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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영화

  • 작성자 옥상정원
  • 작성일 2024-03-13
  • 조회수 424

물음표가 없는 문장은

정서가 된다


비 오는 거리는 은유들로 가득하다

모두들의 우산에는 

저마다 찢긴 흔적이 있고

우리는 뒤집힌 우산을 다시 뒤집으려 하지 않는다


손 위로 손이 포개지지 않는 오후는

슬픔이구나, 거리의 은유를 이해하며

우리는 낡은 것처럼 보이려고 애쓰는

영화 하나를 보았다


그곳에선 포개지는 손이 있고

맥주를 마시며 수화를 배우는 사람들도 있다

두 여자를 바라보는 창문 밖 아이가 

우리를 뜻한다고 한다


우리?

내가 되묻자 화면은 순식간에 넘어간다 유구함을 참을 수 없다는 것처럼


저 영화는 전통적인 기법을 사용한 것 아닐까,

누군가 묻는다면

흑백영화가 언제부터 전통이었냐는 대답이 

선회한다


우리는 그 영화가 너무 지루해서

잠에 들었다

아무도 그 영화에 대해서 반문하지 않았고

아무도 우리의 슬픔에 대해서 논하지 않았다


오래된 정서는

전통과 구분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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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

빛이 새어들어오고 있었고 나는 눈을 감은 채 서 있었다 미처 닫히지 못한 서랍은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안과 밖의 경계를 알지 못한 채 이곳의 계절과 저곳의 날씨를 분간하지 못한 채 크고 작은 마음을 기어코 감정뿐이라 칭할 때 안녕, 안녕, 인사 속에는 어떤 악의도 환희도 없는 마른 씨앗 같은 말 멀고도 먼 이국의 노래를 입술에 머물게 할 때 어떤 느낌일지 느낌이라는 것은 결코 기록될 수 있는 것인지 내 안의 것을 타인에게 주는 순간 속에서 우리는 얼마만큼의 세계를 왜곡하는가 하얀 종이 위의 검은 잉크는 보이지 않는 잉크인 걸까 몸통이 반쯤 사라진 그것에 어떤 이름이 붙여졌는지 떠올려본다 아무래도 따분한 이야기… 그러나 질주하지도 멈추지도 않는 따분한 것들을 떠올려보라 이를테면 새하얗고 새하얗기에 더러운 것들, 새하얗다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더럽히고 있는 것들을 떠올려보라 아무래도 더러운 것들… 그러나 단념하지 않고 종이를 꺼내드는 이에게는 지독하고 지겨운 따분한 生 하나가 놓여있는 것이다 어떤 이에게는 하얀 세계를 거뭇하게 뒤덮는 일이 가장 어두컴컴한 곳을 밝히는 일일테다 이를테면 미처 닫지 못한 서랍 같은 것 굳게 잠근 마음이 실은 무엇보다도 빛을 갈망하고 있었다는 것 아무래도 따분한 이야기… 다시, 서랍이 닫혔다

  • 옥상정원
  • 2023-09-11
확신

새 떼를 보았다 한 마리만 늦어서 이상했다 어쩌면 다른 새일 지도 몰랐다   사탕을 입안에 넣고 껍질은 주머니 속으로 주머니가 바스락 거린다 발자국이 남기는 소리와 비슷하다 새와 벌에게 주고 싶은 소음들   아이들은 벌을 무서워했다 말벌과 꿀벌을 구별하지 못해서 꿀벌을 두꺼운 교과서로 내려치기도 했다   창문으로 들어온 벌이 무서우니까 교실 앞문을 닫고 이동경로를 눈으로 좇는다 꽃인줄 알고 벌이 앉은 곳은 모형이다 이미 벌 무리는 한차례 훑고 지나갔을 것이다   무리에서 비껴 가던 꿀벌은 말벌 날아다니고 윙윙 날갯짓하고 색깔도 노르스름한 것이 조금만 더 컸으면 확신했을 걸   창문과 창문 사이로 인사한다 우리는 말벌이 들어왔어 너희들은 새가 날아온 거니 실은 말벌도 새도 아니지만   아이들이 교과서를 들고 납작해진 벌 시체를 바라본다 죽었어? 물으니까 응 드디어 죽었어,  대답이 돌아온다   이제 정말 말벌인지 꿀벌인지 모르겠어   주머니가 바스락 거린다 꿀벌을 보면 주머니에 넣고 싶어진다 사탕껍질처럼

  • 옥상정원
  • 2023-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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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개

    표현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아요.. 좋은 시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2024-05-17 01:13:24
    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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