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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화장」

  • 작성일 2015-07-18
  • 조회수 1,769





“ 육체로 사는 모든 산 것들이 무(無)로 환원하는 대 역정, 그 시작과 끝, 겉과 속”



김훈, 「화장」






아내는 두통 발작이 도지면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시퍼런 위액까지 토해냈다. 검불처럼 늘어져 있던 아내는 아직도 저런 힘이 남아 있을까 싶게 뼈만 남은 육신으로 몸부림을 치다가 실신했다. 실신하면 바로 똥을 쌌다. 항문 괄약근이 열려서, 아내의 똥은 오랫동안 비실비실 흘러나왔다. 마스크를 쓴 간병인이 기저귀로 아내의 사타구니를 막았다. 아내의 똥은 멀건 액즙이었다. 김 조각과 미음 속의 낱알과 달걀 흰자위까지도 소화되지 않은 채로 쏟아져 나왔다. 삭다 만 배설물의 악취는 찌를 듯이 날카로웠다. 그 악취 속에서 아내가 매일 넘겨야 하는 다섯 종류의 약들의 냄새가 섞여서 겉돌았다. 주로 액즙에 불과했던 그 배설물은 흘러나오자마자 바로 기저귀에 스몄고, 양이래 봐야 한 공기도 못 되었지만 똥 냄새와 약 냄새가 섞이지 않고 제가끔 날뛰었다.
계통이 없는 냄새였다. 아내가 똥을 흘릴 때마다 나는 병실 밖 복도로 나와 담배를 피웠다.
「엄마, 이제는 안 아프지 다 끝났지?」
딸은 아내의 영정을 바라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또 울먹였다.
숨이 끝나는 순간, 아내의 몸속에 통증이 있었다 해도 이미 기진한 아내가 아픔을 느낄 수 없었고 아픔에 반응할 수 없었다면 아내의 마지막이 편안했는지 어땠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아내가 두통 발작으로 시트를 차내고 머리카락을 쥐어뜯을 때도, 나는 아내의 고통을 알 수 없었다. 나는 다만 아내의 고통을 바라보는 나 자신의 고통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밤새 뒤채는 아내의 병실 밖으로 겨울의 날들과 봄의 날들은 훤히 밝아왔고 병실을 지키는 날 아침에 나는 병원에서 회사로 출근했다.




▶ 작가_ 김 훈 - 소설가이자 언론인. 1948년 서울 출생. 한국일보 문학담당 기자시절 깊이 있는 문학기사로 정평이 났음. 불혹의 나이를 지나 소설가로 등단한 후,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등 중요한 문학상을 받았고, 에세이집 『자전거 여행』은 서점가에서 돌풍을 불러일으키며, 자전거로 여행하는 풍속의 시작이 됨. 펴낸 책으로 『강산무진』『칼의노래』『남한산성』등이 있음.

▶ 낭독_ 박상종 - 배우. 연극「고도를 기다리며」, 「내마」, 「햄릿프로젝트」 등에 출연.
문형주 - 배우. 연극「맘모스 해동」, 「칼리큘라」, 「당통의 죽음」 등에 출연.


배달하며

질병의 고통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인간의 ‘이토록 속절없는 고투’ 에는 무언가 제외된 것이 있다. 가장 중요하고도 결정적인 것. 질병의 고통은 인간 전체를 공격한다. 육체가 고통당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만, 고통당하는 육체 안의 영혼의 상태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영혼의 실재를 알고 그 실재에 더 깊이 생을 의존해온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는 이와 같지 않다. 육체가 고통에 매몰되는 한순간 한순간에도 그의 몸부림 안쪽으로는 평소에 믿음으로 살아온 (보이지 않지만) 빛나는 길이 더욱 선명해진다. 고통이란 칠흑을 구멍처럼 뚫으며 더 멀리 가는 빛줄기. 가는 곳이 있음을 아는 것과 숨이 다함과 동시에 끝이라고 여기는 것, 그 차이로 해서 죽음은, 죽음 너머의 나라로 들어가는 열린 문(門)일 수도, 닫힌 문이 될 수도 있다.


문학집배원 서영은


▶ 출전_『화장』(2004년도 제28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문학사상사)

▶ 음악_ Sound ideas - romantic pastoral 8 중에서

▶ 애니메이션_ 강성진

▶ 프로듀서_ 양연식

서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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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건

  • 익명

    김훈 작가님이 죽음에 가닿는 육체적 고통의 외형을 핍진하게 보여주었다면, 서영은 작가님은 '죽음은 그런 고통만이 전부가 아니다. 그런 육체적 고통의 내부에 있는 것, 그리고 그런 외형의 너머에 있는 것이 또 있다.' 라는 깨달음으로 이끌어 주시네요. 사물을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의 필요!, 좋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 2015-07-24 11:31:01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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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깐나

    '아내의 마지막이 편안했는지 어땠는지는 알수 없는 일이었다.' 이글에 마음을 기울입니다. 열흘전 89세, 친정아버님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염을 해주시던 장의사분이 "아버님이 아주 편안한 표정이셨습니다." 아버지가 그렇게 훌훌 삶을 떠나셨기를 바랍니다. 많이 슬퍼했던 나는 오늘 '옅어진 슬픔'을 덤덤하게 바라봅니다.

    • 2015-07-19 16:32:13
    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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