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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벌레들+김광순 시조집 [새는 마흔쯤에 자유롭다]

  • 작성일 2017-10-31
  • 조회수 294

9월에 시조집을 받고, 가을이 겨울로 비껴갈 때까지

어느 날엔 한 장을  또 다른 어느 날엔 열 장을 더듬었다.

잃어버린 것들과 잊어야 할 것들이 들어찬 생이 읽은 열 장 중 한 줄에 걸려 있었다.

그래서 그 한 줄과 한 줄의 행간을 고달프게 헤맨 한 달이었다.

[밤기차 목젖이 별빛 아래 뜨거워

내 몸속 늑골이 기억하는 한밭벌을 향하는<귀향>]

귀향자의 마음이 아득했다.

[돌담 사이 수많은 땅벌레자국마다

타고난 그 무게만큼 나이테가 감겨<나의 분첩>]

얼굴과 표정을 지우는 것이 익숙한 생이 가깝게 느껴졌다.

만추의 계절 속에서 아직 마흔이 되지 못해 자유롭지 못한 나는

생의 바깥으로 밀려나간 것들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했다.

상실은 상실한 그대로, 잃어버린 것은 잃어버린 그대로 삶의 도처에 남겨두고

그저 묵묵히 오늘에 발을 딛고 사는 법을  나는 아프게 익혀왔다.

내 몸 속 늑골이 기억하는 한밭벌에 기거하는 이 그리움은

어느 새 잃어버린 것들과 잊어야 할 것들을 고향으로 삼았는지도.

[그리운 베고니아 절반쯤 쓰던 편지<새는 마흔쯤에 자유롭다>]

나의 절반쯤 쓴 편지는 수신처가 없어서, 발신인만 남겨둔 채여서, 보내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절반쯤 썼다면 어쩌랴.

온 세상 어디로든지, 보내야 할 때가 오면 보내야 하는 것이었다.

체념과 상실이 아팠다면, 그 아픔을 보내었다면 그 뿐.

여전히 두 손바닥이 시뻘게지도록 움켰던 나의 고집은 아직 마흔이 되지 못했을 뿐이었다.

한 줄의 마침표를 찍어야 다른 한 줄로 나아갈 수 있는 시를 한 달 동안 읽었고,

이제야 나는 조금 절반쯤 내 생의 편지를,

잃어버린 것은 잃어버린 그대로 남겨두고 쓸 수 있을 듯 했다. 그리고 세상 어디로든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니 놓친 꿈과 잃어버린 사랑과 잊어야 했던 사람을 ,그저 있는 그대로 적어,

보내야 할 편지를,

오늘 밤 써야겠다.

 

마흔 쯤에 자유로운 새가,

오늘 내 생에 날아와

뜨거운 발자국 하나 둘 헤아릴 수 있도록.

 

-한달 동안 시를 읽고 시에 대한 감상과 상징을 나누었다. 결국 각자 지고 온 생에 대한 감상과 상징이었고,

한 번 쯤 꿈꾸었다가 놓았던 꿈들을 더듬는 시간들이었다.

언제쯤 나는 생의 도처에 남겨두었던 사랑과 꿈과 사람들을

미련이 아닌 그리움으로 대할 수 있을런지.

자유롭게, 그 대상들을 담담히 안을 수 있는 날들을, 꿈꿀 수 있는 한달이었다.

그것만으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날들이었다.

만추의 계절, 익은 것들을 수확하고 풍성한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는 계절.

누릇하고 붉은 이 계절의 아름다움이 깃든 가을의 끝자락에서  이 시조들을 만나 참으로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