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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여신님!

  • 작성일 2015-09-28
  • 조회수 626

 
용사 일행에게 신탁을 내리는 여신인 나 그레이프 프루츠는 아홉 살인 소심한 체스너트와, 여덟 살인 짜증나는 피치와, 그리고 여섯 살인 귀여운 체리를 데리고 모험을 하고 있다.

남자애인 체스너트는 전설의 용사로 검 한 자루만 있으면 백 명의 적을 쓰러뜨릴 수 있고, 여자애지만 대마법사인 피치는 주문 한 번으로 마을 하나를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다. 마찬가지로 여자애인 체리는 마법으로 상처를 회복해 주는 치유사다. 우리 네 명은 때로는 괴물과 만나서 싸우고, 마을 사람들의 고민을 해결해 주면서, 이 여로의 끝을 목표로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

산길을 걷다가 늑대와 마주쳤다. 늑대는 낮게 으르렁거리며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 이쪽을 노려보았다. 나는 흥분해서 소리쳤다.

"자, 너희들. 적이 나타났잖아. 먼저 공격할 생각은 없어 보이니까, 우리가 먼저 공격하자! 피치! 마법으로 늑대를 태워버려!"

하지만 피치도 체스너트도 시큰둥하게 서서 나나 다른 곳을 바라볼 뿐, 마법을 쓰거나 칼을 휘두를 기색은 없었다. 몇 번 더 말을 해 봐도 마찬가지였다. 말 좀 들으라며 울고불고 하려니, 피치가 나를 보고 한심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늑대가 어디 있다는 건데? 저거? 저게 어디가 늑대야? 그리고 아저씨, 그 마법이니 뭐니 하는 거, 대체 어떻게 쓰는 건지는 좀 알려는 주고서 쓰라고 하지 않을래?"

이 녀석은 역시 안 된다. 언젠가 이성을 잃은 내가 목을 졸라 죽여버릴 게 틀림없다. 옆에 있는 체스너트 녀석이 뭔가를 빤히 쳐다보고 있길래 시선을 따라가 보자, 체리가 고양이를 쓰다듬으면서 꺄르르 웃고 있었다.

"안 돼, 잡아먹힐 지도 몰라!" 하고 내가 허둥지둥 떼어놓으려 하자, 체리는 "응─? 그치만, 귀여운데─?" 하고 고양이를 껴안았다. 고양이는 갸릉갸릉 소리를 내면서 가만 손길을 받았다.

고등학교 2학년 남자애인 나는 여신 아르바이트를 한지도 벌써 2년이 지나, 그동안 플럼,멜론, 피어, 파인, 라임, 키위, 피칸 등등, 방학마다 서너명씩 다 합치면 열몇 명이나 되는 애들을 상대해 이제 꼬맹이들을 다루는 건 익숙해 졌다고 자신만만했었고, 우리 애가 좀 제멋대로라서~ 아직 손이 많이 가서~ 하고 걱정하던 애들 부모님들한테도 문제 없다며 하하 웃어보였지만, 이번 녀석들은 그중에서도 특출나게 짜증나는 부류였다. 체스너트는 가끔 좀 이상한 녀석이긴 해도 소심한 것만 빼면 말은 잘 듣고, 체스너트의 동생인 체리는 어려서 그렇지 그래도 귀여운데, 피치 녀석은 글렀다. 여행을 떠나던 날 내가 집에 피치를 데리러 갔을 때, 부모님 앞에서는 나한테도 정중하게 인사하고 네 네 잘 다녀 올게요 네 걱정 안 하셔도 괜찮아요 네 네 하고 예의바르게 굴어서 역시 애들은 귀엽구나 착해라 착해라 했더니, 집에서 나서자마자 날개로 하늘을 날아가는 나를 기다란 마법 지팡이로 툭툭 치면서 걷기 귀찮으니까 태우고 가라고 억지를 부렸던 것이다. "왜 아저씨는 편하게 날아가면서 나는 걷지 않으면 안 되는 건데?" "그야 나는 여신이잖아." "그럼 나한테도 그 여신의 힘으로 날개 달아줄 수 있는 거 아냐?" "그래도 이건 모험이니까, 제발로 걸어야 의미가 있지." "그런 걸 누가 정했는데?" "누가 정하고 말고 원래 그렇게 되어 있어." "언제부터?" "옛날부터." "그러니까, 누가 했는지도 모르고 언제부터인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렇게 되어 있으니까 군말말고 따르라는 거야? 아저씨 스스로 말하면서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래도 말이지, 원래 모험이란 게 처음엔 다 그렇게 되어 있는 거야." "자꾸 그러면 엄마아빠한테 말해서 아저씨 짤리게 만들 거야. 아동학대로 고소할 거라고. 못 생긴 주제에." "어?" 예상치못한 매도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그래서 날개 달아줄 수 있어 없어?" "아니, 그러니까……" "있어 없어?"

결국 못이겨서 날개를 달아 주었다. 피치 혼자한테만 달아줄 수는 없으니까 체스너트랑 체리한테도 달아 줬더니 하늘을 날면서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돌멩이를 던지거나 침을 뱉거나 하면서 깔깔 장난을 쳐서, 결국 나도 같이 걸어가는 조건으로 날개를 다시 뺏었다. "어─ 재미없어─" 하고 피치도 체스너트도 체리도 다같이 툴툴대 셋이 장난친 상대에게 사과하느라 탈진 상태였던 나는 일이고 뭐고 다 때려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그럴 힘조차도 없어서 그냥 알아서 해라 하고 포기했다. 이제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 제대로 혼을 냈어야 했다 싶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고, 후회한들 어쩔 수 없다.

밤이 깊어서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려 하니 피치가 "뭐어? 텐트? 우리를 그런 데서 재우겠다고? 아저씨나 저기 바보는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여자애더러 이런 데서 자라니 정신 나간 거 아냐? 안그래 체리야?" 하고 재잘거렸다. 체리도 "응, 나 침대가 좋아─"하고 거들어서, 결국 오늘도 동네 여관에서 자게 되었다. 기껏 가져온 텐트는 여태까지 한 번도 쓰질 못해, 나는 언짢았다. 그래도 모험 하면 역시 야영이고, 모닥불을 피워놓고 노래를 부르거나 주변에서 들려오는 동물 울음소리에 벌벌 떨고, 그러면서도 찌르르찌르르하는 벌레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잠에 드는 게 로망인데, 요새 꼬맹이들은 곱게만 자라서 그런지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한다. 애초 모험을 떠나는 용사 레퍼토리는 이제 닳을대로 닳은 것이다. 나쁜 마왕이 막 사람들을 괴롭히고, 그걸 어디서 갑자기 뿅 하고 나타난 용사가 들르는 마을마다 사건을 해결하고, 한두개씩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는 동료들과 함께 이런저런 고난과 역경과 시련을 넘어서 감동적이고 교훈적인 에피소드를 거듭하며 와아 마왕을 물리쳤다 하고 평화를 되찾는다는 틀에박힌 이야기는 이제 어린이용 동화책에서도 주류가 아니게 되었을 정도로 시시껄렁한 이야기로, 유치원 구연동화 시간에 읽어줘도 에이 선생님 요즘은 그런 거 말고 좀 더 자극적인 게 필요하다고요 지금은 판타지보다는 학원물이 대세예요 막 초능력을 쓰고 여자애 여럿이 남자애 하나를 둘러싸고 쟁탈전을 벌이고 남자애들끼리 서로 키스하고 사귀고 그런 거 있잖아요 다음에는 그런 걸로 부탁해요 하고 야유를 받을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제 아이들은 세계를 구하는 용사가 되기를 꿈꾸기보다 평범하게 안정된 직장을 얻어서 모난데없이 살아가는 걸 바라게 되어 버렸다. 적국이나 마왕처럼 무언가 분명한 적이 있었을 때는 여러분이 가난한 건 마왕 때문입니다, 저기 지나가는 애가 차에 치인 것도 마왕 때문입니다,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다면 그것도 마왕 때문입니다 하고 핑계를 대고, 사람들은 와 나쁜 마왕을 타도하자 와 하고 다들 한마음이 될 수 있었지만, 전쟁이 끝나고 아무것도 위협하는 것 없이 평화로워진 지금, 사람들은 공포에 떨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게 아니라 더 맛있는 걸 먹고 더 좋은 옷을 입고 더 재미있게 살기를 바라게 되었다. 이제 마왕 같은 것도 없는데, 왜 마찬가지인 건데? 뭔가 일이 있을 때 발벗고 나서는 건 바보같은 일이 되고, 뭐어 귀찮은데 나는 여기 가만 있을 테니까 좀 알아서 해 주면 안 돼? 하는 분위기가 보통이었다. 애초 뭔가 센 적 같은 게 있을 때 반짝 나타나 사건을 해결해 주는 게 용사의 역할이다. 쓰러뜨려야 할 적도 없고, 꿈이 매몰되어버린 세상에, 더이상 용사 따위는 필요하지 않고, 나타날 수도 없다.

여관에 들어갈 때까지 체리가 계속 고양이를 안고 있어서, "그거 언제까지 데리고 있을 거야? 더럽고 냄새나고, 갖다 버리고 오라고." 하고 피치가 핀잔을 주었다. 울먹거리는 체리에게 체스너트가 "맞아, 고양이는 이제 풀어 줘." 하고 말하려니 피치는 "너, 왜 체리한테 뭐라 그러는데? 체스너트 주제에. 고양이 정도 데리고 다닐 수 있는 거잖아? 왜 그렇게 속이 좁아?" 하고 쏘아붙이고서 그래그래 체리를 얼러서, 이번엔 체스너트가 울먹거렸지만 피치는 원래부터 체스너트한테는 전혀 신경 안 썼고 나도 별로 신경을 써 주고 싶지는 않아 그냥 내버려 두고 여관으로 들어가려 하자, 울면서 칼로 손목을 긋고 자해를 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체스너트를 달래 주었다.

"뭐야, 샤워시설도 없어? 아저씨 우리 부모님한테 돈 받았잖아? 좀 좋은 데서 재우라고. 그렇게 떼먹어서 얼마나 벌어?"

"나도 월급받는 입장이야. 그렇게 말 해도 어쩔 수 없어."

들어가자 피치는 방이 좁다고 투덜투덜 불평했다. 체리는 씻기지도 않은 고양이를 안고 이불 위에서 뒹굴뒹굴 뒹굴어 이미 이불이 흙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야, 바보, 나 씻고 싶으니까 가서 물 떠와." 피치가 명령해서 체스너트는 응, 하고 대야에 물을 떠왔다. 체스너트가 바닥에 앉아 대야에 받은 물로 피치의 발이랑 다리를 씻기고 있는 사이에 피치는 침대에 걸터앉아서 게임을 했다. 가끔씩 간지럽게 하지 말라고, 하면서 피치가 체스너트의 턱이나 얼굴을 물뭍은 발로 차면 체스너트는 미안해, 하고 사과했다.

체스너트네 부모님의 말에 따르면 체스너트는 좀 바보같긴 해도 활발하고 씩씩한 녀석이었는데, 체리가 태어난 이후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게 되자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자해를 시작했다는 모양이었다. 감기에 걸리거나, 높은 곳에서 떨어지거나,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하면 누구나 걱정해 주었던 것이다. 그중에 가장 즉각적으로 효과를 볼 수 있는 건 피부를 그어 피를 내는 거였다. 계속 날붙이로 자해를 시도하는 체스너트 때문에 집안의 가위나 식칼을 모두 숨겼는데, 그래도 거울을 깨서 손목을 긋고, 거울을 다 없애자 컵을 깨서 목에 찌르고, 그릇을 모두 쇠 재질로 바꾸고 나자 분명 꼼꼼히 체크했음에도 어디선가 면도칼 같은 걸 들여와서 피를 냈다. 그러다보니 온몸이 상처투성이고, 다른 누군가가 몸을 볼 때마다 기겁하면서 경찰에 신고해서 체스너트의 부모님은 아동학대로 몇 번이나 경찰서에 불려나갔다. 대체 왜 그러는 거냐고 물으면 사실대로 말하기 껄끄러운 체스너트는 악마가 제 몸에 달라붙어 있어요, 라고 얼버무렸다. 어떻게든 될 수 있는 대로 관심을 쏟아주어 억제해 왔지만, 체스너트의 아버지도 어머니도 더는 몸도 마음도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는 게 빤히 보이는 상태였다.

그러던 와중에 다행인지는 몰라도 체스너트에게 있어 자기에게 뭔가를 시킨다=자기를 필요로 한다=관심받고 있다는 도식이 성립된다는 것을 알게 돼서, 체스너트에게 뭔가를 시키면 자해도 하지 않고 응응 말도 잘 듣고 일 자체도 생각외로 잘 수행해 청소나 빨래나 식사 준비같은 걸 다 체스너트한테 시키기 시작한 이후로는 가정에 어느정도 평화가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덧붙여서 각각 열여섯 살짜리 식당 여직원이랑 마흔여섯 살의 유부남 은행원이랑 바람을 피고 있던 체스너트의 부모님도 그러는 동안 가정에 소홀했던 거에 반성하고 다시 사이가 좋아지게 돼서, 일단은 해피엔딩. 그런 체스너트의 습성은 무슨 일이 있으면 항상 다른 사람을 시키고 부잣집 아가씨 대접을 받고 싶어하는 피치와 얼핏 상성이 좋아 보였지만, 피치는 체스너트를 바보취급하고 무시하기 일쑤라 그렇지만도 않았다.

텔레비전에서 요새 일어나고 있는 연속 유괴 사건에 대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주로 여행하는 아이들을 노린다는 것으로, 여지껏 63명이 유괴당하고, 아이들도동행하던 어른들도 전부 토막나거나 불에 탄 채로 살해당했다고 리포터는 말했다.

"쟤들은 다 멍청하니까 저런 거에 걸리는 거야."

침대에 누워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피치가 말했다. "그야 어린애잖아? 어른한테 잡히면 어쩔 수 없다고." 내가 말하자 피치는 인상을 썼다. "어린애도 어린애 나름이지. 나라면 절대 유괴같은 거 안 당할 걸. 다 멍청하게 헤벌레해서 과자같은 거 준다는 말에 넘어가는 거 아냐. 니네 말이야, 바보랑 체리. 너희도 살고 싶으면 내 옆에 꼭 붙어 있어." 체리랑 체스너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아니, 피치 말을 듣는 게 아니라 내 말을 들어야지."

"어른 같은 건 안 믿거든." 피치는 메롱, 하고 혀를 내밀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너희 부모님도 어른이라고."

"부모님도 안 믿어. 그냥 기분 맞춰주는 게 편하니까 그렇게 하는 것뿐이야."

"그런 사고방식은 좋지 않아."

"왜 안 좋은데? 자기 앞가림은 자기가 해야 하는 거고, 다른 사람, 특히 어른들한테 의지하는 거야말로 좋지 않은 거 아냐? 어른들은 다 나쁘고 이해타산적이니까. 나는 그런 입발린 소리에 속을 정도로 바보가 아니야."

"아니, 바보 맞거든. 예를 들어서, 아까 유괴당하는 애들이 바보라 과자같은 거에 속아서 따라간다고 했는데, 만약 내가 나쁜 사람이면 어떻게 할래? 너희는 의심하지 않고서 나를 계속 따라오고 있는데, 사실 내가 저 유괴단의 일원이고, 이렇게 여행하는 척 하다가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너희를 데려가는 걸수도 있잖아."

내가 말하자 피치는 말을 멈추고, 셋 다 창백한 표정으로 이쪽을 보았다. 나는 당황해서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 내가 말하고 싶었던 건 피치는 바보가 맞고 유괴는 바보니 뭐니 그런 거랑은 상관이 없다는 거였어, 하고 해명했지만, 어쩐지 불신의 싹이 돋아버린 모양으로, 그대로 별다른 회화 없이 잠자리에 들었다. 찜찜한 기분이었지만 어차피 내일 아침이 되면 다 잊어버리겠지, 하고 털어버렸다.

애들이 다 잠든 걸 확인하고, 나는 방에서 나와 화장실로 갔다. 변기에 앉아 바지를 내리고 밖으로 나온 고추를 한 손으로 쥐고서 위아래로 흔들었다. 눈을 감고 고개를 뒤로 젖히자 하아, 하고 숨이 흘러나왔다. 아침부터 밤까지 애들이 옆에 쭉 붙어 있기에, 다들 잠든 한밤중밖에는 이런 일을 할 시간이 없다. 어쨌든 나는 한창 때인 남자애고, 하루만 지나도 잔뜩 쌓여서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씻지 못해서 조금 찝찝했지만 몇 분정도 그러고 있는 사이 그런 건 전혀 신경쓰이지 않게 되어 버리고, 그저 내 손바닥만한 길이로 팽팽하게 팽창되어서 약하게 욱신거리고 있는 고추를 만지작거리는 거에만 정신이 집중된다. 멈출 수 없는 쾌감의 파도가 조금씩 조금씩 세기를 더하면서 다가와, 낮게 철썩이던 느낌은 손을 더 빠르게 움직이자 쉬지않고 몰려온다. 끼이익. 어, 지금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았나? 지금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성기 안쪽에서 무언가 꿈틀대는 느낌이 든다. 나는 쾌감에 빠져서 계속 손을 움직인다. 아앗, 더는 못 참겠어, 이제, 하고 절정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자, 화장실 문이 열리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쪽을 바라보는 여자애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흥분에 두근두근거리던 심장이 멎어버린 것 같았다. 여자애는 여관 유니폼을 걸치고 있었다. 어라, 여기 여자화장실이었나? 하지만 밖에는 소변기가 보인다. 내가 문을 안 잠궜었나 보자 걸치는 식으로 되어 있는 자물쇠는 헐렁해져 있어, 평범하게 문을 여는 것만으로도 풀려버릴 것 같았다. 아아 제길, 하고 생각하고, 그와 동시에 내 머릿속은 어떻게 행동하고 설명해야 할지 뒤죽박죽 엉망진창이고, 당황해서 뭐라고 말도 못하고 있으려니, 여자애는 씩 웃었다.

"역시 그레이프 맞구나. 오랜만이야."

나는 어……? 하고 소리를 냈다. "누구야?" 나는 커다래진 고추를 내놓은 채로 물었다. 순간 상황을 깨닫고 바지를 올리려 하자, 여자애는 화장실 칸 안으로 들어와선 바지춤을 쥔 내 팔을 잡았다. "어, 나 잊어버린 거야? 진짜? 와아, 실망이다." 반쯤 장난치는 듯한 목소리를 듣고, 나는 떠올렸다. 내 예전 여자친구였던 애플. 중학생 때 같은 반으로 반 년 정도를 사귀다가 애플이 이사를 가 버리는 바람에 그대로 헤어져 버렸었다. "아, 애플?"

"이제 생각난 거야?"

"여기서 일하고 있었어?"

"응. 여기 우리 오빠가 하는 가게거든."

"그렇구나. 그보다 왜 내 팔 잡고 있는 거야? 부끄러우니까 좀 놓아 주지 않을래?"

"아, 그건……." 하고 애플은 아직 무럭무럭 커져서 밖으로 노출되어 있는 내 고추를 힐끗 보았다. "역시 남자애들은 다들 이런 거 하나보네."

"뭐, 그야 그런데, 아니 좀 진짜 부끄럽다니까."

"혼자 하면 기분 좋아?"

"어?"

애플은 내 팔을 잡은 반대쪽 손으로 내 성기를 움켜쥐었다. 아앗, 하는 소리가 나도모르게 새나왔다. 애플은 쿡쿡 웃고서 성기를 쥔 손을 쓰다듬듯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번 움직일 때마다 아, 아아아, 하는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직접 하는 거랑은 전혀 다른 느낌으로, 여지껏 하던 거랑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기분이 좋고, 자극적이고, 짜릿했다. 상쾌하고 뾰족뾰족한 입자가 혈관을 찢어발기면서 온몸을 달려나가는 것 같았다. 왜 이렇게나 느낌이 다른 거지? 자기 스스로 간지럼을 태우면 그다지 느낌이 없지만, 남에게 당하면 죽을 것처럼 웃어버리게 되는 거랑 비슷한 건가 생각했다. "이렇게 만져주면 기분 좋아?" 애플은 말했다. 애플이 상반신을 내 쪽으로 기울여 얼굴과 가슴이 바로 눈앞으로 다가왔다. 길고 가느다란 팔다리, 희고 깨끗한 피부, 큰 눈과 귀여운 얼굴이 눈 한가득 들어왔다. 그리고 그동안 계속 부드러운 손은 내 성기를 감싼채 움직여, 나는 도저히 저항할 수 없이 애플에게 몸을 맡긴 채 부들부들 떨었다.
"응? 여기 막 움찔거리는데. 쌀거 같아? 벌써 쌀거 같은 거야? 아, 아까부터 계속 혼자 자위하고 있었지. 정말 변태구나 그레이프는. 완전 쓰레기야. 내 손이 그렇게도 기분좋아? 응? 대답해 봐. 대답해 보라니까?" 애플의 말이 내게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유리창 너머에서 말하는 것 같이 흐릿한 느낌으로, 단어의 의미같은 건 상관없이 그저 목소리의 울림을 듣는 것만으로도 기분좋고, 애플의 손에 몸을 맡기고서 자극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고작이고, 그리고 그것 말고는 더는 아무것도 필요없었다. 애플이 손을 빠르게 움직이자 머리가 펑 폭발했다. 정말로 폭발한 건 아니지만 머릿속이 새하얗게 돼서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눈을 뜨고 있는지, 입을 열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온몸의 감각이 애플이 꾹 쥐고서 흔들고 있는 성기에 집중되어, 아으, 으아앗, 우아, 하고 계속 원치않게 소리가 흘러나왔지만,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어 간헐적인 울림이 되고, 이제 나올 것 같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아아아아 제발 뭐든지 할게 원하는 게 있으면 너 시키는 거 뭐든지 할 수 있으니까 그 손 멈추지 말고 끝까지 해 줘, 하는 애원만이 머릿속에 떠다니고, 몸 안쪽에서는 꾸물꾸물한 무언가가 요동치고, 세찬 전기가 찌릿찌릿 이미 감각이 없어져버린 몸 곳곳을 자극하고, 내 몸속에 있는 걸 다 쏟아내 버릴 기세로, 절정에 다다를 준비를 한 순간, 손이 멈췄다.

어?

자극이 멈추자 눈앞이랑 귀가 핑 돌아, 내가 지금 어디에 있고 뭘 하고 있었는지 순간 알 수 없었다. 잠깐 지금 내 거기 똑바로 붙어 있는 건가? 너무 자극이 커서 떨어져 버리고 그런 거 아닌가?

"아직 안 돼. 더 더 기분좋아지고 싶지? 그럼 나한테 몸을 맡겨. 손으로 가버리는 건 아깝잖아. 내 말만 들으면 방금 거보다 훨씬 훨씬 더 기분좋아질 수 있어. 알겠지?"

나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착한 아이네." 애플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얼굴을 더 가까이 가져다 대고 입을 맞췄다. 입술의 감촉이 느껴지고, 이윽고 혀가 안으로 들어왔다. 끈적하고 뭉글뭉글한 게 입안을 헤집는 걸 저항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따뜻한 혀가 입천장을 훑을 때마다 정신을 놓을 것 같았다. 잠깐 끊겼던 쾌감이 이번에는 아래가 아닌 위쪽에서부터 빙글빙글빙글빙글 온 몸을 돌아다녔다. 나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게 되어, 이대로 애플이 뭔가를 해오는 걸 순종적으로 기대하면서 기다리고 있자, 애플의 목덜미에 있는 악마의 표식이 눈에 들어왔다.

"자아, 착하지. 그대로 가만히 있어. 훨씬 더 기분좋은 걸 해 줄 테니까." 애플은 내 입술에서 입을 떼고, 이번에는 고개를 아래쪽으로 가져갔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내 성기를 붙잡고 혀를 내민 채로 아 입을 벌렸다. 내 침과 섞여 질척해진 애플의 혀와 입안이 눈에 들어왔다. 당장이라도 내 거기를 앙 물 것 같았다. 안 된다. 이런 걸 당했다가는 정말로 어떻게 되어 버리고 말 게 틀림없다. 나는 남아있던 내 이성과 인내심을 모두 끌어모아서, 무릎으로 애플의 턱을 올려쳤다. 내 성기에서 손이 떼이고, 뒤로 넘어가는 애플의 가슴을 발로 찼다. 애플은 화장실 바닥에 뒤로 내동댕이쳐졌다. 나는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고서, 우웁, 하고 신음하는 애플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들어올렸다.

"너, 무슨 꿍꿍이야?"

"콜록, 욱, 쿡쿡쿡……. 그레이프, 너, 이런 취향이었어? 이런 거 나도 싫지는 않은데."

"헛소리 말고 대답해."

"왜 그러는 거야? 입으로 하는 거 싫었어? 그럼 좀 더 자극적인 게 좋아? 안와라든가. 너를 위해서라면 눈알 하나 정도는 빼 줄 수 있는데."

나는 머리카락을 움켜쥔 채 애플의 머리를 벽에 두어번 박았다. 쿵, 쿵, 하고 소리가 울리고, 벽의 뾰족한 부분에 긁혔는지, 애플의 머리카락에 빨간 게 스며나왔다.

"장난치지 말라고. 너, 목덜미에 이거 뭐야?"

"아……. 눈치챘어……? 어쩔 수 없네. 알았어. 얘기해 줄게. 너 말이지, 여신이잖아? 그러니까, 내가 너랑 섹스해서, 네 몸속에 있는 신성이라든가, 양심이나 도덕심같은 거, 다 뽑아내서 먹어버릴 생각이었거든. 후후후. 그치만, 그런 것도 나쁘지 않잖아? 기분좋아서 계속 귀엽게 소리냈으면서.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그냥 가만히만 있으면 내가 다 알아서 해 줄게."

실실 웃는 애플의 얼굴을 주먹으로 세게 쳤다. 애플은 아, 하고 소리를 내고서, 피랑 침이 엉겨붙은 부러진 이빨을 내 얼굴에 퉤 뱉었다. 나는 다시 애플을 때렸다.

당분간을 맞고 있던 애플은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하. 계속 이러고 있고 싶으면 나야 상관 없지만, 너는 이렇게 있을 때가 아니었어. 바보같기는."

"무슨 소리야?"

"안 알려 줘. 지금와서 돌아가 봐야 다 끝나 있을 걸. 이렇게 된 거 나랑 조금 더 놀지 않을래? 한번쯤은 귀찮은 건 다 잊어버리고 노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야."

피치, 체스너트, 체리. 아이들을 떠올렸다. 나는 계속 중얼거리는 시끄러운 애플의 머리를 다시 벽에 박았다. 이번에는 말을 멈추고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일어서서 화장실에서 나가려 하자, 아직 커진 채인 자지가 움찔거리며 투명한 액체가 크게 한 방울 나와 줄기를 따라 주르륵 흘러내렸다. 입술을 깨물고서 바지를 올렸다.

서둘러 방으로 달려갔다. "야, 너희들!" 하고 소리치면서 문을 열자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불은 켜진 채로, 침대 위는 어질러져 있고, 창문은 텅 열려 있었다. 바깥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커튼이 흔들렸다. 늦었다. 애플은 시간을 벌기 위해서 나에게 왔던 것이다. 내가 아이들에게서 떨어지게 되는 것을, 녀석은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하하하하, 이미 늦었다고 여신님. 용사 일행은 이미 끝났어."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들리자, 그쪽에는 남자가 서 있었다. 피투성이가 된 애플을 안고 있었다. 애플이 흘린 피로 옷이 다 얼룩져 있었다.

"너는?"

"스트로. 애플의 오빠야."

스트로는 정신을 잃은 애플에게 키스하며 피가 흐르는 얼굴을 핥고, 애플의 가슴을 꽉 움켜쥐고 만지작거렸다. "아아, 애플, 이렇게 험한 꼴이 되어서는. 여신님 너도 참 배려라는 게 없구나. 여자애를 이렇게 만들고."

"애들은 어떻게 됐어?"

애플에게서 입을 떼고, 스트로는 입가를 핥았다. "동료들이 이미 끌고갔어. 이제와서 따라잡을 수는 없을 걸. 네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그냥 가만히 오늘 밤을 보내고서, 이번 여행은 실패라고 가서 전하면 되는 거야. 자아, 그동안, 나랑 내 동생이랑 같이 놀지 않을래? 나도 동생도 여럿이서 하는 걸 좋아하거든. 정신을 잃었지만, 이것도 재밌을 것 같아."

나는 몸을 낮추고 스트로에게 빠르게 접근했다. 애플을 내던지고서 대항 자세를 취하려는 스트로의 가드를 뚫고 어퍼컷을 날리고, 옆구리를 무릎으로 가격했다. 케헥, 하고 소리를 내며 순간 자세가 무너진 녀석의 머리를 잡아 얼굴을 무릎으로 찍었다. 발목을 세게 차 바닥에 넘어뜨리고서, 쓰러진 스트로의 코를 밟아서 부러뜨렸다. 비명이 울려퍼졌다. 이어서 손가락도 분질렀다. 여관의 손님 몇 명이 소란에 밖으로 나왔지만, 광경을 보고 다시 들어가 버렸다. 방해하는 녀석이 없다면 편하다. 손가락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아 팔과 다리도 부러뜨렸다.

"대답해. 너희는 누구야?"

스트로는 이히히히히히 기분나쁜 웃음을 흘렸다. "우리는 비밀결사 블라이트. 요새 화제가 되고 있는 유괴 사건, 알고 있지? 모두 우리가 한 거야. 모두 여행하고 있는 용사 일행들이지. 그런 녀석들을 사전에 처리하는 게 우리 일이야."

"왜 그런 짓을 하는 거지?"

"그야, 용사같은 게 있으면 귀찮잖아. 용사의 역할은 사악한 악당을 쓰러뜨리는 거고, 이야기는 언제나 용사의 승리로 끝나게 되어 있어. 그러니까 악당인 우리는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없애버려야지. 용사같은 게 되어버리기 전에."

"요즘 세상에 용사같은 건 없다고. 쓸데없는 걱정이야."

"용사가 있고 없고는 상관 없어. 다만 용사가 되려고 하는 녀석이 있고, 가능성이 있다는 게 문제야. 예방접종이나 마찬가지지."

스트로는 자신들의 계획을 순순히 불었다. 원래 악당을 쓰러뜨리고 나면 이렇게 꿍꿍이같은 걸 다 털어놓는 게 정석이다. 그래야 이야기를 진전시킬 수 있다. 너한테는 알려줄 수 없다면서 자결하려는 녀석도 가끔씩 있긴 하지만, 그래도 주변 어딘가에는 반드시 필요한 정보가 있으니까 상관없다.

"애들은 어디에 있어?"

"그건 알려줄 수 없어. 그보다 어때? 우리랑 같이 일해보지 않을래? 돈이라면 얼마든지 줄 수 있어. 애들 뒤치닥꺼리 따위랑은 비교도 안 될 걸. 원한다면 지금 당장……"

시끄럽게 구는 스트로의 머리를, 나는 박살냈다. 이 녀석은 이제 필요없다. 끄집어낼 수 있는 정보는 다 말했고, 더 말을 걸어 봐야 영양가없는 대사를 반복할 뿐이니까, 여기서 처리한다. 나는 옆에서 쓰러져 있던 애플의 머리도 부숴버린다. 뇌가 흘러내려 피와 함께 복도를 적셨다. 나는 널브러져 있는 스트로와 애플 남매를 내버려두고 여관의 다른 방 문을 노크했다. 똑똑똑, 누구세요, 어 저기 저 방에 있던 애들? 글쎄 나는 잘 모르겠는데 아까 좀 소란스럽더니 금세 조용해졌어, 응, 내가 아는 건 그것 뿐이야, 그럼, 쾅, 똑똑똑, 네, 아 저쪽 방에 있던 애들 말인가요…….

전부 돌아다녀 보았지만 마땅한 정보는 얻을 수 없었다. 방으로돌아가 이런저런 곳을 뒤져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실마리가 없다. 나는 당황했다. 어떤 사건에 대해, 다음으로 나아가기 위한 실마리는 꼭 존재한다. 없을 리가 없다. 없으면 안 된다. 그건 이 세계의 전제나 구성을 부정하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 세계는 이제 완결되었다는 것으로, 더이상 아무런 사건도 실재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나는 계속 존재하고 있다.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다음으로 나아갈 실마리가 어딘가에는 있다.

그리고 그때, 문밖에서 야옹, 하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보자 거기엔 고양이가 있었다. 아까 체리가 데리고 온 고양이였다.

고양이는 다시 한번 야옹, 하고 울고서, 어딘가로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따라오라는 거야?" 나는 고양이를 따라갔다. 혹시 몰라 간단한 물건이 든 여행가방을 챙겼다. 고양이는 여관 밖으로 나가, 마을 바깥의 어딘가로 향했다.

어디까지 가는 거야, 하고 따라가고 있으려니, 나는 나무둥치에 앉아 훌쩍훌쩍 울고 있는 체리와 만났다. 훌쩍거리던 체리는 나를 보더니 으아아아앙 크게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다가가 체리를 안고 얼렀다.
"어떻게 된 거야? 피치랑 체스너트는?"

"흐아아앙, 힉, 끅, 흐윽, 피, 치, 언니랑, 오빠, 끌려갔, 흑, 어."

"어디로 갔는지 알아?"

체리는 계속 울면서 방향을 가리켰다. 제대로 말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일단 체리를 업고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기로 했다.

몇 분이 지나자 겨우 체리가 진정했다. "어떻게 된 거야?"

"응, 그러니까, …깨어나 보니까 왠지 바깥에 있고, 모르는 사람한테 업혀 있어서, 막 소리지르니까, 피치 언니가 나한테 도망가라고 해서, 계속 뛰어서, 거기 앉아 있었어."

"도망쳐? 따라오는 사람 없었어?"

"있었는데, 피치 언니가 막 이렇게이렇게 해서, 나만 안 잡혔어. 언니랑 오빠는 둘 다 그 나쁜 사람들한테 계속 잡혀 있어."

나는 날개를 펼쳐 체리가 가리키는 쪽으로 날아갔다. "여기야." 하고 체리가 말해 멈춰섰다. "여기서 도망쳤어."

멈춘 곳은 산길로, 이상한 녀석들이나 피치나 체스너트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주위는 나무에 덮여 있어 보이지 않고, 딱히 건물 같은 것도 없었다. 막다른 길이다. 어떻게 하지? 단서를 찾으려다가 지금 체리가 업혀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여신의 힘을 이용해 피치와 체스너트가 잡혀간 곳을 찾았다. 둘은 산 중턱에 있는 동굴에 있었다. 나는 동굴로 날아가 입구에서 체리를 내려 주었다.

등에서 내린 체리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체리를 데리고 가야 할지, 두고 가야 할지 갈등했다. 나는 아이들이 없으면 여신의 힘을 쓸 수 없지만, 데려갔다가는 자칫하면 체리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 그렇게 둘 수는 없다. 동굴 외부에 적은 없기에, 나는 체리를 여기에 두고 가기로 결정한다. "이쪽에 숨어 있어. 나는 피치랑 체스너트를 구하러 갈 거야. 내가 오기 전까지 절대 나오면 안 돼."

"응." 체리는 끄덕였다. 동굴로 들어가려고 했을 때, 체리는 저기, 하고 말했다.

"아저씨, 실은, 아까 아저씨가 나쁜 사람들이랑 한패일지도 모르겠다고 했던 거, 진짜가 아닐까 생각했었어. 미안해. 그치만 나랑 언니오빠를 구해 주려고 하고 있으니까, 아저씨는 분명 나쁜 사람이 아닐 거라고 생각해. 언니랑 오빠 꼭 구해 줘. 계속 같이 여행하고 싶어."

체리는 눈물이 말라붙은 얼굴을 닦고서 한가득 웃음을 지었다. 나도 살짝 웃어 대답했다

동굴 안으로 들어가자 안은 어두웠다. 조금 걸으니 끝이 나왔다. 다른 곳으로 통하는 길이 없는지 찾아 보았다. 배낭에서 손전등을 꺼내 불을 밝히자 바닥에 내 것이 아닌 발자국이 나 있는 게 보였다. 발자국을 따라가니 한구석에서 끊겨 있어, 보자, 아래로 통하는 숨겨진 문이 있었다. 문을 열자 안쪽을 향해서 계단이 쭉 나 있어, 나는 아래로 내려갔다.

안쪽에는 횃불이 밝혀져 있어, 손전등을 끄고 나아갔다. 말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복도 중간의 방 안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상대는 둘. 문 바깥에 있다가 배낭에서 나이프를 꺼내들고 뒤를 덮쳤다. 있던 건 남자 하나랑 여자 하나로, 내가 나타나자 여자 쪽이 깜짝 놀라며 나를 보았다. 뭐가 있냐며 뒤를 돌아보는 남자 쪽의 급소를 노려 칼날을 박아넣었다. 피가 꿀렁꿀렁 스며났다. 여자가 뒤를 보이며 도망치려 해, 나는 나이프를 더 깊게 쑤셔박고서 달려가는 여자를 붙잡았다. 바닥에 쓰러뜨려 목을 졸랐다.

"애들은 어딨어?"

여자는 내가 온 복도를 가리켰다. "안쪽." "살아 있어?" 끄덕. "너희 일당은 전부 몇 명이나 있지?" "없어." "없다고?" "다 죽었어. 우리가 끝이야" "왜?" "잡아먹혔어." "누구한테?" "악마." 악마라고? 무슨 말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이정도면 됐다. 손에 힘을 주고 움직이지 않게 될 때까지 기다리고서, 둘의 숨통을 끊고 복도 안으로 향했다. 중간에 몇 개인가 방이 있었지만 누군가와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복도 맨 안쪽의 방으로 들어가자 불쾌한 냄새가 훅 풍겼다. 방은 넓어, 어떤 종교시설이라도 되었는지 가운데 연단과 십자가가 세워져 있고, 십자가 한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가 못박혀 있고, 양쪽으로 의자가 늘어서 있었다.
나는 피치와 체스너트를 불렀다. 인기척은 없었다. 그 녀석, 거짓말을 한 건가? 하지만 여기까지 오면서 방은 모두 체크했다. 애들이 여기에 있다는 것은 내가 여신의 힘으로 체크한 것이니까 틀림없다. 그렇다면 어디에? 지나온 방 어딘가에 숨어있거나, 숨겨져있던 건가?

그리고 연단 앞에 서서, 나는 눈치챘다. 어두워서 처음에는 잘 알 수 없었지만, 바닥에 토막난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이상한 냄새의 정체는 이거였다. 그리고 십자가에 매달려 있던 것도 예수 그리스도 같은 게 아니다. 매달린 건 체스너트다.

"체스너트?" 이름을 부르자 고개를 숙이고 있던 체스너트는 눈을떠 이쪽을 보았다. 옷이 모두 찢어져 알몸이 되어 있었다. 상처투성이인 몸이 그대로 보였다.

"안 돼, 아저씨, 도망쳐. 여기 있으면 안 돼. 죽을 거야."

"죽다니, 누구한테?"

"악마한테."

그 악마란 게 뭐야?, 라고 물으려고 한 순간, 악마가 덮쳐왔다. 악마는 체스너트의 몸, 그러니까, 눈, 코, 입, 귀, 요도, 항문, 몸에 있는 구멍이란 구멍에서 한꺼번에 뿜어져나와 형체를 만들었다. 악마는 내게 칼을 휘둘러, 팔을 베여, 베인 왼팔이 잘려 바닥에 떨어졌다. 어?

나는 비명을 지르면서 도망쳤다. 뭐야 저거? 진짜 악마? 저런 게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잘린 팔에서 피가 솟아났다. 여신의 힘으로 팔을 고치려 했지만, 이 힘은 용사인 아이들이 없으면 쓸 수 없고, 저기 있는 체스너트는 용사가 아니라 악마니까 안 된다. 나는 바깥으로 도망쳐 문을 닫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우선 체리가 있는 곳으로 가서, 체리를 데리고 와서, 여신의 힘을 발휘해서 싸울 수밖에 없나? 하지만 그러면 체리가 위험해 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 피치나 체스너트한테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른다.

피치는 어디에 있지?

쟤들은 다 멍청하니까 저런 거에 걸리는 거야. 나라면 절대 유괴같은 거 안 당한다고.

나는 피치의 말을 떠올렸다. 영악한 녀석이니까, 체리를 도망치게 한 뒤에, 체스너트만 버려두고 혼자 어딘가로 도망쳤을지도 모른다. 아마 그럴 게 분명하다. 나는 체스너트를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했다. 악마이긴 해도 악마 그 자체가 아니라 악마에 씌여 있는 것이고, 그렇다면 체스너트의 육체나 영혼은 따로 존재하고, 저렇게 가만히 내버려 뒀다가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나는 체스너트를 구해야만 한다.

하지만 악마 같은 거에 대항하는 건 무리다. 맨손이나 간단한 무장으로 싸울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리고 오류가 있다는 걸 문득 깨닫고 나는 방금 세웠던 가설을 부정했다. 피곤해서 머리가 멍해진 건가 생각했다. 피치는 도망치지 않았다. 여기 어딘가에 있다. 아까 피치와 체스너트가 어디있는지 찾았을 때, 둘 다 여기 동굴 안쪽에 있다고 나왔었다. 이건 여신의 힘으로 찾은 거니까 오류는 있을 수 없다. 나는 배낭에 있던 붕대로 어떻게든 팔을 지혈하고, 방을 돌아다니면서 피치가 있을만 한 곳을 찾았다. 하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피치! 있으면 나와 봐!" 계속 소리를 질러 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 뿐이다. 악마가 있는 안쪽의 방. 저기 어딘가에 피치가 있다.

다시 복도 안쪽으로 향하며, 나는 최악의 경우를 상상했다. 그사이 피치가 악마에게 잡아먹혀, 더는 남아있지 않게 된 것을.

문을 열자 악마가 이쪽을 돌아보았다.

"피치는 어디에 있지?"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예상했던 바다. 애초 저 녀석한테 언어능력이 있을 거라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머릿속으로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뭐야, 이거? 나는 악마를 보았다. 그래, 나다. 다시 목소리가 퍼졌다. 이건 악마가 내 머릿속으로 직접 흘리는 목소리다.

생각을 읽을 수 있는건가? 그렇게 생각하자 그렇다는 대답이 퍼졌다. 너는 누구야? 악마. 왜 내 팔을 자른 거지? 잡아먹으려고. 나를 꼭 먹어야 하는 건가? 그렇지는 않다. 그럼 살려주면 안 될까? 그럴 수는 없다. 어째서? 나는 악마니까. 과연 납득할 만 한 대답이군. 그래서 피치는 어디에 있지? 가르쳐줄 수 없다. 체스너트는 어떻게 된 거지? 살아 있다. 죽일 건가? 아니. 그러면? 살려둘 거다. 너는 지금부터 어떻게 할 거지? 우선 너를 죽이고, 다른 인간들도 죽일 거다. 왜? 악마니까.

어쨌든 말은 통해도 이야기는 안 통한다는 건 분명한 모양으로, 그래도 나는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를 정하기 위해 악마에게 계속 질문했다. 왜 체스너트의 몸 안에 있던 거지? 녀석의 안에는 증오나 분노나 여러 부정적인 감정이 모여 있어 내가 만들어지기 알맞은 환경이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나의 정신은 체스너트의 내면 세계로 날려갔다. 유복하지는 않았지만 만족스러웠던 유아기. 동생 체리의 탄생. 오빠로서의 부담감. 어머니의 불륜 현장 목격. SM 플레이를 곁들인 성관계 현장이었음. 자신도 체리도 관심 밖이었기에 사실상 혼자 동생을 키움. 계단에서 실족. 크게 다치지는 않았으나 그때만은 아버지도 어머니도 잠시나마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여 주었음. 낫고 나자 원상복귀. 아버지의 불륜 현장 목격. 사실상 강간이었음. 부모 양쪽 다 바람 상대에게 돈을 갖다바치면서 가정 파탄 직전. 관심을 끌기 위해 자해를 시작. 별다른 효과는 없었음. 이번엔 부모의 불륜 상대에게 찾아가서 자해하며 그만 둬 달라고 애원. 이번에는 효과가 있어 양쪽 다 상대 쪽에서 이만 그만 두자고 결별 선언. 부모는 차였다는 것에 충격받았으나 곧 가족들이 어떤 꼴이 되어 있었는가를 알고 정신을 차림. 자해가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해 계속해서 자해 시도. 도중에 자신이 부모 대신 집안일 같은 걸 해 주면 기뻐해 준다고 생각해 가사 전반을 도맡기 시작.

이런 일련의 사건 도중에 내면에 악마가 생겨나, 대충 사건이 해결된 것처럼 보인 이후로도 자해를 부추기거나 하면서 안쪽에서 체스너트의 정신을 파괴하기 시작해, 악마는 점점 몸집을 불려왔다. 그리고 때를 보고 있던 도중 비밀결사 블라이트에게 납치당해 살해당할 위기에 처해서, 마침내 현실에 현신하여 체스너트를 위협하는 녀석들을 모두 죽여버린 것이다.

요컨대 이 악마는 체스너트의 몸 안에서 생겨난, 건지 아니면 단순히 기생했던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런 것으로, 체스너트의 부정적인 감정의 결정체다.

더 이야기할 건 없을 것 같으니, 이만 너를 잡아먹겠다. 악마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퍼졌다.

안 된다. 그럴 수는 없다. 물론 내가 살고 싶은 것도 있지만, 내게는 할 일이 있다. 나는 용사 일행을 이끄는 여신으로서, 그리고 아이들 앞의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 사악한 악마를 쓰러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어른이래 봐야, 겨우 열여덟 살이잖아? 애들보다 몇 살 더 많을 뿐 똑같은 애면서.

그야 그렇다. 지혈했다곤 해도 잘린 팔에서는 계속 피가 스며나오고 있다. 아픔이 온몸을 찌르고 있다. 나는 한쪽 팔을 잘리면서까지 이렇게 헌신적일 필요가 있는 건가? 겨우 애들을 데리고 여기저기 한 바퀴를 돌고 나서 헤어지는 아르바이트 따위에? 나도 여태 살면서 모범적인 어른 따위는 텔레비전이나 신문 기사 같은 곳에서밖에는 본 적이 없다. 이렇게 열낼 것 없이 그냥 다른 사람처럼 문제에 끼어들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게 평범한 거다. 여기서는 그냥 애들을 버려두고, 체리한테 가서 여신의 힘으로 내 팔을 고치고, 아 죄송합니다 중간에 사고가 있어서 피치랑 체스너트는 죽어버렸습니다 하고 보고하면 되는 것이다. 비난당할지도 모르지만 이건 사고니까, 자기네들이어도 구할 수 없었던 건 마찬가지다. 나한테 뭐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개인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예상밖의 사고 같은 거에 하나하나 진지하게 대응하고 있을 수는 없다.

나는 아직 열여덟 살이고, 어리고, 내년에는 대입 시험도 봐야 하고, 이런 애보기 아르바이트 말고도 신경써야 할 게 산더미처럼 많다. 당장 개학하고 볼 시험도 있고, 취직도 걱정해야 하고, 결혼이나 집 마련도 걱정해야 한다. 애들 앞에서 잘난 척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잔뜩잔뜩 쌓여 있다.

그게 누구한테 중요한 거지? 물론 나한테 중요한 거다. 나한테 중요한 것만 생각하면 되는 건가? 그러면 뭘 더 생각해야 하지? 그야 사회라든가, 이웃이라든가, 뭐 그런 것도 중요하지 않나? 어째서? 어째서라니, 그야. 어차피 주위의 다른 사람을 신경쓰는 것도 결국 자신을 위해서 아닌가? 다른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비치고 싶어서, 능력있는 사람으로 비치고 싶어서, 다른 사람을 돕거나 생각하는 것으로 타인에게도 친절한 나를 연기하고 자기만족을 얻고 싶어서 아닌가? 그럴지도 모른다. 그럴지도 모르는 게 아니야. 그냥 그거다. 그런가? 그렇다.

여태까지 몇 명이나 되는 사람을 죽여 왔으면서, 왜 이제와서 착한 척 하는 건데? 남을 상처입히고, 목숨을 빼앗는 것조차 주저하지 않은 주제에, 그래봐야 전혀 설득력은 없다고. 확실히 맞는 말이다.

악마라는 건 인간 내면의 부정적인 감정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그 사람이 걸어온 인생 그 자체나 마찬가지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다. 빛이 비치는 쪽으로 시선을 향하고 무시하고 있을 뿐, 악마 또한 스스로가 부정하고 있거나 부정하고 싶어하는 자기 자신이다. 표리일체. 억압한 감정. 악마가 나쁜 게 아니다. 마음에 안 드는 걸 악마라고 이름붙여서 혐오의 대상으로 삼는 것뿐이다.

애플이 말한다. 아까 하던 거, 마저 하지 않을래? 나는 끄덕인다. 애플은 내 성기를 입에 물고 빨기 시작한다. 혀가 감기는 감촉이 따뜻하고 기분좋다. 애플이 입을 움직일 때마다 찌릿찌릿하고 뜨거운 느낌이 아랫도리에서부터 온몸에 퍼지고, 여태까지 하던 생각이나 고민같은 건 멍하니 흐려진다. 이대로 있으면 되는 거다. 별로 다른 건 생각할 필요 없다. 자기 스스로 기분좋은 걸 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애플의 한쪽 눈을 파내고 그 안에 움찔거리는 성기를 쑤셔넣고서 앞뒤로 움직이자 온몸이 녹아버릴 것 같은 느낌이 닥친다. 머릿속의 비어있는 부분을 거쳐 몰캉한 뇌에 직접 내 귀두 끝부분이 닿는다. 아아, 이거 기분좋네. 다음번에는 손목을 후벼파서 단면에다가 넣어 볼까. 두개골을 열어 뇌에 직접 끼워넣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 모른다.

나는 체리와 만나서 여신의 힘을 발휘해 내 팔을 고치고, 살아있으면 귀찮아질 것 같으니까 체리도 죽여버리고, 적당히 혼자 산길에서 굴러서 다친 척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서 아하하 죄송합니다 중간에 사고가 있어서 피치랑 체스너트랑 체리랑 다 죽어버렸어요 하고 회사에 보고한다. 애들의 부모는 울면서 나한테 뭐라고들 하지만, 체리랑 체스너트의 부모한테는 나를 매도할 자격따위는 없고, 피치는 잘은 몰라도 애가 그모양인 걸 보면 가정교육이 제대로 안 된 것 같으니까 마찬가지다. 나는 예의상 미안해 하는 척을 한다. 그래도 이건 사고니까 어쩔 수 없다. 봐, 나도 다쳤다고? 여기 상처도 있잖아? 나도 다쳤는데 뭐가 문제야?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여신 아르바이트 따위는 그만둔다. 시험공부를 하고 평소 관심이 있던 같은 반의 여자애를 꼬실 계획을 세운다. 이게 정상인 거고, 평범한 거다. 용사니 여신이니 하는 바보같은 건 훨씬 전에 버리는 게 맞았다. 나는 어른이 될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른? 어른이 뭐지? 어릴 적에 품고 있던 꿈이나 로망을 말도 안 된다며 짓밟고, 부정하는 게 어른인가? 귀찮은 일 같은 건 다 뒤로 미뤄두고, 이게 현실이라면서 정작 현실을 부정하는 게 어른인가? 뭐 그런 셈이지. 정말로? 정말로.

아니,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서 그럴 리가 없다. 적당히 했으면 속았을 지도 모르겠지만, 이건 좀 너무 나갔다. 나는 아까부터 내 머릿속에서 이상한 소리를 하는 악마를 끄집어낸다. 나는 결코 체리를 죽이는 일따위 하지 않았고, 애초 동굴 지하에 있는 시설의 안쪽 방에서 나가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체스너트가 매달려 있는 십자가가 있는 방에 서 악마와 마주보고 있다.

어렸을 때 용사가 나오는 이야기를 읽고, 나는 쭉 용사를 동경했다. 마법을 쓰고, 용을 타고 날아다니고, 나쁜 적을 쓰러뜨리고, 예쁜 공주님을 구출해서 결혼하는 그런 이야기. 조금씩 나이를 먹으면서 그런 꿈은 점점 흐려져 갔지만, 아직도 내 마음 속 한켠에는 그대로 남아 있다. 그래서 나는 용사를 이끄는 여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다른 아이들도 나와 같은 꿈을 꾸기를 바랐다. 나는 남자애지만, 여자애들은 마법소녀 마스코트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마법소녀를 꿈꾸는 아이들을 돌보기는 하더라도 용사에 관심이 있는 애들은 거의 없어서, 나는 여신을 하기로 되었다. 꼭 여신일 필요는 없지만 예쁘고 가슴큰 여신을 부모님들이나 어른들이나 아이들마저 좋아하니까 여신. 그리고 나는 여신으로서, 용사를 꿈꾸는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악마를 향해 곧장 달려간다. 실체가 없는 악마의 몸을 통과해 체스너트가 매달려 있는 십자가로 향한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하는 거지? 이 애들이 너에게 그렇게 중요한가? 십자가에 도착하자 악마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퍼졌다.

나는 대답을 생각하고, 떠올린다.

그야, 멋있잖아?

악마란 내면의 부정적인 감정의 반영. 표리일체. 체스너트가 매달린 십자가 뒤에, 피치가 같은 자세로 매달려 있다. 나는 여신의 힘을 손에 넣어, 잘린 팔을 회복하고, 체스너트와 피치를 풀어준다.

"자, 체스너트, 저 녀석은 네가 처치해야 해. 어쨌든 눈앞에 있는 저건 네 문제로 네 안에서 만들어진 녀석이니까."

"내가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어." "정말로?" "할 수 있어." "……." "할 수 있어." 체스너트는 고개를 끄덕인다. 악마를 처치하려면 신성한 힘이 필요하다. 여신의 힘이 부여된 신성한 검으로 체스너트는 악마를 벤다. 사악한 악마는 단말마를 지르고, 전설의 용사 체스너트의 손에 쓰러진다. 해피엔딩. 흔하디흔한 왕도식 전개. 그래도 행복한 결말이야말로 이야기의 지고이자, 유치하다고 할지라도 모두가 바라고, 추구하는 결말이다.

나는 피치와 체스너트를 데리고 시설을 나섰다. 그 전에 먼저 비밀결사 블라이트에게 살해당한 어른들과 아이들과, 애플과 스트로를 포함해 악마나 내게 목숨을 잃은 비밀결사 블라이트 요원들을 되살렸다. "고마워요, 여신님!" "이제 나쁜 짓 하면 안 돼!" "응. 미안해." 바깥으로 나오자 동굴 앞에 있던 체리가 달려왔다. "언니! 오빠!" "체리야!" 감동의 재회. 이미 해가 뜨기 시작해, 바깥은 햇님이 발하는 빛으로 밝아져 있었다.

우리는 넷이서 여행을 계속했다. 일단은 계약한 코스가 끝날 때까지지만, 원래부터 이런 이야기에서 여행이란 건 그 목표보다는 과정이 중요한 거다. 친구나 동료들이랑 함께한 모험 그 자체가 보물이라는 건 흔히 있는 유형이다.

"아저씨."

피치가 말을 꺼냈다. 나는 "응?" 하고 대답했다.

"…구해줘서 고마웠어. 어른들은 다 나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봐."

"글쎄 뭐, 나는 고등학생이니까 어른은 아닌데."

"그럼 어른들은 다 나쁜 사람이 맞고, 고등학생은 아닌가봐."

아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좀 곤란하다만. 얼굴을 붉히는 피치를 보면서 체스너트가 하하하 얼굴 빨개졌대요 하고 웃어서 "뭐야 바보 체스너트, 뭘 그렇게 웃어?" "미안." "정말, 애들은 눈치란 게 없다니까. 너희 오빠 정말 바보지, 체리야?" "응─."

어느새 고양이가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체리는 고양이를 껴안았다. "야옹아, 돌아왔구나." 고양이도 껴서, 넷과 한 마리로, 우리는 여행을 계속한다.

나도 아직 어른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이들을 이끄는 입장으로서, 나는 고민할지라도 아이들에게만은 밝은 생각을 심어 주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제 이 세상에 용사같은 건 없고, 필요하지도 않을지 몰라도, 용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게 하는 게 어른들의 역할이다. 아이들을 지켜주고, 꿈을 심어주는 것. 개중에는 중간에 현실에 타협하고 꿈을 접게 되는 아이가 있더라도, 어른을 한 발짝 앞둔 나는 여전히 용사의 꿈을 꾸고 있고, 로망을 마음 속에 품고 있다. 세상에는 부정적인 것도 많이 있고, 나쁜 악당도 악마도 잔뜩 있을지 모르지만, 희망을 마음 속에 품고 있는 것으로, 꿈을 잊어버리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아이들은 여러 가지 고난이나 역경에 맞서나갈 수 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