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와 함께 하는 화요일 두 번째 이야기 부루마불 게임 4화
- 작성일 2016-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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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루마불 게임/4
익래는 점프 기능으로 ㄱ부장이 게임판을 벗어난 사장의 주사위를 육으로 바꾸는 장면, ㄱ상무가 나머지 주사위를 삼으로 바꾸는 장면, 마지막으로 ㄴ상무가 사장에게 술잔을 권하는 장면으로 이동시켰다.
-저는 여러분을 만나기 전에 몇 번이나 이 cctv를 확인했습니다. 저에게 가장 큰 의문은 이것이었습니다. 왜 ㄴ상무는 술잔을 바꿔치기 했나. 그리고 ㄱ상무는 왜 가만 두면 뉴욕으로 향할 사장을 대한민국 서울로 이끌었나?
-술잔을 바꿔지기 했다구요?
ㄱ부장이 놀란 눈으로 ㄴ상무를 돌아봤다.
-눈치채지 못한 일이었습니까?
-네, 전혀.
ㄱ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당신은요, ㄱ상무님?
불현듯이 익래의 눈길을 받게 된 ㄱ상무는 얼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익래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무리도 아닙니다. 원형으로 둘러앉은 좌석에서(게다가 ㄴ상무는 카메라로 보자면 돌아보고 있는 자세였습니다)왼쪽 오른쪽에 놓여 있는 술잔의 구분은 모호합니다. 자리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물론이고 관찰자의 입장에서 봐도 그렇습니다. 때문에 ㄴ상무는 쉽게 술잔을 바꿔치기할 수 있었지요. 자기 술잔은 물론이고, 사장의 술잔도 마찬가지였습니다.
ㄱ부장이 의문이 있다는 표정으로 익래의 말을 가로막았다.
-사장은 그날 소주를 마셨습니다. 애초부터 잔이 없었...
익래가 미소를 지었다.
활짝, 그야말로 활짝이었다.
-바로 그 점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ㄴ상무는 쉽게 잔을 바꿔치기할 수 있었죠.
ㄱ부장은 아직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ㄱ상무와 ㄴ상무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채였다.
익래가 얘기를 이어갔다.
-ㄴ상무는 이미 채워져 있는 자기 잔을 사장에게 건네기 위해 ㄱ상무의 빈 잔에 맥주를 채워넣었던 겁니다. 그럼 ㄴ상무는 어째서 이런 이상한 행동을 했을까? 결론은,
ㄴ상무를 쳐다보던 눈을 돌려 ㄱ상무를 바라봤다.
-알고 있었던 겁니다. ㄱ상무가 자기에게 약을 먹이려고 했다는 사실을 말이죠.
ㄱ부장이 놀란 눈으로 ㄴ상무와 ㄱ상무를 번갈아 돌아봤다.
-당신들...
ㄱ부장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그때 조사실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익래는 잠깐 슬라이드를 멈추고 밖으로 나갔다.
문밖에 ㅎ순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형사님 지시대로 사장실과 간부들 캐비닛을 조사했습니다.
-찾았나?
ㅎ순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ㄱ상무의 캐비닛에서였습니다.
익래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검시관한테 가져다 줬어?
ㅎ순경이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동일 성분이랍니다. 사망자의 위에서 나온 성분과.
-알았어.
ㅎ순경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
다시 조사실로 들어갔다.
익래가 다시 슬라이드를,
ㄱ상무가 사장의 주사위를 바꾸는 장면으로 이동시켰다.
-ㄱ부장님. 당신의 의문을 풀어드리기 위해 제가 설명을 해드리겠습니다. ㄱ상무와 ㄴ상무는 알력관계에 있다고 아까 말씀드렸죠. 그리고 둘 다(ㄱ상무와 ㄴ상무) 희망캡슐과 완전히 반대되는 약효를 지닌 약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추측컨대, 정리해고 아니 유도해고작업이 마무리되고나면 남아 있는 사원들에게 그 새로운 약을 먹일 생각이었겠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말입니다. 어쨌든 그 약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ㄱ상무는 관리자에게도 해고의 칼날이 미칠 수 있다는 첩보를 받습니다. 아니, 첩보라고 할 것도 없었겠죠. 회사 사정이 이지경이었다면, 누구나 논리적으로 그런 정도는 생각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그때부터 ㄱ상무의 고민은 시작됩니다. 처음엔 어떻게 하면 짤리지 않을 수 있을까였을 겁니다. 겁이 났을 겁니다. 아까 ㄱ부장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ㄱ상무님도 부인과 자녀를 둔 한 집안의 가장이었으니까요. 회사가 망해가는 형편에서 취직 못 한 자기 자녀를 회사에 꽂아넣을 수도 없었을 테구요. 최악의 경우 함께 쪽빡을 차는 경우가 될 테니까 말입니다. ㄱ부장은 생각했습니다. 걱정하고, 두려워 하고...그러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즉, 이번 기회에 앙숙이던 ㄴ상무를 쫓아낼 생각을 합니다. 대신 독배를 마시게 하자는 거였죠. 그런데 다른 첩보가 도착합니다. 아마도 예상컨대 ㄱ상무와 ㄴ상무 모두 정리해고 대상자라는 첩보였을 겁니다. 아, 이건 제 예측입니다. 하지만 제 나름대로는 합리적인 예측이죠. 아닙니까, ㄱ상무님?
익래가 웃으며 ㄱ상무를 바라봤다.
대답하지 않고 ㄱ상무는 멍한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그때부터 ㄱ상무는 더 극단적인 방법을 생각하게 됩니다. 누구나 코너에 몰리면 필사적이 되는 법이지요. 자신을 똥으로 취급하는 사람한테 밥을 떠먹여 줄 사람은 없을 겁니다. ㄱ상무는 사장과 ㄴ상무 모두에게 데미지를 입히면서 회사를 살릴 구상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ㄱ상무를 바라보던 익래가 다시 ㄴ상무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ㄴ상무의 존재였습니다. ㄴ상무의 협력없이는 이 계획이 성공할 수 없었죠.
ㄱ부장이 뭔가 할 말이 있다는 표정으로 익래를 바라봤다.
그 표정을 보지 않고 익래는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당일, 그러니까 사장과 부루마불을 하던 그 날, 돌발상황이 생기기 전까지 두 사람은 동업자였습니다. ㄱ상무와 ㄴ상무는 짜고 사장에게 캡슐을 먹일 작정이었죠. 흥분도와 감각예민도를 높여 극한의 집중력을 쏟아내게 만드는 바로 그 약 말입니다. 사장의 사고 안에서 사고 상황을 극대화 시켜줄, 그래서 두려움의 폭탄이 터지도록 만들 명약. 신비의 명약....그 날 사장은 소주를 마셨고, ㄱ상무도 소주를 마셨지만 ㄴ상무와 ㄱ부장은 맥주를 마셨죠. 계획이 틀어지게 된겁니다. 만약 ㄱ상무의 계획대로 사장이 죽고 경찰이 약의 존재를 알게 되면 똑같은 술을 마셨고, 사장 옆자리에 앉은 자신이 가장 먼저 의심을 받을 판이었죠. 왜 소주를 마시지 않는 거냐. ㄱ상무는 배신자 ㄴ상무를 노려봤습니다. 나중에 다시 설명할 기회가 있을 지 모르지만 이것은 ㄴ상무의 계획이었습니다. ㄴ상무는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ㄱ상무가 언제든지 자신을 배신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만약을 위해 맥주를 마신 겁니다. 말하자면, 보험이었습니다. 장난치지 못하게 하려는 보험. 약을 가지고 있는 것은 ㄱ상무였으니까 언제든 자기 잔에 ㄱ상무가 그 약을 넣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겠죠. 그야말로 복마전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ㄱ상무는 그 약을 ㄴ상무의 맥주 잔에 넣었습니다. 제가 한 번 그때 ㄱ상무님의 생각을 알아맞춰 볼까요? 이런 생각이었을 겁니다. 이 개새끼. 사장보다 이 개새끼가 더 밉다. 그러다 어떤 발상 하나가 별안간에 떠올랐습니다. 불행을 극대화시켜 누군가를 심장마비에 이르게 할 수 있다면 같은 방법으로 행복을 극대화시켜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익래는 침을 삼키고 나서 다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랬기 때문에 ㄱ상무와 ㄴ상무는 아까 말한 이상한 행동을 한겁니다. ㄱ상무가 ㄴ상무의 잔에 약을 넣었고, 그걸 눈치 챈 ㄴ상무는 사장에게 술을 권하는 척 잔을 바꿔치기합니다. 이후 벌어진 상황은 ㄱ부장님도 아시는 바대로입니다. 가만 뒀다면 뉴욕에 걸려 어차피 파산했을 사장의 주사위를 ㄱ상무가 한 번 더 조작해 대한민국 서울에 걸리게 만든 것입니다. 사장은 판 위의 주사위와 ㄱ부장이 가져오는 주사위의 숫자를 보고 처음에 뉴욕에 걸린 줄 알고 가슴이 덜컹 내려 앉습니다. 배신자. 순간 그 낱말이 떠올랐겠죠. 그런 데 바로 그 순간 평소 자신과 자주 짜고 쳤던 ㄱ상무가 기특하게 판 위의 주사위를 다른 숫자로 바꿔놓은 것을 보게 됩니다. '곧 짤릴 줄도 모르고' 사장은 아마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잠깐의 안도이후 사장은 자신의 말이 더 큰 불행으로 향하는 걸 보게 됩니다. 대한민국 서울, 그야말로 완벽한 파산이었죠. 그런데 ㄱ상무가 노렸던 건 바로 이 지점이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뉴욕과 서울은 모두...
익래가 ㄱ상무를 바라봤다.
-ㄴ상무의 땅이었습니다. 즉, ㄱ상무는 사장을 죽이려고 했던 방법을 역이용하여 ㄴ상무를 죽이려고 했던 거였죠. 그런데 미리 이 계획을 알아차린 ㄴ상무가 사장과 자기 잔을 바꿔치기 했습니다. 사장을 죽이려던 방법으로 ㄴ상무를 죽이려고 계획을 바꾼 ㄱ상무와 달리 ㄴ상무는 결과적으로 초심을 잃지 않은 진실한 사람이 된 것이죠. 그러니까 이 모든 권모술수 위에 자기 눈을 얹었던 겁니다. ㄴ상무가 말이지요.
익래는 잠깐동안 멍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본 채 그대로 있었다.
그리고 슬라이드 화면을 움직여 사장이 대한민국 서울에 걸리기 전 장면으로 이동시켰다.
멈춘 화면의 배율을 높였다.
ㄴ상무의 잔으로 향한 ㄱ상무의 손 안에 캡슐 하나가 보였다.
-마약캡슐.
익래가 벽을 보았다.
-인간을 일에 집중시키는 캡슐입니다. 일하는 동안 그 어떤 잡념도 생기지 않게 되죠. 언제 흔들릴 지 모를 외나무 다리를 건너는 사람에게 이 캡슐을 먹이려고 했습니다, 당신들은. 이 캡슐을 이용해 이 캡슐을 사용하려고 했던 사람을 죽였다는 역설은 당신들이 이 캡슐을 이미 독이라고 생각했다는 방증이 되겠지요.
기진한 익래의 얼굴이 점차 꿈에서 깨어나지 않은 사람의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변해 갔다.
-ㄱ상무님, 그리고 ㄴ상무님!
익래의 목소리가 진술실을 울렸다.
지목된 두 사람은 긴장된 표정으로 자세를 고쳐 잡았다.
-두 사람을 각각 ㄹ소주업체 사장 살인사건의 주모자, 공동정범 및 실행범으로 체포하겠습니다.
***
-뭐하세요?
익래에게 다가온 ㅎ순경이 물었다.
익래는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경찰서 휴게실은 형사와 참고인,
면회 온 사람들이 내뿜는 담배 연기와 전자 담배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기도.
-교회다니세요?
익래가 미소를 지었다.
-아니.
-아, 그럼 천주교세요? 죄송해요. 기도하는 사람들은 다 기독교 신자같아서.
-아냐.
-그럼 불교?
익래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고개를 숙였다.
-그냥 기도가 하고 싶어서.
ㅎ순경은 이상한 사람을 보듯 한참동안 익래를 보고 있었다.
-그냥 기도가 하고 싶다...무슨 일 있으세요? 안형사님.
익래가 고개를 저었다.
ㅎ순경이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뭐해?
-기도요.
익래가 활짝,
그야말로 활짝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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