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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문, 「동물들의 권태와 분노의 노래 1」 중에서

  • 작성일 2009-07-16
  • 조회수 4,860




olor=#000080 size=3>정영문, 「동물들의 권태와 분노의 노래 1」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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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동물들의 눈, 그리고 그들의 권태와 분노의 노래는 나를 내가 오래도록 떠나지 않았던 나의 침대에서 떠나게 해 이곳 강가로 오게 했다. 지금은 그 이유도 분명치 않지만 적어도 내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노래하는 동물들의 눈은 보지 못했지만 그들의 권태와 분노의 노래는 지겨우리만치 들었고, 나는 그것들이 느끼는 것과는 또 다른 권태와 분노를, 나만의 권태와 분노를 실컷 느꼈다.

나는 강가에 살았지만 수고스럽게 집을 짓고 살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강가 모래 위에 금을 그어 그곳에 누군가가 살고 있다는 것을 표시했다. 누군가가 나의 집을 밟고 지나가지 않도록, 다시 말해 그 금은 내 집의 경계로 누군가가 임의로 침범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희미한 금은 하루가 지나면 더욱 희미해졌고, 그래서 다시 희미한 금을 그어 내 집터임을 표시해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럴 필요가 없었던, 또한 그 당시에도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그런 짓을 왜 했는지는 그 당시에도, 지금 와서도 알 수가 없다. 어쨌든 금을 긋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어쨌든 집을 짓는 일에 비해서는 훨씬 수월했다. 하지만 그 점이 내가 집을 짓는 대신 금을 그어 그곳에 집이 있음을 표시한 이유는 되지 못한다. 또한 내가 집을 짓지 않은 것이 금을 그어 그곳에 집이 있음을 표시하는 것에 비해 훨씬 어려워서도 아니었다. 또한 내게 집 따위가 필요 없어서도 아니었다. 만약 집이 있었다면 나는 그 안에서 살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한때 움막을 짓고 산 적도 있었지만 유지와 보수가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청소라는 까다로울 뿐만 아니라 만만치 않은 문제가 수반했다.

나는 어떤 때는 금을 좀더 넓게, 또 다른 어떤 때는 좀더 좁게 그었다.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는 겨우 그 안에 서 있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금 안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기도 했고, 어떤 때는 많은 사람을 초대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금 안에서 내가 생각하는 나의 집 안이라고 여겨지는 곳에서 마찬가지로 내가 생각하는 나의 집 밖이라고 여겨지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지켜보기도 했다.

그곳은 글을 쓰기에 좋은 장소였지만 나는 글을 쓰지는 않았다. 하지만 모래 속 어딘가에는 내가 묻어놓은 종이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종이에는 내가 쓴 어떤 글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무슨 글을 썼는지는 잊어버렸다. 어쩌면 “모래 속에 이렇게 누군가가 쓴 어떤 글이 있는 종이가 묻혀 있는 줄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라고 적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물고기를 잡아먹으며 살았다. 강에는 잡아먹을 수 있는 물고기들이 있었고, 나는 그것들을 잡아먹을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원시적이지만 확실한 방법을 썼다. 돌로 둑을 쌓아 물고기를 잡았다. 나는 여러 가지 모양과 크기와 맛의 물고기를 많이 먹었다. 물고기들은 생김새는 달랐지만 맛은 대체로 비슷했다. 한 가지 조리법으로만 요리를 했으니까. 그래서 다른 맛을 내기가 어려웠으니까. 나는 불에 구운 물고기를 뼈만 남기고 모두 먹었다. 물고기들은 대체로 비슷한 뼈대 구조를 갖고 있었다. 나는 그 뼈대가 물고기에게는 대단히 효율적이라는, 새삼스러울 것이 하나도 없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무척 깊은 인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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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정영문, 『목신의 어떤 오후』, 문학동네

원작/낭독 : 정영문

1965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1996년 『작가세계』 겨울호에 실린 장편소설 『겨우 존재하는 인간』으로 작품활동 시작. 중편소설 『하품』과 소설집 『검은 이야기 사슬』 『나를 두둔하는 악마에 대한 불온한 이야기』『목신의 어떤 오후』 등이 있음. 동서문학상 등을 수상함.

음악 : 자민토

대체 이런 글은 어떻게 하면 쓸 수 있는 걸까요? 역시, 다시 태어나는 수밖에 없겠지요?

겨우 존재하는 인간, 검은 이야기 사슬, 나를 두둔하는 악마에 대한 불온한 이야기, 더없이 어렴풋한 일요일, 꿈, 하품, 중얼거리다, 핏기 없는 독백, 목신의 어떤 오후...이것들은 모두 정영문의 책 제목입니다. 하나같이 희미하고 고독하고 느리게 움직이고 반복되고 끊어지고 왜인지 모른 채로 되돌아오고 그래봤자 제자리걸음이지만 달라진 게 아주 없는 건 아니고 나른하고 어처구니없고 때때로 킥킥 웃고 그것마저 사라져버리며 모두 다 지나간 이야기를 들려줄 뿐---. 결국 권태와 분노의 노래인 것이지요. 뜻이나 이유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아요. 낯선 문장의 매혹이랄까요. 읽다보면 왠지 모르게 내 마음이 예민하고 슬퍼집니다.

특히 밤에 바닷가 집에서는 읽지 마세요. 그러다 사랑에 빠진 사람을 알고 있어요. 이 문장처럼, 아무것도 설명할 수는 없다고 말하더군요. 이 문장처럼, 그건 그냥 그대로의 실재하는 날카로운 찰나이자 일몰 때의 폭풍우라고---.

 

2009. 7. 16 문학집배원 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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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오랜 꿈 중에 하나는 아마도 자연과의 다감한 융화(融化)가 아닐까. 자본은 융화가 아니라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을 침탈(侵奪)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자연의 품속을 꿈꾼다. 특히나 도회지에 사는 사람들은 메말라가는 인성 때문인지, 아니면 시멘트 문명의 염증 때문인지 모성에 흠뻑 젖고자 한다. 시인들은 여기서 더 나아가 자연의 음과 양이 조화로운, 자기만의 새로운 세계를 시 속에서 창출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자연계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데다가 그 조홧속이 천변만화(千變萬化)라 간절함만 솟구칠 뿐, 대부분 거기에 다다르지 못한다. 시인들은 그 문턱에서 허덕이며 자기 문자속의 졸렬함이나 한탄하기 일쑤다. 그런데 달리 생각하면 이는 당연한 것 아닐까. 자연은 그저 말로만 자연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그 조홧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시인 스스로 천변만화의 변신에 능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변신이어서는 곤란하다.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아닌 듯 그러하게, 그러한 듯 아니게' 눈을 열고 귀를 열고 마침내는 마음을 열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때의 변신은 단순한 변신이 아니라 전이라는 뜻이 가미된 변전(變轉)이어야 하지 않을까. 변전, 그렇다. 변전으로 물질적 속성마저도 달라져야 비로소 '우주의 음과 양이 조화로운, 새로운 자연계'를 그려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변전은 쉽지 않다. 특히 현대사회에 살면서 변전으로 가는 길은 산 첩첩 물 첩첩이다. 자본 문명에 매몰된 비인간적이고 척박한 욕망이 자연과의 교감을 딱 가로막고 있다. 제어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증식하는 이 욕망은 범주의 경계가 없다. 이성과 감성을 두루 다 말아먹고 만다. 현대인들의 심리적 병리 현상은 다 여기서 비롯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에 비하면 변전을 주춤거리게 하는 문자의 욕망쯤은 차라리 순진하다 할 것이다. 나는 천박한 욕망의 습윤(濕潤)이 자연계로 향하는 시의 발길을 붙잡는다고 믿는다. 자연과 인간, 혹은 물(物)과 아(我)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가 드문 이유도 다 이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근래에 이르러 폭발적인 관심 대상이 된 시인 백석쯤이 거기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시인 아닐까.이렇게 생각할 때 같은 연대에 김사인 시와 호흡하고 있음은 다행스럽다. 그도 또한 백석처럼 자연의 경계를 넘나들며 교감의 기를 순환하고 있는 듯 비친다.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 김사인, 「조용한 일」 작가․낭독_ 정우영 - 1960년 태어나 1989년 《민중시》로 등단했다. 시집 『마른 것들은 제 속으로 젖는다』,『집이 떠나갔다』,『살구꽃 그림자』, 시평에세이『이 갸륵한 시들의 속삭임』,『시는 벅차다』등이 있다. * 배달하며 올겨울은 유난히 춥고 초입부터 눈도 많이 내렸죠. 겨우내 산야가 훤합니다. 북국의 정취마저 물씬하여 위뜸 살던 백석 시인의 시들이 생각납니다.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

  • 웹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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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관리자
  • 2013-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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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여울물 소리」중에서   신통이 녀석 언젠가부터 우리네와 좀처럼 안 어울린다네. 하는 것이 그의 첫마디였다. 박돌은 이신통을 십 년 전에 처음 만났다고 그랬다. 천안 장터에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울고 웃고 성나고 기쁘게 하기를 하늘이 여름날의 바람과 구름을 희롱하는 듯하였다. 옛말에 이야기 주머니(說囊)라고 하더니 바로 신통이 그러했다. 그는 이야기를 하다가 가장 간절한 대목에 이르러 갑자기 그치니 사람들은 뒷얘기가 너무 궁금하여 다투어 돈을 그의 발아래 내던졌다. 이신통은 당시에 한양 패거리와 헤어진 직후여서 단출한 패거리를 이끌고 다니던 박돌이 막걸리 잔이나 사면서 동무가 되었다. 신통은 다시 때와 장소를 구분하여 이를테면 장터 어구의 버드나무 아래라든가 다리 앞에라든가에서 다른 이야기로 판을 벌였다. 새 손님이 많았지만 앞서 그의 이야기를 들었던 사람들도 지나가다 다시 모여들기 마련이었다.   박돌이 자기네 패와 동행하기를 권하여 함께 다니다가 이신통과 헤어졌는데 그들은 다시 도방 대처에서 만나기를 거듭했고 나중에는 신통이가 광대물주를 하게 되었다. 그들이 전주에서 엄마의 색주가에 들렀을 때에 이신통은 광대물주를 하고 있던 무렵이었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그는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고 했다. 내가 글쎄 그 일이 뭐냐고 물었을 때, 박독은 목소리를 낮추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천지도라구 들어봤나? 신통이가 그 패거리에 들게 되었거든.  저 머신가, 나라에서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고 하는 미신인데 그것이……  그러면 예전 천주학 같은 거 말예요?  이전에는 모두 죽였다만 시방 천주학은 양귀들 때문에 묵인된 셈이고, 천지도는 처음 시작했다는 교주를 국법으로 처단을 했다 그 말여.    박돌이 이신통에 대한 불길한 소식을 남기고 떠난 뒤에 나는 뜸을 들였다가 어느 날 영업이 끝나고 엄마와 나란히 누워서 잠을 청하던 때에 슬며시 묻게 되었다.   엄마, 천지도가 뭔지 알우?   자다가 봉창 두들긴다더니, 뜬금없이 천지도는 왜...... 한번 믿어볼라구?   관에서 금한다며?   양반 것들이 저희 자리 내노랄까 봐 노심초사하는 게지. 천지도에서 사람은 누구나 하늘이다 그런다는구나. 그 말본새 하난 마음에 들더만. 나두 주문 외우는 소린 여러 번 들었다. 우리 집에 묵어가는 길손들 중에 겉으로 말은 안 해두 내가 대강 눈치를 채는데 하나둘이 아녀. 천지도인들 점잖은 사람들이더라. 소문에 듣자 허니 촌에는 동네마다 모여서 기도하구 그런다대.   하면 엄마는 왜 안 믿었어?   봄꽃두 먼저 피면 반갑고 이쁘기는 하더라만 그것이 천기를 보는 거여. 꽃샘바람 불고 눈보라 치면 속절없이 지는 법이니라. 세상이 만화방창할 제 더불어 피어나야 절기를 누리는 거란다.   그러면 어여쁜 본색을 어찌 드러낼 수 있남? &nb

  • 웹관리자
  • 2013-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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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7건

  • 익명

    글이 어렵네요. 읽으면야 쭉 읽히겠지만 의미가 와닿기까지 읽기에는 좀 걸릴 것 같아요 문장의 나열인 듯 읽혀서

    • 2009-08-30 13:42:42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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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하루면 흩어지는 금, 나 만의 공간을 상징하는 금. 물 속에서 잡는 물고기. 거기서 발견한 놀랍지만, 사실은 알고 있는 사실. 조용하면서 진지한 어떻게 보면 지루하기짝이 없는 사내의 낭독. 이 모든 것이 권태와 분노의 노래이다. 권태와 분노의 가사이고 음정이고 박자이다. 나도 일상에 권태를 느끼고 분노를 느낀다. 지금도 그렇다. 말 할수없는 사연이지만 참으로 권태와 분노를 느끼고 있다. 제발이지 그것들을 잃고만 싶다. 제발이지 그러고 싶다. 제발이지..

    • 2009-08-29 10:06:10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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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반복되는 일상속에서느껴지는 단조로움에서 비롯되는 권태가나 자신의 생활이었음에미안해지는 시간인것 같네요.

    • 2009-08-26 13:13:55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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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밖에 비가 와서 그런지 작가분의 낭독을 듣고 나서 더욱더 감성적이 되어버렸네요.희한하게 평범한 내용같은데도 이렇게 낯설고 묘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특히나 주인공이 뼈대만 남은 물고기를 바라보며 새삼스레 놀라게 되는 부분은 딱 지금의 제 모습과 같은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정말 좋네요. 저희 어머니께 꼭 들려드려야 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동물들의 권태와 분노를 그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분이라고 생각했거든요.ㅎㅎ.. 좋은 글귀와 낭독 더불어 감사드립니다. :-)

    • 2009-08-11 11:45:01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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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하루를 살고 열흘을 살고 그의 삶의 단조로움을 하나하나 보여주듯 지나가는 문장들속에 외로움에 떠는 모습을 그리게되었습니다. 무엇하나 신기할것 없음에도 스스로 시간보내기를 만드는 그에게서 우리는 또다른 나를 만나는것은 아닐런지 갑자기 그런생각이 들었습니다.

    • 2009-08-08 01:18:42
    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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