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목(老木) 속에 사는 사람들
- 작성일 2015-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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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목(老木) 속에 사는 사람들 / 흑 비
파손된 삶을 주어 담아 고향을 찾아갔다.
매듭진 인연들이 포승처럼 가슴을 조여와
당분간 뒤돌아보지 않겠노라 다짐하면서,
흙냄새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작은 방에서
가지고간 몇 권의 책을 들추고 있는데
어느새 문 틈 사이로 어둠이 스민다.
칠흑같이 어두운 산골의 밤
날 찾아올 이 없으련만
밤하늘에 떠있는 달님만은
날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하여
기대감 실은 손이 슬며시 봉창 여는데
적요에 묻혀가는 산골 어둠속에
우두커니 서 있는 팽나무 한 그루
이제 세월이 버거운지 등을 구부리고
가쁜 숨 몰아쉬며 길 떠날 채비 한다.
밤이 점점 깊어지자
늙은 팽나무 움푹 파인 가슴속에서
낯익은 사람들이 하나 둘 걸어 나온다.
영칠할배, 순희할매 , 순돌이도 나온다.
저들이 걸어가는 발자국이
함께했던 추억들을 인화하고 있다.
하나 둘 추억을 읽어가고 있는데
하나뿐인 성냥개비 타들어가듯
팽나무 속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안타까운 그리움 되어 서서히 사라져간다.
난로 깨진 눈보라 속으로 걸어 갈 때
서로 껴안고 추위를 녹여주던 그 情이
그 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내 영혼의
텃밭, 한 귀퉁이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
늙은 팽나무 속에 사는 사람들이
파괴된 나의 삶을 치유하고 있나보다
포승줄 같았던 인연이 따사롭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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