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벽못
- 작성일 2015-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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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매너를 배우지 않은 사람이었다. 온갖 매너를 찾아낸 발명가가 없다는 것에 대해 믿지 않았다. 그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그것을 지켜내는 것일까?
매끈하다. 곡선은 굽어 겸손하고 휘어 자유롭다. 흰 상의 위에 봉긋하게 튀어나온 가슴들이 흐뭇하다. 고된 노동의 흔적 따윈 찾아볼 수 없는 목선이 탐스럽다. 무엇보다 다리이다. 짧은 치마가 방치한 다리들이 진열장 위에서 가만하다. 여름이 되면 그가 꼭 챙기는 보신탕은 여자들의 노출이다. 보신은 그에게 늘 부족한 것이었다. 요기가 될 만한 다리들이 앉거나 서 있다. 티끌 없이 깔끔한 다리는 대게 가방이 짓누른다. 점성가가 점지한 예언처럼 뒤틀리는 다리들은 내밀한 팬티를, 찢어진 스타킹을, 귀여운 발목 양말을 문구처럼 내민다. 목이 마른다. 배배 꼬인 다리가 꽈배기처럼 달고 퍽퍽하다. 그의 시선은 노골적이다. 셔츠의 끝자락을 집어삼킨 짧은 청바지와 짧은 치마는 그에게 욕설을 줄 처지가 아니다. 외려 그의 시선이 닿아 굽어지는 곡선의 조물주인 것이다. 신이 온전히 같은 물체를 만든 전과는 없다. 다리는 절벽에 내몰린 가련한 여주인공이다가 반란군의 수장이 된 젊은 처녀이다가 교통사고에 남편을 잃은 미망인이기도 하다. 뉴런던브릿지부터 조지워싱턴교, 아카시 해협 현수교, 장안교, 하버브리지까지 많은 다리들이 모양을 달리한다. 그가 즐겨 본 다리 역시 무엇 하나 같지 않았다. 짧은 다리, 굵은 다리, 하얀 다리, 검은 다리, 흉터가 있는 다리, 털이 있는 다리, 종기가 있는 다리, 점이 있는 다리, 걔 중에서 그가 제일 좋아하는 다리는 딱 붙는 바지에 살점 하나 노출되지 않는 다리이다. 주변의 살들 속에서 유유히 제 몸을 감출 줄 아는 고덕이며 야릇한 상상 위에 먼저 올라서는 대담함이며 천의 사정에 공감하는 동정이 빼어나다. 그러나 그 다리는 요컨대 두서없이 칠해진 살색들 사이에 올라야 더욱 참맛이다. 가장 아름다웠던 다리를 보았을 때, 그는 치한을 무릅쓰고 다가가 다리에 입을 맞추고 절을 올리고 싶었다. 어느 낯선 여인에게서 깊은 감동을 느낀 건 누가 보아도 흠잡을 곳 없는 다리를 가진 것에 대한 감사함이었다. 다리가 종점에서 내릴 때, 자칫하면 그는 마법에 홀린 사람처럼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헤어진 옛 애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울 뻔했다. 그날, 그는 반대편 역사에 한참 서 있을 뿐이었다.
칠칠치 못한 다리들이 있다. 그의 인상이 구겨질 참이다. 스타킹의 올이 나간 건 애교에 가깝다. 술기운에 빨갛게 달아오른 다리, 종기에 고인 고름이 누렇게 튀어나온 다리, 듬성듬성 된 제모 탓에 짧은 털이 자라난 다리, 아무렇게나 바른 연고가 허옇게 번진 다리, 걔 중에서 그가 제일 싫어하는 다리는 이물질이 묻은 다리이다. 밥풀이 누에고치처럼 자리 잡은 다리는 참상이다. 끈끈한 액체가 연고緣故 없이 터를 잡은 건 비극이다. 그의 지나친 친절이 발휘되는 건 추행처럼 치부된다. 그러나 그는 화가 난다. 저들이 어물전 생선처럼 빤히 내놓은 다리가 아니었던가, 최소한 다리에 대한 예의가 있다면 그의 친절이 상도덕이란 걸 알 것이었다. 이치가 있는 그는 멀겋고 흐릿한 액체가 흘러내리는 다리의 근처에 다가간다.
“저기요, 다리에 묻으셨어요.”
직선으로 달려가지 마라 / 아름다운 길에 직선은 없다 / 바람도 강물도 직선은 재앙이다
박노해 시인의 말이다. 뺨을 맞는다. 그의 고개가 돌아간다.
그에게는 남들이 그렇듯 절친한 형이 있다. 그가 다니는 번듯한 회사의 사장이다. 회사는 대기업인 S사 지분의 계열사이다. 실은 그를 취직시켜준 사람이고 남들에게 온갖 매너에 대해 종교처럼 설파하는 남자이다. 그가 아는 형은 언제나 매너의 표본이 되는 사람이다. 박물관에 신설될 수 있는 ‘매너의 표본’ 이란 구역에 박제해야할 남자이다. 여자의 의자를 빼주고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 뒤에서 커다란 웃옷을 박쥐처럼 휘둘러 내내 가려주는 남자이다. 여벌의 수저를 식탁 앞에 놓고 사라다를 덜어 먼저 건네는 남자, 몇 가지의 약을 가지고 다니며 처방해주는 남자, 의자를 빼주고 차 문을 열어주고 급전이 필요한 사람에겐 돈을 빌려주고 남자친구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애인인 척 해주는 남자이다. 그의 나이보다 자그마치 다섯 살이나 많고 반듯한 부인을 두어 가정에 충실한 남편이자 그가 기나긴 구직 활동에서 제일 마지막에 연락한 보루 같은 남자이다. 갈색 연락처의 끝장 끝줄에 적힌 번호는 희미해서 끝에 네 자리 중 두 자리 수가 알아볼 수 없게끔 지워져있었다. 그는 몇 번이나 결번과 장난전화 사이를 놀아난 다음에야 겨우 남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같은 대학교 출신, 같은 동아리에 잠깐 있었고 한때는 같은 여자를 사이에 두고 다투던 우정이 있었고 무엇보다 고향이 같은 남자이다. 남자의 이름은 정훈이었다. 대게 정훈보다 어린 남자들은 정훈을 훈이형이라고 불렀던 반면에 그는 정훈을 훈형이라 불렀다. 훈형, 하고 그가 부를 때면 에이, 내가 회사 사장인데, 하고 대뜸 화를 내면서 형은 싫은 기색이 영 아니었던 것이다. 간혹 그의 부실한 매너에 대해 지적하는 것은 형의 몫이었다. 예컨대 그가 바로 뒤편에 다가오는 여자를 위해 유리문을 잡아주지 않았을 때, 나지막이 작은 목소리를 들어 핀잔을 주는 것이었다.
“그런 건 요즘 기본이야.”
“이런 것들이요?
“요즘 사회는 우리에게 많은 걸 요구해. 각종 언어학 점수부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돌아다닌 건지 마치 인공위성이 추적하는 것처럼 알기 원하지. 기본이란 건 말이야, 네가 빼먹지 말아야할 기침 같은 거야, 그러니까 뱉어야만 할 때 꼭 뱉어줘야 하는 거라고.”
“기침은 아플 때만 뱉잖아요.”
“난 항상 아파, 좀 쑤시듯 무릎 쑤시고, 어깨 결리고. 너도 나이 더 먹어봐라, 그때는 안 아픈 게 아니라 아픈 것을 느낄 사이가 없는 것뿐이야.”
“형은 궤변론자네요.”
“세상이 말하는 거, 그게 진리야, 똥은 황금이라고 말하면 그렇게 되는 거야, 너는 매일 아침 변기에서 엄청난 황금을 내리기 위해 물을 사용하는 거지.”
“정말 그런 사람이 있대요?”
“나. 사장님 딸 잡아서 지금 이렇게 사는 거잖아.”
“저번에 뒷모습만 봤는데 어쩐지 기품 있더라고요.”
그의 말 속에는 애써 감춘, 내포되지 않은 말이 있었다. 그가 형의 부인인 사람의 뒷모습을 본 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부인의 뒷모습을 잠깐 흘깃 본 다음에 부인의 다리에만 시선이 가는 걸 감출 수가 없었다. 그가 오래전 보았던 지하철의 그 다리, 두 짝의 다리만으로 경국지색傾國之色이었던 여자가 떠올랐다. 그는 형의 부인이 그때 보았던 여자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 단지 숨이 막혀올 듯 선이 완벽한, 굴곡이 제대로인, 실존 자체가 잘 빚어진 조각상 같은 다리인 것만은 분명한 진실이었다. 그는 형의 부인이었다는 여자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여자가 그의 옆을 스쳐 지나갈 때, 손에 든 서류뭉치를 잊어버리고 여자의 다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말도 마, 어찌나 땍땍거리는지, 그놈의 배웠다는 여자란.”
“똑똑하던가요?”
“보통 내기가 아니야, 만만찮은 상대더라고.”
“잠자리도요?”
“그런 여자면 체위의 효율성과 체위가 가진 성적 차별에 대해서도 말해야 되는데, 그치?”
형이 그의 머리 정수리에 꿀밤을 먹였다. 가시 박힌 말은 그의 안일한 매너에 대한 답례일 것이었다. 그가 지나치게 매너를 어기면 형은 언제나 작은 체벌을 주었다.
자취하던 그가 옥탑에 이사한 뒤에 어김없이 형이 그의 집들이에 가담하였을 때, 형이 데려온 부인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그는 구두를 벗겨주는 척하며 가까이서 그 색에 반하여 다리만을 뚫어지게 봤을 뿐이었다. 커피색 스타킹이 오히려 덫처럼 다리의 살들을 물어 흠집 내고 있단 생각에 그는 초조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여태 다른 여자들에게 했던 것처럼 할 수 없게 저지 할 경비원이 그의 집 찬장을 열어 커피를 타고 있었다. 그의 마음이 들끓는 물처럼 달아올랐다. 완벽한 다리가 고작 싸구려 스타킹 때문에 슬퍼하고 눈물짓는 것을 바라보는 그의 심정이란 원치 않게 떠나보낸 애인이 타국에서 부고만을 전해오는 것 같았다. 집들이 선물이라고 형이 사온 과일 바구니를 구석에 놓았을 때, 형의 부인은 이미 자리에 앉아 입이 부리처럼 나와서 형이 벗어준 웃옷을 다리 위에 올려놓았다. 그에게는 지나친 형의 친절이 내심 서운한 일이었다. 그는 삭막한 분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혹은 반쯤 진심을 담아, 형에게서 배운 매너를 교훈 삼아, 간신히 말을 뱉어냈다.
“부인께서 정말 아름다우시네요.”
“아름답다는 건 남자가 여자를 구속하는 언어의 단위에 지나지 않아요. 진정한 미란 지성을 겸비한 사람을 들어 말하는 거죠.”
“예를 들면요?”
“한국에서 좋은 대학을 나왔고 좋은 이국에 머물며 여러 가지를 경험한 뒤 좋은 대학원에 가서 다시 많은 것들을 배운 사람을 말하는 거죠.”
“배움이 지성의 뿌리란 소리 같네요.”
“아닌가요?”
“좋은 대학이란 뭐고 좋은 이국이란 뭐고 좋은 대학원이란 뭔가요? 그저 다 기관일 뿐이잖아요. 어디에 있는 게 그렇게 큰 상관인가요?”
“그건 있잖아요, 그렇게 되지 못한 사람들의 변명거리 같은 거죠. 아, 저기 사람들이란 정말 높은 질의 것들만을 영유하는 구나, 그렇게 될 수 없었던 사람들의 질투죠.”
형이 눈에 띄지 않게 그에게 살짝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 반박하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아마 그가 아는 형이라면 그의 이전 대화에서 말한 것들, 그리고 그가 말한 기품 있다는 것의 구체적인 실물을 보여주기 위해 부인을 데려온 것이었다. 그러니 그의 형이 의도치 않은 논쟁이 벌어진 건 어쩌면 그의 매너가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아직 풀지 않은 이삿짐 박스 몇 개를 뒤적이며 형이 관심을 돌리려 할 때,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부러워할 거 없어요, 이렇게 얘기해보면.”
“그런가요?”
“더 나아지기 원하는 사람은 언젠간 더 나아져요. 그렇지 않은 사람들, 여기가 가장 낫고 높은 곳이라 생각한 사람은 강풍에 휩쓸려 떨어지기 마련이거든요.”
“떨어지지 않기 위한 안전장치들은 충분히 있어요.”
“그만, 그만해, 둘 다.”
형이 부인의 손을 잡고 문을 열었다. 커다란 형의 손에 이끌린 부인은 남김없이 짜증을 내며 구두를 신고 바깥에 나갔다. 형의 웃옷이 발자국이 선연한 방의 바닥에 짐짝처럼 떨어졌다. 형은 웃옷을 집어 방 안에서 팍팍 털었고 벽지 곳곳에 숨 쉬던 먼지들이 튀어나와 마른기침이 그와 형의 입에서 연거푸 떨어졌다. 먼저 기침이 멎은 그가 멍하니 형이 기침하는 것을 보자니 입에 미소가 반달처럼 올랐다. 표정을 읽을 수 없는 형이 그의 집 문을 활짝 열고 나가다 말고 잠시 뒤돌아 그에게 어느 영화의 배우처럼 작게 말했다.
“넌 기본이 안 돼. 매너 다시 배워야겠다.”
독감이었다. 나이가 죽어버려 아이가 된 것처럼 기어가 서랍을 열어 체온계를 겨드랑이 사이에 꽂았다. 열이 40도에 가까웠다. 옷장에서 두꺼운 이불 한 첩을 꺼내어 덮었다. 오한이 다가와 그의 온몸에 부딪혔다. 그는 먼저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정을 듣던 형은 그에게 한 마디를 하는 게 최소한의 매너인 것처럼 말했다.
“한 여름에 감기라니, 너답다.”
응당 병원에 가야 했다. 손에 쥔 전화기에 얼굴을 파묻었다. 연락처의 표지가 잘 넘어가지 않았다. 줄줄이 나열된 사람이 끝없이 내려가고 있었다. 걔 중에 달리 연락할 사람이 없었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이 화면에 떨어졌다. 흐릿해진 화면 때문에 이름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한 방울 땀을 소매에 닦았다. 연거푸 닦을수록 번지는 게 유색 물감 같았다. 단지 그는 이불을 입까지 끌어 덮었다. 숨이 막혀왔다. 입 안에 바싹 말랐다. 그는 식탁 위의 물을 마시기 위해 가까스로 목제의자에 기대었다. 자취를 시작할 때, 유일하게 집에서 가져온 것이 우습게도 식탁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집 안에 반듯한 식탁 없이 어떻게 밥을 먹을 수 있겠냐며 적잖이 무겁고 고풍적인 탓에 오랫동안 제자리를 지켜온 식탁을 그의 의지와 관련 없이 억지로 내어주었다. 그는 집의 거실이 휑하게 비워진 것을 보았다. 구멍이 뚫린 것처럼 허전하고 어색한 공간이었다. 식탁의 네 발자국이 찍힌 장판은 그가 가끔씩 집에 찾아갈 때마다 초인종처럼 그를 반기곤 했다. 그는 의자에 몸을 기대어 겨우 식탁 위의 물병을 집어 들어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는 축축해진 몸을 질질 끌어 다시 이불을 덮었다. 노크 소리가 들린 건 잠에 들 무렵이었다. 거칠고 빠른 주먹질이 연이어 이어졌다. 짐작 가는 방문이 없는 그는 이 끔찍한 시간들이 빨리 끝나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노크의 주인공은 절대 포기할 마음이 없는 듯 끈질기게 몇 번이나 두드리다 이내 발로 차고 소리를 치며 악을 쓰기 시작했다. 언젠가 들어본 것 같은 여자의 목소리였다. 그는 예전 여자 친구가 하필 이런 때에 찾아오나, 싶어 몸에 둘둘 이불을 두른 뒤에 간신히 일어서 문을 열었다. 형의 부인이 대뜸 쏘아붙였다.
“왜 이렇게 늦게 나와?”
“몸이 좀 안 좋아서요.”
“하여간, 약골이네.”
“무슨 일이시죠?”
부인이 엉거주춤 문을 막는 그를 밀쳐내고 안에 들어선 건 순식간이었다. 그는 아리송한 일이 참 많구나, 하며 반쯤 열린 문을 혹시 모를 경우에 대비하여 잠그고 걸쇠를 걸었다. 그것이 부인의 심기에 영 맞지 않는 마뜩찮은 일이었던 것이다.
“왜, 여자 혼자 와서 덮치게?”
“아뇨, 그냥요.”
“나 넘볼 만큼 쉬운 여자 아니야.”
“저, 아는 형 여자 덮칠 만큼 몹쓸 남자 아닌데요.”
“왜, 너 거기는 불수의근이라며, 너 같은 놈은 감정도 불수의근이라 돌연 발기해서 나 덮칠 수도 있지, 안 그래?”
“그럼 내 감정이 불수의근이라는 처방전 가지고 다시 오세요, 지금은 나가시고요.”
“차는 안 줄 거야?”
손 쓸 수 없이 허물어지는 정신이 적확한 항의를 할 수 없게 그를 내몰았다. 찬장 안, 녹차 티백이 두 개 남아 있었다. 작은 잔 두 개를 꺼내어 식탁 위에 놓고 마침 끓은 물 안에 녹차 티백을 넣어 찻물을 우리는데 다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거친 노크 소리에 먼저 반응한 건 부인이었다. 부인은 깜짝 놀란 나머지 벌떡 일어나 문 앞에 서서 귀를 기울였다. 그가 건넨 녹차를 홀짝이며 부인은 노크 소리에 집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노크는 세차게 이어지다가 점점 과격해지는 것, 과격해지다 못해 거친 음성을 쏟아내는 것이 부인의 것과 사뭇 다를 바가 없었다. 부인이 녹차를 다 마실 때쯤에는 노크 소리가 멎고 인기척이 멀리 사라졌다. 가느다란 한숨을 뱉어낸 부인은 다시 방의 중앙에 주인처럼 떡하니 앉았다. 유리창이 깨진 건 그가 도저히 녹차를 마시지 못해 요에 다시 누운 참이었다. 공사장에서나 뵐 법한 커다란 벽돌 하나가 집 안에 들어왔고 부인은 혼비백산하여 그의 뒤에 달려와 주저앉았다.
“야, 이 개새끼야, 이게 매너냐, 남의 부인 숨겨주는 게?”
“어디 와서 누구한테 개새끼래, 참나.”
불과 몇 분 전까지 그의 험담을 하던 부인이 돌연 아군이 되어 맞받아쳤다.
“고작 도망간다는 게 여기냐?”
“그럼, 니 새끼 수하들이 날 감시하는데 내가 어딜 가겠어?”
“잘난 대학 다니고 유학 갔다 대학원 다닌 따님의 고귀한 생각을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지랄하고 있네.”
“뭐, 지랄?”
“왜, 좋아하는 동생한테 네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자고.”
“사장님 따님이라 눈에 뵈는 게 없나, 야, 여기 한국이야, 어디 하늘같은 남편한테 대거리를 해, 대거리를 하긴.”
“도살장 개 패듯 부인 패는 건 잘한 일이고?”
“맞을 짓을 안해야 안 때리지, 씨발년아.”
“이제 나도 안 참아, 아니, 못 참아.”
“뭐. 뭘 어쩔 건데?”
“사랑놀음 이제 끝이라고.”
“이혼이라도 하자는 거야?”
“그보다 더한 것도 할 수 있어.”
“내가 도장 찍어줄 거 같아?”
“넌 해고야, 그 자리, 네 꺼 같았지?”
“무슨 수로 해고야, 내가 사장인데, 너네 위대하신 아버지가 날 얼마나 신뢰하는지 퍽이나 네가 알 턱이 없지.”
“우리 아버지 욕 하지 마, 씨발놈아.”
“그럼 최소한 어른처럼 굴어, 좀.”
“여기서 나가, 꺼지라고.”
“너네 집이냐, 하여간 어딜 가던 민폐인 건 변함없네.”
“야, 그럼 니가 말해, 쟤한테 나가라고.”
느닷없이 불똥이 튄 건 기력이 쇠한 나머지 의자에 기대어 간신히 대화가 지닌 문맥만 파악하던 그의 안면 위였다. 땀이 온 몸을 흠뻑 적셔 소나기를 지나친 사람처럼 축축해진 그는 몇 번이나 부인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차리기 위해 마른 혓바닥을 날름거려야만 했다.
“억지 좀 쓰지 말고, 가자.”
“야, 빨리 말해, 눈 있잖아, 내가 쟤보다 못나 보이는 건 아니지?”
“아이, 씨발 진짜 이게 무슨 병신 짓이냐.”
“너 회사 때문에 그래? 내가 쟤 잘라줄게, 내가 쟤 회사보다 더 좋은데 취직시켜줄게.”
“야, 너 말 가려서 하라고 했지, 너 정말 끝까지 갈 거야?”
“못할 건 또 뭐야, 야, 빨리 말하라고.”
“그래, 너 설마 나한테 나가라고 하진 않겠지?”
그는 두 손에 꽉 쥔 휴대 전화를 내밀었다. 정신이 혼미해진 탓에 그는 손에 든 것이 휴대 전화인지 칼인지 찻잔인지 이불인지 열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는 손에 든 것이 마치 향유와 온갖 보물 같았다. 그러니까 그는 이제 복종의 의미를 담아 부인의 발에 향유를 바르고 부인의 목에는 목걸이를, 팔에는 팔찌를, 손가락에는 반지를 끼워주는 것이다.
“아까 경찰에 신고했거든요, 가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세요.”
“와, 진짜 골 때린다, 씨발.”
“감방 신세 지고 싶나 보지?”
“간다, 가, 씨발, 더럽고 치사해서 꺼져준다고.”
몇 번 문과 식탁을 발로 툭툭 차던 형은 머뭇거리며 멀리서 경찰차가 오는지 확인하는 것 같았다. 신고의 진위가 밝혀지기까지 머물 것처럼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것은 곧 멈췄다. 사이렌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파랗게 얼굴이 질린 형은 씨발, 씨발, 낮게 욕설을 내뱉다 비적거리며 시야에서 사라졌다. 멍하게 서 있던 부인이 그에게 다가와 물었다.
“진짜야?”
“당연히 거짓말이죠.”
“그래.”
“저기 약 좀 사다줄래요?”
“넌 손이 없어, 발이 없어.”
“제 집에 있을 거면요.”
밤이 깊었다. 구두 소리가 작은 동네 슈퍼 앞에서부터 들려왔다. 한 발자국 띌 때마다 쏟아지는 투정들이 왠지 그의 귓가에 정겹게 들려왔다. 감기약을 사서 돌아온 부인에게 게눈 감치듯 약을 빼앗아 그가 허겁지겁 색이 다른 두 가지의 알약을 삼켜낼 때, 알약 뒤에 가루약을 칠칠치 못하게 흘리며 입 안에 털어 넣을 때, 돌연 부인이 그에게 물어왔다.
“천장에 저건 뭐야?”
“제가 찍은 별 사진들이요.”
그는 사진을 찍는 천체학자였으며 별을 찍는 사진가였다.
그의 눈이 쫓았던 건 과학도록이었다. 도서관의 구석진 곳에서 꺼낸 도록이었다. 도서 카드에 적힌 단 한 사람의 이름이 아주 연하게 남아있을 뿐이었다. 물리학, 화학, 생물학, 그 중에 그가 귀퉁이를 접은 곳은 천체학이었다. 처녀 지구과학 선생님이 수업 전 그에게 심부름을 시킨 건 어쩌면 너무 사소한 일이었을 것이다. 전교 상위권이었던 그의 성적, 맨 앞자리에서 졸지 않던 그의 눈망울, 빼곡하게 채운 그의 필기 따위가 가져다 준 신뢰 때문이었을 것이다. 가끔 어떤 믿음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던 일들의 시초가 된다. 과학 시간이 끝나고 종례가 끝나고 하늘이 어두워진 다음 사서가 불빛을 끌 때, 책장 뒤의 책상에 있는 그를 발견하지 못하고 나간 건 선생님이 갖추어야 할 소양과는 관련 없는 일들이었다. 암흑 속에서 황도 12궁이 아른거리는 것만 같았다. 하늘이 주변이었고 별은 멀어지거나 떨어졌고 그는 예상치 못한 죽음 불쌍히 여긴 신이 만든 별자리였다. 불을 킨 다음에 도서관 창문을 하나씩 밀어보았다. 열린 창턱에 발을 얹을 때, 그는 은하를 넘어가는 것만 같은 착각에 빠졌다. 과학도록이 그의 손 안에서 얌전히 잡혀 있었다. 어른이 된 그가 선명한 황도 12궁을 가진 다음에 반납을 위해 도서관에 들를 때까지 누구 하나 과학도록이 없어진 것조차 몰랐다.
점심시간, 교실이 완전히 텅 비워질 때, 사물함 안에서 과학도록이 기어 나왔다. 서른 개가 넘는 책상에는 각각 반쯤 접힌 교과서, 풀다 만 문제집, 목 베개, 우유 곽, 만화책이 있었다. 몇 번이나 연거푸 본, 책갈피가 꽂힌 천체학 부분을 펼쳤다. 위로 넘기는 공책 위에 그는 황도 12궁에 속해있는 전갈자리의 꼬리를 그려나갔다. 별이 이어지는 길은 그에게 생소한 것이었으나 상상할 수 없는 풍경들은 아니었다. 오히려 황도 12궁을 채 완성치 못하게 하는 것이 길의 모양이었다. 사진 속 황도 12궁은 얇은 실 같은 선이 이어주었다. 그러나 우주에는 선분이 없다는 걸 그는 어렴풋 알고 있었다. 별들 사이의 길에는 그의 연필심이 그려낼 수 없는 색깔과 농도를 지닌 것들이 수없이 나열되어 있을 것만 같았다. 한낱 그려진 것에 지나지 않는 자료가 아닌 실물이 그에게 간절해진 것이다. 밤하늘이 드리운 정자에 앉아 보이는 그대로 그려지는 장치에 대해 골똘히 고민한 뒤, 그는 사진기를 들었다.
별의 길은 찍기 전에 어두웠고 찍고 나서 볼 수 없게끔 지워졌다.
그는 알고 싶은 것이 없었다. 단지 별들이 애용하는 길에 대한 사진, 별들이 하늘 위에서 어떻게 손을 잡는지에 대한 사진, 괴팍한 별과 친절한 별들이 기거하는 집에 대한 사진, 추워진 별들이 어디에 도망가고 더워진 별들이 어디에서 피서를 즐기는지에 대한 사진, 별의 사진들이 가지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오로지 그의 소유욕뿐이었던 촬영은 점점 길어졌다. 하교 뒤와 잠들기 전까지 한정되었던 시간이 우주가 그래온 것처럼 하염없이 팽창되었다. 사진기를 장롱 안에 고이 넣고 나면 잠들 시간 없이 가방을 어깨에 메었다. 적지 않은 필름 값에 허덕일 때까지 사진을 찍었다. 그에게 별이란 언제나 변하기만 할 뿐이었다. 고작 머리카락 몇 센티미터 자른 다음에 알아주길 바라는 애인보다 어쩔 수 없이 변하지만 제 모습을 숨길 수 없는 별의 지고지순이 그의 마음을 더 끌었다. 학교에서 벗어나 그가 제일 먼저 한 것이라곤 새 디지털 카메라를 가방에 넣고 무작정 집을 나선 것이었다.
“별 찍고 올게.”
그가 열쇠를 꽂으며 외친 말은 안방에 누워있는 가족들의 귀에 들리기에는 너무 작았다.
봄에는 큰곰자리가 나타났다. 국자 모양의 북두칠성이 꼬리가 된 큰곰자리는 사나운 코와 날카로운 발톱을 지닌 채 하늘 언저리에 떠 있다. 북두칠성의 손잡이 쪽의 별의 곡선 방향에 내려가면 황도 위에 놓인 스피카가 있다. 황도는 달이 따르는 경로이며 낮에는 태양이 따르는 경로이다. 황도 안의 별자리들이 12궁인 것이다. 여름이 되면 이른바 여름의 대삼각형인 데네브, 알타이르, 베가가 슬쩍, 고개를 드민다. 데네브는 백조자리의 꼬리, 알타이르는 독수리자리의 부리, 베가는 거문고자리의 현이다. 가을이 되면 정사각형의 페가수스자리가 날개 친다. 페가수스의 근처에서는 안드로메다성운이 숨바꼭질을 한다. 겨울에는 오리온자리가 모래시계처럼 나타난다. 오리온자리의 허리께를 따라 내려가면 시리우스가 보인다. 오리온자리에서 위로 약간 시선을 돌리면 플레이아데스성단이 수줍게 웃는다. 별은 언제나 움직였다. 단지 그 별의 생사는 모호한 것이었다. 광년이라는 감조차 오지 않는 커다란 거리 때문이었다. 몇 년이 지나야 그 별의 죽음이 흑백사진처럼 다가온다. 그의 촬영 방식은 구식인데다 완전 아마추어였다. 찍고 나서 몇 장 건질 수 없는 초점들, 걔 중에서 별빛이 선명한 건 더 적은 개체에 불과한 사진들이었다. 밤 열시가 넘어가면 인적 드문 곳에서 그가 하는 것이라곤 하늘에 대고 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셔터 소리 들을 사람조차 없고 전등 하나로 턱없이 부족한 어둠이 짙은 숲속에서 그는 어쩌면 귀신처럼 보인다. 찰칵, 찰칵, 찰칵, 끊이지 않는 셔터 음이 그에게는 마치 성가처럼 들린다. 숲속에서 사진을 찍다 지치면 그는 나무 밑에 앉아 가방 안에서 커다란 담요를 꺼내 덮었다. 날이 좋은 봄이나 여름, 초가을까지 겨우 그는 아주 두껍게 짠 담요 한 장에 숨어 있었다. 흙 뭍은 담요는 이른 아침 근처 냇가에 씻은 후 낮의 열기 아래에서 뽀송뽀송하게 말랐다. 마른 담요에선 물 냄새와 젊은 남자의 퀴퀴한 향기가 뒤섞여있었다. 사진기를 알처럼 품에 안고 그는 담요를 얼굴까지 덮고 잠을 청하며 밤이 되면 온갖 별의 사진들을 수집할 뿐이었다. 별이 그를 찾지 못한 건 순전히 담요 때문이었다. 나무의 뿌리에서 곤충들의 그에게 독이 든 꼬리와 혀, 때로 발을 내밀 때 그를 지켜준 것 역시 검정과 흰색이 반씩 배색된 담요였다. 시골길을 전전하던 그가 다시 서울에 올라온 건 한 해가 훌쩍 넘어간 다음이었다.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의 공중전화 부스에서 그는 집에 전화를 걸었다.
“조금 늦었구나, 어서 들어오렴, 저녁 먹자.”
간헐적인 그의 연락이 만족스러웠던 것인지 집 안의 장남이자 외동아들인 그가 일 년이나 집에 없었단 사실이 무색할 만큼 뻔뻔한 마중이었다. 저녁 식탁에는 그의 귀환이 예견된 일이었는지 유일하게 그의 입에만 들어가는 간장게장이 떡하니 다리를 벌리고 있었다. 게의 다리는 딱딱하고 빈약한 살은 뭉텅이가 되지 못한 채 녹아버렸다. 게 세 마리가 전부 시체가 되었다. 시체가 쌓인 접시는 금세 사라졌고 다시 죽을 운명이 정확한 음식들이 올라왔다. 허기 진 그는 여섯 접시를 비워냈다. 그러나 그는 어찌 할 수 없는 거북함에 단지 식사를 멈춘 것뿐이었다. 섭취 없는 저녁이었다. 먼지가 잔뜩 쌓여있을 줄 알았던 그의 방은 깔끔하게 청소가 된 것도 모자라 정체 모를 향기가 방 깊숙한 곳에서 새어나왔다. 노트북이 불빛을 쑥스럽게 토해냈다. 희미한 불빛에 비친 물건들이 남의 방에 들어온 것처럼 어색하게 낯빛을 들이밀었다. 비스듬히 쌓인 책 위에는 다른 책들이 탑처럼 놓여 있었다. 그가 디지털 카메라에서 사진을 옮기기 위해 폴더를 켰을 때, 방문이 훌쩍 열렸다.
“아들, 따뜻한 물 받아놨어, 씻고 해.”
욕조는 짐승 같이 더러워진 그의 몸에 딱 맞았다. 욕조 안에서 그는 자신이 다리조차 뻗을 수 없는 협소한 공간에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제 몸에서 나는 흙냄새, 담요를 비집고 들어오는 작은 벌레들, 침대 없는 잠자리는 어디나 숲속일 뿐이었다. 온수에 몸을 담근 뒤, 그는 얼마간 불편함까지 가져야 했다. 지나간 한 해, 숲속에서 그는 제 마음껏 움직였고 지치면 주저앉았고 추워지면 담요를 둘렀고 목이 마르면 근처 냇가에 가서 세찬 물결의 흐름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끔찍이 싫어하던 것들이 무엇인지 잊어버리고 자그마한 마찰에 발기하던 감정들이 그저 머리칼만 내밀어도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의 자의에 따라 비누가 화장처럼 지독하게 번지고 샴푸가 청산가리처럼 따가웠다. 수건이 살결에 닿을 때, 그는 그것들이 다 동화에 나오는 구전된 이야기들 같았다. 별과 그의 거리 차이보다 더 멀어지다 못해 눈에 뵈지 않게 된 건 그가 불빛 앞에 앉은 후였다. 그것들은 여전하고 그는 그저 되돌아왔을 뿐이었다. 의자의 높이를 조절하던 그는 문득 그것이 다시 오지 않을 것임을, 따라서 불변하며 영원히 명멸할 것임을 알아버렸다. 닫힌 창문을 열었다. 그의 방 창문에선 밤하늘이 전혀 보이질 않았다. 볼 수 있는 것이라곤 이웃집의 불빛과 계단과 높은 담뿐이었다. 밤과 별뿐이었고 그마저 선명하지 않은 사진 무덤, 거기에서 그는 24장의 사진을 골라냈다.
사장된 수천의 사진에게 잘못은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그의 손이 못난 탓이었다. 수전증이 있었던 그의 손은 어김없이 일그러진 사진을 만들어냈다. 걔 중에 그의 손이 지친 나머지 잠깐 숨을 돌릴 때 찍어낸 별들의 사진이 있었다. 부실한 근육들이 야생의 낯선 환경 안에서 성장한 것인지 사진은 손에 꼽힐 만큼 적어질 것이란 그의 예상과 달리 수백의 사진이 되었다. 수백 장의 사진 중에서 그의 마음에 든 사진은 24장이었다. 별 사진 24장은 공통점이 없었다. 아마 프로 사진작가가 보기에 더 괜찮은 사진들이 버려진 수천 장 속에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의 마음에 든 사진은 잘 찍힌 좋은 사진이 아니라 그냥, 별 사진이었다. 그는 사선 위에 놓인 별들과 그 길이 명백하게 보이는 사진들, 24장의 사진을 인화했다. 그는 A4 크기로 사진을 인화하기 위해 인터넷 안을 뒤적였다. HD 프리미엄 인화의 경우 A4 크기는 장당 1250원이 들었다. HD 프리미엄 인화는 친환경 염료, 7색의 최고 화질, 300년 이상 장수 보존, 광택전문 포토 용지가 포함된 것이었다. 그의 마음에 특히 든 것은 300년 이상의 장수 보존이라는 문구였다. 그가 나중에 언젠가 세계를 떠나게 되더라도 사진만은 아주 오랜 세기를 거쳐 자리를 지킬 것만 같았다. 그는 3만원을 지불하고 24장의 사진을 인화 주문한 뒤에서야 잠에 들었다. 숲속에서 일어났다. 밝은 빛이 감싼 밤이었다. 하얀 밤 위에 제 몸의 빛을 모두 쏟아낸 뒤 까맣게 변한 별들이 있었다. 저물지 않은 하늘 위에 별은 지친 듯 꿈쩍하지 않았다. 그는 눕기 전에 바닥에 놓은 사진기를 집어 들었다. 바닥에 앉아 있어야 할 만큼 하늘과 별이 가까이 기울어있었다. 섣불리 일어서면 그의 머리가 하늘에 닿고, 별에 닿아, 된통 깨져버릴 것 같았다. 사진이 찍히지 않았다. 까맣게 변한 별들에서 눈을 때지 못하는 그는 언제나 뱀처럼 몸을 휘감던 담요가 없는 걸 깨달은 순간 꿈인 걸 알아차렸다. 그는 눈을 감았다 떴다 반복했다. 마치 그 자신이 사진기가 된 것처럼.
인화된 사진을 천장에 붙인 건 그의 요행이었다. 천장에는 월계수 관만큼 빈칸을 제외하고 딱 맞게 사진이 들어찼다. 불을 끄면 마치 숲속에서나 보던 밤하늘처럼 별들이 빛났다. 단지 그것들은 시기를 달리하지 않은 채 나타났고 좁은 길을 사이에 두고 어깨를 부딪치며 모여 있었고 전혀 움직이지 않을 뿐이었다. 천장에 24장의 사진을 다 붙인 뒤, 그는 처녀 지구과학 선생님이 몹시 보고 싶었다. 아주 작은 부탁이었을 뿐인 그 심부름이 시초가 된 그의 삶에 대해 알려주고 싶었다. 그 해, 스승의 날에 그는 모교를 찾아갔다. 처녀 지구과학 선생님은 같은 과학 계열의 선생님 중 화학 선생님과 결혼식을 올린 뒤 아기를 가진 상태라서 그런지 그의 느닷없는 방문에 주의를 주었다.
“연락하고 왔어야지.”
“너무 뵙고 싶어서요, 선생님.”
“얘는, 너 내 수업 잘 안 들었잖아.”
“그럴리가요, 선생님.”
“아닌가?”
“선생님, 혹시 과학 도록 부탁하신 거 기억나세요?”
“아, 네가 그 애구나.”
“선생님이 그때, 제 삶을 바꾸셨어요.”
그는 아주 작은 것들이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얘기했다. 그때, 그 심부름이 없었더라면 그의 삶에 찾아왔을 무뢰배 같은 일들을 가정하고 그래서 처녀였던 지구과학 선생님의 작은 호의에 감사하며 별을 찍는 순간들이 축척된 자신의 기담에 대해 자랑스럽게 풀어놓았다. 지구과학 선생님은 말없이 배를 쓰다듬었다. 그는 매해 스승의 날이 되면 지구과학 선생님에게 찾아가 망고 주스, 멜론과 바나나, 쿠키나 케이트 따위를 쥐어주었다. 그의 방문이 끊긴 건 지구과학 선생님의 전근이 발령 난 해의 일이었다.
“네가 말했지, 내가 너의 삶을 바꾸었다고, 그렇지만 아니야, 난 아무 것도 하지 않았어, 난 가르친 게 없는 몹쓸 선생이야.”
전근 전에 남긴 쪽지에는 비뚤하게 글자가 적혀 있었다.
그는 귀퉁이가 찢어진 종이가 꼭 제 마음 같았다.
잠에 통 들지 못한 그들이었다. 그들 사이에는 반찬통이 몇 개 남아 있는 식탁만이 있을 뿐이었다. 부인의 이부자리를 깔아주기 위해 그는 장롱 깊숙이 넣어 둔 이불 한 채를 꺼냈다. 자고 간다는 말은 그에게 무척이나 낯선 것이었다. 자취 시작 뒤, 그는 누구도 자신의 집에 재워본 적이 없었다. 제 숨을 빗나가는 타인의 숨은 거북하게 들려오진 않았다. 주홍 가로등 불빛이 커다란 반딧불처럼 깜빡이는 것마저 일상 같았다. 목이 말라왔다. 그는 이불 속에 쏙 들어간 부인의 손, 허리께, 혹은 발이나 다리를 밟지 않기 위해 까치발을 들었다. 갈증이 가신 뒤, 긴장이 풀려버린 탓에 그는 돌아오다 부인의 옆구리를 푹, 밟았다. 잠이 깬 건지, 아니면 잠에 들지 않았던 것인지 부인의 눈이 어둠 속에서 더 까맣게 나타났다.
“자요?”
“아니, 왜?”
“제가 재미있는 얘기 해줄까요?”
“이렇게 시작하는 얘긴 보통 재미없더라.”
“들어주기는 할 거에요?”
“듣다가 잠 들 수 있어.”
“괜찮아요.”
“알았어.”
“아주 오래 전, 사람들은 하늘, 별, 지구를 어떻게 생각했게요.”
“기원전 이야기야, 아니면 삼국시대?”
“그냥 예전이요.”
“알려줘.”
“불쌍한 사람들이 하늘이 벽, 별이 못, 지구가 방인 줄 알았대요.”
“그래서?”
“저는요, 가끔씩 그것들이 온전히 바른 말 같아요.”
“왜?”
“이곳은 수 억 개의 방을 지닌 커다란 방이고, 둘러싸고 있는 사방이 실은 하늘이 아니라 벽일 뿐이고, 못처럼 박힌 별들은 뽑히거나 가려지거나 하는 것만 같다구요. 그래서요, 빠져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을 것만 같아요.”
“저요, 이제 회사 잘리면요, 다시 별 사진 찍으려 갈려구요, 그래서요, 이게 정말 벽이고, 못이고, 방인지, 벽에 박힌 게 못인지 별인지, 제가 보는 게 하늘인지 방인지 제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할거에요.”
“결론이 뭔지 나중에 알려줘.”
“돌아오지 않으면요?”
“엽서 보내.”
그가 웃었다. 부인이 따라 웃었다. 웃음이 낮게 이어지자 웃음들 같았다. 깜빡이던 주홍 가로등 불빛이 완전히 점등되었다.
“마치 숲속 같아요.”
“뭐?”
“나무의 그림자에 완전히 가려진 숲속이요.”
“그래?”
“아뇨, 실은 아니에요.”
“뭔 소리야?”
“여긴 어둡고 거긴 밝고 어둡거든요.”
말소리가 끊긴 뒤 코 고는 소리가 들려올 때, 이른 새벽 그가 제일 먼저 한 것이라곤 필름이 필요치 않은 디지털 카메라를 가방에 넣고 무작정 집을 나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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