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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안 바로슈, 「오르샹가(街)를 기억하는가」

  • 작성일 2015-08-21
  • 조회수 1,072





“결혼은 각성의 눈이 아직 깨어나지 않았거나, 깨어났더라도 어떤 두려움 때문에 그 눈을 감고 있어야만 가능해진다. ‘부부는 성취된 균형’에 지나지 않는다’”



크리스티안 바로슈, 「오르샹가(街)를 기억하는가」






그래, 흥분한 쟝은 헐떡거리며 펄쩍펄쩍 뛰며 달려들었고, 나는 짓눌린 채 침대 위에서 흔들렸다. 그를 안 후 처음으로 나는 암담한 반응을 보였고 ‘하는 대로 가만 내버려 두면 그만큼 더 빨리 끝나겠지’ 하고 체념했다. 물론 그는 그 길로 곧장 잠이 들었다. 과연 끝이 난 것이었다.
모든 것이, 아니 모든 것이라기보다는 그와 나 사이에 남은 그 얼마 안 되는 것이 끝나 버린 것이었다. 꼭 그 엉터리 같은 정사 때문은 아니었다. 그 포옹이 과연 그를 무엇과 맺어 주었단 말인가? 기껏해야 나의 섹스? 시간이 가면서, 아니 시간을 잃으면서 나도 깨달은 것이다..
나는 혼자서 살아야 마땅한 사람이다. 그 어느 누구에게도 소속되지 않고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도록.. 특히 어떤 사람을 소유하지 않도록.
절대로-- 나는 그날 저녁 그렇게 결심했다. 악을 쓰지는 않았고 다만 뱃속 깊은 곳에서 오는 저 초이성적인 확신을 가지고 나는 그 후 줄곧 여러 번이나 혼자서 그렇게 생각했다-- 절대로 나는 부부라는 말이 뜻하는 것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진부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자유, 오늘 날 너무나 더렵혀진 이 말은 우선 선택이다. 그런데 누가 참으로 선택을 하는가?
전에 나는 그것을 쟝에게 설명할 용기를 갖지 못했다. 그가 그 말을 어떻게 알아들었겠는가? 내가 감히 ‘나는 가겠어’라고도 말하지 못할 때 ‘난 너를 사랑하지 않아’의 뜻으로? 그래서 나는 소리 없이 일어나 거리로 마지막 시선을 던졌다. 마치 거기에서 내 생각의 확인을 찾아보려는 듯이. 그리고 나는 떠났다.
그 후, 오, 그 후, 그런 일이 여러 번 반복되었다. 인간은 둘씩 짝 지우며 간다. 아마 그렇게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인생 속을 혼자서 갔다.




▶ 작가_ 크리스티안 바로슈 - 프랑스의 생물학자 겸 작가. 라디움 연구소 근무. 1977년 『과거로 창이 난 방』 출간. 단편 공쿠르상 수상.

▶ 낭독_ 이연규 - 배우. 연극 '먼데서 오는 여자', '베키쇼', '그을린 사랑' 등에 출연


배달하며

그래, 모든 관계는 초극되어야 한다. 아니, 관계 그 자체가 아니라, 관계 안의 거짓 언어들은 각성이란 식스 센스에 의해 초극되어야 한다. 때로는 육욕으로 잠시 달아오른 두 몸도 거짓 언어일 수 있다. 입맞춤 속에서도 감겨지지 않는, ‘나는 너를 사랑하지 않아’ 하는 식스 센스의 눈 때문에 입맞춤은 망쳐질 수 있다. 그렇다, 입맞춤은 망쳐져야 한다. 그와 자신을 바라보는 식스 센스의 눈은 관계의 타성적 사슬을 끊고 참다운 자유로 나아가기 위한 영혼의 날개짓이다.


문학집배원 서영은


▶ 출전_『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과학과 인간사. 1980년 1월)

▶ 음악_ The Film Edge-Art Film-Experimental 중에서

▶ 애니메이션_ 강성진

▶ 프로듀서_ 양연식

서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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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건

  • 익명

    "나는 인생 속을 혼자서 갔다." 이 문장이 '인간' 또는 '인생'에 대해서 오래도록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혼자서 가는 삶을 사는 사람의 상대방이 된 사람, 바로 그 관계 때문에 그 사람 역시 '인생 속을 혼자서 갔'으리! 생각해 보면 각성을 통해 '관계의 타성적 사슬'을 끊고 자유로운 인간이 되고자 하는 이도 있고 또는 그 사슬에 의지하여 눈 꾹 감고 삶의 무서움을 견디려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게 인생이다! 그래서 인생은 슬프고도 무섭다!

    • 2015-08-27 01:53:59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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