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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란성 쌍둥이

  • 작성일 2015-09-19
  • 조회수 644

일란성 쌍둥이

일본의 강제 합병으로 36여 년 긴 세월 동안 자유를 잃어버렸고 일본사람들의 종노릇하며 수탈의 세월을 보냈다. 농촌 도시할 것 없이 놋그릇이며 놋숟가락마저도 공출이란 명목으로 빼앗아 태평양 전쟁의 총이며 대포를 만드는데 사용하였으니 심한 빼앗김의 정도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현실 앞에 조선의 백성들은 억압에 몸부림치며 굶주림에 울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하는 긴 세월 동안 이름마저 빼앗겨 당시 국민(초등)학교 다니는 학생들은 우리말 보다 일본말을 더 잘하는 학생도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또 세월이 흘러간다면 일본인이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을 하면서도 그 속에 살려면 일본에 일본인에 협력하며 사는 것이 편할 것이다. 그러다 보니 마음속으로 반대하며 반감을 갖고 있어도 저 마음 깊은 곳에 숨겨두고 곁으로 협력을 하는 척 좋은 척 하면서 사는 사람들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에 와서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일본인 같이 행동하며 일본인 앞잡이로서 조선의 백성들을 수탈하고 백성을 괴롭히는데 앞장선 앞잡이가 아니라면 당시 국내에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단죄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낮에는 일본에 협력하고 밤이면 독립군에게 군자금을 주는 그러한 사람도 없지 않았다. 이런 사람들을 보아서도 애국자와 매국노의 구분이 들어나는 몇 가지 사실만 가지고 결정할 수 없는 것이다. 더욱 현실에 네 편이면 자질구레한 것까지 들추어내서 매국노라 매도하고 내편일 때는 어수 큰 짓이라도 덮어 버리고 마는 일들을 저지르지는 않는지? 그러다보니 일본 강제합병으로 산 세월보다 더긴 해방 70년을 맞이한 오늘까지도 과거에 매달려 과거를 가지고 죽일 놈 살릴 놈하며 반목의 비생산적인 세월을 보내지는 않는지요? 과거에 매달려 갑론을박할 때가 아니라 지금은 더 나은 대한민국의 건설을 위하여 마음을 모울 때이다.

지금의 일본 어디로 갈까?

 

참 딱하다

이웃 일본이 어디로 갈까? 걱정하며 살아야 하는 우리들 처지

말해 무엇 하겠나

일본이라는 나라

반드시 핵무장 하며 군사 대국으로 간다.

지난세월 살아온 날들을 봐라

사람 죽이기를 닭 잡듯 하지 않든가?

사무라이 말이 좋아 무사 이지

그들은

사람 죽이는 일에 이골이 난 백정(白丁)들이다.

임진왜란(1592년)을 일으켜 7년 동안 조선을 유린하고도 모자라 조선을

1905년 을사능약을 체결하고 1910년 8월29일 강제 합병하지 않았는가?

318년 전 자기들 잘못을 알았다면 이러한 짓들 하지 않는다.

독도만 해도 그렇다.

명백한 우리 땅인데 자꾸 집적인다.

호시탐탐(虎視耽耽)기회를 엿본다.

양식 있는 일본인이라면

일제강점기 자기들이 저질은 잘못도 있고 설혹 독도가 과거 자기 땅이라 해도 잘못을 보상하는 의미에서도 자기 것이라고 말 못 할 것인데 역사적으로나 현실에서도 자기 것도 아닌데 우기는 것 봐라

좋은 이웃이기는 당초 생각을 말아야 하는 자 들이다.

귀 무덤도

코 무덤도

광동 대지진 때 조선인학살도

일본국 군인들의 성 노예 할머니들의 피맺힌 눈물도

다 그들 일본인들이 저지른 만행이다.

한 일 관계 과거 긴 역사를 보면 더욱 명백하다.

역사를 보고 배운다 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힘없으면 남의 나라 종살이밖에 더 하는가?

이스라엘도 그랬고 우리도 그랬다.

너희가 무엇 할래 어떻게 할래. 안달 할 것 없다.

(개인도 미래를 위해 보험도 들고 연금도 넣고 한다)

국가는 더 말해 무엇 하리오 최악의 일들을 가정해서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 국민의 안위와 재산 보호를 위해 최선의 대비책을 만들어야 한다.

그 길이 국력이다,

저 나라 집적이면 큰 코 다친다 하면 감히 넘보겠는가?

그럴 정도로 힘을 키워야 한다.

제주 강정마을 해군 기지 반드시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어도 문제 뿐 아니라 바다를 통해 국제 사회로 나가는 길 목 아닌가?

경제 발전시키고 부강한 나라 만들어야 나라를 지키는 힘을 가질 수 있다.

힘이 없어 당한 지난날을 겪고서도 모르는가? 아니면 잊었는가?

국제 사회는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

베트남을 보면 알 것이다

어제의 적 미국은 지금은 어떤 관계인가를?

힘이 있으면 적도 동지가 되지만 힘이 없으면 동지도 적으로 변한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적도 동지도 없는 것이 국제 사회이다.

(강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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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이 되어 그나마 남아 있던 것도 그의 없는 상태에서 몰래 숨겨둔 것까지도 해방 후 한 겨레이면서 좌우로 갈라져 싸우다. 복구할 시간조차 갖지 못하고 6.25 한국동란 죽고 죽이는 동족상잔의 전쟁 중에 모두 불타고 파괴되었으니 온전한 것이라고는 하나 없던 그 시절 어떻게 살아야 되는 지도 무엇을 해야 할지도 잘 모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무엇을 먹고살 것인지? 식량은 해마다 부족했으며 자원이이라고는 없는 나라 그런 가운데 휴전선을 경계로 남북으로 갈라져 전쟁이 끝났다고 하나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언제 또 다시 전쟁의 화마가 온 국토를 유린할지 불안한나라 수출로 먹고 살아야 하며 산업을 일으켜야 한다고 하나 수출이란 무엇인지? 또 무엇을 수출할 것인지 모르던 그 시절 국민 모두가 어려웠든 그 60년대 70년대를 기억하십니까? 그 시절 어느 공장에서 낮에는 재봉틀을 밟고 밤에는 공부를 하면서 열심히 산 어느 여학생의 기막힌 사연입니다.

하루 10시간이란 긴 작업도 마다 않았던 시절 그것도 부족해서 또 2시간을 잔업 이란 이름으로 솔선하여 일하였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아래 마을길을 넓히는 등 마을 전체가 공동으로 일하는 모습들은 농촌 어디서나 볼 수 있었으며 도시에서는 “하면 된다는 신념 아래 우리들의 딸과 그리고 어머니들의 머리카락이 짝짝 가위를 두드리며 엿 판을 리어카에 싣고 시골 골목길을 누비는 아저씨가 동네 꼬마에게 엿을 주고 산 달비(머리카락을 다듬어 만든 묶음)와 바꾼 것을 모아 가발을 만들어 외국에 팔아 외화를 벌어드렸습니다. 머리카락이 초창기 한국 수출의 선두주자 역할을 할 때 일입니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하여 농촌에서는 새마을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으며 도시에서는 하면 된다는 기치 아래 한창 산업화가 사회 전반에 걸쳐 정부 주도로 빠르게 진행될 때 일입니다. 일 년 경제성장률이 연 10% 이상 달성하는 일할 사람이 부족했던 고도성장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어떤 공장에서는 반만년 긴 역사 동안 잘 살았던 적이 어디 한 번이라도 있었습니까? 모든 백성이 배불리 먹었던 적 있었습니까?

이와 같은 가슴 아픈 우리의 가난의 긴 역사를 우리 후 손들에게 대 물림하지 않기 위하여 젊은 우리 세대가 희생함으로써 가난의 대물림을 끊어버리자며 사명감을 가지고 일할 때였습니다.

희생이란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대의(大義)를 위해 몸을 바칠 때 생명까지도 바칠 때 주어지는 이름입니다만 우리들에게 바라는 것은 총칼을 들고 싸워 조국을 지키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총 칼을 더는 대신 호미와 낫을 팬을 들고 작업복을 입고 자신들의 앞날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이며 이것은 후손들을 위해 부지런한 세대가 되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희생이란 이름으로 독려하였다 해야 할 것입니다. 이는 어느 회사 경영자의 호소였으며 신념이며 철학이었습니다. 그의 뜻에 동의하는 많은 사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는 회사 사원들의 사기를 한층 더 진작시켰으며할 수 있다 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똘똘 뭉쳤습니다. 열심히 일을 하였습니다. 또 당시 살았던 사람들은 그 시대정신을 이렇게 얘기합니다.

시대정

젊은 그때 우리들의 정신은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길

그 길은 찾는 것입니다.

그 길은 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로서는

무엇이나 만들어서 외국에 내다 파는

수출에 있음을 알았습니다.

가난했던 60년대

숨을 헐떡이며 넘으려 해도 넘기 어려웠든

그 보릿고개

건설 장비 하나 없이 엄청 높은 보릿고개를

수출이라는 장비 하나로

깎고 뭉개어 평지로 만들어 넘으려 했습니다.

어떤 경영자는

Y샤스 몇 장을 가방에 넣고 생산 된지 얼마 되지 않은 라면 한 봉지를

비행기 시간에 맞춰

무엇에 쫓기듯 요기로 때우고는

부산에서 미국으로 일본으로 유럽으로

미 수교 국가인 수단으로

이웃집 마실 가시 듯 다녀습니다.

수단에서는

현지인의 맨발에 절망 보다

신발을 신길 수 있다면

엄청 많이 팔 수 있다 하신 긍정적인 발상의 전환은

지금도

세일즈맨들에게 회자(膾炙) 되는 일들도 있었습니다.

촌음을 아끼고

자신의 몸도 돌보지 않고 끼니마저 잊으며 열심히 일했습니다.

우리 민족의 반만년(半萬年) 아주 긴 역사(歷史) 동안

언제 한번 인간답게 잘 산적이 있었습니까?

반문에는 그럴 때가 있었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 한 사람도 없음을

가슴 아팠습니다.

더욱 호란(胡亂)과 왜란(倭亂) 때는

남의 나라 병사들의 토악(吐握)질한 것 까지 활터 먹었다는

부끄러운 일화는

얼마나 배가 고파서면하면서도

고개를 떨러드려야 하는

그 현실이 가슴 아팠습니다.

굶주림의 이 한(恨)을 씻어버리고

잘 살기 위해서는

어느 한 세대 희생(犧牲) 없이는 잘 살 수 없다는 어느 경제공동체사장님의 신념이 이심전심으로 전해졌습니다.

후손들에게 잘 살 수 있는 길

그 길을 물려주기 위해서는

우리 세대 아니 오늘에 사는

우리 젊은 세대가 희생을 하자.

우리 세대의 희생이 하나의 구호가 되어

밤도 낮 삼았습니다.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앞으로만 가야하는

그러한 정신이 자랑 일 때였습니다.

노는 것은 허영이며 사치인 한 때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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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에 건물을 짓고 공장 굴뚝이 높이 올라가는 모습은 도회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배를 짜는 공장에서는 직수란 이름의 종업원이 옷이나 신발을 만드는 공장에서는 재봉틀을 밟는 여종업원이 또 다른 공장에서도 일손이 부족했습니다. 각 회사에서는 일하는 사람을 모집하기 위하여 발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그중에도 중학교를 졸업하고 가정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시골에서 가사를 돌보며 농사철에 모자라는 일손을 도우며 미래 예비 신부수업을 하는 새내기 처녀들을 뽑아서 기숙사에 기거케 하고 밤에는 야간 고등하교를 갈 수 있도록 하는 즉 산업체 특별학급이라는 제도를 만들었다. 초등(국민)학교 6년간은 의무교육이었지만 당시에는 의무교육인 초등학교도 갈 수 없는 아이들도 있었다. 중학진학 율이36%(1970년도 중학교 진학률) 이었으니 나머지 64%학생들은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주경야독 즉 주린 배를 채워주며 배움에 목말라하는 아이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는 일석이조의 제도(지금도 그런 제도가 있다 해도 아마 미미할 것입니다.) 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야간에는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낮에는 공장에서 일을 하는 시골에서 도시로 나온 많은 남 여학생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남 여학생 중 극히 일부는 취직을 했습니다만 일을 배우기도 전에 휘황찬란한 도회의 유혹에 마음이 흔들려 중도에 학업을 포기하고 사치와 허영에 물들어 술을 파는 야간 업소를 나가는 경우도 있고 또 다른 엇길로 나가 부모의 애간장을 태우는 경우도 없지 않았습니다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공부도 일도 열심히 하여 매월 월급을 받아 부모님께 송금하여 가난한 집에 농토를 사드리는 등 가정경제에 많은 보탬을 주었습니다.

어떤 집의 경우는 오빠나 남동생(그때까지만 해도 아들이 그 집안의 대들보이며 대를 있는 가장으로서 가정을 이끌어 가야 하는 것으로 믿었으며 남존여비 사상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은 당연히 상급학교에 진학을 해서 더 배워야하고 여자는 돌리면 깨어지는 사기그릇과 같다는 말들을 믿은 것인지 집에 주저앉혔으며 어떤 집안은 딸들은 오빠나 남동생을 위하여 학비를 부담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그러한 집이 의외로 많았습니다. 어떤 가정에서는 장남을 위하여 많은 남녀 동생들이 희생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딸은 더 말한 나위 있었겠습니까? 딸들은 으레 그래야 하는 것으로 알고 가정과 오빠나 남동생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자기희생을 마다 않은 대한민국의 딸들도 많았습니다. 어쩌면 그때 대한민국의 딸들이 오빠나 동생들을 공부시켰으며 돈을 모아 가정경제를 일으켰고 나라 경제를 살리는 실질적인 역군이었다 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이만 불이 넘는 국민소득도 그때 그 딸들의 노력이 많은 보탬이 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중에서도 맏딸의 희생이 돋보였습니다. 공장에서 밤낮으로 일하는 큰누나의 도움으로 상급학교에 진학하여 보답하듯 열심히 공부하여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시골 면소재지 넓지 않은 도로를 가로질러

“경 교동 조 동찬 씨 둘째 아들 재만 군 제10회 고등고시합격” 축

이란 현수막은 지나는 다니는 시골사람들의 눈시울을 붉게 했습니다. 한 집안의 눈물겨운 이야기가 시중에 회자(膾炙) 되기도 했습니다. 칭찬인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를 두고 개천에 용이 났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들은 삼천리 방방곳곳 여기저기에 나타나 개천의 용들을 많이 만들어서 전 국민이 기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딸이나 아들 중 맏이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그중 하나의 예 가 하얀 간호 복을 입고 머리에는 흰 간호사 캡을 쓰고 팔을 탁탁 두드리며 좋은 환경에서 주사를 놓는 괜찮은 직업인 줄 알았는데 흰 몸에 노랑 털을 가진 거구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죽음을 알코올을 묻혀 수건으로 닦는 일 인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던 파독 간호사며 지하 수 백 미터 막장에서 목숨을 걸고 다른 나라 사람들의 연료인 석탄을 팠던 파독 광부일 것입니다. 조사하여 통계를 만들지는 못해서도 아마 모르긴 해도 파견된 간호사와 광부들 중에는 한 집안에 장녀나 장남이 많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한국인 그는

그는 의지의 한국인이다.

자기 삶을 실현하기 위하여 서독 광부로

지하 수 백 미터 갱도에서 막장의 삶도 살았다.

열사의 나라 사우디에서

건설의 역군으로 진한 땀방울을 흘리기도 했다.

그리고

귀신 잡는 해병으로

월남에서 공산주의자와 싸우기도 했다.

한 곳 가기도 어려운데

지금 우리나라 경제를 있게 한 그 밑바탕 인

세 곳을 자원하여 가셨다니 가히 놀랍습니다.

기피(忌避) 하여 군(軍) 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하면서

무슨 단체니 무슨 연대이니 연합이니

자기들 마음대로 만든 단체를 앞세우고

길거리에서

오늘도 감 나라 대추 나라

떼 간섭 만 간섭하시는 말로만 애국하시는 분들

부끄러운 줄 아세요.

그를 보세요.

지금 70을 넘어

고엽제 후유증으로 인한 전립선암으로 앓아누우셔

이런저런 불평 많으실 텐데

국가에 대해 원망 한마디 않으시고

내가 누구여 귀신 잡은 해병이잖아 하시며

털고 일어나시어

여기저기 다니시며

웃음으로 하루를 보내신다.

 

발다살 님!

당신은 진짜 애국자이십니다.

근본이 휘어져 버린 요즘 세상에

올곧은 정신으로

두루 세상을 경험하신 당신 같은 노익장이 계셔

그래도

세상은 조금은 더

살맛이 나는 가 봅니다.

 

발다살 님 !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신 그 정신으로

까짓것

병이 무엇이여 하시면서

훌훌 털고 일어나시어

완전 독립인 통일의 그날

굶주린 이북 동포들의 손을 맞잡고

개성을 출발하여 평양으로 신의주까지

원산을 지나 삼수갑산까지

기쁨에 넘쳐 내 땅에 입 맞추며

때로는 하늘을 우르르 보며 함께 가는 그날까지

건강 추서려 주시길 기도드립니다.

[어느 분의 일대기를 간단하게 글로 표현 했습니다.

발달살은 천주교 세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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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정에서는 장남만 대학을 나오고 그 밑에 동생들은 줄줄이 공장 아니면 식당에서 일을 했습니다. 동생들이 가정경제를 책임졌으며 맏이(남)를 대학까지 졸업시켰습니다. 맏이가 결혼하였고 세월 흘러 밑의 동생들도 줄줄이 장가가고 시집갔습니다. 그 어려웠던 지난날 동생들의 수고와 피땀 어린 고생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가 잘나 대학을 나오고 출세한 것으로 착각했었는지 자기 식구만 챙기면서 동생들은 배운 것 없다며 무시하며 안중에도 없는 맏이의 처신에 실망과 분노를 느낀 나머지 오빠를 형을 미워하며 심지어 부모님께 왜 이렇게 맏이만 공부하도록 하셔야만 했느냐며 지차(之次)는 자식이 아니냐며 원망하고 부모에게 대들기도 따지기도 하며 분란(紛亂)을 일으켜 왕래조차 하지 않은 집도 없지 않았다. 장자면 장자답게 아무리 자기 자식이 귀엽고 사랑 서러워도 그간 동생들의 노고에 감사하며 인격적으로 대우하며 자기자식들이 아무리 사랑스러워도 동생들 앞에서는 표정관리를 해야 함에도 그렇지 못한 것이 가정 평화를 크게 저해한 요인이었다 해야 할 것이다.

일부 소수를 제외하고는 그의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인 모양이다. 허긴 잊어버려야 살아 갈 수 있는 일들도 많이 있다. 금쪽같은 아이를 잃은 부모라든지 반대로 연세가 많지 않은 보모를 하루아침에 사고로 잃어 슬퍼하는 자식의 마음은 세월이 망각이라는 약을 주기 때문에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일들은 잊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일이지만 그와는 반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일중에는 남들이 도아주어 잘된 것 인줄을 알면서도 모든 것이 자기가 잘나서 그리된 것처럼 시건방지게 굴다 욕을 바가지로 먹는 졸부같이 잊어버려서는 안 되는 일들도 있다.

어느 시골에서 도회로 직장을 얻어 산업체 특별학급에 진학한 여학생이 있었다. 2학년이 되기까지 2년 동안은 오직 회사와 기숙사를 오가며 공부 아니면 회사 일에 매달려 바깥출입을 모르고 살았다. 학급에서 2년 동안 1등을 빼앗긴 적이 없었다. 성적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모범적인학생이었다. 이름은 설정(薛貞)이며 성은 오(吳)씨이다.

오설정(吳薛貞)은 2년 동안에는 그리 멀지 않은 고향이지만 추석 설 명절 외는 차비를 아끼려고 시골집을 가지도 않았다. 설이나 추석 명절 때는 귀향 인원을 조사하여 회사 버스가 일정 노선을 정하여 시골집 가까이까지 운행하여 조금만 걸어가면 도착할 수 있는 곳까지 버스가 데려다 주어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귀향할 수 있었다.

이 회사에서는 명절 때 긴 줄이 되어 사원들을 태우고 귀향하는 수 십 여대의 출발하는 버스를 향해 사장이하 여럿 간부들이 잘 다녀오라면서 운동장에서 손을 흔들며 배웅하는 모습은

“아름다운 귀향” 이란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이 보였다.

아버지는 설정(薛貞)가 어릴 때 돌아가셨으며 홀어머니와 오빠 한 분 뿐인 단출한 가정이었다. 오빠는 학생보다 10(열)살이나 많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군에도 가지 못하고 그렇다고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닌 그야 말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빈둥빈둥 놀면서도 농사일은 내 몰라 하며 자신의 어머니가 남의 집 농사일을 거드는 등 발품을 팔아 살아가는 어머니에게 의지하여 밥버러지의 삶을 사는 문제의 청년이었다. 여동생이 공장에 취직을 해서 집을 떠나 도시로 갈 때에도 놀면서도 무엇이 그리 바쁜지 떠나는 동생의 얼굴도 보지 않았다.

3학년에 올라와서 두어 달이 지난 후 지난 설에 고향에 다녀왔으면서도 모처럼 하루 휴가를 내어 고향집에 갔다. 3학년에 진학해서 마음 맞은 친구와 조그마한 방을 얻어 자취를 시작하였다. 자취를 한 것을 어머니께서 모르시는 일이라 사후이지만 말씀드려 허락을 받을 겸 또 그사이 공장생활을 하면서 먹을 것이며 입을 것 아껴가며 모은 돈과 집으로 송금한 돈을 합하면 지금쯤은 얼마가 되었을까?

이번에 조장으로 진급했으니 조금 월급이 오르면 앞으로 모을 돈을 상상하며 그간 집에서 적금을 들은 돈은 만기 때 찾아 어머니께서 사용하시도록 말씀드리고 앞으로 받을 월급 중 적금 외에 남는 돈은 모아 야간대학진학을 위해서 사용할 것이며 영어 영문학을 전공하여 지금 다니는 회사 해외영업부 직원들 같이 외국으로 다니는 세일즈맨으로 지구촌을 누비는 훌륭한 직장인이 되겠다는 야무진 꿈을 가지고 있었다. 어머니도 기뻐하실 자기의 꿈을 말씀드리려 발걸음도 가볍게 고향을 찾은 것이다.

땅거미가 기어 다니는 어슴푸레할 무렵 고향집에 도착했다. 고향 집에는 전에 없던 강아지 한 마리가 설정(薛貞)을 언제 보았는지? 자기가 이집 주인의 딸이란 것을 아는지 짓지도 않고 마루 밑에서 꼬리를 흔들며 기어 나오는 것이 처음 뵙겠습니다. 하며 인사를 하는 것 같다.

마루에 올라서면서

“으음!” 인기척을 낸다.

“엄마 강아지는 언제 사서요?” 하며 방문을 연다.

그 말에는 대답도 않으시고

“야야! 우얀 일이고 소식도 없이”

“회사에 무슨 일 있나”

어머니는 놀라시며 먼저 걱정부터 하신다.

“엄마 무슨 일 있기는요 그런거 없심더”

“엄마 보고 싶어 왔제 "

하면서 방으로 들어간다.

어머니는 미리 연락도 없이 집에 온 딸을 보면서 반가움 보다 걱정이 앞선다. 혹 딸에게 무슨 걱정스러운 일이 있나 하는 마음이 때문이기도 하고 또 한편 그간 딸아이가 송금한 돈은 은행에 적금을 부었다. 한 달 한 달 쌓여 돈이 꽤 되었다. 두 달 전 일이다. 딸이 송금한 돈으로 적금을 넣으려 통장을 찾았다. 언제나 통장은 반다지 깊숙이 옷 가운데 넣어두었다.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설마 동생이 고생고생하며 모은 돈까지 찾아 놀음으로 날려버리는 정말 못난 인간 말 종은 아닐 것이다, 생각했었는데 아닌 게 아니라 아들놈이 몰래 귀신같이 찾아 통장과 도장을 가지고 은행에 가서 적금을 해지하고 찾아 노름으로 다 탕진해 버리고 말았다. 편지로 이 사실을 알리려다가 머 좋은 일이라고 닦아오는 추석 때 만나서 얘기하지 속으로 생각하고 그때까지 어머니께서는 더 열심히 품을 팔아서라도 한 푼이라도 더 모아 통장에 넣어 놓고 딸이 오면 그것이라도 내어 놓고 자초지종 이야기 해야지 생각했었는데 생각지도 않게 이렇게 불숙 지난 설에 오고 겨우 3 달이 지나지 않았는데 딸이 온 것이다. 올 때도 아닌데 생각하면서 혹 딸아이에게 무슨 나쁜 일이 생겼나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원래 나쁜 일이나 좋은 일이나 간에 한 번 일어나면 연속으로 일어난다. 좋은 일은 그냥 두어도 무방하나 나쁜 일은 한 번 일어나셨을 때 미리단속을 철저히 하여 예방하여야 한다. 더욱 공장이나 회사 같이 여럿 사람들이 모여 함께 일하는 곳은 더 주의하여야한다. 왜냐하면 한 번 일어난 사고는 겹쳐 일어나기 때문이다.(손톱이 재봉틀 바늘에 찔리는 조그마한 사고가 단속 않으면 부르진 바늘이 튀어 눈동자에 박혀 예쁜 아가씨 한 쪽 눈을 실명토록 하는 큰 사고가 발생 하는 것이다)

어머니는 모처럼 딸아이가 왔어 무얼 먹여야 하는데 지금 집에는 별 다른 반찬이 없다. 혼자 있을 때는 식사는 언제나 대충 먹어 치운다.

아들도 집 나가서 들어오지 않은지 벌써 몇 달이라 별도 반찬이라고는 없다.

앞 가게 가서 두부라도 한 모 사서 찌개라도 끓어 먹여야지 하면서 부엌에 들어갔다. 바가지에 물을 담아 놓고는 귀한 멸치 몇 마리를 풀어두고 앞치마에 물 묻은 손을 닦으면 방안을 향하여 말을 한다.

“설정(薛貞)아 배고프지 저녁 밤 맛있게 지어줄게 조금기다리라.”

하고서는 사립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엄마 보고 싶어 왔다 하지만 혹 나쁜 일은 아닌가? 걱정을 하면서 종종걸음으로 다녀와서 밥을 지어 상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딸도 시장한지 밥을 잘 먹는다. 밥 먹을 동안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녁을 먹고 난 후 설거지를 마치고 호롱불을 사이에 두고 모녀가 마주 앉는다.

“야야! 명절도 아닌데 무슨 일로 왔나?” 하면서 운을 뗀다. 딸아이가

“엄마” 하며

앉은걸음으로 엉덩이를 들썩이며 자기 앞으로 닦아와 엄마의 두 손을 꼭 잡으며 빤히 처다 본다.

“엄마 있잖아” 하면서

가슴을 어머니 쪽으로 반 뼘 정도 내 밀며 자기의 계획을 얘기한다.

“내년에 졸업하면 나 대학 갈 꺼다.”

“엄마 어떻노 정말이지 좋체” 한다.

딸아이의 이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기쁜지 모른다. 딸이지만 돈만 있다면 중학교 대학교뿐 만 미국 아니라 더 높은 데까지도 보네고 싶다.

객지로 보네면서도 내 딸 설정(薛貞)이는 더 공부를 시켜야 하는데 그놈의 돈 때문에 하면서 울먹였다. 그래도 회사에 가면 야간에 중학교 보네 준다니까? 속으로 괴로워하면서도 위안이 되었다. 국민 학교 다닐 때에도 남들보다 잘해 준 것 하나 없었다. 공납금을 제때 낸 일이 있나. 선생님을 한 번 찾아간 일도 없었다. 소풍날에도 반장이면서도 선생님 도시락 한번이라도 사 드린 일도 없다. 그래도 언제나 일등을 노친적은 없었다.

남녀 공학인 국민 학교에서 여자 이이가 반장하는 일이 흔하지 않았는데 세 번이나 반장을 했다.

심지어 오빠는 동생 설정(薛貞)이의 통지표를 보면서 가시나 또 일등 했네 하면서 시기하며 질투하는지 항상 끝에서 계산하는 것이 빨랐던 과거 자기 좋지 않았던 성적을 이런 말투로 얼버무리고는 자리를 피해 달아나는 것이다. 오빠는 지금까지 저 학년일 때를 제외 하고는 자기의 통지표를 어머니께 보인 적이 없었으며 그 누구에게도 보인 적이 없다.

오빠이면서도 더욱 나이차이가 열 살이나 나는데도 오빠 짓 할 요랑은 하지 않고 어린 동생과 경쟁하는지 시샘하는지 나이 값을 하지 못한다.

마음 같아서는 딸아이를 따라 도회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기도하지만 안 그래도 행실이 비뚤어진 아들놈인데 도회로 가면 더 나빠질 것 같아 선떡 마음을 낼 수 없었다.

또 여기 있어야 할 특별한 이유도 없다. 논 한데지기(한마지기) 있나 겨우 마당이 좀 넓은 집한 체뿐이다.

엄마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할지 아득했다. 오빠가 통장을 훔쳐가서 돈을 찾아가지고는 노름으로 다 날려 버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형제라곤 남매뿐인데 서로 의지하며 살아도 이 모진 세상에 외로울 텐데 이 일을 아는 날엔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한 딸아이 성미로 보아 오빠를 다시 보려고나 할까? 생각하니 고지 곧 대로 얘기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말을 하지 않을 수도 없고 하여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야야! 옆집 진천 댁 있잖아.”

“너 알제 정숙이 엄마 말이다. 계를 들면 은행보다 아주 높은 이자로 돈이 불어난다. 않카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머니가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갸우뚱 고개 돌리며 본다.

“그래서 너 하고 상의도 없이 계를 들었다.”

딸이 “그런데요 엄마”

하고 반문을 한다. 어머니가 머무적거리시면서

“그라고 늦게 타는 것이 더 낫다 말하기에 끝에서 셋째 뒷자리 번호를 안 받았나”

“그런데 말이다. 내가 탈 차례인데 계주가 도망을 가 버렸다.”

“내 뒤에 탈 사람이 두 명이나 더 있는데 말이다.”

“그 집에서도 울고불고 야단이 났다.”

“도망간 계주는 여기 말고도 여러 곳에 여기와 똑같은 짓을 저질러 놓고 안 갔나.”

나중에 알고 보니 전에 살던 곳에서도 같은 짓 하고 이리로 이사 왔다. 안카나 제 버릇 개 못 준다더니 여기서도 또 똑같은 짓을 저질러 순진한 사람들을 많이도 울렸다. 가재도구가 마당에 나뒹굴고 그릇은 온통 깨지고 집에 난리가 안 났뿐나?

계주는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한 모양이다. 쓸 만한 것은 미리 다 빼 돌려놓고 마당에 뒹구는 물건들은 그저 주어도 가져가지 않는 것 들 뿐이다.

“그래서 지난달부터 다시 은행에 적금을 들었다”

하면서 한 달 부은 새 통장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말씀을 하시면서

“우야꼬! 애야 내가 잘못했다” 며 우시는 것이다.

설정(薛貞)이도 따라 눈물을 흘렸다. 사람들은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우리 같은 사람들을 왜 괴롭히는 것일까? 불행이 자기에게만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뼈 빠지게 일해서 2년간 모운 돈인데 어머니는 하등 잘못하신 것도 없으신데 콧물까지 흘리면서 범벅이 되어 우시면서 잘못했다 말씀하신다. 잘못한 사람은 계주인데?

눈물을 흘리면서도 설정(薛貞)은 가만히 생각해 본다.

내가 설에 왔을 때에도 돈에 대해서는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용돈 하시라고 드린 돈까지도 꼬불쳐놓고(몰래 감추어)쓰지 않으셨다며

“너 준 것 모았더니 돈이 좀 되더라”는 자랑 섞인 말씀도 하셨다. 적금을 깨고 계를 들었다는 말씀은 더더욱 없었는데? 필시 무슨 말 못할 다른 사정이 있으신 것이다.

더욱 어머니의 성품으로 보아 계 같은 위험한 것을 드실 분은 아닌데 생각하면서 문제의 사단(事端)은 다른 곳 (오빠)에 있는 것이 틀림없다.

설정(薛貞)은 범인이 오빠일 것이다. 생각에서 넌지시 묻는다.

“오빠는 요즘도 집에 들어오시지 않나요.” 하며 묻는다. 어머니의 대답은

“그놈의 화상은 돈이 떨어지면 들어 왔다가는 돈이 생기면 그길로 어딜 가는지 살아지고 없다”

“그러다 돈이 떨어지면 슬그머니 들어와서는 몇 날 며칠을 꿈적도 않고 방구석에 처박혀 있지 않나.”

“이젠 그놈은 상판만 봐도 겁부터 난다.”

어머니를 심문하는 것이 아니라 알고 싶어서 물어본 것이지만 죄송스럽다.

“어머니 지난번 오빠 나가실 때는 무슨 돈이 있었나요.” 어머니는 갑자기 얼굴색이 변하시면서 더듬더듬하신다.

‘내가 어디 서려고 꼬불처(몰래 감추어)놓은 것이 좀 있었다.”

어머니는 평소 없이 살아도 공짜로 남의 것을 바라는 성미는 아니시다. 배운 것이 없어도 콩 심은 데 콩 나며 팥 심은 데 팥이 난다는 것을 신념으로 일을 하지 않으면 먹지도 마라는 말씀은 어머니의 신념이다. 빈둥빈둥 놀고먹는 오빠에게 언제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어쩌다가 저런 놈이 내 속으로 나왔는지? 하시면서 한탄하신 일도 있었다. 계(契) 같은 것을 들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시면서하시는 어머니의 말씀을 믿기로 했다. 이유가 오빠에게 있다는 것을 빤히 말면서 더 따져 물을 수는 없었다.

불을 보듯 빤히 보이는 일을 가지고 어머니를 고문할 수 없었다. 이러한 현실 앞에 어머니에게 재차 묻는 것은 고문이며 어머니를 위로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이튿날 아침을 먹으면서 제가 용돈하시라며 드린 돈도 쓰지 않으시고 모았다며 자랑하신 것을 기억하고

“엄마 용돈 하시라며 드린 돈도 모았다면서요.”

“지난번에 얘기하셨잖아요?

“그 돈은 지금 얼마나 되는데요?” 하고 여쭈었다.

또 다시 머뭇거리시다.

“야야 그 돈은 누가 높은 이자를 준다기에 며칠 전에 찾아서 이웃에 빌려주었다”

하시는 것이다.

누구에게 어느 집에 빌려 주었습니까? 하고 다시 여쭈어 보려다 어머니의 이 말씀도 보나 마나 거짓이며 이 돈도 그간 적금한 돈과 마찬가지로 어머니의 또 다른 돈이 있었다면 그 돈까지도 아니 엄마가 가진 신 모든 돈도 아마 오빠가 탕진하여 한 푼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오빠의 그간 행실로 보아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위인이다.

먼저 어머니의 돈부터 그리고도 노름을 하다 보니 또 돈이 모자라니 동생의 돈까지 몰래 가져다 탕진한 것이다. 내가 자꾸 물으면 엄마만 곤란하고 마음을 상할 뿐이다. 괜히 오빠가 탕진한 돈이 다시 돌아올 것도 아닌데 엄마만 괴롭히는 꼴이다.

그보다 돈도 돈이지만 오빠의 하는 짓이 얼마나 큰 불효인지 그것을 모르는 오빠가 아니 알면서도 나쁜 버릇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너무 밉고 또 안타깝다.

그런 잘못을 저지르는 것을 알면서도 돈을 주시는 아니 빼앗기는 어머니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실까?

아니 모르게 가져가도 어떤 방법도 쓸 수 없는 엄마의 마음은 더 아플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왜 엄하게 혼을 내어 그러한 짓을 하지 못하도록 하실 수는 없었을까? 머리가 다 굵으면 자식이라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은 진실인 모양이다. 또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은 이럴 때는 쓰는 것은 아닐 것인데 하면서 뒤틀린 오빠의 나쁜 버릇은 어떻게 하더라도 고쳐야 하는데 생각한다.

설정(薛貞)이가 사는 이곳은 노름이 심한 지역이다. 노름 때문에 여러 집이 거덜 나 없는 가산이지만 정리도 못하고 야반도주 한 집도 몇 집 된다. 더욱 고등학교 졸업한 애송이 청년들이 4H란. {4H는 머리(Head), 마음(Heart), 건강(Health), (Hands)}농촌 잘 살기 운동을 위한 단체에 가입하여 첫 일이 농한기 노름 몰아내기 운동이었다. 어린 학생들이 밤에 마을을 순찰하면서 노름 하는 것을 발견하면은 그 집에 들어가 말리면 처음에는 이런 볼썽사나운 일이 어디 있나 면서 어른을 가르치려 하느냐? 하면서 도리어 야단을 치시더니만 학생들이 끝까지 물러나지 않고 딴 것을 돌려주지 않으면 모두 지서에 고발하겠다고 하니까? 또 양심 있는 어른들은 학생들에게 자기들의 잘못을 부끄러워하며 말없이 물러나기도 하고 은근 설적 도망가기도 하며 후에는 경찰보다 학생들에게 들키는 것을 더 두려워하며 부끄러워하였다. 이후에는 다소 노름이 줄어 더는 듯하였다. 이런 고장이니 그 심각성은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노름하려 가는 것을 00새재 간다는 은어(隱語)가 있는 지역이기도하다.

설정(薛貞)은 혼자 생각해 본다.

아버지가 살아계셨으면 어찌하셨을까? 오빠의 그 못된 나쁜 버릇을 고쳐주셨을까? 앞으로 엄마의 고생이 불을 보듯 뻔하다. 아니 이래가지고 오빠도 앞으로 어떻게 살려는지 동생 같으면 머리라도 쥐어박고 싶은데 쾅쾅 두들겨 패기라도 하겠는데 그렇지도 못하고 오빠의 여태까지 행실이 끝없는 데까지 내달리는 것 같아 아슬아슬하다 못해 고치기 어려운 나쁜 버릇이라 생각하니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다.

어머니께서는 그간 내가 송금한 돈과 엄마 맛있는 것 사 드시라며 함께 부친 돈과 엄마 자신도 일을 해서 모은 돈 등 조금만 더 보태면 우리 식구 입에 풀칠할 정도지만 조그마한 터 밭이라도 살 수 있을 것 같다 하시며 좋아하시든 일이 지난 추석 때 여셨는데 오늘은 너 볼 면목이 없다며 자기 팔을 붙잡고 우시는 어머니의 처량한 모습을 보니 가슴이 미어진다. 모녀가 함께 손을 잡고 고개를 들고 천장을 보면서 울었다.

없어진 돈은 다시 쓸어 담을 수 없는 흘러간 물과 같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이는 노력하면 언젠가는 그 보다 더 많은 돈도 모을 수 있지만 어머니께 대한 오빠의 불효는 오빠의 마음이 바뀌지 않는 한 다른 어떤 방법도 소용없는 것이 더 큰 아픔으로 닦아왔다.

“엄마 걱정 마세요. 지금부터라도 돈은 다시 벌면 되지요” 하면서 또

“앞으로 더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모을게요.”

말은 하면서도 오빠가 뉘우치지 않는 한 우리 집의 불행은 계속 될 것이며 어머니의 고생은 끝날 날이 없을 것이다.

어머니께 위로의 말씀은 드렸습니다만 큰 꿈을 그렸는데 한 순 간 무너진 꿈 때문만도 아닌 오빠 때문에 더욱 가슴 아팠다. 그러면서도 한 2년 늦게 태어난 것으로 생각하자 하면서 본인을 다잡아습니다만 마음같이 못하고 분노하고 아파하고 괴로워하고 원망하는 것은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가지 않은 것보다 못한 시골집 방문은 미리 안다고 달라질 것 없는 것과 오빠가 변하지 않는 한 또 다른 어떤 것으로도 되돌릴 수 없는 사실 앞에 답답한 가슴을 안고 다시 회사로 돌아왔다.

일을 하면서도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면서 힘없이 하루하루를 보낸다. 문뜩 국민 학교 다닐 때 작은 동네지만 등굣길에 책 보따리를 대각선으로 올려 매고 보부도 당당히 양 팔을 흔들며 불렀던 노래가 생각난다.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그 바람은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

여름에 나무꾼이 나무를 할 때 ----

시원한 바람을 가슴가득안고 들판을 달렸던 기억이 난다. 조그마한 가슴에 무엇인가? 모를 꿈을 그려 넣고 여럿 친구들과 태양이 온 들판 허공을 하얗게 물 드리면 유독 보리밭만이 푸르게 펼쳐진 논길을 걷는다. 5월의 맑고 밝은 하늘과 땅 사이 하얀 공간에는 한껏 치솟으며 청아한 노고지리의 자지러진 노래 소리는 반주도 없는 여러 마리의 합주가 시작된다.

인사를 한다.

하늘과 땅 사이 하얀 공간에

고추잠자리 떼 날고

노고지리 종알종알 목청을 높인다.

푸른 바다 파란 물결이 바람 따라 춤추듯

푸른 보리밭에

잘 자란 청록색 보리가

바다 물결이 되어 춤을 춘다.

허리를 폈다 숙였다.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꾸벅 또 꾸벅 인사를 한다.

벌판을 가로지르는

설레는 바람이 마음을 집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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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돌아올 때는 보리들 속에 여기저기제멋대로 함께 자란 깜부기를 뽑아들고 같이 걷던 남자아이 얼굴에 칠해 주고는 놀리면서 달아난다.

달리기도 잘 하는 설정(薛貞)이나 남자아이들의 지구력에 결국엔 따라잡혀 몇 배의 보복을 당하며 울며 집으로 뛰어왔던 그 길에 보리밭의 노고지리가 놀라 소리를 지르며 공중에서 날갯짓하며 곧장 땅에 내려앉으려는 몸짓도 바로 밑에 둥지가 있는 것이 아니고 조금 떨어진 곳에 둥지에 새끼노고지리가 있다는 표징이며 사람들을 새끼로부터 멀리 유인하기 위한 본성의 몸짓이라 것을 알았다. 어떤 때는 새끼노고지리를 포획하여 가지고 나오면 어미 노고지리는 공중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죽을 듯 호들갑을 떨며 놀라 온 들판이 날아갈 정도로 자지러진다. 노고지리도 일차원적인 사고는 갖고 있으나 어찌 사람의 머리를 따를 수 있을까?

그러다 슬쩍 둥지로 새끼를 넣어두고 집으로 가기도 했다.

그리운 그 시절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엄청 많은 세월이 흐른 것 같은 착각이다.

겨우 이제중학교 3학년인데 생각하며 행동하는 여러 가지가 부모 곁을 떠나서 혼자 숙식을 해결하며 독립해서 그러한지 마음은 어른이 다 되었다는 생각마저 든다. 더욱 이번시골 다녀와서는 말수가 줄어들고 무슨 생각을 그렇게 많이 하는지 멍하니 먼 곳을 바라볼 때가 많다. 가까이 닦아가도 모를 때가 많아 발을 탁 치며 설정(薛貞)아! 하며 놀리면 화들짝 놀라며 깜짝 놀라면서도 아이참 계집애도하면서 억지웃음을 짓는다.

어릴 때 10년 차이는 엄청 크다. 형이 오빠가 아니 형제가 아니라도 잘 아는 사람이 관심과 배려를 가진다면 아니 이웃 4촌이란 말도 있다. 이웃의 10살 위의 누나나 오빠가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관심을 가지느냐에 따라 이웃에 사는 어린이도 학업 성취도이며 장래 희망이며 스스로 노력하려는 의지며 여러 가지 아니 운명 까지도 바꿀 수 있는 계기(契機)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50세나 60세 또는 70세 80세 나이 차이 열 살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인생의 장년기 노년기는 누가 먼저 일지 모르는 인생의 끝자락 동반자임으로 10년 차이는 알 것 다 알고 겪을 것 다 겪은 후 이미 굳어진 머리이므로 변하기 어려우니 별 의미가 없는 법이다. 어릴 때 열 살 차이는 밝고 맑고 아름답고 훌륭한 길로 인도하는 끌어주고 당겨주는 인도자일 수 있다. 그런데 열 살 연상의 나의 오빠는 좋은 것 보여 주기보다 나쁜 것만 무수히 보여주는 설정(薛貞)이의 인생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방해자이며 나쁜 것(곳)(짓)을 보여주며 무언의 공범자로 의도하지 않은 유도자일 다름이다.

이릴 때

어릴 때 열 살 차

이는 선생과 학생으로 나눠진다.

어린 동생에게

열 살 위의 형이나 누나는

선생이요 아버지며 어머니며 형이요 누나이다.

좋은 것 물려줄 수 있고 나쁜 것 보여줄 수 있다.

형이나 누나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밑의 동생들 일생이 달라진다.

생활가운데서

유언 무언의 생활 태도를 보고 배운다.

말로 가르치려들지 말고

부지런하고 열심하고 정직하며 절약하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내 생활로 알게 하여라.

이게 먼저 난 사람의 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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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골집 방문도 집에는 없었지만 그러한 오빠의 잘못된 모습을 적나라(赤裸裸)하게 보고 알고 온 것이다. 그러니 어찌 괴롭지 않을 수 있을까? 철들 나이인데도 계속 대소변 가리지 못하고 칭얼대며 아무데서나 일을 보는 이웃집 아이일 지라도 생각하면 마음 아픈 법인데 하물며 서른이 다된 오빠의 고치기 어려운 노름하는 버릇이며 일은 하지 않고 뜬 구름을 쫓는 이러한 잘못된 생각은 결국엔 자기도 죽고 가족 모두를 죽이는 중병임을 더더욱 모르는 것이니 어찌 괴롭지 않을까?

이러한 집안일을 생각하면 답답해지며 불덩이가 목구멍으로 올라오는 것 같은 착각에 가슴은 쿵쿵 방망이질을 한다.

한방 친구는 설정(薛貞)이가 시골 갔다 오더니 무슨 일인지 말을 하지 않아서 알 수 없지만 분명 좋지 않은 일 때문에 고민 하는 표정이 역역하다. 자기도 마음이 요즘은 많이 꿀꿀하다 어디 가서 확 풀어버리면 기분 전환이라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에게 어디 가서 기분을 풀자며 자기가 좋은 곳으로 안내를 하겠다며 제안을 했다.

이참에 한방 친구는 언젠가 계획하였든 일을 실천에 옮기기로 마음먹었다.

자기가 아는 대학생 오빠에게 자기도 괜찮은 친구를 데리고 갈 터이니 오빠도 오빠 친구를 데리고 나오라고 해서 둘을 소개시켜주고 넷 사람이 함께 놀 궁리를 했다.

자기는 그래도 사회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하다고 생각한다. 대학생 남자 친구도 있고 여기저기 다니다보니 세상물정을 좀 안다. 다방에 가보기도 하고 좋아하는 대학생 오빠 따라 나이트클럽에도 몇 번 갔다. 사복을 입고서는 산이나 들로 오빠 손잡고 간일도 여러 번 있었다. 포장마차에서 소주도 여러 번 마셔봤다. 이것저것 다 알고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친구 설정(薛貞)이는 공부에 매달려 세상물정에 대해서는 자기 보담 한창 아래이다. 공부는 설정(薛貞)이가 훨씬 잘하지만 세상일이 어디 공부만가지고 되는가하면서 뒤처진 자신의 공부를 이런 생각으로 합리화 하면서 기회가 되면 한 번 이런 세상도 있다며 보여 주리라 마음먹었는데 지금이 그런 찬스가 온 것이다. 자기의 계획을 미리 말하면 설정(薛貞)이는 일언지하에 거절할게 분명하다. 일단 비밀에 부치고 혼자만 깜짝 이벤트를 준비한 것이다.

설정(薛貞)에게 친구는 약간은 깜깜한 곳에 불도 뻔쩍 뻔쩍 깜박이고 전구가 뻔쩍뻔쩍 돌아가며 사람도 많고 남자와 여자가 섞여 서로 부딪치며 빙글빙글 돌며 춤추며 노는 곳이니 난장판으로 보일 것이라며 놀래지 말라며 먼저 겁부터 준다. 고등학생이 그런 곳에 가도 되느냐하면 거부의 몸짓을 보이지만

“야야! 설정(薛貞)아!

너나 나나 사복을 입으면 누구도 학생으로 보지 않는다.” 며 걱정하지 마라한다.

친구와 둘이서 나이트클럽이라는 곳에 가기로 했다. 친구 따라 누구는 강남 간다지만 강남은 못 가고 나이트클럽이라는 곳에 갔다.

친구는 여러 번 이런 곳을 와본 경험이 있는 것 같았다. 홀 서빙(serving)하는 총각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맥주 두병을 가져왔다. 친구는 잔 두 개를 가지런히 놓더니 병마개를 따고 두 잔에 동시에 가득 채우고는 하나는 자기 왼손에 들고 오른쪽 손에 다른 잔을 들고선 혼자서 서로 잔을 부딪치면서 건배하고는 오른손에 든 잔을 설정(薛貞)에게 주면서 자기 잔을 기우려 마시면서 먹어라 권한다. 얼떨결에 잔을 받아 입으로 잔을 가져간다. 처음 맛을 본 술이지만 약간 씁쓸한 하다. 조금은 더운 날씨라서 그러한지 씁쓸한 맛이 차가움에 희석 되어 전혀 못 먹을 정도는 아니다.

한 잔을 받아 마신 샘이다.

친구는 힐끔 설정(薛貞)을 처다 보면서 히쭉 웃는다.

“얘 너 마시는 것 보니 전에 많이 먹어본 것 같다” “너 누구와 먹었니?” 하며 뭇는다.

대답도 듣지 않고 제멋대로

“남자 친구하고 먹었지?” 말에도 악센트(accent)에 굴곡을 넣어 빠르게 하면서 자기 몸까지 설정이 쪽으로 내밀며 형사가 죄인 심문하듯 다그치다.

친구는 아무 대답이 없는 설정(薛貞)를 두고 계면쩍어 피식 웃으며 홀 가운데로 나가 여럿 사람과 어울려 춤을 춘다.

멍하니 바라보는 자기에게 들어와 같이 춤을 추자며 손짓을 한다. 가만히 춤추는 친구를 바라본다. 보통 솜씨가 아닌 것 같다. 친구의 춤추는 모습을 누가 보더라도 전혀 학생으로 보지는 않을 것 같다. 한 성숙한 젊고 발랄한 여성으로 보인다. 자기는 친구보다 키도 크고 몸도 더 좋으니까 아마 저보다 훨씬 더 숙녀다울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한참을 기다려도 홀 가운데 나오지 않은 자기 때문인지 친구는 다시 자리에 돌아왔다.

계집애도 왔으면 기분 좋게 놀고 가야지 본전을 뽑지 하면서 자기 손으로 한 잔을 가득 부어 쭉 들이키고는 커 취한다 하면서 입을 씩 닦으며 설정(薛貞)에게도 찰랑찰랑 술을 따라 주며 또 먹으라고 권한다.

친구는 술은 권하는 맛에 먹는다며 어른 같은 흉내를 내면서 계속 잔을 들고 먹기를 권한다.

받아서 망설이다가 한 잔을 받아 쭉 마신다. 마신 잔을 탁자에 놓으니 급히 가져갔어는 한 잔을 더 부어서는 단잔이 어디 있느냐며 또 한 잔을 권한다. 그러다 보니 연거푸 석 잔을 숨도 쉬지 않고 받아 마신 꼴이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에 내도 한 잔 또 네도 한 잔하라면서 권하다 보니 각각 맥주 한 병 가량 먹은 것 같다.

약간 술기운이 돈다. 기분이 묘하게도 무엇에 홀려 뱀이 허물을 벗 듯 자기도 한 꺼풀 벗으며 허물어지는 느낌이다.

가면을 벗으면 본 얼굴이 보인다던가? 학생이지만 어떤 때는 마음의 벽을 확 허물고 본 얼굴을 보이고 싶다. 아니 본 마음을 보이고 싶다. 누구라도 붙잡고 하소연 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답답한 가슴을 확 열고 보셔요. 내 가슴이 내 마음이 이렇게 까맣게 타고 있잖습니까? 하고 더욱 오빠의 일을 생각하면 아득해 진다. 자신은 객지에 나와 있으니까 찾아가지 않으면 오빠를 만날 일 조차 없다. 안본다고 해서 걱정이 없어지지 않은 이유는 혈육이기도하지만 무엇보다도 허리 한 번 펴지 못하고 요즘 같아서는 논에서 고생고생하시는 어머니가 걱정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일을 하면서도 내일을 기약 할 수 없는 어머니의 아픔이 몸에 와 닿기 때문이다. 오빠가 마음을 잡지 않는 한은 어머니의 고생은 언제 끝날 것인지? 모르는 일이며 이러한 상태로 계속 간다며 어머니가 돌아가셔야만 끝날 것 같은 생각에 가슴이 미어진다.

어머니만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속이 많이 상한다.

이래서 사람들은 술을 먹는가 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래전에 술을 먹어본 사람처럼 술이 술술 잘 넘어간다.

내 체질이 술 체질인가? 생각될 정도로 맥주가 입에 당긴다. 홀 가운데로 나가 친구와 같이 춤을 추었다. 팔을 흔들고 다리를 흔들고 몸을 흔들고 머리를 흔들었다. 머리위에서 빙글 돌아가는 불빛과 뻔쩍이는 불빛은 사람의 얼굴들을 묘하게도 두개로 보였다 겹쳐보였다. 웃는 듯 우는 듯 도깨비로 보였다한다. 종래는 마음까지 흔들었다. 취한 기분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기도 하다.

리듬에 맞춰 일정한 격식을 갖춘 춤 동작은 아니다. 배운 일도 없고 춰본 일 도 없었다. 혼자 마음대로 춤을 추었다. 다시 친구와 같이 숨을 헐떡이며 자리로 돌아 왔다. 처음 먹어본 술 그 이상한 기분에 자기의 주량도 모르면서 주는 대로 벌컥벌컥 물을 마시듯 마셨다. 그때 시골집에서 눈물을 훔치며 코까지 훌쩍이며 울든 어머니의 모습과 자신의 슬픈 모습이 겹쳐 홀 가운데에 떠오르기도 하고 머릿속을 맴돌기도 한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또 술을 먹은 것이 아니라 이번에는 아예 퍼 넣었다 해야 할 것이다. 그러던 중에 웨이트(waiter)가 닦아 왔어 손으로 오른쪽을 가리키면서 저기 괜찮은 남자들께서 합석하지 않겠느냐며 묻는다. 아마 친선사절로 온 모양이다. 오른쪽에 있는 테이블에 셋 사람의 남자들이 이쪽을 바라보며 한 사람이 가볍게 손을 흔들며 웃는다. 친구는 올 사람이 있다면서 거절한다. 정말 따로 올 사람이 있는가? 아니면 거절한 명분을 찾는 것인가? 모르겠다. 이래저래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다. 어차피 왔으니 기분 좋게 놀자 이런 생각이다. 또 컵에 손이 간다. 몇 병을 먹었는지 모른다.

이젠 친구가 술잔을 빼앗는다. 먹으라고 권 할 때는 언제이고 빼앗으면서 못 먹게 말리 것은 또 무엇인가? 그 때 친구가 입구 쪽을 보며 팔을 흔들더니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자 둘이 와서 자리에 합석을 한다.

친구는 대학생 오빠라며 인사를 시킨다. 그리고 자기를 가리키며 한방에 같이 살지만 다른 이불을 덮고 자는 친구 설정(薛貞)이라 소개를 한다.

소개 받은 대학생이 무어라 자기소개를 하는데 잘 알아듣지 못하고 설정(薛貞)이가 흐느적이며 둘째손가락을 세워 자기소개를 하는 대학생을 가리키며 혀 꼬부라진 소리로 꼭 기생오라비 같다며 희희 소리 내어 웃는다. 대학생은 당황한듯하면서 머리를 숙이며 그래도 자기 이름을 끝까지 말한다. 설정(薛貞)은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또 주는 술을 받아 마셨다.

그리고서는 남학생의 팔을 잡고 홀 안으로 나가 춤을 춘다. 아니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붙잡고 있다 해야 옳은 것이다. 남자 대학생은 아예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부축하고 있는 꼴이다. 부축을 받으며 자리로 돌아왔다.

남자들이 보기에도 아주 맛이 갔다 생각하는 모양이다. 친구가 옆의 대학생을 오빠하며 부르며 남학생들에게 변명을 한다. 그런 와중에도 다시 술을 달라며 친구가 빼앗는 것을 뿌리치고 또 술은 마신다. 친구와 남자 둘은 설정(薛貞)을 혼자 두고 홀로 나가서 춤을 춘다. 혼자 남은 설정(薛貞)은 병을 끼고 앉았다. 이때부터 혼자 먹을 만큼 술을 먹은 것이다. 얼마 시간이 지난 후 머리를 테이블에 쿵하고 부딪치며 정신을 잃었다. 친구와 남자 둘이 테이블에 돌아보니 테이블에 머리를 대고 설정(薛貞)은 꿈적도 않는 것이다.

아침에 깨여보니 낯선 방 침대 위다. 후닥닥 놀라 옷매무세를 보니 어제 입은 그대로였다.

머리가 무지근하며 안면 부위가 두들겨 맞은 것 같이 많이 부어오른 느낌이다. 고개를 흔들어 본다. 빈 병속에 들어있는 물건이 흔들리듯 머릿속은 텅 빈 것 같이 마구 흔들린다. 특별히 다른 변화는 없었다.

후유! 한숨을 쉰다.

순간 클럽에서 술을 마시던 일들이 떠오른다. 담배 연기 자욱한 가운데 뻔적뻔적 돌아가는 불빛 속에서 많은 사람과 어울려 춤을 추었던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이리저리 부대끼며 비틀하며 다른 사람의 발을 밟고서는 비틀하며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인 것까지 기억이 나는데 한방 친구도 하얀 이를 들어 내 보이며 웃는 얼굴을 하고 빙글 돌며 같이 춤을 춘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홀 안이 빙그르 도는 것 같은데 그 후는 알 수 없었다.

일어나 방을 둘러보았다.

조그마한 방이지만 깨끗하고 침대가 벽을 조금 띄워 놓여있다. 고개를 들면 창문을 볼 수 있게 한 배치 이다. 정면에 있는 동그란 시계는 11시 30분 가리킨다. 일어나려 하니 더욱 띵하니 머리가 아프고 창자가 뒤틀리듯 속이 쓰려왔다. 침대에 걸터앉아 바닥을 보며 이럴까? 저럴까? 생각 중에 아랫배에 무엇이 꽉 차있는 느낌이 들더니 갑자기 소변이 마려워진다. 급하다.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확 무엇을 뚫을 듯 내 뻗는 물소리도 쏴- 요란하다. 시원하기는 하나 밑이 많이 아프고 무언가에 꽉 막힌 듯하고 심히 불편한 느낌과 함께 무척이나 따갑기도 하였다.

볼일을 다 보고 변기 위에 앉아있으니 지난밤에 일이 다시금 생각난다. 아물아물한 기억 속에 어떤 키가 큰 대학생으로 보이는 청년이 팔을 잡은 듯했었는데 거기서 더 이상 기억이 나지 않는다.

참으로 답답했다.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머릿속은 날갯짓하며 날아가던 잠자리가 거미줄에 걸려 엉켜버려 해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머리를 탁탁 처 보아도 그래도 풀어지지 않는다. 방으로 나오면서 생각해본다. 처녀가 더욱 여고 3학년생이 여관에서 잠을 잤다는 것은 평소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몸은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머리는 악마의 음성으로 그대로 여관방 침대에 누워 있어라 속삭인다. 그러나 마음은 그럴 수는 없었다.

여관 창문을 열고 가만히 밖을 내다본다.

열린 창문을 통하여 일그러진 바람이 쏴 들어와서는 얼굴을 때린다.

보나마나 얼굴도 심히 일그러져 있을 것이다.

어디쯤일까 유심히 살핀다. 나이트클럽과는 멀지 않은 곳이다. 저기 보이는 전봇대 서있는 쪽 골목을 돌면 바로 나이트클럽인 것 같다. 가깝다.

이마 누가 팔을 부축하여 왔어도 너무 많이 힘이 들어 멀리 갈 수는 없을 것이다.

창문을 소리 나지 않게 조용히 닫고 세수하는 것도 잊고 부끄러워서 두 손으로 고개 숙인 얼굴을 가리고 급히 여관을 빠져나왔다.

여관을 나올 때는 아무도 제지 하는 사람이 없는 것을 보니 여관비는 누가 지불 한 모양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시내버스 안에서 차창 밖으로 눈을 돌렸다. 창밖 풍경은 싱그러운 5월 중순의 햇볕은 하얀 얼굴을 하고 대지를 비추고 있다. 하늘에 뭉게구름은 어디로 가는지 분주하다. 한 무리 구름이 가고 나면 멀찍이 또한 뭉치의 구름이 뒤를 따른다. 잠깐 더 높은 하늘이 열리고 하늘은 고고한 자태를 들어내며 아래를 내려다보며 모든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다. 푸른 하늘이 말을 한다. 희망을 잃지 말라며 꿈을 가지라며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높은 이상을 가지라며 넓은 가슴으로 안아주며 쓰다듬어 줄 것 같다. 그러다 스쳐 지나가는 건물 사이로 차 창문 유리창에 자신의 얼굴이 비췬다. 헝클어진 머리며 꾀죄죄한 모습의 자신을 본다. 어제와는 전혀 다르게 퍽이나 낯설게 느껴졌다. 부석부석 한 얼굴 씻지도 않고 평소에도 작지 않은 얼굴이란 생각이 들었는데 더 크게 보인다.

누가 여관비를 지불 했을까? 친구가 팔을 잡고 와서 여관비를 지불하고 돌아간 것일까? 왜 같이 자도 누구 흉볼 일도 없는데 친구는 아닌 것 같다. 그럼 누구와 왔을까? 아무리 머리를 짜도 떠오르지 않으니 이젠 상상력을 발휘해 보지만 도통 알 수 없다.

버스 정류장에 내려 일부로 느릿느릿 걸음으로 자취방을 향해 걸었다. 평소에는 정류소에서 집까지 조금 멀다 싶었다. 비나 눈이 온 뒤에는 바지나 치마를 젖지 않으려고 조심성 있게 걷다 보면 한참이나 걷는 길이었는데 오늘은 이 생각 저 생각 중에 눈을 떠 앞을 보니 언제 왔느냐? 싶게 자취집 대문 앞이다. 무척이나 가깝다 느끼면서 혹 주인아주머니가 보시고 물으면 무어라 대답할까? 걱정하며 대문 가까이 닦아왔다. 발소리를 죽였지만 인기척에 멍멍 개 짓는 소리가 담 넘어 들려왔다. 대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선다. 주인집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고 목이 줄에 묶여 자유를 잃은 개는 짓다 말고 반갑다고 꼬리를 흔든다. 그래도 개는 문간방에 살며 오늘따라 헝클어진 머리며 꾀죄죄한 모습이긴 하지만 아침저녁 지나다니며 쓰다듬기도 하고 머리를 긁어주기도 하니 밉지 않은 모양이다. 가까이 닦아가 머리를 두어 번 문질러 주고는 대문 옆 자취방으로 와서 문을 열고 방안으로 기어가듯 들어가 위목에 개어놓은 이불을 당겨 베개에 이마를 뭇고 그대로 팔을 벌리고 안은 듯 드러누웠다. 집에 들어올 때는 친구가 어젯밤에 자기도 술을 낫게 먹었으니 지금까지 방구석에 누워 뒹굴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없다.

나 같이 들어오지 않고 어디 다른 곳에서 잠을 잔 모양이다.

“아니면 어젯밤에 들어왔다. 아침에 어딜 나갔나?”

혼자 중얼 거린다.

종잡을 수가 없다. 머리가 무겁고 많이 흔들리며 텅 빈 골이 생각을 막는다. 팔다리는 무겁고 피곤하고 속은 더부룩하여 온 몸이 뒤 털린다.

왜? 술을 먹었는지 후회가 된다.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나서 주인집 아주머니가 들어오시는 소리가 들린다. 아주머니는 마당에서

“학생 있어“ 하신다.

“예 시장 다녀오세요.” 하고 대답을 한다.

주인아주머니는 아무 말씀하시지 않고 안집 방문을 여는 소리가 들린다. 다시 몸을 뒤척이며 바로 눕는다. 연꽃무늬의 천장이 빙그르 돌며 아래로 내려앉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연꽃무늬가 사람 얼굴이 되더니 야! 이 바보야 하는 것 같았다.

천장에 어머니의 걱정스러운 얼굴도 보인다.

왜? 철딱서니 없이 술을 그렇게 먹었나. 꾸짖음 보다 걱정 하시는 모습에 마음이 아프다.

옆에 계셔서 불호령이라도 내려 주시면 속이라도 시원할 것인데 오만 가지 생각이 겹친다.

그렇게 오래 누워 있었다.

아마 저녁때인 모양이다. 안집 방문 소리가 나더니 주인집 아주머니가 방문 앞까지 오셨어 한 방 친구가 시골에 있다면서 늦게 오니 기다리지 말라고 전화 왔다면서 밥 짓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다시 예 대답을 하고는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잠에서 깨어나 시계를 보니 밤 12시를 가러킨다. 친구는 아직도 오지 않았다. 아마 모처럼 시골 갔으니 늦게 온다 했지만 자고 아침에 올 수 있겠다. 생각을 하고 낯에 입었든 옷을 갈아입고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얼굴을 본다. 부석부석 부은 얼굴에다 길게 엎드려 잔 자국이 여럿 보였다. 어제저녁에 조금 맛만 보고 먹다 놓아둔 여러 곳에 줄이 파인 삶은 둥근 감자 갔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런 와중에도 피식 웃음이 난다. 속이 없는 걸까? 아니면 어느 한구석 모자라는 것일까? 이럴 때 웃음이 나다니 한심한 생각이 든다. 어제 저녁에서부터 오늘 저녁까지 하루해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머릿속이 멍해지며 내가 감당키 어려운 무슨 큰 사건이 지나 후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갑자기 오래전에 읽은 전쟁 소설이 생각난다. 피아(彼我)간에 긴 시간을 서로 총을 쏘며 죽이고 죽고 하던 시간들이 지나고 잠시 싸움을 멈춘 전쟁터에서 옆에 죽어간 동료를 바라보면서 나도 가까운 날에 저 모습이 되는 것은 아닌지? 젊은 한 병사의 절망적인 자기 모습을 있는 그대로 느낀 그대로 적은 글을 본 기억이 갑자기 떠오른다.

모골 송연한 이 생각은 먼 후일 일어날 일을 예언 하는 것은 아니었는지?

어쩌면 목숨 보다 더 귀한 그 무엇을 잃어버리는 전조(前兆)가 아니길 바라는 마음이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누워 잠을 청해서나 잠은 오지 않는다. 이 생각 저 생각 뒤척였다. 두어 시간 지났다. 안집 마루에 걸려있는 괘종시계가 땡땡땡 3번을 친다. 밤도 어지간히 깊어간다. 그러고도 한참을 잠들 수 없었다. 오월 중순의 밤공기는 싱그럽다. 멀지않은 곳에서 우는 이름 모를 풀 벌레소리가 들린다.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다. 하늘에 별은 보이지 않고 큰 별 몇 개만 밤임을 알려주는 것 같다. 시골의 밤하늘은 온통 별이 쏟아질 듯 많은데 유성이 되어 흐르는 별을 삽살개는 쫒아 가며 짖기도 하는데 지금의 밤은 겨우 낯과의 구분정도와 몇 개의 별이 전부이다. 시골의 밤하늘은 따닥따닥 붙은 도회의 집들 같이 무수한 별들의 도시이고 도회의 밤은 한참을 가도 띄엄띄엄 한 두어 집뿐인 별들의 시골이다.

별의 별 생각을 다한다. 다시 주인집 마루의 시계가 땡땡땡땡 네 번을 친다. 하는 수 없이 내일을 위해서 방으로 들었다. 누워서도 잠은 오지 않는다. 이러다 밤을 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한다. 잠을 자야지 하면서 한 번 더 심호흡을 하고 잠을 청한다.

어느 한순간 잠이 들었다. 깊은 산속이었다.

큰 나무들이 사방으로 줄이 되어 서 있고 잔디가 깔린 둥근 한 작은 공터 중앙에는 벌거벗은 두 사내아이가 흰 보자기가 깔린 광주리 안에 담겨져 있다. 누운 한 아이가 조그마한 손으로 오라는 손짓인지 가라는 손짓인지 계속 아래위로 손을 움직인다. 오라는 손짓도 계속하면 가라는 손짓도 되고 가라는 손짓도 계속하면 오라는 손짓도 된다. 처음 보았을 때 정확해야지만 오라는지 가라는지 구분할 수 있다. 꽃과 풀이 어우러져 아이 둘을 감싸고 멀리 나무와 나무 사이 짙은 안개는 시야를 흐려놓았다. 저 멀리 불빛 같기도 하고 무서운 산 짐승의 눈빛 같기도 한 빛이 보였다. 이를 어쩌지 잘못하면 저 아이 둘은 산짐승이 달려들어 죽을 수도 있겠다. 화들짝 놀라서 구하려 달려가려는 듯 다리를 움칠 뻗으면서 악! 소리까지 질렀다. 그러나 아이 둘은 온데간데없다. 가만히 보니 종류를 알 수 없는 두 마리 새가 날갯짓하며 푸른 하늘 저 멀리 구름 속으로 살아졌다.

깨여보니 꿈이었다.

꿈 치고는 참 이상한 꿈이었다. 잠들기 전에는 책에서 읽은 싸움터에서 죽어간 전우들의 모습을 그린 장면을 연상하며 나도 죽으면 저렇게 될 것이다. 불길한 장면이 연상되더니만 그러고 난 후 잠자는 동안에는 요상한 꿈마저 꾸었다. 지금까지 낯에는 공장에서 일하며 일에 시달리고 밤에는 늦게까지 공부하느라 잠들면 파김치가 되어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였는데 또 어떤 때는 고단하여 씻지도 못하고 잠이 더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 그래서 꿈같은 것은 꾸지 않았다. 어떤 때는 나도 나의 미래에 대해 예언적인 꿈을 한 번쯤 정도는 꿀 수 없을까? 언젠가 친구들은 꿈 이야기를 하면서 오늘 좋은 일 있을 것이다 하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자기는 언제나 자고 일어나도 민숭민숭했다. 정서가 부족한가? 아니 모자라는 것은 아닌가? 자기 자신 너무 건조하고 어쩌면 매몰찬 성격이기 때문은 아닐까? 걱정 아닌 걱정을 할 때도 있었다.

이게 무슨 조화인지 지난밤 생각도 못한 외박 이후 이니 더욱더 황당하고 당황스럽고 걱정되니 꿈마저 꾸는가 보다. 이는 규칙적이지 못하고 빗나간 생활에 대한 경고의 의미가 담긴 것으로 이 꿈에 대한 기억은 오랜 시간 동안 뇌리에서 떠나지 않을 것 같은 것은 불길하고 기이한 꿈이기 때문이다.

여고생의 하룻밤 외박에 대한 철저한 가르침이란 생각마저 든다.

 

보통 산업체 특별학급 학생들은 2학년까지는 기숙사에서 숙식을 한다. 3학년이 되면 보통 마음이 통하는 친구들끼리 둘 내지 셋 짝을 지어 회사 인근이나 좀 멀더라도 통근버스가 다니는 타기가 쉬운 곳으로 방을 얻어 자취를 한다. 이는 엄한 기숙사 규율을 지키다 보면 자기생활이 줄어들고 또 자기 나름대로 자기발전을 위해 무엇을 하려 해도 매여 쉽지 않아 자취를 하는 학생이 의외로 많은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설정(薛貞) 이도 3학년 올라가 얼마 되지 않아서 단짝 친구와 함께 회사에서 거리 멀지 않은 곳에 방을 얻었다. 통근버스 타기 가까운 곳 그리고 타면 자리에 앉을 수 있는 곳에 방을 얻어 자취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멀지 않은 곳이지만 언제나 타면 좌석에 앉을 수 있으니 더욱 좋다. 책을 마음 놓고 볼 수 있는 편리성 때문이다. 일에 쫓기기도 하고 학교 수업에 지치기도 하지만 없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은 주간에 일을 해야 하는 야간부 학생들에게는 버스를 타고 회사를 오가는 그 자투리땅같이 건물도 짓지 못하는 쓸모없는 땅과 같은 시간 이지만 오가는 길에 길지 않은 시간을 귀히 여기고 소중히 자기 시간으로 만들어 사용하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자기발전에 대한 돈이 전혀 들지 않은 투자이기 때문이다. 갈 때 하루에 30분에 올 때 30분을 합하면 하루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 1시간이나 된다.

하루 1시간이면 한 달 25일 근무 한다 치면 25시간이나 된다. 꼬박 하루를 공부하고도 1시간이 남는 계산이다. 모아놓고 보니 어마어마한 시간이다. 또 자취를 하면서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고 살림을 하는 것 자체가 미래를 위한 투자일 것이다. 자취생들이 여러 가지 요리를 해보는 것 또한 지금의 시간들을 실전에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좋은 공부시간이며 아무도 간섭하지 않은 실력 향상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오늘은 무슨 요리 내일은 또 다른 요리 이렇게 날자마다 정해진 요리로 식사를 준비 한다면 요리에 대한 공부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렇게 하면 음식을 장만 하는데 비용이 무척 들지 않겠느냐? 하는 의문도 생기지만 남은 반찬이나 밥을 가지고 재활용하는 것 어찌 음식에만 없겠습니까? 이런 고민도 어떻게 푸느냐? 방법에 달려있다 생각됩니다. 또 일요일이나 토요일 어쩌면 휴식이 필요한 날들을 모아 또 나름의 여러 가지 계획을 가졌다면 그것에서 오는 유익한 프로그램(program) 또한 있을 것이다. 기숙사를 나오기 전에 이런 여러 가지를 말씀드리며 사감님에게 상의를 드렸다.

 

사감님은 초급대학을 졸업하시고 초등학교에서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며 5년간 교직에 계시다 결혼과 함께 직장을 그만 두시고 전업주부의 삶을 사셨다. 남편은 어떤 종합상사 무역부에 근무하시는 엘리트 사원으로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친정에 돌아와 딸 하나를 키우며 사시다. 기숙사 사감으로 천직인 교육과 관계되는 일자리를 구하여 기쁜 마음으로 근무하신지 수년째이다.

길지 않은 5여 년의 교직생활 동안 어린이들을 좋아하시고 언제나 사랑으로 훈육하시는 식지 않은 열정은 이 시대 스승의 사표라 말할 정도로 짧은 기간 이지만 모범적인 교육자 생활을 하셨다. 특히 사감님은 시골에서 온 아이들을 무척 측은히 여기시며 혼신의 노력으로 바른길을 가도록 최선을 다하시는 기숙사 사감이지만 모두가 야간 중학에 다니는 시골에서 온 여학생이므로 선생으로 생각하시며 선생님 같은 사감으로 사내서도 존경을 받으시는 분이다.

 

사감님께서는 설정(薛貞) 학생이 기숙사 생활 중 말하는 것이며 행동거지(行動擧止)가 마음에 들어 하셨다. 온순하고 야무지며 학급에서는 언제나 일등을 노친 적이 없는 학생이기도 하지만 모든 일에 솔선수범하며 반장으로서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봉사하는 점을 높이 사며 마음에 들어 하셨다.

그리고 하루는 사감님이 기숙사 내를 돌아보시다가 어떤 방에서 물건이 없어졌다면서 서로 다투는 모습을 보셨다. 저들이 어떻게 서로 마음의 상처 없이 처리하는가? 유심히 보고 계셨다. 그때 한 학생이 그 방으로 들어가더니 조금 있으니 모두가 웃으며 함께 방을 나온다. 어찌된 일인가? 생각하며 나중에 알아보았더니 설정(薛貞) 학생이 마침 잃어버렸다는 것과 똑같은 것을 자기가 갖고 있었다. 그래서 그것을 가지고 가서 보이면서 내가 잠깐 가지고 가면서 쪽지를 쓰 놓고 갔었는데 바람에 날려 그 쪽지를 보지 못해 오해가 생긴 것이다 라며 무마하고 정말 가져간 친구에게는 후에 전후 사정을 얘기하고 잘못을 뉘우치도록 한 것을 알고 더욱 신뢰를 보내신 계기가 되었다.

그런 학생이 자취를 하겠다며 기숙사를 나가려 하니 말리는 것은 어쩌면 사감으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더욱 기숙사에 있으면 자신을 여러 가지로 도와주기도 하였고 앞으로도 도울 수 있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나가는 것은 어쩌면 좋은 것보다 나쁜 것이 더 많다 생각하니 선떡 좋다 할 수도 없었다. 여러 가지 사회상을 얘기하시며 기숙사가 네 집이라면 자취하는 집은 여관이나 여인숙과 다름없다면서 장단점을 말씀하시면서 졸업하면 그땐 싫어도 기숙사를 나가야 하는 만큼 일 년만 참으라며 간곡히 있기를 권했지만 한 번 결심한 마음을 되돌리는 것은 그리 쉽지가 않았다. 사감님의 만류를 뿌리치고 방을 얻어 나갔다. 자기의 간곡한 설득에도 기어이 나간다는 말에 다른 사람 같으며 사랑하며 귀여워하며 여러 가지 마음을 썼는데 섭섭하기도 하겠지만 사감님은 서운한 표정 없이 혹 어려울 때는 언제든지 찾아와 상의하자며 등을 두드려주었다. 그리고 일요일에 길을 물어 한 뭉치의 휴지를 싸서 손수 들고 방문을 오셨어 주인아주머니를 뵈옵고 이 학생이 기숙사에 있으면서 행동거지를 말씀드리면서 자기 자식같이 여러 가지 간곡한 부탁의 말씀을 드리고 가셨다. 이제까지 다른 어떤 학생들에게도 한 번도 없었던 일이며 그만큼 학생의 사람됨을 믿고 학생을 사랑하고 기대하셨다는 증거이다.

그런 일이 있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지만 그 후 설정(薛貞)이도 자주 기숙사를 찾아가서 사감님과 사내식당에서 식사하면서 여러 가지 애로사항을 말씀드리고 좋은 답을 귀담아 듣고 생활에 적용하는 등 실질적으로 인간관계가 사감과 사생(舍生) 이 아니고 어쩌면 어머니와 딸 같은 관계로 발전하였다.

 

아침 깨여보니 엊그저께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은 한갓 꿈만 같았다. 꿈도 아주 생각하기조차 실은 하루 빨리 잊어버려야만 하는 악몽인 것이다. 그러나 꿈 이기에는 너무 생생하고 또렷했다. 또 몸을 씻고 또 씻어도 지워도 없어지지 않은 몸에 색인화인(火印) 같은 것이다.

아침이 되어도 친구는 오지 않았다. 아마 회사로 바로 출근 하는 모양이다. 전에도 자취생활한지도 얼마 되지 않는데도 두어 번 시내 볼일 있어 나갔어는 시골집에 간다면서 기다리지 말라 하고서는 이튿날 바로 회사로 출근하는 경우가 있었다. 한방 친구는 바로 인근에 있는 농촌 출신으로 버스로 1시간 정도 걸리는 시골에 집이 있지만 통근시간이 길어 자취를 하는 어쩌면 부모 곁을 떠나 자유스런 몸으로 살고 싶기 때문이기도 한 학생이다.

아침은 밥은 넘어가지 않았다. 시골 있을 때 여름철이면 밥이 먹기 싫을 때 보리밥을 물에 말아 풋고추에 된장을 찍어 맛있게 먹던 기억이 되살아나 부엌에 가서 된장을 가져와 수돗물에 말아 두어 숟갈 밀어 넣어서나 입이 깔끄럽고 속이 더부룩해서 잘 넘어가지 않았다. 먹는 둥 마는 둥하고 수저를 놓고 상에 보를 덮고 위목에 밀어 놓았다.(평소에는 철저히 당번을 저해 설거지한다) 대충 양치질을 하고 버스를 타려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왔다. 평소 같으면 아침 5월의 엷은 싱그러운 바람을 가슴가득 마시며 두 팔을 활짝 펴며 심호흡을 할 것인데 오늘 아침에는 도저히 그런 기분이 나지 않았다. 지금쯤이면 시골에는 보리가 많이 자라 물결이 된 푸른 보리밭은 밀려오는 파도 같이 출렁일 것이다. 시골 같다온 후로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도 오빠에게는 소식도 없다. 그렇다고 동장님으로부터 무슨 소식이 있는 것도 아니니 아직까지 오빠는 시골에 한 번도 오시지 않았는가보다.

궁급했지만 동장님께 여쭈워 보기도 그렇고 오빠가 오시면 회사로 한 번쯤은 찾아오시겠지 하면서 기다려도 아직까지 소식이 없다.

갑자기 오빠 생각이 나는 것도 어제 저녁 그런 잘못으로 후일 무슨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지 하는 자기 본능에서 혈육이라고는 한 분밖에 없는 오빠가 자기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않지만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서 인지 알다가도 모르는 일이다.

버스 타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가면서 이런저런 많은 생각들이 들어갔다 나왔다 머리를 어지럽힌다. 어저께 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 혼자서 여관은 갈 수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누구와 어떻게 갔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나지 않는다. 누구의 부축을 받은 것 같은데 모르겠다. 많은 생각을 하다 보니 언제 왔는지 버스 정유소에 도착했다. 이곳에서는 매일 아침 대 여섯 명이 버스를 탄다. 버스를 타면 자리는 항상 일곱 여덟 자리는 비어있다. 한 곳을 찾아 앉으면 회사까지는 한 30여 분 걸려 도착한다. 조금 기다렸다. 언제나 만나는 나이 많으신 사무실에 고문으로 계시는 김 선생님을 비롯하여 다른 생산과 주임이며 여럿 오셨다. 서로 가볍게 인사를 한 후 회사 이야기며 시중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들을 얘기하는 중에 버스가 도착했다.

나는 버스에 오르면 언제나 기사 아저씨와 눈을 맞추면서 웃으며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기사님을 보면서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하고 인사를 드린다. 그런데 오늘은 묵례만 하고 자리를 찾아가서 앉았다. 운전기사 아저씨는 무슨 기분 나쁜 일 있었는가? 말씀은 않으시지만 왜 그냥 타지 하는 얼굴을 하시는 것 같다. 매일 아침 듣던 그 구슬 같은 음성으로 좋은 아침입니다. 소리는 하루 일을 시작하는데 활력소가 된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어느 날 점심시간에 시골에서 친구가 면회 왔다며 정문에서 사무실로 전화가 왔다. 정문 옆 매점에서 기다린다는 전갈에 친구를 만나려 매점에 갔다.

버스 기사님을 우연히 매점에서 만났더니 하시는 말씀이 학생!

“친구 면회 왔어” 하시면서

“학생! 버스 탈 때마다”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하는 인사

“참 고마워요.” 하신다.

덧붙어서 자기를 보시면서

“학생” 다시 부르신다. 아저씨를 향해 웃으며 고개를 돌린다.

“아침마다 듣는 인사지만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하는 인사는

하루 일과에 정말 활력소가 된다.” 하신다.

그리고 웃으시면서

“친구 만나고 올라가” 하시고는

피로 회복에 좋다는 음료수 두병을 사서는 둘 앉은 테이블에 위에 놓고 나가신다.

아저씨의 칭찬 아닌 칭찬에 얼굴을 붉혔던 일이 기억난다.

그때 생각했다. 남에게 하는(드리는)좋은 말(씀)은 이렇게 활력소가 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하고 아무렇게나 던지는 말은 아니 마음이 꼬여 하는 말은 남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돌이나 칼이 되기도 하며 다치게도 한다. 무심코 아이가 던지는 돌에 맞은 개구리는 죽는다는 말도 있는 것과 같은 가볍게 지나가는 말이라도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하는 습관을 가져야하겠다는 생각을 가진다.

기사아저씨처럼 별것 아닌 아침인사에 저렇게 활력소라고까지 말씀해주시니 다른 사람을 만나더라도 고운 말 아름다운 말을 써야지 다짐하기도 했다.

여느 때 같으면 책을 펴서 어제 배운 과목이나 오늘 배울 것을 복습 아니면 예습을 하는데 오늘은 통 그럴 기분이 아니다.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흔들리는 차 속에서도 생각은 나래가 되었다. 아침에 도둑고양이처럼 얼굴을 가리고 몰래 빠져나온 그 여관이 눈에 선명하게 보인다. 고개를 저어본다. 왜? 어떻게 여관을 간 걸까? 도무지 알 수 없다. 혼자 비틀비틀하면서 찾아갔을 리는 없고 친구가 되려다 주고 혹 간 걸까? 아마 그런가 보다?

내가 술이 취하여 정신이 없으니까? 같이 간 것일 거야 그렇다면 왜 나를 혼자 두고 어딜 간 걸까? 아니 함께 갔다면 자취집으로 갈 것이지 왜 여관을? 갔을까? 혹 통금시간이 지났기 때문은 아닐까? 의문의 연속이다.

저 혼자 밤에 시골집에 갔을 리는 더더욱 없고 아무래도 모르겠다. 출근해서 만나 보면 무슨 얘기든 하겠지 이래도 생각해 보고 저래도 생각해 보는 동안 회사에 도착했다.

2층 작업장으로 올라갔다.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아직 친구는 출근 하지 않았다. 오늘 할 작업물량을 재단에서 가져와 앞 열 작업대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정리 정돈 상태를 챙겨본다. 혹 작업에 장애되는 것은 없는지 점검한 후 사무실에서 과장님이 주제하시는 생산 회의에 참석하고 8시 정각 작업 시작하는 벨 소리와 함께 자리로 돌아와 친구가 일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친구와 눈이 마주치자 친구는 한 손을 가슴 앞에 올리고는 나를 보고 다른 한 손은 흔들며 두 눈을 감았다. 뜬다. 출근했다는 신호인지 아니면 다른 일 없어하는 뜻인지 아니면 다른 무슨 내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무엇이 있는지? 신호를 한다. 조장이면서도 다른 조원과 같이 재봉틀을 밟아야 한다. 같은 일을 하면서 작업량이나 순서를 체크하고 모자란 부문을 보충하고 재단 및 완성부와 작업을 연결하는 그리고 조원들을 관리하는 일을 한다. 결과적으로 다른 작업자들 보다 한두 가지 일을 더 하는 셈이다. 결근하는 작업자가 생기면 그 일까지도 시간을 내야 한다. 일이 시작되면 쉴 사이가 없다. 작업할 물량은 앞 공정에서부터 뒤 공정으로 끊어지지 않고 계속 넘어오기 때문에 쉴 짬이 없다. 한 사람이 느리면 그만큼 전체가 느려지기 때문에 게으름을 피울 수가 없다. 한 사람의 게으름이 전체 조원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일솜씨가 느린 작업원은 쉬는 시간까지도 일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일을 잘 하는 사람과 보조를 맞출 수가 있다. 일이 서툰 작업원은 항시 마지막 공정에 배치한다. 마지막 공정은 일이 밀리더라도 끝난 후에도 할 수 있고 쌓여도 뒤 작업자에게 지장을 주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계속 따라가지 못한 작업자는 하지 말라 해도 본인이 솔선하여 작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 다른 작업자에게 눈총 맞지 않기 위해서다.

일부러 눈총을 주는 동료들은 없지만 계속 뒤 처지다 보면 알게 모르게 자격지심에 마음 아파하기도 하는가보다. 그러다보며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점심시간을 이용하거나 늦게까지 일을 하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가장 빨리 그리고 완벽한 숙련자를 제일 앞자리에 앉힌다. 처음 시작부터 빨리 정확히 일을 시작해야만 작업 능률이 오르기 때문이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벨 소리는 작업하던 원단을 마무리하고 다시 작업해야 할 원단을 끼워 넣은 다음 작업 시작하면 바로 일을 할 수 있도록 재봉틀의 발을 들고 원단을 넣고 바늘을 꽃아 두고 일어난다. 한방 친구가 쪼르르 달려왔다. 아무 말 없이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손을 잡고 식당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친구가 먼저 입을 연다.

“정(貞)아! 지난밤에 아무 일 없었니?” 하며 어깨를 밀치며 묻는다.

꼭 무슨 일이 일어나야만 하는 것처럼 들린다.

“애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꼭 무슨 일 있어야 된다는 말처럼 들이는 구나”

“아니 그런 뜻은 아니고 말이야”

“너 말이다. 너무 취해 너를 업고서라도 집까지 데려다주라 했는데” 하면서 나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무엇을 알려는 눈빛이다.

“혹 너를 다른 곳으로 데려갔는가 싶어서”

슬쩍 나의 눈치를 본다.

내가 아무 말이 없자

다시 친구가 말을 한다.

“아니면 됐고 그날 내가 잘 아는 오빠들을 만났잖아”

“네게도 소개시켜도 주고 맥주잔을 들고 같이 건배도 하고 넷이서 홀 중앙으로 나가 함께 춤을 주기도 하고 둘만 홀 중앙에 남아서 춤도 추고했잖아”

“둘이 참 잘 어울리더라. 내 옆에 오빠는 둘이 나가 춤을 출 때는 손 벽도 쳤다.

“애 너를 대려다주라고 부탁한 내 죄도 있고 해서 어찌나 걱정이 되든지”

“입 닫아만 두지 말고 말 좀해라”

내가 말할 틈도 주지 않고 일절부터 오절까지 단숨에 해버린다.

“얘 언제 내가 말할 기회를 주기나 했니?”

“참 그랬었나? “

그제야 안심이 되는지

“아무 일 없었지 그지”

하고는 무엇을 생각하며 확인이라도 하는 것 같이 아무 말 없이 땅만 보고 걷는다.

그리고서는 내가 취해서 지(자기) 말대로 대학생 오빠에게 부축 받으며 나갔을 때 자기는 멍하니 보고만 있었는지? 내가 나가고 난 뒤는 무얼 했으며 또 어디에서 잠을 잤는지 아무 말도 없다

도둑이 자기 발 저린 다. 하더니 무슨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것은 아닐까? 나를 그 오빠라는 대학생이 집까지 바래다준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남자 둘 합석한 기억이 어렴풋이 생각이 난다. 하나는 좀 뚱뚱하지만 밉지 않은 얼굴이고 내 옆에 앉은 남자는 희멀끔한 얼굴을 한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둘째손가락으로 턱 가까이 가리키며 혀 꼬부라진 소리를 하며 이 오빠는 꼭 기생오라비 같다면 킥킥거리며 웃던 기억이 난다.

오늘 아침까지도 아무리 생각해도 나지 않던 기억이 친구 한마디 말에 되살아난다.

너를 부축해서 데려다준다기에 얼씨구나 좋다. 잘 되었다. 나는 다른 약속도 있고 해서 그렇게 해주신다면 고맙지요 하면서 불감청(不敢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 이로 소이다. 라는 문자를 쓰면서 너 내가 절까지 했다.

“마님을 잘 모시고 가십시오.”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키득키득 웃으면서 다시 한 번

“애 아무 일 없었다니 다행이다.” 면서

또 한 번 의미심장한 웃음을 입가에 머금고는 누가 들으라는 듯 같은 말을 반복한다.

“그 학생 아버지 더기 부자다”

“얘 너 그 학생 아버지 더기 부자다” 하면서

깡충깡충 뛰면서 머가 그리 기쁜지 웃으며 쏜살같이 식당을 향해 내 달리는 것이다.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고 보니 사전에 그 남학생들과 모종의 약속이 있었든 것이다.

둘이서 여러 번 춤을 추고 테이블에 돌아와 주거니 받거니 하며 술을 먹을 때 친구는 자주 시계를 보았다. 누구 올 사람 있니 하면서 그럼 나는 갈게 하면서 일어서자 웃으면서 아니야 그런 게 아니고 하면서 나를 다시 붙잡고 자리에 앉게 했다.

그리고 야 술이나 먹자 하면서 컵을 들고 부딪치는 것이다. 아마 그때부터 나는 반쯤 취하여 있을 때었으며 시골에서 어머니의 콧물까지 흘리며 우시던 슬픈 모습이 떠올라 속도 많이 상하고 오빠의 비뚤어진 생활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 벌컥벌컥 또 물먹듯 술을 마셨다.

궁금증은 속 시원하게 풀렸다만 몸을 가누지 못한 나를 여관까지 데리고 가서 아무도 없는 단 둘 뿐인 방인데 그냥 성인처럼 아니면 가톨릭 신부님처럼 손 하나 까딱 않고 갔을까?

아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춤을 질질 흘리며 제멋대로 풀어헤친 머리며 입가에 더덕더덕 먹다만 음식 찌꺼기며 눈 꼽지가 낀 거며 입을 하 벌린 몰골이며 고개를 비틀고 누워 있는 꼴 생각만 해도 모골이 송연하다. 아니 평소에는 없는 버릇이지만 혹 이라도 갈았다면 이런 상판을 생각만 해도 역겨운데 더욱 대학생이 무슨 다른 생각이 있었을까?

아랫도리에 커다랗게 꿈틀대던 빗나간 욕망도 어느 한 때 하찮은 친구들과의 어울림에서 함께 섭렵했던 놀이 같던 허튼 수작도 고운 옷차림에 향수라도 뿌려 코끝을 자극해야지만 실탄이라도 발사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더욱 대학생이라면 그 정도 인품은 가졌어야 되는 것이 아닐까? 혼자 단정하면서 술 취에 누워 있는 꼴 보니 정나미 뚝 떨어졌겠지 암 그렇고말고 혼자 아무 흥미를 느끼지 못한 것이다. 자문자답 해본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옷도 입은 그대로인데 그리고 몸에 아무 이상도 없었다. 단지 소변을 볼 때 꽉 찬 것을 마구 쏟아내는 시원한 느낌도 있었지만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심히 꽉 막힌 것 같은 불편함과 밑이 많이 아팠고 따가웠던 기억이 난다.

아무 일 없었든 게야 세상 사람이 다 나쁜 것만 아닌 것 같이 나를 데려다준 그 남학생도 분명 좋은 착한 훌륭한 학생일 것이다. 억지로 라도 그렇게 생각하기로 마음을 정하니 한결 기분이 맑아졌다. 어둡게 좋지 않게 나쁘게 생각하지 말자 나쁘게 생각하면 좋은 것도 나빠질 것이고 좋게 생각하면 나쁜 것이라도 좋아질 것이다. 그래 맞다. 이제부는 잠깐 어저께 실수를 잊고 전과같이 아무 일 없는 듯이 사는 것이다. 다짐을 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이다.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마음도 다스려지는 모양이다. 구태여 알지 못하는 일 가지고 미리 마음 아파하고 걱정하며 산다는 것 그만큼 어리석은 사람 없을 것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미리 알려고 병원에 가서 다리를 쩍 벌리고 보이기 싫은 곳 보이면서 의사 선생님께 확인을 받는 것도 차마 학생으로 할 수 없는 낯부끄러운 일이고 내가 생각하는 그 걱정스러운 일을 누가 보고 말하는 것도 아닌데 더욱 내 몸에 하등 아무른 이상이 없는데 미리걱정 할 일은 아니라고 재삼 다짐 했다.

 

점심식사 마치고 천천히 한방 친구의 뒤를 따라 작업실로 돌아왔다. 오후의 시간도 바쁜 작업 때문에 정신없이 재봉틀을 밟는다. 작업량이 딸려 재단실에 갔다 왔다 반복하다 보니 정신없이 지나갔다. 완성 부서에서는 다림질할 옷이 없다며 만들어 놓기 무섭게 가져간다. 이렇게 물건이 딸려서야 웬 선적 날짜를 맞추겠느냐며 업무부에서는 아우성이다. 부서 간에 자주 티격태격한다. 잘못 만들어진 옷 관계이기도 하고 수량 때문일 때도 있다. 박음질이 직선이어야 하는데 비뚤어지면 바느질하는 사람 잘못이지만 그렇지 않고 분별하기 어려운 묘한 곳일 때도 있다. 그럴 때는 네가 잘했니 내가 못 했니 하면서 다투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시간은 근방 간다. 종료 벨 소리에 하던 일을 정리하고 내일 할 일을 구분하여 정리해 두고 학교에 갔다. 오늘 수업도 어지러운 머리 때문에 선생님 말씀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눈은 칠판을 보면서 생각은 여기저기 옮겨 다녔다. 전에 없든 지루하기만 한 수업도 끝났다.

설정(薛貞) 은 1반이고 한 방 친구는 3반이라 가끔은 마치는 시간이 다를 경우도 있다. 각반 사정이나 종래 때 선생님의 말씀의 길이에 따라 조금 차이가 나지만 대게의 경우 비슷하게 마친다. 오늘은 우리 반이 먼저 마쳤다. 정문으로 가서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았다. 친구도 비슷한 시간에 버스에 올라 내 옆자리에 앉았다. 야간 통근 버스는 탑승 하는 사원들이 많지 않아 한 열 명 정도 서서 출발한다. 주간만 일을 하는 부서에서는 자주 잔업이 있기 때문에 22시에 일이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야간 통근 버스는 잔업부서 직원들과 학생들이 함께 이용한다. 부서는 다르지만 다들 어려운 가정환경 때문에 고생을 하는 처지다 보니 동병상련(同病相憐)이랄까? 서로 위로해 주고 다독여 주며 앉을 자리도 서로 양보하고 학생들이 한자라도 더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마음 남달랐다. 어느 형제가 이토록 우애가 돈독할까? 마음 씀씀이가 고울까? 혹 방해가 될까? 대화도 귀속 말로 한다. 어느 하나 나무랄 때 없는 차안 분위기다. 심지어 기사 아저씨의 운전도 서있는 종업원을 위하는 마음으로 가급적이면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급정차나 급출발은 하지 않는다. 버스 경음기도 좀체 울리지 않는다. 최대한으로 안락한 운전으로 집까지 평안한 이동이 되도록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성을 한마디로 얘기한다면 어려울 때 똘똘 뭉쳐 한마음이 되며 난세(亂世)에 뛰어난 응집력으로 어려움을 이겨 냈다. 우리 회사 버스 풍경이 닮은꼴이다. 병자호란 때 그러했고 임진왜란 때 그러했다. 특히 임진왜란 때에는 왕이 버리고 간 도성을 일본군은 개전 단 20일 만에 정복 했다. 그러니 이젠 전쟁은 자기들 승전으로 끝날 것이며 그때 이미 조선 통치를 생각하며 정복자로 군림(君臨)하였지만 조선의 선한 백설들이 가만두지 않았다. 팔도의 수 없이 많은 백성들이 의병이 되었고 도량(道場)에서 도를 닦던 승려들이 승병이 되어 잠깐 절을 비우고 싸움터로 달려갔다. 승병장 사명대사 유정은 염주 대신 칼을 들고 승병장으로 활약하였다.(일본인이 사명대사를 방에 가두고 불을 때 죽이려 하였는데, 정작 방안에 있던 사명대사는 덜덜덜 떨며 어찌 손님 대접을 이렇게 하느냐며 호통을 쳤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

그리고 바다에서는 민족의 성웅 이 순신 장군이 백성들과 똘똘 뭉쳐 바다에서 23전 전승의 인류해전(人類海戰) 사상 유래 없는 전무후무(前無後無)한 쾌거로 전쟁 발발 7년여 끝에 일본군을 물리쳤다. 그 후예들이니 만큼 어려움에 처한 처지가 비슷 사람들이 모인 단체이니 만큼 어찌 서로 돕고 의지하는 마음이 없었겠습니까? 그리고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면 900번 이상의 외침을 당하면서도 민족이 없어지지 않고 유구한 반만년 역사를 이어온 민족이니만큼 그냥 어쩌다가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민족의 저력을 본다. 어려울 때 응집력이 강한 민족이니만큼 어려운 사람들이 모여 일하는 직장 종사자들이니만큼 서로 도우며 위하는 마음 각별하다 해야 할 것이다. 차안에서도 친구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집에 와서도 친구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렇다고 남자 대학생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을 마음도 없었다. 혹 자신의 일 때문에 안달하는 것으로 비칠 수 도 있을 것이고 거기에다 아버지 부자라는 그 말의 뉘앙스는 대학생의 여러 가지를 물으면 너도 별 수 없는 아이였었네 말로 들리기도 할 것이다. 자기 자신이 대학생이라니까 그 사람을 유혹하는 자신으로 비췰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은 자신만의 어떤 결벽(潔癖)증 이라할까? 아니면 자신감이랄까? 언제나 당당했던 자신의 모습을 마구 구기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남학생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도 서로가 하지 않았다. 친구는 너 어디까지 뭇지 않고 견디나 보자 하는 마음인 것 같고 자기 자신은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기도 하나 어쩌면 자신을 보아도 자신의 속마음을 자신도 읽을 수 없으니 친구 눈에는 어떻게 비췰까? 그것 또한 자못 궁급하였다만 물어 볼 수도 없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서로 누가 먼저 그날 밤의 일을 말하나 인내를 시험하는 그러한 날들은 지나가고 있었다. 인내 아닌 인내 경쟁 아닌 경쟁 오기의 시간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서로 한마디 말도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 버렸다.

어느 날 생산1과에 한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보통 일과시간에는 전화를 바꿔주지 않고 전달만 해주는데 이날은 시골 집 동네 동장이라면서 꼭 바꿔야 한다면서 간곡하게 부탁이 있어 그리 하였는지 사무실 박 양 언니가 작업장까지 와서 집에서 전화 왔으니 받으라 한다. 여태까지 객지 생활을 시작한지 2년 반을 조금 넘는 동안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더구나 지난 5월에 집을 다녀 온지 2개월이 조금 지난 시점인데 심히 당황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사무실에 가서 전화를 받았다. 동장님 말씀이 먼저 놀라지 마라 하시면서 어머니께서 새벽녘에 돌아가셨다는 내용이다. 천장이 빙글 돌며 머릿속이 하얗고 귀가 멍멍하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넘어질 듯 들썩 주저앉았다. 옆에 있던 사무실 박 양 언니가 깜짝 놀라면서

“정(貞)아야! 너 왜 이래”

하면서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간신히 들어다 억지로 의자에 앉힌다. 그리고 잽싸게 현장으로 달려가 과장을 불러왔다. 과장이 사무실에 들어오신다. 마주보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왜 무슨 일이 있어” 묻는다.

하얀 얼굴이 되어 뚝뚝 눈물을 흘리며 힘없이

“방금 마을 동장님께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과장님은 이를 어쩌나 하시면서 어께를 두드리며 위로하신다.

“울지 마 어떻던 산사람은 사는 법이다.”

“연세도 많지 않으신데 돌아가셨다니 너무 불상하고 속이 상 할 것이다.”

“어쩌거나 돌아가셨다니 인간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받아 들릴 수밖에 없지 않느냐”

하시면서 위로의 말씀을 하신다.

지금 과장님은 공원으로 출발하여 과장까지 진급하신분이라 부하에 대한 애정 남달랐다. 자기처지 그 어려웠든 시절을 생각하면서 적어도 과내 직원이며 가정사(家庭事.史)까지 파악해서 익히신다. 그러니 홀로되어 사시는 한 라인의 조장인 설정(薛貞)의 어머니의 연세까지도 정확히 기억하시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러니 과내는 물론이거니와 여러 과 가운데서도 언제나 실적이며 품질이며 모든 부문에서 앞서가는 라인의 조장의 일이니 어련하실까? 과장님의 따뜻한 말씀 한마디에 더욱 눈물이 난다. 과장님은 시골이 집이니 만큼 차편도 마땅치 않을 것이며 버스나 다른 차편을 이용하면 오늘하루 해를 넘겨야 도착할 수 있는 사정을 미리 아시고

“설(薛) 조장! 내 출퇴근 차를 타고가” 하시면서

기사가 항상 대기하고 있는 정문으로 연락을 한다.

(당시는 집이 비슷한 방향의 간부들에게 운전기사를 배치하여 3.4명이 한조가 되어 출 퇴근 토록 회사에서 배려가 있었다. 일과시간에는 업무용으로 사용한다)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회사 금고에 가서 얼마간의 돈을 찾아 정문에 갔다. 운전기사아저씨가 설정(薛貞)을 알아보고 주차장에 데리고 가서 차문을 열어준다. 운전석 옆에 앉아서 시골집으로 출발했다. 학생을 집까지 데려다 주고 돌아와도 퇴근 시간까지는 충분히 도착할 수 있다. 설정(薛貞)은 슬픔을 억누르고 혼자 생각에 젖는다.

아마 엄마는 나 때문에 돌아가셨을 것이다. 그 잘난 돈 때문에 자기가 송금한 그 돈을 오빠가 그것도 노름을 해서 탕진한 것을 지난 번 갑자기 귀향 때에 계 타령을 하시면서 오빠의 잘못을 덮으려고 애를 서셨다. 딸이 떠난 후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잘못하다가는 오빠 밑을 닦다(뒤 바라지를 하다) 둘 다 평생 고생 할 것 같은 생각에 마음을 고쳐먹고 딸에게 사실대로 어머니의 비뚤비뚤한 글씨를 춤을 발라가면서 연필로 쓴 편지를 붙였을 것이다.

어머니는 그러고는 이것이 잘한 일일까? 아들이 알면 또 얼마나 섭섭해 할까? 번민에 번민을 하셨을 것이다. 어머니의 눈물 어린 편지를 받은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오늘 돌아가셨다. 아마 자신의 죽음을 미리 아시고 이후에도 오빠에게는 거리를 두고 살아가야한다는 것을 일깨워주시고 가셨지 않았나 생각되기도 한다. 순전히 어머니의 죽음은 오빠의 방탕 등 여러 가지 심려가 깊으시어 돌아가신 것이지만 원인제공은 자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은 몹시도 자신을 괴롭힌다. 아버지는 자기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다. 그러니 유복자다. 엄마마저 돌아가시고 없는 이 시골 집 더구나 하나 뿐인 오빠는 주색잡기 그것도 모자라 노름에 미쳐 장가도 가지 못하고 시골에 살지만 농토라고는 한데지기도 없는 실정이다. 전에는 꽤 농토가 있었다는데 아버지 병환으로 어쩔 수 없이 다 팔아 병원비로 다 충당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농사를 짓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일지 몰라도 무엇을 해서라도 살 궁리를 해야 하는 것은 더 말 할 나위 없지만 애초에 그러한 것은 생각도 않는 그런 위인이다. 머리가 나쁜 것 인지 환경이 그렇게 만든 것인지 나쁜 친구를 사귄 것인지? 문제의 청년이다. 오빠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장사를 지낼 때까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연락도 되지 않았다.

어머니의 혼령 앞에 서서 혼자 음식도 먹지 못하고 연신 꾹꾹 울고 또 울며 이틀을 버텼다. 많지 않은 문상객들도 한분 같이 딸을 두고 어찌 갔을까? 하늘도 무심하시지 저 아이가 공장에 가서 일을 한 뒤로 집이 좀 나아졌는데 조금만 참으면 식구가 많나 옛 말하며 살 때도 있을 텐데 저를 어떻게 하나 불쌍해서 저를 어쩌지 하시면서 반 울음 섞인 목소리로 위로의 말씀을 하신다. 장례 날에는 동네 사람들과 몇 되지 않은 친척 분들과 회사 과장님과 동료 몇 사람이 부조금을 갖고 오시어 장지까지 따라오셔서 함께 해주셨다.

어디에 소속 되어 있다는 것이 이렇게 고마울 수 가없다. 적저 않은 장례비이지만 많은 도움이 되었다. 후에 안 일이지만 과원 전체가 한마음이 되어 십시일반으로 얼마간 부의금을 떼어 가불로 처리하여 부조금으로 지급하고 월급에서 공제했다한다. 이는 흔치 않은 일임을 나중에 박 양 언니가 얘기해 주어 알았다.

엄마의 사인은 뇌출혈이며 친척 몇 분과 동네 어른 분들이 인우증명을 하는 등 도와주시어 무리 없이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장례비는 자신이 가져간 돈과 회사에 부의금으로 치렀으며 아버지 무덤 왼편에 안장했다. 집을 떠나면서 동장 아저씨께 오빠가 혹 오시면 자초지종을 잘 말씀드려 주시기를 부탁드리고 초우제를 지난 그날 오후 고향을 떠나 자취집으로 돌아왔다. 엄마가 키우시던 닭 몇 마리는 동장님이 수고하신 동네 분들의 노고에 보답하는 뜻으로 드린다며 얼마 되지 않은 돈이지만 함께 드리면서 음식을 나누어 드시라고 말씀드렸다. 여러 가지 고마움은 앞으로 잊지 않고 열심히 살며 성공하여 동네 어른분과 동네를 위해서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며 살 것입니다. 잘 말씀드려주시길 부탁드렸습니다. 어머니의 값나가지 않은 살림살이며 잡다한 것은 문을 잠가 놓아서니 가끔 들려 둘러 봐주시고 오빠가 오시면 열쇠를 주라고 부탁을 드렸다.

동장 아저씨는

“너는 할 수 있어 너를 믿어”

하며 위로해 주시면서 손을 잡아 주셨다.

“오빠가 오면 그간의 사정을 잘 이야기 하겠다. 너무 걱정마라” 위로해 주셨다.

동장님 외에 여러분이 마중을 해 주신다.

정든 집을 나서는데 그사이 많이 자란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엄마를 대신하여 작별 인사를 하는 것 같다. 눈물이 왈칵 샘 쏟듯 흐른다. 강아지야! 말 못하는 강아지를 부르면서 너와 함께 사셨던 우리 어머니는 이제 영원히 볼 수 없는 곳으로 가셨다.

너를 어떻게 해 하면서 돌아서서는 다시 동장님께 강아지를 잘 부탁드린다고 말씀을 드리고 말 못하는 강아지와의 이별이 서러워 고개를 숙이고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이며 유품 몇 점을 넣은 가방 하나를 들고 달리듯 나왔다. 한참동안 따라오는 것 같던 강아지도 굽어지는 어느 길에서 돌아보니 보이지 않았다.

오늘도 동네 앞 개울가에 능수버들은 늘어지지 말라 해도 축 늘어져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 같다.

버스를 타고 회사로 돌아오면서 성공하지 않는 한 다시는 찾지 않겠다면 맹서하고 집을 떠나왔다.

아무 일 없는 듯 세월은 빠르게 흘러갔다. 신상에도 별다른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 아침 먹고 회사에 가서 일을 하고 저녁에 공부하고 매일 같은 일들이 반복되었다. 이해 여름도 많은 생각을 하는 가운데 흘러갔다. 사람들은 덮다 면서 바다를 찾아가고 회사에서도 하기휴가를 5일이나 주었는데도 아무 곳도 가지 않았다. 바다 모래사장 한 곳을 빌려 천막을 처 놓고 하계휴양소를 설치하여 사원들의 바닷길을 더한층 편리하도록 운영하였는데도 가지 않았다. 한방 친구는 자기 시골집으로 가자하는데도 영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휴가 기간 동안은 한 발자국도 밖으로 나가지 않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죽음에 대한 여러 가지 의문으로 성경책을 사서 보면서 어머니를 생각하거나 학과 공부로 시간을 보낸다. 자취방 옆에 하나 있는 나무위에 매미는 맴맴 스르르 고향집에서 듣던 그대로 이다. 우리나라 매미는 아마 어디에 살던 간에 한 자손인 모양이다. 맴맴 스르르 언어가 같으니까? 또 매미는 비가 오면 울지를 않는다. 날개가 젖어 울지 않는지 아니면 다른 무슨 특별한 사정이 있어 울지 않는지? 의문이다. 개구리는 비가 오려하면 운다. 이는 강가에 부모를 묻은 불효개구리가 홍수에 무덤에 계시는 부모가 뜨 내려갈까? 걱정 때문 이라고 하는데 오빠는 장례에도 오지 않았는데 앞으로 많은 날들이 남아 있는데 얼마나 울려고 저러나 생각해 본다.

짐승도 아니 미물도 저러는데 하물며 오빠는? 소식도 없고 고향에서 연락도 없는 것을 보니 아직도 나타나지도 않은 모양이다.

휴가가 끝난 뒤에는 오빠가 노름으로 탕진한 돈을 채우기라도 하려는 듯 토요일이나 일요일의 특근을 도맡아 했다. 더 열심히 일을 했다. 가을로 접어들면서 언제부터인가 매월 보이든 달거리가 없었다.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큰 아픔과 오빠의 노름과 방탕한 생활에 걱정을 하다 보니 그리고 회사의 일과 공부에 매달려 다른 것은 일체 신경을 쓰지 않았다. 자신의 몸의 변화도 잊어버렸다. 언제부터 달거리가 없어졌는지도 모른다. 바쁘게 몸을 굴려야만 정신적인 허탈감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다른 아픈 곳도 없고 몸에는 아무른 이상도 발견 할 수 없었다. 이러다 보니 여름도 언제 흘러갔는지 울긋불긋 가을인가 싶더니 하나 둘 낙엽이 도로 위에 나 뒹굴며 스산한 바람이 낙엽들을 사르르 또 사르르 소리를 내며 으썩한 담벼락으로 끌고 가는 늦가을도 지나 잎 떨어져 볼품없는 나무들이 을씨년스럽게 서 있는 겨울이 한 여름동안 좁기만 한 초 겨울 잎 떨어진 산길을 많이도 탁 터인 훤한 산길로 변하시켰다. 아침에는 서리가 흙을 밀어 낸 자리에 개미집 같은 조그마한 얼음 움막이 겨울임을 알린다.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단풍은 인간들의 얼굴에 피는 검버섯 같은 저승꽃인줄 몰랐던 모양이다. 단풍 구경을 간다며 한동안 신문 방송이 시끄럽더니만 조용하다. 며칠 전부터 담임선생님께서 종래시간이면 어김없이 졸업을 앞둔 마지막 겨울방학을 어떻게 지나는 것이 중요한지 선생님의 경험을 살린 확신에 찬 말씀이이어지며 무슨 연속극 같이 시리즈로 엮어 계속 말씀을 하신다. 대학을 가던 다른 곳에 취직(산업체 특별학급 출신자는 보통 사무직을 원한다. 주간에 일을 하고 야간에 공부를 하다 보니 아마 지쳐 주간만 하는 사무직을 원하는 학생이 많은 것이다.) 을 하든 아니면 계속 근무를 하든 나름의 계획을 세워 여러분들이 일과 배움 두 가지 일들을 하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 그 고생의 3년을 먼 후일 되돌아보았을 때 활짝 핀 꽃으로 열매를 맺도록 하는 것이 3학년 마지막 겨울 방학이었다. 먼 후일 자신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도록 이번 겨울 방학은 더욱 알찬 계획을 세워 실천할 것을 당부 하셨다.

그런 어느 날 이었다. 돈 때문에 어머니가 돌아가시지 않았을까? 아픈 기억은 때때로 돌아가신 어머니의 슬픈 얼굴을 그리며 눈시울을 붉힐 때 자신도 모르는 중에 고개를 들고 먼 허공을 향하여 하늘을 바라보는 버릇이 생겼다. 하늘의 구름은 세상 그 어떤 일에도 관심이 없는 듯 하늘 길이 멀다고 무엇이 그리 급한지 손살 같이 달아날 때도 있는가 하며 드물긴 하지만 어느 때는 한 쪽 하늘을 완전히 점령한 구름들이 한자리에서 못을 밖은 듯 꼼짝도 않고 있다. 이를 때는 수 시간이 걸려도 기다리며 누구에게 꼭 보여주어야만 하는 아픈 사연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또 어떤 때는 여럿 무리지은 구름들이 시위를 하는 듯 항의의 표시를 하는 듯 들락날락 뭉쳤다 헤어졌다 반복 한다. 또 어떤 날은 검은 구름이 온통 하늘을 완벽하게 가린다 하늘에도 무슨 말 못할 비밀이 있는 것은 아닌지? 온통 하늘 전체가 벽을 쌓은 느낌이다. 가릴 것이 많은 고래 등 같은 집을 연상하고 감출 것이 많으면 저렇게 담장이 높고 완벽한가 보다 생각하기도 했다.

(어떤 구름일까?)

그리고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만이 고고히 아래

세상을 내려다 볼 때는 하늘이 이렇게 말을 하는 것 같다. 움츠린 어께를 펴라 당당 하여라 나를 보라 넓고 푸른 하늘을 보라 이세상은 끝없이 높지 않느냐 넓지 않느냐 무엇이 그리 두려운가? 너에게는 아직 피지 않은 꽃 같은 젊은이 있지 않는가? 명석한 두뇌가 있지 않는가? 노력하면 무엇이나 다 이룰 수 있는 얻을 수 있는 젊은 너 자신을 믿어라 말하는듯하다. 또 하늘 길 따라 멀리멀리 아주멀리 가면 어머님이 사시는 하늘나라가 있지 않을까? 생각이 나래가 되어 훨훨 우주 끝까지 자신만의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오늘은 이별 내일은 저별 또 다음날은 다른 별로 생각만으로 온 별을 찾아 온 우주를 섭렵하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아침이었다. 수출 기한 때문에 일요일 특근을 했다. 한반 친구와 함께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마치고 작업실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구역질이 나며 먹은 것을 토하고 싶은 충동에 친구에게 너 먼저 가라며 화장실로 급히 갔다. 문을 열고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가며 변기에 얼굴을 대고 입을 벌렸다. 억- 억- 하면서 고개를 숙이고 토하려 해도 먹은 것은 나오지 않고 신물만 나온다. 춤을 질질 흘리듯 신물이 계속 입에서 흘러나온다. 한참을 그러고 있으니 어느 정도 까라 앉는다. 더 얼마간 그러고 있다. 괜찮아졌다. 작업장에 왔다. 계속 그럴까? 은근히 걱정을 했는데 속은 잠잠해진다. 일부로 트림을 하여도 신물이 올라오지 않는다. 이젠 괜찮아진 것일까? 오후 작업을 끝마칠 때까지 별 이상 없었다. 19시에 통근 버스를 탔다. 가솔린 냄새를 맡으니 다시 구역질이 난다. 억지로 참고 계속 수건으로 입을 가리며 자취방으로 왔다. 오늘은 다른 날과 달리 많이 피곤하다. 전에 언제도 지금과 같이 신물이 나고 미시 거울 때가 있었다. 주인집 아주머니께 말씀드렸더니 체했다며 체한 데는 이게 제일이라면서 손가락 끝을 따 주셨다. 금방 씻은 듯이 나았다. 신통했다. 그런 경험도 있고 해서 오늘 다시 말씀드렸다. 전과 같이 혹 먹은 것이 채했는지 모른다며 실과 바늘을 꺼내서 손가락을 따 주시며 트림을 해보라 하신다. 보통 체한 경우에는 한 번 따 주시기만 하면 씻은 듯이 낫는다. 주인집 아주머니는 민간요법에는 일가견이 있으신 분이다. 친정집 옆집은 옛 부터 한약방을 하셨다. 어릴 때 그 집 손자와 어울려 다니다 보니 자주 들락날락하며 어깨 넘어 배웠다는 것이다. 억지로 트림을 해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곧 났겠지 하면서 물러 나와 그래도 안전하게 한다면 약방에 가서 체한데 약을 달라 하니 캡슐로 된 6개 들이 가루약을 주시며 지금 한 봉지 먹고 내일 아침에 먹고 그래도 낫지 않으면 병원에 가보라 한다.

약을 먹고 여러 시간이 지나도 차이가 없다. 저녁도 먹지 않고 밤새도록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한 방 친구는 누가 죽어나가도 모를 것 같다. 아니 누가 업어가도 업어가는 줄도 모르게 잘도 잠을 잔다.

야속(野俗)하기도 하고 천하태평으로 자는 모습이 부럽기도 했다.

이튿날 아침인데도 구역질이 난다. 약을 먹어도 딱 멈추지 않는다. 아무래도 병원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슨 큰 병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까맣게 잊고 있던 하루 밤 여관방 신세가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되어 가슴을 짓누른다. 이제까지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다.

무엇인가 마음에 집히는 것이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언제부터인가 달거리가 없는 것이 이제야 생각난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어머니 생각이 난다. 하늘에 계신 어머니 나 좀 도와주셔요. 자신도 모르게 기도하는 마음이 된다. 오늘은 병원에 갈 생각이다. 아침에 친구와 같이 걸어 나오면서 시골집 정리 때문에 하루 결석을 해야 한다고 반장에게 이야기해 달라 부탁을 하고 한참을 걸어 나왔다. 가만히 보니 아직 병원 문 열 시간이 아니다. 시골 가져갈 것을 잊었다며 잠깐 집에 다시 들렀다 간다며 먼저 가라고 이르고는 자취방에 다시 왔다. 병원에 가기 때문에 결근을 한다는 말은 차마 친구에게 할 수 없었다. 진료시간이 보통 9시이므로 잠시 누워있다. 병원 문 열기 기다렸다 시간을 맞춰 병원을 찾아가기 위해서다. 한 40십분 지체하다 가끔 외출 시 본 로터리 옆 최 내과 의원을 찾아갔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직 선생님이 출근하시지 않았다면 소파에 앉아 기다리라는 여직원 말에 지나간 잡지 하나를 골라 보면서 의사 선생님을 기다렸다. 잡지에는 내년도 경쟁 정책과 함께 장밋빛 미래를 소개하고 있다. 다시 한 장을 넘긴 다음 장에는 웃는 얼굴의 유명 배우의 파격적인 반라 사진이 자기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한 면을 완전히 덮고 있다. 길거리에 미니스커트를 단속한다며 자를 들고 길에 서 계시는 경찰 아저씨를 보았는데 이 잡지는 그와는 상관없는 모양이다. 장발까지 단속하는 경찰 아저씨들도 있었는데 잡지하나도 단속 하지 못하면서 개인을 상대로는 안하무인격이다. 개인의 인권이 길거리에서 조롱당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잡지를 보다 씨그둥하여 덮는다. 문을 열고 안경 넘어 눈이 부리부리하신 나이 지긋한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시며 진찰실로 들어오라 한다.

흰 가운을 입으시며 어디 가 아프냐며 물으신다. 어디가 아픈 것이 아니고 구토가 나고 신물이 나온다며 혹 먹은 음식이 이상이 있어 그러한지 말끝을 흐린다. 의사 선생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몇 마디 문진을 하시고는 입을 벌려 입안을 보시고 혀를 보시고 입천장을 보시고는 침대에 누워라 하시면서 옷을 유방 가린 곳까지 걷어 올리면서 약간 통통하고 어딘가 단단한 배를 오른손으로 꾹 누른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아야 하며 입으로 심음소리를 낸다.

의사 선생님은 더 진찰하실 생각을 않으시고 손을 씻으시며 길 건 너 왼편에 있는 2층 산부인과로 가라는 하신다.

“왜요?” 놀라면서

“선생님” 하며 반문을 한다.

선생님은 별다른 말씀은 않으시고 내가 진료할 병은 아니 것 같다며 다시 산부인과로 가라는 것이다. 한 번 더 그 말씀을 듣고는 머리가 띵하며 스쳐 지나가는 불길한 생각이 떠 오른 것이다. 그날 술에 취에 여관방을 누구의 부축을 받으며 갔었는지? 소변을 볼 때 꽉 찬 것을 쏟아내는 시원한 느낌도 있었지만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심히 막힌 것 같은 불편하고 밑이 따갑고 많이 아팠던 기억이 난다. 정신이 아찔해지는 느낌이 무엇인가 쿵 하고 떨러지는 기분이다.

진료비도 받지 않으시며 다시 산부인과로 가라는 말씀을 뒤로하고 문을 열고 길 밖으로 나온다. 바로 왼편 2층 산부인과 바로 옆에 보인다.

 

한편 회사에서는 일 년 365일 그 흔한 코감기 한 번 하지 않던 조장이 한방 친구의 말에 의하면 시골에 일이 있어 결근한다 하니 시골에 무슨 일이 있는가 보다 고향에는 피붙이라곤 오빠 한 분뿐인데 혹 오빠가 무슨 사고라도 당하셨나 하면서 반장의 보고에 과장은 근심스러운 얼굴을 하고는 내일은 출근하겠지 하시며 한 방 친구에게 물어 보라 한다. 아무 일 없기를 바라는 마음을 이렇게 물음으로 표시하신다.

 

산부인과 문을 밀고 들어갔다. 맞은 편 벽에는 만삭의 여인이 어린 아이 손을 잡고 흰 이를 내며 함박 웃을 머금고 자신을 보는 것 같다.

환자 대기실에는 한명의 환자도 없었다.

접수하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은 여자분 이었다. 몇 마디 문진을 한 후에 침대에 누워라 하시면서 청진기를 배에 갔다 댄다. 몇 번 청진기를 이리저리 옮기시더니

“임신입니다.” 하며 남의 사정도 모르시고

“축하합니다.” 인사까지 한다.

학생은 키도 크고 몸도 좋아 고등학생이라고는 믿는 사람은 그의 없다. 그러니 의사로서는 당연한 일인 것이다.

“정확히 진단을 해봐야 알겠지만 벌써 여러 달 되었습니다.”

“깜짝 놀라며 머라 하셨습니까?

하는 반문에 의아한 얼굴을 하시고 다 알면서 무얼 그러느냐 하는 얼굴을 하신다.

“정확히 진찰을 해봐야 알겠지만 7개월이 넘은 것 같습니다.”

산모가 키도 크고 몸도 좋고 건강하여 임신한 여자같이 보이지 않는다. 경우에는 따라서는 9개월까지도 임산부 인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그리고 입덧이 없는 경우는 허다하다. 지금부터 유산을 한다든지 잘못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중요한 시기이니만큼 무리하지 마시고 특히 힘든 일은 하시지 마시고 몸조심 하라 하신다.

하늘이 무너지듯 하다는 말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병원을 나와 가로수 잎이 떨어져 이리저리 뒹굴고 있는 인도를 걷는다. 12월 중순 이지만 낮 햇빛은 머리 위에서 정신을 차리게 하려는지 정수리가 따갑게 느껴진다. 걷는 사람이 없는 인도에는 낙엽만이 발에 채며 거치적거리다 작은 먼지를 날리며 햇빛이 없는 하수구 로 떨어진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얼굴이 멀리 저 산 능선에서 자신을 말없이 바라보는 것 같았다. 산위의 흐른 구름은 한가하다.

한참을 걸었다. 혹 이러다가 회사 사람이 지나가다 보면 어쩌려고 아침에는 시골에 일이 있어 간다 해놓고는 한 낯 인도를 정신을 놓고 걷는 다면 말들이 많을 텐데 급한 생각에 지나가는 버스에 올랐다. 다행이 버스는 시골집으로 가는 시외 주차장 행이다.

시외주차장에 내려 구내식당에 들어갔다.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했지만 전혀 배가 고프지 않았다.

의자에 앉아 된장찌개를 시켜놓고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긴다.

그 황당했던 일이 있고 그 이튿날 꾼 꿈이 생각난다.

큰 많은 나무들이 사방으로 줄이 되어 서 있다.

불빛 같기도 하고 무서운 산 짐승의 눈빛 같기도 한 빛이 멀리 나무사이로 보였다.

화들짝 놀라 .......

두 마리 새가 날개 짓 하며 하늘 저 멀리 구름 속으로 날아갔다. 깨여보니 꿈이었다.

이제 보니 말로만 듣던 태몽이 아닐까?

아이 둘이 보였고 산짐승의 눈빛이며 날아간 새가 그것을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

아이 둘은 쌍둥이란 말인가? 햇빛은 무엇이며 짐승의 눈빛은 또 무엇인가? 새가 날갯짓하며 날아가는 것은 또 무어인가? 무엇을 암시하는 걸까?

앞으로 어떻게 할지 막막하다. 아마 어머니가 계셨다면 달려가 엉엉 울기라도 하면 속이라도 시원할 것인데 곰곰이 생각해 본다.

틀림없는 태몽이었다. 나도 예언적 꿈을 한번 만이라도 꾸었으며 할 때도 있었다. 이 꿈이 현재 내가 처한 위치에서는 좋은 태몽은 아니지만 축복받으며 이루어진 남녀관계라면 더 할 나위 없는 좋은 꿈일 것이다. 어떻든 하나의 생명 탄생은 축복받은 탄생이든 그렇지 않은 탄생이든 생명의 탄생은 하나의 창조이며 하느님이 허락하신 창조사업에 동참하는 거룩한 행위이다. 귀하고 귀하지 않고 상관없이 축복받을 일임에 틀림이 없다. 어머니가 계신다면 무슨 말씀하실까? 아마 역정을 내시기 전에 어머니는 딸을 믿기 때문에 꾸지람 보다 무슨 사정이 있었겠지 생각하시면서 무조건 낳아라. 아이는 내가 키워주신다 할 것이다. 아이아버지가 누구냐고 물으신다면 사실대로 말씀드리기 어려우니까 군에 갔다든지 아니면 외국에 갔다든지 하면서 임시방편을 마련해 놓고 천천히 생각해 봐도 되겠지만 이젠 그럴 필요조차 없는 것이 너무 서러웠다.

위로를 받고 받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주위에는 이러한 어려운 일들을 의논 할 수 있는 사람이 한분도 없다는 것이 더 큰 서러움이었다.

어떻든 세상을 보기위하여 만들어진 아이이니 만큼 함께 살아갈 일들을 걱정을 해야 하지 않을까? 골똘한 생각 중에 식사가 왔다. 몇 숟갈을 뜨고는 일어나서 고향 행 버스에 올랐다.

교외를 나오니 잎들이 떨어진 산에는 나무들의 앙상한 모습은 더욱 마음을 을씨년스럽게 한다. 그 푸르던 산들도 세월 앞에서는 저렇게 나뭇잎은 떨어뜨리고 또 한해 겨울의 어려움을 이겨 내기위하여 겨울 맞을 준비를 하는가보다.

계절은 이렇게 한해가 가면 또 한해가 어김없이 찾아와 지난해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인생은 한번 가면 다시 올수 없으니 나의 어머니를 만나려면 이세 상에서는 어림없다 죽음이 어떤 것인지는 몰라도 어머니와 같이 죽으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어머니의 무덤 앞에서 한바탕 울고 나면 무슨 속 시원한 해결책이라도 나올까? 눈을 감고 덜컹거리는 버스 창문에 기대었다.

얼마 전부터 어머니의 죽음도 있고 해서 그런지 종교에 관심이 생겼다. 교회는 가지 않지만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지난 여름방학 때부터 성경책을 가까이하게 만들었다. 먼저 돌아가신 아버지를 어머니는 만나신 것일까? 사후세계는 어떨 것인지 하는 의문뿐만 아니라 알 수 없는 죽음 이후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 전쟁터에서 동료의 죽음을 보면서 자기도 언젠가 저렇게 죽음이 되지 있지 않을까? 어느 병사의 전쟁터의 모습들을 적은 책을 읽은 이후는 더욱 성경을 자주 읽는 습관을 갖게 하였다. 며칠 전에도 마음이 뒤숭숭하고 먼지 모르게 울적하여 성경을 펴고 읽다 구약 성경 가운데 내가 이해 할 수 없는 부문이 있어 여러 번 읽고 또 읽었다. 아버지에게 술을 들게 하시고.---딸이 누웠다.

그러나 그는 누었다. 라는 말의 뜻을 몰랐다.

아버지가 술에 취해 누었으니 혹 이물질이 입으로 넘어가 기도를 막는 등 잘못 될 수도 있을 것 같으니 예방 차원에서 딸이 누워 살피는 것이 무엇 잘못되었는가? 그게 무슨 흉인가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딸이 누웠다 일어난 것을 몰랐다. ----

그리고 아들을 낳았다. (창세기 19장 32절)

이 구절에서 아 그런 뜻은 아니었구나 생각하면서 누었는데 아들을 낳았다. 이 대목에서 몇 개월 전 나이트클럽에 친구와 함께 갔던 일이 생각이 났다.

못 먹는 술을 먹었다. 괴로움을 잊으려고 겁도 없이 주는 대로 받아 마셨을 뿐만 아니라 자기 손으로 물마시듯 먹었다. 그렇게 무지하게 몸이 상할 정도로 술을 퍼 먹었으니 인사불성(人事不省)이 되지 않는 것이 도리어 이상할 정도였었다. 그날은 정신을 완전히 놓았다. 정신없는 나를 데려다 주려 업고 가는 대학생에게 친구는 마님을 잘 부탁합니다. 하고 우스갯소리로 인사까지 했다 한다. 집으로 데려다줄 것으로 믿어서나 아마 내가 등에 업혀 가면서 집이 어딘 야고 물어도 대답을 하지 못해 서니 여관에 갔을 것이다. 그러니 대학생의 일방적인 잘못은 아니지만 학생과 인사는 했다 하나 서로가 잘 알지 못하는 사이임에도 업혀가는 어린 여학생의 사정은 조금도 생각지 않고 옆에 누웠는가? 그렇다면 그 뉘앙스는 그때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일들이 있었다는 뜻이 아닌가? 하늘이 하얗게 변한다. 이를 어쩌지 자신의 처지를 헤아려보니 하늘이 캄캄해진다.

자기와 살을 섞은 여학생의 처지는 조금도 생각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쫓아 그 찌꺼기를 열려 있지도 않은 아름다운 작은 궁전에 쏟아 붓고는 아무도 모르게 은폐인지 엄폐 인지 교묘히 정리 해놓고는 시치미를 뚝 떼려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양아치 같은 그런 대학생이라면 찾을 필요도 없고 찾아서도 내 인생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낳아 키우며 이 세상을 헤쳐가리라 마음을 굳게 먹는다.

그러나 지금의 처지로 내 모든 사정을 만 천하에 이실직고하고 도움을 청할 수 없는 노릇이다.

고등학교 3학년 여학생이 아이를 낳다.

신문기사 깜으로 좋을지 몰라도 그러나 자기 가족에게도 말하기도 어려운 이 일 어느 누구도 당하며 해결하기 쉽지 않은 일이니 만큼 여럿 사람이 안다면 그 파장은 엄청 클 것이다. 더욱 학교 얼굴에 먹칠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담임선생님이며 회사며 일파만파로 일이 크게 번질 것이다. 학교를 그만두어야 하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지금 설정(薛貞)의 처지로서는 적막강산이다 누구 한 사람 의논 상대가 없다. 하나 있는 오빠는 어머니 돌아가신 것도 모르고 지금까지 어디에서 무었을 하는지 알 수 없다. 지금 나에게 오빠가 안들 아무른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 뻔하다. 모르는 것이 더 좋을 수 있다는 것은 오빠를 두고 하는 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버스를 타고가면서 많은 생각을 했지만 이런 처지로 어머니 무덤에 가서 운다는 것도 더욱 어머니를 욕되게 하는 것이란 생각과 성공하지 않으면 다시 찾지 않겠다는 나의 각오가 한갓 철없는 여학생의 치기(稚氣)라는 생각이가는 길을 가로 막았다. 중간에 버스에서 내려 다시 차를 갈아타고 자취집으로 돌아왔다.

 

어떡하라고

어떡하라고 어머니

천지간에 나 혼자 두고

하늘나라로 떠나신 어머니

나 어떡하라고

눈에 눈물이 고인다.

차갑지 않은 바람이 차가운 것은

이 세상에 혼자 버려진

가여운 인생이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바람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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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생각해도 혼자서는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기숙사를 나올 때 하신 사감님 말씀도 계셨고 자취방까지 찾아오시어 집주인에게 부탁하신 것이며 그 이후에도 가끔 만나 뵈옵고는 그간의 일들을 말씀드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의논할 분은 기숙사 사감님 한분 밖에 없었다.

혼자서는 도저히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주인 아주머님께 전화를 좀 쓰겠다고 말씀 드리고 허락을 받고 나서 사감 선생님에게 전화를 드렸다.

찾아뵈옵고 상의 드려야 하는 줄 알지만 그럴 사정이 되지 못하여 말씀 올립니다. 기숙사 외에 어디 시내 음식점이나 차집에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전화를 드렸다.

기숙사에서 왔어 말을 할 수 없다하니 무슨 인인가 많이 걱정하시면서 조금도 주저하지 않으시고 내 일요일에 조용한 한식점 가락에서 12시 30분에 만나자 하신다. 음식집은 알아듣기 쉽게 말씀해주셨다.

한방 친구에게는 시골 갔어. 아직 오지 않았다고 얘기하라하고는 친구에게는 몸이 아파 그런다며 토요일 하루를 더 결근하고 사감님을 뵈려 약속장소에 갔다.

친구는 많이 걱정 서러워한다. 자기는 가끔 놀기 위해서도 결석을 하는 편이지만 설정(薛貞)은 한 번도 결석을 하지 않던 애다. 그런데 이틀을 계속 결석을 하니 (임신은 눈치 체지 못하고) 안절부절 한다.

그래도 회사에 가서는 시골서 아직 오지 않았다고 설정(薛貞)이가 부탁을 곧이곧대로 얘기를 한다.

처음 찾아가는 곳이지만 서동 로터리 정류소에 내려 서곡 여울 가는 방향을 따라 우측으로 돌아가니 간판이 보인다. 안으로 들어가니 자그마한 연못에 적당한 간격으로 나무가 여럿거루 심어져있다. 이름도 여울목이다. 멀리서 돌아 나오다 나그네 발길 멈추게 하는 그러한 느낌을 주는 집 이름이다. 집안도 아담하고 아늑하다. 은밀한 이야기를 하기엔 아주 적당한 식당이다. 종업원이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 뒤 별채로 안내한다. 아마 선생님이 미리 일러둔 모양이다. 선생님은 벌써와 계셨다. 가볍게 묵례를 드린 다음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사감님을 뵈옵자 눈에 이슬이 맺힌다. 선생님 하면서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안긴다. 사감님은 앉은 자리에서 설정(薛貞)을 안으며 탁탁 등을 두드려 주시면서 잠깐을 그렇게 있다.

설정(薛貞)이 뒤로 물어 나서 자리를 잡고 마주 보고 앉는다. 사감 선생님께서

컵에 물을 따라주시면서 입을 축이라 하신다.

컵을 들고 입술을 적시고 난 후 천천히 입을 연다.

“선생님 저 어쩌면 좋아요,”

울음 섞인 목소리가 긴 한숨과 함께 밖으로 나온다.

선생님은 우선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하시니 학생의 입만 쳐다보신다.

긴 한숨 끝에 지난 7월에 어머니가 뇌출혈로 돌아가셨으며 이유는 오빠가 그동안 어머니에게 애를 먹인 일이며 자기가 어머니에게 송금 한 돈을 노름으로 탕진한 일 그 일로 인해 어머니께서 심히 걱정하시다가 뇌출혈로 돌아가신 일이며 오빠는 장례 때에도 나타나지 않고 지금까지도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모른다며 이런 여러 가지 일로 속이 상해 친구와 같이 나이트클럽에 가서 있었던 일과 술에 만취되어 인사불성으로 자기도 모르고 여관방까지 업혀갔었는지 부축을 받으면서 갔는지는 모르지만 여관에서 잔일이며 아침에 일어나보니 함께 간 사람은 누구인지 몰랐으며 보이지 않았다. 그 후 친구 말로는 그날 처음 인사한 그 대학생 이었다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모든 것이 잘 정돈되어있었으며 몸에도 다른 특별한 이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마음 착한 대학생이 여학생인 자기를 불쌍히 생각해서 기사도 정신을 발휘했었는가 보다. 고마워하고 있었는데 구역질이 나고 신물이 올라와 최 내과에 갔더니 간단한 진찰만 하시더니 산부인과에 가라는 의사 선생님 말씀에 의아히 생각하며 산부인과에 갔었더니 임신이 라고 합니다. 진찰 결과 7개월이 넘었다 하는 것까지 말씀드렸다.

긴 시간 띄엄띄엄 다 말씀을 드리고 나니 후유 한숨이 절로 나온다. 말씀을 다 듣고 나서도 선생님은 한참이나 아무 말씀이 없으시다. 연민의 눈으로 설정(薛貞)을 바라보기만 하신다. 아마 섣불리 얘기할 일은 아닌 것 같은 모양이다. 깊은 생각에 잠기신다.

한참 만에 무겁게 입을 여신다.

“정(貞)아 너는 어떻게 하려 하느냐?”

먼저 학생의 의견을 물으신다.

설정(薛貞)을 보는 선생님의 눈에 부모도 없이 객지에서 아등바등 고생하는 자기 딸 같은 아이에 대한 깊은 연민이 스쳐 지나간다.

“선생님 저 나이는 어리지만 그래도 하느님이 저에게 주신 생명인데 낳아서 잘 키우고 싶습니다.“

당돌하나 자기 소신이 뚜렷하다.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설정(薛貞)아 생각은 장하다. 그러나 어려움이 너무 많을 텐데”

“그리고 하던 공부는 어쩔 것이며 또 한창 꿈을 키울 나이에 잃는 것이 너무 많지 않느냐?”

하시면서 한 번 더 깊이 생각해 보라 하신다.

사감님은 은근히 아이를 지우라는 뜻으로 말씀하시는 것 같다.

“선생님! 그런데요 지금은 아이가 너무 커서 낳을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합니다.”

벌써 7개월이 넘었다 하십니다. 7개월이란 말에 힘을 주며 한 번 더 말씀을 더렸다.

“의사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 지금은 어쩔 수 없다고 합니다.”

‘저도 낳아 기르고 싶고요.”

다시 한 번 더 띄엄띄엄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입맛을 쩍쩍 다시며 짧게 한숨을 쉬 쉰다.

“그럼 어떻게 하려 하느냐?”

먼저 또 본인의 생각을 물으신다.

“선생님 저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회사에 계속 근무하고 싶습니다만.”

“이곳에 있는 것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선생님! 다른 방법을 한번 찾아 가러쳐 주시면 하고 여쭙니다.” 말을 마쳤다.

또 선생님은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신다.

“설정(薛貞)아 너 말대로 이곳에 계속 있기는 보는 눈도 있고 또 아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리고 회사며 학교며 모든 것이 만만치 않다.”

“너를 두고 사회 전체가 전 후 사정도 모르면서 찍고 까불고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너 말대로 이곳을 떠나는 것이 좋겠다.”

하시면서

“서울로 가거라. 여기보다는 서울은 모든 사람이 바쁘게 살아서 남의 일에 그렇게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다.”

“아이 하나 데리고 살더라도 그렇게 입방아를 찍고 야단스럽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시고는

“내 친한 친구가 청계천에서 지금 네가 하는 그런 일을 한다.”

“그런데 너하고 다른 것은 너는 회사에 속해 있지만 내 친구는 독립해서 회사에서 주는 재단 물을 받아와서 그것을 완제품으로 만들어서 납품하고 장당 공임(단가)을 정해서 받는다.”

“자기가 일한 만큼 받으니 수입은 공장생활보다는 좀 나을 것이다.”

“아마 정(貞)아 가서 일하면 네 수입도 지금보다 훨씬 많을 것은 확실하다.”

“네가 일하는 솜씨를 보면 회사 측에서도 많이 좋아 할 것이다.”

“회사는 그렇게 여러 곳에 재단 물을 주고 완제품을 모아 검사만 철저히 하여 수출하는 회사이다.”

한 번 결론을 얻으니 청산유수와 같이 말씀하신다.

설정(薛貞)은 선생님 말씀이 끝나자 더 생각할 이유도 없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답한다.

“지금 당장이라도 올라가서 애를 낳기 전까지 일을 해서 신용을 쌓아라.”

“아이를 낳은 그 후는 산후 조리 등으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니 그때 내 친구의 도움을 받으면 한 2.3 개월 짬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시는 것입니다.

사감 선생님은

“지체 할 것 없다 정리 되는 대로 올라가라.”

“이런 일들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것이다.”

말씀을 마치시고 설정(薛貞)의 의견을 물으신다.

‘예! 선생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다음 일주일은 서울 가기 위한 준비 기간으로 정하고 선생님도 회사에 년차를 낼 터이니 함께 올라가자는 것입니다. 오늘 바로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네가 있을 마루가 딸린 방이나 아니면 두 칸 자리 방을 얻어 놓으라고 이르겠다. 하시면서 설정(薛貞) 이가 내려는 밥값을 기어코 선생님이 지불하시고 헤어지면서 회사 사직 등 일처리는 빨리 끝내고 자취방은 친구에게 잘 부탁해서 같이 쓸 다른 친구를 알아보라 이르시고 헤어졌다.

선생님과 헤어져 자취방으로 돌아오면서 한편 홀가분하고 개운한 마음 없지 않으나 여기 뒤처리와 서울에서 새로운 삶 그리고 또 하나의 생명과 만남이 무척 거북하기도 하고 몸에서 뗄 수 없는 하나의 혹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지금까지 정든 곳 어쩌면 홀로 나와서 객지에서 낯선 공기 마셔가며 일터에서 기숙사에서 생활과 소풍이며 학예회이며 믿고 의지하며 2년 반 동안을 함께 했던 얼굴들을 더 볼 수 없다는 생각하니 코끝이 찡하다. 요즈음 몇 일간 결근한 사유도 또 회사를 그만 두어야 하는 사유도 하나뿐인 오빠가 교통사고로 6개월 진단을 받아서 서울 어떤 병원에 입원을 해서 간호 할 사람은 자기뿐이라 어쩔 수 없이 아니 갈 수 없는 입장임을 말씀드렸다. 윗분 들은 어느 누구도 의심하지 않고 그간 고생 많이 했다면서 승낙해주셨다.

퇴직금과 월급이며 여러 가지 금전적인 것들은 박 양 언니가 총무과며 금고며 여러 곳을 다니며 일시불로 모두정리를 해주어 두 번 갈 필요 없이 말끔히 해주었다 .

그래도 자기를 아껴주셨던 과장님께 말씀드리는 순간에는 자신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난다. 팔을 붙잡고 울면서 말씀드렸다.

여러 간부가 섭섭하게 생각하셨고 더욱 사무실 박 양 언니는 동생을 객지로 보네는 것 같다 면서 울먹이며 많이 섭섭해 한다. 그간 모든 분에게 넘치게 사랑을 받았다. 어쩌거나 거짓말까지 하면서 회사를 그만 두려하니 무척 마음이 아프고 죄송스럽다. 더욱 박 양 언니와의 우정은 두고두고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회식 날은 회사 인근 식당에서 조장 이상 마지막 시간을 가졌다. 특별히 한방 친구도 함께 참석했다. 친구는 헤어지는 나를 위로해주며 소식 전해 달라 말한다. 그리고 지난 일은 잊는 것이 좋다며 그날 그 나이트클럽에 있었던 일은 악의 없이 대학생을 너에게 소개해 주려고 약속했는데 무슨 다른 일 때문에 그치들이 너무 늦게 왔어 계획이 틀어졌다면서 네가 너무 술에 취해서 너를 집까지 데려다주라고 부탁했다면서 그래도 아무 일 없으니 다행이다. 애 하면서 자기도 그날 같이 네가 본 대학생과 사귀다가 이제는 만나자 해도 계속 피한다면서 잊으려고 한다면서 솔직하게 고백해 주었다.

아직까지 어둠에 쌓였던 그날 일들이 친구의 몇 마디 말에 다 밝혀져 내가 결심한 마음이 바르고 정확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더 확인시켜주었다. 변한 것은 하나도 없다. 친구가 잊으려 한다는 그 남자의 친구를 찾아가서 다시 끈을 잇는다 해도 그 끈이 원래대로 흠 하나 없이 될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

친구가 사귄다는 그 남학생이 알려 줄 일도 없지만 어떻게라도 알려면 알 수 있겠지만 설정(薛貞)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혹 남자 쪽에서 알려 해도 알려 해도 알려주지 말아야 하는 것이 설정(薛貞)이의 생각이다. 다시 한 번 지금 생각하고 있는 그대로 내 갈 길을 가는 것으로 마음을 굳혔다. 아이를 내 배속에 심은 그 대학생은 이미 내가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안 그날 벌써 그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죽은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대학생 이라면 자기가 저지른 이런 짓이 어떤 일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 것인데 엄폐인지 은폐인지 완벽하게 뒤 처리를 해 놓았다고 생각한 것인지 아니면 붉은색 푸른색이 길가에서 방안을 비춰주는 곳에 화장 빨 짙은 아가씨들이 길거리에서 웃음을 파는 그곳에 잠깐 동안 욕정의 찌꺼기를 쏟아놓고 지폐 몇 장을 던져주고 발길을 돌리는 욕망을 주체치 못하는 속된 젊음이가 저지른 일 같이 생각했는지? 겉으로 완벽한 지움도 속으로 들어간 수 억 마리 중 하나가 생명이 도지 않는다는 그 불 완벽성을 그는 몰랐던 것일까? 아니면 그 확실성을 믿었던 것일까? 설정(薛貞)이기에 망정이지 대학생이라니까? 엉겨 붙으려 생각하는 어느 정신 나간 여학생이었다면 대가를 혹독히 치룰 위인이었다만 용케도 인간 같이 않는 인간으로 아니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으로 끝나 버렸다. 그 대학생은 하룻밤 객기가 되고 말았다. 이러한 것을 두고 불행이라 해야 할지 다행이라 해야 될지 모르는 것이다.

설정(薛貞)은 그날 괴로움을 잊으려 먹은 그 술 때문에 이렇게 큰 고통을 더 큰 괴로움을 겪어야 하는데 그 대학생은 하루 밤 욕정에 눈이 멀어 저지른 일로 지금쯤은 조그마한 가책이라도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일까? 남자는 배설하는 것으로 끝일지 모르지만 여자는 그 배설물을 받으므로 함께 받아야 하는 것은 어쩌면 신이 택한 일 중에 산고의 고통과 먹여 살려야 하는 땀 흘리는 고통과 함께 인간에게 준 벌로는 너무 불공평한 현대사회상까지 엄두에 둔 징벌은 아니지 싶은 마음은 여자의 벌이 더 커다는 생각은 신께서도 실수 하셨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아무도 배웅해 주는 이 없는 플랫폼에서 사감님과 함께 밤 열차를 타고 긴 시간 서울로의 여행을 시작한다. 앞으로 설정(薛貞) 에게는 어떤 인생 여정이 기다릴까?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잘 있어라 그리고 많은 사랑을 베풀어 주신 과장님 여러 간부님들 저 자신 생각지도 못한 나의 잘못으로 몸을 망쳐 해어집니다만 언제 다시 뵈옵는 날에는 정말 성숙한 여인의 모습으로 반듯한 사회인이 되어 만나 뵐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어디에 무엇을 하던 떳떳한 사람이 되어 있겠습니다. 특히 사무실에서 일하시는 박 양 언니 너무 고맙습니다. 동생같이 친구같이 항상 나를 아껴주시고 챙겨 주셨는데 사실을 사실 되로 말하지 못하고 떠남을 용서해 주십시오. 그렇게 많은 시간이 지난 뒤가 아닌 가급적이면 박 양 언니가 회사를 그만 두기 이전에 소식전할 것을 마음속으로 머리를 숙이며 약속을 한다.

아무리 객지에서 오다가다 만난 사이라 하더라도 인간관계는 그렇게 칼로 두부를 자르듯 되는 것은 아니라 생각이 든다. 인간의 마음 그게 참 묘해서 아무리 자기에게 잘 해주어도 싫은 사람은 싫은 것을 어찌할 수 없고 자기에게 못해준 사람이지만 좋은 것 또한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더욱 박 양 언니는 자기에게 잘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인간 그 자체가 좋은 것을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서로가 좋아하는 것은 굳이 서로 말하지 않아도 이심전심으로 마음을 다 읽을 수 있는 사이가 되었든 것이다.

한방 친구에게도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떠난 것도 마음한 구석에 미안한 마음 없지 않다. 따지고 보면 이른 사단(事端)은 순전히 한방 친구의 빗나간 그 계획이 원인이다. 내가 술이 많이 취했을 때 친구가 함께 자취방을 가든지 아니면 통금시간이 가까워 어쩔 수 없었다면 여관이라도 함께 갔다면 이른 일은 또한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친구가 무척이나 원망스럽다. 그러나 내색할 수 도 없는 일 세월 흘러 어느 날 무슨 말을 하더라도 흉허물이 되지 않을 정도의 연륜이 쌓여 지나간 날 가슴 아픈 기억도 하나의 추억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상처가 아물 때 아니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할 수 있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만 참아주겠나? 친구여 하면서 원망하는 마음을 다스리고 한방 친구와도 해어질 수 있었다.

7시간이며 도착하는 서울에 1시간이나 더 걸려 새벽에 도착했다. 사감선생님 친구 분이 마중을 나오셨다. 차속에서 선생님의 친구 분이 청계천 근방에 일감을 주는 회사와 가까운 곳에 마루가 따린 방 한 칸을 얻어다 하시며 아침밥을 먹고 그리로 가자고 말씀하셨다.

서울에서의 새 생활도 사감 선생님께서 함께 올라 오셨어 친구 분 소개며 회사 일감을 받도록 무리 없이 잘 추진해 주셨다. 마루에다 공업용 발틀 한대와 필요한 가위며 여러 가지 도구를 선생님 친구 분께서 도와주시어 쉽게 마련 할 수 있었다. 방에는 조그마한 창고 겸 침대를 놓고 잠을 잘 수 있도록 꾸몄다.

알고 보니 청계천 섬유회사는 사감 선생님의 4촌 동생이 사장이시다. 선생님 친구 분께서도 어려울 때 선생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으며 더욱 일감도 선생님의 소개로 인연을 맺었다. 지금은 어느 정도 기반을 잡으시고 어려울 때 자기 처지를 생각하며 여러모로 남을 도우려 마음을 쓰며 짬을 내어 봉사활동을 하시며 사시는 훌륭한 분이시다.

사감선생님은 한 사흘 계시는 동안 낮에는 설정(薛貞)의 일을 도와주시고 밤이면 모처럼 서울 올라왔으니까 친척을 만나시고 바쁜 일정을 보내시다. 다시 근무하는 회사로 내려가셨다. 가시는 날 아침에 설정(薛貞)의 방에 오셨어 어려운 일이 있으면 자기친구와 의논하라 하시면서 특별히 친구 분에게 잘 부탁하신다 말씀드리고 이번에도 특별히 주인집 아주머니를 뵈옵고 진지하게 여러 말씀을 하시면서 자기가 어머니와 같은 처지이니 자기를 믿고 설정(薛貞)이를 잘 부탁한다 하셨다. 사감님 친구와 함께 있는 자리에서 서울 사람들에게 기죽지 말라며 우스갯소리를 하시고 내려 가셨다. 일감은 회사에서 가져다주며 다 만들면 회사에서 가져간다. 백색전화 한 대를 특별히 신청하여 마루에 두고 원청회사와 연락을 주고받는다. 기술만 있으면 얼마 되지 않는 돈으로 자기 사업을 할 수 있으니 설정(薛貞)에게는 더 할 수 없는 맞춤형 사업이라 해도 과언이다. 재단 물은 방구석에 쌓아놓고 일부는 재봉틀과 같은 높이로 만든 함을 옆에 두고 일을 시작했다.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밥 먹고 한 일이 그 일 인데도 어렵다. 그 때는 한 공정만 잘하면 되는 일이지만 여기 일은 모든 공정을 잘해야 하기 때문에 힘이 더 든다. 그래도 조장을 하면서 결근을 하거나 밀리거나하면 이 공정 저 공정 모든 공정을 해봤기 때문에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모든 공정을 잘하는 작업자를 회사에서는 통상 스페어(spare)라고 칭했다. 설정(薛貞)은 조장이면서 일 할 것을 챙기는 짐꾼이며 스페어(spare)출신이다. 서울에서는 아는 사람도 없을 뿐만 아니라 갈 곳도 없으니 일에 파묻혀 살았다. 시장에 다녀오고 밥해먹고 마당에 나가 조금 운동하고 그 외는 일하는 것이 하루 일과다. 크리스마스도 언제 지나갔는지 몰랐다. 일감을 가져오는 직원 이 성탄을 축하합니다. 해서 크리스마스인줄 알았다. 같은 말로 축하합니다. 하며 머리 숙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 했다. 물건을 갖고 왔을 때는 수량 파악을 하면서 직원과 커피 한 잔을 나누면서 이야기를 한다. 직원과 이야기하는 가운데 느낌은 직원관리가 엄격하며 포옹력을 갖춘 회사임을 알 수 있었다. 말을 할 때도 항상 회사를 먼저 엄두에 두며 생각하면서 말을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양력설도 일속에 지나갔다. 양력설은 없애야 한다. 전통 그대로 지켜야 한다. 말들이 많더니 올해도 어떤 결론을 내리지 않고 하루 쉬는 것으로 어정쩡 지나간다. 양력설에도 쉬지 않고 일을 했다.

초등학교 다닐 때 한반 짝꿍 친구는 자기아버지가 교장이라서 그러한지 친구 집은 양력설을 지낸다. 공휴일도 국경일도 방학도 모든 것을 다 양력을 사용하면서 설만 음력으로 하는 것도 이치에 맞지 않다는 교장 선생님의 주장이시라 오래전부터 양력설을 쉰다.

어차피 세월 흐르면 음력설은 없어질 것이며 양력설이 대세가 될 것이다. 라는 논리이니 먼저 쉬는 것은 선견지명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이다.

곧 없어질 것 같은 음력설도 많은 이들이 전통은 지켜야 한다는 논리로 우겨 된다. 요즘 숫자에 눌리고 그러다보면 또 선거철이 닦아오면 유권자의 눈치를 보다보니 쉽게 없어질 것 같지 않다.

한 번 조상님들에게 고하고 설을 바꿔 지내시는 분들은 다시 음력설로 바꾸는 것도 조상님들 보기에 면목 없는 일이다 보니 정부 정책 따라 본의 아니게 혹 조상님들 제사 밥 얻어 자시는 일이 헷갈리지 않으실까? 걱정 된다.

서울에 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 싶은데 마감을 하고 결산을 했다. 설정(薛貞)이가 만든 완제품 중에는 검사에서 불합격된 제품이 한 장도 나오지 않았다. 담당자가 처음하시는 일 어떻게 그렇게 완벽하게 하시는지 감탄한다. 그리고 고맙다 말한다. 아마 다른 담당자가 관리하는 업소에는 불량품이 어수 나오는 모양이다. 불량품은 회사도 손해이고 하청 받은 곳은 더욱 손해이다. 왜냐하면 완제품이 불량일 때는 공임에서 발생 불량품 수만큼 손실금액을 빼고 나머지 금액을 지급하기 때문이다. 심한 경우엔 원단 값을 계산하여 물어 주어야함으로 비용이 만만치 않다. 이럴 때는 앞으로 남고 뒤로 믿지는 장사가 된다.

한 달 결산 결과 회사에서 조장으로 근무 할 때 보다 2배정도의 수입을 올렸다. 기쁜 마음으로 당장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선생님께서는 네가 열심히 일을 했음으로 그러한 결과가 나온 것이라며 칭찬하신다. 그리고 너무 들뜨지 말라 하시면서 서울깍쟁이라는 속담도 있다면서 한층 더 조심하라는 당부의 말씀을 하셨다.

이번에는 선생님께 전화 한 통으로 고마운 마음을 드렸지만 다음 달에는 별도 마음을 표시해야 하겠다. 생각한다.

선생님은 과한 어떤 친절이나 표시 또 말 등은 무척이나 싫어하신다. 선물에도 자기 분수에 맞는 것은 받는 사람도 부담이 없고 주는 사람 역시 무리하지 않으니 좋은 것이다. 무엇이든 과한 것은 뇌물이며 아첨이며 더욱 윗사람이나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하는 것은 자기 양심을 파는 일이며 선물을 받는 사람이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과한 선물을 받았다면 응당 그것을 거절할 것이다. 그러니 무리하게 주는 사람은 자기신용을 한 단계 떨어 떨이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도 있다면서 과한 것은 도리어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이라는 것이다. 자기 분수를 알아야 한다는 말씀도 해주셨다.

이렇게 사감 선생님은 친 자식같이 모든 일에 신경을 써 주셨다. 하늘 아래 의지 할 곳 없었던 설정(薛貞)으로서는 사감 선생님은 부모이며 언니이며 혈육보다 나은 혈육 그 이상이다 말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겨울이면서도 겨울답지 않게 그렇게 춥지 않았다. 자주 눈이 오기는 했어나 눈 올 때가 춥지 않다는 그 말이 맞는 모양이다. 원청 업체에서 가져다준 일감은 자기의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공급해 줄 수 있기 때문에 배속의 애를 위해서도 필요한 시간 외에는 일에 매달렸다. 같은 일의 연속이지만 실적에 따라 올라가는 돈의 액수를 생각하면 태어날 아이를 위해서도 더 많은 돈을 버려야겠다며 일에 대한 욕심이 대단해진다. 눈이 내리는 어느 날이었다. 아침을 먹고 불러오는 배를 어루만지며 잠깐의 휴식시간을 가졌다. 서울이라는 이 낯선 땅에 자리 잡으려 지금도 열심히 일을 한다. 앞으로도 열심히 일을 할 것이다. 일 속에 파묻히다 보니 모든 잡념을 잊을 수 있었다. 일의 중요성은 먹고살기 위한 한 방편으로서 뿐만 아니라 일 자체가 여러 가지 생각을 말도록 도와준다. 일을 할 때는 일에 파묻히다 보면 혹 잘못 박음질이 되지 않을까? 집중하다보면 잡념이 생기지 않아서 더 좋다. 정신 건강에 좋고 노동은 건강한 육체를 주는 원동력이라는 생각을 가져본다. 설정(薛貞)은 일할 때도 집중력이 매우 높다. 공부할 때도 보면 조그마한 밥상을 갖다 놓고 그 앞에 앉아 꿈쩍도 않고 몇 시간이고 앉아있다. 발이 저릴 텐데 아마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그렇게도 생각이 떠나지 않던 어머니의 그 슬픈 모습도 일에 매달려 바삐 손발을 놀리다 보니 어느 새 어머니의생각도 줄어든다. 어머니께서도 하늘나라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시며 이제는 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 생각하셨는지 꿈에도 나타나지 않으신다. 아니면 하늘나라 생활도 반년 가까이 되었으니 어느 정도 정이 들어 지상으로 나들이는 혹 잊으신 것은 아니신지? 생각해 본다.

설정(薛貞)이도 일에 묻혀 그런지 요 며칠 동안은 어머니의 모습이 한 번도 떠오르지 않았다. 일 때문인지? 가는 세월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차츰 어머니의 모습도 뜸 해지려하는데 오늘은 눈 때문 인지? 창밖 내리는 눈은 솜사탕 같다. 훨훨 춤추며 내리는 눈은 온 공간에 가득하다.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리고 서 있으면 금방 한 입 가득할 채워질 것 같다. 저 눈이 쌀이라면 어쩌면 부족한 식량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면 그 지긋지긋하게 먹기 싫었던 꽁 보리밥을 먹지 않아도 될 터인데 엉뚱한 생각에 웃음이 난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 내리는 눈 속에 어머니의 얼굴이 보인다. 눈을 맞으면서도 빙그레 웃으신다. 눈이 꽃이 되어 어머니의 얼굴을 덮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가 바람이 몰아친다. 어머니의 얼굴도 눈 속에 마묻혀 보이지 않는다. 가만히 보니 쏟아지는 눈은 순서가 없다. 차례대로 내리면 온 들판이 고르게 눈이 쌓여 한결 보기도 좋을 것인데? 한 송이 두 송이 순서대로 내리다가도 바람 한 번에 뒤엉킨다. 먼저도 없고 나중도 없다. 휘 저으며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다. 그러다 보니 차곡차곡 싸이지 않고 여기저기 싸인 곳이 고르지 못하다. 세상 모든 것의 경주(競走)는 공평해야 하는데 취직 시험이 그렇고 각종 자격시험이 각종 심사가 그렇다. 재판 또한 뒤틀리는 일이 없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일이 허다하다. 말로서는 같다 하지만 그렇지도 않는 모양이다. 차례대로 내리는 하늘에 눈이 같이 조용히 내릴 때에는 순서가 필요하지만 한 번의 광풍이 흔들어 놓으면 지금까지 순서는 물거품이 되고 만다.

온갖 시험이나 심사나 자격도 재판도 휘 몰아치는 눈처럼 될 때는 순서도 먼저도 없다

뇌물이 오가고 권력이 이빨을 덜어내고 온갖 인연들이 동원되면 알게 모르게 휘어지고 만다.

올바른 잣대로 바른 판단을 하고 어떤 것도 어느 곳도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은 끄덕도 않은 방패막이가 있을 때 정직한 사회 바른 사회가 되는 것이다. 어쩌다 보니 사회병리 현상까지 생각하게 되었는가? 성숙은 어려운 가운데 자라는가 보다. 한 번도 생각지 못한 일들이 요즈음에는 불숙 마음의 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 뛰쳐나온다.

필요 없는 많은 생각을 하면서 한참을 그러고 넋이 나간 사람처럼 내리는 눈을 보고 있었다. 어머니는 다시 얼굴을 보이시지 않는다. 바람 소리인지 인기척인지 무슨 소리가 났다. 혹시나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마당에 휘날리는 눈발이 여기저기 부딪쳐 내는 소리인 것 같다. 사람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밖은 창문에서 보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난다. 조용히 내리는가? 했더니 그렇지도 않다. 바람 한 번에 열어 논 방문으로 눈이 두 손을 모아 뿌리듯 들어온다. 잠깐 얼굴에 닿는다. 깜작 놀란다. 갑자기 이 눈밭 속에 어디에서 무엇을 할까? 어떤 투전판에서 또 어떤 사람들과 소리 지르며 다투며 내다버려 할 노름에 미쳐있는지 그전에는 한 번도 생각나지 않던 오빠의 생각에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생각을 말자 다짐했지만 역시 핏줄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지금 여기 오기까지 시골에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 또 공장에 연락을 한다 해도 사감 선생님만 아시니까 가리켜 줄 사람도 없다. 오빠는 알려 해도 알 도리가 없을 것이다. 시골에 한 번 연락을 할까 해도 지금 처지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오빠도 많이 놀랄 것이고 나는 더없이 부담이 된다. 어머니의 모습은 오빠에게 이어지도록 다리를 놓으신 것일까?

잠깐 동안 상념에 젖다 깨어났다. 다시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그러다 손을 놀리면서 생각은 오빠에게로 발길을 재촉한다.

서울은 전에 있던 곳이나 시골보다 눈이 많이 온다. 눈이 내릴 때에는 시골에 있는 강아지들도 꼬리 흔들며 좋다며 여기저기 뛰어다닌다. 전신주에도 소복하게 쌓인다. 눈을 보면서 시골에서 일이며 공장에서 일들이 생각난다. 공장에는 남쪽이라 온도가 높아 눈이 그의 내리지 않는다. 아마 눈 오는 날은 특별한 날이란 생각이 든다. 사는 사람 모두가 그 전날 무슨 좋은 일을 하고 좋은 꿈을 꾸어야 오는 것이 아닐까? 나름대로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처럼 남쪽은 눈이 드물게 내린다.

그런데 서울에는 오고 벌써 여러 차례 눈이 내렸다. 처음에는 눈 오는 것도 몰랐다. 서울이란 낯선 곳에 와서 알아야 할 것도 많고 배워야 할 것 많아서 정신이 없었다. 자연 현상도 보고 듣고 느끼려면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만 가능한 것을 이제야 알았다. 마음에 여유가 없으면 이웃집에서 굿판을 벌여도 모르는 것이다. 아니 사람이 죽어 나가도 모른다는 얘기가 있는 것만 보아도 여유란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또 하나의 작지만 큰 소중한 재산 인가 보다.

여유란 안정이며 생각을 가다듬어주며 자기주위를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인간관계를 반듯하게 할 수 있도록 자기 성찰의 기회이기도하다.

이 겨울에는 일과 눈 속에서 시간을 보낸 다고해야 할 것 같다. 이젠 배가 아주 많이 부르다 제법 앞이 불룩하다. 화장실 가는 것도 눈 속에 뒤뚱이며 가는 꼴이 갓난아이 걷는 모습과 닮은꼴이다. 아니 저 먼 남극지방의 펭귄 여러 마리가 얼음 위를 뒤뚱이며 걷는 것과 같다.

원청회사에서 일감을 운반하는 직원들도 처음에는 모두 처녀였고 또 나이도 어려 보여 언제 일을 배워서 저렇게 잘 할 수 있나 혀를 차면서 놀라며 감탄했었는데 지금은 불룩한 배를 보고 또 한 번 놀란다.

그래서 회사에서 소문은 회사 모 상무의 세컨드라는 소문까지 나돈다 한다. 대꾸할 가치조차 없는 말이라생각하고 내버려 둔다. 원래 소문은 변명하면 할수록 꼬리가 붙는 법이니까.

둘째 달에도 납품한 완제품에서 불량품이 한 장도 발생하지 않았다. 보고를 받은 상무가 어떤 분이 만든 제품인데 불량품이 한 장도 없느냐며 직접 한 번 방문을 해서 감사 인사라도 드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라는 밑의 사람의 의견을 수렴해서 와서 보시고는 아직 애티가 많이 나는 소녀 같은 모습에 한 번 더 놀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은 것이 전부이고 보니 소문이고 머고 할 것도 없는 실정이다.

상무도 사장께 처녀 같은 아주머니가 어린 나이에 일은 언제 배워서 그렇게 일을 잘하는지 놀랍다며 보고드렸다. 사장님은 누나인 사감님과 통화 중에 어리지만 좋은 사람을 소개 시켜주어 고맙다며 앞으로 크게 한 번 일을 맡길 수 있을 것 같다며 사장님께서 전화를 주셨다며 사감님은 설정(薛貞)에게 더 없이 좋은 일이라 전화를 해주셨다. 이젠 산달도 가까워 온다. 이달 마감 후 받은 공임은 전달보다도 조급 모자랐다. 중간에 설이 있어 원청회사에서는 설 휴가로 모두 5일 정도 쉬었으나 설정(薛貞)은 고향 갈 일도 없고 또 쉴 이유도 없어 하루만 쉬고 계속 미리 받아둔 물량을 소화했다. 그러나 2월은 큰 달 보다 3일이나 적은 달이므로 일할 날 수도 적다. 이달에는 설도 있고 해서 사감 선생님께 드릴 선물은 주인집 아주머님께 말씀드려 백화점에 가시어 아주머님 마음에 드시는 수수한 걸로 스웨터를 사서 우편으로 보네 주십사고 부탁을 드렸다. 그간의 고마움을 간단하게 쓴 편지를 동봉하는 것은 물론 잊지 않았다. 그리고 설정(薛貞)은 설을 맞이하여 시장에 갈 수 있는 입장이 되지 못하여 주인아주머니께 부탁드려 어머니가 평소 좋아하시는 것으로 간단하게 차례 상을 마련한다. 밥상 위에 아버지 어머니의 사진을 얹어놓고 그 앞에 과일이며 몇 가지 음식만 장만하여 진열하고 혼자 절하는 것으로 첫 명절 제사로 대신하였다. 시골 있을 때에는 명절 제사는 어머니께서 다 준비 하셨고 절은오빠가 하니 설정(薛貞)은 할 일이 그의 없었다. 아버지 어머니 이번 설에는 이렇게 간단하게 모십니다.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다음에 해부터는 제대로 설 차례 상을 차려드리겠습니다. 이 말은 아버지 어머니께 드리는 다짐이기도 하고 자기 자신이 자신에게 지켜야할 약속임을 다짐하는 말이기도 하다. 멀지 않아 이젠 아이와 만날 것이다. 아이와 만나같이 살아갈 날들을 생각하니 엄마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도 보고 싶은 마음도 약해졌는지 설에는 울지도 않았다. 다만 오빠생각에 잠시 목이매여 먹으려던 밥이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았다.

억지로 국에 말아 한술 뜨는 것으로 음복을 대신했다. 설날 아침에도 밥상위에 둔 아버지 어머니의 사진 앞에서 양친을 뵈옵듯 다시금 다짐을 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일을 하여 돈을 모아 태어나는 아이와 함께 잘 살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어머니 저를 봐주시고 도와주세요. 어느 정도 기반이 마련된다면 고향에 소식을 물어 오빠를 찾겠습니다.

지금 사정으로 오빠를 찾으면 오빠도 놀랄 것이고 가슴만 아플 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어머니 맹세합니다. 혹 오빠 때문에 어머니께서 마음 상하실가 봐서 혼자서 소리 내어 진정으로 말씀을 드렸다.

주인집 아주머니에게는 같은 집에 살다 보니 가끔 식사도 함께 나눈다. 한 두어 달 셋방 처녀와 살아보니까 행동거지며 마음 씀씀이를 보고 참 괜찮은 처녀임을 아시고는 정을 주시며 어쩌다가 저렇게 임신하여 홀로 아기를 낳아야 되는지? 안타까워하시며 아기 놓을 때도 병원을 가지 말고 산파를 불러 해산을 하면 자기가 산후 조리를 다 해주겠다하시며 그 살림에 병원 갈 생각은 엄두도 내지 마라는 것이다.

빠른 건 세월이라든가? 올해는 유독 눈이 많은 한 해이었다. 눈으로 시작한 겨울이 눈으로 끝나는 것 같다. 3월 초가 되면서 날씨가 한결 풀리는 것 같다. 성급하게도 제주도 서귀포에는 벌써 꽃 소식이 있다며 방송이 호들갑을 떤다. 보통 한국의 봄은 서귀포를 시작으로 꽃이 핀다. 다음은 부산 목포에서 광주 대구에서 다음은 서울로 이렇게 상경하는 것이다. 봄에는 잎이 먼저 피는 것이 아니라 꽃 먼저 피어 세상을 아름답게 꾸민다. 겨우내 추위로 지치고 삶에 지친 사람들이 아름다운 꽃을 보면 위로 받으며 힘을 내라는 뜻일 것이다.

그러고 나서 무수한가지에 잎은 서서히 피어나 한여름의 더위를 잘 이겨내라며 그늘을 만드는 것이다.

 

원청회사에서 재단 물은 보통 일주일 단위로 가져온다. 다른 거래처는 보름 단위이지만 여기는 창고며 물건을 놓아둘 곳이 마땅하지 않아 사장님의 특별지시로 일주일 단위로 공급하기로 했다. 일주일 분을 가져오고 만들어 놓은 일주일 분을 온 차로 가져간다. 받고 보내는 것은 그의 동시에 이루진다. 요즈음은 매일 아침에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 회사 있을 때와 같이 간단한 맨손 체조를 한다. 엎드리기나 팔 굽히기는 안한지 오래다 보통 팔운동이며 무릎관절 운동 손가락 꺾기를 하는 것으로 운동을 마무리한다.

아무래도 몸이 좀 이상하다. 오후 일은 쉬기로 하고 뒤뚱 뒤뚱하면서 택시를 타고 가까운 병원을 찾았다. 의사 선생님은 만삭의 산모가 처음 보는 분이시라 어디에 사시는지 어느 산부인과를 다녔는지? 물으시며 진찰을 하시더니 아이들이 건강하다며 산모는 특히 지금부터 더 건강에 신경 쓰라며 당부한다.

약이나 별다른 처방을 하지 않으시고 조심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예정 산일을 물어보시고 급하면 택시를 타고 바로 오라 하신다.

집으로 왔다. 집주인 아줌마는 올 때가 되었는데 하면서 마루에 나와 계시다가 들어오는 설정(薛貞)을 보고 반가워한다.

“아무 일 없지 하신다.”

“ 예” 하고 대답을 한다.

그제야 안심하시는 눈치이다.

가만히 생각해 본다. 이곳 서울에서도 또 여러 사람에게 도움을 받는다. 원청회사며 주인집 아주머니며 사감 선생님 친구 분이며 살아오면서 가족과의 관계에서는 불행한 혈연이었지만 그 외 단 한 번의 실수를 빼고는 다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으로 이어져왔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라는 확신이 선다. 앞산만 한 부른 배를 안고하는 바느질은 옆 드려 하는 일이기 때문에 배를 눌러 힘을 써 기가 불편하여 공업용 재봉틀을 자신의 배위 부문까지 올라오도록 높여서 일을 했다. 한결 수월하다.

일주일분의 물량을 더 받았다. 이 물량은 무리가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운동은 괜찮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믿기로 하고 일주일 분을 더 받은 것이다.

재단 물을 가져온 사원도 언제부터인지 호칭이 아주머니로 바꿨다. 아주머니 괜찮겠습니까? 걱정이 되어 묻는다. 아직은 괜찮습니다. 걱정을 끼쳐드려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다음 주일에도 오실 때 일주일분 더 가져다주세요. 제가 어려우면 바로 전화로 김 주임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운전기사는 근심스러운 눈으로 아줌마 배를 본다. 아마 얘를 낳을 때가 다된 모양이다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원청회사 차가 완제품을 실고 떠나고 나니 한숨을 돌린다. 기지개를 펴면서 마당으로 나와 하늘을 본다. 3월초 하늘은 가을 어느 날 같이 높고 푸르다. 뒤뚱뒤뚱 화장실에 갔다. 마루를 보니 따뜻한 봄볕이 완제품과 재봉틀 앞 좁은 마루에 들어와 주인인양 앉아다. 잠깐 걸터앉아 봄볕을 맞는다. 따뜻하다.

지난해 3월에 기숙사를 나오면서 사감님과의 대화가 생각난다. 자취방이 여관이란 말씀이 가슴에 와 닿는다. 사감선생님이 말렸을 때 주저앉아다면 오늘과 같은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인데 후회하는 마음이다.

한 번 업 질러진 물 후회한다고 되돌릴 수 없는 일 이 되고 말았다. 배속의 아이와 함께 살아갈 날들이 이젠 더 중요한 것이다. 다시금 자신을 매질하며 얼굴을 한번 탁탁 두드리며 몸을 일으켜 발틀위에 몸을 앉힌다.

그리고 다시 일을 시작한다.

요즘 하루 길이는 무척 길다. 그러나 일할 시간은 많은데 능률은 전만 같이 못하다. 1시간 정도 일을 하고는 일어나 마당으로 내려가 왔다 갔다 뒤뚱인다. 그리고 다시 마루에 올라와 발틀에 앉아 발틀을 밟는다. 높지 않은 마루에 올라오는 것도 힘이 든다. 아이가 누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어떤 놈이 나오려나? 힘이 더는 것을 보면 아마 장군 감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면서 혼자 웃는다. 이런 모습을 옆에서 본다면 실성한 사람처럼 보일 것이다. 아이를 두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나름대로는 아이를 위해서도 긍정적인 생각을 갖는다. 나를 닮아라! 스스로에게 나는 괜찮은 엄마다. 이렇게 배를 문지르며 아기와 얘기를 한다. 태교를 한다. 그래도 한쪽만{엄마}으로는 되지 않을 것은 아닐까? 태어날 아기에게는 지난 일련의 일들은 마음에서 지워버리고 일체를 알지 못하는 것으로 한다. 그러는 것이 태교에도 좋을 것이다 생각을 한다.

생각은 그렇게 하지만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생각 중간에 불쑥 지난 일이 폭탄이 되어 머리를 어지럽히기 때문이다.

그사이 받았던 재단 물도 다 완제품을 만들어 회사로 보내고 아무리 생각해도 일거리를 더 받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에 이번에는 재단 물을 더 가져오지 마라하고 김 주임님께 전화를 더렸다. 이번 주일에는 빈차로 왔어 완제품을 실어 갔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점심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하고 고단하여 자리를 펴고 누웠다. 일이 많아 쉬지 않고 일하든 사람이 조금 편해지려면 탈이 난다고 이젠 산일까지 며칠 남지 않았다. 생각은 조금 쉬고 일어나서 밀린 빨래라도 해야지 생각하며 누웠다. 갑자기 무슨 탈이 났는가? 허리가 조여들더니 배가 살살 아프다. 언제 쩍과 같이 먹은 것이 체했는가? 생각한다. 또 한편은 아직은 멀었는데 생각하면서도 책에 보면 하루 이틀 앞당기기도 하고 열흘 아니 7푼 8푼이 하는 얘기도 있으니 괜히 하는 얘기가 아닐 것이다 생각을 하면서 혹 지금 애가 나오려하나? 걱정이 된다.

갑자기 허리가 뒤 털리며 배가 많이 아파온다. 아직은 멀었는데 산통이 시작되는가?

급히 주인집 아주머님을 불었다. 아주머니는 불이 나게 오셨다. 왜 배가 아픈가? 물으시면 산파 어떻고 하시든 이야기는 당황 중에 잊어 섰는지? 아니면 마음이 바뀌신 것인지 어차피 아파도 갈 병원 얘를 낳아도 갈 병원인데 우선 배가 아프니 택시를 잡겠다며 서둘러 밖으로 나가신다. 조금 기다리니 클랙슨 소리와 동시에 아주머니께서 들어오시어 옷을 가라 입으신다며 안으로 들어가셨다. 억지로 일어나 그간 준비해둔 가방(출산 시 준비물을 언제 있을지 모를 일에 대비해서 항상 가방에 넣어두고 들고 가면 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하여 두었다.) 을 들고 옷을 가라 입는 것도 잊고 입은 그대로 마당으로 나왔다.

그의 동시에 주인아주머니가 방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오셨다. 대문을 열고 함께 택시에 올랐다. 택시 안에서 심한 통증을 느끼면서 아야 하는 가는 신음을 자기도 모르게 흘린다. 남산만한 배를 안고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배어나는 것을 기사 아저씨가 본다. 가면서 기사 아저씨는 내 차에서 아이를 낳으시는 것은 처음입니다 말씀하시고는

“운전기사 생활 중 처음 맞는 일이니 큰 영광입니다.” 하며 아주 좋아하신다.

이런 말씀으로 산모와 주인아주머니의 마음을 헤아려 주시니 고맙기 그지없다. 한마디 말로 천양 빚을 갚는 다더니 기사님의 말씀 한마디가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설정(薛貞)의 이마에 땀방울이 퉁겨 얻어 붙은 물방울 같이 매달려 있다. 산통(産痛)을 참으려 온 힘을 다하는 모양이다.

멀지 않은 곳인데도 시간이 지체되는 것 같아 조급증이 난다. 병원에 도착해서 아야 신음 소리도 함께 산실 문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택시비를 지급하고는 거스름돈은 받지도 않았다.

하나 아이인줄 알았는데 낳고 보니 일란성 쌍둥이다. 설정(薛貞)이는 두 아이 인줄 모르면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이런 경험은 지금까지 아마 설정(薛貞) 산모 외는 없을 것이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자.

 

쌍둥이를 낳은 산모(産母)가 이었습니다. 스물도 되지 않은 어린 나이에 단짝 친구와 나이트클럽에 같이 가서 무엇인지도 모르며 춤을 추며 놀다. 태어나서 한 번도 입에 대 보지도 않던 술을 처음 마셨다. 오빠의 잘못으로 인해 숱한 고생과 걱정을 하시다가 한번 오순도순 살아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후벼 파듯 아픈 가슴 때문에 위로 받으려는 듯 물을 마시듯 꿀꺽꿀꺽 소리가 나게 술을 마셨다.

인사불성의 상태에서 자기도 알지 못하는 남자의 등에 업혀 여관을 갔다. 의식불명 상태의 어린 여학생에게 욕망의 찌꺼기를 다 피지도 않은 공주의 닫힌 문을 주인 허락도 없이 억지로 열고 아름다운 궁전에 쏟아 넣고서는 자기 지은 죄를 아는지 아니면 무서워서 인지 완전 범죄를 꿈꾸는 범법자 같이 입고 간 상태 그대로 뒤처리를 완벽하게 해 놓고는 썩은 고기도 마다 않은 들개처럼 입을 다시며 몰래 먹고는 달아나듯 여관을 빠져나가 꼬리를 감추었다.

여러 달 동안 임신한 사실도 모르고 지내다가 알았을 때는 이미 아이가 많이 자라서 의술의 힘을 빌려서라도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아이를 낳고 보니 일란성 쌍둥이다.

처음 임신사실을 알았을 때는 낳아서 훌륭하게 키우리라 마음먹었지만 산모 설정(薛貞)의 주위에는 도와줄 혈육은 한사람도 없었다. 하나 뿐인 오빠는 어머니가 돌아가셔도 장례에도 참석하지 않고 지금까지도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모른다. 설혹 안다하더라도 자기 한 몸 건사도 하지 못하는 팔난봉이라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래도 하나 아이라 생각했을 때에는 혼자서라도 훌륭하게 키우리라 마음먹었지만 도저히 두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형편이 되지 못 했다. 그렇다고 한 아이만 자기가 키우고 또 한 아이는 다른 사람 손에 맡겨 기르는 짓은 더 더구나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되어 믿고 의지하며 따랐든 기숙사 사감님의 말씀을 쫒아 아이 둘을 입양기관을 통해 해외로 입양시켰다.

어린 엄마지만 엄마 된 책임을 다 하리라 생각했었는데 현실이란 벽 앞에 무릎을 꿇고 해외로 입양시키면서 이번에도 기숙사 사감님의 가르침에 따라 자식에 대한 여러 가지(몸의 반점이며 없어지지 않은 특징을 기록) 정보 후일을 위해 입양기관과 함께 기록해 두었다.

어떤 아픔도 쓰라린 경험도 세월 앞에서는 엷어지고 얕다지기도 가늘어 지는가? 봅니다.

철없을 때 당한 그 아픔의 세월도 흘러갔다. 먹고살기 힘들기도 했었지만 아픈 기억을 잊으려고 몸을 혹사할 정도로 일에 매달렸다.

한번 남자에게 당한 뼈아픈 경험은 많은 것을 알도록 해 주었다. 세상이 내 마음같이 않다는 것을 기막힌 경험을 하고서야 터득할 수 있었다니 대가치고는 너무 많은 것을 잃고 배운 가슴 아픈 사연이다.

많은 사람들은 하는 말과 행동은 반듯이 일치하지 않은 다는 것을 알았다. 같은 말이라도 뜻이 전혀 다를 때도 있음을 배웠다. 많이 배우면 배울수록 인성이 갖추어진 사람이 아니라면 더 악랄하고 빼앗는 기술 또한 교묘했다. 어쩌면 학교에서 많은 것을 가르친다는 것이 인간답게 사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못된 것 버릇없는 짓 얼굴 두꺼운 태도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하는 교묘한 위장 처세술 빗나간 삶의 한 부분을 알게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갈 정도이다.

야간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설정(薛貞)에게 밤을 새워 공부한 그 보람도 빼앗아 버리고 지은 죄가 없어도 야반도주가 아닌 밤에 서울 행 기차를 타고 낯선 서울이란 거대도시를 찾게 만든 그 대학생은 밤을 빌려 어두움을 힘으로 이용하여 못된 짓을 저지르고는 낮을 맞아 밝을 때는 민낯을 보여주며 이것이 진실이다 호도하며 파렴치한 범죄까지도 덮어 버리고는 체 피지도 않은 구만리 설정(薛貞)에게 참담한 현실을 안겨 주는 몹쓸 사람도 도처에 있음을 알았다.

의식 없는 상태에서 당한 불쌍한 사람이 설정(薛貞) 자신임을 알았을 때도 응징을 위해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어떤 방법도 설정(薛貞) 에게는 없었다.

넋을 놓고 있을 수만 없는 현실 앞에 몸부림치면서 잊기 위한 한 방법을 찾는 도리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 잊기 위하여 닥치는 대로 일을 찾아 몸을 굴렸다. 그런 가운데서도 어리석지 않으려고 아니 다시는 속지 않으려고 하는 일을 두고 요리조리 따져 보기도하고 자로 재도보고 망치로 두드려도 보고 의심하며 연구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어느 곳에서나 인정을 받는 생활인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생활인으로서 직장인으로서 빈틈없는 일 처리며 근면성 또 분명한 사리판단 등이 신용은 덤으로 얻게 되었다. 뼈 빠지게 몸을 굴려 얼마간 모은 돈으로 몇 사람이 함께 일하는 조그마한 자기 업체를 만들었다.

원청회사에서도움은 그의 절대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감 선생님의 도움으로 지금의 회사를 소개 받아 지금까지 잘 운영해 왔었다.

원청회사에서는 설정(薛貞)이의 스스로 일하는 솜씨며 함께 일하는 사원들과의 관계며 원청회사직원들과의 관계를 보면서 어떤 규모의 회사라도 능히 운영해 갈 능력을 가졌다고 판단 한 것 같았다. 그러니 아예 일할 물량(오더)을 줄 터이니 직접 생산을 해보라는 것이다. 학생이란 호칭은 임신한 사실을 알고부터 아줌마 바뀌었다.

아줌마 같은 능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권유는 원청업체 사장님이 직접 방문하시어 권하신 예의를 갖춘 성실한 파터너싶(partnership)이라 생각을 했다. 그리고 공장 같이 않은 공장임에도 불구하고 사장님이 직접 방문해 주시는 것만으로 몸 둘 바를 모르는 일인데 더욱 함께 일을 하자 하니 그저 영광스럽기까지 했다. 어려울 때 또 어떤 특별한 일이 있을 때 마다 자문을 구한 멀리 계시는 사감님에게 또 의견을 여쭈어 보았다.

사장님의 의견이 그렇다면 한번 도전해 볼 가치가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사람이 성실하고 반듯하고 예의가 있고 또 붙임성이 있으니 자연히 주위에 사람이 모이고 늘 사람이 많이 따라다녔다. 아줌마라는 호칭이 어느 사이 젊은 여사장님으로 바뀌었다.

여사장님의 생각은 지금과 같이 생각지도 않은 일들이 기회가 되어 문을 열고 들어 오라하는 것 자체가 지난 아픈 세월에 대한 보상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원청회사의 도움으로 자리를 잡을 동안 원청회사도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사업 확장을 계획하고 있던 중에 계속해서 자가 공장을 증설 생산을 늘려가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닌 문제가 있다는 판단 아래 검토한 결과 하청 공장을 늘리는 것이 문제 해결의 한 방법이며 설정(薛貞)의 공장 같이 않은 공장이 제일 먼저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기왕에 원청회사 사장님까지 나서서 권하시는 일이니 긍정적으로 한번 검토해서 사장님께 구체적인 계획서를 가지고 찾아뵙겠다고 말씀드리고 그날부터 곰곰이 생각해 본다.

지난 세월동안 뼈 빠지게 일을 한 것도 내가 낳았지만 어쩔 수 없이 해외로 입양시킨 내 아들들을 다시 찾아 한곳에서 살기위해서는 무엇보다 필요로 한 것이 돈이라 생각했다.

지금과 같은 이러한 규모로는 어림도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빤한 것도 사실이다. 그저 입에 풀칠하면서 조금 저축하는 정도이니 어느 세월에 돈을 모아 아이들을 데려올 수 있을까?

그 사이 설정(薛貞)의 머리에는 완벽한 물건을 만들어 원청회사에 신용을 얻어 이를 담보로 공장을 확장하고 명실상부한 공장 같은 공장을 만드는 작지만 알찬계획이 자리했던 것이다.

그 노력의 보람이 찾아온 것이다. 공들인 보람이 있어 원청회사에서 함께 같이 가자는 동업자까지 격상되어 제안해 온 것이다.

그러나 자본금이라 해야 그간 공임으로 받은 돈 모아 보았자 그 얼마 되지도 않는다.

그 돈으로서는 어림없는 일이다. 생각하고 생각한 끝에 하나의 모험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하나의 사업 계획서를 만들었다. 사업계획서라 해서 자본금이 얼마이며 시설이며 인원조달이며 가동 이후 예상 재무제표며 등을 고루 갖춘 완벽한 것이 아니라

원청회사에 지금 여유가 있는 창고 안에 10개 라인 (원청회사가 요구하는 규모)정도의 시설을 해주시면 시설비에 대해서는 5년 동안은 은행이자만 가공임에서 공제해주시고 5년 이후부터 10년 동안은 월 은행이자와 월 설비비를 반제한 평균금액과 창고건물의 임대료를 합산하여 상환하며 설비비를 완전히 상환한 후 다시 5년 이내 공장 부지를 마련 독립하겠다는 15년간의 장기사업계획서이다. 어쩌면 원청회사의 지원을 100% 받겠다는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계획서를 만들었다. 아직 은행관계는 회사이름으로 개설하지도 않았고 은행 문턱이 턱 없이 높다는 것을 알아 출입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15년 세월 동안에 완전히 부채를 청산하겠다는 계획서이며 단지 말미에 아줌마가 갖고 있는 현금은 5개월분의 종업원 월급과 경상비로 충당할 정도임을 명시하고 원청회사의 처분만을 기다린다는 일종의 구애 작전이었다.

그리고 종업원은 만은 반드시 자신의 책임 아래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겠다는 구체적인 인원 확보 계획서도 함께 제출하였다.

사업 계획서 같지 않은 사업 계획서를 보시고 승인해 주시리라 믿지는 않았지만 되지 않아도 손해 보는 일 은 아니다. 아줌마로서는 조금씩 키워 갈 생각이었던 것을 하루아침에 한 십년을 앞당긴 것이며 원청회사 사장님의 그간의 칭찬이 헛된 것은 아니라는 증명도 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의외로 아줌마의 사업 계획서가 채택이 되었다. 원청회사로서도 여러 번 회의와 전문 인력의 중점 검토 결과 직접 시설을 해서 자기들이 운영하는 것보다. 유익하다는 결론이었다. 단 하청공경영자의 능력이 담보되었을 때 가능하다는 단서가 첨부되다.

어차피 시설을 하려다 변경 한 것이니까? 어쩌면 돈만 드리면 다른 아무것도 신경 쓸 일이 없이 젊은 경영자 인 설정(薛貞) 사장이 다 할 것이니까? 더 인력을 드리지 않아도 되는 이점(利點)이 있었다.

놀고 있는 내 터에 공장을 증설하여 좋은 훌륭한 경영자를 모셔와 일을 맡기고 시설비 와 임대료를 월 얼마를 상호 의논하여 받는다 생각하면 전혀 손해 보는 일은 아니다.

만일 하청 공장이 어려워 문을 닫은 일이 있다 해도 내공장 안에 있는 내 시설 종업원도 그대로 다 있으니 경영하는 아니 일을 시키는 사람만 바꾸면 되는 것 외에 하나의 손실도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처음 공장을 가동하는 날 원청회사 사장님과 회사 간부님들 그리고 멀리에서 밤차를 타고 사감선생님께서도 참석하셨다.

원청회사 사장님은 설정(薛正)기업 사장 설정(薛貞)이란 명패를 만들어 가져오셨다.

공장이름도 기숙사 사감님께서 직접 작명해 주셨다. 설정(薛貞)이의 이름자 정(貞)자를 곧을 정에서 정자를 (正)바를 정으로 바꾸어 회사 이름을 지었다.

설정(薛貞)도 회사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혼자 마음속으로 빼앗겨버린 자기 정조를 아니 지키지 못한 자기 정조를 생각하면서 정(貞)자 보다는 정(正)가 한결 마음을 감사 주며 옹호해 주는 것 같다.

그때 그 대학생이란 작자가 조금만 정의감을 양심적인 어린 학생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청년이었다면 술을 먹고 의식 없는 설정(薛貞)이의 정조를 그렇게 유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고등학생의 신분이란 것도 알았으니 얼마나 괴로우면 얼마나 가슴 아픈 사연이 있으면 이렇게 술을 먹고 만신창이 될까? 불쌍해서도 측은해서도 그런 못된 짓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설정(薛貞)이가 임신 사실을 알고 친구를 통해 사는 곳을 알려면 알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그날로 마음속으로 없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그는 하루아침에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죽은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고 시설을 하고 공장 가동에 들어갔다.

멀리계시는 사감님께서 어느 날 기숙사 층별 반장 회의 시에 교육을 하면서 여러분과 같이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를 하고 큰 꿈을 가지고 서울에 간 여러분의 선배 중에 설정(薛貞) 이란 사람이 있다. 아마 여러분 보다 졸업 년 수를 따진다면 7-10년차 정도 선배가 될 것이다. 아주 어려운 가운데 노력하여 그래도 조금은 큰 공장을 만들어 가동하게 되었다.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른다며 그 설정(薛貞) 사장이 지금 여기에 계시지는 않지만 그 사장을 위해 박수를 한번 보내 드리자는 제안에 어떤 학생은 발로 마루를 탕탕 두드려가며 우뇌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내가 초청을 받아 갔다 왔다 하시면서 시설도 좋고 주위 환경도 좋은 앞으로 발전할 수 있는 회사임을 알 수 있었다며 어렵게 공부하는 여러 분도 꿈을 잃지 않고 모든 일에 성심성의를 다하기를 바란다는 말씀이계셨다. 공부하고 노력하면 몇 회 졸업생 설정(薛貞)선배와 같은 인물이 될 수 있다며 어려운 학생들에게 꿈을 심어주시는 격려의 말씀을 하셨다.

이런 사감 선생님의 말씀이 날개를 달고 다녔다. 공장은 물론 타 공장에까지 전해 졌다. 더욱 선후배 간에는 입지전적인 인물로 미화되어 말이 훨훨 날개를 달고 날아다녔다. 설정(薛貞)이 겨울 방학 후 등교하지는 않았지만 출석일수 부족 등 그렇게 졸업에 영향을 주는 결격사유가 없었다. 더욱 2학년까지는 계속 우등생이며 모범생으로 학교에서 칭찬이 자자했던 학생이기 때문에 겨울 방학 후 계속결석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소식을 알려 했어나 알 수 없어 모든 선생님이 궁급히 생각했다. 더욱 사감선생님께서 학교에 가시어 설정(薛貞)이의 여러 어려움을 말씀드려 졸업은 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이 졸업할 수 있었다.

젊은 날 누구나 한 번쯤은 객지로 나가 아니 서울이란 대도시에 나가서 성공을 하여 좋은 집에서 한 손에 턱을 묻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영원한 노스탈자(鄕愁病nostalgia) 이고 싶은 마음을 가진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과거 같이 다녔든 동급생이며 타 공장에서까지 서울이란 유혹에 이끌려 제 발로 찾아오는 처녀들이 있어 어렵지 않게 노동력은 확보 할 수 있었다.

일을 시킬 때도 일하는 처녀들의 마음을 알아 서로 위로해가면서 일을 시킨 다기 보담 자발적으로 일을 하도록 마음을 모아주었다. 각 라인들은 빠른 시간 내 안정이 되고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갔다. 보통한 달이 걸려도 어려운 생산 안정이 단 열흘 만에 정상괘도에 진입 하는 것을 보고 원청회사 간부들은 자기들의 판단이 옳았다며 기뻐하였고 젊은 설정(薛貞)사장도 한 시름 놓게 되었다.

이렇게 바쁘게 살다보니 십 오년의 세월도 동태 달린 손수레처럼 달아나듯 흘러갔다.

십 오년기간을 정하여 갚으려든 부채도 12년 여 만에 완전 청산하고 원청회사와 가까운 곳에 허름한 공장을 인수하여 산듯하게 개조를 해서 새로운 공장으로 이전 하였다.

새로운 공장으로 확장 이전 개업식에는 많은 인원을 초청하였다. 과거 다녔던 회사 과장님 박 양 언니는 물론 한방 친구도 잊지 않았다. 할머니가 되신 기숙사 사감님은 하나 뿐인 딸이 결혼하여 서울에 살기 때문에 지금은 서울에 조그마한 아파트를 딸집과 가까운 곳에 마련하여 거주하신다.

설정(薛正)회사 고문으로 매일 출근하시며 일하는 아이들의 상담을 주로 하시며 노후를 보내신다.

그간 정말 자신을 모질게 매질해 왔다. 한 번 결심한 일은 뒤를 돌아보는 일 없이 오직 앞으로만 달렸다.

근검절약이 몸에 배였다. 모든 것으로부터 관심을 거두어들이고 오직 하나의 목표만을 위해 앞으로 달렸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여자 독일 병정이다.

그만큼 정직하고 완벽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설정(薛貞) 사장님은 그 어떤 칭찬 보다 이 여자독일병정이란 이 별명을 좋아한다. 이는 신뢰와 믿음의 증표이기 때문이다. 이 여자 독일 병정이란 별명을 얻기까지 피나는 노력과 절재 절약 등 빼앗긴 정조로 알게 된 여러 가지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약이 되었다.

좋은 제품을 만들었고 철저히 약속을 지켰으며 빈틈 없는 공장경영으로 이어졌다.

자연히 돈이 모였다. 생활에 여유가 생겼다. 이놈의 돈도 눈이 있어 마음에 들면 저만 오는 것이 아니라

저 친구도 대리고 왔었다. 그러다가도 실증나면 저반 빠져 나가는 것이 아니라 몽땅 같이 데리고나가 망하게도 하는 모사꾼이기도 하다.

돈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다 좋아하는

무한의 힘 가진 괴물

모두가 다

(돈의 여러 얼굴)

더 많이 가지려 애를 쓰지만

 

요놈이

눈이 있고 귀가 있어

아무에게나 잘 가지 않는다.

있는 곳이 좋다 싶으면 장기 투숙도 하고

제 동료 데리고도 오지만

아니다 싶으면

요놈이

자기만 빠져나오는 것 아니라

동료들 충동질하여 아주 몽땅 빠져나와

망하게도 잘 하는

죽이고(배비질러)싶도록 미운 모사꾼이기도하다.

돈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지만

많이 거느릴 자질 없는 놈이

욕심내다가는 돈에 깔려 죽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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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는 한 많은 삶을 되돌아보게 했다.

번지 없는 주막 유행가 가사처럼 어머니를 아버지 묘 왼쪽에 안장하고 고향집 떠니 올 때 마을 앞 개울가에 서있는 축 늘어진 능수버들이 생각났다.

악마의 이발에 뜯겨 만신창이가 된 내 몸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주막에

궂은비 내리는 이 밤도 애절 쿠려

능수버들 태질 하는 창살에 기대어 ------------

 

자기 어깨처럼 축 늘어진 노래 가사를 이렇게 개사하여 노래를 불렀다.

공장 사무실 창가에 기대어 -------

노래 부르며 일을 마치고 아무도 없는 실내에서 혼자 울기도 했다. 그 나이트클럽에서 일이 있고 난 후 술은 입술도 적시지 않았다.

어느 회식 자리에서도 술은 입에 대지도 않았다.

그러니 젊은 설(薛)사장하면 의례히 술을 먹지 않는 사장 아니 술을 못 먹는 사람으로 치부되었다.

오랜 시간 그렇게 하나 보니 어떤 술자리에서도 설(薛) 사장은 혼자만 건배도 물이나 음료수로 대신해도 아무도 무어라 하지 않는다.

오늘 처음 포도주를 앞에 놓고 술잔으로 입술을 적시며 지난 세월을 생각한다.

처음 먹었고 죽도록 마신 그 술 때문에 인생의 길이 꼬여버린 나 자신 대학을 가서 영어 영문학을 전공하여 본사 해외영업부 직원들과 같은, 아니 오가는 비행기에서 새우잠을 자며 일 년365일중 2/3를 해외에서 보내시며 가난의 대물림을 끊는 방법이 수출에 있음을 알게 해 주셨으며 우리나라의 수출을 있게 하신 키는 작으시나 거인이신 젊은 우리 회사 김 사장님 같은, 세계를 누비는 유능한 세일즈맨이 되려했었는데 그리고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모시고 남들 보라는 듯 살려했었는데 그 어머니는 지금 내 곁에 계시지 않는다. 지금까지 살아계셔도 겨우 환갑을 넘을 연세였는데 너무 일찍 돌아가신 것도 한이 되었다. 자신의 접은 꿈 뿐 만아니라 한번 안아보지도 못하고 알지 못한 사람들에게 맡겨진 내 아들 둘 00복 지회를 통해 외국으로 입양된 내 아이들을 생각한다.

지금쯤은 얼마나 자랐을까?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얼굴은 어떻게 생겨서며 몸은 튼튼한지?

자기가 키우지 못한 죄책감과 궁금증이 마음을 불등이 같이 달아오르게 한다.

생활에 쪼들리며 동분서주할 때는 파김치가 되어 밤이면 잠들기 바빴고 낮에는 일하기에 정신이 없었다. 아이들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안정이 마음의 여유를 주었다.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며 생각을 하며 얼룩진 곳을 더러운 곳을 청소를 하듯 한다. 맑은 물에 빨래하듯 그것도 모자라 양잿물로 하얗게 빨아 백옥같이 만들어 손질해야하는 것과 같이 자신의 잘못을 자신에게 길게 고백했었다.

그러다 보니 지금은 하루 빨리 애초에 공장을 키울 때부터 생각했던 자기 속으로 낳은 아이 둘을 찾아야 되겠다는 마음이 이젠 무슨 일 보다 앞선다.

일손을 놓고 쉬는 밤이면 불현 듯 아이 둘이 보고 싶어진다. 달 밝은 밤이면 구름을 따라 흐르는 달을 바라보며 달 같은 얼굴일까? 나를 닮아 길쭉한 얼굴일까? 허공중에 그리기를 수도 없이 반복하기도 했다. 중년이 된 아주머니가 자신에게 한 고백이 마음깊이 새겨져 아마 그 간절함이 뼈에 사무치는 모양이다. 한 번 보고 싶은 마음이 더니 하루가 여삼추였다. 한 아이가 꿈속에서 오라는 손짓인지 가라는 손짓인지? 그 생각이 떠오르고 나서는 더욱 마음이 급해진다. 그 꿈을 꾸고 나서 현몽(現夢) 임을 미리 알고 의술을 힘을 빌렸다면 태어날 두 생명은 핏덩이로 살아지고 아마 세상 구경도 하지 못 했을 것이다. 그 일 때문에 내 인생이 꼬여 많은 세월 고생을 하면서 지금까지 왔어도 가만히 생각하니 몰랐던 것이 천만 다행으로 여겨진다.

아이를 한 번만이라도 만났으면 아니 사는 곳만이라도 알 수 있다면 얼굴만이라도 먼발치에서 볼 수 있다면 여한이 없겠다는 생각은 어떤 온갖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게 자신을 다잡았다.

한 번의 실수는 병가지상사란 문자를 생각하면서 두 번 다시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려고 마음을 굳게 먹고 다짐하기를 수없이 했다.

사십 몇 여 년을 자식도 하나 없이 홀로 사는 중년의 여인 더더욱 얼굴도 미인이며 키도 훨씬 하며 몸이 중년이라 생각하기엔 너무나 탄탄하고 볼륨이 있는 여인 지적인 미모에다 돈도 있는 나무랄 대 없는 여인 그러니 만큼 달콤한 말이며 값나가는 선물로 때로는 키도 훤칠한 잘생긴 남자의 육탄공세로 몸과 마음을 뒤 흔드는 일도 없지 않았다. 그럴 때 마다 내 인생에 한 번의 실 수 이외 두 번 다시 잘못은 없다며 명세 한다. 오직 자식을 찾는 일에 혼 힘을 다 했다. 미국공관까지 찾아가 호소도 했다.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여 수소문하였다. 여러 연줄을 동원하였다.

그러든 중 우연찮게 어느 기업인 모임에서 미 대사관에 근무하는 우리나라 직급으로는 일등 서기관인 토마스 멀로우(Thdmas Meollou)씨를 소개 받았다. 첫 만남에서 그 서기관은 설정(薛貞)의 미모와 교양에 마음을 빼앗겨 가끔 만날 수 있으면 영광이란 진솔한 요청에 처음에는 아이를 찾기 위한 한 방편으로 그의 말에 동의하였다.

두 사람 다 바쁜 사람이라 자주 만날 수 없었다. 그러나 한 달에 한번 정도는 만남의 기회를 가졌다. 그런 날에는 의례히 설정(薛貞)사장이 우리나라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서 나름의 계획을 세워 서울의 고궁은 물론 서울에서 가까운 수원이나 남한산성도 구경하면서 조선의 아픈 역사도 설명해 주었다. 작은 나라이지만 옛 문명은 미국 보다 앞선다며 감탄한다. 설정(薛貞)사장의 영어 실력은 처음 토마스씨를 만날 때는 띄엄띄엄 단어로 몸짓을 섞어 가면 대화하는 서툰 영어 실력이었으나 일 년이 지난 시점에는 토마스씨와는 무리 없이 소통이 가능했으며 2년이 지난 지금에는 아주 유창한 영어 말솜씨는 토마스씨도 감탄한다. 어떤 날에는 토마스씨도 유창한 한국말로 대화를 할 때도 있다.

굳이 영어를 고집하는 것은 한국말을 할 줄 몰라서가 아니라 설정(薛貞) 사장의 영어회화를 가르쳐드리려는 배려에서였다. 그러든 어느 날이었다. 토마스씨가 평소 그 답지 않게 진지하게 긴장하면서 그간 설정(薛貞) 사장과 만나서 즐거웠던 일이며 어딘가 모르게 우수에 젖은 설정(薛貞) 사장을 보면서 사연이 있는 분이라는 것을 알고 함께 고민하고 함께 아파하며 위로해주며 보살펴주고 싶은 마음이라면서 자기의 마음을 솔직히 고백하는 것이었다. 바로 답을 달라는 것은 아니니만큼 충분히 생각해서 말씀해 주시며 감사하다는 것이며 이 말씀을 드리려고 여러 번 마음을 먹었으나 용기가 나지 않아 계속 미루다가 지금에야 이야기 하는 것은 지금 이야기하지 않으면 영영 말할 기회가 없어질 것 같아 오늘은 미리 작심하고 말씀드린다며 긴 고백을 하였다. 자기는 한번 결혼한 경험은 갖고 있다면서 아내는 생각지 못한 사고로 5년 전에 돌아가셨으며 미국에 계속 있으려니 죽은 아내 생각에 마음을 잡지 못할 것만 같아 이렇게 다른 나라에 와서 근무하는 길을 택하였으며 대만을 거쳐 지금 한국에 온지는 3년째이며 곧 본국으로 발령이 날 것을 알고 떠나기 전에 이렇게 마음을 고백하는 것이며 대답은 자기가 떠나고 없더라도 편지로 하면 더 멋이 있을 것이며 낭만적일 것 같다며 젊은 학생 같은 들뜬 마음으로 말하는 것이다.

토마스씨는 이렇게 한 번 더 말씀하신다.

“설정(薛貞)씨 대답은 시간에 구애 받지 않아서면 좋겠다.” 며

“그리움의 긴 시간이 지나는 동안 둘 만의 레파토리(repertory)가 태평양을 가운데 두고 한 번 사랑에 실패한 중년의 꺼질 덧 피어나는 짚불처럼 순수한 사랑 이야기가 멋진 연출자의 공연시연물이 될 정도로 우리 둘의 마음이 꺼질 덧 꺼지지 않아서면 좋겠다는 것이다. 설정(薛貞)사장은 그의 긴 고백을 듣고 나니 마음 한편은 고맙고 감사하며 미국인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인간으로 따뜻함 마을을 읽을 수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자기도 똑 같은 마음이라 말하고 싶지만 두 아들을 생각하면 더욱 임신 사실을 알고부터는 대학생이면서 무책임하게 자기욕정만을 채우고는 자기의 몹쓸 짓을 엄폐인지 은폐인지 완벽하게 조치하였다고 믿고 시치미를 뚝 떼는 한 점 부끄러움을 모르는 철면피라는 생각은 모든 남자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으며 자기로 하여금 남자를 거들떠보지도 않게 만들었다. 더욱 무슨 수를 쓰더라도 돈을 모아 두 아들을 찾아 함께 살려는 생각을 지금까지 한 시도 잊은 적 없다. 그런 설정(薛貞)의 마음을 처음으로 휘저어 놓은 것이다. 가만히 생각하면 지금도 자기에게는 청춘이 있다고 믿고 싶다. 어디 내어 놓아도 빠지지 않은 미모와 발랄한 육체는 어느 누구도 그녀를 40십 수 년으로 보지 않는다. 마음이 흔들리는 자신을 억누르고 토마스시에게 이야기 한다. 구태여 자기의 과거를 덮을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마음은 끌리지만 토마스씨와 사귀며 결혼한 일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이들과 마음속으로 한 약속은 지켜야 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솔직하게 토마스씨에게 자신의 아픈 과거를 있는 그대로 얘기하였다. 토마스씨는 설정(薛貞)사장의 아픈 과거를 다 듣고서는 자기 마음도 아프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조금 전에 말씀드린 대로 자기와의 문제는 지금 단장 예스 노 할 것이 아니고 조금 더 시간을 갖자는 것이며 지금 당장 할 일은 두 아이를 찾는 것이니 만큼 자기가 귀국해서 꼭 두 아이를 찾아 기쁜 모자 상봉이 이루어져 자기 눈으로 보겠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서로 전화나 편지로 살아 있음에 감사하며 태평양을 가운데 두고 자신은 설정(薛貞)씨를 그리며 살겠다며 좋은 소식 있으시길 기도 한다며 설정(薛貞)사장의 손을 꼭 쥐며 눈을 감고 기도하는 모습은 천진난만 한 아이모습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더는 것입니다. 그가 한국을 떠나기 전에 ㅇㅇ복지회에 들려 아이들 이름이며 생년월일 몸에 특징이며 기초적인 여러 가지를 꼼꼼히 적어 갔다. 토마스씨가 떠나고 여러 날 여러 달 서로 사연만을 주고받았다. 편지는 주로 토마스씨가 보내왔으며 설정(薛貞)사장은 글이 짧아 다섯 번 정도 받으면 겨우 한 번 답장을 해주었다. 전화도 일방적으로 언제나 토마스씨가 먼저 한다 받으면 아이들을 찾으려 근무하는 날을 빼고는 동분서주(東奔西走) 하는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런 어느 날 지성이면 감청이라 더니 내 마음이 통했는가보다. 한 아이를 찾았다면 기뻐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한 아이를 찾았다 면서도 말끝을 흐린다. 두 아이다 마음 같이 되었으면 좋을 것인데 그렇지 못하다면서 한 아이는 좋은 집안에 입양되어 양 부모 밑에서 듬뿍 사랑을 받으며 잘 자라 좋은 대학을 나와 법률을 전공하는 국제변호사로 일을 하는 훌륭한 청년이 되어 있었으며 이와는 반대로 같이 태어난 다른 한 아이는 애초 아이를 키우는 일에는 관심이 없는 집에서 옆집에도 또 다른 지인(知人)의 집에서도 해외에서 아이를 입양을 한다 하니 남에게 뒤 처질 세라 하나의 허영으로 얼떨결에 입양을 신청하여 아이를 받은 부부였다. 더욱 이들 부부는 조그마한 일에도 자주 의견이 엇갈려 티격태격 부부갈등이 심한 싸움이 잦은 문제의 집이다. 이러다 보니 아이 기르는 일에는 관심이 없어 어릴 때부터 뒷방에서 제멋대로 방치되어 정 모르고 자라 뒷골목을 방황하며 불량 아이들과 어울려 다니다 보니 한 두 번의 실수로 잘못을 저지르다 씻지 못하고 한 번 또 한 번 그러다 보니 나쁜 일에 이력이 붙어 교도소를 제집 드나들 듯 하는 문제의 청년이 되어 있었다.

토마스씨는 두 아이를 같이 만나려면 조금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한 아이가 잘못을 저질러 지금은 교도소에 수감 되어있어 출소일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이다.

같이 한 날 한 시(時)에 같은 씨를 받고 같은 배에서 태어난 아이도 한 아이는 잘 자라 자기가 키우지 못한 죄책감을 다소 들 수 있었으나 불량 아이가 된 자식을 보는 설정(薛貞)사장 마음은 지금도 찢어지는 큰 아픔이 되어 가슴을 짓누르고 있다.

같은 씨 한배에서 태어난 아이도 어디에서 어떤 환경에서 자라느냐에 따라 이렇게 삶이 극과 극으로 나눠지는 경우를 우리는 본다. 이와 같이 만남은 성장과정의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그의 절대적이다. 더욱 만나는 사람이 어느 곳에서나 칭송받으시는 덕망 높으신 인격자라면 더 말할 나위 없다. 또 만남이라는 것이 사람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물론 말할 것도 없거니와 짐승이나 미물(微物)까지도 포함한다. 움직이는 것은 물론 움직일 수 없는 풀 꽃 나무를 포함하여 심지어는 생명이 없는 해와 달이나 강가에 있는 돌 바위 그 밖의 자연 현상까지 망라(網羅) 한다.

대상은 어떤 것이든 사람이 어떤 감정 상태에서 어떤 분위기에서 만나느냐에 따라 동기도 이유도 되며 의지가 되고 결심이 되며 상승작용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모든 만남은 인간에 피할 수 없는 숙명이며 사회란 필연적으로 인간과 인간의 만남에서 이루지는 것이다.

내가 너보다는 조금 잘났다. 나는 너보다 돈이 조금 많다. 나는 네가 갖지 않은 권력을 가졌다. 나는 너 보다 더 많이 공부를 했다. 여러 가지 아는 것도 더 많다. 그러니 나는 너를 아무렇게나 대해도 된다.

내가 해어지고 싶으면 해어지고 만나고 싶으며 만난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사람들을 만나는데 경중(輕重)은 두지 않는지? 만남 그 자체를 두고 인간을 저울질 하면서 무게를 따지면서 익(益) 불이익(不利益)을 생각하면서 만나지는 않는지?

아무리 사람이 많은 것을 안다 해도 재주가 비상하다해도 누구도 들에 피어나는 풀 한 포기 만들 수 없고 먼 우주에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지금도 밝혀 진 것은 그의 없다. 이러고도 안다 말 할 수 있을까?

나는 잘 낫다 거드름 피우지도 말고 또 못 낫다 기죽지도 말 것이다.

다시 한 번 만남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 날 한 시(時)에 같은 씨를 받아 한배에서 태어난 자식도 어떤 환경에서 자라는 가에 따라 삶이 이렇게 달라지는 것을 보면서 인연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더 일깨워준다.

설정(薛貞) 사장님은 쌍둥이를 낳고 키울 수 있는 처지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자기주위에는 혈육이라고는 오빠 한 분 뿐이었다. 오빠도 무슨 일인지 몰라도 어머니가 돌아가셔도 장례 당일에도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지금까지도 어디에서 무었을 하는지 모른다. 혈혈단신 혼자의 몸으로 도저히 쌍둥이를 키울 수 없었다. 모진 아픔을 감내 하면서 쌍둥이를 해외 입양기관을 통해 해외에 입양 시켰다. 긴 세월 동안 한 번도 잊은 적 없는 아이들 그 아이들을 떳떳하게 만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돈이었다.

돈을 벌기위해 모진 고생도 마다 않았다.

태어나고 자라고 할 동안 즉 혈육 간은 불행의 연속이었으나 사회생활에서는 한 번의 실수를 제외하고는 좋은 인연으로 이어져 수고의 보람위에 행운까지 가져다주어 돈을 벌수 있었다.

아이를 찾기 위한 그간의 수고가 헛되지 않아 오늘 이렇게 26년이란 긴 세월이 흐른 후 생전 처음 아이들을 만나기 위하여 이른 새벽 김포공항으로 달려간다.

어느 병사가 잠깐 총소리가 멈춘 전쟁터에서 죽음이 되어 너부러져 누운 전우를 보면서 자기도 어느 때 아니 지금 바로 저렇게 될 것은 아닌지? 모골 송연했던 예감은 그것은 목숨을 앗는 죽음이 아니라 여자로서 목숨을 걸고 지켜야할 가치를 얘기하는 것이며 꿈에 불빛 같기도 하고 짐승의 눈빛 같기도 한 빛을 보고 아이들이 걱정이 되어 달려가려는 순간 새 두 마리가 구름 속으로 저 멀리 날아가는 것이 이제야 해외입양을 암시한 것이라 생각된다.

지금 생각하니 정말 기가 막히게도 꿈이 잘 맞아 떨어 졌다.

잘 포장된 김포가도에는 가을을 영그는 누른 벼가 황금물결을 이루며 잠깐 바람에도 잘 다녀오세요. 하면서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것 같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한치 앞이 보이지 않던 그 암울 했던 시간들 장례 때에도 하나뿐인 오빠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엄마 돌아가신 것도 모르는지? 소식이 없다. 혼자 꼬박 이틀을 코 물이며 눈물이 범벅이 되어 숟가락을 입에 대지도 않고 장례를 치렀던 기억에 휴우! 새삼 한숨이 절로 나며 눈시울을 붉힌다. 그래도 용케도 참았던 그 슬픈 날들은 이젠 한갓 필름이 되어 내 머릿속에서 돌아간다.

인사불성으로 아무것도 모르고 당한 그 회한(悔恨)의 일들로 만신창이가 되어 사감님의 도움으로 함께 야간열차를 타고 서울에 왔던 그 아픈 기억들 만삭의 몸으로 해산일 가까이까지 일에 매달렸던 그 지독한 몸부림을 쌍둥이 인줄 모르고 낳은 내 아들 둘 애초에 알았다면 세상 구경조차 하지 못할 뻔 했던 그 아이들 알려고 하지 않은 것이 다행으로 여겨졌다.

같은 배를 빌려 같은 시간에 한 인간의 무책임한 욕망으로 태어난 두 아이 포대기에 싸여 자기들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해외로 입양되어 남의 나라에서 그래도 한 아이는 가정환경이 좋은 집안에서 잘 자라 국제변호사로 활동하는 훌륭한 청년이 되었다는 소식에 기쁘던 일이며 또 한 아이는 부부가 티격태격 자주 싸우는 집에 입양이 되어 뒷방에 버려지듯 정 모르고 자라 불량아이가 되어 지금도 교도소를 제집 같이 더나 더는 것을 보는 어미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자기가 키우지 못한 죄책감은 더욱 자신을 옥죄었다.

만나면 무슨 말부터 먼저 할까? 어미로 인정을 할까?

온갖 상념이 머리를 어지럽힌다.

지금은 아무 것도 생각지 말고 아이들 만나는 일 그것만 생각하자.

그렇게 생각해도 또 상념이 날갯짓을 한다. 아빠가 누구냐고 물으면 어쩌지 그게 가장 큰 걱정이다. 어떤 사람인지 뭇는다면 무어라 대답할까? 고지 곧 대로 얘기 할 수는 없다. 그래 오래 전에 몹쓸 병으로 죽었다. 말 할 것이다.

그날 어둠을 빌려 욕망을 채우고는 아무 일도 없는 듯 완벽하게 뒤처리를 하고는 밝은 날에는 하늘마저 속일 수 있다며 다른 곳에서는 민낯을 보여주며 가장 착한 척 정의로운 척 훌륭한 척 하면서 더 못된 짓도 서슴없이 할 그런 인간 일 것이다. 생각했다. 그때 이미 내 마음속에서는 그는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죽은 것이다.

지금은 파란 눈의 이방인이 두 아이를 찾아 함께 설정(薛貞)사장과 만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여 주었다.

세 사람이 만날 때 자기도 함께 자리 할 수 있느냐며 어리광을 부리며 아이같이 졸라댄다.

설정(薛貞)사장은 하나의 고민을 더 만들었지만 그렇게 하기로 마음을 정한다. 두 아들을 만난다는 큰 기쁨을 안고 비행기 트랩을 밟는다 한 자국 또 한 자국 비행기 안으로 모습을 감춘다.

김포가도 들녘에는 황금 빛 가을이 풍요롭고 구름 한 점 없는 높은 푸른 하늘에는 고향들녘의 가을같이 빨간 고추잠자리 떼가 날아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