같은 일갈에 어린 남동생은 숨이 넘어갈 듯 딸꾹질을 해대며 울어댔다. 나는 귀를 틀어막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비명을  질러댔다.

  • 싫어! 아빠 아니야! 다 집어치워!

기척도 없이 들어온 ‘아’,’빠’가  현관문에 서 있는 것이었다. 이 모든 소란을 감내하고 있었다.

  그 일이 있고 일주일이 지났을 때 . 그가 우리 집을 떠났다. 나는 그가 처음 아빠라는 이름표를 달고 왔을때도, 그것을 자진 반납하고 떠날때도 머리속에 드는 수만가지 생각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멀뚱댔다.

  엄마는 틈만 나면 울었다. 그것도 나와 남동생 앞에서 유독. 나는 엄마에게 죄책감이 들었다. 엄마는 우리의 얼굴을 -  죽을 죄를 지은것 같은 - 엄마는 수시로 원했다. 나는 직감으로 알아차렸다, 그것이 그녀의 실연 치유에 적잖이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을.

그런것쯤, 나는 상관없었다. 솔직히 더 이상 그를 아빠라고 부르지 않는것에 나는 깊이 안도했다. 그의 나이보다 한살이 많은 지금의 나는, 나를 관통했다고 생각한 그의 시선이 단지 내 생각은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 가족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 치고는 그에게 길고 과했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때 나는 어렸어’ 라는 단순한 이유로 매듭지을 수 있을까. 그가 떠난 10월 중순이 되면  소용돌이가 나를 휘돌아친다.  혼란을 쌩으로 감내해야 했던 젊은 엄마와  나와 남동생의 이미지가 기억속에서 춤을 추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칠십의 노인으로 살아가고 있을 ‘아’,’빠’에 대한 부채감이 또아리를 틀고 나를 노려보곤  한다.

*

" 낳고 싶어요. 애 하나는 낳아야지. 안 그래?

오십일세인 큰 아빠가 손님을 웃으면서 바라보았다. 엄마가 옆에서 놀란 얼굴을 했다가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았다.

  • 낳으세요. 꼭 낳으세요. 진심이예요. 제가 유모차 맡을께요.

고무부가 농담처럼 빙글빙글 가족계획을 물어본게 문제였다. 엄마가 울려고 하니까 큰아빠가 당황했다. 나는 엄마가 창피했다 아빠는 여차하면 엄마를 데리고 나갈 기세였다. 엄마의 목소리가 꿀렁꿀렁해졌다.

  • 하고 싶은거 다 하세요. 혼인신고만 하지 마시고요, 면사포도 쓰시고요. 정관수술 하신거 까짓 풀면 되요. 화성도 살러 가는 세상이에요. 애 가지는 거 그거 못하겠어요.

손님은 엄마의 말에 마치 이때를 위해 꾹꾹 눌러 놓았다는 듯이 울음을 왈칵 쏟았다. 큰 아빠가 손님의 어깨를 사랑스럽게 끌어안았다.

  손님이 아기를 낳으면 나에게 사촌 동생이 생기는 것이다. 가족은 나무 가지처럼 뻗어가기도 하고 순식간에 꺽여 화목난로의 연료로 사라질 수 있다. 다른 인간관계와 달라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는 창문 너머 끓고 있는 개를 바라보았다. 그 옆 누렁이는 개고기가 졸아 냄세가 짙어지자, 자기 꼬리를 물려고 뱅글뱅글 도는 퇴행반응을 보였다.  누렁이는 코에 흘러들어온 이 희한한  냄세를 내부에서 어떻게 느껴야 할지, 자신을 무슨 수로 납득 시켜야 할지 고민하는 듯 했다.

  혈통을 알 수 없는 누렁이가 솥 단지 안에 끓고 있는 개와 한번 쯤 가족으로 스치지 않았을까 하는 잔인한 생각을 나는 해보았다. 누렁이의 혼란한 눈빛과 할머니의 뿌연 눈동자가 어딘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