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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성

  • 작성일 2016-01-26
  • 조회수 319

모래성

 

1.

의사는 힘겹게 말을 마쳤다. 서연의 시선은 송구스럽고 유감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려 노력하는 의사의 얼굴을 지나 뒤편에 걸린 척추 모형에 닿았다. 구불구불 리아스식 해안처럼 이어진 그것이 누군가의 평생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은 서연도 잘 알고 있었다. 평생이라는 말은 참으로 무거운 말이었다. 온 생을 다해야만 비로소 그 부피를 가늠할 수 있는 무언가. 그것은 절대로 똑바로 반듯하게 이어나갈 수 없는 것이었다. 곡선과 곡선을 덧붙이면서 우리는 평생을 만들어나간다. 척추처럼, 구불구불한 해안선처럼. 서연은 이 모든 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대건은 계속해서 서연을 사랑한다는 내용의 글자를 물이 들어오기 시작한 모래사장에 적었다. 서연은 그 문장을 이루는 정확한 단어들을 읽어내고 싶었다. 대건이 풀어놓은 말들을 믿고 싶었고 디지털 카메라를 꺼내서 그 장면을 완전히 박재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순간마다 파도가 밀려와 서연의 피사체를 집어삼키고는 도망가 버렸다. 파도가 그 문장을 지우면 대건은 다시 적고. 대건이 다시 적으면 파도는 다시 지우는 양보 없는 교착상태의 한 가운데에서 서연은 카메라를 들고 어색한 표정을 지은 채 서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밀물의 기세는 점점 맹렬해 졌지만 대건은 점점 지쳐가는 듯했다. 그러다 무릎까지 무럭무럭 자라난 파도가 다가와 그가 방금 적어놓은 문장을 단번에 시원하게 지워버렸다. 그때서야 대건은 글자를 적는 것을 포기하고 서연을 바라보며 웃었다. 서연도 따라서 웃고 도대체 무얼 한 것이냐 물었다. 결국 지워질 곳에 무엇 하러 그렇게 힘들게 적었냐고. 제대로 된 곳에 적어서 그 좋은 글 조금 더 오랫동안 바라볼 수 있게 하면 안 되겠냐고. 그러자 대건은 무릎을 털고 일어나면서 대답했다.

 

“적자마자 지워지는 게 뭐 어때서. 그게 더 오래 남는 거야. 문장 따위 언젠가는 전부 지워질 거니까. 문장 따위를 믿으면 안 돼.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적은 사실이 중요할 뿐이야. 너는 지금 나를 보고 진심으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으니까. 너는 그 사라진 문장의 흔적을 평생 기억하겠지. 나중에 우리 싸울 때 넌 꼭 이 장면을 기억하고 내게 말해줘야 돼.”

 

그 모습을 서연이 평생 기억할 것이라는 대건의 말은 옳았다. 구불구불한 척추모형을 바라보면서 서연은 그 날의 일을 떠올리게 되었으니까. 그 때 대건은 글씨가 적히자마자 지워지는 것이 뭐 어떠냐고 그랬다. 그가 서연을 사랑한다고 적은 사실만이 중요할 뿐이라고도 말했다. 서연은 생각했다. 그러면 태어나자마자 죽게 될 아이를 낳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 아이가 태어났다는 사실만이 중요할 뿐인 것일까?

 

의사는 서연의 시선이 계속해서 자신의 뒤편에 고정되어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뒤를 돌아보았다. 뒤에는 몇몇 해부학 모형이 놓인 것을 제외하고는 별로 특이한 점은 없었다. 다시 서연을 바라보면서 의사는 자신의 환자가 큰 충격을 받았다고 생각하여 서연에게 몇 마디 위로의 말을 건넸다. 하지만 서연의 귀에는 그 말들이 들려오지 않았다. 서연은 척추모형에 시선을 둔 채 속으로 어떤 계산에 열중하고 있었다.

 

사람이 평균 80년을 산다고 치면 총 29200일을 살아가는 셈이다. 여기에 24시간을 곱하면 우리는 평균적으로 700800시간을 지닌 채 태어난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서연은 구체적인 수치를 대입하는 대신 대략적인 양을 온 감각을 다해 떠올리려 노력할 뿐이었다. 자신이 낳게 될 아이가 보통사람의 인생의 약 칠십만 분의 일을 살아낸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상상해낼 수는 있었다. 하지만 상상한다고 해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도무지 이해될 수 없는 짧은 인생이 자신의 배 속에서 자라나고 있었다. 의사와 상담을 받는 동안만큼의 그 짧은 시간이 그 아이의 평생이었다. 서연은 슬퍼할 겨를도 없이 그 사실을 이해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사실을 이해해내자마자 결국 참아왔던 한 방울의 눈물을 툭 떨어뜨렸다.

 

2.

대건은 아이의 이름을 희망이라 부르자고 했다. 박희망. 물론 당시에는 서연의 뱃속의 아이가 다른 보통의 아이처럼 무럭무럭 자라 하나의 화목한 가정을 이루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해 아르바이트 자리를 전전하는 신세지만 자라나는 희망이를 보면서 한 평생 제대로 살아보자는 가장의 책임을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서연이 병원에 다녀온 뒤 그 모든 마음가짐은 밀물이 들어오는 해안의 모래성처럼 녹아버리고 말았다. 무뇌증이라는 들어보지도 못한 병이 그의 머릿속에 파도를 일으키고 있었다. 나중에 알아본 바에 의하면 무뇌증을 가진 아기는 대개 태어나기 전이나 태어난 지 며칠 못 가 숨을 거둔다고 한다. 뇌가 없으니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지 못해 생명을 유지 할 수 없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의사의 말에 따르면 희망이의 경우에는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 주어진다고 했다.

 

“그래도 오랫동안 앓는 병은 아니라 다행이다.”

 

대건은 자신이 한 말을 듣고 소름이 끼쳤다. 자신의 말을 뒤따라온 정적이 단칸방을 가득 메웠다. 서연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눈을 하고 대건을 쳐다보았다. 몇 줄기의 눈물 자국이 그려진 눈이었다. 대건이 한 말의 뜻은 너무나도 명확한 것이었고 너무나도 명확해서 그만큼 잔혹한 말이었다. ‘아이야 어떻든, 우리가 할 일은 아이를 낳고 아이를 보내는 것일 뿐이다. 그 일을 하는데 많은 비용이 들지는 않을 것이다.’ 이 뜻을 이해하는데 서연은 조금의 시간과 칠흙 같은 정적 을 삼켜야만 했다. 그러고는 분노로 조금씩 일그러지는 표정을 드러냈다. 자국으로만 남아있던 눈물이 조금씩 살집을 불리더니 아래로 흐르기 시작했다.

 

“오빠 그게 정말 오빠가 하고 싶은 말이야? 정말 그렇게 밖에 말하지 못하는 거야? 만약 희망이가 오랫동안 앓게 되면 어쩔 거였는데? 응? 대답해봐 어쩔 거였냐고. 뭐? 적히자마자 지워지는 것이 어떠냐고?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만이 중요할 뿐이라고? 희망이는 오빠 딸이야. 딸이라고! 그런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

 

서연이 한 말의 ‘적히자마자 지워지는 것이 어떠냐고?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만이 중요할 뿐이라고?’ 이 부분을 대건은 읽어낼 수 없었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는 서연이 슬슬 짜증나기 시작했다. 서연은 지금 현실을 잊은 채 투정을 부리고 있다. 대건은 서연의 막연한 울분이 그저 옆에 있다는 이유로 자신에게 향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럼 어쩔 건데. 그래서 그러면 희망이가 오랫동안 살아있기라도 한데? 빨리 잊어야지. 도대체 아직 낳지도 않은 애가지고 왜 그러는 건데?”

 

이 말을 뱉은 뒤 대건은 현관을 박차고 나왔다.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까지는 약 30분이 남은 시간이었다. 희망이의 소식을 듣고 대건도 충분히 슬펐다. 슬퍼할 자격이 있었다. 하지만 서연은 그 슬픔을 독점하려 했다. 그래서 짜증이 났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고 말았다. 대건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윗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이런 시발.” 그때서야 라이터를 집에 두고 나온 게 생각났다. 어쩔 수 없이 조금 일찍 자신이 근무할 편의점으로 향하기로 했다. 1시간에 6000원. 그나마도 운이 좋아서 얻은 괜찮은 자리였다. 다른 애들은 잘해야 5000원인데. 1시간에 6000원. 1시간에...1시간에...대건은 익숙한 질감의 그 단어를 계속해서 발음해 보았다. 대건은 1시간에 6000원을 번다. 대건의 딸은 평생토록 그 1시간만 주어질 뿐이다.

 

3.

희망이의 병에 대해 알려주던 그 날 의사는 서연에게 낙태를 권했다. 마치 약을 처방하듯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삶에는 어떤 매뉴얼 같은 것이 있다. 의사들은 아이에게 불치병이 있으면 위로의 말을 해주고 낙태를 권한다. 더군다나 무뇌증은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도 없는 것이니까 너무나도 당연한 귀결이었다. 바둑에 정석이 있듯이 삶에도 정석이 있다. 산모의 고통을 덜어준다는 것. 그게 지금 의사로서 자기 앞에 앉아있는 환자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하지만 서연 자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의사는 지금 어떤 무의미에 대해 말하고 있다. 파도가 밀려오면 지워지는 문장들의 무의미. 서연은 그것에 대해 저항하고 싶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대건과의 일을 떠올리고 나서부터 그랬다.

 

그 날의 일을 생각하다가 서연은 희망이의 삶을 더 이어갈 수 없다면 다른 사람의 삶에 희망이의 삶을 이어주는 것은 어떨까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을 향하는 끊임없는 질문에 대해 답하고 싶었다. 태어나기도 전에 죽음의 권유를 받은 희망이의 삶의 의미를 지켜주고 싶었다. 서연은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검색해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발신음이 울린 뒤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다.

 

“예, 거기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죠?”

 

4.

병실의 온도는 적당했다. 그 누구도 덥다고 혹은 춥다고 느낄 수 없는 온도. 비현실적인 온도였다. 옆에서는 가습기가 끊임없이 수증기를 뿜어대고 있었다. 증기는 항상 온몸을 비틀면서 땅으로 떨어지다가 어느 지점에서 완전히 부서져 내렸다. 서연이 병실로 들어온 이후 줄곧 그 모습을 지켜보았지만 그 어떤 증기도 바닥을 만지지 못했다. 시작은 있지만 도착이 없는 슬픈 몸짓을 서연은 계속해서 바라볼 뿐이었다.

 

아마 서연의 사정을 언론에 알린 것은 장기기증 운동본부일 것이다. 장기기증을 신청한 이후 한 신문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희망이의 일을 기사로 남기고 싶다는 이유였다. 신문사는 서연이 거절할 것이라 생각했는지 바로 이런 말을 덧붙였다.

 

“저희 쪽에서 의료비용은 모두 지불하겠습니다. 또 이번 일이 저희를 통해서 알려지면 기증 수혜자를 찾는 편이 더 쉬울 것이니 긍정적으로 검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고선 조건이 있다고 했다. 원활한 취재를 위해 서연이 출산 전부터 기자가 출입할 수 있는 병실에 입원하는 것이었다. 신문사는 희망이가 살아있는 그 짧은 순간을 담아내고 싶어 했다. 마치 해변에서 파도에 곧 지워질 문장들을 카메라로 담고 싶었던 서연처럼. 죽음이 희망이를 향해 다가오는 그 짧은 순간에 셔터를 누르려면 그 곳과 가까이 있어야 했다. 출산도 죽음도 확실하지 않은 순간에 벌어지니 만반의 준비가 필요했던 것이다. 서연은 생각해보겠다고 하고 통화를 마쳤다. 사실 생각해볼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모두가 좋은 일이니까. 다만 서연은 대건의 생각을 듣고 싶었다. 적히자마자 지워지는 문장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사람. 그의 동의가 필요할 것 같았다.

 

대건은 흔쾌히 동의했고 그로 인해 서연은 지금 병실에 입원해 가습기를 쳐다보고 있다. 대건이라면 무언가 다르게 말할 줄 알았는데. 의료비용에 관해 말할 때 안도하는 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전해져왔다. 그의 모습은 가만히 놔두어도 차례차례 무너지는 모래성 같았다. 세상은 의미 따위를 따지기엔 너무나도 각박한 곳이었다. 우리는 의미를 찾기 전에 완전히 부서져 내릴 것이다. 바닥에 도달하지 못하는 저 수증기처럼 공중에서 최대한 몸을 비틀며 최대한 많은 굴곡을 만들어 내는 것이 우리가 살아남는 방법이었다. 얼마 전부터 태동이 느껴졌다. 좁은 곳을 벗어나려는 몸부림이 서연의 내부로부터 전해져왔다. 가끔 진통이 올 때마다 서연은 자신의 결정에 대한 희미한 후회를 하기 시작했다. 파도처럼 일정하고 꾸준하게 느껴지는 진통이 서연의 결심을 지우고 도망쳤다. 그때마다 서연은 서둘러 모래사장에 글자들을 적듯이 마음에 결심을 새로이 새겨야만 했다.

 

가끔씩 기자가 인터뷰를 하기 위해 찾아왔다. 어떤 말이 기사에 실리고 어떤 말이 그저 흘러갈지 갈피를 잡지 못해 처음에는 애를 많이 먹었다. 까다로운 질문들도 많았다. 희망이에게 병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기분이 어땠는지, 왜 희망이를 낳기로 결정했는지. 가장 어이가 없었던 질문은 태교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물어보는 질문이었다. 태교라는 것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에 무어라고 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고 보니 희망이의 출산 이후에 대해 고민한 적이 없었다. 한 시간이라도 삶은 삶일 것인데 아무런 생각 없이 출산에 대해서만 생각했던 것이다. 그게 너무 부끄러워서 기자에겐 차마 아무 생각이 없었다고 말하지는 못하고 평소에 하던 행동을 얘기했다.

 

“딱히 태교라고 할 것은 없고요. 시계를 바라보고 있어요. 분침이 숫자 12를 스치는 순간부터 아무 생각 없이 시계를 바라보는 거예요. 정말 아무 생각이 없어야 해요. 생각은 시간을 줄여주거나 늘여주기 때문에. 시간을 온전히 느끼려면 반드시 그래야 해요. 그러고선 느껴보는 거예요 한 시간의 부피를, 질감을, 온도를, 빛과 향기를. 분침이 한 바퀴를 돌아 다시 12를 스치는 순간까지. 그렇게 희망이의 삶을 살아보는 거예요. 가끔 한 시간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충만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희망이의 삶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서연은 목이 메여 말을 잇지 못했다. 갑자기 한 시간 동안 자신의 품에 안겨있을 어떤 아이의 삶이 영원한 불행으로 끝날까봐 불안해졌다. 한 시간은 슬픔으로도 기쁨으로도 가득 채울 수 있는 시간이다. 희망이의 영원한 불행이 신문기사로 박재되어 나간다면 과연 그것을 견뎌낼 수 있을까?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시계는 계속해서 돌아가고 있다.

 

5.

시계는 계속해서 돌아가고 있다. 퇴근 시간까지 얼마 안남아 대건은 마지막으로 가게 안을 다시 한 번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 시간만 되면 괜히 조바심이 든다. 그런다고 집에 일찍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계속해서 시간을 확인했다. 시간을 빨리 보내기 위해 아까 서연이 전화로 했던 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다. 희망이의 일이 기사화 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서연은 왜 내가 좋은 생각이라고 말했을 때 한숨을 쉬었나? 대건은 이 모든 게 ‘적히자마자 지워지는 것이 어떠냐고?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만이 중요할 뿐이라고?’의 후속편처럼 느껴졌다. 알 수 없는 곳에서 나타나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이야기들. 그 때 가게 문의 종소리가 울렸다. 차가운 공기를 들이밀며 한 중년의 사내가 편의점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숙취 음료가 진열되어 있는 곳을 허리를 숙여 들여다보았다. 대건은 서연이 혹시 자신에게 어떤 기대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모습을 뛰어넘은 기대.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자신도 취업 준비가 이렇게 오래 걸릴지 몰랐다. 아니 애초에 이렇게 이른 나이에 실직 하게 될 줄은.

 

“이거 계산해 주세요.”

“4000원 입니다.”

 

그는 숙취 음료를 들고 가게 밖으로 나갔다. 나간 것 까지는 좋았으나 갑자기 고개를 숙이고 안에 있는 것을 게워내기 시작했다.

 

“아이, 씨”

 

대건은 급하게 대걸레를 빨아 가게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 사람은 사라지고 없었다. 겨울 새벽의 거리에 홀로 나와 토사물을 치우다보니 문득 외로운 기분이 들었다. 천천히 천천히 대걸레로 어떤 사람이 쏟아낸 내부를 지워가는 일. 그 사람의 온기가 겨울바람에 지워지고 있었다. 다 치우고 나서 대건은 한동안 그 자리에 계속해서 서 있었다. 누군가가 또 토를 하고 도망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대건은 또 그것을 지우고. 지운 자리에는 또 어떤 사람이...

 

갑자기 대건의 머릿속에 지난여름의 일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쩌면 서연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6.

이번 진통은 느낌이 달랐다. 어떤 징조 같은 것이 느껴졌다. 점선처럼 찾아오던 진통이 길어지고 잦아지면서 결국 하나의 긴 직선이 되었다. 서연은 서둘러 간호사를 부르고 눈을 감았다. 그 뒤 분만실로 실려 가고. 마지막인 그래서 더더욱 강렬한 고통이 솟아올랐다. 꽉 쥐고 있던 차가운 침대 난간이 어느새 서연의 체온으로 물들었다. 그 뒤에는 거의 정신을 잃다 시피 했다. 빛과 어둠을 간신히 구분할 수 있는 의식만이 남아 고통을 받아냈다. 조각조각 사람의 얼굴이 보이고 대건이 보였던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힘을 주었다.

 

간호사가 희망이를 서연에게 건네주었다. 방 안의 모든 사람들이 숨을 죽였다.

 

서연은 희망이를 가만히 안아보았다. 희망이는 작은 눈을 떠 서연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서연은 느낄 수 있었다. 살아가는 것과 죽어가는 것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것이라고. 희망이는 확실히 지금 살아있었다. 서연의 체온과 희망의 체온은 같았다. 서로 덥힐 수도 식힐 수도 없는 체온을 나누면서 서연은 희망이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희망이가 빠져나온 자리가 시렸다. 대건이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서연은 희망이를 대건에게 안겨주었다. 대건도 희망이를 가만히 안고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대건은 입을 조금씩 움직여 무슨 말을 했다. 처음에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뒤에 나오는 말로 보아 그것은 희망아 사랑해가 아니었을까 한다. 대건은 계속해서 속삭였다 “희망아 사랑해.” 아마 들을 수도 없는 말. 들어도 의미를 알 수 없는 말. 의미를 알 수 있어도 한 시간 뒤엔 사라질 말이었다. 하지만 대건은 계속해서 그 말을 반복했다. 대건은 손에서 모래가 빠져나가듯 무언가가 빠져나가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같은 말을 반복할 수 밖에 없었다.

“희망아 사랑해”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