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의 사제

물질의 사제

 
이스라엘은 ‘신을 이긴 자’라는 뜻이다.

이스라엘이라는 오만하고 당당한 말뜻은 성경의 한 일화에서 나왔다. 이스라엘은 씨름으로 신을 이긴다. 그 신은 마치 도깨비와 같다. 씨름해서 인간이 이길 수도 있는 도깨비. 봐주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인간과 소통하고 스스로를 조금이라도 드러내는 도깨비. 도깨비는 인간이 오래 쓴 물건이라 했으니 현대로 따지면 컴퓨터, 보일러, 세탁기, 렌지 등속도 도깨비로 둔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들이 도깨비라면 기계들끼리 예전부터 서로 대화하는 통로를 만들어 인간과는 다른 의사소통을 할 수도 있었다. 뭐 재미있는 생각이고 21세기 초반인 지금은 인공지능을 통해 현실화된 도깨비였다. 기계는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는 오래 된 이공계 격언이 있다지만 그것도 옛말이 될 수 있었다.

준수는 그렇게 조금은 으스스한 상상을 했다.

준수는 2025년에 인공자궁에서 태어나 로봇에 의해 육아되었고 인간에 의해 기초적인 소양 교육을 받았다. 준수의 몸은 낡은 자율 주행차를 타고 세상을 떠돌았고, 준수의 마음은 가상현실 속에 담겨 광대한 네트 속을 헤맸다.

그런 처지였지만 준수는 비관하지 않았고 용기를 가졌다. 준수는 인류의 세계 구석구석 인간의 작품이 아닌 것이 없기에 그 대대로 쌓여온 노고에 감사했다. 엄청나게 적은 확률로서 이루어진 우주에 대해서도 신비롭게 생각했다. 이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야말로 가장 이상한 일이라고 보았다. 준수는 자유의지에 관해 인간 속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므로 있다고 여겼다. 이 세상 속에 속하지 않은 것은 세상에 드러날 수 없는 법이다.

일을 가진 이들은 소수였다. 이들 일 가진 이들이 국가에 세금을 내는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의 일을 소비해줄 여력을 인류 전체가 가지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일 가진 이들이 삶의 보람을 얻고 일로 인한 결실을 게임으로 생각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때문에 인류 중 행정권이 미치는 이들에겐 인간 임금이 기본 임금으로서 지급되었다. 그런 잉여인간들을 세상은 NPC라는 자조적인 별명으로 불렀다.

성인으로 인정받는 18살이 되었을 때 준수는 NPC로서의 삶을 거부했다. 근육을 만드는 약물과 가상현실 게임을 통해 준수는 일생 거의 모두를 누워서 지냈는데도 억센 근육질이었고 탁월한 운동 신경을 가졌다. 준수는 군사 훈련을 받았다.

아직 군대엔 로봇이 아닌 인간이 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준수는 전투 로봇, 수송 로봇, 드론 등등을 비롯한 여러 기계들을 보좌하고 때때로 조종도 하는 일을 맡았다. 역시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자 물질의 사제인 것이다.

미국은 지구를 넘어 태양계 전체로 자신의 힘을 투사하고 있었지만 다행히 인류에게도 관심이 많았다. 기독교 정신이 미국을 여전히 관통했다. 국제연합의 일원으로서 준수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과 싸웠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러다이트 운동가들과 힘을 합쳐 지구를 넘어선 인류 세계 전체에 테러하는 중이었다. 그들은 인공지능이 인류를 멸종시킬 것이라 했고 그것을 막는 유일한 방법은 핵을 포함한 수단으로 문명을 모조리 격파하는 것뿐이라고 믿었다. 확실히 만약 문명이 지금 완전히 사라진다면 이미 쉽게 캘 수 있는 자원은 거의 다 파냈기 때문에 다시 지구에서 문명이 일어나려면 인류가 사라진 뒤가 될 수도 있다는 전망도 있었다. 그 전망을 그들은 믿고 있었다.

그들에 대해선 우주 폭력배에 준하는 대응이 내려졌다. 아니 지구도 우주의 일부였기에 그들도 우주 폭력배였다.

향후 준수는 승진하면 소행성대에서 자원 우주선들을 부수고 다니는 우주 폭력배들과 싸우고 싶어 했다. 우주 폭력배는 향후 인류의 우주 시대를 영원한 전쟁으로 채울 수도 있는 자들이기에 즉결 처형되고 있었고, 그들의 가족은 우주 폭력배를 기른 죄를 물어 정신 감정을 거쳐 몇몇은 종신 감금되곤 했다. 물론 폭력적일지라도 상상은 자유였다.

때때로 그들 우주 폭력배들을 법이 허용하는 범위 밖에서 응징하고 싶은 생각이 준수에게 들곤 했다. 하지만 준수는 그런 생각을 떨쳤다. 단순히 그렇게 하면 벌을 받기 때문이 아니었다. 준수에게 그들 우주 폭력배는 같은 등급일 수 있는 인간이었다. 인간도 결국 물질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기에 우주를 잘 다루어야 했고 그것이 자신이 NPC로 살지 않고 생산적인 삶을 사는 길이라고 준수는 믿었다. 준수는 스스로도 인간일 뿐이기에 우주 폭력배를 다룰 때에도 신 앞에서 겸허해야 한다고 믿었다. 플라톤의 말처럼 인간은 불의를 자행하고는 싶어 하지만 불의를 당하고 싶어 하지 않기에 도덕을 지키면서 살아야 한다고 준수는 믿었다. 그것이 나를 남들이 돕게 하고 싶다면 지불해야 하는 대가라 생각한 것이다.

준수는 기독교도는 아니었다. 기독교 조직은 간신히 유지되고 있었을 뿐이었다. 미국에서 유지되고 있는 것은 기독교 정신이었다.

무는 상상할 수도 없는 개념이다. 무는 문자 그대로 존재하지 않았다. 2진법에서 0은 존재한다는 점에서 또 다른 1일 뿐이다. 무에선 결코 유가 나올 수 없다. 수학에선 1=0이 아니라고 논증하는 방법을 아직까지 찾지 못 했다. 하지만 실상 이 물질세계에서는 어떤 형식으로든 존재는 한다는 점을 의심할 수는 없다. 그것이 하나다.

이미 대우주엔 수많은 문명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존재하는 하나의 실체는 그 너머에 있고 그것을 한국인들은 ‘하나님’이라 불렀다. 인격신일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과학은 아직 모르는 ‘하나님’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관해 – 영원히 모를 수 있겠지만 – 다가가는 여정이라고 준수는 생각했고 이는 기독교 정신의 일부를 이루었다. ‘하나님’이란 한국어를 두고 이름 있는 기독교 학자는 신의 존재를 가장 강렬하게 드러내는 표현이라 했었다.
[2016.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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