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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모든 고민-
기획 김수이 - 텅 비어 있는 ‘나’들의 우주(적 연대)텅 비어 있는 ‘나’들의 우주(적 연대) 김수이 1. ‘자아의 무화’와 ‘무위의 주체’에 대한 열망 과거로 회귀하는 일은 늘 가능하다. 기억과 글 속에서는 더욱더. 십여 년 전 우리 사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격한 열망을 뿜어내는 말들로 즐겁게 소란했다. 미친 듯이 질주하는 세상에서 피로와 불안에 찌들어 있었지만, 찌들어 있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이미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나는 아무 생각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1) 기획된 광고가 먼저였는지, 대중 사이에서 싹튼 유행어가 먼저였는지는 확실히 기억나지 않지만, 2015년에 한 신용카드사가 내세운 이 문구의 인기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일상의 곳곳에서 이 말들은 가볍게, 그러나 강력하게 번져나가면서 아무 행동과 생각을 하지 않는 ‘나’에 대한 개인적이며 사회적인 열망을 공론장에 풀어놓았다. 대중이 열광한 ‘아무것도 안 함’의 의사 표명은 ‘주체성의 반납/포기/해체의 의지’나 ‘무위(無爲)의 주체성’이라고 부를 만한 새로운 시대의 정신적 편향성의 사태를 한껏 부추겼다. 동시에, 경제와 사회 발전을 위협할 수 있는 ‘무위’의 사태를 광고와 유행어라는 공식적이거나 비공식적인 언어 유통 장치를 통해 무마하는 이중의 역할을 했다. 무한 경쟁의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개인이 자신을 착취하는 ‘성과 주체’로 광적으로 변신해 가는 비극을 파헤친 한병철의 명저 『피로사회』(문지, 2012)가 출간되어 널리 읽히던 무렵이었다. 아무것도 안 하는 ‘나’에 대한 사회적 열망의 기원을 찾아 조금 더 회귀해 보자. “난 누구? 여긴 어디?” ‘멘(탈)붕(괴)’의 비명을 대신하는 이 말이 처음 유행한 것은 1990년대였다. 역시 유행어가 먼저였는지 히트곡이 먼저였는지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인기 힙합 듀오 ‘듀스’가 부른 「우리는」(1993년 발표)의 후렴에 유사한 문장이 들어 있다.2)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지금 저 멀리서 누가 날 부르고 있어./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이젠 우린 앞을 향해서만 나가겠어.” 정체성과 처소를 상실했으나 “누가 날 부르고 있”기에 “앞을 향해서만 나가겠”다는 외침은, 희망에 차 있으면서도 무모하게 다가온다. 앞으로만 무한히 질주하라는 파시즘적 자본주의의 명령을 따르겠다는 다짐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이 곡의 제목이 ‘나’가 실종된 세상의 ‘우리는’인 것도 의미심장하다. 이 ‘우리’는 사회의 문제점과 위험한 방향성이 그대로
작성일 2025-12-01 작성자 관리자 댓글수 0상세보기 -
기획 김미월 - 한없이 축축한 이야기한없이 축축한 이야기 - 김경욱 『스프레이』 (문장웹진 2011년 5월호 수록) 읽기 김미월(소설가, 前 문장웹진 편집위원) 2011년 5월 에 게재되었던 김경욱의 단편소설 「스프레이」는 709호에 사는 어느 남성 화자의 이야기이다. 그의 실수에 대한 이야기이자 그의 강박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소설은 화자가 실수로 다른 사람의 택배를 집에 가져오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렇다. 처음에 그것은 단순한 실수였다. 그러나 문자 메시지 하나도 퇴고를 거듭해서 보낼 만큼 꼼꼼한 성격의 소유자인 그는 평소의 자신답지 않은 실수에 당혹감과 불쾌감을 느낀다. 그의 손이 곧 땀으로 축축해진다. 화자에게 ‘축축한 손’은 일종의 재앙과도 같다. 축축한 손으로 첫사랑의 손을 잡았다가 차인 바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니다. 화자는 실연보다 실수에 더 신경 쓰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첫사랑에게 차였다는 사실보다 앞으로 다시는 그런 불상사를 겪지 않기 위해 타인과 실수로라도 손이 닿는 일을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 한 번의 실수는 넘어갈 수 있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일은 용납할 수 없다는 명제가 더 중요하다. 물론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실수할 때가 있고 그때마다 긴장으로 손이 축축해진다. 그럴 때면 그는 늘 자신에게 고함치던 아버지를 떠올린다. 넌 대체 뭐하는 놈이냐! 축축한 놈……. 왜 손이 축축해졌을까. 그는 원인을 하나씩 분석해본다. 손이 축축해진 것은 실수로 남의 집 택배를 들고 왔기 때문이다. 남의 집 택배를 들고 온 것은 집중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집중력이 떨어진 것은 피로감 때문이다. 피로감은 밤잠을 설쳤기 때문이다. 밤잠을 설친 것은 옆집 고양이의 울음소리 때문이다. 정리하면 옆집 고양이가 울었기 때문에 그의 손이 축축해진 것이다. 실수의 원인을 알았으니 실수를 반복할 확률도 줄어들 것이라며 그는 안도한다. 공교로운 상황들이 겹치면서 택배를 제자리에 돌려놓으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다. 화자는 별수 없이 집으로 다시 가져온 택배를 충동적으로 개봉한다. 묘한 쾌감과 해방감을 느끼는 가운데 잡다한 물건들 속 스프레이가 눈에 띈다. 그의 손을 땀으로 축축하게 만들었던 원흉인 택배의 정체가 알고 보니 땀 냄새 제거용 스프레이였다니. 그는 스프레이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버린다. 그날 이후 화자가 다른 사람의 택배를 집으로 가지고 오는 일이 반복된다. 실수라면 용납할 수 없지만 고의니까 괜찮다. 그에게는 행위 자체의 윤리성보다 그것이 실수인지 고의인지 의도 유무를 따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어느 날 마침내 옆집 여자의 택배를 집으로 가져오기에 이른다. 그는 자신의 밤잠을 설치게 했던 옆집 고양이의 울음소리, 그리고 자신의 항의를 번번이 묵살했던 무례한 옆집 여자에게 타격을 주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상자를 연다. 이 대목이 이 소설의 미드 포인트이다. 상자 안에 든 것은 옆집 고양이의 사체였다.
작성일 2025-12-01 작성자 관리자 댓글수 0상세보기 -
기획 윤재민 - 화이자와 셀트리온화이자와 셀트리온 -김사과 혹은 21세기 한국-소설의 한 표정 윤재민 1. 비물질 도시공간 김화진의 소설 「새 이야기」는 오늘날 서울에 홀로 거주하는 도시적 존재의 일상과 욕망에 대한 낭만적인 우화이다. 소설의 일인칭 화자인 진아는 아직은 자리 잡지 못한 웹툰 작가다. 그녀는 어렵게 연재를 따내고 독자들의 실시간 반응을 살피면서 하루하루를 버텨 낸다. 매 순간 극도의 스트레스 속에서도 자신의 일상을 놓치지 않는, 이 고단한 일인가구 여성 창작자의 낙은 소소하다. 성수동이나 불광천같이 서울 시내 한강 북쪽의 정비된 수변 일대를 산책하거나 썸남 천희가 선물한 대파를 잘라 자취방에서 떡볶이나 닭발 같은 매운 음식을 해 먹는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이 거주하는 공간에서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지루하고 불안정한 시간을 견뎌 내는 중이다. 어느 날 진아의 일상에 기이한 환상이 찾아온다. 그것은 갑자기 천희가 선물한 대파가 진아에게 말을 건네면서 시작된다. 대파는 대뜸 썸남 천희가 오래전부터 진아를 짝사랑해 온 청둥오리임을 폭로한다. 대학 시절의 진아를 보고 첫눈에 반한 청둥오리가 어렵사리 인간이 되어 그녀 곁을 맴돌고 있다는 것이다. 진아는 살아남기 위한 지극히 ‘인간적인’ 시절을 통과하는 서울에서의 모든 순간이 맹목적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존재와 함께한 시절이었음을 느끼며 잠시 위로받는다. 그리고 이러한 믿기 어려운 사적 환상을 웹툰의 소재로 사용하며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도시인 진아의 환상 체험 그리고 이를 소재로 한 창작의 욕망은 흥미롭다. 도시에서의 ‘인간적인’ 삶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수많은 익명적 존재의 삶의 양태와 그들에 의해 생성되는 도시의 비물질적(immaterial) 공간 양식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도시공간은 막강한 위정자나 위대한 건축가의 기획을 한참 초과한다. 인간적인 양태의 모든 것을 한곳에 집중시키는 각양각색의 과밀함으로 끓어오르는 공간이다. 그 안으로 수많은 익명적 존재들이 각자의 욕망과 꿈을 안고 모여든다. 그들의 비전은 실현되기 전까지 어느 정도 망상적 성격을 띨 터이다. 하나 실은 바로 그 망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욕망이야말로 그들을 도시에 현전하게 하는 비물질적인 역량이다. 도시는 무차별적으로 이들을 일단 받아들이고 그들의 적합성을 매 순간 시험한다. 모두에게 365일/24시간이 ‘평등하게’ 주어지는 가운데, 각자가 점유하고 있는 위치에서 자신의 삶을 요령껏 살아 내야 한다. 그렇게 극도의 혼잡과 과밀함 속에서 척도 없이 흘러가는 존재들이 그저 자신에게 귀속되는 욕망 혹은 망상과 관련된 공간을 스스로 창안하며 밀집한다. 「새 이야기」는 성수동이나 마포·은평구 일대 수변 지역을 불안하게 점유하며 살아가는 도시적 존재 양태를 비물질적 공간 양식과 결부시켜 포착해 낸다. 척도 없이 증식하는 인간적인 욕망을 담지한 비물질 공간은 20세기 후반기 소설의 도시적 사유와 글쓰기에 첨가된 가장 흥미로운 스타일이
작성일 2025-12-01 작성자 관리자 댓글수 0상세보기 -
기획 이주란 - 간결하고도 복잡한간결하고도 복잡한 이주란 헤밍웨이의 소설 「깨끗하고 밝은 곳」에는 카페 손님들이 모두 떠난 시간까지 전등빛 아래 앉아 집에 가지 않는 노인 한 명이 등장한다. 박인성 평론가가 그 노인과 겹쳐보였다는 뜻은 아니다. 노인과 그는 좋은 손님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나 많이 취하면 돈을 내지 않고 가는 버릇이 있는 노인과 달리 그는 우연히 카페에 들른 친구에게 종종 커피를 사는 버릇이 있다는 점이 다르다. 몇몇 날 내가 보았던, 박인성 평론가와 그를 둘러싼 풍경들을 적어보려고 한다. 1. 서울역에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는 일주일에 절반은 부산에서, 나머지 절반은 서울에서 움직인다고 한다. 나는 그가 부산을 떠나 서울에 도착하는 목요일 저녁, 7시 18분에 도착하는 열차에서 내리는 그의 표정을 관찰하기 위해 서울역으로 갔다. 서울역 광장 앞에서 한 사람이 END가 아니라 AND, 명심해라 이것들아, 하는 행동은 꼭 부메랑처럼 다시 돌아온다, 라고 반복해서 말하고 있었는데 그 사람을 지나쳐 역사 안으로 들어가면서는 어쩌면 END가 아니라 AND,가 아니라 AND가 아니라 END라고 말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오후 열차를 타기 직전까지 세 개의 수업과 세 개의 회의를 마쳤고 먼 거리를 이동했기에 짐도 좀 있고 다소 지친 표정일 거라 짐작한 것과 달리 그는 크지만 무겁지 않은 가방을 왼쪽 어깨에 걸친 채 바쁘지 않은 날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열차에서 내렸다. 회색 쓰리피스 수트와 똑딱이 체크 셔츠를 입은 그는 플랫폼을 지나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원래 에스컬레이터 안 타세요? 저는 그냥 계단으로 갑니다. 에스컬레이터에 오른 사람들보다 적은 수의 사람들 속에 뒤섞여 그는 빠르게 걸었다. 이제 어디로 가세요? 오늘은 성수로 갑니다. 그는 여러 개의 출구 중 맨 오른쪽 출구를 향해 걸었다. 걸음걸이는 눈에 띄는 것 없이 평범했으나 힐리스라도 신은 것처럼 자연스럽고 (내 기준 너무)빠른 걸음이었기에 그의 마음은 이미 성수에 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왜, 왜 이렇게 빠르세요? 진짜 눈을 감고 간다면 이 정도는 아니겠지만 그렇게 표현해도 무리가 없을 만큼 익숙한 길이죠. 서울에 오면 저는 보통 성수 아니면 상수에 있는데요, 상수에 갈 때는 삼각지역에서 갈아타거든요. 삼각지역에서 상수역으로 갈 때는 맨 끝에서 갈아타면 빨라요. 성수로 가면서 상수로 가는 길을 설명하던 그는 상수로 갈 때 절반쯤은 가야 할 맨 끝의 반대편 맨 끝으로 가는 결정을 하는 바람에 더 먼 길을 걷게 되곤 한다고 말했다. 걷기의 날들이죠. 차라리 중간에서 타는 게 나으려나. 늘 반쯤은 맞고 반쯤은 틀려요. 틀리면 무슨 생각을 하시냐고 물었더니 내가 그렇지 뭐, 하는 생각을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조금 앞서 걷던 그에게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어, 그래. 거기서는 삼십 분쯤 있을 것 같은데 너도 그때까지 있게 되면 봐. 간결하게 말한 뒤 전화를 끊은 그는 내게 저리로 가서 2호선 타고 가시면 돼요, 간결하게 말하
작성일 2025-11-01 작성자 관리자 댓글수 0상세보기 -
기획 이영주 - 우리의 고백우리의 고백 - 진은영 『고백』 (문장웹진 2010년 11월호 수록) 읽기 이영주(시인, 前 문장웹진 편집위원) 시 쓰기는 재미있다. 인간의 언어란 흥미로운 것이니까. 인간의 언어란 오염과 환희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그것을 이상한 쾌락으로 즐기게 해 주는 수수께끼의 세계. 시는 이런 언어의 가장 예민한 촉수이다. 우리에게서 가장 멀리 가고 우리 곁에 가장 가까이에 있으며 우리 내부에 가장 깊이 침투해 있다. 시를 향유하는 사람들은 이런 멀고, 가깝고, 깊은 주름들을 잔뜩 가지고 있는 존재들. 시인들은 주름을 펼쳐 보이고 때로 섬세하게 접기 위해 늘 몸이 열려 있다. 열린 몸이란, 복잡하고 구불구불하고 황폐하고 어지럽고 축축하고 미끌거리고 우수수 돋는‧‧‧ 아무런 규정도 할 수 없는 무정형의 상태. 시인들이 몸을 열고 받아 적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고백 진은영 내 죄를 대신 저지르는 사람들에 대해 내 병을 대신 앓고 있는 병자들에 대해 한없이 맑은 날 나 대신 창문에서 뛰어내리거나 알약 한 통을 모두 삼켜 버린 사람들에 대해 나의 가득한 입맞춤을 대신하는 가을 벤치의 연인들 나 대신 식물원 화단의 빨간 석류를 따고 있는 아이의 불안한 기쁨과, 나 대신 구불구불한 동물내장을 가르는 칼처럼 강, 거리, 언덕을 불어 가는 핏빛 바람에 대해 할 말이 있다 달콤한 술 향기의 전언을 빈틈없이 틀어막는 코르크 마개의 단호함과 확신에 대해 수음처럼 또다시 은밀해지려는 나의 슬픔에 대해 할 말이‧‧‧ 나 대신 이 세계에 대해 더 많은 것을 희망하는 이들과 나 대신 어두워지려는 저녁 하늘 들판에 우두커니 서 있는 검은 묘비들 나 대신 울고 있는 어머니에 대하여 잠깐 딴 이야기를 해야겠다. 시인인데 시인이 아닌 채로 살아야 하는 순간들에 대하여. 내가 생활의 우악스러움을 드러내면 누군가 내게 시인 아니에요? 라고 미묘한 공격성을 띠고 물어볼 때, 그러니까 시인은 삶에 대해 초연해야 하고, 가난도 자랑스러워해야 하며, 슬픔도 웃어넘기는, 여유로운 포즈로 뭐든지 받아안고 가는 존재여야 한다고 암묵적으로 강요할 때, 그러니까 시인이 (과장해서) 영양실조에 걸려도 역시 시인이란 그런 존재지‧‧‧ 하고 동정의 포즈를 보낼 수 있는 존재여야만 할 때(전근대적인 낭만성이 아직도 있긴 하다‧‧‧), 나는 시인 아니에요? 라는 질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깊은 함정에 빠진다. 시인은 원고료나 특강비 등 돈 이야기를 하면 안 되고, 세속적 삶에서 벗어나, 자본주의로부터 벗어나 일종의 허상에 가까운 삶을 유지해야 한다는 여러 시선에 대하여‧‧‧ 나는 종종 공중누각에 던져져 온몸이 찢겨 가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럼 ‘나’는 어떻게 살지? 시를 쓰지 않는 순간들이 더 많은 ‘나’의 생활과 삶은 어떻게 하지? 그 생활과 삶의 세부들이 모여 하나의 시를 탄생시키는데, 결국 시를 쓰지 않는 순간에도 시를
작성일 2025-11-01 작성자 관리자 댓글수 0상세보기 -
기획 도재경 - 안산 산책안산 산책 -소설가 정용준 씨의 일일 글‧그림 도재경 설레는 아침입니다. 저는 지금 한 연구실 앞에 있는데요, 굉장히 조용하네요. 제가 여기에 온 이유는 독자 여러분이 좋아하는 소설가이자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인 정용준 작가님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평소 너나들이하는 친구지만 오늘은 작가님의 그림자가 되어 어떠한 일상을 보내고 계시는지 여러분에게 보여 드리려고 합니다. 평소 작가님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작업하는지 책을 통해 접하거나 넌지시 들은 적은 있지만 작업 공간을 직접 찾아온 건 처음이라 무척 두근거립니다. 자, 이제 그림자가 될 시간인데요, 노크를 해 보겠습니다. 작가님의 목소리가 들리네요. 은은한 커피 냄새가 코끝에 스칩니다. 때마침 커피를 내리고 계셨군요. 안녕. 작가님은 생글생글한 미소로 저를 반깁니다. 어떻게 지냈어? 예나 지금이나 작가님은 한결같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작가님은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기에 앞서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입니다. 그것도 아주 진지하게, 열심히, 구체적으로 듣습니다. 작가님의 동그란 두 귀에 얼마나 많이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요. 미주알고주알 근황을 늘어놓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갑니다. 이십여 분 후에 오전 강의가 시작될 예정이라 여담은 저녁에 나누기로 하고, 저는 작가님의 그림자로서 본분을 다하며 잠자코 곁에 있을 거라고 약속합니다. 언제부터였을까요. 스피커에서 잔잔한 멜로디가 흘러나오고 있었네요. 은은한 조명이 비추는 실내는 아늑한 카페 같아서 더할 나위 없이 안락합니다. 반면 작가님은 정말 분주합니다.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이런저런 업무를 처리하는 중인 것 같아요. 작가님의 작업 공간이자 연구실을 슬며시 둘러봅니다. 책장엔 문학, 철학, 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꽂혀 있는데요, 단연코 소설책이 가장 많이 눈에 띄네요. 작가님이 읽은 책들에는 어떤 메모가 적혀 있을지 정말 궁금한 거 있죠. 하지만 그림자가 제멋대로 움직이면 곤란할 것 같아 이리저리 눈동자만 굴립니다. 또 다른 책장에는 손때 묻은 공책이 가지런히 쌓여 있는데 마치 오래된 책을 보는 듯합니다. 다시 한번 펼쳐 보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누릅니다. 블라인드가 쳐진 쪽창 아래엔 통기타와 전기 기타가 세워져 있고요, 통창을 가린 광목 커튼에는 아기자기한 엽서가 붙어 있는데 제가 좋아하는 작가님 소설의 표지 엽서도 보이네요. 그 옆 나무 선반에는 여러 색깔의 도미노를 쌓아 놓은 듯한 일고여덟 개의 키보드가 진열되어 있습니다. 접대용 탁자 위에는 매끄럽게 깎아 놓은 한 다스 분량의 연필이 필통에 꽂혀 있고, 머그잔에는 알록달록한 사탕이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어쩌면 소설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연구실에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을 때 그 사탕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땝니다. 타닥타닥. 작가님이 책상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립니다. 사실 제가 가장 기다렸던 순간인데요. 키보드를 두드리는 작가님의 손을 카메라에 꼭 담고 싶었거든요. 우리가 좋아하는 수많은 소설을 쓴 그 손을 말이죠.
작성일 2025-11-01 작성자 관리자 댓글수 0상세보기 -
기획 한영원 - 파고파고 한영원 그날, 은선 씨가 나를 데리러 와 주었다. 은선 씨와의 첫 만남이었다. 나는 빨간 잠바를 입고 갔는데 은선 씨 역시 빨간 카디건을 입고 있었기에 차에 타면서 멋쩍게 조금 웃었다. 은선 씨는 내게 음악 하는 A와 만난 적이 있냐고 물었고 난 그렇다고 대답했다. 은선 씨가 자신이 그와 친구라고 대답해서 나는 어쩐지 그 둘이 비슷하다고 느꼈다. 조근조근한 어조와 노래를 부를 때 예쁠 것이 분명한 음색이 비슷하다고. 나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처음 들을 때 그가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마음대로 상상해 버린다. 그리고 잘 부를 것 같은 목소리를 짐작하고 그러한 짐작은 대부분 잘 맞는다. 차는 영종도로 들어가고 있었고 공항 가는 목적이 아닌 영종도 놀러 가는 일은 꽤 오랜만이라 생각했다. 은선 씨가 내게 말했다. 바다를 좋아해서 자주 가요. 아, 저도요. 그렇게 대꾸했다. 나는 바다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인천에서 태어나서인지 내가 여태껏 본 바다는 그렇게 아름답지 않다. 차는 영종도 안에 작은 섬인 무의도로 향하고 있었다. 오늘 해루질을 하러 가나요? 내가 묻자 은선 씨는 첫 만남에 해루질을 좀 그렇지 않겠느냐고 했다. 나는 그것도 꽤 시인 같고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시인을 관찰하러 간다니 나의 소설가 친구는 그 이야기를 듣고 아, 멋있을 것 같아. 비 오는 해변을 마구 걸을 것만 같고···, 라고 말한 적 있다. 나는 당신에게 시인이란 그런 이미지냐고 물으려다 그냥 관두었다. 물론 나는 시인이 되기에 조금 모자란 것만 같지만 은선 씨는 정말로 시인이다. 시집을 몇 권이나 냈고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시인. 은선 씨는 내게 오늘의 계획을 말해 주었다. 일단 엄청나게 맛있는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고 카페에 갈 거예요. 그리고 갯벌을 좀 걸을 것이고요. 갯벌은 모래펄이라 부드럽고 더럽지도 않아요. 은선 씨의 계획은 멋져 보였다. 나는 어떤 것이든 좋다고 말했고 근사한 하루가 될 것만 같았다. 더 섬의 안쪽으로 몇십 분 들어간 뒤 우리는 곧이어 무의도에 있는 한 식당의 주차장에 내렸다. 나는 내리며 언뜻 식당 불이 꺼져 있는 것을 보았다. 어떤 사람들이 들어가길래 영업을 하나 보다 했으나 들어가자 아니나 다를까였다. 들어간 사람들과 우리는 불이 꺼진 식당 안에서 화요일은 영업을 안 한다는 문구를 보곤 헛웃음을 지었다. 식당에서 나오며 은선 씨는 그럴 줄 알고 다른 식당 두어 군데를 더 찾아 놓았다고 했다. 우리는 다시 차에 탔다. 은선 씨는 내게 식당에 가면 메뉴를 많이 주문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는 다 먹지도 못하면서 음식 욕심은 많아요. 나도 조금 그런 편이라 답하고 우리는 깔깔 웃었다. 그러나 은선 씨가 두 번째로 찾은 식당 역시 닫혀 있었다. 은선 씨는 당황해하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냐고 했다. 나는 아까 지나가다가 보인 그 쌈밥집에 들어가자고 했다. 은선 씨가 고개를 끄덕
작성일 2025-11-01 작성자 관리자 댓글수 0상세보기 -
기획 임국영 - 믹스테이프 원더월믹스테이프 원더월 임국영 #1 인투로 (이승윤) 무대 위에 록 밴드가 서 있었다. 조명이 드리운 실내 공연장은 마치 화마가 뒤덮은 것처럼 새빨갰다. 땅속 깊은 곳에서 길어온 듯한 베이스 기타 소리가 인트로 라인을 열었다. 긴장감이 고조되자 보컬이 관객에게 정중히 알렸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주십쇼.” 보컬이 말을 끝맺자 일렉트릭 기타 두 대와 드럼이 달궈진 무쇠를 망치가 내려치는 듯한 굉음을 내뿜었다. 관중은 음악에 맞춰 고개나 손을 흔들고 환호성을 쏟아 냈다. 리듬을 따라 움직이던 나는 잠깐 내가 어디에 있는지 잊어버렸다. 연주 파트가 끝이 날 즈음 고개를 들자 코앞에 마이크가 놓여 있었다. 어? 이게 왜 내 앞에? 의문이 가시기 전에 나는 그간 매일같이 불러서 입술 끝에 달라붙은 가사를 발음하기 시작했다. 1절 후렴을 끝내고 나서야 온전한 기억을 되찾았다. 맞다. 내가 보컬이었지. #2 나는 왜 (못) “록 얘기 좀 그만 쓰면 안 돼요?” 코로나 시대에 접어들기 직전 어느 술자리에서 누군가 내게 말했다. 그 사람 말고도 직간접적으로 비슷한 조언을 했던 이들이 더러 있었지만 유난히 진지한 그의 태도에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의 논지는 다음과 같았다. 요즘 같은 시대에 록 같은 걸 누가 듣겠는가? 당신이 어떤 음악을 듣고 좋아하는지 아무도 관심 없다. 주구장창 똑같은 이야기만 하면 질리지도 않는가? 그날 술자리를 마치고 나서도 한동안은 그의 말에 사로잡혀 지냈다. 저기요 선생님, 내가 쓰고 싶은 거 쓰겠다는데 님이 뭐 어쩔 건데요, 하는 반발심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으레 애주가가 적은 글에는 술이 등장하고 흡연가가 쓴 소설에는 담배 피우는 장면이 삽입되기 마련 아닌가. 작가에게 친숙한 소재가 작품에 반영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라는 항변을 스스로 되새겼지만 어쩐지 뒷맛이 개운하지 않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음미해 볼 만한 화두임은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왜 소설을 쓸 때 늘 음악을, 특히 록을 소재로 삼는가. 어째서 한 번도 이 현상에 관해 의구심을 갖거나 깊이 성찰해 본 일이 없었을까? 나에게 록이란 무엇인가? #3 난 알아요 (서태지와 아이들) 당신 기억 속에서 가장 오래된 음악은 무엇인가? 라디오, 오디오 플레이어, TV와 컴퓨터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대중가요거나 부모님이나 유치원 선생님이 알려 주신 동요인가? 나의 경우는 카세트 플레이어에서 재생된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곡 〈난 알아요〉였다. 힙합 장르를 베이스로 한 댄스 팝에 메탈 요소가 가미된, 네 살 남짓한 꼬마한텐 여러모로 자극적인 노래였다. 얼마나 자극적이었냐면 노래를 듣는 순간 트랜스 상태에 빠진 샤먼처럼 눈이 뒤집혀서 별안간 춤을 췄을 정도였다. 이 소리는 도대체 무엇이기에 내 감정을 멋대로 조종하는 것인가! 나는 아직 만나 보지 못한, 얼굴도 모르는 이와 마치 하나가 된 듯한 감각에 빠져들었다. 이 곡을 듣고 있을 누군가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작성일 2025-10-01 작성자 관리자 댓글수 0상세보기 -
기획 이훤 - 대나무 숲을 서성이는 고양이, 그리고 토마토대나무 숲을 서성이는 고양이, 그리고 토마토 이훤 이번 여름 나는 지독한 갈증에 시달렸다. 하루 몇 컵씩 물을 마셔도 몸이 아우성쳤다. 더 많이 필요하다고 외치는 것 같았다. 이상할 정도로 몸이 약해졌다. 어쩌면 너무 많은 마음을 쫓느라 그랬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곤란해졌다. 물을 너무 많이 마시면 소화가 안 되고 소화가 안 되면 자연히 몸에 수분이 부족해졌다. 하여 또다시 갈증으로 이어졌다. 나는 이 일련의 과정이 내가 평소 불안과 맺고 있는 관계와 비슷하다는 생각했다. 잘 지내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위태로워지곤 하는데, 무엇이 먼저였는지 모르겠다. 이미 내가 불안한 사람이었는지, 불안은 어디든 자라므로 그가 날 알아볼 수밖에 없었던 건지. 불안한 자는 취약해진다. 취약한 자는 더 불안해진다. 어떤 세계는 정확한 수순을 모른 채 이어진다. 불안과 느슨하게 잘 지낼 방법을 찾고 있다. 어차피 여기 오래 상주할 것 같다. 불화해 왔지만 같이 살아야 한다면 그를 반려해 버리겠다. 그런 각오로 방 한편에 앉혀 놓고 달래도 보고, 듣기도 하고, 어깨 위에 데리고 다니며 삼십여 년간 함께의 방식을 찾고 있다. 불안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이유 없는 불안. 이유 있는 불안. 타인에게 건네받은 불안. 나의 말과 행동을 놓아주지 못해 자초하는 불안 등 모습을 달리한다. 불안은 상상하기 어렵고 형체 없어서 익숙하거나 귀여운 물성을 입혀 본다. 이름을 붙여 본다. 그러면 조금 더 친해진 것 같고‧‧‧ 어떤 식으로든 조화하는 듯 느껴진다. 이유 없는 불안은 증식을 멈추지 않는 대나무와 닮았다. 키우는 화분이 시름시름 앓는 여름에도 대나무는 쑥쑥 자란다. 땡볕을 견디며 성인 정강이만큼 큰다. 대나무 유형의 불안은 빠르게 자라고 빠르게 퍼진다. 들춰 보면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출구를 모르는 숲에 터를 잡은 박새처럼, 나는 대나무 사이를 서성인다. 온갖 나무가 거기 자라고 있다. 내가 쓰이지 않을 거라는 기우. 종이책이 점점 덜 팔리고 희귀해져서 작가란 직군이 줄어들고 사진가마저 AI에게 대체될지도 모른다는 염려. 그리고 미래를 향한 온갖 크고 작은 걱정이 모두 여기 속한다. 근거 없이도 그들은 자란다. 잘 살고 싶어서 한 번씩 낫을 들고 그 앞에 선다. 뿌리부터 베기 시작한다. 어떤 날은 숲 전체를 뽑고 싶지만 참는다. 어차피 다시 자랄 것이다. 솎아 내면서 나무들을 한 그루씩 배우고 기록한다. 마음이 기우는 방식을 배운다. 박새가 계절의 풍향을 배우듯. 한편 실체 있는 불안은 재빨리 손을 빠져나간다. 마음을 더디게 알아차리는 사람은 언제나 늦다. 하루가 지나서야 알게 되기도 한다. 직업 때문에 생겨나는 불안도 있다. 작가들은 신간이 나왔을 때 책의 추이를 살핀다. 3년간 쓴 책이 세 달도 안 돼 잊히기도 한다. 중요한 행사에 모객이 잘되지 않을까 봐 마음 쓰기도 한다. 숫자보다는 거기서 일어나는 만남이 언제나 중요하지 않겠냐고 친구에게 말하고, 나도 가끔 돌아서서 북토크 예매 상황을 살핀다. 언제든 작가로서의 생활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작성일 2025-10-01 작성자 관리자 댓글수 0상세보기 -
기획 정다연 - 나의 반려 시나의 반려 시 정다연 어린아이였을 때 나는 자주 빈집에 있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맞벌이하셨던 부모님이 퇴근하실 때까지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무료하게 창밖을 구경하거나 거실 소파에 누워 천장을 보다가 엄마가 간편히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해 둔 음식을 데워 먹었다. 익숙하게 빈 그릇은 싱크대에 넣어 두고 티브이 켜 두고는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백색소음 삼아 일기를 쓰고 숙제를 했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으면 부모님 냄새가 밴 이불을 파고들며 낮잠을 잤다. 눈을 뜨면 여전히 아무 무늬 없는 흰 벽지가 사방으로 펼쳐졌다. 일상의 곳곳이 자주 비어 있었기 때문에 늘 무언가로 채우고 싶었던 걸까. 한동안은 무언가를 모으거나 기르는 데 열중하기도 했다. 첫 시작은 개미였다. 놀이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개미를 채집통에 담아 와 길러 보겠다고 떼를 썼다. 오후 내 그 안을 관찰하다가 어딘가에서 개미가 좋아한다고 들었던 과자 부스러기나 과일 껍질을 넣어 주기도 했다. 또 한동안은 머리끈에 달린 유리구슬만 모았던 적도 있었다. 간직하고 싶은 구슬을 모으기 위해 부모님 몰래 멀쩡한 끈을 가위로 자르기도 했다. 그 후로도 무언가를 애착하는 일은 계속됐다. 애니메이션 〈101마리의 달마시안 개〉에 푹 빠져 달마시안 인형을 수집하기도 했고, 조금 더 커서는 백문조를 기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이 내 마음의 구멍을 온전히 채워 주지는 않았다. 아무리 좋아하는 인형으로 방을 꾸미고 반려동물에게 말을 걸어도 그 구멍은 여전했다. 다른 방식으로도 삶을 채울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한 친구를 만나게 되면서였다. 그 친구는 나와 이름이 한 글자만 달랐다. 우리는 그게 친해질 이유라도 된다는 듯이 매일 같이 붙어 다녔다. 서로의 집 주변을 오고 가면서 누구와 친했고 멀어졌는지, 아무리 애써도 잘 고쳐지지 않는 습관은 무엇인지 이야기했다. 같은 보습 학원을 등록하고 친구가 학원에 가지 않으면 나 역시 가지 않았다. 하루는 공원 벤치에 앉아 어른이 되면 무얼 하고 싶은지에 대해 떠드는데, 친구가 맑은 얼굴로 고백하듯이 말했다. 나는 시를 쓰고 싶어. 시가 좋아. 친구가 좋아한다는 시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며칠 뒤 글쓰기 학원에 따라갔다. 그때 친구를 통해 알게 된 시는 그전에 배운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감정이나 대상에 대해 느낀 걸 있는 그대로 쓰면 되었다. 나와 친구가 쓰는 문장은 하나의 답으로 고정되지 않았다. 한 편의 작품을 읽고서도 감상과 해석이 달랐다. 그건 얼마든지 나의 시선으로 세상을 구부리고 펴서 말해도 된다는 걸, 고스란히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걸 의미했다. 또 하나 마음에 들었던 건 시가 그것을 읽는 이들까지 염두에 둔다는 거였다. 혼자만의 생각에 갇히는 대신 시 속에 타인이 오고 갈 수 있는 문을 내어 함께 생각을 나눌 수가 있었다. 읽고 쓴다는 감각이 가볍고 자유로웠다. 시라는 문을 통해 나의 안과 밖을 드나들 수 있다는 걸 그때 알게 됐다. 그 후로 나도 시를 배우기 시작했다. 전에는 깊이 생각해 본
작성일 2025-10-01 작성자 관리자 댓글수 0상세보기 -
기획 편혜영 - 무한히 증가하는 숫자의 방[문장웹진 REWIND] 무한히 증가하는 숫자의 방 -서유미 「검은 문」 (문장웹진 2012년 3월호 수록) 읽기 편혜영(소설가, 前 문장웹진 편집위원) 「검은 문」을 처음 읽을 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문’이자 ‘벽’에 관한 정보이다. ‘문에 손을 대지 않는다’를 규칙으로 가진 이곳은 소등 후에는 방 사람들이 돌아가며 출구 앞에서 불침번을 서는 규칙-그러고 보면 규칙이 많은 곳이다-을 가진 공간이기도 하다. 갇힌 사람들은 출구로 끌려 들어가면 죽는다는 두려움을 품고 있어서, 출구 밖에는 무엇이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품고 소설을 읽게 된다. 오랜 시간이 지나 이 소설을 다시 읽을 때도 이 생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문’보다는 ‘숫자’를 유심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한 방에서 수감 생활을 하는 세 사람, 211번, 123번, 99번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벽돌을 돌리며 의미 없이 ‘숫자’를 올리는 작업에 몰두하며 시간을 보낸다. 세 사람은 아침에 일어나면 진한 향을 풍기는 박하 맛 사탕을 습관처럼 먹으며 손잡이를 돌리고 숫자를 증가시키는 무의미한 노동에 열중하며 하루를 보낸다. 도대체 숫자만 끝없이 증가하는 벽돌의 손잡이 돌리는 노동은 왜 계속하는 걸까. 이 단순한 노동의 반복이 그들에게 즉각적인 대가를 건네주는 것은 아니다. 그저 ‘노동’은 좁고 무료한 공간에서 그들의 존재 의미를 형성하는 요소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더 큰 숫자를 얻고 싶다는 갈망이다. 세 사람은 하루 종일 손잡이를 돌리면서 존재의 의미를 찾고 마음의 평화를 회복한다. 원하는 숫자에 닿지 못하면 부족한 수만큼 불행해진다. 하지만 열심히 돌려도 원하는 숫자는 항상 앞서 있기 때문에, 아무리 손잡이를 돌려 대도 원하는 숫자를 따라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엇보다 간수의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자신이 그동안 쌓아놓은 숫자는 원점으로 돌아가고 만다. 이들은 끊임없이 손잡이를 돌리며 숫자가 올라가는 것을 확인하는데, 이는 단순히 시간을 소비하는 행위를 넘어서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한 중요한 행위가 된다. 다른 할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이 공간에서 숫자에 대한 집착이 갇힌 자들에게 삶의 ‘목표’가 되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 공간에서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성취는 조금이라도 높은 숫자를 획득하는 것뿐이다. 숫자가 올라가거나 목표한 숫자에 도달했다고 해서 갇힌 자들의 삶이 달라지거나 실질적인 변화가 야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맹목적으로 숫자를 올리는 일에 매달린다. 숫자는 그저 그들이 이곳에서 존재하게 만드는 규칙에 지나지 않음에도 그들은 이 규칙을 따라 무료하고 무의미한 체계에 질문을 던지지 않고 체계와 처지에 순응하며 살아간다. 이 소설에서 유일하게 폭력이 발생하는 부분도 이 지점과 관련되어 있다. 간수들은 숫자를 통해 세 사람의 행동을
작성일 2025-10-01 작성자 관리자 댓글수 0상세보기 -
기획 고봉준 - 삶은 곡선이다[문장웹진 REWIND] 삶은 곡선이다 -염승숙의 「곡선을 걷는 시간」(《문장 웹진》 2009년 8월호) 고봉준(문학평론가, 前 문장웹진 편집위원) 염승숙의 「곡선을 걷는 시간」은 ‘곡선’에 관한 이야기이다. 여기에서 ‘곡선’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선택한 단어이며, 이때의 ‘곡선’은 ‘직선’이 아닌 것, ‘직선’과는 다른 것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러므로 ‘곡선을 걷는 시간’이라는 제목은 이미-항상 대척점, 즉 ‘직선을 걷는 시간’을 전제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직선’과 ‘곡선’의 관계를 염두에 두고 이 소설을 읽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곡선을 걷는 시간」은 ‘곡선’의 의미를 해석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부러 그렇게 만들어진 경우를 제외하면, 세상 모든 휘어진 것들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라는 진술이 그것이다. 여기에서 휘어진 것이란 “노인의 굽은 등과 허리, 사춘기 아이의 비뚤어진 성격이나 오래된 연인들의 등 돌린 마음, 사고에 의해 부러진 뼈, 아주 추운 겨울날 주머니 안에서 곱아드는 손, 허리가 꺾인 붓의 단면 등”처럼 유무형의 곡선 형상을 모두 포함한다. 곡선에 대한 화자의 해석은 “부러 그렇게 만들어진 경우를 제외”하므로 결국 여기에서의 ‘곡선’은 원래는 곡선이 아니었던 것이 어떤 이유에 의해 휘어졌다는 의미이다. 화자는 “어쩌면 휘어진다는 건 ‘충격’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르겠다.”라는 진술처럼 그 이유를 정신적․물리적 ‘충격’에서 찾는다. 요컨대 화자에게 ‘곡선’이란 원래는 곡선이 아니었던 것이 정신적․물리적 충격을 받아 휘어진 것이며, 따라서 그것들은 이전 상태의 회복, 즉 “곧아지기 위해 일생을 견뎌야 하는 불행한 존재들”로 인식된다. 이 소설의 핵심적인 사건은 주인공이 “내 아버지의 집이며, 내 어머니가 마지막까지 붉게 웃다 떠난, 그런 공간”으로 돌아온 것, 즉 귀향(歸鄕)이다. 이때 ‘귀향’은 고향에 돌아왔다는 공간적․장소적 의미보다 ‘아버지’라는 존재를 긍정한다는 정신적 의미에 가깝다. 사춘기 시절의 ‘나’는 아버지에 대해 “이유 없는 분노”를 갖고 살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제아무리 팽개쳐도 부서지거나 깨어지지 않는 내 아버지란 사람에 대한, 결코 빠져나갈 수 없는 굴레 같은 것을 알아 버린, 사춘기 아이의 치기(稚氣) 같은 것.”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이유 없는 분노”는 아홉 살 무렵 엄마가 식도암으로
작성일 2025-09-01 작성자 관리자 댓글수 0상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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