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에서 내려가는 길
- 작성일 2015-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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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서 내려가는 길
죽자.
수능 성적표를 처음 펼쳐보고 이 생각밖에 안 들었다. '자살 개삘'이나 '자살각'처럼 '자살'이나 '죽음'이라는 말이 너무 자주 쓰여서 그 말의 어마어마한 무게가 많이 줄어들어버렸지만, 내가 그 때 한 '죽자'는 그 말의 어마어마한 무게가 모두 담긴 '죽자'였다. 겨울 해는 일찍 진다. 고민하거나 망설일 사간을 주지 않았다.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가면서 엄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파트 값이 다시 올랐네. 우리 이사 올 때만 해도 한 남학생이 이 아파트 옥상에서 자살하는 바람에 집값이 많이 떨어졌었는데.' 내가 이 옥상에서 자살하면 아파트 값이 또 떨어질까? '죽자'라는 어마어마한 결심까지 한 주제에 지금 뭘 걱정하고 있는 거야. 난 말 그대로 죽을 때까지 소심한 년이구나. 옥상 문을 열고 앞만 보고 걸었다. 난간에 손을 짚고 몸을 앞으로 숙이는데 뒤에서 여자애 목소리가 들렸다.
"너도 수능 성적표 받고 죽으러 왔냐?"
너무 놀라서 소리도 못 지르고 뒤를 돌아보니 여고생하나 남고생 둘이 나를 보고 있었다. 여자애가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이 아파트에만 자살하려는 수험생이 넷이라는 거야? 진짜 말세네."
멍청하게 서있는 나를 앞에 두고 말을 계속했다.
"내가 올라왔을 때 저 키 큰 애가 난간위에 서있더라고. 어이가 없어서 서로 쳐다보고 있는데, 저 퉁퉁한 애가 또 들어오는 거야. 그래서 쟤는 난간에서 내려오고 막 셋이 서로 얘기를 하려는 참에 네가 들어왔어." 조금 무섭게 째진 눈이 웃고 있었다. 이 상황을 정말 재밌어하는 것 같았다. 여자애가 나와 남자애들을 번갈아보면서 말했다.
"우리 죽기 전에 각자 자기 얘기나 실컷 해볼래?"
이렇게 옥상 위 찬바람 속에서 처음 보는 수험생끼리 서로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먼저 여자애가 입을 열었다.
"난 김지아야. '알 지'에 '사랑할 아'를 써. 알아가는 것을 사랑하라면서 내가 어떻게 살아야할지 단정지어놓은 이름이야. 우리 엄마는 고등학교 선생이고 아빠는 대학 교수거든. 지들이야 알아가는 것이 사랑스럽겠지. 초등학교 때는 공부 정말 열심히 했어. 열심히 하면 칭찬해주니까 열심히 했지. 근데 중학생이 되니까 공부를 할 때 칭찬해주는 게 아니라 공부를 안 할때 화를 내는 거야. 그래서 중학교 내내 공부에 손을 놔버렸어. 그 때 휘두를 수 있는 걸로는 다 맞아본 것 같아. 매나 옷걸이부터 베란다에 고무호스로도 맞아봤어. 그게 제일 아프더라. 그렇게 한 1년 반쯤 맞고 살다보니까 저 사람들이 화를 내는 게 아니라 슬퍼하는 모습이 보고 싶더라고. 그래서 담배 피다가 경찰서에 다녀오고 말없이 잠수타고 오토바이 타다가 사고 나서 입원도하고 하여간 별의별 짓은 다 해봤는데 끝까지 화만 내더라고. 오토바이 사고로 입원했을 때는 병원 간호사 언니 아니었으면 사고 때문이 아니라 아빠 벨트 때문에 죽었을 거야. 그래서 퇴원하는 날 앞으로 3년 정도를 공부 말고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처럼 공부만 해서 일류대에 꼭 합격하기로, 그리고 합격통지서를 손에 쥐고 죽어버리기로 결심했어. 그래서 지금 죽으러 온 거야."
상식선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이유였지만, 말하는 지아의 표정이 굉장히 진지하고 당당해서 이해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그럼 넌 합격해서 죽으러 온 거야?"
내가 묻자 지아가 자신의 성적표를 보여주었다. 수리 영역만 2등급이고 나머지는 전부 1등급에 백분위까지 모두 100에 가까웠다. 세 명이 같이 종이를 보고 있는데 지아가 말했다.
"재수생까지 보는 거니까 확실히 등급이 좀 떨어지긴 하더라고. 수능으로는 좀 어려웠을 수도 있지만 원하던 학교는 이미 수시로 들어갔으니까 상관없었어."
일류대 수시합격에 수능성적도 좋은데 자살이라니...
"너무 배부른 소리하는 거 아니야? 거기 못 들어가서 죽은 사람도 수두룩할 텐데."
내 오른쪽에 앉은 키 큰 남자애가 그렇게 말하자 지아가 그를 째려보며 말했다. 와, 표정 엄청 살벌하다.
"그거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말이야. 뭐가 좋고 뭐가 싫은 지처럼 뭐가 괴롭고 뭐가 행복한지도 사람마다 다른 법이야. 남이 어떨 때 행복한지 함부로 판단하면 안 된다고. 옥상 난간에서 땅을 내려다보는 것보다 망한 성적표를 들여다보고 있는 게 더 무서운 네가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네가 무서워하는 그 기준을 이해하지 못 할테니까. 안 그래?"
지아가 쏘아붙이자 남자애가 한 발짝 물러서는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그러네, 그래도 네가 죽으면 결국 넌 그들이 후회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잖아. 난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네가 죽고 나서도 너에게 화만 내는 사람들일지도 몰라. 부모님 가슴 찢어지게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긴 한데 그걸 위해서 죽는 건 너무 아깝지 않아? 3년 동안 공부한 걸로 누릴 수 있는건 다 누려 봐야하지 않겠어?
그러자 지아가 대답했다.
"사실 옥상에 올라오는 동안 그런 생각을 했어. 그런데 네가 난간에 서 있길래 너한테 얘기나 한번 해볼까 했지. 그럼 넌 여기에 왜 온 거야?"
지아가 묻자. 그 남자애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잠깐만 기다려봐. 술 가져올게. 아무래도 맨 정신으로 말하기는 좀 쪽팔리다."
완전 범생이처럼 생겼는데 왠지 뒷통수 맞은 느낌이었다. 다들 같은 생각이었는지 혼자 일어서 있는 그를 멍청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아, 난 삼수생이거든. 권하지는 않겠지만 마시고 싶다면 말리지는 않을게. 죽을 결심을 하고 온 애들을 내가 무슨 수로 말리겠니."
와, 삼수생이라니. 그 삼수생 오빠는 정말 잠깐 만에 소주 두병을 들고왔다. 카득-하고 병뚜껑을 돌리더니 잔도 없이 마시며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도 현역 때 나름 전교권에서 놀던 유망주였는데.. 네 성적표를 보니까 저 정도 각오는 있어야 저런 성적표를 받는 건가 싶기도 하고 좀 쫄리네. 네 입장에서 어떨지는 잘 모르겠지만 난 저런 성적표를 받고 싶어서 재수했거든. 고3때 중상위권 대학에 갈 정도였는데 욕심 좀 내서 상위권 대학에 가려고 재수했어.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몰라. 죽으려던 애들한테 할말은 아닌것 같지만 너희는 절대 재수하지마라. 재수는 무소속 싸움인데 이게 엄청 힘들거든. 우리는 말 수 있을 때부터 어딘가에 소속이되. 유치원부터 초중고 같은 학교, 취직을 하면 회사고 창업을 하면 자기 가게나 뭐 이렇게 어디든 자신의 소속이 생기지. 근데 재수생은 대학에서 공부를 하거나 무언가 일을 해야 할 나이에 하는 일이 고등학생이라 똑같은 사람인거야. 그래서 외로워. 내가 재수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게 그거였던 것 같아. 난 아직 고등학생인데 내 친구들은 대학생고 나만 빼고 모두 어른이 된 기분이었어. 심지어 공부를 못해서 은근 무시하던 친구도 고졸 대상으로 신입사원을 모집하던 회사에 들어가서 바쁘게 살고 있었어. 아무도 만나고싶지 않아졌지. 그래서 네 말대로 할 줄 아는 게 공부밖에 없는 사람처럼 공부했어. 그런데 결과가 너무 비참했어. 고3때랑 똑같이 나온 거야. 지난 1년이 아무 의미가 없었다는 거잖아. 그래서 삼수하기로 했어. 그때부터는 더 좋은 대학을 가려고 재수한 게 아니라 정말 할 줄 아는 게 그것 밖에 없어서 매달린 거였어. 그런 태도로 공부하는데 잘 될 리가 없지. 삼수 결과는 수직 하락해버렸어.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내가 다 잘하는 줄 알았고 뭐든 할 수 있을것 같았어. 고등학교에서 공부를 잘한다는 건 그런 거랑 비슷한 의미잖아. 근데 재수생이 되고 삼수생이 되고 그러고도 대학을 못 가니까 내가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만 같은 거야."
"그래서 옥상에 올라온 거예요?"
내가 묻자 오빠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렇지. 앞으로 살아가는데 희망이 전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사실 수능을 비롯한 입시라는 건 내가 이 세상에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두 번째 방법일 뿐이야. 세 번째 방법도 있어. 세 번째 방법은 사람마다 각자 하고 싶은 일이나 잘하는 일을 생각하면서 찾아봐야해. 그런데 우리는 이 세 번째 방법을 찾을 시간도 여유도 기회도 기력도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이 입시라는 두 번째 방법이 유일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지. 세 번째을 생각해본 적도 없어서 첫 번째나 두 번째가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거야. 아, 첫번째는 얼굴이나 몸매처럼 타고나서 저절로 보이는 것들이야. 그걸로 먹고사는 사람들도 있잖아. 연예인이나 모델같이 직업을 통해서가 아니더라도 '시집 잘 가면 장땡이지'라고 생각하는 예쁜 여자들도 첫 번째 방법을 쓰는 사람들이지.
"잠깐만요. 그럼 오빠는 옥상에 왜 올라온 거예요? 난간에 서있었잖아요."
지아가 묻자 오빠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야 그런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지금은 좀 후회중이야. 이런 생각을 일찍 했으면 여기 안 올라왔을 텐데."
“저도 한 병 까도 됩니까?”
지금까지 조용히 듣고 있기만 하던 맞은편 남자애가 입을 열었다. 곰 같은 생김새와 달리 목소리가 잘생긴 느낌이었다.
오빠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자 가운데 있던 병을 하나 집는다.
“그런데 그 세 번째 방법은 너무 위험부담이 커요.”
그렇게 말하고는 꿀꺽꿀꺽 한 번에 많이도 마신다,
“말 놓을게요. 난 박동수이야. 꽤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엄마랑 둘이서만 살고 있어. 엄마가 혼자 벌긴 하지만 직업이 의사라서 둘이 먹고살기는 넉넉한 편이야. 문제는 엄마도 이걸 안다는 거야, 그래서 엄마는 항상 내가 의사가 되었으면 했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가족은 아들 하나밖에 없어서 엄마는 내게 많은 걸기대하고 있었어. 나한테도 엄마는 하나밖에 없는 가족이니까... 엄마한테도 안 해본 소리를 여기서 하네. 술 때문인가? 아무튼 내가 공부할 때 엄마가 기뻐하고 엄마가 기뻐하니까 공부를 열심히 했지. 그런데 내가 공부보다 좋아하는 게 딱하나 있었어. 노래 듣는 것도 좋아하고 하는 것도 좋아하고, 무엇보다 쓰는 걸 제일 좋아했어. 초등학교 때는 피아노 학원에 다녔고 중학교 때는 기타를 독학했어. 재능이 있어서인지 재미가 있어서인지 음악이 공부보다 조금 더 좋았어. 그래서 음악으로 직업을 가지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었지. 그런데 중3때 우리 담임이 차별이 엄청 심한 사람이었어. 난 공부를 열심히 하는 편이었으니까 나를 꽤 좋아했지. 그런데 담임 수업시간에 몰래 악보를 그리다가 걸린 거야. 담임이 많이 실망했다면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어, 그날 저녁에 엄마랑 얘기를 했어. 엄마는 엄마도 내가 음악을 재밌어하는 것도 알고 잘하는 것도 안다고, 그러면서 혹시 나중에 관련된 직업을 갖고 싶은 거냐고 물었어. 생각해본 적은 있다고 말했지. 그렇게 말하니까 엄마가, 아버지 없이 엄마가 혼자 나를 키우는 건 엄마가 의사였기 때문이라고, 공부 열심히 해서 돈 잘 버는 직업을 갖고 있어서라고 말했어. 내가 가만히 듣고 있으니까 엄마는 우리가 지금껏 잘 살아온 게 엄마의 직업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나도 그런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살았으면 좋겠지만, 내가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라고 원한다면 좀 더 체계적인 음악공부를 시켜주겠다고 했어. 그래서 내가 어떻게 했게? 피아노고 기타고 작곡이고 다 취미로만 하고 싶다고 했어. 거짓말이 아니라 나도 우리가 아버지 없이도 넉넉하게 살 수 있었던 게 엄마 직업 때문이라고 생각했거든. 형 말대로라면 내 세 번째 방법은 음악이었어. 하지만 좋아하고 잘하는 것이 정말 직업이나 살아가는 모습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도 미지수라는 거야. 쓸모있는 인간이 되는 것과 성공하는 인간이 되는 게 별개의 일이라는 거지.”
“그럼 넌 의대 떨어져서 여기에 온 거야?”
지아가 묻자 동수가 대답했다,
“응, 의대랑 간호대까지 다 떨어졌어. 내신 성적이 별로라서 수시는 기대도 안하긴 했지만 수능 수학에서 마킹을 잘못했거든. 담임한테 악보 들킨 날 이후로는 정말 의대 가서 의사가 될 생각만 하고 살았는데 그게 다 끝나버리니까 ‘뭘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 난 돈잘버는 성공한 사람이 되고 싶었으니까.”
“그럼 너는 다른 사람 때문이 아니라 너 스스로 위험한 길을 피하려고 공부했는데 실패해서 옥상에 왔다는 말이지?”
내가 묻자 동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화가 났다.
“그럼 그거야말로 배부른 소리 아니야? 네가 안전하다고 생각한 길에서 실패했으면 위험해서 가지 않았던 길로 돌아가면 되는 거잖아. 그러니까... 일말의 희망도 없는 건 아니잖아. 좋아하는 일이 있고 잘할 수 있는 능력도 있고, 나는 지금까지 아무것도 나 스스로가 이유인 일을 해본 적이 없어. 부모님이 좋아하니까 착한 딸이 되고, 선생님들이 좋아하니까 착한 학생이 되고, 친구들이 좋아하니까 착한 친구가 되고. 그래서 한 번도 내가 뭘 잘하고 좋아하는지 고민해보지 못했는데 이제는 하고 싶은 일을 직접 찾아 나서지 않으면 아무도 내게 기대를 하지 않는 세상에 보내져버린 거야. 고등학교를 졸업한다는 게 나한테는 그런 의미야. 이제 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지켰던 모든 기준이 없어져버리는 거. 대학교 가면 고민 해봐야지 하고 생각하는 걸 미루기만 했는데 오늘 수능 성적표를 보자마자 나처럼 우유부단한 사람한테는 유예기간조차 주어지지 않는 게 이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힘든 길이 싫어서 돌아가지 않는다고? 나는 나아갈 길도 없고 돌아갈 길도 없어, 깜깜하기만 하다고.”
와.. 내가 이렇게 내 생각을 말해본적이 있었나? 아니 이렇게 내 생각을 생각해 본 적이 있었나?
내가 말을 마치자 삼수생 오빠가 말을 걸었다.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아. 지금까지 믿어왔던 가치가 무너져 버리면 지금까지의 삶이 의미 없어 보일거야.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12년간 네가 속해있던 곳과 많이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될 거야. 그건 사실이야. 그런데 그것을 받아들일 유예기간을 줄 장소는 대학교가 아닐 수도 있어, 네 인생이 뒤집어엎어진 김에 한번 생각해봐. 네가 이제껏 바라보던 대학이라는 곳이 네 생각과 다를 수도 있는 거잖아. 네가 말하는 유예기간은 네가 스스로 짬을 내는 거야.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생각은 대학을 다니는 4년 동안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내내 해야 하는 거니까.”
이렇게 말하는 삼수생 오빠 뒤로 해가 떠오르려고 하늘이 밝아지는 것이 보였다. 오빠도 하늘을 보더니 말했다.
“벌써 해 뜬다. 우리가 어젯밤에 옥상에서 뛰어내렸어도 똑같은 하늘에 똑같은 해가 떴을 거야. 우리나 우리가 고민했던 것들이 엄청 작아진 것 같지 않아? 자살하지 말라면서 ‘당신은 특별한 사람이에요.’라고들 말하지만 차라리 이렇게 내가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알 때 더 죽기 싫어질 수도 있어. 내가 무섭게 생각했던 것들도 별것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거든. 춥다. 여기는 내가 치울 테니까 먼저 내려가.”
그렇게 우리 셋은 삼수생오빠에게 인사를 하고 계단을 내려갔다. 내가 제일 아래층까지 내려갔는데 삼수생 오빠만 이름도 모르고 헤어져 버렸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급하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시 옥상으로 올라갔다. 다들 내 생명의 은인들인데 이름은 알아야지.
옥상에 올라가니 아직 문이 열려있었다. 막 들어가려던 참에 오빠의 목소리가 들려서 열려있는 문 뒤에 숨었다.
“수능이 끝나고 많은 수험생들이 죽으려고 하는데 그건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히 성적이 잘 안 나와서 죽으려는 게 아니야. 수능이 완전히 끝나는 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수험생이 아닌 인간으로서 자신의 인생을 바라보게 된 아이들이 그 어마어마한 무게에 기가 질려서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죽으려는 거지. 성적 비관 자살은 성적표의 숫자 때문에 죽은 게 아니야. 그때까지 자신의 인생에 대한 생각을 해본 적이 없던 아이들이 처음으로 자신의 인생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되어 서지. 그래도 난 그렇게 자신의 인생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게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 난 죽고 나서야 내 인생을 마주볼 수 있었어, 죽고 나서야 어른이 될 수 있었던 거야.”
뭐? 죽고 나서?
문 뒤에 숨어있던 내가 옥상 문턱을 넘어 옥상에 들어서자.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이 빈 옥상에 아침 하늘만 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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