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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

  • 작성일 2011-02-01
  • 조회수 1,651

사자

민구


나는 종종

부엌에 들어가서 잠이 들었다

 

그 곳에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여자가 있고

굶주린 사자가 출몰하는 아궁이가 있다

우리는 잿더미에서 감자와 고구마를 꺼내려다

그만 잠자는 사자의 꼬리를 건드려

손을 데기도 했다

 

여자는 부뚜막 앞에 앉아

사자의 몸에 불을 지르곤 하였다

그러면 식구들은 쥐죽은 듯 잠이 들었고

하루 종일 썰매를 타도 사자가

달궈 놓은 뜨거운 물로 목욕을 할 수 있었다

 

하루는 밀렵을 하던 이웃 마을 사내가

실종됐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는 며칠 뒤 우리 아궁이에서 발견되었다

여자는 사내의 뼈를 곱게 빻아 호박이 나지 않는

밭에 뿌리고 그의 머리에서 가죽모자를 벗겨

내게 씌워 주었다

 

다음 날 눈이 왔다

 

우리는 올해 수확한 감자를

사자의 겨드랑이에 찔러 넣고 불을 질렀다

사자가 미친 듯이 몸부림쳤지만

여자와 나는 그냥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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