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시장
- 작성일 2015-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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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시장
매일 새벽 산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시장으로 돌린 건 순전히 거미와 여름 모기 때문이었다. 산딸기 따 먹는 재미가 시들해져 가던 유월 말쯤 이었다. 뒷산기슭을 오르다가 투명한 거미줄을 걷자 거미들이 우두둑 내 머리에 떨어졌다. 머리를 마구 흔들고 몸을 털었지만 보이지 않는 내 몸 어딘가에 거미가 붙어 있을 것만 같아 기분이 찜찜했다. 여름 산은 덥고 습습해서 모기 공격도 잦았다. 긴 팔 긴 바지로 중무장을 하고 산을 올라도 바지 속까지 모기가 물어 붉은 흔적이 남았고 다리가 가렵고 은근히 짜증이 일었다.
그즈음 버스를 타고 가다가 집과 가까운 시장에서 유월 말까지 새벽 마늘시장이 열린다는 플래카드를 보았다. 도보로 삼십 분, 왕복 한 시간거리에 인근 시장이 위치해 있는데 자전거를 탄 아저씨나 카트를 밀고 가는 아줌마들이 시장을 봐 오는 걸 종종 보았다.
평소 초저녁잠이 많은 난 늦은 밤, 반값 세일로 북적이는 동네 대형마트에는 자주 가지 못한다. 여름 산 모기와 거미의 공격에 서서히 지쳐갈 무렵, 마늘시장이 개장한다는 소식이 반가웠다. 시장에 가는 길은 푸른 나무들이 쭉 늘어서 있어 공기도 나쁘지 않고 오가는 사람들도 많아 운동코스로도 적격이라 단박에 끌렸다.
주말, 평소처럼 일찍 일어나 배낭을 메고 지갑을 챙겨 새벽시장으로 향했다. 시장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여섯 시, 입구부터 사람들로 북적대고 있었다. 텃밭에서 막 솎아온 상추, 부추 고추 따위를 팔러 나온 할머니부터 전복, 낙지를 스티로폼 박스에 담아 파는 청년, 트럭에 가득 실은 마늘을 바닥에 부려놓는 상인들도 눈에 띄었다.
새벽시장은 자리다툼도 치열해서 간간이 큰소리가 오갔다. 원래 자리를 잡고 장사를 하고 있던 상인들이 있어서 그 곳에 한 자리 비집고 들어가 물건을 팔기 위해선 기 싸움이 있었다. 잔디밭쪽은 가끔 시청에서 단속이 나와 자리를 걷어버리는 통에 장사를 할 수가 없어서 좋은 자리와 길목을 차지하려는 장사치들로 다툼이 일었다.
한번은 고흥서 아들트럭으로 마늘을 팔러온 할머니가 과일, 야채를 벌려놓고 팔고 있던 아줌마 옆에 자리를 잡으려고 하자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한 모양이었다. 마늘시장이 개장하는 사나흘만 옆자리에서 장사를 같이 하자고 했는데 아줌마가 자리를 비켜줄 수 없다고 했다. 원래 있던 자리를 양보하지 않으려는 통에 결국 큰소리로 욕이 오가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두 여인의 싸움에 불난 집 구경이라도 하듯 사람들이 우우 몰려들었다. 아줌마는 할머니에게 나이를 먹었으면 나이 값 좀 하라고 하고, 할머니는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한다고 하면서도 그 자리를 떠나려하지 않았다. 결국엔 야채가게 옆에 마늘을 내리면서도 서로 눈도 안 마주치고 입 꾹 다물고 장사를 하는 바람에 오가는 손님들만 놓치고 말았다.
새벽시장의 활기 속에 간혹 노숙자와 거지의 한숨도 섞여들곤 했는데 상인들은 이들에겐 대체로 친절했다. 맨발에 슬리퍼를 끌고 다리를 절룩이는 거지에게 푼돈대신 지폐를 건네는 이가 있었고, 노숙자 아저씨에게 미숫가루나 삶은 계란 따위를 쥐어주는 이들도 있었다. 시장을 돌며 박스를 주워 모으고 하루 한 끼니정도만 먹고 시장 화장실을 사용하며 생활하는 그들이 시장 상인들에겐 미워할 수 없는 한 식구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잠이 없는 노인들은 시장을 보러온 것 같지 않고 사람구경을 하러 나온 듯 보였는데, 시장 구석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장사 하러온 할머니들에게 농담이나 말을 걸기도 했다. 장사를 하러온 할머니가 오이 한 개를 반으로 툭 잘라 할아버지에게 건네자 괜찮다고 손사래를 쳤다. 오이를 기어이 쥐어주려는 할머니와 작은 실랑이 끝에 할아버지는 너털웃음을 웃더니 오이를 손에 받아들었다.
메르스가 확산되어 전통시장이 활기를 잃어간다는 뉴스보도가 있은 직후여서 그런지, 아님 마늘시장 개장으로 사람들이 많이 오고갈 때 민심을 확보하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주말 새벽시장에 시의원과 구청장, 구청장 부인이 떴다. 마스크를 쓰고 콩나물을 파는 아줌마한테서 구청장 부인이 콩나물 한 봉지를 건네받자 구경꾼들이 몰려들어 너 나 할 것 없이 콩나물을 사겠다고 아우성이었다. 순식간에 동이 나버린 빈 콩나물시루가 보였고 마스크를 벗은 아줌마가 입가에 흐른 땀을 닦았다.
정장 차림의 그들이 마늘 트럭으로 향하자 일시에 그쪽으로 사람들이 몰려갔다. 시의원이 마늘 두 묶음을 들고 계산을 치르자 마늘 파는 노총각은 장갑까지 벗고 그와 악수를 하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누군가 휴대전화로 계속 사진을 찍어대는 바람에 고흥서 올라온 청년은 단박에 스타가 되었다.
배낭에 마늘 한 묶음과 애호박 양파, 고추를 담았더니 가방이 꽉 찼다. 묵직한 배낭을 한 쪽에 세워두고 천 원짜리 식혜로 목을 축이고 집에 갈 채비를 서둘렀다. 소나기가 내리려는 지 먹구름이 몰려와 있었다. 시장을 휘돌아 나가면서 보니 시골 할머니들 앉은 자리에 아직 팔지 못한 야채들이 한 가득 쌓여 있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깻잎을 일일이 묶고 푸성귀를 다듬고 아침 첫차를 타고 이곳에 왔을 그네들의 노고가 짐작되었다.
어릴 적 할머니 손을 잡고 시장에 몇 번 간 적이 있다. 할머니는 텃밭에 열린 고추와 상추를 솎아서 가끔 시장에 내다 팔곤 했다. 할머니가 상추, 고추를 팔아 돈이 생기면 할머니를 졸라 잔돈을 얻어 눈깔사탕이나 과자를 사먹었다. 할머니가 신문지에 상추를 도르르 말아서 파는 것을 구경하고 아줌마들한테 고추를 서너 개 덤으로 건네는 것을 보면서 어린 나도 가끔 장사를 거들었다. 울 할머니 잠깐 화장실 갔는데 뭘 사려고 한당가요? 라고 사투리를 쓰면 아줌마들은 웃으면서 상추를 봉지에 담았다. 나도 가끔 할머니가 하는 것처럼 상추 봉지에 작은 고추를 몇 개 덤으로 건네면서 이담에 꼭, 또 오셔~라고 할머니 말을 흉내 내곤 했다.
늘 오르내리던 산을 먼빛으로 바라보는 요즘, 새벽시장의 재미와 활기에 푹 빠져 배낭을 챙겨 일주일에 서너 번은 꼭 그곳에 간다. 가는 길엔 한쪽 팔, 한쪽 다리가 불편해서 춤추듯 걷는 노인들도 보이고, 자전거를 타고 휙휙 내 곁을 지나가는 학생들도 있다. 벤치에 웅크려 잠을 자는 노숙자 아저씨들도 있고 카트를 끌고 하품을 하며 시장을 향하는 아줌마들도 있다. 이어폰을 끼고 조깅을 하는 아가씨도 있고 나처럼 배낭을 메고 산에 가듯 시장을 향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시장 입구엔 새벽잠을 설친 할머니들이 일찍 자리를 잡고 앉아 있고 토마토와 호박 따위를 팔러 나온 우리말이 서툰 다문화 새댁도 보인다. 밭에서 막 솎아온 듯 싱싱한 상추와 부추, 어린 고추와 애호박, 가지와 강낭콩 그리고 못난이 감자와 토마토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그것들을 사서 배낭에 가득 담는다. 묵직한 배낭을 등에 짊어졌는데도 콧노래가 나오고 집을 향하는 내 발걸음은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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