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틴

듄. 프랭크 허버트의 장편소설 시리즈다. 긴 시간을 건너뛰어 전작의 결말에서 생긴 결과만을 보여주고 시작하는 특징이 있으며 따라서 전작의 주연들이 꽤나 큰 변화를 겪는다. 또 작중 이전 시점의 사건으로 정보과학과 기계공학이 제한받은 세계관 특성상 인간을 특정 목적을 위해 개량하는 용도로 생명공학이 발달해있다. 중간과정의 생략, 생명공학의 극한. 이 둘은 작가의 손에서 반응해 독특한 생명관을 생성해낸다. 우선 우주에서의 이동을 위해 일반상대성 이론에 기반한 복잡한 계산을 수행하기 위해 당연하다는 듯이 훈련된 사람을 고용해 컴퓨터를 대신할 정보처리 장치로 사용한다. 이 인간 컴퓨터들은 그 목적 하나만을 위해 태어나기도 하며 정보처리를 위해서 중독성이 강한 성분을 섭취해야 한다. 작중에서는 등장하지 않지만 노화로 인해서 정보처리 능력이 둔화된 경우 교체되는데 이때 이들이 평생동안 받아온 교육은 감정적인 판단을 거세하는데 있으므로 고용의 여부에 관계없이 일상생활을 누릴 기회를 박탈당한 것이다. 또 이들이 섭취하는 성분은 하나의 생물종의 순환과정에서만 발생하며 이들은 시리즈 전체에 걸쳐서 한 행성에서만 서식한다. 책에 나오는 표현을 따라 해당 성분을 스파이스라 하겠다. 두번째로 살펴볼 점은 인간의 품종개량이다. 작중 나오는 품종개량으로 한 종교단체의 선지자를 만들기 위한 번식 계획과 전 인류 공통 형질을 만들기 위해서 복제인간을 수천년에 걸쳐 개량한 것, 그리고 인간의 자궁을 시험관 삼아서 유전자 조작 생물을 만드는 것을 들 수 있다. 첫번째를 보면 교단에서 훈련을 통해 선별한 사람들이 특정 가문과 지속적으로 아이를 가지게 하는데 이들은 태아의 상태에 조금씩 간섭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 세대가 지날수록 선지자에 더욱 가까워 진다. 교단의 능력은 과거 그들의 계통상의 여자들의 기억을 갖는 것으로 여자(대모라고 불린다)만이 사용할 수 있지만 선지자는 남자로서 그 능력을 쓸 수 있으며 자신 계통 모두의 기억을 바탕으로 정확한 예지가 가능하며 여러 갈래의 경우 중 자신이 택한 미래로 갈 수 있다. 이 처리능력은 앞의 인간 컴퓨터와는 궤를 달리하는 수준으로 스파이스를 통해 각성한다. 그러나 같은 예지를 가진 이가 관여하는 시점은 볼 수 없는데 이를 이용해서 3권의 주인공은 미약해서 없다시피 한 예지를 가지도록 계속해서 복제인간을 배양해왔고 그가 번식하도록 해서 결과적으로 전 인류를 확정적인 미래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목표를 갖는다. 세번째는 생명공학이 극도로 발달한 행성의 방식으로 기계장치가 없는 탓에 생명체를 배양할 곳도 없으니 이미 훌륭한 기능을 가진 인간의 자궁을 쓰자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며 앞의 복제인간이 여기서 배양됐다. 이처럼 듄의 세계는 몇가지 목적을 위해서라면 인간을 도구로서 이용하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목적에 맞게 개조하는데 이에 대해 작중에서 아무런 윤리적 문제도 제기되지 않는다. 자궁 시험관에 대해 역겹다는 반응만을 보이고 선지자는 숭고하게까지 포장되며 복제인간 개량은 의도가 밝혀지기 전까지 폭군의 일탈 정도로 인식되고 밝혀진 후에는 마찬가지로 숭고하게 포장된다. 인간이 찰흙같이 무언가의 원자재 정도인 세계. 물론 작품 전체를 본다면 듄의 주제는 선지자로 대표되고 이후에는 그의 자식으로 대표되는 폭군의 가능성이 있는 영웅주의에 대한 경고가 될 것이지만 더 밀접한 내용은 역시 윤리의 상실이 될 것이다. 듄의 세계에 부족한 것은 기계와 인공지능이 아니다. 배경이 되는 사막 행성에서의 물도 아니다. 한 행성에서만 나는 스파이스? 아니다. 영웅을 만들고 그 영웅을 떠받들기 위해 지워진 모든 가치가 부족하다.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가치있어지지 않고 인간ㅡ컴퓨터이기 때문에, 인간ㅡ자궁이기 때문에, 인간ㅡ선지자이기 때문에, 인간ㅡ신이기 때문에 본인의 가치를 가질 수 있다. 자연권은 없다. 자연권은 수거됐고 배급받은 것은 영웅을 정점으로 하는 사회를 부양하기 위해 최소한으로 필요한 것들이다. 물론 작중의 영웅 중 하나는 이런 구조를 와해하려고 했지만 그 방법이라는 것이 절대적인 구조를 만들어서 현실에 나타난 반면교사의 역할을 하는 것이었기에 같은 가치관을 가진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이런 노력을 통해 구조를 파괴했고 사람들을 멀리까지 번성시켰으나 외부의 이들이 침략해오자 자발적으로 다시 다른 영웅이 만들어졌다. 작가는 영웅을 경계하지만 작가가 만든 사회는 영웅이 없으면 유지되지 않는다. 영웅은 구도자이지만 길을 안내받은 후엔 필요 없어진다. 다음 길을 모를 때 다시 만들어내면 그만인 것이다. 앞서 인간ㅡ신, 인간ㅡ황제를 포함시킨 이유가 이것이다. 이런 영웅들마저 원자재의 하나로 취급되는 세계에서 찾을 수 있는 윤리의식은 다른 자재를 버려두지 말 것, 쓸모없어진 자재는 폐기할 것 이라는 산업화 시대 자연관과 흡사하다. 작가는 이런 세계를 까마득히 먼 미래라곤 했지만 몇가지 설정들로 기술에 제한을 걸어 현대사회와 비슷한 모습을 하게끔 조절했다. 윤리의식은 지워졌지만 명예, 체면, 격식의 가치는 동일하게, 더 극명하게 남아있다. 명확한 대비를 위해 윤리만을 거세하고 기존의 가치를 강조하는 사회를 설계함으로써 작가는 70년대의 발달하는 유전공학 기술의 결과물들을 사용할 때 윤리적인 차원에서 유의해야 함을 강조하고 그들이 주권자임을 말로만 떠들고 실제 생활에 있어서의 사고방식에는 아직까지 자신들을 힘 없는 이들로 설정함으로써 지도층을 비판하는데 정당성을 얻지만 그 내면은 영웅주의, 엘리트주의가 만연해있는 서민사회를 비판하려 했을 것이다. 작가의 비판은 시대를 거쳐도 살아남아 현재도 유효하다. 학계에서 제명됐지만 시험관 아기를 만들어낸 사람이 나타났으며 그 바탕에는 분석이 완료된 게놈이 있었다. 연구가 진행돼 작용기작을 모두 분석할 수 있다면 시험관 아기가 보편적이게 될지도 모른다. 엘리트주의는 어떠한가? 사회는 모든 종류의 엘리트를 끌어내려 욕하길 원한다. 더 심해진 문제는 극명하게 나눠져 대립하는 사회에서 엘리트는 대립하는 상대 집단의 구성원이 된 것이다. 다른 집단이 자신들은 없는 아주 약간의 특권으로 인식되는 경우 다른 모든 조건을 무시한 채 그 특권을 부수려고 한다. 여기서 보이는 것은 유아퇴행한 사회 부속의 사고수준이다. 정치, 가정적 권위주의를 벗어나 조각난 문화적 권위주의로 접어든 사회의 모습이지만 사고의 퇴행이 필연적이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기존에 묶여있던 구성원들의 사고에 그 자신들의 아무런 노력도 없이 방치된 결과가 이것이다. 해결된 문제는 없다. 모든 문제가 더 복잡해졌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