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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모든 고민-
기획 현재 - 다 한때[문장웹진 다시 읽기] 다 한때 ㅡ 「리 반 클리프」(2013년 1월호 수록) 현재(문학평론가) ‘문학평론가’라는 소개를 달고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이 뭔가 아직도 어색하고 민망스럽다. 평소 문화생활이랑은 담을 쌓고 사는 사람인지라··· 나는 내가 비평을 하고 있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다만 좀 섬뜩한 타입의 독자였을 뿐. 다독하는 독자는 결코 못되고, 그렇지만 한번 꽂힌 것에 대해서는 광적으로 집착하는, 흔히 말하는 전작주의를 앓는 타입. 20대 전반을 방구석에 처박혀서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을 사이버 스토킹했는데, 당시 나의 하루 일과는 다음과 같다: 내가 디깅할 수 있는 루트란 루트는 모조리 다 동원해서 작가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한다. 그들이 읽는 책과 같은 책을 읽고, 그들과 같은 영화를 보고, 그들과 같은 동선을 따라가 본다(비록 내가 방을 나서는 일은 한 달에 한 번뿐이었지만). 그러고 나서 그 모든 것들을 강박적으로 기록하고 저장한다(다시 쳐다볼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등단을 하고 나서야 부랴부랴 비평에 대해 공부를 하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찾아 읽게 된 『비평적 의식』에서 소위 주네브 학파의 일원인 조르주 풀레는 다음과 같이 서두를 떼고 있었다. “진정한 비평적 사고의 귀착지라고 할 수 있는 독서 행위는 독자의 의식과 작가의 의식이라는 두 의식의 일치를 전제한다.” 어라, 근데 이거 난데···. 풀레에 따르면, 어쩌면 나는 적어도 의식만큼은 타고난 비평가였던 셈이다. 말하자면 스토커형 비평가. 지금도 내가 비평문을 쓸 때 첫째로 하는 일은 자료 조사다. 보통 비평이란 작품을 ‘잘’ 읽는 게 관건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내 생각엔 그렇지 않다. 나에게 작품은 비평가가 경유할 수 있는 일차적인 경유지에 불과할 뿐, 나는 내가 다루고자 하는 작가의, 말하자면 그의 ‘체취’를 맡아볼 수 있는 자료란 자료는 낱낱이 찾아보며 가능하면 그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왜 이런 글들을 쓰게 되었고 또 지금도 그러고 살고 있는지 그와 같은 입장에서 한번 느껴 보려고 하는 편이다. 그러다 보면 가끔 왜인지 그와 아주 오래 알고 지낸 사이처럼 느껴질 때도 더러 있는데, 심지어는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이인데 이미 지겨워져 버린 사이도 있다. 마치 못 볼 꼴 다 보고 난 뒤, 다시는 마주치지 말자 다짐하며 헤어진 오래된 친구나 연인처럼. 혹은 또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내가 이 세상 그 누구보다 그를 더 잘 이해하고 있으며, 나야말로 그에게 어울리는 짝이라고 생각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당신도 나를 사랑해야 한다고, 내 말이 맞다는 걸 당신도 곧 알게 될 것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물론 위험한 착각이다. 그리고 문학이라는 이상한 장르가 유독 이런 관계 망상을 잘 유발하는 것 같기도 하다. 지극히 사적이고 폐쇄적인 공간에서, 마찬가지로 아주 사
작성일 2026-03-01 댓글수 0상세보기 -
기획 홍순인 - 비비디바비디부[편집위원 기획 – 문학, 음악, 장면들] 비비디바비디부 홍순인 이거 제가 쓴 건데 들어 보세요. 나는 ‘네튤농’이라는 포크 밴드에 소속된 ‘작가’다. 밴드에 작가가 웬 말이냐고 따진다면 뭐라고 할 말은 없다. 네이버에서도 네튤농을 등록할 때 밴드에 작가라는 포지션은 있을 수 없다며 결국 나를 퍼커션으로 소개하게끔 했기 때문이다. 사실 고작 열여섯 가지 유형으로 인간 유형을 분류하는 건 신봉하면서 전 세계 보편적인 밴드 구성에 반기를 드는 것도 우스운 일이고. 뭐, 고분고분 인정하면서도 서운하긴 했다. 참고로 나는 INFP다. 아무튼, 이 이야기는 시를 써 가면 죄다 디테일한 묘사뿐이라 시인이 될 수 없다는 평가를 받던(싱잉랩 정도는 할 수 있겠다는 평가도 있었다.), 화성학의 기초도 떼지 못했지만 밴드의 일원으로서 약 100회가량의 공연을 해낸 돌팔이 음악가이자, 국내 최대 포털 사이트에서는 비록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그런, 정말 그런 내가 포크 밴드에서 ‘작가’로 살아가게 된 어떤 우연에 관한 이야기다. 때는 바야흐로 2013년, 대학교 4학년 1학기에 축제 위원장을 맡으며 학교 축제를 성공적으로 마친 뒤였다. 당시 학교 축제 기획에 도움을 주었던 기획사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 대학원에 진학하여 진짜 시에 대해 공부하고자 했지만 너처럼 노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 어떻게 책상에 앉아 있겠냐는 주변의 만류로 기분 좋게 기획사에 입사했다. 나는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특히 ‘이규범’을 만났다. 나와 같이 하루하루 일을 쳐내 가며 밤이 되면 야근을 하다가 술을 마시고 좁은 방에 여럿이 구겨져 자고 다음 날에는 이걸 또 반복했다. 대학원에 가면 불행해진다지만 기획사에 가도 불쌍해지는 건 매한가지였다. 다만 그런 의미 없는 날들 속에서 이규범이 나와 달랐던 점이 하나 있었는데, 이규범에게는 ‘싱어송라이터’라는 꿈이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신기했다. 어떻게 싱어송라이터가 된단 말인가. 이규범은 노래도 못 했고 가사도 못 썼다. 나는 회사의 기획서와 제안서 내의 글과 카피를 대부분 담당하고 있었고, 평소 인디 밴드 음악을 굉장히 많이 들었기 때문에 이규범은 가사와 관련해 나에게 많은 것들을 물어보았다. 나는 싱잉랩 정도는 할 수 있는 여러 단어들을 제안해 줬고 종종 밤늦게까지 회의실에서 같이 노래를 불렀다. 꿈이 있다는 게 부럽다기보다 나도 싱어송라이터가 되어 보면 어떨까 막연한 상상을 해 보던 밤이었다. 그로부터 1년 뒤 이규범은 회사를 떠났다. 정이 많이 들어서 나는 눈물을 흘렸다. 진심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 이규범이 첫 앨범을 낸다며 찾아왔다. 나는 그 앨범의 소개 글을 써 주었다. 솔직히 좋다는 말을 할 수는 없어서 안티팬의 입장에서 소개를 하는 글을 써 주었다. 나는 진심을 담은 글로 편하게 족발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 그 후로 이규범은 두 장의 앨범을 더 냈고, 나는
작성일 2026-03-01 댓글수 12상세보기 -
기획 오웅진 - 대먹튀 시대에서 예술의 쓰임에 관하여[편집위원 기획 – 문학, 음악, 장면들] 대먹튀 시대에서 예술의 쓰임에 관하여 오웅진 벨라 타르가 세상을 떠났다.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번역 신간이 집에 도착한 직후 그의 부고 소식을 들어 공교롭다는 생각을 했다. 소식을 듣고 멍청하니 인터넷을 뒤적거리다 우연히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벨라 타르의 1994년도 영화 〈사탄탱고〉의 한 주인공 이리미아스 역할을 했던 배우(Víg Mihály)가 동시에 이 영화의 음악 감독이었다는. (실은 주인공 같은 건 없다, 감독에 따르면 자신의 영화에서 굳이 주인공이라면 ‘시간’ 정도)1) 작품에서 그가 분(扮)한 역할을 설명하자면, 아니 그를 쉬이 욕할 수 있도록 거칠게 요약하자면 ‘곗돈을 들고 튄 계주’쯤 된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마을에서 여자아이 하나가 죽는다. 아이의 죽음, 그로 인한 공통의 슬픔을 바탕으로 마을 사람들은 각자의 집 가장 깊숙한 곳에 박아 두었던 돈을 모으게 되는데, 계주는 그 돈을 들고 튐으로써 스스로를 사탄과 편히 겹쳐 보게 돕는다. 소설은 카프카의 짧은 문장을 인용하며 시작한다. “그러면 차라리 기다리면서 만나지 못하렵니다.”2) 앞서 언급한 떠난 계주를 기다리는 것 이외에도, 작품 속 마을 사람들 삶의 대부분은 기다림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리고 외람되지만, 나는 이 글을 통해 음악이란 게, 혹은 춤이라는 게 실은 곗돈을 들고 튄 저 악마 같은 계주쯤 되는 것은 아닌지 말해 보고자 한다. 소설 『사탄탱고』가 세상에 나온 것은 1985년, 그의 최근작 『헤르슈트 07769』가 쓰인 것은 2021년이었다. 꽤 많은 시간이 흘렀기에 그가 좀 변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책의 첫 장을 펼쳐보고 안도했다. 짧은 문장 한 줄이 나를 반겼다. “희망은 실수다.”3) 그가 여전히 아무것도 믿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나로 하여 그를 믿게 한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중 다수가 음악인인데, 이는 독자에 따라 이견이 있을 수 있다. 다만 예컨대 누군가 주말마다 부장님에 의해 호출되어 산을 탄다고 가정해 보자. 이때 어쨌든 그가 산에 성실히 오르고 있으니 산악인이라 충분히 불릴 자격이 있다고 믿는 이라면, 이 소설 속 다수의 인물을 또한 능히 음악인이라 불러도 좋다. 소설에선 부장님 대신 ‘보스’라는 이름으로 음악인들의 리더를 달리 부른다. 보스는 바흐에 관하여 얘기하길 좋아한다. 그리고 단원들 역시 보스가 바흐에 대해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건 그들이 바흐에 관해 듣길 좋아한다는 말과는 사뭇 다르다. “보스는 그들이 바흐에 대한 보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가 이야기를 하는 동안 리허설이 중단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결코 깨닫지 못했다, 사실을 고백하자면, 카나 심포니는 아마추어 음악가들로 자기 악기에 어느 정도 능숙하게 다루긴
작성일 2026-03-01 댓글수 0상세보기 -
기획 아를 - 지문 너머로 하나의 선율이[편집위원 기획 - 문학, 음악, 장면들] 지문 너머로 하나의 선율이 아를 lilysacredlily · 20251228_slowslofi playset 최초의 기억은 들렸던 것이다. 할머니의 불경 읽는 소리. 할머니는 늘 자기 전에 적혀 있는 그것들을 소리 내어 읽어 주었다. 할머니가 나를 부를 때, 그리고 나에게 이야기할 때와는 또 다른 생경한 목소리와 리듬으로 그것들은 발화되었고 그 목소리는 음악처럼 들렸다. 할머니는 거기에 분명히 있었지만 어느 영겁 너머 다른 차원에서 내려오는 작은 신의 목소리처럼 들렸기에 그 소리의 흐름 속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나 또한 내가 무엇인지, 내가 있는 곳을 잊어버렸다. 그 뜻 모를 말들을 할머니의 입을 통해 전해 듣고 있었지만 그것들은 거의 기도처럼, 주문처럼, 노래처럼 들렸다. 다른 누군가에 의해 전해지고 또 쓰인 것들이 할머니의 목소리를 통해 나에게로 전해졌고 어린 나는 그것들을 어설프게나마 소리 내어 보기도 했다. 그 유년의 밤 동안 할머니는 나의 유일한 이야기꾼이었으며, 어린 나의 두 귀가 되어 주는 밤의 훌륭한 안내자였다. 구전. 우화. 신화. 전설. 민담. 시대를 넘어서도 계속되는 이야기들. 되풀이되는 노래 같은 것들. 요정. 고블린. 거인. 요괴. 도깨비. 기사와 문지기. 바드와 리라. 검과 용사. 광장의 하프 소리. 그것들은 때때로 꿈속을 수호하며 때론 일상의 그림자들이 되어 호출하면 응답할 것만 같았다. 들려지는 것들이 쓰여질 때, 쓰여진 것들이 들릴 때. 적혀 있는 것들이 그들의 입을 통해 귀로 전해지는 것. 반복해서 전해지고 지금도 여전히 전승되고 있는 것. 어느 날 들렸던 하나의 목소리가, 어느 한 구절이 누군가를 살렸다면, 그로 인해 살아갈 수도 있다면 그것은 신앙과 무엇이 다를까. 그들이 나에게 무언가를 빌어 준 것은 아니다. 그들의 목소리에 기대어 계속 갈 수 있었던 수많은 시간들로부터 지금도 계속되는 어떤 순간들이 지속될 수 있었을 뿐이고 그다음이 있기를 그 순간들로부터 감히 바랄 수 있었던 것이다. 늘 목숨처럼 붙들고 있지만 동시에 늘 너무 아득하기만 한 것에 대해 대체 무엇을 쓸 수 있을까. 그 고민의 끝에 일주일도 안 되어서 나는 병원에 입원을 해야 했다. 며칠 동안 정신이 몇 번이나 나갈 것 같았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셀 수 없을 정도로 꿈을 정말 많이 꿨는데 잠깐의 꿈에서 할머니의 불경 읽는 소리가 들렸다. 꿈속의 소리였겠지만 귓가에서 목소리는 오래 머물렀다. 병실의 침대가 아니라 이제 마침내 내가 가고 싶은 곳에 나는 온 건가? 눈을 뜨면 나의 옆에 누워 그것을 읽어 주는 할머니는 없었지만 나는 들었다. 이곳을 넘어서, 시간을 넘어서, 세월을 넘어서. 그 밤 이전의 무수한 밤들로부터, 그 밤의 영겁 너머로부터 들려오는 것 같았던 목소리를. 초연해지고자 열망하는 마음을 이미 초월해 있는 곳으로부터 목소리는 들린다는 것이. 나의 뼈의 일부는 부러졌고 언제까지 누워 있어야 할지 그때는 몰랐다. 부서진 건 뼈뿐
작성일 2026-03-01 댓글수 0상세보기 -
기획 정혜경 - 『소심록(素心錄)』, 그 마음의 울림과 여운[편집위원 기획 – 단 한 권의 책] 『소심록(素心錄)』, 그 마음의 울림과 여운 정혜경 연주홍빛 표지 배경에 민들레 씨앗이 날아다니고 있다. 표지 왼쪽에는 한자 세로쓰기로 素心錄(소심록) 柳達永(류달영) 著(저)라고 저자가 직접 쓴 글씨가 굳건하게 새겨져 있다. 성천(星泉) 류달영의 수상록 『素心錄(소심록)』(경문사, 1961)이다.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우선 성천의 수상록이라는 것만으로도 반가웠고, 소박하면서도 여운 있는 표지가 마음을 끌었다. 장정을 맡은 월전 장우성은 농민이 ‘생각하는 민들레’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던 성천의 뜻을 이렇게 담았다. 1961년 초판본 민들레 씨앗 하나가 이제사 마음터에 내려앉았다. 저자 성천 류달영(1911~2004)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39년 『농촌 계몽의 최용신 소전』을 저술해서 발표하면서부터였다. 양정고보 스승이었던 김교신은 최용신을 만나 보았던 성천에게 이 책을 쓰도록 권유했다. 개성 호수돈여학교에 재직 중이던 성천은 제자들에게 최용신 전기를 읽히고 싶었다. 일본 경찰 검열을 의식하며 어려움 속에 완성한 최용신 전기는 초판 1천 부가 얼마 지나지 않아 거의 품절되었을 정도로 큰 호응을 받았다. 당시 젊은이들의 가슴에 민족 사랑과 계몽 운동의 불씨를 심어 준 책이었다. 그 시절부터 성천의 글은 독자를 공감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에서 시작되어 6·25전쟁과 4·19혁명 후 역사의 고비 고비마다 발표했던 성천의 글이 했던 역할을 『소심록』에서 실감할 수 있었다. 『소심록』은 ‘평소의 마음을 기록한 책’이란 뜻으로 근래에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모아 내었다는 겸손한 제목이다. 성천은 이 글모음이 자신에게만이라도 사람다운 사람을 위하여 훗날까지 격려하는 힘을 가질 것으로 믿었다. 그 ‘격려하는 힘’은 충분히 전해져 강렬한 울림으로 왔다. 가로 12.5cm 세로 19cm의 이 아담한 책 405쪽에 51편의 글이 빼곡히 담겨 있다. 『소심록』의 글들은 1959년 3월부터 1961년 2월까지 이 년 동안 《사상계》, 《새벽》, 《사조》, 《신태양》, 《식량과 농업》, 《여원》 그 밖의 여러 잡지와 《조선일보》, 《대학신문》을 비롯한 여러 신문에 발표한 것이다. 이 책은 1961년 5월에 출간되었으니 1960년 4·19혁명이 일어난 지 일주기가 되는 시점이었다. 마지막 장 ‘사월혁명’의 다섯 편은 혁명 때 쓰러진 꽃다운 젊음들과 같은 행진 속에서, 거친 호흡을 함께 하면서 쓴 글들이었다. 성천은 4·19혁명은 학생들의 피로 성공했으니, 그 정의로운 피에 무한한 감사를 드리면서 깊은 존경으로 명복을 빌었다. 성천이 사회의 지도자로서 특별했던 점은 나라의 현실에 대해 고뇌하면서 비전을 제시할 뿐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 현실에서의 타개책까지 구체적으로 찾아가는 것이었다. 성천은 수원고등농림학교 재학 중 사토
작성일 2026-02-01 댓글수 0상세보기 -
기획 현재 - 내가 전에 말했잖아요[문장웹진 다시 읽기] 내가 전에 말했잖아요 -오한기 「더 웬즈데이」(2012년 5월호 수록) 현재(문학평론가) 독자일 때는 몰랐는데, 글을 직접 쓰게 되고서야 느끼는 바가 참 많다. 그중 제일 뼈저리게 다가오는 것은(그리고 이전에는 차마 생각지도 못했던 것은), 자기가 쓴 지난 글들을 들춰 보는 게 이렇게나 고통스러운 경험인지 몰랐다는 것이다. 정말 말 그대로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다. 나는 사실 들춰 볼 용기조차 없는 타입이라서 가능하면 이 세상에서 흔적을 아예 지워 버리는 편인데, 그럼에도 어떤 글들은 문득문득 떠오르는 것만으로 기절할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한다. 그리고 이런 갑작스러운 기습을 하루에도 수십 번 당하고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예전에는 이게 이렇게나 고통스러운 경험인지 잘 몰랐다. 습작이 몇 없어서 그랬던 것도 있고, 습작할 땐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야말로 무색무취한 글들을 썼기 때문이다. 반면 내가 쓰는 글에 나만의 개성이랄 게 생기면서부터 고통도 따라오기 시작했다. 그 모든 것들 기저에 깔려 있는 내 흉한 자의식과 대면해야 한다는 고통 말이다. 이 지면에서 나는 《문장웹진》에 발표되었던 지난 작품 중 하나를 골라 다시 읽는다. 그래서 청탁을 받고 잠시 고민했다. 편집위원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경우에 따라 이는 작가를 공개 처형하는 기획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기획 단계에서 어떤 악의가 있으셨을 것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지만, 내가 이렇게 호들갑을 떨면서 운을 떼는 바람에 적어도 이 글에 한해서는 그런 기획이 되고 만 것 같다(제 책임). 이왕에 부관참시를 할 것이라면 눈치 없이 무턱대고 좋아하는 작가를 다룰 게 아니라 내가 평소부터 골탕 먹이려고 벼르고 있던 작가를 하나 골라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호감이 가는 쪽은 최대한 배려하는 방향으로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고민과는 무관하게 오한기의 「더 웬즈데이」를 다루기로 했다. 「더 웬즈데이」는 2012년 《문장웹진》에 처음 공개된 이후 그의 첫 소설집인 『의인법』에 수록되기도 한 작품이다. 오한기는 『의인법』을 출간한 뒤로 단 하루도 제대로 숙면을 취해 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내가 그의 끔찍한 악몽을 다시 헤집는 걸 그도 그리 달가워할 것 같지는 않기에, 곧장 그의 얘기를 하는 대신 차라리 내 얘기로 잠깐 둘러 가 볼까 한다. 방 안에서 책만 읽던 독자일 땐 몰랐는데, 나와서 보니 또 하나 깨달은 것은 막상 문인들을 실제로 만나 보면 다들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것이었다. 많은 문청들이 공감할 만한 얘기겠지만 나 또한 작가들을 처음 만나고 충격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뭐야, 글이랑 너무 다르잖아···.’ 나는 아직 문인들을 그리 많이 만나 본 편은 아닌데, 그래서 면역이 없어서 그런가 대개의 경우엔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작가들을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게 된다. 이 괴리가 반드시 모든 작가에게 통용되는 것은 아닐
작성일 2026-02-01 댓글수 0상세보기 -
기획 박소란 - 거대한 사랑의 기록[편집위원 기획 – 단 한 권의 책] 거대한 사랑의 기록 - 김명순 창작집 『생명의 과실』 박소란 사진1. 『생명의 과실』 (한성도서주식회사, 1925) 표지 지난 2025년은 『생명의 과실』(한성도서주식회사, 1925)이 출간된 지 꼭 100년이 되는 해였다. 『생명의 과실』은 김명순(金明淳, 1896~1951 추정)이 쓴 한국 여성 작가 최초의 창작집이다. 국내 서지 기록에 등록된 여성 작가 최초의 단행본. 문학사적으로 특기할 만한 것임에 분명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생명의 과실』도 김명순도 오늘날 우리에게는 그리 익숙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때문에 100주년은 터무니없이 고요했다. 별다른 의식이나 언급 없이 우리 문학장은 지난 한 해를 지나치고 말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생전 김명순이 겪어야 했던 갖가지 고난과 핍박을 떠올리게 된다. 혹여 김명순이라는 선구적 예술가를 아직까지도 과거 그늘진 그 자리에 세워 둔 것은 아닐까, 못내 씁쓸한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인터넷으로 조금만 검색을 해 봐도 대략의 사실을 파악할 수 있겠지만, 김명순은 쉽게 소거될 수 없는 이름이다. 1917년 단편소설 「의심의 소녀」가 문예지 『청춘』의 현상 공모에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는 등단이라는 제도를 거친 한국 문단 최초의 여성 작가다. 1920, 30년대 누구보다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펼친 김명순은 시, 소설, 수필, 희곡, 평론 등 다양한 장르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을 국내에 최초로 소개하고 보들레르의 시를 번역하는 등 외국어에도 능통했다. 피아노를 잘 치고 독일어로 곡을 만들 만큼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다. 또한 신문기자, 영화배우로도 활동할 만큼 다재다능했다. 이처럼 화려한 이력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기생 출신의 ‘첩'이라는 이유로, 성폭력의 피해자라는 이유로, ‘자유연애’를 주창한다는 이유로 온갖 조롱을 받았다. ‘부정한 혈액’ ‘문란한 여자’ 등 모욕적인 꼬리표가 일평생 그를 따라다녔다. 조선과 일본을 오가며 공부와 집필에 힘썼으나 생활고에 시달리는 등 힘겨움이 잇달았고, 결국 1951년경 일본 도쿄의 한 정신병원에서 홀로 생을 마감해야 했다. 김명순은 생전 시, 소설, 수필, 희곡(각본) 등을 한데 묶은 두 권의 창작집을 냈다. 『생명의 과실』과 『애인의 선물』(회동서관, 1929 추정)이 그것이다. (세 번째 창작집을 준비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결과적으로 불발되었으며, 때문에 창작집에 수록되지 않은 작품도 상당하다.) 이 중 『생명의 과실』은, 앞서 언급한 대로 한국 여성 작가 최초의 단행본으로 그 의미가 각별하다. 1 『생명의 과실』에는 등단작 「의심의 소녀」를 포함해 소설 2편, 시 24편, 수필(목차에는 ‘감상(感想)’이라 표기되어 있다) 4편이 수록되었다. 소설 「돌아다볼 때」나 시 「유언」, 「저주」, 「탄실의 초몽」, 「유리관 속에
작성일 2026-02-01 댓글수 0상세보기 -
기획 박진영 - 100년 전 멋진 신혼여행의 기억[편집위원 기획 – 단 한 권의 책] 100년 전 멋진 신혼여행의 기억 -염상섭의 『해바라기』와 나혜석의 결혼 전후 박진영 노처녀 결혼 풍경 신부 나이 스물넷이면 노처녀인 시절이었다. 서른넷의 신랑이라고 첫혼인일 리 없었다. 암만해도 결혼식을 버젓하게 치러야 했다. 둘 다 유명 인사다 보니 결혼 소식이야 진작에 왁자그르르 퍼졌고, 신문에 신랑 신부 사진까지 실렸건만 그래도 아쉬웠다. 내친김에 결혼 기사 아래 청첩장을 내기로 했다. “저희는 목사 김필수 씨의 지도를 받자와 4월 10일 토요일 오후 3시에 정동 예배당에서 결혼식을 거행하옵나이다. 이날에 귀댁 왕림의 광영 주심을 엎드려 빕니다. 경신년(1920) 4월 3일, 김우영 · 나혜석.” 신문에 청첩장을 광고한다고 발칙한 일은 아니다. 대체 뉘 집 아들딸인지 이름이 없는 게 문제다. 100년이나 지난 오늘날에도 청첩장은 신랑 신부가 아니라 부모 이름으로 보내고 있지 않은가? 무릇 결혼이란 당사자들의 일이기에 앞서 엄연히 집안 대사인 까닭이다. 요즘에야 신랑 신부가 나란히 팔짱 끼고 걸어 들어가는 일도 흔하다지만 여태 청첩장 문화는 그대로 아닌가? 이만한 기세라면 혈기 넘치는 청년들이야 박수 칠 법하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못마땅하다 못해 한심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둘 다 웬만한 정도가 아니라 내로라하는 집안 자식들이었다. 그나마 넷째, 다섯째 자식이라서 불행 중 다행이지만 대체 무슨 남부끄러운 짓이란 말인가? 시아버지는 기어코 폐백을 물리치고 술잔이나 기울이러 나갔다. 하기야 목사 주례에 답사랍시고 감히 신부가 한마디 아니라 일장 연설을 떠든 예식이었으니 결혼식이고 피로연이고 애당초 안 들어선 게 차라리 나은 지경이었다. 그뿐이 아니다. 신랑 신부는 이튿날 식전 댓바람부터 양가에 차례로 들이닥쳐서는 신혼여행 떠난답시고 들썩여 놓고는 훌쩍 기차를 탔다. 신부는 두 주일쯤 예정이라고만 무지르고는 어디로 가는지 신랑에게도 도통 알려 주지 않은 채 막무가내로 잡아끌다시피 했다. 이쯤 되고 보면 아무래도 웬만한 신혼여행이 될 리 만무했다. 신랑은 교토제국대학 출신의 변호사 김우영, 신부는 진명여학교 최우등 졸업생이자 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 출신의 화가 나혜석이다. 사진1. 나혜석 결혼사진 (1920) 출처: 수원시립미술관 남도 신혼여행 사달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대전에서 잠시 여관에 들렀다가 호남선으로 갈아탄 신혼부부는 한밤중에 목포에 도착했다. 열 시간 넘게 걸린 곤한 여정이었다. 그런데 인력거 잡아타고 곧장 여관에 들어서서는 하녀 이름부터 대는 신부가 영 수상쩍다. 초행길이 아니었던 셈이다. 신부는 3년 전 그 여관 2층에서의 하룻밤을 홀로 추억했고, 영문 모르는 신랑은 얼추 짐작이 나섰지만 섣불리 입을 열 계제가 아니었다. 아직 신혼 둘째 날 밤이었으니. 부산 유곽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하녀와의 사연인즉 대수로울 것도 없었다. 신부는 3년 전 도쿄에서 다니던 학교를 빼먹고 홀로 바
작성일 2026-02-01 댓글수 0상세보기 -
기획 송희지 - 시작을 위한 커튼콜시작을 위한 커튼콜 송희지 ❋ 2025년은 내게 변화와 도전의 해였다. 짧지 않은 학부 생활을 마치고 대학원에 진학했으며, 두 번째 시집을 펴내면서 지난 이삼 년간 차곡차곡 쌓아온 작업물과 사유들을 털어 냈다. 문화센터 등에서 시 창작 수업을 하며 학생들을 만났고, 창작촌에 입주하며 잠깐의 서울살이를 해 보기도 했다. 또 그 변화와 도전의 한 축에는 극(劇)이 있었다. 새해 첫날, 신문을 통해 첫 희곡 「탐조기」를 발표하게 되었는데, 그 직전까지도 연극에 대한 지식이라곤 소나기 오는 날 도로변에 생기는 웅덩이만큼이나 얕았던 내겐 그 일이 어떤 사건처럼, 무척 고되고 생경한 모험의 시작처럼 느껴졌다. 희곡이 무엇인지, 연극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한 해 동안 고군분투했었다. 많은 희곡을 읽었고 많은 연극을 보았다. 한 명의 독자이자 관객으로서, 손꼽기도 어려울 만큼 많은 수의 좋은 작품들을 만났다. 특히 와즈디 무아와드의 작품들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음이 틀림없다(나는 『화염』을 각기 다른 극단의 낭독 공연과 무대 공연으로 한 번씩 봤고, 희곡을 여러 번 반복해 읽었다). 또 한 차례의 무대 공연과 한 번의 낭독 공연에 작가로 참여하면서, 연극이라는 무대예술이 가진 힘과 가치를 몸소 익혔다. 시나 소설은 작가의 머리에서 태어나, 그의 손으로 옮겨지고, 그의 품 안에서 완결된다. 희곡은 그와 다르다. 희곡의 완성은 실연(實演)을 위한 하나의 단계이며, 그것은 연출과 배우, 드라마터그를 비롯한 수많은 이들의 조력을 바탕으로 비로소 몸과 숨을 얻는다. 두 번의 공연 연습에 참여하면서, 나는 배우들의 호흡과 몸짓이 어떤 위력을 가지는지, 연출의 창의적인 시선이 어떻게 무대를 빛나게 하는지, 드라마터그의 예리한 질문이 어떻게 희곡의 골간을 드러내도록 이끌어주는지를 보고 배웠다. 공연으로 다시 만난 나의 희곡은 내가 생각지 못한 에너지를 갖고 있었다. 나를 작가가 아닌 한 명의 관객으로서 감동하고 환호하게끔 만드는, 기분 좋은 낯섦의 생기였다. 처음 신년 에세이 청탁을 받고, ‘반성, 시작, 소망’이라는 주제를 접하고 나서 자연히 지난 2025년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때 나는 지나간 일상에 관해 떠올리기보다는, 내 ‘씀’이 한 해 동안 어떻게 몸을 바꾸어 왔는지를 주로 되짚은 듯하다. 이를테면 이전까지는 거의 시만 쓰고 발표해 왔던 내가, 희곡이라는 장르를 접하고 익히게 되면서 겪은 생각·언어·감각의 변화에 대해서, 또 그것이 내 시의 지형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가에 대해서. ‘반성, 시작, 소망’이라는 키워드 아래 내가 쓰고자 하는 글의 초점도 분명 그곳을 향해 있을 것이다. 이 에세이는 지난 1년간 내 변화한 내 ‘씀’에 관한 내밀한 살핌, 일종의 고백에 다름 아닐 것이다.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기에 앞서, 가장 중요한 기억 하나를 먼저 꺼내 본다. 지난가을 나는 연희동의 단란하고 아름다운 창작촌 작업실
작성일 2026-01-01 댓글수 0상세보기 -
기획 김상규 - 소망, 반성, 시작소망, 반성, 시작 김상규 1. 소망 여러분은 언제부터 새해라고 생각하시나요? 어떤 분은 1월 1일을 새해로 생각하실 것이며, 또 어떤 분은 설 명절을 생각하는 분도 있으실 겁니다. 또 어떤 분은 해가 다시 길어지는 동지를 새해의 시점으로 잡으실 수도 있겠군요. 저는 새해의 시작을 정월대보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가 과학적으로 분명하거나 이론적으로 거창한 것은 아닙니다. 단지 어릴 적 할머니와의 기억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할머니는 늘 정월대보름이 되면 가족 수에 맞게 하얀 종이를 준비하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소지(燒紙)라고 불렀습니다. 준비된 소지를 앞이 두껍고 기다란 직사각형으로 접고 나면 우리 집 정월대보름 준비는 끝마친 것입니다. 저녁이 되면 할머니는 나를 부르시곤 그 소지에 가족의 나이와 이름을 적게 하셨습니다. 할머니는 소학교도 나오지 않으셨기에 글을 더듬더듬 읽을 줄 아나 쓸 줄은 모르셨습니다. 그래서 나를 불러 이 일을 시키신 것이지요. 잘 정리된 소지와 초 하나를 들고 할머니는 마당 구석으로 향했습니다. 불을 태우는 방향을 해마다 바뀌었는데 아마 동네 용한 무당 할머니의 말씀을 듣고 그리했다고 짐작할 뿐입니다. 남쪽이 흉하면 남쪽으로 소지를 태우고 북쪽이 흉하면 북쪽으로 소지를 태우는 것입니다. 준비가 다 되면 할머니는 이름이 적힌 소지를 순서대로 가슴에 품고 무언가를 기도하셨습니다. 저는 그 소원이 무엇인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습니다. 서서히 몰락해 가는 집안에서 할머니가 할 수 있는 기도는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할머니는 기도가 다 끝나면 가슴에 품었던 소지를 촛불에 태워 하늘로 올려 보냈습니다. 쪼그리고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더 멀리 소지의 불꽃이 퍼지기를 바라며 손바닥으로 부채질을 했습니다. 제주 중간산 마을의 거친 겨울바람을 타고 훨훨 오르는 종잇장을 지켜보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저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할머니 제 소지는 제가 가슴에 품고 불을 붙일게요.” 할머니는 흔쾌히 제 말을 따르셨습니다. 그것은 제가 우리 집안 종손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잔병치레가 많아 유난히 병약했던 나에게 할머니는 무엇이든 다 주고 싶은 그런 존재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제가 어떤 소원을 빌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습니다. 날 버리고 떠난 엄마가 빨리 돌아오길 바란다는 소원을 빌었을까요? 교도소에 들어간 아버지와 삼촌이 빨리 돌아오길 바란다는 소원을 빌었을까요? 그게 아니면 빨리 어른이 되어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소원을 빌었을지도 모릅니다. 어찌 되었든 가슴에 품었던 하얀 종이를 촛불에 붙여 하늘로 올려보냈던 기억과, 제 소원이 담긴 소지의 불꽃이 더 멀리 퍼지기를 바라며 손바닥을 휘저었던 기억만은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2. 반성 소지를 태우며 빌었던 소망은 이루어졌을까요? 불행하게도 그 기도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집안은 철저하게 몰락했으며 저 역시 혈족의 굴레 속에 벗어나지 못했으니까요. 어디부터 잘못되었는지
작성일 2026-01-01 댓글수 0상세보기 -
기획 최현진 - 한 해의 뒷면한 해의 뒷면 최현진 첫 눈이 내린다. 나의 글쓰기 방에 난 창문으로 흰 원들이 신호등과 선로 위에 앉는 걸 본다. 눈과 바람을 피하지 못한 사람들이 외투를 되살리며 종종종 걸어간다. 눈이 쌓인 지면은 세상으로부터 떠 있는 것 같다. 사물의 형체를 지우며 공백에 가까워진다.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는 공백(空白)에서 찾아온다. 이 글은 지난겨울에서 다시 첫눈이 내리는 동안의 이야기다. 아홉 살 때 ‘단감’이라는 시를 써 본 것을 시작으로 오랫동안 내 꿈은 작가였다. 2025년은 꿈을 이루며 시작했다. 나의 첫 책이 나온 것이다. 출간 이후의 삶이 책의 질량만큼 가벼운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연초 문학상 시상식을 하루 앞두고 아버지가 바터팽대부암이라는 희귀암 진단을 받으셨다. 시상식 가는 길이 앞으로 펼쳐질 투병과 간병의 길처럼 더디고 어려웠다. 이른 봄, 나는 희미한 감각으로 수상과 첫 책의 기쁨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최종 교정지를 만지는 날에 아버지가 누워 있는 고층 병동에서 쏟아지는 폭설을 보다가 그만 커피를 쏟고 말았다. 얼룩이 책에 인쇄되어 나올 것도 아닌데 참을 새 없이 눈물이 푹신 떨어졌다. 나는 서운했다. 내 삶에. 작가는 어떻게 가족구성원 내에서 돌봄이라는 균형을 지키며 자신의 작업을 이어 나갈 수 있는가. 휠체어를 끌다가 메모를 하고 병실에 불이 꺼지면 노트북을 켜 타닥타닥 불씨를 지피기도 하지만 일순간에 불과하다. ‘작업을 이어 나가고 싶다’는 마음과 ‘중지해야 한다’는 갈등은 겉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병원에 도착했지만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서성거린다거나, 환자에게 무뚝뚝하게 군다 거나. 간병 일수를 줄여 보자는 생각도 해 보았지만 그러기에 내 직업은 출퇴근이 따로 없는 작가이고 또한 애매한 태도가 걸림돌이었다. 수상과 첫 책의 행운이 함께 왔기에 주변 사람들에게 쉽사리 힘들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모두가 나를 축하해 줄 때였다. 병원 앞에 뜬 부드러운 점선의 구름을 보며 사진을 찍어 두는 것이 기쁨의 전부였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문학이 전부인 것처럼 보이고 싶었다. 작가가 무엇인지 충분히 숙고하지 않은 탓인지 모른다. 나는 빠져나갈 출구를 찾고 있었다. 첫 강연은 부산이었다. 책을 내고 공식적으로 들어온 첫 번째 일이었다. 식구들에게 떳떳하게 통보하고 짐을 쌌다. 얼마나 걸리냐는 아버지의 질문에 하루가 걸린다고 했다. 강연은 두 시간이었지만 부산까지 가는 데 오고 가는 시간이 있으니까. 그런데 왜 짐을 싸냐고 물어보셔서 간 김에 글을 쓰고 오겠다고 말했다. 여기서도 글을 쓸 수 있지 않느냐고 생각하시는 게 아버지 입장에서는 당연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글을 쓸 수 없었다.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갔다. 내가 초청받은 곳은 시외에 위치한 고등학교였다. 따뜻한 땅에서 올라온 연둣빛 들판을 거쳐 봄 멸치를 잡던 배가 묶여 있는 작은 항구와 벽돌로 쌓은 젓갈 공장을 지나서 달려간 곳에 아늑한
작성일 2026-01-01 댓글수 0상세보기 -
기획 최은영 - 동그라미 그리기동그라미 그리기 최은영 얼마 전, 김창환 님이 쓴 글을 읽었다. 책 제목이기도 한 글의 제목은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 “세상살이라는 게 그렇게 자로 잰 듯 떨어지지 않습니다. 좀 여유롭게 생각하세요. 제가 지금부터 동그라미를 여백이 되는대로 그려 보겠습니다. 마흔일곱 개를 그렸군요. 이 가운데 V를 표시한 두 개의 동그라미만 그럴듯합니다. 회사 생활이라는 것도 47일 근무 중에 이틀이 동그라면 동그란 것입니다. 너무 매일매일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그렇다고 위에 그린 동그라미를 네모라고 하겠습니까, 세모라고 하겠습니까? 그저 다 찌그러진 동그라미들입니다. 우리의 일상도.” 1) 매일매일에 집착하지 말라는 그의 말에 위로받았고, 하루를 원으로 표현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하루하루가 동그랗게 완성되며, 시간은 마냥 직선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순환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시간은 여러 개의 원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일 초, 일 분, 한 시간, 하루, 일주일,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일 년··· 한 해를 사는 것을 동그라미 하나 그리기라고 생각한다면 지금까지 나는 마흔두 개의 동그라미를 그린 셈이다. 앞으로 이 동그라미를 몇 개나 더 그릴 수 있을까. 끝의 끝이 되었을 때 새로운 시작이 돌아온다는 걸 연말이 오면 매번 깨닫는다. 만족하며 살았든 그렇지 않았든 새해는 거저 주어진다. 다시 시작할 기회를 주듯이. ‘새로운 동그라미를 그려 봐’ 하면서. 그러면 마흔셋이 된 나는 다시 손에 연필을 잡고서 새로운 페이지에 동그라미를 그리기 시작한다. 마흔두 개의 동그라미를 그렸지만 여전히 동그라미 그리기는 막막하고 어렵다. 언제부터 동그라미 그리기가 이렇게 어려워졌을까. 새 시간, 다시 주어진 기회, 새로운 삶···. 이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새해가 시작되면 언제나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산다는 것이 버겁다는 생각을 떨쳐 내기가 어렵다. 그러면서도 지금의 삶이 그래도 내가 지금까지 살았던 시간 중에서는 가장 덜 힘든 시기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 정도면 견딜 만하다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십 대와 이십 대의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 주고 싶다. 나는 마흔셋이 되었는데, 사는 일이 극적으로 쉬워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지금 너의 삶보다는 훨씬 더 평온하다고. 마흔세 번째의 새해를 맞이하여 지난 시간을 되돌아본다. 예전에는 회한도 많고 아쉬움도 많아서 ‘시간을 되돌린다면’이라는 가정을 자주하곤 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러지 않는다. 한때는 바보 같은 선택을 거듭한 어린 나를 용서하지 못하기도 했다. 너무 바보 같아서 미워질 정도의 어린 나를. 하지만 그게 그 아이의 최선이었다는 것을 가슴 깊이 받아들이고 나니 더는 그런 내가 미워지지도 않았고, ‘시간을 되돌린다면’ 같은 가정을 하지 않게 됐다. 내
작성일 2026-01-01 댓글수 0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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