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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색왜성

  • 작성일 2015-11-13
  • 조회수 218

 
 
 
 
 
 떨어진 별들은 어디로 갈까?
 

 유성우가 내린 건 그 해 여름의 일이었다. 나는 그 날 밤 그냥 자고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원래 별에 그리 관심이 많지도 않았다. 가끔 월식이 있다고 하면 하늘을 한 번 쳐다보는 게 전부. 사람들이 그 해의 유성우 색깔이 특이했다느니, 지구로 떨어진 별조각들이 많다느니 하는 것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던 것 같다.

 

 나는 좀 실용적인 걸 좋아한다. 천문학자들에게야 중요하겠지만 나는 별이 떨어지든 달이 떨어지든 오늘 내일 먹고 사는 데 더 바빴다. 그렇게 여름이 갔다. 그 유성우에 대한 추가적인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가을이 다 되어서였다.

 

 "그거 알아? 지난번에 유성우 왔잖아."

 "근데?"

 "한 번 봐봐."

 

 심드렁하게 보고 넘기려던 뉴스 기사에는 그 유성우에서 피어난 꽃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별꽃이라고들 했다. 니르바나의 꽃인가 우담바라의 꽃인가, 그렇게 부르기도 했다. 사진은 없었다. 좀 더 검색을 하자 굉장히 조그맣게 이미지 하나가 떴다. 거의 나무라고 해도 될 크기의 황금색 꽃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우담바라라고 보기엔 식물이 너무 컸다. 사람보다 큰 꽃송이가 자칫했다가는 쓰러져 버릴 것처럼 보였다.

 

 평지에 핀 꽃. 돌을 뚫고 자라난 꽃. 위치는 다양했다. 전 세계적으로 수십 송이 정도가 핀 듯 했다. 독성이 있을 수 있으니 먹지 말라고들 했다. 함부로 채취하지 말라고도 되어 있었다.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우주에서 온 괴상한 꽃을 먹으려 들까 싶었으나, 누구 말로는 어디서 이미 그게 주술적으로 사용되려고 한다고 그랬다.

 

 내가 본 건 거기까지였다. 어렴풋이 그 꽃에서 확실한 독성이 발견되었다느니, 수분을 하게 되기 전에 제거해야 한다느니 하는 이야기들도 들려 왔다. 우리나라에도 두어 송이 꽃이 피었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우리 집 근처가 개발 지역으로 선정되느냐 마느냐에 더 관심이 있었다. 굳이 핀 꽃을 멸종시켜서 뭐 하냐는 얘기를 한두 번 나눴을 뿐이다.

 

 며칠 뒤에 무언가 이상한 걸 파는 노점상이 길가에 나타났다. 포장마차였는데 붕어빵이나 다코야키 같은 걸 파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주변에 사람도 별로 없었다. 일부러 한적한 곳에 가게를 차린 건가 싶을 정도였다. 의심부터 들었다. 이거 혹시 신종 인신 매매는 아닌가. 나는 주변을 살폈다. 별 건 없었다.

 

 인신매매는 아닐까 했으면서 왜 다가갔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러나 다음 순간 나는 그 포장마차 앞에서 주인을 펴다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주인은 고개만 끄덕하고 말았다. 가판대에는 어떤 것도 올려져 있지 않았다.

 

 "뭘 파시는 거예요?"

 "별꽃."

 

 솔직히, 아주 솔직히 말해서 웬 미친 사람인가 싶었다. 그러나 내가 누구던가. 말 많은 이 나라의 여고생 아니던가. 대화를 이렇게 허무하게 끝내고 만족할 내가 아니었다.

 

 "그 우주 괴물 별꽃이요?"

 "괴물이라니."

 

 점주는 좀 불편한 표저이 되더니 어딘가에서 주섬주섬 빛을 발하는 조각들을 꺼냈다. 금덩이처럼 보였다. 나는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다시 보니 그건 작게 잘린 꽃송이들이었다. 나는 점주를 보았다.

 

 "이건 어디서 구하셨어요?"

 "그 꽃이 하필 우리 집 근처에서 피어서 좀 챙겼지."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걸 팔아서 어디다 쓰겠다고. 점주는 날 보더니 꽃잎을 내려놓고 라이터를 켰다. 나는 그가 꽃잎 한 송이에 불을 붙이는 걸 지켜보았다. 불꽃이 닿는 순간 꽃송이는 굉장한 빛을 내면서 사그라들었다. 식물 타는 냄새는 나지 않았다. 뚫어져라 보고 있는 나를 향해 점주가 웃었다.

 

 "원래 별이었는데 이 정도 빛을 내는 건 당연하지."

 

 떨어진 별들은 어디로 갈까?

 나는 모른다. 점주는 그러나 별이 떨어진 곳에서는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아름다운 꽃이 핀다고 했다.

 

 야간 자율학습을 하는 지역에 살았던 나는 주말에만 그 노점상에 가 볼 수 있었다. 가끔씩은 들르는 사람이 있었지만 대체로 점주에게 오는 사람들은 적었다. 점주는 내가 올 때마다 꽃잎을 하나씩 태워 주었다. 나는 그에게 그렇게 꽃을 막 태워서 팔 수 있겠느냐고 그랬다. 점주는 웃으면서,

 

"파는 거 아니니까 상관 없어."

 

라고 했다. 한 달 정도가 흘렀다. 날은 더 추워졌다. 꽃은 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꽃들을 태우겠다고 했다. 내가 그 얘기를 하자 점주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쳤다.

 

 "왜 다들 그 모양인지 몰라."

 "왜요?"

 "천연 에너지원 천연 에너지원 노래를 부르면서 왜 이걸 쓸 생각은 안 하는 거지?"

 "무서운 거 아닐까요?"

 "그 무섭다는 게 가끔씩은 문제야. 자기가 알지 못하는 걸 무조건 밀어내고 죽여 버리려고 하면 고인 물이 되잖아."

 

 그는 고인 물이 썩는 현상에 대해 몇 분 정도 얘기했다. 평소대로였으면 시간 낭비라고 싫어했겠지만, 이번에는 어쩐지 싫지 않았다. 그냥 그가 꽃잎을 태우는 걸 보는 게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춤추는 불꽃은 사람을 홀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 꽃에서 나온 것보다 아름다운 불꽃을 본 적이 없다.

 

 "아저씨."

 "어."

 "그래서 이걸 사면 어디다 써요?"

 "많은 게 있지."

 

 그는 그러면서 작은 유리병을 하나 꺼냈다. 내가 지켜 보는 가운데 그는 잘게 부순 꽃잎을 그 안에 채웠다. 나는 그가 병 안에 불을 붙일 거라고 생각했다. 점주는 대신 그냥 병 뚜껑을 닫았다. 그는 그 병을 내밀었다. 나는 얼떨결에 받았다. 사야 하는 건가. 그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았는지 어쨌는지 점주는 그냥 씩 웃었다.

 

 "내일 가져와. 오늘 밤엔 그냥 가만히 머리맡에 두고 자고."

 "어떻게 하면 되는데요?"

 "그냥 머리맡에 둬. 아, 꼭 불 끄고."

 

 여기서는 좀 할 말이 있었지만 나는 그냥 병을 가지고 집에 돌아왔다. 어둠을 무서워하는 나는 평소에 늘 작은 등을 켜고 자곤 했다. 그 밤에 침대에 눕자 망설임이 일었다. 불을 꺼도 될까? 진짜?

 

 나는 심호흡을 하고 불을 껐다. 사방이 어두워짐과 동시에 머리맡에서 환한 불빛이 나타났다. 빛의 정체는 꽃잎이 든 유리병이었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병을 들여다보았다. 분명 전혀 불을 쓰지 않았음에도 꽃잎에서는 희미한 금빛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병에 얼굴을 더 가까이 들이밀었다. 꽃잎들은 마치 작게 자른 황금빛 편지지 같았다. 나는 어린 왕자와 그의 별과 그의 장미를 생각했다.

 

 그 날 떨어진 별들은 누구에게 가는 편지였을까.

 

 나는 꿈도 꾸지 않고 잠들었다. 일어났을 때 병은 그대로 있었지만 더 이상 빛은 내지 않고 있었다. 나는 점주를 다시 찾아갔다. 그는 나를 보더니 곧바로 말했다.

 

 "그거 가져도 돼."

 

 대답하는 대신 나는 주섬주섬 지갑을 꺼내기 시작했다. 점주가 인상을 썼다.

 

 "공짜로 가져도 된다니까?"

 

 지갑 속에는 오천 원이 있었다. 내가 돈을 그냥 내밀었다. 점주는 받지 않았다. 나는 돈을 가판대에 탁 소리나게 내려놓았다. 점주의 표정이 영 좋지 않았다. 나는 일부러 활짝 웃어 보였다.

 

 "꽃 값이 아녜요."

 "그럼?"

 

 잠깐 말문이 막혔다. 꽃 값이 아니면? 여기 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 지불하는 값인가? 그러나 그렇게 되면 그에게 괜한 부담을 떠안기는 것 같았다. 그러나 뭐라 달리 할 말이 있으랴. 나는 대충 둘러댔다.

 

 "빛에 대한 값을 치르는 거예요."

 

 그는 대꾸하지 않았다. 내가 말했다.

 

 "꽃이 있는 동안은 여기 계속 계실 거죠?"

 

 점주는 시간이 지나서야 대답했다.

 

 "그래."

 
 전문가들은 이 정도 되었으면 꽃이 질 때도 되었다고 했다. 아무리 화려해도 얼마나 가겠느냐고. 그 황금빛 꽃나무들은 그러나 여전히 화사하기만 했다. 그 꽃들의 특이한 점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꽃에는 수술도, 암술도 없었고 향기 역시 없었다. 전문가들은 우주에서 오는 광물들이 그 씨앗일 거라고 했다. 뭔가 지구의 성질과 다르기 때문에 향기 같은 것도 없을 거라고들 그랬다. 나는, 아무래도 우주에선 향기를 전달할 방법이 없으니까 그런가 보다 했다. 벌들도 없고 나비도 없고.
 
 보면서, 꽃들의 왕인 모란도 향기가 없지 않았던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얘기가 나온 날에 점주는 내게 글라이더 타는 법을 아느냐고 그랬다.
 
 "글라이더요?"
 
 내가 되물었고 그는 나더러 가판대 뒤로 오라고 손짓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허연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라이트 형제가 만든 비행기의 축소판 같기도 했다. 점주는 몸을 숙여서 물체를 들어 보였다. 글라이더였다. 사람이 타서 엎드릴 공간이 밧줄로 만들어져 있었고 손잡이도 있었다.
 
 "타는 법 알려 줄까?"
 
 문득 불안감이 일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주제에 갑작스레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 전까지 점주를 만나 왔던 건, 순전히 그 꽃송이들을 더 갖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뭐가 어찌 되었든 나는 내가 땅의 세상에 속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나비들이나 취할 법한 방식, 그러니까 비행을, 배워 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너무 일을 키우는 기분이었다. 점주는 글라이더 손잡이를 건드렸다.
 
 "날개를 평형으로 맞추고 중간에 타서 나비처럼 날개짓을 좀 하면 돼. 낮은 곳에서는 힘들 거고 좀 위에서 뛰어내려야 할 거야."
 "이걸 어디에 쓰는 건데요?"
 
 나는 회의감을 숨기려 애썼다. 점주는 그걸 느꼈을까, 어쨌을까. 끊임없이 달아나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왜, 나는 뭘 하러 여기 있는 걸까?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꽃을 태우는 걸 구경하면서, 그의 조그만 글라이더 같은 걸 구경하면서 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걸까?
 
 "꽃잎을 따러 갈 때 이걸 썼어."
 
 꽃잎 채취자로 미래 직업을 삼고 싶진 않다고 하고 싶었으나, 그냥 말을 안 하는 게 현명할 것 같았다. 그는 글라이더를 내려놓고 옆에 무릎을 꿇었다. 그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보여는 주고 싶어."
 나지막한 목소리였다. 표정이 딱히 밝아진 것도 아니었다. 그럼 그는 무슨 이유로 이렇게 갑자기 열정적으로 변한 걸까. 자신이 만든 종이 공예품을 자랑하는 어린 아이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는 날개를 건드리며 조종 방식과 안전한 운행에 대해 설명했다. 나는 선 채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이런 건 내가 배워 봤자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이었다.
 
 꽃 자체에 대해서는 여전히 관심이 있었다. 일종의 천연 등불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정말 우주 꽃을 향해 날아갈 꼐획은 눈꼽만치도 세우고 있지 않았다. 그는 곧 설명을 끝냈고 나로서는 나름 많은 동의 표시를 하며 대화를 끝냈다. 가면서 미안하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내가 스스로 그에게 떠나지 말라고 했던 말을 짓밟은 건 아니련지. 나는 생각을 쫓았다.
 
 집에서는 축제 준비를 해야 했다. 내가 가판대 관련 소품 담당자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점주에게 관심을 안 보여 놓고는 가장 먼저 떠오른 게, 꽃잎을 이용해야겠다는 발상이었다. 약간의 죄책감과 함께 나는 유리병을 이불 속에서 꺼냈다. 꽃잎들은 그대로 있었다. 나는 일단 방을 최대한 어둡게 만들었다. 꽃잎들이 희미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나는 꽃잎을 하나 꺼냈다. 다른 꽃잎들에서 분리되기가 무섭게 꽃잎 조각은 빛을 잃었다.
 
 당황스러웠다. 다시 넣으면 다른 꽃들도 빛을 잃을까? 내가 뭔가 잘못했나? 꽃잎을 내려놓고 다른 것을 하나 더 꺼내 봤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속이 탔다. 이게 아닌데. 이렇게 끝까지 갈 수는 없는데. 나는 두 번째 조각 역시 떨궜다. 두 번째 꽃잎을 첫 번째 꽃잎 위에 떨어뜨리는 순간 흐린 빛이 시야의 가장자리에 나타났다. 나는 꽃잎을 내려다보았다. 빛은 다시 돌아와 있었다.
 
 인타라망. 순간적으로 그게 떠올랐다. 인도 신화 속의 그물. 인타라망이라는 그물에는 무수히 많은 진주가 붙어 있어, 혼자서는 빛을 내지 못하는 진주들이 서로를 미추면서 그물이 환한 빛을 내뿜도록 만든다고 했다.
 
 나는 한지로 만든 연등에 꽃잎을 각 세 장씩 집어넣었다.
 
 다음 날 학교로 가는 길에 보았을 때 노점상은 없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평소대로라면 점주가 없긴 해도 한갓진 길 구석에 포장마차가 딱 붙어 서 있기 마련이었다. 다음 날도 노점상은 없었다. 사흘째 되는 날 나는 그 얘기를 친구에게 흘렸다. 근처에 사는 애였다.
 
 "그거 철거됐어."
 "뭐?"
 "밤에 되게 시끄럽던데? 아마 구청에 시끄럽다고 전화한 사람들도 많을 걸?"
 
 망연자실했다. 이어서 애들이 재개발에 대해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 나는 기분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걸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재개발 확정에 곧 보상금이니 하는 문제가 처리될 거라고 했다. 지금 고등학생인데 이런 걸로 공부에 지장 가면 누가 책임지냐는 소리와, 이사 가면 어떻게 적응할까 하는 얘기들이 오갔다. 빠져나오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자리로 가려는데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축제에서 판매를 맡은 애였다.
 
 "축제 준비 지금 계속 할 필요가 있을까?"
 "해야지."
 
 대답이 곧바로 나왔다. 나는 나를 보던 얼굴에 의아한 표정이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웬일이래?"
 
 왜 그러는지도 알 만 했다. 원래 나는 뭐든 다 귀찮아 하는 사람이었다. 돈 되는 거하고 뭔가 쓸모 있는 거 빼고는. 이 축제가 대체 뭐에 쓸모 있다고 느꼈길래 진행을 하고 싶은 건가 스스로에게 의문이 들었다. 나는 일부러 짜증스레 벽 쪽을 손짓했다. 등이 달린 가판대가 비스듬히 세워져 있었다.
 
 "다 만들었단 말야."
 
 그 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나는 노점상이 있던 자리에 한 남자가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선선하다 못해 추운 가을 밤이었다. 골목 벽에 등을 붙인 남자는 어쩐지 익숙한 낡은 겉옷을 입고 있었다. 점주였다. 나는 다가갔다. 그가 서 있는 모퉁이엔 가로등이 없었다. 빛 바랜 옷깃에 닿은 달빛이 창백했다. 그는 나를 보더니 인사도 없이 중얼대기 시작했다.
 
 "시에서 고소장 날아올까 무서워서 더 이상 영업은 못 할 것 같아. 잘못하다간 재개발 보상까지 떼 먹힐 판이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어두운 골목 쪽을 곁눈질했다.
 
 "글라이더 고치는 중이야. 속에 공기는 빵빵하게 해서 날아야 해. 처음엔 뜨거운 바람을 썼는데 이젠 꽃잎을 써 보려고. 날개 안을 잘 안 타게 더 고쳤어."
 
 그는 왜 이런 것들을 얘기해 주고 있는 걸까? 내가 알아서 바뀌는 게 뭐라고? 이해할 수 없었다. 떠나는 게 좋을까 싶었지만 그렇게 매정하게 발을 떼어 놓을 자신이 없었다. 그냥 포기하고 듣는 편이 나을 듯 했다.
 
 "꽃이 화려한 이유는, 보통 인간의 몇십 년을 그네들은 며칠 만에 살아야 하기에 그렇겠지."
 
 그는 거리를 보고 있었다. 사람 하나 길고양이 하나 없이 우리 둘만 서 있는 그 거리를. 문득, 그를 알기 전에 그가 나를 이렇게 붙잡고 늘어졌더라면 그냥 떠나거나 화를 냈으리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한 막내 삼촌뻘 되는 아저씨가 술을 마신 것도 아니고 왜 주저리주저리 얘기를 하는가. 그가 하는 얘기가 들렸다.
 
 "시에서 꽃을 태우면 나는 거기 뛰어들지도 몰라."
 "나방도 아닌데, 왜요?"
 
 점주가 웃음과 함께 괜히 바닥을 툭툭 찼다. 자갈이 굴러갔다.
 
 "너는 아니지. 너라면 나방보다는 이성적인 나비 쪽일 거야."
 "꽃 제대로 판 적 있으세요?"
 
 나는 불쑥 물었다. 점주는 고개를 저었다.
 
 "돈 받고 판 건 네가 처음이야."
 
 그 오천 원을 말하는 거라면, 나도 딱히 산 건 아닌 듯 했다. 꽃 값으로 준 게 아니라고 그러기도 했고. 그러나 그냥 가만히 있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점주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
 
 "내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 내가 팔 권리가 없는 것 같았어. 대동강 물 팔아먹었다는 김선달이라는 사기꾼 알지? 그런 느낌. 처음엔 진짜 장사를 할 거였는데."
 
 나는 지갑을 또 꺼냈다. 어떤 미친 생각이 날 사로잡았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그 때는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점주는 잠시 내가 뭘 하려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지갑을 보고만 있었다. 나는 이번에도 오천 원을 꺼냈다. 점주가 헛웃음을 쳤다.
 
 "내가 거지냐?"
 "그거 아니고요."
 "그럼?"
 "글라이더 값이요."
 
 그는 받지 않았다. 나는 계속 돈을 들고 서 있었다. 그는 돌아서며 구석을 턱짓했다.
 
 "위험하게 타지 말고 그냥 가져 가."
 "산다니까요."
 "영구 대여라고 쳐."
 
 나는 그가 떠나는 것을 보았다. 실수를 한 걸까, 속으로 그랬다. 나는 그림자 속을 살폈다. 흰 물체가 보였다. 어쩐지 전에 본 것보다 큰 것 같았다. 나는 천을 잡고 밖으로 끌어냈다. 커 보였던 건 착각이 아니었다. 진짜 글라이더를 접어 놓은 것처럼 보였다. 손잡이가 있는 좀 특이한 글라이더. 색다른 패러글라이딩을 할 때 쓸 것 같은. 이불처럼 보이기도 했다. 펼치면 배추흰나비처럼 보이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손잡이를 잡고 움직여 보았다. 천이 흔들렸다. 나는 주변을 살폈다. 아무도 없었다. 나는 다시 글라이더를 보았다. 평지에서는 아무래도 할 수 있는 게 없을 거였다. 나는 글라이더를 챙겨 일어섰다.
 
 가는 내내 점점 더 후회가 커졌다. 아니, 이걸 챙겨서 어쩌자는 건지. 집에 갖고 들어갈 수도 없었다. 나는 일단 아파트 옥상으로 향했다. 옥상 문은 열려 있었다. 바람이 얼굴로 불어닥쳤다. 차면서도 도시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나는 바람이었다. 나는 난간 쪽으로 갔다. 옹기종기 붙은 빛들이 밝았다. 갑자기, 이 모든 게 곧 사라질 거라는 생각이 엄습하면서 무한한 서러움이 밀려왔다.
 
 점주에게 옮았나 싶었다.
 
 나는 글라이더를 완전히 펼쳤다. 펼쳐 놓고 보니 더 나비처럼 보이는 생김새였다. 나는 망설이다가 그 위에 엎드렸다. 달이 밟았다. 난간 사이로 멀리 황금빛 기둥이 보였다. 그 문제의 꽃이었다.
 
 빛을 팔면 어떨까. 갑자기 그게 떠올랐다. 마지막 축제일 거고 모두 뭔가 기억에 남는 걸 하나씩 챙길 수 있도록 빛을 팔면 어떨까. 점주처럼 글라이더를 타고 꽃까지 날아가 꽃잎을 따 올 자신은 없었다. 지금은 밤이었고 나방의 시간이지 나비의 시간이 아니니까. 나는 혼자서 그런 핑계를 댔다. 점주가 날 나비에 빗댄 걸 기억해 내면서.
 
 나는 글라이더를 접어 옥상 구석에 두고 집으로 내려왔다. 방은 어두웠다. 나는 이불을 들춰 보았다. 꽃잎이 든 병이 아직 빛나고 있었다. 며칠 뒤면 축제였다. 마지막이리라. 나는 병을 챙겼다.
 
 "이게 뭔데?"
 "천연 방향제 비슷한 거야."
 
 학교에서 애들이 물어보는 것에는 적절히 대답해야 했다. 외계에서 온 꽃이란다! 하고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누가 물었다.
 
 "얼마씩 받게?"
 
 나는 그냥 비싸게 받겠다고 그러려다가 멈췄다. 점주에게 나도 무료로 받은 거였다. 점주 본인도 그게 자기 게 아닌 것 같다고 했고.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잔돈 있는 거 달라고 해. 수익은 기부하게."
 
 학교는 조금 일찍 끝났다. 나는 약봉지를 잔뜩 사서 꽃잎을 두 장씩 넣었다. 병의 반이 비었다. 남은 꽃잎은 간직하고 싶었다. 축제는 조용했다. 나는 꽃잎을 주면서 잘 때 꼭 옆에 두고 자라고 했다. 오늘 밤만이라도 괜찮으니까. 그리고 어두운 곳에 두라고도 했다.
 
 나도 점주도 적극적인 인간들은 못 될 사람들이었던 모양이다. 좀 더 적극적이었으면 우리의 꽃을 지켜 보겠답시고 뭐라도 했을 텐데. 축제가 끝난 밤에 자려고 눕는 순간 갑자기 꽃잎들이 유난히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나는 병을 등 뒤로 치웠다. 아직도 밝았다. 나는 눈을 떴다. 창 밖에서 황금빛이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일어서서 창가로 갔다. 무언가가 불타고 있었다. 금빛이 하늘로 높이 타올랐고 불씨 같은 것들이 높이 휘날렸다. 연기는 없었다. 나는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꽃이 타는 것이었다.
 
 멀어서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는 보이지 않았으나, 이따금씩 큰 꽃잎 같은 것이 바람에 실려 떨어지는 건 볼 수 있었다. 꽃잎은 떨어지기 전에 무수히 많은 금가루 같은 걸로 변해 날아갔다. 점주 생각이 났다. 괜찮을까. 집집마다 사람들이 밖으로 나와 구경하고 있는 게 보였다. 가족들이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창문에 붙어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백색 왜성에 대해 배운 기억이 났다. 적색 거성이 완전히 타고 남은 흰 재 취급을 받는 난쟁이별. 그러나 설령 잔재에 불과하다고 해도, 백색 왜성은 여전히 별이었다.
 
 별똥별로서 떨어졌다던 꽃은 타들어가면서 하늘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꽃이 타면 탈 수록 하늘은 점점 더 밝아졌다. 작은 폭발과 함께 빛이 더 솟구쳤다. 나는 방 안에서도 빛이 나오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들여다보았을 때 병에서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나는 다가갔다. 꽃잎들이 하나씩 빛으로 화하고 있었다. 멀리 떨어져 있긴 하지만 어머니인 꽃과 함께 하려는 듯이.
 
 나는 병을 가지고 나와 창문을 열었다. 열기로 가득한 공기가 머리카락에 달라붙었다. 내가 병 뚜껑을 열었다. 한 번도 맡은 적이 없는 향기가 났다. 동시에 그건 추억의 향기였다. 언제 어쩌다가 맡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왠지 모를 서러움을 불러 오는. 나는 병을 끌어안은 채 꽃이 더 큰 불길에 휩싸이는 것을 지켜보았다. 밤이 새벽처럼 밝았다.
 
 아래에서 말소리들이 들렸다. 나는 점주가 준 글라이더를 생각했다. 이제 아마 그걸 탈 일은 영영 없을 거였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어쩐지 속이 시렸다. 그건 그 꽃에 잠깐이나마 홀렸던, 나와 점주 같은, 그 '나비'들이 꽃을 보내는 과정이었다.
 
 학교로 돌아갔을 때 아이들은 내게 다들 꽃이 탈 때 꽃잎도 사라졌다고 했다. 어디서 구했냐는 물음에 난 잘 모르는 곳에서 샀다고만 했다. 점주에 대한 소식은 더 이상 들을 수 없엇다. 그가 정말 불 속에서 스스로를 살라 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나, 나는 그게 어딘가에 잘 있으리라고 믿고 싶었다. 다음 날 글라이더를 원위치에 돌려 놨더니, 며칠 뒤에 그게 없어져 있었던 것이다.
 
시에서는 꽃을 태운 소동에 대해 사과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백야는 삼일간 지속됐다. 우리가 학교와 마을을 떠날 때는 물론, 그 날의 흔적이라곤 남아 있는 게 거의 없었다. 몇몇 아이들은 꽃잎과 관련된 게 다 헛것이었다고 보는 애들도 있었다. 향기에 이상한 성분이 있어 사람을 홀렸다는 거였다. 어쩌면 그 꽃은 어떤 의미에서는 정말 우담바라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 자를 어리석을 우 자를 써서. 아무 해도 끼치지 않고 밖에서 찾아온 손님을 우리는 그렇게 살라 버려야만 했던 걸까 싶기도 했다. 우리는 얼마 뒤에 서로를 떠났다.
 
 여전히 그 황금빛 꽃을 떠올리면 어린 왕자의 장미가 떠오른다. 자신의 작은 별을 떠나 우주를 떠돌다 사막에서 사라진 작은 왕자. 그리고 그 왕자가 이미 떠난 별에서 왕자를 찾는 그의 장미.
 
 그래서, 떨어진 별들은 어디로 되돌아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