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이재룡, 「소설, 때때로 맑음」

  • 작성일 2015-03-22
  • 조회수 1,299





“ 나는 부잣집 구경을 하게 되면 ‘그런데 책은 어디 두셨나요?
라고 묻곤 한다. ”

- 헤르만 헤세「독서의 기술」중에서 -



이재룡, 「소설, 때때로 맑음」






“여자에게 버림받는 남자는 경찰에 쫓기는 도망자처럼 유년의 장소로 은신한다.” 서른 살의 남자가 도망치듯 찾아간 곳은 부모의 집이다. 짐도 없이 빈손으로 고개를 숙인 채 초인종을 누른 아들을 본 어머니는 대번에 알아차린다. “너 우울증에 걸렸구나.” 화자는 자신의 처지를 이렇게 고백한다. “서른 살에 부모 집으로 되돌아온 것은 사회적 성공의 수학적 대척점에 위치한다.” 부모의 집에 그대로 보존된 유년기의 방, 유년기의 침대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운 서른 살의 작가 모습이 그의 첫 소설 『백치의 반전 Inversion de l'idiotie』에 그려졌다면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마흔 살의 모습은 『누가 다비드 포앙키노스를 기억하는가? Qui se souvient de David Foenkinos?』에서 찾을 수 있다. “나는 방금 마흔 고개를 넘었다. 마흔은 행복이 횡단보도를 건널지 말지를 망설이는 나이이다. 나는 돈을 거의 벌지 못했다. 나의 저작권 수입은 인적 없는 왕국에서 발버둥 치고 있다. 책임감 있는 남자로서(나는 거의 프로급의 테니스 선수인 딸 빅토리아를 슬하에 두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전업 외에는 남아 있지 않다. 유일하게 생각한 것이 스무 살 때 했던 일을 정확히 되풀이하는 것이다. 그것은 기타 연주를 가르치는 일이다. 사회적 몰락으로 치자면 거리의 거지보다 조금 윗길에 자리 잡는 퇴보인 셈이다.” 작가의 연대기를 짧게 정리하면, 스무 살에 기타 강습으로 연명하며 소설가를 꿈꾸었고 서른 살에 소설가로 입신했다가 마흔 살에 다시 스무 살로 퇴행한 것이다. 그런 작가가 열한 권의 소설과 한 편의 영화라는 이력을 쌓고 올해 한국을 찾아왔다.




▶ 작가_ 이재룡 - 문학평론가. 번역가, 숭실대 불문과 교수. 1956년 강원도 화천 출생. 지은 책으로 『꿀벌의 언어』가 있으며 역서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정체성』『욕조』『해를 본 사람들』『외로운 남자』등이 있음.


▶ 낭독_ 우미화 - 배우. 연극 「말들의 무덤」, 「복사꽃 지면 송화 날리고」, 「농담」 등에 출연.
유성주 - 배우. 연극 「그게 아닌데」, 「싸움꾼들」 등에 출연.



배달하며

[소설, 때때로 맑음]이라니, 슬쩍 웃음이 나기도 하네요. [소설, 때때로 흐림]이라고 생각하는 날이 많아서 그럴까요. 이 산문 연재를 시작할 때 지은이도 이런 글을 썼지요. “대체로 흐린 날이 이어지다가 때때로 햇살 한 줄기가 책갈피에 비치면 밑줄도 치고 메모도 한다.”
『누가 다비드 포앙키노스를 기억하는가?』의 화자는 작가 다비드 포앙키노스 자신이라고 합니다. 최근에 본 영화 [버드맨]을 연상시키는 데가 있습니다. 누가 지금 나를 기억할까? 한 번 생각하기 시작하면, 정말 머릿속이 하얘집니다.



문학집배원 조경란


▶ 출전_『소설, 때때로 맑음』(현대문학, 2015)

▶ 음악_ piano-classics n225 중에서

▶ 애니메이션_ 김은미

▶ 프로듀서_ 양연식

서영은

댓글 남기기

로그인후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을 남겨 주세요!

댓글남기기 작성 가이드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비방 등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주제와 관련 없거나 부적절한 홍보 내용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 기타 운영 정책에 어긋나는 내용이 포함될 경우, 사전 고지 없이 노출 제한될 수 있습니다.
0 / 1500

댓글0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