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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과연 빠르게 지나가는가?

  • 작성자 소울(素鬱)
  • 작성일 2006-11-30
  • 조회수 270

시간은 과연 빠르게 지나가는가?

 

또 연말이 다가온다. 이제 2006년은 12월 한 달만을 남겨두고 있다아직 쌀쌀한 이른 봄에 새로운 반에서 새 친구들을 만나 서먹한 시간을 보낸 기억이 생생하고, 그런 낯선 분위기 속에서 반장 선거를 한 것이 겨우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생각한다. 시간은 정말 빠르다.. 그러면서 앞으로 보낼 시간들을 얼마나 알차게 보내야 하는지를 강조한다. 선현들의 촌음을 아껴 살아라 는 교훈도 바로 이런 시간에 대한 인식이 지금의 우리와 다르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시간을 알차게 보내라는 교훈에 대해 반박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전에 이러한 교훈이 전제하는 시간에 대한 인식을 곰곰이 따져보고자 한다. 정말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시간은 빨리 흘러가는 것일까?

지난 1년을 되돌아 보거나, 몇 년 사이에 일어난 일들을 생각해보면, 정말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 것 같다. 그러나 조금 범위를 좁혀서 오늘 하루에 있었던 일들을 생각해보자. 아침에 이부자리에서 일어난 것부터 시작해서, 아침 식사에 무엇, 무엇을 먹고, 등교를 하고, 수업 시간에 어떤 사실들에 대해 공부했으며, 매 순간마다 친구들과 무슨 얘기를 하며 깔깔거리고 웃었는지를 하나씩 다시 상기해 보자. 기억력이 정확하다면, 이 많은 일들을 오늘 하루 동안에 했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오늘 하루 동안의 시간이 얼마나 길었는지를 새삼 느끼게 될 것이다.

이 일들을 우리가 비교적 정확히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아직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고,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면 오늘 내가 이런 수많은 일들을 했다는 사실은 잊혀질 것이다. 오늘 하루 동안에 일어난 중요한 사건들, 예를 들어 남자 친구에게 고백을 받은 것, 은 몇 년 뒤에도 다시 기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러한 사건들도 없이 늘 겪는 일상 생활의 스케줄대로 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친구들과 떠들고 놀았다면 오늘 하루의 일은 완전히 잊혀져서, 시간이 흐른 뒤에는 더 이상 기억에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최근에 보낸 시간은 비교적 길게 느끼는 반면,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는 시간이 짧다고 느끼는 것이 바로 우리가 했던 모든 일들을 기억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수업시간 중에는 그렇게 길었던 50 1달만 지나도 잊혀지고, 우리의 기억 속에 우리가 보낸 시간들은 중요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다시 축소되고 재편될 것이고, 우리는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고 느낄 것이다. , 우리의 시간의 속도에 대한 인식은 전적으로 우리의 기억력의 한계에 근거하며, 사실 시간은 우리의 보편적 인식과는 달리 하고 싶은 일들을 충분히 할 수 있을 만큼 천천히 흘러가는 것이다.

나이를 하나씩 더 먹을 때마다 우리는 참 시간이 빠르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우리의 기억력의 한계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섬뜩하기도 하다. 특히, 5~6살 이전의 우리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그 때 보낸 5년은 지금 우리가 보내고 있는 최근의 5년과 시간과 길이상 동일할 진대, 우리는 거의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고, 그 때 보낸 시간은 우리의 인식 속에 거의 없었던 시간으로 취급 받고 있으니 말이다. <오이디푸스의 결혼>이라는 책에서 우리는 모두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상실증에 걸려 있다.는 말을 읽었을 때는 그래서 얼마나 오싹했는지 모른다. 우리는 모두 기억상실증에 걸려 시간 관념도 제대로 있지 않은 존재라는 건 정말 무서운 사실이다. 만약 우리가 매 순간, 찰나에 벌어진 일들을 모두 기억할 수 있다면 우리는 시간을 어마어마하게 길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이렇게 되었을 때 더 좋을지, 혹은 더 나쁠지는 잘 모르겠다. 시간이 너무 길다고 느끼면 우리 인생을 그만큼 더 지루하다고 느낄 수도 있고, 혹은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해서 더욱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결국, 시간은 우리의 보편적 인식과는 다르게 항상 동일한 속도로 끊임없이 흘러간다는 사실과, 우리가 보내는 매 단위로 우리의 평생을 환산해 보았을 때 이것은 결코 적은 시간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이 사실로 인해 우리는 우리의 생각만큼 시간은 빠르게 흐르지 않으며 짧은 시간 안에 더 많은 일을 하려고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고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우리가 매우 짧다고 생각한 시간 동안에도 시간을 알차게 보내려는 의지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지 이루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원래의 교훈 시간을 아껴 살아야 한다는 원점으로 돌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는 인식에 의문을 제기해 보았다.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동의한 내용에도 진실과의 모순이 있을 수 있으며, 심지어 우리의 인식에도 진실의 왜곡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다면, 아마 우리는 한걸음 더 진실에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을 이렇게 글로 정리해 본다.

소울(素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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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울(素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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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처럼

    아래에도 상대론적 시간관에 관한 언급을 하였군요. 인간은 결국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시간은 길게도 짧게도 느낍니다. 이 글은 그런 특성을 자세하게 제시하여 설득력을 높이고 있군요.

    • 2006-12-08 00:04:46
    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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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리엘

    아인슈타인은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시간의 흐름에 대한 개인적인 인식은 해당하는 명제를 뒷받침 해주는 좋은 현상이죠.

    • 2006-11-30 22:43:06
    코리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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