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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대가 함께하는 삼겹살 (다시

  • 작성자 펜끝의 자유
  • 작성일 2007-01-23
  • 조회수 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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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작년 말에 썼던 글들을 제 개인사정으로 인하여 삭제했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올리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부족한 글들 읽어주시고 격려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글틴은 저에게 언제나 좋은 쉼터가 되주었습니다.


그리고 구름빵님.. 이 일은 제가 오늘 날짜로 관리자님과 협의하에 한 일입니다. 당황하셨다면 죄송.. 그리고 언제나 감사합니다.


^^ 그리고 투쟁자..곧 완성됩니다. 마지막 편에서 의견들 많이 달아주세요. 그리고 첫 번째편 추가된 부분 안 읽어주신 분 꼭 읽어주시고요. 첫 번째 에세이가 수정된 걸 모르시고 댓글을 다신 것 같은 분이 있어서.. 그럼..


Always Thank You For Rea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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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대가 함께하는 삼겹살 (성인 문장에 있던 글 이전)





8/11밤, 면학 실에 몰래 가져온 핸드폰은 울음을 터뜨렸다.





"도대체, 누구야!"


공부에 열중이었던 친구들은 신경질적으로 눈 꼬리를 치켜세웠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뛰쳐나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송미 고모다"





뜻밖에 일이었다. 평소에 전혀 고모와 연락을 해오지 않은 까닭이다.





" 저 자율학습 중이에요"


" 급한 일이다, 아버지가 위급하시다."


" 네? 무슨 일이죠"


"당장 여수로 내려와라, 일단 끊을게 곧 다시 연락하마."


나주에서 학교를 다니던 나는 세 시간이 걸리는 고향집으로 그것도 11시가 다 되었을 때에,


당장오라는 고모의 말이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어떨 수 없이 담임선생님께 달려갔다. 선생님은 뭔가 알고 있는 듯 했다.





"선생님, 저-"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 같다"


"그래. 일단 택시타고 광주에 들러라, 거기서 작은 아버지께서 여수까지 널 데려다 주실 거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안돼, 말도 안돼' 난 일초에 일만 번을 되뇌며 허름한 옷차림 그대로 학교를 뛰쳐나왔다.





자정이 가까울 무렵의 시골 거리는 너무나 조용했다. 학교 (전남외고) 위치가 나주에서도 더 들어가는 데라 밤에는 차가 거의 있지 않은 곳이었다. 난 침울한 시골 거리 한가운데 외로운 침입자가 되어 미친 듯 소리쳤다.


"택시!, 제기랄, 택시! 택시!!"





정적만 깨질 뿐이었다. 결국 난 뛰어다니며 택시를 찾기로 했다. 10분이 흐르고, 20분이 흐르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땀으로 범벅이 되어서야 택시를 탈 수 있었다. 난 아저씨에게 목적지를 말한 뒤 "빨리요, 어서요"를 목 터져라 외쳐만 됐다. 그렇게 여수에 도착했다. 식장에는 어머니도, 동생도보이지 않았다. 성당사람들과 고모와 몇 명의 친척들만 있었다. 고모가 떨리는 손으로 날 영정 앞으로 이끌었다. 영화에서나 보던 액자에 계시는 아버지가 처음으로 내 눈에 들어왔다





"안 돼! 아버지! 아버지! 아악 - "





이성을 잃은 울음은 터지기 시작했다. 참자, 참자 수없이 다짐해왔던 눈물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눈 속에 바다가 들어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바다가 넘쳐흐르는 것 같았다.


"어떻게 돌아가셨죠?" 난 성당 교우분께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분께서는 울부짖던 나를 한참동안이나 멍하니 쳐다보신 다음 입을 열었다.


"현관문 앞에서 목을 매셨단다."


순간 현기증이 났다. 그러나 나의 대답은 식장의 모두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군요. 아악"


그렇다, 나는 예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발 설마, 설마 하며 택시 안에서 수없이 고개를 저어 보았었지만 결국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랬다. 그 만큼 아버지는 낭떠러지에서 아주 오랫동안 서 있었던 것이다.





2년간 아버지께선 일을 하지 않으셨다. 아버지께서 능력이 없었던 게 아니라 아버지


스스로가 택하신 길이었다. 그 전에 아버지께선 할아버지 회사에서 일을 하셨다. 그리고 할아버지께선 아주 적게 월급을 주셨다. 그러나 그건 아버지가 못마땅해서가 아니라 아버지를 강하게 키우기 위함이었다. 그걸 아신 아버지께선 항상 불평 없이 정말 열심히 일했다. 그래도 그 땐 우리 집이 그나마 평화로웠다. 그러다 정말 거대한 슬픔이 집안에 몰려왔다. 어머니께서 유방암에 걸리신 것이다. 수술은 끝났다지만 상황은 거의 최악이었다. 나중에 나아지신 건 거의 기적일 정도였다. 정말 눈물나게 돈이 급했다. 아버지는 결국 할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게도 할아버지는 거절하셨다. 그리고 그렇게 둘 사이는 끝이었다. 아버지는 담배를 피며 컴퓨터 앞에 술에 취해 앉아있기로 마치 생각하는 로댕으로 2년을 보냈다. 그러나 물론 아버지께서 무책임하게 손놓고 계셨던 건 아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아버지께선 절망적일 만큼 많은 시도를 해보았다. 그러나 얻은 건 나와 동생의 보험금이 날아감과 그것도 모자라 늘어난 빚뿐이었다. 그러나 시간은 대책 없이 잔인하게 흘러 난 고등학교에, 남동생은 중학교에 입학했으며 여동생은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그렇게 살아왔었다. 빚으로 먹고 빚으로 마시며…….그러나 아버지에겐 이제 마지막 발악이 어쩔 수 없게 되었다. 그건 또 하나의 사업이었다. 난 자금도 없는 아버지께서 잘 할 수 있을까 우려했지만 아버진 그동안의 인맥으로 큰 계약을 따냈다. 정말 놀라운 성과였다. 아직도 기억난다. 항상 자식에게 무기력한 모습 보임을 미안해했던 아버지가 먼 학교의 운동회까지 찾아오셨던 일을


"봐라, 이 아빠가 해냈다."


아버지의 소박한 손엔 계약서가 들려있었다. 난 염려스런 마음이 가시진 않았지만 억지로 흐뭇한 표정을 지어드렸다. 그러나 역시 잠깐의 바람이었다. 아버지의 그 지푸라기 같은 일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처음부터 무모한 계획이었다. '아, 불쌍한 아버지!'


결국 아버지께선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 너무나도 보잘 것 없는 나의 손을 잡고 할아버지 앞에 정말 오랜만에 찾아갔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무릎을 꿇었다. 진정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아버지께선 울고 계셨다. 그 때 그 울음소리, 난 그 울음소리를 잊지 못할 것이다. 그건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그건, 짐승의 것이었다. 상처로 살이 찢기고 찢긴 그런 짐승의 것


이었다. 그런 아버지를 보는 내 얼굴은 새파래졌다. 부끄러웠다. 더 이상 무력할 수 없는 인간, 가슴 속에서 금이 갈대로 가있던 무언가가 드디어 깨져버린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난 일생의 최대의 죄를 짓고 말았다. 아버지를 외면한 것이다. 아버진 더 이상 희망이 없었다. 자식마저 외면한 아버지가 얻을 수 있을게 있으리란 건 헛된 생각이었다. 할아버지의 방문은 굳게 닫혀있었고 어쩔 수 없이 난 반 실성한 아버지를 끌고나왔다. 온 얼굴이 눈물에 뒤범벅이 된 아버지는 나에게 속삭였다.





"넌 중요한 순간에 나를 배신하는구나?"


아버지를 멘 내 어깨가 가늘게 떨었다.


"기억해라, 이게 너의 할아버지의 모습이다"





그렇게 그 하루는 끝이었다. 그러고 나서 5일 후, 어머니는 어린 동생 둘을 데리고 연대 세브란스에 암치료와 치매에 걸리신 외할머니를 보기 위해 먼 걸음을 하셨고 물론 난 학교에 있었다. 당연히 집을 지키는 건 홀로인 아버지였다. 그러고 나서 또 이틀 후 결국 이날이 오고 만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버지가 그랬듯 짐승의 울음을 우는 것뿐이었다.


난 또다시 부끄러웠다. 아버지가 아닌 아버지를 외면한 내 자신이 수치스러웠다. 식장 사람들이 억지로 먹인 물을 뱉어낼 만큼 숨쉬기조차 힘들게 가슴이 저미었다. 필요했다. 스스로를 합리화시킬 무언가가. 그리고 결국 난 스스로가 만든 썩은 언어의 면죄부를 뱉어내고 말았다.


"할아버지가 죽인거야!"


말이야 말로 엎질러진 물이 아니던가. 난 삼대의 끝에서 삼대의 꼭대기를 향해 죄로 찬 외침을 뱉어낸 것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난 그제야 제대로 숨을 쉴 수 있었다. 아마 그 때의 숨결은 악마의 것임에 분명하다.


아무튼 암울하게 하루가 갔고 다음날 새벽 야윈 어머니가 두 동생을 데리고 서울에서 데려오셨다. 어머니는 자지러지셨고 난 너무도 예쁜 여동생을 껴안고 세상에서 가장 냄새나는 입으로 하느님을 불러댔다. 장례식장의 3일은 그렇게 흘러갔다. 그리고 난 학교에 돌아왔다. 아이들은 걱정스런 눈길을 보냈지만 난 당당하단 듯 생활을 해나갔다. 그러나 세상을 향한 나의 눈은 이미 잔뜩 비틀어져있었다. 스스로가 스스로의 창문을 닫고 가시나무처럼 외로워졌다. 그러나 하느님의 배려가 있었는지 너무도 기댈 누군가가 필요했던 내게 의지하길 허락해준 한 여자애가 있었다. 정말 눈물나게도 고마웠다. 조금이나마 머리에 햇살이 드는 것 같았다. 마음에 바람이 통하는 것 같았다. 난 내 모든 걸 그녀에게 드러내며 의지했다. 하지만 이미 찌들어버린 나였다. 우리의 시간에 행복은 항상 한계를 두고 서성일 뿐이었다. 당시 나의 매일 밤은 거의 악몽이었다. 머릿속에선 아버지가 현관문 앞 전등에 밧줄을 매고 또 거기에 스스로의 목을 매는 장면이 영화 필름처럼 돌아갔다. 온 몸이 떨리는 공포가 나를 감아 죄었다. 이마가 땀으로 범벅되어 일어나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다보니 스스로는 스스로가 견디기 힘들만큼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그 정도는 더욱 심해만 갔다. 그리고 드디어 난 여자친구에게 상처를 주고 말았다.


"날 동정하는 너 따위의 그런 배려 필요 없어"


잔인한 말이었다. 후에 그녀 앞에서 몸서리치게 후회하며 장미꽃과 함께 무릎을 꿇었지만 이미 떠나간 마음이었다. 그리고 내게 계속되는 건 무너짐의 연속뿐이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수준을 유지하던 성적은 바닥을 곤두박질치고 막 느끼기 시작한 가장으로의 무력감은 날 한 없이 울고 싶게 만들었다. 모든 게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모든 게 날 지치게 하는 것만 같았다. 그저 기댈 사람을 찾아 방황할 뿐 그런 정신으로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이런 내게 사정을 잘 아는 선배가 찾아와 타이르듯 말했다


"어차피, 세상은 혼자야"


아! 진정, 그런 것인가. 낭떠러지 위에서 나 혼자 서성이여야 하는 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란 말인가?


더 이상 아플 수 없게 못을 박는 잔인한 한마디였다. 형의 예상과 달리 오히려 난 더 야위어만 갔다. 그저 도망치고만 싶었다.





불운하게도, 상황은 시험 전날 까지 계속되어 난 면학 실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열이 올라 기숙사 방에서 침대에 쓰러져 있어야만 했다. 갑자기 뜨거운 것이 눈에서 솟구쳤다. 수십 번 억누르고 수백 번 억눌렀던 무언가가 분수가 되어 넘쳐흐르는 것 같았다.


"도대체, 내가 무슨 죄를 지어, 아니 착한 우리 가족이 무슨 죄를 지어 이렇게 살아야해? 허억 하느님, 젠장할!"


그 순간의 나를 스스로가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 아, 그러나 하느님! 그렇게 욕해댔던 나의 하느님은 역시나 나를 사랑하고 계셨다. 나를 놓지 않고 계셨다. 그 날 밤 난 지금까지 내가 받아온 모든 것을 합쳐도 부족할 거룩한 선물을 받았다. 그것은 아름다운 꿈이었다.





난 밝은 대낮에 학교 정원위에 앉아있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난 고개를 돌려 그를 향했다. 그의 표정은 너무나 평화로웠다. 마치 사심 없는 어린 양처럼, 그리고 그건 아버지였다. 난 반가움에 절로 "아버지"를 외쳤다. 아버지께선 내 손을 잡아 날 일으켜 세우며 학교 문 앞까지 이끌었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삼겹살 사줄까?"





너무도 짧은 꿈이었지만 난 그 꿈을 단순하게만 보고 싶지 않았다. 하늘의 편지로만 보고 싶었다. 어차피 시험은 망했긴 하지만 끝나있었고 난 여유로이 생각할 시간이 있었다. 물론 생각의 초점은 아버지의 평화로운 표정이었다. 아버지의 그 표정은 아버지의 최후를 생각한다면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자살은 신에 대한 반역이 아니던가?


그러기에 아버지는 그토록 신실한 신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마찬가지였던 어머니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장례미사를 치를 수 없었을 정도였다. 아버지의 죽음이 더욱 슬픈 것은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꿈속의 아버지는 웃고 있었다. 너무도 평화롭게. 어린 양 저럼. 머리가 순간 번쩍였다. 그리고 입에선 탄식이 흘러나왔다.





"오, 하느님, 성모 마리아님…….!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고맙습니다.. 으흑.. 고맙습니다."





난 드디어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구원 받으신 것이다.





"하느님, 죄송합니다. 당신을 원망했습니다. 저야말로 진정한 죄인입니다. 제 탓이오, 제 탓이오, 제 큰 탓이옵니다."





갑자기 눈이 젖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앉아있던 친구들은 나의 이런 모습에 놀라서 수군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그들의 걱정대로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었다. 난 축복을 흘리고 있었다.


그날 밤, 세상은 너무나도 아름답게 보였다. 별은 유난히 빛났고 정원의 잘잘한 들꽃들의 향기도 모두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그 누가 나에게 "세상은 혼자다" 하고 말했던가. 난 가장 든든한 손, 하느님의 손을 잡고 있었다. 난 그 주의 토요일에 여수에 내려갔다. 그래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뵈었다. 추석 때도 도망치듯 나온 친척집이었다. 그렇게 완고했었던 할아버지는 더 이상 그렇지 못했다. 나는 알 수 있었다. 할아버지께서 껍데기만 남아 있음을 자식은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데. 난 누굴 원망하고 있었단 말인가……. 죄스러운 마음에 더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처음의 계획과 다르게 저녁도 먹지 않고 집을 나왔다. 하지만 머리는 맑았고 발걸음은 가벼웠다. 그럴 수 있었던 건 일단 알게 된 두 가지에 만족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첫째는, 내가 더 이상 아무도 원망하지 않음이요, 둘째는 아버지의 죽음이 삶을 포기한 게 아니라 가난한 가족을 위한 거룩한 희생이었단 것을 안 것이다. 물론 두 번째 진리가 더욱 값진 건 말할 필요도 없다. 차가운 밤공기는 상쾌하기만 했다. 그리고 난 마음속으로 아버지에게 즐거운 질문을 던져보았다.





“아버지 시간이 흘러 아버지가 계신 하늘나라에 가면 우리 삼대는 함께 삼겹살을 먹을 수 있겠죠? 물론 아직 많은 것이 해결되지 못했지만 아버지, 기다려주세요. 힘들겠지만 결국은 이루고 갈게요.”








이렇게 나의 믿기 힘들겠지만 단 하나 거짓 없이 쓰인 이야기는 따스하게 끝을 맺는다.


분명 누군가는 내 갈등의 해결을 읽으며 한 천주교 신자가 쓴 지나치게 종교적인 글이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철없이 어린 나임에도 난 그 누군가에게 한 가지는 확언할 수 있을 것이다.


삼대가 함께하는 삼겹살, 한 가정을 넘어선 세상과의 그 아름다운 화해는 어떤 이에게도 값질 수 있음을……. 그리고 난 그걸 알기에 그 모든 부끄러움을 극복하고 이글을 쓴 것이다.  그저 마지막 소원이 있다면 꼭 그대가 아무리 이 글이 빈약하기 짝이 없더라고 그 속의 보물 같은 메시지를 얻어갈 수 있길 바랄 뿐이다.

펜끝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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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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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펜끝의 자유
  • 2007-02-24
그 놈이랑 영화관에 가다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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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펜끝의 자유
  • 2007-01-23
바다에 빠지다. (다시 올림)

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제가 작년 말에 썼던 글들을 제 개인사정으로 인하여 삭제했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올리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부족한 글들 읽어주시고 격려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글틴은 저에게 언제나 좋은 쉼터가 되주었습니다.그리고 구름빵님.. 이 일은 제가 오늘 날짜로 관리자님과 협의하에 한 일입니다. 당황하셨다면 죄송.. 그리고 언제나 감사합니다.^^ 그리고 투쟁자..곧 완성됩니다. 마지막 편에서 의견들 많이 달아주세요. 그리고 첫 번째편 추가된 부분 안 읽어주신 분 꼭 읽어주시고요. 첫 번째 에세이가 수정된 걸 모르시고 댓글을 다신 것 같은 분이 있어서.. 그럼..Always Thank You For Reading.  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3    바다에 빠지다.탈주, 그리고 그 후, 어정쩡한 귀환.그리고 오늘은 내가 봐야할 한국에서의 마지막 모의고사가 있는 날이다.흐흑, 제발 남아있는 동안만큼은 시험부담없이 글만 쓰고 싶었다구요, 하고 소리치고 싶지만.. 봐야한다..암, 그럼 봐야지.. 학교 또 뛰쳐나갔단.. 영상강 물결이 아니라 영산강에 잠기는 거지.그러나, 역시나, 마음은 벌써 휑하고 앞으로 다가올 지긋지긋한 시간에 대한 염려뿐이었다.그래, 언어는 그동안 읽은 독서량으로 돌파하는거야. 해보자구, 문제풀이가 넘어올 수 없는 문학의 영역을 증명해 보이겠어.그러나, 언어는 어려웠다. 정말 어려웠다. 언어영역에서 거의 기득권(?)을 쥔 무리들한테도 큰 상실을 안겨주었다.이젠.. 잘 볼 수 있는 과목이 없구나.중간고사 때의 악몽이 반복되는 걸까. 친구들은 옆에서 지 점수, 크게, 크게, 동네방네 다들리게, 학교가 떠나가게 소리치며 웃고 있는데.. 혼자서 매점 가 100원짜리 크림파이나 먹어야하는 걸까. 난로 불 쬐면서. 매점 아저씨가 그러겠지. 학생은 공부안해요?그래, 이왕 이렇게 된거.. 카르페디엠! 피할 수 없는 고통은 즐겨버리는 거야.딩딩딩딩.. 디리리딩..2교시구나, 수리영역 시간이네. 내가 공부한 부분은, 그래, 수열까지 한 때 정석이 피범벅이 될 때까지 밑줄 그어가며 공부했었지. 그래, 수열까진 열심히 풀어보는 거야. 지루하지 않게.호호, 이번엔 수리영역이 얼추 봐도 쉽게 보이는 걸. 그래, 한 번 풀어볼까나.그랬다. 지금 3학년들이 작년에 대부분이 1,2등급이 었다고 선생님들이 강조했던건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앗! 모르겠다, 이건, 정말 쉬운문제인데.. 왜이렇게 낯설지?그 순간, 어려운 건 문제가 아니었다. 난 그동안의 공백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1학기 여름방학 뒤로, 집에서 자퇴송이나 부르던 나와 수학은 너무나 오랜 이별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수리영역의 총 할당시간은 100분.내가 앞으로 시체처럼 흑과 백의 사무적인 조화를

  • 펜끝의 자유
  • 2007-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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