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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무엇이었나

  • 작성일 2015-07-09
  • 조회수 316

 

“얘 얼른 와야겠다. 할머니가 곧 돌아가실 것 같다.”

 

할머니의 소식을 전한 건 엄마였다. 나는 명문대는 아니지만 서울에 있는 사립대학에 다니며 보증금 4천에 40만 원짜리 원룸 3층에 서식하고 있었다. 당연히 집세는 집에서 보내왔다. 그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까지 반지하에서 살았다. 집에서 눈치를 주지도 않았는데 그랬다. 그런 면에서 난 이타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반지하는 이곳에 비해 방값이 반값이었다. 대학생활이 길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한 푼이라도 집에 신세를 덜 지려는 처사였다. 그러나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다. 반지하는 낮거리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었지만 그 외에는 사람보다 머리가슴배로 나뉜 놈들이 살기 좋은 집이었다. 대조적으로 지금 원룸은 창문을 열면 오래된 은행나무가 손에 닿을 정도로 가까이 있는 자연친화적인 곳이었다. 녀석의 잎으로 계절을 분감하는 것이 나의 감수성을 확인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참 따뜻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날은 일요일 아침이었다. 눈은 뜨고 있었지만 여느 때처럼 이불속에서 나오지 않고 있었다. 전날 마신 술 때문에 입술이 말랐고 속이 조금 좋지 않았다. 일어나자마자 틀어놓은 티브이에서는 아침부터 시답잖은 가수들이 노래가사를 틀리지 않고 부르려는 도전을 이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 도전을 보면서 왼손을 팬티 안에 넣고 손가락 끝으로 귀두를 쓸어 만지는 도전을 했지만 별 반응은 없었다. 할머니 때문인 것 같았지만 아닌 것도 같았다. 방망이 세우기 도전을 포기하고 언제 창문을 열고 담배를 피워야 할지에 대해 생각했다. 담배 생각이 나지 않았지만 으레 자고나면 피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침대는 인터넷으로 구입한 6만 원짜리 싸구려 싱글침대였다. 자고나면 지옥 불에 덴 것처럼 허리가 쑤시곤 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참 검소한 사람이었다.

 

그나저나 할머니가 위독하다니.

하루에도 열 두 번은 더 죽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 양반이었는데 진짜로 죽게 생긴 모양이었다. 허리가 아파 죽겠다. 무릎이 쑤셔 죽겠다. 입맛이 없어 죽겠다. 잠이 안와 죽겠다. 힘들어 죽겠다. 그러나 진짜 죽게 생겼으면 뭐라고 말을 해야 하나, 죽을 것 같아 죽겠다? 곧 죽을지도 몰라 죽겠다? 이딴 생각하다가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나, 라고 생각했다. 그런 만남이 어디부터 잘못됐는지 난 알 수 없는 예감에 조금씩 빠져들고 있을 때 쯤. 까지 듣고 티브이를 껐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다는 처음 보는 여자아이돌 그룹에 이름 모를 여자아이돌이 대선배님의 곡을 부를 수 있어 영광입니다. 라고 구십도 인사를 하며 노래를 시작하고 노랫말을 한번 틀려 경고등이 들어온 상태였다. 창문을 열었다. 창틀에 올려둔 담배를 꺼내 물었다. 밤사이 이슬을 맞았는지 눅눅했다.

은행나무 잎사귀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녹색이었다. 그러니까...슈렉보다 더 짙은 녹색. 어느 슈퍼히어로의 피 같은 그런 녹색. 그 아래 원룸 촌 주말 아침은 고요했다. 전날 새벽까지 술에 취해 사랑이 어쩌고 인생이 어쩌고 중얼중얼 골목을 배회하던 녀석들도 모두 모텔로 집으로 귀가한 상태일 것이다. 창밖의 커다란 은행나무는 점점 더 푸르게 푸르게 어느 화장지회사의 슬로건처럼 녹색 에너지를 내뿜고 있었다. 녹색에너지 대상이라도 줘야할 정도였다. 그러나 창틀에서는 재떨이 냄새가 났다. 나도 모르게 씨팔, 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악취였다. 내 인생도 어쩌면 이렇게 구린내가 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담배를 길게 빨았다. 입술이 말라있어서 연기를 뱉으려다 담배는 그대로 있고 손가락만 쑥 미끄러져 담뱃불 끝에 뎄다. 앗 뜨거 씨발,이라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으레 있는 일이었으므로 창틀에 떨어진 담배를 다시 주워 물었다. 누구라도 봤다면 아주 쪽팔릴 뻔 했다. 혼자라서 다행이었다. 담배는 맛보다 멋이 우선이다. 담배를 처음 피우게 된 계기도 김두한시대의 주먹패들을 그린 드라마를 보고 나서 였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라고 희망가를 부르며 등장하는 신마적이라는 인물은 늘 담배를 물고 나왔다. 당시 나 같은 청소년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후 티브이에서는 흡연 장면이 사라졌다. 어쨌거나 신마적이 나에게 담배를 알려줬다면 그녀는 나를 골초로 만들어 줬다. 그녀는 같은 과에 다니는 동기였는데 나는 그녀와 1년 정도 만났다. 그녀와 처음 술을 마시던 날 그녀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남자는 인생을 고민하지 않고 사는 것 같아 별로 라고 말했다. 그래서 흡연하는 남자하고만 사귄다고 말했다. 애연 이꼴 연애라고 말하며 혀끝을 살짝 내보였다. 선홍색 혀끝이 뾰족하고 날카로워보였다. 순간 목구멍이 찌릿했다. 나는 결국 그녀 앞에서 새로 산 담배 한 갑을 모조리 피워냈다. 어때 이정도면 나도 한 고뇌하는 남자야, 라는 듯이 계속 눈을 가늘게 뜨며 줄담배를 물었다. 노래를 부르진 않았지만 신마적의 표정을 상상하며 피웠다. 나는 이후에도 그녀 앞에서 정말 많은 담배를 피웠다.

그녀 역시 그랬다. 침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여성상위체위로 자세를 바꿀 때면 어김없이 담배를 입에 물고 올라갔다. 손을 대지 않고 담배를 참 맛있게 피웠는데 가끔 연기가 한쪽 눈으로 들어가 눈을 찡그릴 때가 단연 압권이었다. 말을 타듯 몸을 흔들며 담배 연기를 내뿜던 그녀는 서부영화의 주인공처럼 멋졌었다. 그리고 위 아래로 출렁이던 물 풍선 같은 젖가슴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종종 내 상체에 담뱃재를 떨어뜨리는 것만 제외한다면 정말 멋진 섹스였다. 그러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갑자기 공무원이 되겠다며 노량진으로 가버렸다. 합격할 때까지 남자를 만나지 않겠다고 단언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노량진 3년차 남자와 좁아터진 고시 원룸텔에서 담배를 물고 그 것을 하다 불을 냈다는 말이 들려왔다. 어찌됐든 참 담배를 멋있게 피우던 여자였던 것은 틀림없었다. 그러니까 그게 신입생 때 일이니 벌써 6년 전의 일이었다.

그녀는 무얼 하고 있을까. 공무원시험엔 합격을 했을까. 아니면 아직 담배를 물고 그러고 있을까. 나도 차라리 그때 같이 고시원이나 갈 것을 그랬나, 하고 생각하다가 그냥 시팔, 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7년째 대학을 다니고 있었다. 군대 2년을 빼도 5년이다. 졸업을 안했다. 아니 못했다. 지금은 휴학생 신분이었다. 이력서를 넣어보고 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젠장. 이게 다 담배 때문인 것 같기도 했고 아닌 것도 같았다.

 

할머니가 죽어가고 있다는 곳은 경기 북부의 막걸 리가 유명한 동네였다. 한때 막걸리 열풍이 불어 막걸리 사업에 손을 댔지만 보기 좋게 나가자빠졌다. 할아버지는 당시 무슨 막걸리 소믈리에나 되는 냥 막걸리에 대해 떠들고 다녔지만 기실 소주를 더 많이 마셨다. 막걸리사업에 투자한 후 할아버지는 마치 그 말 밖에 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하루 종일 씩씩거리다가 어느 날 이불을 곧게 덮은 채로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사람들은 평소 성격대로 그 양반 참 깨끗이 갔다, 라고 평했다. 마을 근처에는 군부대가 많아 심심치 않게 커다란 엉덩이로 방귀를 뀌는 듯한 포성이 들려오곤 했다. 할아버지는 그럴 때 마다 죄지은 사람마냥 깜짝 깜짝 놀라곤 했는데 막걸리 외에 뭔가 켕기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아무튼 그것 때문에 놀라서 돌아가셨는지 가실 때가 되어서 가셨는지 할아버지는 그렇게 허무하게 가셨다. 그 후로도 마을은 지나다니는 군인들처럼 매일 무표정이었다. 가끔 지붕위로 포탄이 떨어지는 걸 제외 한다면 한마디로 특별할 것 없는 그저 그런 조용한 동네였다. 나는 대학에 진학하기 전까지 그 동네에서 쭉 자랐다.

그 동네로 할머니가 시집을 온건 열여섯 살 때였다. 굴러가는 낙엽에도 까르르 거릴 나이에 아궁이에 쪼그려 앉아 부지깽이로 장작이나 까르르 해야 했으니 참 할머니 인생도 할머니였다. 그러나 다행히도 할머니는 말이 많은 편이었다. 이름부터가 만의였다. 이만의. 왜 만희도 아니고 만이도 아니고 발음하기 힘들게 굳이 만의라고 지었을까. 굳이 이름을 부를 일이 없었지만 장난으로라도 이만의 씨라고 얘기할라치면 턱을 아래로 힘주어 내려야하는 불편함을 겪어야 했다. 참으로 인체학적인 이름이었다. 그런 만의 할머니는 많이 말하고 많이도 먹었다. 그래도 큰 병치레 한번 없이 허리도 굽지 않고 올해 나이가 여든일곱이니 제법 오래 살았다. 장수의 비결은 말 많음과 라면이었다. 할머니는 하루에 두 번 라면을 나누어 먹는 알아주는 마니아였다. 그 중에서도 안성에서 나온 탕면을 좋아했다. 그리고 면발처럼 끊이지 않고 누군가에게 말을 했다. 듣는 사람이 있건 없건 늘 뭐라고 혼잣말을 했다. 라면을 먹으면서도 면발이 익었니. 덜 익었니. 부터 죽은 영감 고추 만져봐야 소용없다는 말까지 화제를 자유자재로 바꿔가며 시시콜콜 했다. 한마디로 말 많은 MSG 여왕이었다. 그러니까 하루에 밥 세끼에 라면 두 끼, 총 다섯 끼를 잡수면서 말까지 많았다. 같이 사는 며느리에게는 끔찍한 일이었다. 시어머니 밥을 세끼도 모자라 다섯 번을 차려내야 했고 게다가 말도 많았으니 얼마나 꼴 뵈기 싫었으랴. 그러나 엄마는 운명론자였다.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일들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원래 내일이거니 생각하면 쉽다는 게 엄마의 지론이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엄마는 라면이라면 이골이 난다며 손 사레를 쳐댔다.

 

버스에서 내려 집까지는 도보로 10분 정도가 걸렸다. 콘크리트로 포장된 마을진입로 양쪽에 늘어선 밤나무에서 밤꽃냄새가 났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찝찝해졌다. 할머니가 죽어가고 있는 집은 밤나무 숲을 지나 외길을 따라 10분정도 가만히 걷다보면 커다란 은행나무가 서있는 사거리가 나오는데 거기서 좌측으로 4번째 양옥집이었다. 칠한 지 오래되어 군데군데 페인트가 벗겨진 초록색 대문을 열면 넓지 않은 마당이 있다. 40평 정도의 콘크리트 집은 지은 지 한 20년 정도 되었다. 한 업주가 지었는지 동네엔 비슷한 집들이 많았다. 거실에 볼륨을 낮춘 티브이를 향해 네댓 명이 소파와 바닥에 앉아있었고 원탁식탁엔 여자 서이가 뭐를 질겅질겅 씹으면서 쑥덕거리고 있었다. 집안 분위기는 대체로 조용했다. 그들이 일제히 쳐다보는 통에 나는 조건반사로 조용히 목례를 했다.

“어 그래. 왔니? 할머니께 인사드려라.”

3인용 소가죽 소파에 두 명이 앉아 있었는데 오른쪽에 티브이 리모컨을 쥐고 앉아 있는 할머니의 두 번째 아들이 말했다. 할머니에게는 도합 다섯 명의 아들들이 있었는데 그 중 첫째가 우리 아빠였다. 아빠는 오토바이를 좋아했는데 그 이유는 운전면허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뭔가 타고 다니긴 해야 할 텐데 문맹인 아버지로서 운전면허 필기시험은 언감생심이었고 그나마 원동기면허는 가능했다. 그는 그렇게 오토바이를 타다 내가 8살 무렵 시내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중 전봇대를 들이받고 고꾸라졌다. 하필 그 옆에 놓여있던 알루미늄 건축자재 모서리에 머리를 찧었다. 오토바이 손잡이에는 검정색 비닐이 걸려있었는데 그 안에는 시커먼 순대가 가지런히 들어있었다. 순대를 좋아했던 여자는 할머니가 아니라 엄마였기 때문인지 할머니는 엄마를 향해 계속해서 저주를 쏟아 부었다. 저 망할 년, 서방 잡아먹은 잡년, 우라질 년, 대개 이런 식이었다. 그러나 엄마는 운명론자였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욕들을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원래 내 욕이다 생각하면 편하다는 것이 엄마의 지론이었다. 아빠의 죽음 앞에서 엄마는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통곡을 했다. 쏟아지는 할머니의 욕이 서러운 건지 아빠의 죽음이 슬픈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람이 저렇게 큰 소리로 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빠의 동생들이자 할머니의 나머지 아들들 역시 대체로 할머니의 말에 동조하는 분위기였으나 엄마가 하도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뭐라 거들 수 있는 상황은 못 되었다. 엄마는 타고난 운명론자였기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과부였다는 듯 잘 살아냈다. 할머니는 잊혀 질만 하면 한 번씩 내 아들 살려내라고 엄마에게 주정을 했지만 엄마는 돌부처처럼 반응하지 않았다. 그런 상태로 수십 년간 계속 라면을 끓여왔다.

 

“할머니 저 왔어요.”

나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인사를 건넸다. 할머니는 어릴 적부터 나를 무척 좋아했다. 아빠를 많이 닮았다며 자주 내 얼굴을 양손으로 쓸어내렸는데 나는 그 행동을 제일 싫어했다. 할머니의 손바닥이 감촉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싫은 내색은 하지 않았다. 그 편이 사는데 훨씬 편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가 대학에 가면서 집을 나가자 할머니는 안방을 버리고 내방에서 생활했다. 내가 쓰던 책상과 침대와 옷장도 그대로였다. 그냥 주인만 할머니로 바뀌었다. 나는 이 역시도 못마땅했지만 그냥 두었다. 할머니는 예상대로 내 침대에 얇은 면 이불을 가슴까지 덮고 누워있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티브이는 켜져 있었지만 보고 있지는 않았다. 책상 옆에는 반쯤 열려있는 라면박스가 눈에 띄었다. 할머니는 나를 보자 잠시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반색을 했다. 고개를 돌릴 힘은 없어 보였다. 얼굴은 전체적으로 그늘진 것처럼 어두웠고 옹송그리고 있는 입술은 바늘 같은 얇은 주름들이 깊게 파여 있었다. 3일 동안 검은콩두유만 조금 먹어서인지 검은콩같은 검버섯이 군데군데 피어있었고 볼 살이 푹 파여 있었다. 그나마 오늘은 그마저도 삼키지 못한다고 했다. 딱 봐도 임종이 임박해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나를 따라 엄마가 들어 왔다.

“어머니 민욱이 왔어요. 알아보시겠어요?”

할머니는 순간 내가 손주새끼도 못 알아볼 정도로 맛이 간 줄 아냐, 라는 눈빛으로 엄마를 노려봤다. 입으로 숨을 크게 쉬는데 단내가 아니라 악취가 났다. 나는 드러내 코를 틀어막고 싶었지만 이맛살을 조금 찌푸리는 것으로 정리했다. 곧 죽을 사람에게 수치심을 선물해주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뭣 좀 드셨어?”

나는 엄마에게 물었다.

“아니 아침에 물 두 모금 먹고 끝이여. 며칠 전부터 그 좋아하는 라면을 쳐다도 안 보신다.”

엄마가 조금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라면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표정이었다.

나는 협탁에 놓여있는 두유에 빨대를 꽂아 할머니 입에 가져다 댔다.

“눈 딱 감고 세 모금만 드셔봐.”

내가 말했다.

할머니는 정말로 눈을 감고 있는 힘을 다 해 빨대를 빨아댔다. 마치 젖먹이 어린아이 같았다. “얘, 네가 주니까 드신다. 어머머 신기하다 얘. 역시 손주가 좋긴 좋으신가보다.”

엄마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할머니는 다섯 모금 정도를 넘기고는 끙 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빨대를 혀로 밀어냈다. 그리고는 다시 눈을 감고 색색 소리를 내며 잠들었다.

“기운이 없어서 그러신지 계속 저렇게 잠만 주무신다.”

엄마가 할머니는 내려다보며 말했다. 나는 모든 식구들이 할머니의 죽음을 너무나 여유롭게 기다리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심기가 조금 불편해졌다.

“병원엔 가봤어?”

“무슨 병원?”

“병원이 병원이지 무슨 병원 이라니…….아니 사람이 밥을 못 먹고 아프면 병원엘 데리고 가야지…….그냥 대책도 없이 침대에 눕혀만 놓고 콩물만 먹이면 어떻게 해. 고칠 수 있는 병에 걸렸는지도 모르잖아?”

엄마는 이 미친놈이 난데없이 삼신할머니도 못하는 죽은 사람 살려내라는 소리를 하고 자빠져 있어, 라고 말하는 표정으로 조금 난처해했다.

“병원에 가봐야 뭔 수가 있겠니…….괜히 노인네 고생만 시키는 거지. 그리고 걷지도 못하는 양반 무슨 수로 모시고 병원엘 가”

“119있잖아. 세금은 괜히 내.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지”

“글쎄…….119가 온다고…….글쎄”

엄마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거실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기 민욱이가 어머니 병원에 모시고 가야 되는 거 아니냐고 그러는데요…….서방님들”

거실에 있는 인간들은 뜻밖의 질문에 서로 눈치를 보며 누군가가 나서서 대답을 해주기 바라고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그냥 죽게 나둬, 라고 말하는 꼴이 될 테고 선뜻 병원에 가자고 하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귀찮은 일들이 생길 테니 참 난처한 상황이라는 표정들이었다.

“우리도 그러고 싶지만 병원에 모시고 간다고 무슨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또 가면 피검사다 뭐다 끌고 다니면서 가뜩이나 힘없는 노인네 얼마나 고생을 시키겠냐. 그냥 집에서 쉬시게 둬라.”

리모컨을 쥐고 있던 할머니의 둘째 아들이 리모컨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공무원출신답게 민원응대에 제법 능숙했다. 그는 할머니의 아들들 중에 가장 성실했고 공부도 잘했다. 그러나 그만큼 제일 음흉한 사람이기도 했다. 항상 뒤에 뭔가를 숨기고 있는 사람의 눈빛을 하고 있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박용하라는 시인이 그러지 않았던 가. 사람의 눈에는 그 사람의 심장이 올라와 있다고.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공무원시험에 합격했고 어려서부터 공부를 곧잘 해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자랑거리였다. 첫째인 아빠가 공부와는 상극이었기 때문에 둘째는 더욱 기대를 받았다. 아빠가 갑자기 순대를 사오다 죽었을 때 그는 가장 서럽게 울었지만 모두 잠든 새벽 장례식장 구석에서 그의 아내와 킥킥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후 할아버지도 돌아가시고 할아버지 명의로 되어있던 재산들을 정리한 것은 당연히 둘째인 그의 몫이었다. 할아버지는 소문난 부자였다. 우선 시내에 5층짜리 건물이 하나 있었고 집 뒤쪽의 야산을 포함한 부동산이 제법 됐다. 할아버지는 농사를 지을 수 없을 만큼 땅이 넓어 남한테 빌려주고 가을에 곡식으로 세를 받곤 했다. 부동산을 나눠 가진 형제들은 시골 땅 가지고 있어봐야 세금만 축낸다며 헐값에 팔아넘겼다. 그러나 몇 해 지나지 않아 개발붐이 불어 아파트단지가 들어섰다. 땅값은 하루사이에 두세 배씩 뛰어 올랐고 형제들은 약이 올라 팔짝팔짝 뛰어올랐다. 둘째만은 달랐다. 할아버지 건물시세도 껑충 뛰었다. 그것은 둘째의 몫이었다. 그 결과 그는 현재 식구들 중 유일하게 외제차를 끌고 다녔다. 엄마는 할머니를 모시는 조건으로 이 집을 받았고 야산을 처분한 금액의 일부를 현금으로 받았다. 그 돈으로 그동안 할머니와 셋이 먹고 살았다. 엄마 역시 돈 관계에 투명하지 못해 아들인 나에게도 통장을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여하튼 이 집안 인간들은 하나같이 할아버지 재산으로 살고 있다. 아빠만 불쌍해진 꼴이었다. 그러나 그 밤에 술에 취해 오토바이를 타고 자빠진 본인 탓이었기 때문에 누굴 원망할 일도 못됐다. 길거리음식의 대표 순대와 같은 객사의 대표 오토바이 사고 중 하나일 뿐이었다.

할머니의 임종이 식구들에게 중요한 이유는 할머니에게 재산이 상당부분 있을 거라는 추측에서였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분명 상당한 재산을 넘겨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에 얼마의 가치가 있는 것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한 푼도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루어 짐작하는 바로 할머니는 늘 수중에 현금이 있었고 명절에 자식들이 놓고 가는 봉투 외 매월 정기적으로 현금이 생기는 것만은 확실했다. 손주들에게 건네는 용돈이 만만치 않았으며 내 등록금이며 생활비 역시 할머니가 보내주었다. 아마 같이 사는 엄마는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엄마 역시 시치미를 땠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아들들이 저렇게 앉아 뭐 떨어질 게 없나 눈치만 보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남들은 그런 부자 집에 시집 온 엄마를 부러워했지만 정작 엄마는 돈보다는 욕을 더 많이 받으며 살았다. 엄마는 몇 번 기회가 있었지만 새로운 인생을 살 인물은 못 되었다. 늘 기왕지사 이렇게 된 거 어쩌겠니. 라고 말하며 살았다.

“제가 볼 때는 할머니 아직 살 수 있어요. 눈을 보면 알 수 있어”

나는 모두가 티브이를 보고 있었기 때문에 나 역시 티브이를 보면서 말했다.

티브이에는 지난주에 방송되었던 주말 드라마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보아하니 여자의 아빠가 결혼에 반대하는 장면이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엄마가 내 팔을 붙잡고 건넌방으로 끌고 갔다.

“야, 너 왜 그래. 지금 저런 양반을 어떻게 병원에 모시고 가. 말이 되는 소리를 좀 해. 그리고 이미 너 오기 전에 삼촌들이랑 한 판 했다.”

“뭔 한판 해?”

“뻔하지 죽기 전에 말하라고, 재산 감춰 둔 거 얘기를 해야 될 거 아니냐고. 저 노인네 보통 양반 아니야. 그 전까지 말도 곧잘 하다가 그 얘기 나오니까 딱 입을 닫는 거야. 한 명씩 가서 조용히 꼬드겨도 안 통해. 네가 이따가 할머니 일어나시면 슬쩍 물어봐. 네 말이라면 들을지도 모르잖아?”

“됐어. 쫌. 그만 좀 해.”

나는 머리가 아팠다. 바람을 좀 쐬고 싶었다. 무언가 속에서 막 꼬이고 있는 기분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밖으로 나왔다. 어찌됐든 이대로 할머니의 죽음을 지켜볼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무작정 어디로든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공기가 습하고 뜨거웠다. 해가 노란 혀를 길게 내밀어 콘크리트 바닥을 핥고 있었다. 현관문을 등지고 나는 생각했다. 할머니의 죽음이 무슨 의미가 있나. 아무것도 아닌 내 인생은 뭔가. 씨발. 안에 있는 저 인간들과 나는 무엇이 다른가. 이런 생각들이 무슨 의미가 있나. 이런 되도 않는 생각을 하다가 그냥 걷고 싶어졌다. 발길은 할머니의 둘째아들 소유의 건물이 있는 번화가 쪽으로 향했다. 30분 정도면 도착하는 거리였다. 걸어가면서 여자 친구에게 전화를 할까 생각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하루 종일 부러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녀 역시 연락을 하지 않았다. 자존심이 센 여자였다. 나는 그녀가 싫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좋지도 않았다. 이대로 영원히 연락을 하지 않아도 사는데 별 상관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인생이 다 그런 게 아닌가.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나름 살아지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술 생각이 났다. 그래서 전화를 걸었다.

“나 와우리 왔다. 뭐하고 있냐?”

“나 그냥 집에 있지. 서울 놈이 웬일이야?”

“할머니가 곧 돌아가실 것 같다. 그래서 왔어.”

“그래? 씨발. 한 잔 해야 되는데. 할 수 있나? 안 되겠지?”

“괜찮아. 나와. 밤새라마리아에 가 있을게. 딸구새끼도 있나 연락해서 같이 나와.”

밤새라마리아는 피시방 상호였다. 고등학교 때 우리는 정말 거기서 밤을 새고는 했다.

“알았어. 기다려. 금방 갈게.”

자리를 잡고 흡연실에서 담배를 두 개 쯤 피웠을 때 호들갑을 떨며 도착했다.

“야 씨발. 존나 오랜만이다.”

땡초와 딸구였다. 땡초는 키가 작고 주먹이 매워 땡초가 되었고 딸구는 코에 여드름이 크게 난 적이 있는데 그때부터 딸구가 되었다. 코 모공에 알알이 박힌 피지가 딸기씨와 비슷한 것도 별명을 얻는데 한 몫 했다. 여하튼 둘 다 못생기고 못난 불알친구들이었다. 유일하게 나는 별명이 없었다.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자주 가던 돼지막창집으로 들어섰다. 드럼통을 다리 사이에 끼고 셋이 둘러앉았다. 이곳 사장은 딸구의 엄마였다. 아니 딸구의 엄마와 똑 닮았다. 어느 정도냐면 길을 가다 딸구 엄마에게 인사를 하면 막창집 사장이었고 막창집 사장에게 인사를 하면 딸구 엄마였다. 그만큼 표정, 매무새까지 비슷했다. 우리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곧 취했다. 화제는 할머니의 섭생에서 우리들의 업생으로 이어졌다.

“야 씨발 그래도 너는 집에 재산이라도 있으니까 솔직히 네가 먹고 사는 문제 걱정할 포지션은 아니지.”

딸구네 집은 나와 마찬가지로 동네 토박이로 임대해준 공장도 여럿 있었고, 주변에 땅도 제법 됐다. 그러면서 늘 걱정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에 비해 땡초는 아버지 직장문제로 중학교 때 이사를 와 정착한 케이스였다. 땡초 아버지는 근처 사립학교 교감이었다. 곧 퇴직을 앞두고 있었다.

“너는 벌잖아. 나는 집에서 까먹기만 하고 있으니까 걱정이지.”

“씨발 좆까 새꺄. 니네 공장에서 나오는 세가 내 월급에 다섯 배는 되겠다. 솔직히 재산 한 번 까볼까. 우리 집 봐봐. 시골동네 아파트 한 채가 끝이야. 씨발 선생 월급봉투에서 나오는 돈이 뻔하지. 너희 집 볼까. 부동산이 못해도 20억은 될 걸. 그 돈이면 나 같아도 일 안한다. 씨발.
”아니야. 10억 정도 밖에 안 돼. 암튼 씨발 나도 직장을 구해야 되는데. 우리엄마가 씨발 맨날 잔소리야.“

“니네 어머니? 저기 계시는데 뭔 소리야 미친새꺄. 켁켁켁”

아직 이른 시간이라 손님이라곤 우리테이블 밖에 없었다. 우리가 어머니라고 부르는 식당사장은 우리가 매번 이런 소리를 할 때마다 부러운 소리라며, 자기는 이 조그만 식당 해서 나오는 몇 푼 되지도 않은 돈으로 세 식구 먹고 산다며 그런 소리 말라며 참견하고는 했다. 우리가 얼마나 가소로웠을까. 어린놈들이 싹수가 노래가지고 일할 생각은 안하고 집안 재산타령이나 하고 앉았으니 꼴에 손님이라고 내쫒을 수도 없고 참 세상 살기 더럽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날도 주인은 멀찌감치 서서 우리가 하는 얘기를 들으며 가끔 말장단을 맞춰주곤 했다. 그래도 안주는 그 집에서 제일 비싼 소곱창으로 시켜먹었으니 마냥 싫지 만은 않았으리라.

“어머니 안 그래요? 재산도 많은 놈이 사는 게 힘들다, 어쩌다, 이런 소리나 하고 앉았고. 이 호랑말코같은 자식아. 그렇지요?”

사장은 소파에 음료를 쏟아도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딸구 엄마처럼 씩 웃기만 했다.

“그나저나 안민욱 너희 할머니 돌아가시면 그 재산을 누가 갖냐?”

“아…….병신 그것도 모르냐. 재산 상속법을 보면 피상속인이 사망하였을 때 우선 배우자, 그다음이 자식들에게 가는 거야. 한마디로 손자는 좆도 아니다. 이 말씀이지.”

“재산 상속법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미친 새끼. 뭐 피상속자? 오늘 피 한번 볼래? 큭. 그럼 씨발 만약에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내 재산은 저 안민욱 씹새끼에게 줘라. 이렇게 말하면?”

“그럼 씨발. 모르지. 아마 안 될걸. 변호사가 뭐 해야 될 걸. 그냥 말로 그런다고 증거가 있어야지.”

“병신아 녹음하면 되지. 핸드폰으로 대가리를 뒀다 뭐하냐. 막창 같은 새끼야.”

“그런가? 씨발 몰라.”

“할머니한테 무슨 재산이 있겠냐. 그냥 자식들이 소홀히 할까봐. 있는 척 하신거지”

내가 말했다. 그러나 내심 거액의 유산이 나에게 상속되면 어떨까. 생각했다.

“씨발 안민욱 이 새끼 갑자기 존나 드라마처럼 상속자 되는 거 아냐. 머리 파마하고 막. 집에서 정장입고 돌아다니고. 그래서 우리 같은 서민은 쌩 까는 거 아냐?”

“너는 나이를 쳐 먹어도 하는 생각이 어쩜 이렇게 하나같이 저질이냐.”

우리는 계속 술을 마셨고 나는 행여나 집에서 연락이 올까 싶어. 휴대폰을 계속 들여다봤지만 시간만 확인하고 내려놓았다. 여자 친구 역시 연락이 없었다. 망할 년. 시간은 벌써 11시가 넘어 있었다. 늘 그랬듯이 근처 꼬치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는 상당히 취해있었다.

“야. 씨발 내 말 잘 들어. 우리 셋은 돈 때문에 지랄하면서 살지 말자. 살다가 누구 하나가 정말 힘들면 아무 말 없이 3천 만 원이든 5천 만 원이든 그냥 주는 거야. 알겠어? 나는 그럴 거야. 알겠어? 씨발. 애이 씨.”

나는 잔뜩 취한 상태로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여자 친구와의 관계를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6개월 전쯤에 술자리에서 우연히 그녀를 만났는데 그녀는 명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자마자 국내에서 규모가 제일 큰 광고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키가 컸고 가슴도 컸지만 탄력은 없는 편이었다. 그녀는 모범생답지 않게 침대에서 과감했다. 평소 옷차림과 말투 역시 조용하고 얌전한 편이었기에 반전의 매력이 있었다. 역시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는 제일 먼저 올라가 섹스를 하는 모양이다. 그녀는 침대에서 진보적이며 진취적이었다. 언제나 새로운 체위를 시도했으며 나보다 먼저 서두르는 타입이었다. 특히 서슴없이 자신의 과거 남자와의 잠자리에 관해서도 말할 만큼 말에 거침이 없었다. 나는 그런 그녀 앞에서 대한민국에서 제일 쿨한 남자처럼 말하고 행동했지만 그녀의 거침없는 발언들 중 상당수는 듣기 거북했다. 결정적으로 유부남과의 연애사를 늘어놓았을 때 나는 그녀처럼 별 대수롭지 않게 일상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표정으로 웃어넘겼지만 기실 대단히 충격적이었다. 아마 그때부터 였던 것 같다. 그녀를 만날 수 없다고 생각 한 것이. 그러나 그런 이유로 헤어지자고 말하면 뭔가 구시대적인 병신처럼 보일 것 같았기 때문에 나는 적당한 이유를 생각하고 있었다. 최대한 여유 있고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현대 모던보이처럼 보일 수 있는 그런 이별의 이유를 말이다.

개구리 울음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흙 알갱이가 신발 바닥에 끌리는 소리와 주변의 풀 냄새가 나쁘지 않았다. 그나저나 할머니는 어떻게 되었을까. 집은 조용했다. 집이 먼 할머니의 셋째아들 식구들이 거실에서 자고 있었다. 나머지는 집으로 돌아간 모양이었다. 할머니가 누워있는 내 방문은 열려 있었다. 할머니가 누워있는 싱글침대 옆으로 가지런히 요가 깔려있었다. 엄마의 솜씨였다. 나는 이불 위에 올라가 양말을 벗었다. 발바닥에 닿은 이불이 조금 습했지만 감촉이 나쁘지 않았다.

“또 술 마셨지?”

할머니였다. 목소리가 가르랑거렸지만 곧 죽을 사람의 눈빛은 아니었다. 늘 듣던 잔소리였다. 이불을 곱게 덥고 누워있었는데 홑이불이 세탁한지 오래되어 보였다. 침대 옆에는 3분의 2정도 빼서 쓴 성인용 기저귀 팩이 놓여있었다.

“조금 밖에 안 마셨어”

“술 많이 마시지마. 네 아빠를 생각해서”

“또 그 소리다. 나는 안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셔”

“안자고 뭐해?”

“너 기다렸지”

“뭐 좀 먹었어?”

할머니는 고개를 아주 조금 흔들었다. 그리고는 눈을 감았다. 다시 잠든 것 같았다. 들숨과 날숨이 불규칙했다. 숨소리가 심하게 가르랑거렸다. 당장 살릴 수는 없어도 그 가래라도 어떻게 빼내어 주고 싶었지만 병원에 가지 않는 한 방도가 없었다. 그렇다고 이 새벽에 술 취한 몸으로 어떻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라고 생각하고 자리에 누웠다. 어지러웠다. 몸을 눕히니 술기운이 확 돌았다. 핸드폰을 꺼내 으레 그랬듯이 여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고 있던 모양이었다.

“우리 이제 그만 만나야 될 것 같아”

아무 말도 없었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으리라.

“우리 할머니가 위독하셔”

나는 왜 이 상황에서 그 얘기를 했는지 알지 못했지만 적당한 얘기가 떠오르지 않아 나도 모르게 말해버렸다. 어쩌면 그녀에게 어떤 위로를 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정말? 많이 편찮으셔?”

그녀는 평소와 같이 박애주의자 같은 말투로 말했다. 나는 그것이 거짓인 것처럼 느껴졌다.

“있지. 나는 너랑 어울릴 수 없는 사람이야. 나는 그냥 머리 빈 체대생일뿐이야. 너는 나에게 너무 과분해.”

그녀는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 말 없으면 끊는다.”

“나는 오빠가 그런 생각을 갖고 사는지 몰랐어. 정말 이기적이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자격지심. 정말 별로다.”

나는 죽어가는 할머니 옆에서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주전자에 가득찬 물처럼 끓어 넘치는 욕설을 막을 수 없었다.

“뭐? 별로야? 씨발. 그래 너 잘났다. 나는 씨발 존나게 못나서 누군 대기업 떡떡 취직 할 때 부모 등쳐먹으면서 졸업도 안하고 놀고 있다 왜. 씨발 대학도 누구처럼 공부해서 간 것도 아니고 농구 축구 배구해서 들어갔다. 됐냐? 집에 돈도 없어서 너처럼 어디 유학도 못 갔고 이 모양 이 꼴로 산다 왜. 씨발. 씨발. 잘난 척 좀 그만해. 너는 뭐 씨발. 씨발. 아 씨발. 진짜.”

비등점을 넘어선 내 감정은 끊임없이 씨발을 뱉어냈다. 그러는 와중에 이정도 밖에 안 되는 나에게 심한 수치심을 느꼈다. 그녀는 이미 전화를 끊은 상태였다. 다시 걸어보았지만 전화기가 꺼져 있었다. 나는 더욱 화가 났고 부끄러웠다. 내 몸이 어디로든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냥 계속 이불을 뒤집어쓰고 씨발 씨발 이라고 말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엄마였다. 민소매속옷 차림이었다. 할머니를 거친 숨소리를 들여다보더니 이건 아닌 것 같군,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엉거주춤 허리를 펴고 뭐라고 말해야 할지 생각했다.

“할머니 어떻게 해...”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났다. 꺽꺽 소리도 났다. 그 눈물이 알량한 내 자존심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정말로 할머니 때문이지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손자로서 할머니의 죽음을 앞두고 오열을 하는 모습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나를 다독이고는 방으로 돌아갔다. 거실에서 잠을 자던 친척들도 잠에서 깬 모양이었다. 나는 조금 더 흐느끼고는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아침이 되자 다시 할머니의 나머지 아들들이 찾아와 집이 부산해졌다. 할머니는 먼저 눈을 뜨고 있었다.

“뭐 좀 드실래? 물 좀 드셔”

나는 협탁에 놓인 보리차에 빨대를 꽂고 할머니 입에 갖다 댔다. 세 모금 정도 빨더니 빨대를 놓았다. 그 다음 검은콩두유를 드시게끔 했다. 제법 빠는 듯 하다가 숨이 차는지 그만 뱉어냈다. 나는 물티슈로 목까지 닦아냈다. 이불을 조금 들추자 악취가 났다. 대변을 본 모양이었다. 나는 엄마를 불렀다. 엄마는 허기진 친척들의 아침밥을 차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왜? 네가 좀 갈아드려. 옆에 기저귀 있잖아”

“내가 어떻게 해. 그래도 그렇지”

“작은 엄마들 보고 같이 좀 하라고 해”

“됐어. 뭘 이런 걸”

“같이 해. 왜 엄마만 해”

“조용히 해. 좀. 듣겠다.”

“아니 왜 엄마만 이러냐고. 지금 밥이 중요해?”

“밥 먹어야지. 그럼 안 먹어? 시끄러워. 쓸데없는 소리 할 거면 나가”

나는 아무리 그래도 죽어가는 할머니의 성기까지 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어쩌면 할머니의 마지막 자존심 이라고 생각했다. 숙취에 머리가 조금 아팠지만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방문을 닫고 나왔다. 거실에서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할머니의 아들들이 나란히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오셨어요”

나는 아주 작은 소리로 말하곤 냉장고를 열어 찬물을 컵에 따라 마셨다. 엄마가 묵직한 기저귀를 돌돌 말고 나왔다.

“할머니 방문 열어 놔라. 혹시 뭐라 하실지 모르니까”

할머니의 둘째 아들이 말했다. 나는 대답하지 않고 방으로 갔다. 요를 개는 동안 할머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보고 있었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민욱아. 나 좀 병원에 데려다줘,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래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면 혼자서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할머니 병원 갈래? 병원 가서 그 답답한 가래 좀 빼고 링거라도 한 대 맞자”

“병원은 뭐 하러”

“이렇게 누워 있으면 욕창이나 생기지. 뭐. 차라리 병원엘 가보자”

할머니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분명 병원에 가면 어느 정도 기운을 차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나는 땡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아침부터 뭔 일이야?”

“시끄럽고, 너 차 있지?”

“차? 차는 왜?”

“있어? 없어?”

“있...지”

“차 가지고 우리 집으로 좀 와.”

“왜”

“뭘 자꾸 왜야. 쫌 와. 할머니 병원 모시고 갈 거야?”

“할머니? 돌아가실 것 같다며?”

“혹시 모르니까. 씨발. 병원 한번 가보기라도 해야지”

“아...그래? 그래도 병원은...아...그리고 내 차 경차라서 힘든데…….”

“됐어 씨발. 끊어”

나는 옷을 챙겨 입었다. 걸어서도 얼마든지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옷걸이에 걸려있는 할머니 바지도 입혔다. 다리가 꽤 굳어있었고 옆으로 몸을 세우자 계속 바로 누워있어서 인지 엉덩이가 눌려 납작해져 있었다. 할머니의 상체를 일으켰다. 일으켜 세우는 것도 힘이 들었다. 나는 안아야 할 지 업어야 할지 고민했다. 순간 내가 괜한 짓을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실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할머니를 업기로 했다. 다리가 조금 휘청 했지만 업을 만했다.

할머니를 업은 건 처음이었다. 생각보다 무거웠다. 물에 젖어 축 쳐진 커다란 곰 인형을 업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못 걸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명색이 체대생 아닌가. 한때는 몸으로 뭇 여성들 마음도 제법 훔쳐내곤 하던 근육질이 아니었던가. 내 방은 거실을 지나지 않고 바로 현관문 앞에 있었기 때문에 식구들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집을 나설 수 있었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날씨가 선선했다. 그러나 몇 걸음을 떼자 코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응응 이라고 신음소리를 냈다. 집으로 오던 날과 마찬가지로 밤나무 숲을 지나자 희미하게 밤꽃 냄새가 났다. 제법 자란 잡풀이 발목을 간지럽혔다. 나는 계속해서 할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거의 다 왔다. 조금만 참으라. 이런 따위의 희망적 메시지였다. 그것은 스스로 외는 주문 같기도 했다. 할머니는 계속 조용한 신음만 내뱉을 뿐이었다. 내 발걸음만큼 할머니도 점점 무거워졌다. 그랬다. 나는 그때 어쩌면 병원까지 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니 어디로든 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가 지금 업은 것이 할머니가 아니라 내 보잘 것 없는 인생인 것처럼 느껴졌다. 어지러웠다. 어쩌면 나는 이대로 쓰러져 영원히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자 와락 눈물이 났다. 할머니의 팔이 힘없이 덜렁거렸다. 할머니의 몸이 자꾸만 옆으로 기울어 균형을 잡기 힘들었다. 주머니에서는 계속해서 휴대전화가 울렸다. 아마 집일 것이다. 어쩌면 여자 친구일지도 모른다. 나는 계속 걸었다. 어디로든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