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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노 부자티, 『어떤 사랑』

  • 작성일 2015-08-07
  • 조회수 1,238





“누가, 사랑, 그 치명적 심연을 비켜갈 수 있단 말인가?”



디노 부자티, 『어떤 사랑』






오오 하나님, 도대체 다른 것을 생각할 수가 없단 말인가? 상념은 거기에, 언제나 고통에 찬 같은 주제 위에 못 박혀 있었다. 그는 전연 구제될 수 없는 불행에 빠져있는 자신을 느끼고 있었다. 얘기도 되지 않는다. 어리석고 허망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마음의 안일 따위는 바랄 수 없을 만큼 강하고 진실한 것이었다.
이제 와서 그는 깨달았다. 아무리 헤어나려고 발버둥 쳐도, 그녀에 대한 상념이 그를 따라다녀 하루 중에 극히 짧은 한 순간이라 하더라도 떨어지지 않고, 어떠한 사물도 인간도 상황도 또 어떠한 독서도 기억도 대번에 맴돌고 맴돌아서 심술궂게 그녀에게 이어져 간다. (중략)
그는 끈에 매달려서 빠르게, 점점 빠르게 빙빙 내돌려지는 작은 돌멩이와 같은 것이었다. 그 작은 돌멩이를 내돌리는 것은 바람이었으며, 가을의 폭풍이었으며, 2절망이었으며, 사랑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미친 듯이 돌면서 벌써 어떤 형태인지 분별도 할 수 없는, 무엇인가 격렬하게 움직이는 소용돌이의 고리와 같은 곳이 되었다.
그는 회전목마였다. 갑자기 회전목마가 미친 듯이 빠르게 점점 빠르게 돌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렇게 그를 돌리는 것은 그녀였다. 라이데였던 것이다. 절망, 사랑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미친 듯이 돌면서도 목마인 그는 말의 형태를 잃어버리고 말이 벌써 하얗게 떠는 비단 장막, 금빛 술이 달린 떠는 흰 장막으로 화해 버리고 말았다. 그는 벌써 그가 아니었고, 아무도 알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 아무도 대화하는 것마저 불가능한 존재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는 누구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았으며, 또 귀를 기울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오로지 자신이 바람을 가르고 있는 소리만을 듣고 있었다. 그에게는 그녀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라이데밖에, 그 무서운 심연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소용돌이 속에서 그는 주위의 세계마저 볼 수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 이외의 생활 따위는 전연 존재하는 것을 멈추었다. 벌써 존재하지 않았다. 결코 존재한 일도 없었던 것이다. 안토니오의 생각은 그녀 속에, 그 현기증 나는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던 것이다. 그것은 수난이었다. 무서운 일이었다. 여태껏 그는 이만큼 심하게 회전한 일은 없었다. 이만큼 인생을 맛본 일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 회전목마는 멎는다. 이제 끈에 매여졌던 작은 돌멩이는 멎는다. 목마는 말의 형태를 되찾아 경직하고, 끈에 매달렸던 작은 돌멩이는 밑으로 내려져서 움직이지 않으며 겨우 그 형태가 명확한 것이 된다.




▶ 작가_ 디노 부자티 -이탈리아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1906년 북 이태리 베네트에서 출생. 밀라노로 이주한 뒤 그곳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코리엘 데트라 셀라 지(紙)의 편집자로 지내면서 유력 문학상 심사위원을 지낸바 있다. 파시즘 정권 붕괴 후 이차대전이 끝난 시점인 1963년에 발표된 『어떤 사랑』은 이색 소재일 뿐 아니라, 절망으로서의 사랑을 깊이 천착함으로써 어두운 인간 심연에 매설된 지뢰를 터트림과 동시에 작품의 반향 또한 폭발적이었다. 작품집으로 『오랜 술의 비밀』 『타타르인의 사막』 등이 있다.

▶ 낭독_ 유병훈 - 배우. 연극 '홍도', '푸르른 날에', '알리바이 연대기' 등에 출연


배달하며

수년이 지난 뒤에도 이 구절을 다시 읽으면 나는 가슴을 움켜쥐고 한동안 엎드려 있게 된다. 과연 사랑은 치명적이었다. 떨어져도, 떨어져도 멈출 수가 없는 그 흡혈의 심연. 파멸의 길인 줄 알면서도 내려올 수가 없는, 오직 숨찬 질주뿐인 말 잔등--몰아의 현기증. 이 세상에는 오직 ‘라이데’여야만 숨이 쉬어지는 사랑이 있다. 우주의 어느 곳인지 알지 못한 채 스스로 발광(發光)하며 떨어지는 별똥별처럼, 영원한 무(無)로 사라지고픈 적멸의 꿈. 구원의 거부, 영원한 살아있음의 고달픔에 대한 공포..


문학집배원 서영은


▶ 출전_『어떤 사랑』 (신구문화사 현대세계문학 전집17. 1972년)

▶ 음악_ Stock music /Americana 중에서

▶ 애니메이션_ 이지오

▶ 프로듀서_ 양연식

서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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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 익명

    치명적 사랑''''''. 나도 바람 세차게 부는 밤이면 깊은 어둠 속에서 문득 홀로 그런 사랑을 꿈꾼다. 꿈꾸는 것만으로도 아프다. 아파서 황홀하다. "흡혈의 심연, 파멸의 길, 오직 숨찬 질주뿐인 말잔등''''''." 배달되는 문장 또한 치명적이어서, 귀가 열린 후 처음 듣는 언어인 듯 몹시 새롭고 아주 아프고 또 크게 황홀하다.

    • 2015-08-09 20:01:50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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