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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작-
아동청소년문학 변선아 - 태몽 찾으러 왔어요
태몽 찾으러 왔어요 변선아 1. 태몽 때문이야 “4교시는 체육이니까, 수업 종 울리면 축구 골대 앞에 모여 있어요.” “네.” 3학년 1반 아이들은 신이 나서 운동장으로 나갔어요. 성운이는 힐끔 선생님을 봤지요. 성운이와 눈이 마주친 선생님이 활짝 웃었어요. 교실에 남으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요. ‘야호!’ 그제야 성운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을 나갔어요. 마음은 쌩하고 운동장으로 달려나갔지만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걸어갔죠. 성운이는 소아 천식을 앓고 있어요. 절대로 뛰면 안 돼요. 엄마는 새 학년이 될 때마다 담임선생님께 전화해서 성운이가 뛰지 않도록 부탁해요. 운동장에서 하는 수업이 있을 때는 성운이 혼자 교실에 남아 책을 읽게 해달라고 해요. 그래서 몸을 크게 움직이는 활동이 있는 수업에는 미리 선생님이 말했어요. “성운이는 교실에 남아 있을까?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어도 좋아.” 이뿐인가요? 급식으로 나온 아이스크림이나 초콜릿도 먹지 못해요. 천식에 좋지 않으니까요. 의사 선생님은 가끔씩 한두 번 먹는 건 괜찮다고 하지만, 엄마는 ‘절대 금지’라고 했어요. 어쨌든 지금, 선생님이 그냥 웃기만 했잖아요? 체육 수업에 참여해도 좋다는 말일 거예요. 그동안 교실에 혼자 남아서 책을 읽을 때 얼마나 속상했는지 몰라요. 오늘은 친구들하고 같이 운동할 거예요. 조심히 달리면 괜찮겠죠? 성운이에게 소원이 있다면 다른 친구들처럼 맘껏 뛰어보는 거예요. 쉬는 시간에 잡기 놀이도 하고 축구도 하고 싶어요. 수업 종이 울리고 아이들이 축구 골대 앞에 모였어요. 물론 성운이도 당당하게 서 있었죠. 곧 선생님이 와서 말했어요. “오늘은 축구를 할 거예요. 성운이는 벤치에 앉아 있을까?” “네? 저도 축구 할 건데요?” 성운이가 실망하며 말했어요. “안 돼. 성운이는 뛰면 안 되니까 친구들 수업하는 걸 지켜보자.” “휴.” 그럼 그렇지요. 성운이는 긴 한숨과 함께 어깨를 축 떨어뜨리며 벤치로 갔어요. “살살이 공성운, 넌 앉아서 공 차는 거나 구경해.” 민찬이가 성운이 뒤에 대고 소리치고는 혀를 쑥 내밀었어요. 성운이는 민찬이가 얄미웠지요. 민찬이는 2학년 때도 같은 반이었어요. ‘살살이’란 별명도 민찬이가 지어준 거예요. 천식 때문에 천천히, 조심스럽게 다니는 걸 놀리는 거죠. 민찬이와 아이들이 공을 굴리며 운동장을 뛰어다녀요. 그 모습을 보는 성운이 마음은 소금에 절인 배추 같아요. ‘나도 뛰고 싶다.’ 생각할수록 속상했어요. 왜 자기만 천식이 있어서 뛰지 못하는 건지 알 수 없었죠. 지루했던 체육 시간이 끝나고 점심시간이에요. 아이들은 배가 고프다면서 밥을 많이 먹었어요. 벤치에 가만히 앉아만 있던 성운이는
작성일 2023-11-10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264상세보기 -
아동청소년문학 히섶 - 「토끼 케이크」외 6편
토끼 케이크 히섶 웅크려 식빵 굽는 고양이처럼 발 모으고 빵 굽는 흰토끼 기다란 초 두 개 꽂힌 생크림 케이크 다가가 후우- 불면 안 돼 깡충깡충 달아날 테니. 청개구리와 손잡기 지독스레 말 안 듣는 청개구리 같은 동생에게 누나가 말한다. 우리 놀이터 가서 소꿉놀이할까? - 아니, 운동장 가서 공놀이할 거야. 그럼 공놀이하고 그네 타자! - 아니, 공놀이하고 시소 탈 건데? 그래, 그네 타지 말고 시소 타자. - 아니, 나 시소 안 타고 그네 탈래. 좋아! 그럼 운동장까지 각자 뛰어갈까? - 아니, 나는 누나 손잡고 걸어갈 거야! 청개구리와 손잡은 누나가 웃는다. 제2의 로봇태권V 개발 본부 볼트 발견! 너트 발견!(땅콩 말고) 볼펜 스프링 발견! 짝지가 버린 머리핀 발견! 찌그러진 냄비 발견! 태워 먹은 국자 발견! 낡은 기타 줄 발견! 부러진 안경테 발견! 열쇠 발견! 알전구 발견! 버려진 수도꼭지 발견! 텔레비전 안테나 발견! 수많은 부품들을 발견! 발견! 발견! 이제 조립만 하면, 세상을 구할 수 있겠지? 낯선 동네 코스모스 가는 이파리가 팔을 간질이는 좁은 길 낯선 이가 낯선 동네로 들어선다 쌀농사 짓는 메뚜기들이 폴폴 뛰며 마중한다 맞은편에서 저벅저벅 걸어오던 백발이 다 된 진돗개 한 마리 낯선 이를 보고 우뚝 멈춰 서는데 메뚜기들 황급히 논으로 달아나고 두꺼비 한 마리 길가로 나와 몸을 납작 엎드리는 걸 보고 낯선 이도 허리 숙여 인사한다. 혀가 쭉 나온 백구 어르신 왈, “왈 왈왈 왈왈!" 잠시 눈을 흘기더니 코를 켕 풀고 가던 길 가신다. 헝클어진 머리칼 자고 일어나 부스스한 헝클어진 머리를 보면 괜히 웃음이 나와 쓰다듬어 주고 싶지 아니, 정말은 더 마구 헝클고만 싶어 아마도 헝클어진 머리칼은 조금 더 헝클어져도 괜찮을 거야 머리칼 깊숙이 손을 넣어 마구 헝클여도 좋아할 거야 헝클어진 그대로 푸식 푸식 푸시시 웃고 말겠지 바보 같은 너의 헝클어진 머리칼은. 수다쟁이들 청각 장애를 가진 어른 넷이 모여 떠든다 수다 떠는 아이들보다 더 시끄럽게 떠든다 푸르락누르락하는 얼굴 들썩거리는 몸짓으로 이리저리 휘저어대는 손짓으로 떠든다 보기만 해도 왁자지껄 못 말리는 수다쟁이들이 소리 없이 떠든다 너무 시끄럽다. 얼음 차며 간다 집으로 가는 길 주먹만 한 얼음덩이 하나 골라 발로 차며 간다 집 앞까지 얼음을 몰고 가면 소원 하나 이루어지는 거다 단, 손을 쓰면 반칙! 발로 살살 차며 가는데 얼음은 잘도 미끄러진다 모서리가 깎이고 녹아 데구루루 잘도 굴러간다 얼음은 어느 집 마당으로 굴러가고 자동차 밑으로도 굴러간다 사나운 개집 앞으로도 굴러가고 얕은 웅덩이에 빠지기도 한다 나는 어느 집 마당을 들락거리고 자동차 밑으로 기어들고 개가 한눈팔 사이를 기다리고 흙탕물 웅덩이로 뛰어들고 만다 이제 거의 다 왔는데 저기 우리 집이 보이는데 톡, 톡, 톡, 툭-
작성일 2023-11-10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262상세보기 -
아동청소년문학 김미혜 - 「어떤 겨울밤」외 6편
어떤 겨울밤 김미혜 눈보라가 휘이잉 몰아치는 밤, 하얀 옷을 입은 눈 아이가 어깨에 소복 쌓인 눈을 털며 들어왔어. 가늘고 새하얀 손을 비비며 추워라, 추워라, 달달 떨었어. 이리 와 불을 쬐렴. 할아버지가 난로에 불을 켰어. 눈 아이 손이 흐물흐물 녹고 발목도 녹고 종아리도 녹았어. 스르르 무너져 내리는데 아, 따스해라, 따스해라 입은 녹지 않았네.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코코아를 내오던 할아버지는 그만 얼어 버렸어. 쨍그랑 찻잔이 깨져 버렸어. 할아버지는 얼른 난롯불을 껐어. 웃을락 말락 철창에서 빠져나온 흰둥이 요리 폴짝 조리 폴짝 배롱나무 뒤로 갈락 말락 잡힐락 말락 마당 밖으로 발을 디딜락 말락 숟가락 내던지며 달려 나와 저놈 좀 잡아라, 할아버지가 소리치면 잡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나한테 오지 마, 제발, 제발, 흰둥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도 가, 멀리 가 어둑어둑 붉어지는 논둑을 가로질러 갑니다 흰둥이가 멀어집니다 개와 늑대 사이를 달립니다 울락 말락 웃을락 말락 밤이 옵니다 족제비 일기 기름진 고기 냄새가 닭장 밖으로 빠져나가는 길을 막아요. 삼겹살 한 점이 끌어당겨요. 철커덕 철창문이 닫혀요. 오르락내리락 두리번두리번 탈출구는 어디에도 없어요. 힘이 풀려요. 잠잠해지기로 해요. 가만히 기다리면 비상구가 나타날 거예요. 어쩌나, 날이 밝아 오는데 아무 데도 뚫리지 않아요. 닭장 문이 열려요. 할아버지가 덫 안에 든 나를 안아요. 바르르 떨고 있는 나를 자동차에 태워요. 망할 놈의 족제비, 다시 잡히면 안 놔 준다, 욕하며 겁주며 구박하며 풀어 주러 간대요. 잡히기만 해 봐라, 닭이 죽어 나갈 때마다 잡히기만 해 봐라 잔뜩 벼르더니, 구불구불 강 건너 멀리 놓아 주러 간대요. 큼큼, 냄새를 맡아요. 메모를 해 둬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잃어서는 안 되거든요. 여우양말꽃이 피었습니다 여우 양말을 알록달록 걸어 놓았으니 여우가 오겠지요? 오늘 밤에는 분홍 양말 흰 양말 맘에 드는 양말 골라 신고 발소리 숨기고 신나게 놀다 가겠지요? 양말이 시들기 전에 오겠지요? 우리 집 꽃밭에는 여우양말꽃이 여러 켤레 활짝 피었답니다 민들레 걱정 민들레를 피하려다 개똥을 밟았다 “야, 개똥을 왜 밟아?” “그럼 민들레를 밟아요?” 시 선생님이랑 꽃 보러 가면 내가 아닌 것 같다 개꿈 어둠 속에 툭 던져 놓고 쌔앵 달아나는 자동차를 쫓아가요 “멈춰요! 잊은 게 있어요!” 달려가던 자동차가 지쳐 헉헉거려요 이때다, 가속페달을 밟아요 두 발로 서서 앞을 가로막아요 창문 너머로 뺨을 핥으며 인사해요 “그냥 헤어지는 게 어디 있어요.” 나는 꼬리를 흔들며 보내 줘요 “안녕!” 앗, 이건 꿈이야 깨면 안 돼 나는 꿈속에서도 꿈꾸고 있다는 걸 알아요 어서 자, 계속 자 번개처럼 꿈속으로 돌아가야 해요
작성일 2023-11-10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284상세보기 -
아동청소년문학 손인선 - 「멧돼지를 부린 날」외 6편
멧돼지를 부린 날 손인선 고사리밭 한가운데 멧돼지가 내려와 파헤치고 뒹군 커다란 흔적이 남았어요 겁에 질린 고사리 파랗게 질려 고개를 푹 숙였겠지요 울타리 대나무도 파랗게 질려 사그락사그락 도움을 구했을 테고요 그중 용감한 고사리 씨앗 몇과 진드기에 몇은 멧돼지 등에 올라타고 산으로 갔겠지요 커다란 멧돼지가 바람처럼 달릴 때 햇볕 잘 드는 양지에 폴짝 뛰어내렸을 테지요 죽다 살아났다고 바싹 올라붙은 가슴을 쓸어내렸겠지요 친구들에겐 야생 멧돼지를 부리며 왔다고 허풍 조금 보태서 자랑삼아 말했겠지요 붓 붓 전시관에서 붓 구경해요 말 갈퀴로 만든 커다란 붓 지금이라도 겅중겅중 뛸 것 같아요 붓에 달린 길고 풍성한 말 갈퀴 풀밭 달릴 때를 기억하는지 살짝살짝 날리고 있어요 갈퀴만 남았어도 달리고 싶은 맘은 똑같은가 봐요 서예가 선생님이 붓에 먹물을 쿡, 찍자마자 커다란 종이 위를 단번에 쓱, 내달리더라고요 말풍선 카톡, 카톡 하며 카톡이 물어다 놓은 말풍선 뭐가 들었나 궁금해 콕, 찔러 보면 펑! 펑! 펑! 글자를 우르르 쏟아 내며 위로 떠오르는 말풍선 말풍선에 매달아 놓은 풍선줄 1도 순식간에 날아간다 한 수 위 갈아 놓은 콩으로 콩국을 끓이는데 후루룩 금세 냄비 밖으로 넘쳐 버리는 콩물 콩물은 콩으로 굴러다닐 때보다 성질이 더 급해졌는지 뜨거운 냄비도 순식간에 넘는다 김칫국 산밭 주인이 도라지 씨앗을 뿌리고 간 날 멧돼지는 좋아하는 고구마 올해도 심었을 거라고 좋아서 돌아다니고 고라니는 작년에 망친 고구마 대신 올해는 콩 심었을 거라고 연한 콩잎 생각에 기분이 들떠 겅중겅중 뛰고 두더지는 주인이 바본 줄 아냐며 고구마는 멧돼지가, 콩잎은 고라니가 쓸어 가는데 올해 또 심었겠냐면서 올해는 틀림없이 땅콩일 거라고 두두두두 신나서 땅속을 파헤치며 돌아다닌다 개구리는 붕어 편 놀이터가 따로 없는 시골 할아버지가 다랑논 파서 만든 붕어 낚시 놀이터 놀이터에 낚싯대 드리우고 앉아 숨죽이고 있는데 한나절 지나도록 찌가 그대로 반짝이는 낚싯바늘 조심하라고 지렁이도, 떡밥도 못 본 척하라고 붕어한테 고자질하는 개구리만 퐁당퐁당 초보 낚시꾼 훼방 놓는 개구리만 퐁당퐁당 마지막 찬스 할머니 성당 다니는데 농사일도 바쁜데 성당에 나간다고 뭐라시던 할아버지 병원 침대에 누워 대세*를 받으셨습니다 일요일마다 할머니가 만나러 간 하느님 아버지가 누군지 할아버지도 궁금하셨나 봅니다 하늘나라 가기 전 하느님 아버지를 뵐 마지막 찬스를 쓰셨습니다 * 대세: 사제를 대신하여 , 세례를 베푸는 일
작성일 2023-11-10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224상세보기 -
아동청소년문학 김두경 - 전설의 이야기꾼
전설의 이야기꾼 김두경 1) 까만 머리빗 장터 씨름판에 사람들이 북적북적하다. 몽돌이는 사람들 무리에서 한 걸음 떨어져 멀뚱히 서 있었다. 어깨에 메고 있는 엿판이 갈수록 무겁게 느껴졌다. “엿이요, 엿! 달달한 엿 사시오······.” 힘껏 소리를 질러도 모자랄 판에 목소리가 점점 기어들어 갔다. “쯧쯧, 목청이 저게 뭐여? 병아리 새끼만도 못하구먼. 아, 그래 가지고 어디 엿 한 가락이나 제대로 팔겠누? 해가 두 번이나 바뀌었으면 얼굴에 철갑을 두르고도 남아야지. 저렇게 숫기가 없어서야, 원.” 옆집 고산댁 할머니가 몽돌이를 보고 혀를 끌끌 차며 지나갔다. 때마침 떠들썩한 함성이 들렸다. 한 사람은 모래판에 엎어졌고 또 한 사람은 두 팔을 번쩍 치켜들고 있었다. 몽돌이가 고시랑거리는 소리는 함성에 묻혀버렸다. “병아리 새끼가 어딨다고? 병아리가 새낀데. 할머니는 나보고 맨날 숫기 없대.” 몽돌이는 쑥 들어간 배를 꾹 눌렀다. 아침을 병아리 모이만큼 먹고 나서 여태 아무것도 못 먹었다. 빈속으로 일하는 게 하루 이틀 일은 아니지만 오늘은 유난히 배가 고팠다. 그때 누가 몽돌이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동네 꼬마들이 배시시 웃으며 쳐다보고 있었다. 깍지 낀 손을 턱밑에 받치고서 애원하는 표정으로 말이다. “형, 또 이야기해 줘.” “도깨비 이야기! 응?” 남의 속도 모르고 떼쓰는 꼬마들이 야속했지만 싫지는 않았다. 이야기를 떠올리는 순간만큼은 배고픔도, 걱정도 날아가기 때문이다. “좋아. 해 줄게.” “와! 신난다!” “음, 오늘은 어떤 이야기가 좋을까나.” 몽돌이는 입술을 감쳐물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머릿속에 그림이 화라락 펼쳐졌다. 눈동자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 딱 맞는 이야기를 찾아냈다. 꼬마들의 눈이 반짝반짝했다. “옛날 옛적 호랑이 줄무늬도 없던 시절에, 한 도깨비가 살았지. 자고로 도깨비란 빨간 머리카락이 나는 법. 시뻘건 머리카락의 도깨비가······.” 몽돌이의 이야기가 시작되자 꼬마들은 단번에 도깨비 세상으로 빠져들었다. 근처에 있던 몇몇 어른들도 귀를 기울였다. 고산댁 할머니가 멀찍이 걸어가며 중얼거렸다. “제 아비 닮아서 이야기는 곧잘 짓는구먼. 집 나갔던 숫기가 저럴 때만 돌아오니 참 희한하지. 에이구, 그럼 뭐하누? 사내 녀석이 힘아리 없이 입만 나불나불. 이야기는 지어서 어디다 써먹는다고. 돈이 나오나 떡이 나오나, 쯧쯧쯧.” 몽돌이의 이야기가 끝나자 아이들은 도깨비 세상에서 한바탕 놀고 온 것처럼 눈을 반들거리며 집으로 돌아갔다. 씨름판을 둘러쌌던 사람들도 하나둘 흩어졌다.
작성일 2023-11-08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572상세보기 -
아동청소년문학 포도 - 「비둘기 할머니」외 6편
비둘기 할머니 포도 허리가 둥그런 앞집 할머니가 뒷짐을 지고 천천히 걸어가신다 저렇게 느린 걸음으로 어떻게 하루에도 몇 번씩 경로당에 다녀오시는 걸까 혹시 사람들이 보지 않을 때 뒷짐을 풀어 포드득 포드득 날아다니는 건 아닐까 예쁘다고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손이 날개가 되어서 말이야 앞집 아저씨도 이미 알고 있나 봐 오늘도 대문 밖까지 나와서 고개를 주욱 내밀어 두 눈을 가늘게 만들고선 할머니를 계속 지켜봐 너무 멀리까지 날아가 버리지 않게 금세 비둘기로 변해 버리지 않게 가을 세차 복숭아 과즙 뚝뚝 흘려 놓고 간 여름 공기에 시원한 비 한바탕 뿌려 놓고 방금 꽉 짠 가을바람으로 깨끗이 닦았다 몬스터 몰아내기 몸 안에 거대한 몬스터가 들어와서 속을 답답하게 하면 엄마는 내 등을 쓸어내리면서 몬스터를 겁주기 시작한다 꺼-억 끄어-억 어깨부터 팔을 쓸어내리면서 꺼-억 끄어-억 평소에 듣지 못한 굵고 무서운 소리가 엄마한테서 뿜어져 나온다 꺼-어억 끄어-어-억 소리가 점점 커지면 제아무리 몬스터라도 겁을 먹고 구석으로 숨어들 수밖에 없지 이때다! 엄마가 엄지를 실로 칭칭 동여매고 바늘로 콕, 찌르자 붉고 둥근 몬스터 무덤이 불룩 솟아난다 나는 얼른 일어나 두 발을 쿵쿵 팔을 훠이 훠이 내두르며 다시는 오지 말라고 끄어억- 블루베리 먹을 땐 블루베리는 한 움큼 쥐어 들고 먹어야 블루베리 맛이 난다 하나씩 먹으면 어떤 건 달고 어떤 건 시고 어떤 건 물러서 싱거운데 한 움큼 가득 쥐고 먹으면 새콤달콤 블루베리 맛이 난다 하트 널 생각하다가 나도 모르게 그린 하트 연필로 그린 하트 까맣게 색칠한 하트 둥둥 노트 위로 떠오르는 하트 자꾸만 늘어나는 하트 시작과 끝이 만나는 하트 한쪽이 조금 더 부풀어서 삐뚜름해져도 그건 모두 하트 둥그런 심장 위에서 내가 방방 뛰는 바람에 그만 움푹 패고만 커다란 하트 쿵쿵, 내 발소리 간직한 쿵쾅쿵쾅 하트 베르 까망 베르 치즈 까망이와 치즈는 없고, 베르만 있다 처음 만났을 때 베르는 인사하면 초록색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뜨면서 높은 책장 위로 풀썩 올랐다 나는 까망이도 치즈도 돼 줄 수 없어서 베르의 초록 눈만 좇았다 베르의 초록 눈은 초록 물감으로는 그릴 수 없고 꼭 노랑과 파랑을 섞어 만들어야 한다 내가 속으로 까망, 한 다음 베르야, 말하고 베르, 와 야, 사이에 치즈를 속으로 또 말하는 것이 자꾸 미안하다 나랑 동생 사이, 꼭 그 사이에서 잠드는 걸 보면 너는 여전히 까망이와 치즈 사이에 있고 싶은 건지 물어보고 싶은데 초록 눈동자만 천천히 끔뻑, 그 안에 고개를 갸웃하는 내가 담겨 있다 귤 주머니에서 꺼내 내 손에 쥐여 준 것부터, 껍질을 깐 것부터, 먹기 좋게 한 알 한 알 떼어 낸 것부터, 얇은 막 속에 알갱이 하나하나까지, 꽁꽁 싸매고 챙겨 나온 마음까지.
작성일 2023-11-08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69상세보기 -
아동청소년문학 박소이 - 「콩탕국이 끓는 동안」외 6편
콩탕국이 끓는 동안 박소이 김치 썰어 놓았나 물이 끓는다꼬 얼러 날콩가루를 풀어 넣구 불 좀 줄그코 콩물이 푸르르 넘치기 전에 김치 넣었제 싱미*에 따라 김칫국물도 넣든동 순두부 매로 몽글몽글해지믄 찬물 휘 두르고 콩탕콩탕 끓어오르거등 불 끄구 할 것도 없는 걸 뭐 어렵다꼬 맨날 묻는동 몰따 콩탕국 끓일 때마다 외할머니 목소리 전화기로 들려오고 콩탕콩탕 끓인 국 국자로 뜨고 있는 엄마를 보며 식탁에 앉아 콩닥콩닥 기다리는 고소한 콩탕국 * 싱미 : 식미(食味). 입맛의 경상도 사투리. 뜨개질 심심한데 목도리나 떠 볼까 한 단 한 단 떠 올라가다 보니 폭이 너무 넓잖아 그럼, 가방으로 뜨지 뭐 뜨다 보니 쿨렁쿨렁 늘어져 가방은 안 되겠어 풀까 말까 그냥 떠 볼래 한 코 한 코 손 가는 대로 떴더니 오 좀 재밌는걸 눈사람에게 씌워 주면 멋질 모자가 될 줄이야 그림자 노란 금계국 줄지어 핀 길을 걷다가 발을 멈췄어 꽃 그림자를 처음 봤거든 꽃들이 제 그림자를 빤히 보고 있는 거야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아 한참 바라보다가 꽃 그림자를 보고 있는 내 그림자도 봤어 오래오래 그림자를 보았어 구름 학교 오늘 학생들이 정신을 쏙 빼놓았어 파도처럼 몰려다니다가 새털처럼 날아다니다가 운동장 가득 목화솜을 풀어 놓더니 갑자기 잔뜩 찌푸려 톡 건드리기만 해도 울 것 같더라고 아침엔 어디서 수만 마리 양 떼를 몰고 오더니 오후엔 물고기 비늘을 벗겨 놓아 비린내가 진동했지 마음이 붕 터 도무지 배울 생각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어 수업 시간에도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해 제일방앗간 은행나무 샛노랗게 물들어 멀리서도 한눈에 보여 방앗간 들마루에도 파지 싣고 가는 할아버지 손수레에도 노랑노랑 나비 떼가 내려앉았어 방앗간에 참깨를 맡겨 놓고 은행잎이 노랗게 덮인 가로수 길 엄마 손 잡고 걸었지 노란 은행잎이 엄마 머리에 떨어져 핀처럼 꽂혔어 참기름을 찾아서 집으로 오는 길 온통 노오래 긴 긴 겨울 참기름 냄새만 맡아도 제일방앗간 은행나무 떠오를 거야 구슬 램프 구슬 램프 안에 고래 한 마리 살고 있어 깜깜한 밤, 불을 켜면 작은 구슬에서 불빛이 새어 나와 내 방은 해가 지는 바다 같아 지난여름, 엄마와 함께 본 밤바다가 생각나 힘차게 바다를 누비는 고래 등에 얼른 올라탔어 엄마가 세상에서 젤 아름다운 곳이라고 했던 지중해 몰타 섬으로 가 엄마가 거기 있을 테니까 돌돌 핫도그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날 시장 안 분식점으로 가 “정우 왔구나!” 분식점 이모가 반겨 주는 말, 와락 안기고 싶지 반죽을 두텁게 돌돌 말아 튀겨준 핫도그 한 입 베어 물고 허기진 마음 빵빵하게 채우고 돌아오는 길 반짝! 골목 끝 불 켜진 내 방 아빠 오셨다!
작성일 2023-11-08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205상세보기 -
아동청소년문학 한은선 - 「물 만난 거북이」외 6편
물 만난 거북이 한은선 느림보 거북이가 물을 만나면 확 달라지는 거 봤니? 등딱지에서 다리를 꺼내 노처럼 저어 미끄러지듯 나아가지 이순신 장군이 만든 거북선처럼 드넓은 바다를 거침없이 누비지 땅에서는 걷고 바다에서는 헤엄치고 수륙 양용 장갑차지 뭐야 사레 요구르트를 마시다 삼키는 박자가 어긋나면서 사레가 들렸다 달콤하고 새콤하면서 시원한 맛을 기대했는데 찌르는 맛 쏘는 맛 따가운 맛이 뒤엉켜 켁켁, 기침을 뿜어 댔다 마신 건 요구르트인데 고추 식초 후추 듬뿍 섞은 무서운 맛이 났다 횡단보도 연주회 신호등에 초록 옷 입은 신사가 나타나면 저벅저벅 또각또각 콩콩 지익직 지익직 콩콩 또각또각 저벅저벅 이쪽에서 저쪽으로 저쪽에서 이쪽으로 신발들이 흰건반 검은건반 눌러 합주를 시작해요 초록 옷 입은 신사 남은 연주 시간까지 알려 주며 팔다리 저어 열심히 지휘해요 자동차 학교 거침없이 욕하는 선생님 구수한 사투리를 쓰는 선생님 귀여운 어린이 선생님도 있어요 학생들이 허락도 받지 않고 마음대로 화장실에 가거나 호두과자를 사 와도 꾸짖지 않아요 자동차 학교 내비게이션 선생님은요 고드름 바코드 띡! 조르르 매달린 처마 끝 고드름에 스캐너 가져다 대면 지붕 위에 쌓인 눈 언제 내렸는지 얼마나 남았는지 새 발자국, 고양이 발자국은 몇 개나 찍혔는지 알 수 있을까? 귤 한 마리 껍질을 꽃잎처럼 펼쳐 한 조각 두 조각 다 떼어 먹고 나니 불가사리 한 마리 떡하니 누워 있네 이팝나무 고슬고슬 흰쌀밥 지어 한 상 노릇노릇 누룽지 긁어 한 상 해마다 봄이면 밥상을 두 번 차린다 하늘밥상 땅밥상 푸지게 차리는 동안 봄이 왔다 간다
작성일 2023-11-08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86상세보기 -
아동청소년문학 김두를빛 - 벽을 타는 생쥐
벽을 타는 생쥐 김두를빛 1. 첫눈 목련아파트 202동 지하에 사는 생쥐 부부의 열세 번째 아들 쥐가 탐험가를 만난 건 그날 내린 첫눈 때문이었다. 굵고 탐스러운 눈송이가 소복소복 내리는 것을 본 열세 번째 아들 쥐의 마음은 어느 때보다 설렜다. 며칠 전에 아빠가 눈이라고 했던 진눈깨비는 이름만 ‘눈’일뿐 비에 가까웠다. 그러니까 제대로 된 눈을 본 건 그날이 처음인 셈이었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았다. 사뿐히 내리는 눈도, 빠르게 내리는 눈도, 건들거리며 내리는 눈도 그 움직임은 우아하기 그지없었다. 열세 번째 아들 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가족들이 밥을 먹는지 죽을 먹는지도 모른 채, 창문 너머의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눈을 밟으면 어떤 기분일까?” “차가워.” 열세 번째 아들 쥐의 혼잣말에 아빠 쥐가 냉큼 대답했다. “얼마만큼요?” 이번에는 엄마 쥐가 말했다. “앗, 차거! 하면서 폴짝 뛰고 싶을 만큼.” “허허, 그만큼은 아니지.” “당신 발은 어른 발이니까 그렇지.” 아빠 쥐한테 눈을 흘기던 엄마 쥐가 슬쩍 열세 번째 아들 쥐의 마음을 떠보았다. “왜 밟아 보고 싶어?” 네, 하고 대답하기도 전에 아빠 쥐가 말을 가로챘다. “안 되는 거 알지? 어린 쥐한테 바깥은 위험해. 아빠 엄마도 밤이 돼서야 나가잖아.” 열세 번째 아들 쥐는 자식들 중에서도 유난히 호기심이 많았다. 꼼지락거리며 놀고 있는 다른 자식들과는 달리, 하루 종일 창가에 매달려서 밖을 보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하여튼 골치 덩어리라니까, 아빠 쥐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우리 열세 번째 아들 쥐는 똑똑해서 잘 알 거야. 그치?” 아빠 쥐는 엄마 쥐를 향해 찡긋 눈짓을 하며 웃어 보였다. 하지만 곧, 어제 밤에 우리는 왜 하나같이 바보 같은 애들만 낳았을까, 하면서 부부싸움을 했던 일이 떠올라 얼른 입을 다물었다. 엄마 쥐가 그런 아빠 쥐의 속내를 다 안다는 듯이 아빠 옆구리를 발로 쿡 찌르며 말했다. “한 입으로 두 말 하시네.” “그러니까 자식 교육 좀 잘 시키라고. 쓸데없는 호기심 따위는 아예 갖지 못하게… 응?” 엄마 쥐가 입을 삐죽이더니 목소리를 높였다. “모두 모여라. 낮잠 잘 시간이다.” 그러자 첫째부터 막내까지, 흩어져 놀고 있던 새끼 쥐들이 엄마 쥐를 향해 모여들었다. 그리고 어떻게든 엄마 품을 차지하려고 끼어드느라 잠자리를 정하는 데 한참이나 걸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열세 번째 아들 쥐는 이미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아들 쥐는 앗, 차거! 하면서 눈밭을 폴짝폴짝 뛰어다니고, 차들이 스르륵 지
작성일 2023-11-03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233상세보기 -
아동청소년문학 박채현 - 먼지 요일
먼지 요일 박채현 등굣길이 한산했다. 희뿌연 공기가 켜켜이 하늘을 메우고 있었다. 희끄무레한 빛이 해가 어디 있는지 대충 알려주었다. 인도에는 먼지 먹는 로봇들이 오갔다. 빌딩 꼭대기마다 물을 뿜는 기계가 가짜 비를 뿌려댔다. “어? 민준이다. 이민준!” 찬이는 반가운 마음에 소리쳤다. 앞서 걷던 아이가 어정쩡하게 뒤돌아봤다. 텅 비었다. 눈이 멍했다. “아, 아니야. 그냥 가.” 찬이는 아이보다 더 빨리 걸었다. 저만치 다솔이가 보였다. 한 가닥으로 올려 묶은 머리가 걸을 때마다 가방에 부딪혀 찰랑거렸다. 찬이는 냅다 달렸다. “얍, 한다솔!” 놀랄 만한데, 평소 다솔이 같으면 까무러치듯 소리를 질렀을 텐데, 아이는 시큰둥하게 고개를 돌렸다. 이번에도 텅 비었다. “미, 미안.” 찬이는 느릿느릿 교문을 통과했다. 운동장 가득한 안개를 가르며 두리번거렸다. 역시 운동장에 노는 아이는 없었다. “초미세먼지 경보가 발령 중입니다. 운동장에서 활동을 금지합니다. 교실에서는 창문을 모두 닫고, 공기청정기를 돌려주세요.” 방송이 여러 번 나왔다. 창문을 꽁꽁 닫았다. 교실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찬이는 교탁 앞에 서서 아이들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까불이 안경진 대신 근엄한 안경진이 앉아 있었다. 근엄한 안경진은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방귀를 뀌거나 코딱지를 파는 일 따위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 근엄한 안경진이 컴퓨터 자판을 가만가만 눌렀다. 왈가닥 한다솔 대신 한겨울 바람처럼 냉랭한 한다솔이 앉아 있었다. 냉랭한 한다솔은 복도를 와다다 달리거나 웃음을 참지 못해 물을 뿜는 일 따위는 절대, 절대 하지 않는다. 냉랭한 한다솔이 필통정리를 살금살금 하고 있었다. 민준이도 없고, 신비도 가람이도 모두 오늘은 복제 로봇을 학교에 보냈다. 로봇들은 제 주인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울거나 웃지 않았다. 눈빛이 반짝거리지도 않았다. 눈 속에는 눈동자처럼 둥근 카메라가 있을 뿐이었다. 학교에 직접 온 아이는 다경이와 우주, 찬이 셋뿐이었다. 다경이와 우주는 평소에도 교실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아이들이다. 오늘처럼 복제 로봇이 학교에 대신 오는 날엔 더더욱 숨소리조차 낮게 쉬는 아이가 바로 다경이와 우주다. 찬이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생각만 해도 답답했다. 찬이는 가슴을 쿵쿵 치다가 동그란 콧구멍을 벌름거렸다. “자, 보자. 모두 얼굴 들어볼까?” 선생님 말씀에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얼굴을 하나하나 살피던 선생님이 수첩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대신 온 로봇들은 컴퓨터에 출석 체크 잊지 말고.” 아이들 얼굴을 하나하나 뜯어보던 선생님이 입술을 삐죽이 내밀었다. “찬이, 다경이, 우주. 오늘은 셋뿐이네? 너희들도 어서 복제 로봇을 가져야 할 텐데.&rdquo
작성일 2023-11-03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197상세보기 -
아동청소년문학 박채현 - 홍의 소녀
홍의 소녀 박채현 둥둥! 둥둥! 둥둥! 북이 울렸다. 온 마을을 깨운 북소리는 세간마을의 끝 집 은봉이네까지 들렸다. “어매요, 빨리, 빨리 오이소.” 곽재우 장군과 의병들이 정암진으로 떠난 지 이틀 만이었다. “우리 의병이 왜군을 섬멸했다는 소식이오.” 깃발을 앞세우고 의병들이 줄지어 마을로 들어왔다. 옷은 흙투성이에다가 몸은 지쳤건만 의병들의 표정은 밝았다. “장군님 만세! 의병 만세!” 한바탕 잔치가 벌어졌다. 곡주를 들이켠 은봉 아비가 입을 열었다. “왜놈들이 마른 길에 푯말을 꽂아 둔 거라. 장군님이 그 푯말을 늪으로 옮기라 했거든. 우리는 언덕 위에서 숨어서 지켜봤지. 왜놈들이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장군님의 신호가 떨어진 거라. 와아! 달려들어 왜놈들을 전멸시켰다, 아이가. 허허허.” “아부지, 참말로 신납니더.” 은봉이가 부추기자 아비의 목소리가 더 높아졌다. “왜놈들은 우리 장군님 붉은 옷깃만 봐도 오줌을 지릴 거라. 어찌나 날렵한지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니까. 그놈들 혼이 빠지지. 내 같은 무지렁이도 장군님 아래에서 한 몫을 단단히 할 수 있더라.” 아비의 무용담에 밤 깊은 줄 몰랐다. 잠자리에 누워 은봉 어미가 한숨을 쉬었다. “이 사람, 구들 꺼지겠네.” “은봉이 말입니더. 가시나가 얌전하게 살림이나 배울 것이지, 동네 머스마들 이끌고 돌팔매 싸움이나 하고 걱정입니더. 오늘 낮에도 응도의 이마를 깨 놓았습니더. 은봉이 불러서 한마디 하이소.” “그랬나? 우리 은봉이 이길 알라가 있나? 여식아라도 우리 은봉이는 장군감이제. 허허허.” “아이구, 말을 말아야지.” 은봉 아비는 싱글거리며 잠이 들었다. 둥둥! 두둥둥! 둥둥! 두둥둥! 이른 새벽, 은봉이는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은봉 아배요, 몸조심 하이소.” 북소리를 등지고 의병들이 떠났다. 마을 사람들은 의병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아들을 보낸 함양댁 할매는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은봉아, 오늘따라 마음이 이상하다.” 은봉 어미도 느티나무 아래에서 발을 떼지 못했다. 은봉 어미는 깨끗한 물 한 사발을 장독대에 올렸다. 별빛 아래 무릎을 꿇어앉아 새벽까지 두 손을 모았다. “천지신명께 비나이다. 비나이다….” 남강에서도 의병이 승리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음식을 준비했다. “임금님이 궁궐을 버리고 달아났단다.” “그러면 우리들은 어떡하라고!” “누가 우리를 지켜주겠나.” “오늘같이 좋을 날 무슨 걱정이고? 장군님과 의병이 왜놈을 물리쳤다는 소리
작성일 2023-11-03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240상세보기 -
아동청소년문학 전병호 - 「둑길」외 6편
둑길 전병호 며칠 전에 시멘트 포장한 둑길 맨 먼저 고라니 발자국이 찍혔다. 고라니도 다니는 길이라고 알려 줬다. 창 밖의 나비 도화지에 나비를 그리는데 형아. 나비다! 갑자기 동생이 소리쳤다 어디에서 날아왔을까? 창밖에 팔랑팔랑 날아가는 봄 나비. 내가 그리는 나비도 도화지 밖으로 날아가려고 날개를 편다. 가족 사자가 나타났다! 엄마 아빠 코끼리가 아기 코끼리를 둘러쌌다. 삼촌 코끼리, 고모 코끼리는 바깥에 둘러섰다. 쁘아앙~ 아빠 코끼리가 큰소리로 외치자 코끼리 가족이 한 몸 되어 걸어간다. 뿌리 아빠가 웃자란 제라늄 곁가지를 뭉턱 잘라 냈다. 다다음 날 버려진 가지에서 꽃이 피어났다. 끝내 포기할 수 없는 꿈 마지막 힘 모아 피워 낸 것일까. 엄마가 꽃 핀 가지를 추려 꽃병에 꽂으면서 말했다. “뿌리가 내리면 화분에 옮겨 심어야겠다.” 노랑어리연꽃 학교 끝나고 돌아오다가 걸음을 멈췄다 아파트 연못에 노랑어리연꽃 아침엔 꽃봉오리였는데 오후엔 활짝 피었다. 학교에 있는 시간은 노랑어리연꽃이 피어나는 시간. 날개옷을 갖고 있는 엄마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를 읽어 준 밤에 엄마도 날개옷을 갖고 있다고 했다. 우리를 두고 날아갈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동생과 나는 얼른 일어나 장난감을 정돈했다. 엄마는 장롱을 열어 보라고 했다. 옷걸이에 걸려 있는 엄마의 눈부신 날개옷 지난 설날, 엄마가 종일 부엌일하고 할아버지 할머니께 세배하기 전에 잠시 갈아입었던 그 옷! 귀신 나오는 책 책장을 넘기는데 책 속에서 갑자기 머리 풀어 헤친 귀신이 눈을 뜬다. “악!” 동생이 벌떡 일어서자 형이 얼른 책장을 덮었다. 모서리를 잡고 책 밖으로 나오려던 귀신 손가락이 털썩 잘려 떨어진다. -이젠 못 나올 거야. 동생도 책을 꼬옥 눌렀다.
작성일 2023-11-03 작성자 관리자 좋아요 0 댓글수 0 조회수 206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