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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맨을 읽고

  • 작성자 포롱거리다
  • 작성일 2021-05-11
  • 조회수 785

평소 책과 거리가 먼 나에게 최근에 읽었던 문학 작품이 있냐고 물으면 아마 문학 교과서 속 작품이지 않을까 싶다. 너무 부끄럽지만, 이마저도 문학 작품을 뼛속으로 느끼기 보단 단시간에 최대한 많은 것들을 암기하는 데 집중하였다. 그 이유는 시험기간이라는 특수한 상황인데다가 특히 고전소설의 경우 재자가인형 인물이 모두 행복하게 살아가는 뻔한 전개에 공감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줄곧 생각하던 내가 처음으로 소설이 '맛있다!'라고 생각이 들었던 계기는 바로 '스노우맨'이라는 작품을 만난 일이다.

스노우맨의 시작은 허리춤보다 더 높게 쌓인 사상 초유의 폭설로부터 시작된다. 평범한 직장인인 남자는 어느새 자신의 키만해진 눈덩이를 치우며 필사적으로 출근하려고 노력한다. 눈을 치우며 만나는 생계유지를 위해 폭설속에서도 3분 배달을 칼같이 지키는 짜장면 아저씨, 힘든 남자와 달리 해맑게 웃는 눈사람.. 그리고 모든 상사의 총애를 받으며 승진 후보 1위를 자랑하던 유대리의 죽음까지.. 이 과정속에서 남자는 비현실적인 경쟁사회속에서 도태되지 않도록 몸부림을 친다. 결국.. 남자도 눈을 푸다 지쳐 시야가 흐려지고 만다.

이 글을 읽고, 소설 속 남자가 우리와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아빠도 생계유지를 위해 아침 일찍 출근하셔서 회사에서 주어지는 일을 기계적으로 처리하고, 늦은 저녁이 되서야 집에 돌아오는 챗바퀴같은 생활을 반복하신다. 파도 파도 끝이 없는 폭설처럼, 우리 아빠도 해도해도 끝이 없는 일터에 '남자'처럼 매일 나가신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마저도 언젠간 대학에 가서 직장생활을 하게 되면, 이 눈덩이를 푸게 되지 않을까..  눈을 푸지 않는 이상 나도 유대리 처럼 눈에 파묻혀 화석처럼 될지 모르는 일이다. 이 소설이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아서.. 난 씁쓸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스노우맨을 처음 읽었을 때는 우리집 사정과 똑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씁쓸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두번 세번 읽었을 때는 마냥 슬픈 소설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도 언젠간 눈을 파야한다는 현실을 받아드리면서도, 내가 만약 어른이 된다면 저 큰 눈을 녹일 수 있는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 겠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경쟁사회 속에서 남을 밀쳐내고 혼자 생존하려 하지 말고, 다같이 눈을 치울 수 있는 삽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한 소설을 읽으며 이렇게 생각이 많아진 적은 처음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나쁜 말로 '삽'이 아닌 '눈덩이'가 되진 않았는지 반성할 수 있었다. 또, 오늘도 눈을 치우시는 우리 아빠께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나에게 질문과 여러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스노우맨'이라는 소설이야 말로 '맛있는' 소설이 아닐까 싶다.

포롱거리다
포롱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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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배를 매며를 읽고

서울 도심 한가운데에 사는 나로서 배를 볼 기회는 별로 없다. 그나마 자랑할 거리란, 여행 다니며 유람선 한 번 타봤다는 게 전부다. 그래서 '배를 밀다'라는 것이 무슨 의미 인지 이해가 잘 가질 않았다. 이런 나와 달리 시인인 장석남 시인은 부둣가에서 살았던 것 같다.  그가 배를 밀며라는 시 말고도 배를 매며 같은 배를 소재로 한 시를 다수 쓸 수 있었던 까닭은 그가 살던 곳 근처에 배가 많이 드나들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불러 일으킨다. 그리고 그는 배를 미는 것과 사랑의 공통점을 미루어, 사랑의 본질을 이 시에서 그려낸다. 이 시에서 인상 깊었던 두 구절을 소개해 본다면, '그래서 어찌할 수 없이 배를 매게 되는 것'과 '배를 매면 구름과 빛과 시간이 함께 매어진다.' 이다. 지식인 같은 사이트를 보면 가끔 이런 엉뚱한 질문이 올라온다. "여자친구를 사귀려면 어떻게 해야하나요?" 우리가 모두 공감하겠지만, 이성친구를 사귀고 싶어도.. 마음만 가지고 당장 사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반면, 삶을 살면서 사랑은 예기치 못한 순간에 찾아오는 것이다. 작가의 이런 생각은 '밧줄(인연)이 털썩 날라와, 어찌할 수 없이 배를 매게 되는 것..'이라고 시에서 나타나진다. 이 부분이 인상깊었던 이유는 사랑의 이런 운명적인 속성을 나로 하여금 다시 일깨워 주었기 때문이다.   고등학생인 나로서 어른들로부터 "연애는 대학가서 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정말, 연애가 나쁜 행위라서 그런것은 아닐터이다. 연애를 하게 되면 시간, 돈, 정신을 사랑에만 투자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시에서 '사랑이란 시간, 돈, 정신을 모두 투자하는 것!'이라고 적는 대신, '배를 매면 구름과 빛과 시간이 함께 매어진다.'라는 표현으로 승화 시킨다. 이 구절을 읽으면 나도 모르게 호젓한 부둣가에 떠있는 배를 둘러싼 아름다운 풍경이 연상되어 흐믓해지는 바이다. '배를 매며'는 배와 사랑의 공통점을 통해 사랑의 본질을 아름답게 형상화한 시이다. 시를 읽으며 서정적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은 자에게, '배를 매며'는 꼭 한 번 읽어보면 좋은 시가 될 것이다.  

  • 포롱거리다
  • 2021-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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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은교

    안녕하세요 포롱거리다님!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이 게시판에서 여러분들 글 읽고 있는 멘토 오은교 라고 합니다. 글틴 게시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소설 스노우맨에 대한 비평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소설이 어떤 작품인 지 몰라 찾는 데 조금 어려움을 겪었는데요. 처음에는 요 네스뵈의 동명의 추리 소설을 말씀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감상 글을 남겨주실 때 1)작품명과 작가명을 함께 병기하고 2)논지에 맞는 제목까지 달아주시면 글이 한층 완성도가 높아질 것 같습니다^^ 저도 암기에만 급급해하며 문학 작품을 읽었던 시간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저도 포롱거리다 님께서 공유해주신 것과 같은 어떤 모먼트가 있었는데, 그게 박완서 작가님의 소설을 교과서에서 처음 봤을 때인 것 같아요. 문학에 대해서, 또 그 밖에 어떤 것에 대한 관심과 취향을 처음 쌓아 나갈 때, 장르에 대해 개안할 수 있게 해주는 작품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포롱거리다님께서 느끼신 설렘과 흥분이 글에 묻어나 있어 글을 읽는 저 또한 함께 들썩였습니다! 이 소설은 일종의 현대인의 생활에 대한 우화인데요. 그러고보면 근대성에 대한 실존적인 고민의 한 방식으로서 한 인간의 무력한 행위 등에 대한 우화들이 꽤 많은 것 같습니다. 당장에 생각나는 건 카프카의 , 카뮈의 같은 글들인데요. 카프카의 소설에서는 한 회사원이 문득 벌레가 되면서 회사에 가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그런데 벌레가 된 것보다 더 놀라운 건 한 사람이 난데 없이 벌레가 되었는데도 회사에 나가 일을 하고 밥값을 해야 한다고 주변 사람들이 주인공을 막 다그칩니다. 카뮈의 작품에서도 한 인간이 계속해서 떨어지는 공을 주워다 올려야 하는 형벌을 받는 장면이 나와요. 포롱거리다님의 분석처럼, 삶이란 그저 어떤 못마땅한 행위를 고통스럽게 반복하는 일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이들 소설에 드러나는 공통된 주제인 것 같아요. 이러한 현실 속에서 인간의 주체성이나 기쁨 등은 어떤 식으로 발현되고 있을까요? 기계적인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 이 쳇바퀴의 경로를 조금이라도 바꾸어 놓는 일은 어떤 식으로 가능할런지, 서유미님의 작품과 더불어 위에 말한 여러 고전들을 읽어보며 고민해보신다면 이 독서 경험이 더 확장되실 것 같습니다. 내밀한 경험 나누어주셔서 감사드리고 또 다시 글로 만나며 더불어 성장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2021-06-09 15:59:07
    오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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