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 일기
- 작성일 2015-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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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원 일기
1. 첫째 날
요양원 실습, 첫째 날 3층 치매 어르신들 방에 배정받았다.
오전 9시 30분 각 방을 돌며 물병을 걷고, 쓰레기통을 비우고 밀걸레로 방을 닦았다.
할아버지 일곱, 할머니 열 셋. 각기 증상은 다르지만 치매를 앓고 있는 어르신들이 매화, 국화 등 꽃 이름을 붙인 호실에 두, 세 명씩 생활하고 있었다.
물병을 가져가려 하자 내 팔을 잡더니 꼬집는 할머니가 있고, 버럭 성질을 내며 물병을 절대 못 들고 나가게 하는 할아버지도 있었다. 요양보호사 말에 의하면 그 두 분은 3층에서 알아주는 어르신들이라고 했다. 3층엔 아흔이 넘은 치매 할머니 한 분이 있었는데 시집 못 간 중증 장애를 가진 딸이 2층에 기거하고 있어 이따금 놀러온다고 했다.
오전은 대체로 한가한 편이어서 각 호실에 들러 어르신들과 이런저런 얘길 나누며 요양보호 대상자 파악에 나섰다. 중증 치매로 침상에 계속 누워 있어 매번 기저귀를 살펴야 하고 침대에서 식사를 하는 분도 있고, 한쪽 편마비로 인해 식사시간에 휠체어로 이동해야만 하는 어르신과, 사지육신은 멀쩡하나 정신이 온전치 못해 가끔 헛소리를 하고 욕을 하는 치매 어르신, 경증 치매지만 거동이 가능해 보행기의 도움만으로도 생활이 가능한 어르신들로 나뉘어져 있었다.
열 두 시 점심시간, 시래기 된장국과 현미밥, 두어 가지 나물과 고등어조림 배식이 끝나고 편마비 대상자 어르신들의 식사 돕기에 나섰다. 건강한 쪽 손으로 숟가락질을 하는 어르신 곁에 바짝 붙어 서서 나물, 생선반찬을 드시기 좋게 숟가락에 얹어주고 입가에 음식물이 흐르면 닦아주었다. 침대에서 식사를 하거나, 설사기가 있는 분들은 흰 죽과 잘게 자른 나물반찬을 방으로 가져다 드렸다. 식사수발이 끝나고 식판을 걷어 1층 주방으로 내려가 설거지를 도왔다. 주방에서는 오후 간식인 고구마가 압력솥에서 김을 내며 무르게 삶아지고 있었다.
이 날 매주 화요일 오던 교회 목사님이 하루 앞당겨 예배를 인도하러 요양원을 방문했다. 교회를 다녔던 어르신들 중심으로 2층 홀에 모여 예배를 드렸다. 목사님이 성경구절을 따라 읽게 하고 기도를 하고, 설교를 시작하자 다들 멍하니 넋이 나간 표정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예배가 간단히 끝나고 목사님이 준비해온 간식으로 어르신들께 초코파이가 제공됐다. 그 자리에서 드시고 가란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몰래 호주머니에 넣어 가려는 어르신이 몇몇 눈에 띄었다. 그분들 곁에 가서 초코파이 봉지를 뜯어앉은 자리에서 드시게 했다.
오후 다섯 시, 저녁 시간 뼈다귀가 든 감자탕이 나왔는데 할아버지들은 2개씩 식판에 놓아주었다. 돼지 등뼈의 살을 발라 식판에 놓아줘야 해서 요양보호사들과 실습생의 손길이 바빠졌다. 가끔 자식들이 올 때 싸왔다는 물김치, 굴젓, 동치미를 따로 챙겨 드시는 어르신도 간간이 보이고, 밥을 더 드시겠다는 어르신, 식사도중 물을 달라는 어르신, 한 손이 불편해 식사를 잘 못 하는 어르신들 옆을 돌며 그분들 식사를 도왔다.
2. 둘째 날
어제처럼 물병을 걷고, 방을 돌며 쓰레기통을 비우고 밀걸레질을 하는데 요양보호사들의 몸짓이 평소보다 부산하게 느껴졌다. 화요일, 목요일은 오전에 목욕을 시킨다고 했다.
9시 40분, 각 방을 돌며 목욕을 알리고, 각 방 어르신들의 속옷과 양말, 팬티 따위를 챙겨 휠체어를 밀고 중앙의 널찍한 화장실로 모였다. 고무장갑에 때밀이 수건을 장착한 요양보호사들이 휠체어에서 목욕의자로 옮긴 어르신들의 몸을 구석구석 닦기 시작했다. 실습생들은 대기하고 있다가 어르신들이 목욕하고 나오면 수건으로 몸을 닦고 속옷을 갈아입히고 기저귀를 채우고 로션을 발라주었다. 가끔 편마비 대상자의 팔을 잘못 끼웠다가 다시 갈아입히는 실수를 범하기도 했지만 어르신들은 불편한 내색 없이 아이처럼 고분고분했다. 변이 묻은 기저귀를 빼고 새 기저귀를 채우려는 찰나 오줌을 지려버리는 할머니도 있었고, 목욕을 마치고 휠체어에 잠깐 앉아 있던 할아버지가 기저귀를 채우기도 전에 변을 봐버리는 일도 있었다. 그의 실수에 세 명의 요양보호사가 우르르 달려가자 “똥도 돈으로 보이는가?!”라고 수군거리며 코를 감싸 쥐는 실습생도 있었다. 그 어르신 옷을 다시 벗겨 목욕을 끝마치고 나온 요양보호사 얼굴이 벌겋게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목욕을 해서인지 어르신들 대부분은 점심 식판을 말끔히 비웠다. 오후 세시엔 중년 아저씨들로 구성된 밴드에서 공연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 밴드는 케이블 텔레비전 음악경연프로에 나가 본선까지 진출했던 팀이었다. 그들을 보려고 2층 홀에 어르신들이 많이 모였다. 그런데 자신들 자작곡을 홍보하러 왔는지 시끄러운 락스타일의 알 수 없는 노래만 계속 불러댔다. 어르신들이 휠체어에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가 자신들의 방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포착되자 요양보호사 한 명이 신청곡이 있다면서 동백 아가씨를 외쳤다. 이어서 옛 가요가 몇 곡 흐르자 어르신들 표정이 금세 환해졌다. 내 나이가 어때서~가 흘러나오자 할머니가 무대 중앙으로 나와 흥겹게 어깨를 들썩이고 실습생도 같이 손을 잡고 보조를 맞춰 엉덩이를 흔들었다.
저녁 식사로 감자국과 무나물, 꽁치조림 등이 나왔다. 어르신들 식사수발과 양치질이 끝나고 주방으로 내려와 설거지를 도왔다. 오전에 목욕을 거들면서 무리하게 몸을 움직여서인지 오른쪽 어깨가 쏙쏙 아리고 아팠으나 시계를 보니 6시 십분 전, 일이 끝나가니 그래도 참을 만 하였다.
3. 셋째 날
이, 삼일 지나자 어르신들 중에 먼저 실습생을 알아보고 반갑게 알은 척 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물병을 가지러 들를 때면 팔을 꼬집고 입을 씰룩거리던 할머니도 이젠 실습생들이 하나같이 예쁘다고 하고, 오만상을 지으며 버럭 성질부터 냈던 할아버지도 자신이 물병을 씻어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왔다면서 힘없이 손사래를 치셨다. 며칠 새 되게 얌전해진 그 분들을 대하니 왠지 짠한 맘이 들었다.
2층에서 아흔 살 엄마를 보러 올라온 장애인 딸이 어느 날 실습생의 예쁜 손톱을 보고 부러워해서 그녀 손톱에 몰래 분홍 메니큐어를 발라준 일이 있었다. 손이 심심하다며 진종일 뽁뽁이를 터뜨리는 재미로 산다는 할머니에겐 뽁뽁이를 구해다드리고, 신앙심이 좋아 찬송가를 늘 흥얼거리는 할머니에겐 성경을 읽어드리고 같이 찬송가를 부르곤 했다.
이 날 새로운 것을 알았다. 같은 치매라도 이쁜 치매가 있는가 하면 미친 치매도 있다는 걸 어르신 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이쁜 치매 어르신은 식사 때가 되면 다소곳하게 거실로 와서 식사를 하고 침대에 누워 아무 말 없이 낮잠을 주무시고, 때 되면 요양보호사가 기저귀를 갈아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서 어쩔 줄 모른단다. 그러나 그와 정 반대인 치매 어르신은 같은 방 어르신이 기침만 해도 더럽다, 나가라고 면박을 주고 밤이면 요양보호사들이 쓰는 볼펜이며 사무용품들을 몰래 가져와 침대 밑에 숨겨두는가 하면, 목욕하고 기저귀를 채우려들면 새 기저귀에 오줌 지리는 건 다반사요, 수시로 요양보호사들에게 자신의 물건이 없어졌다고 하고 의심하고, 말 많고 불평이 심해 옆 침대 할머니까지 진을 빼놓아 결국 다른 방으로 짐 보따리 싸서 옮겨가시게 한다는 것이다.
그 어르신은 일 년 전 이 곳 요양원으로 옮겨와 생활하다보니 별의별 치매 환자들을 다 겪었다면서 정작 자신은 류머티스 관절염과 편마비로 요양원에 들어와 기저귀 차는 신세라면서 이제 팔십 일곱이니 하늘에서 불러가도 원이 없다고 했다. 어쩌다 한번 울릴까 말까하는 그 어르신 휴대전화 뒤쪽엔 큰 아들부터 딸, 자식들 이름과 전화번호가 코팅이 되어 줄줄이 적혀있었다.
점심 배식이 끝나고 주방으로 집결하라는 말에 1층으로 내려가 보니 영양사가 감자를 두어 자루 풀어놓고 손질하라고 했다. 새까만 제주감자의 껍질을 필러로 벗긴 뒤 상한 부분은 과도로 도려내고 물에 담가 깨끗이 씻는 데 한나절이 꼬박 걸렸다.
무리한 주방봉사 탓일까, 저녁식사도움도 못 드리고 요양원을 빠져나오는 데 목이 뻣뻣해 고개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4. 넷째 날
오늘은 어르신들 목욕하는 날이다. 오전에 방을 돌며 휠체어로 한 분씩 중앙 화장실로 옮기고 속옷과 기저귀와 로션을 챙겼다. 화요일에 한 번 해봐선지 목욕 수발이 조금 익숙하다. 어르신들이 목욕하고 나오는 즉시 수건으로 몸을 닦아드리고 속옷을 갈아입히고 새 기저귀를 채우고 로션을 발라드렸다. 가끔 실금하는 어르신들도 있었지만 이젠 익숙해져서인지 참을 만 했다. 어떤 할아버지 한분은 내복 대신 무릎까지 올라오는 발 덮개를 신겨달라고 했다. 할머니들 팬티는 특이한 게 팬티 앞 쪽에 지퍼가 달려있었는데 돈이나 귀중품을 보관할 때 팬티 앞주머니에 챙겨 넣으신다고 했다.
목욕 전 벗어놓은 어르신들 옷가지와 수건들을 거두어 세탁실로 가서 돌리고 전날 세탁된 옷가지와 이불을 꺼내 햇볕 바른 옥상에 널었다. 옥상에 어르신들 이름 푯말이 꽂힌 화분들이 죽 늘어서 있었다. 봄이 되면 거기에 꽃씨를 뿌려 꽃도 키우고 옥상에 올라와 햇볕바라기도 하시고 간식도 먹는다고 요양보호사가 귀띔해 주었다.
이 날 오후엔 2층 홀에서 한국영화 <플랜 맨>을 상영했는데 무료했던지 어르신들이 꽤 많이 모였다. 낮 시간이라 휠체어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어르신들도 있고, 영화와는 상관없이 알아들을 수 없는 얘기로(자세히 보지 않으면 두 분이 대화하는 것처럼 보인다)서로의 할 말만을 늘어놓는 할머니들도 있었다. 어르신들은 심심해서 그냥 나와 모여 있을 뿐, 영화는 요양보호사들과 실습생들이 더 즐겁게 감상하는 것 같았다.
저녁 도움을 드리고 실습일지를 적고 있는데, 센터장이 들어와 요양보호사 시험 합격하면 다른 데 가지 말고 우리 집으로 오라며 슬쩍 말을 건넸다. 선뜻 네, 그럴께요~ 하는 실습생이 하나도 없어 못내 아쉬웠든지 센터장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나가자 모두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날몸이 아파서 요양원 실습에 나오지 않는 이도 있었다.
5. 마지막 날
찬송을 같이 부르던 어르신 방에 쓰레기통을 비우러 들어가자 손짓으로 나를 불렀다. 가까이 갔더니 내손에 사탕을 한 움큼 쥐어주며 “인제, 오늘 하고 끝나는가?” 하셨다. 주기적으로 실습생들이 닷새 정도 머물다 가더라며 말했던 할머니였다. 벽에 걸린 달력을 수차례 올려다보며 날짜를 가늠했을 어르신 생각에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포도, 오렌지, 복숭아, 계피 맛 사탕이 할머니 손에 진득하게 녹아있었다. 이쁜 치매, 미친 치매 구별하는 법을 가르쳐줬던 할머니는 알고 보니 동향분이셨다. 어쩐지 끌리더라며 내 손을 붙잡고 한참을 놓지 않으셔서 조금 난감했다. 마지막 날 되니 그간에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어 어르신들과 헤어지는 게 아쉽고 슬펐다.
젊을 적, 고등학교 수학선생님이었다는 어르신은 이날도 한손으로 식사를 하며 왼쪽 입가에 김칫국 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젊을 적 군인이었다는 어르신은 얼굴은 늘 좋은데 목욕하고 나면 기저귀도 안 차려고 하고 바지 속에 가끔 실변을 해서 요양보호사들을 놀래켰다. 아흔의 노모와 장애인 딸은 위, 아래층을 오가며 여전히 사이좋은 모녀로 지내고 그 딸은 매니큐어가 지워졌다며 실습생앞에 불쑥 손등을 내밀어 보이기도 한다.
이 날 3층에 새 식구가 입소했다. 팔순이 넘은 할머니인데 경증 치매로 거동이 가능해서 본인의 보행보조기를 가지고 왔다. 딸이 다녀가면서 다른 분들과 나눠드시라고 사과와 귤 한 박스를 두고 갔다. 시도 때도 없이 찬송가를 잘 흥얼거리는 할머니의 옆 지기로 그분이 내정됐다. 두 분이 아무 탈 없이 잘 지내야 할 텐데 기가 센 어르신이라 조금 걱정이 됐다. 혼자있어 적적했는데 잘 되었다며 겉으로 보기에 새 식구를 무척 반기셔서 한편으론 안심이 됐다.
요양원 실습 마지막 날, 오른쪽 어깨가 빠져나갈 듯 아프고 저려왔다. 무쇠 팔, 강철 체력이어야지만 3교대 요양원 근무에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저녁 배식을 마치고 요양원을 나서는 데 중요한 물건을 흘리고 온 것 마냥 뭔가 허전해서 뒤를 자꾸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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