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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자아(superego)와 자아(ego), 원초아(id)에 따른 동서양권의 문학작품 분석과 가치관 비교

  • 작성자 윤별
  • 작성일 2016-06-17
  • 조회수 5,863

초자아(superego)와 자아(ego), 원초아(id)에 따른 동서양권의 문학작품 분석과 가치관 비교

 

 

Abstract

본 논문은 프로이트(Freud)의 정신분석학을 이용하여 동서양권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을 비교하고 차이점을 구명하는 데 그 목적을 둔다. 정신분석학에 대해서는 일찍이 다양한 선행 연구가 진행되었으므로 드물게 이루어진 문학작품의 분석과 정신분석학을 접목시켜 대체적으로 세계에서 통용되는 동양권의 공동체주의와 서양권의 개인주의의 차이와 원인을 분석했다. 이를 위해 서양문학에서는 <Dr. Jekyll And Mr. Hyde>(1886, Robert Louis Stevenson)을, 동양문학에서는 윤동주의 일생과 시 세계, <쉽게 씌어진 시>(1942, 윤동주), 그리고 <또 다른 고향>(1941, 윤동주)을 대상 작품으로 삼아 분석했다.

 

 

I. 서론

1. 연구의 목적 및 필요성

오늘날 사람들은 규범에 맞춘 삶을 살아가기를 강요당한다. 원초아(id)는 제한하고, 자신이 가진 도덕적인 생각만 제한하여 보여내는 초자아(superego)적 사고를 권장한다. 실은 초자아가 사람으로서 도달해야 할 궁극적인 종착역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성을 지닌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자아(ego)에 의거하여 이성적 사고를 하는 것이 당연시 여겨지고 있다. 결국 초자아 또한 사회가 만들어낸 가치에 부합되어 만들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공동체 생활을 위해 요구받는 행위들은 대체로 지극히 제한적이고 개인의 자유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성자聖者로 일컬어지는 이들을 보라. 대표적으로 예수와 부처를 들 수 있다. 그들을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키워드들은 한정되어 있다. 희생, 친절, 베풂, 선행, 헌신, 용서, 겸손. 전부 자신을 버리고 다른 이들을 먼저 생각하는 이타적, 아가페적 사고를 보이고 있으며, 그들은 완전한 초자아의 영역에서 머무르고 있는 성인聖人으로 추앙받는다. 많은 이들은 이 ‘성인’의 초자아적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자신 또한 그렇게 변화하고 행동하기 위해 노력한다. 노력하여 성공한 극히 소수의 사람들은 역시 성인으로 대우받아, 그렇게 대물림되는데, 이는 ‘사회가 만들어낸 성인’의 틀에 자기 자신을 맞추어 넣는 것이다. 개인보다 공동체를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조선의 제 3대 왕인 태종 이방원이 왕자의 난을 두 번 일으키고 끝내 왕위에 올라 자신의 아버지 태조 이성계에게 옥새를 받을 때, 세 번이나 거절했다가 마지못해 받았다고 야사에 기록되어 있다. 실록에는 우리의 선조들 또한 선물이나 도움을 받아야 할 상황에서도 몇 번이고 거절하다가 마지못해 받는 척 하는 경우가 많다. 이 관례와 풍습은 그대로 세습되어 현대 사회로 전해져 내려왔다. 유교 풍속이 뿌리 깊게 잘하고 있는 동양권에서는 거절과 겸손과 겸양을 미덕으로 여긴다. 그러나 서양권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거절의 뜻을 내포한 말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들의 거절이 의미하는 것은 말 그대로 ‘거절’의 의미이다. 동양권 사람들이 예의를 차리고 상대를 존중하기 위해 거절의 언어를 ‘이용’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일찍이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공동체보다는 개인을 중시하는 풍토 아래 살아온 이들의 사고방식이 같을 리 없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이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름은 그 사람의 개별적 속성을 인정해 주는 기장 기본적이 원리이다. 동양에서는 이름을 부르는 사례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신분제가 존재했을 뿐만 아니라, 성씨 뒤에 관직 이름을 붙여 이야기하는 것이 기본적이었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모든 사람의 이름을 존중해 불렀으며 현대 사회에서도 이름이 아닌 직업 명칭을 대신 부르면 불쾌해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이는 ‘사장님’이나 ‘선생님’이라는 용어가 본래의 의미를 잃고 퇴색되어 왕왕 쓰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로서 서양과 동양의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를 엿볼 수 있다. 영문화권에서는 말을 할 때 주의해야 할 화용론(maxim)이 존재한다. 이는 quality(질), quantity(양), relation(관련성), manner(태도) 이상 네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나라 역시 대화의 원리가 존재하는데, 영문화권에서 사용되는 네 가지의 격률 외에도 ‘공손성의 원리’라 명명되어 있는 원리가 추가적으로 존재한다. 이해관계를 떠나 상대방의 존재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을 마음으로 인정하며 자신을 최대한 낮추고 상대를 최대한 높이는 공손성의 원리는 다섯 가지의 격률(요령, 관용, 칭찬, 겸양, 동의)로 이루어져 있다.

 

이로서 동서양에서 추구하는 ‘사회적 이상상’, 그러니까 곧 사회에서 요구하는 초자아의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동, 서양의 문학작품에서 초자아와 자아가 원초아와 충돌하는 사례를 찾아보고 서로의 사례를 비교해 보는 행위는 동서양의 가치관 차이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2. 연구목적

본 연구는 초자아(super-ego)와 자아(ego), 그리고 원초아(id)에 따라 동서양권의 문학작품을 분석하고 이에 따라 동서양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가치의 차이를 비교해 보고자 한다.

 

 

II. 초자아(superego), 자아(ego), 원초아(id) : 프로이트(Freud)의 정신분석학에 의거하여

1. 원초아(id)

성격 중 생물학적이고 본능적인 요소를 지칭하는 것이다.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존재하는 가장 원시적이며 유전된 것, 성적인 것, 공격적인 에너지를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인간이 가진 모든 충동, 즉 리비도의 저장고다. 원초아를 움직이는 원리는 쾌락원칙으로, 반사적이고 일차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기본적이며 반사적인 욕구에 따라 움직인다. 이런 의미에서 프로이트는 원초아의 정보처리 과정을 일차적 처리과정(Primary process)라고 불렀다.

 

2. 자아(ego)

외부 현실과 초자아의 제한을 고려하여 원초아의 욕구를 표현하고 만족시키는 정신기제를 말한다. 자아는 개체의 보존과 안전이 유지되고 위험에 빠지지 않는 범위 내에서 원초아의 욕구가 실현되도록 의사 결정을 하는 의식적인 요소로 눈먼 왕이라 불리는 원초아의 힘을 안내하는길잡이 역할을 하는 것으로 비유된다. 자아를 움직이는 원리는 현실원칙이다. 즉, 적절한 배출구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적합한 환경적 조건이 성숙될 때까지 원초아로부터 나타나는 본능적인 욕구를 지연시킴으로써 유기체의 안정을 보존해 주는 역할을 한다. 프로이트는 개인과 타인의 안녕을 해치지 않으면서 본능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알맞은 과정을 발달시킨다는 의미에서 자아의 정보처리 과정을 이차적 처리 과정(Secondary process)이라고 불렀다. 자아는 사람들로 하여금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고 적절한 양의 긴장을 유지하게 하며, 합리적이고 인지적으로 행동하게 하는 등의 지적 기능과 문제해결자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3. 초자아(superego)

초자아는 프로이트의 성격구조에서 마지막으로 발달하는 체계로서 사회규범과 기준히 내면화 된 것을 말한다. 인간은 사회화 과정을 통해 합리적인 사회적 가치, 규범, 윤리체계를 받아들이게 된다. 이런 사회화 과정에서 부모나 선생님 및 다른 여러 '존경할 만한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초자아는 양심(Conscience)과 자아이상(Ego ideal)이라는 두 가지 과정에 의해 형성된다. 우선 양심은 처음에는 부모에게서 받은 처벌을 통해 형성되는 것으로 부모의 지적과 야단 및 비판이 내재화되면서 형성된다. 이는 자신에 대한 비판적 평가, 도덕적금지, 죄의식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한편, 자아이상은 부모가 선별적으로 보여주는 인정이나 중요하고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을 내면화 하면서 개인이 형성하게 되는 목표 및 포부를 말한다. 개인은 자아 이상을 달성함으로써 자존감과 자긍심을 키우게 된다. 개인의 판단 기준이 부모의 통제에서 자아통제로 바뀔 때 초자아는 완전한 형상을 갖추게 된다.

 

 

 

III. 동서양의 문학작품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1. 서양문학 :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Dr. Jekyll And Mr. Hyde)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Dr. Jekyll And Mr. Hyde)는 1886년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Robert Louis Stevenson)에 의해 집필되었다. 이 소설은 변호사인 찰스 어터슨이 그의 오랜 친구인 헨리 지킬 박사와 사람을 혐오하는 사람인 에드워드 하이드의 괴상한 관계의 조사에 관해 서술하고 있다.

 

이 이야기 속에서 지킬은 초자아(superego)로 묘사된다. 선으로 점철된 주인공이 있다면 그것은 지킬이다. 세상의 모든 선을 끌어 모아 창조된 인물이라고 해도 괴리감 없이 적어도 사회적으로 모든 악한 행동에서 배제되며, 명망 높은 학자로서 타인에게 존경받는 성인의 경계에 걸쳐 있는 사람이다. 이 초자아가 원초아(id)로 변모하면 날아오른 만큼 추락한다. 바로 하이드이다. 하이드는 완전한 이드로서 초자아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 이를테면 살인과 같은 - 비도덕적 행동을 스스럼없이 저지른다. 지킬이 하이드로 파멸해 가는 과정은 상당히 흥미롭다. 자신이 고안한 실험의 임상실험체로서 스스로 원초아에 맡겨진다. 초자아는 이드를 통제하지 못하고 잡아먹힌다. 한편으로는 초자아의 인격에서 죄책감을 느끼며 다시는 하이드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하나, 이미 한 번 원초아의 쾌락을 경험한 초자아는 더 이상 참지 못한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초자아와 이드의 충돌이 매우 격렬하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는 소설보다는 뮤지컬로 제작된 <지킬 앤 하이드>(Jekyll and Hyde, 1997)에서 돋보인다. 지킬이 하이드로 변할 때의 감정은 죄책감이나 절망이 아니라 쾌감과 만족감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새로운 힘에 흥분하는 하이드는 원초아의 정석定石을 보여준다. 뮤지컬에서 가장 유명한 곡인 <지금 이 순간> 또한 하이드의 쾌락을 선명히 보여주는 장치이다. 지금 이 순간 마법처럼 날 묶어왔던 사슬을 벗어 던진다 지금 내게 확신만 있을 뿐 남은 건 이제 승리 뿐 그 많았던 비난과 고난을 떨치고 일어서 세상으로 부딪혀 맞설 뿐 지금 이 순간 내 모든 걸 내 육신마저 내 영혼마저 다 걸고 던지리라 바치리라 애타게 찾던 절실한 소원을 위해 이 충돌은 작품이 후반으로 치달으며 점점 더 상승하고 격해지는데, 그에 따라 하이드는 점점 더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을 저지르고 지킬은 자신의 본모습을 끝내 잊는다.

 

여기에서 한 가지 더 주목해 보아야 할 부분이 있다. 다음 동양문학에서 언급되겠지만, 이 작품에서는 동양문학, 특히 동양 고전에서 필수불가결한 존재이며 불문율처럼 따르고 있었던 권선징악의 흐름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초자아로 묘사되었던 존재가 원초아에 무릎을 꿇고, 더 이상 초자아는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줌으로서 극적 효과를 극대화한다. 하이드는 작품의 결말에서 자살으로서 목숨을 끊는데, 이것조차도 자아(ego)에 의한 이성적 사고로서 자신이 비윤리적 존재임을 인지하고 판단한 결과가 아니라, 본성의 일종에 의한 행위로 볼 수 있다.

 

해부학적으로, 그리고 의학적으로 사람의 자아(ego)는 사람의 뇌 앞부분에 위치한 전두엽(frontal lobe)에서 통제된다. 어린아이들이 이성적 사고를 하지 못하는 것은 이 전두엽이 충분히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두엽은 성장하면서 발달하며, 이 발달은 성인이 될 때까지 진행된다. 전두엽이 발달하지 않은 아이들은 편도체(amygdala)에 의해 모든 결정을 내리는데, 이 편도체가 본성을 관장한다. 성악설을 뒷받침하는 ‘본성’은 부정적인 감정을 포함한 공포, 분노, 성욕 등의 생존에 필요한, 본능적인 감정을 포함한다. 우리는 지킬, 즉 초자아가 약을 스스로 주사하고 하이드, 즉 원초아로 변화했다는 점을 유심히 관찰해 볼 필요성이 있다. 해부, 의학적으로 가정하자면 약, 즉 소금 속에 들어 있던 불순물은 정보와 감정들이 아미그달라에서 전두엽으로 전달되는 과정을 방해하거나, 전두엽을 점진적으로 파괴, 마비시키는 작용을 했을 것이다. 손상된 뇌는 다시 회복될 수 없다. 전두엽이 일시적으로 마비되었을 때는 다시 지킬, 즉 자아로서 자신을 통제할 수 있었으나 점차 투약량이 늘어나고 마비가 잦아지며 완전히 파괴되어 본능만 남은, 다른 말로는 자아를 잊은 인간으로 퇴화한 것이다.

 

서양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에서는 개인과 개인 사이의 초자아와 이드의 충돌을 보여준다. 이것은 곧 다루게 될 동양문학(대표작 최인훈 <광장>, <구운몽>, 윤동주 <자화상>, <또다른 고향>, 이상 <자화상>, <거울>)에서 일어나는 충돌의 대표적 양상인 ‘사회에 원인을 둔 초자아와 자아, 원초아의 충돌’과는 사뭇 다르다. 이는 서양에서 동양과 비교하여 개인주의를 지향한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이는 곧 개인주의적, 현실적 사상으로 이어지고, 사상의 무리가 집결하여 진보적이고 개방적인 자본주의를 탄생시켰다. (물론 산업혁명 또한 무시할 수는 없다.) 개인 간의 교류를 통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발달했으니, 자신의 의견을 개방적으로 정확히 피력하는 것이 초기 자본주의 사회부터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수단으로 통했고, 우상이었고, 마침내 초자아를 정의하는 이상적 인간상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2. 동양문학 : 윤동주 (쉽게 씌어진 시, 또 다른 고향)

동양문학, 특히 고전 소설의 특징은 권선징악적 주제라고 볼 수 있다. 전형적이고 평면적인 인물들의 일대기적 구성은 항상 초자아적인 삶을 영위하려는 기반을 가지고 있다. <사씨남정기>(謝氏南征記, 서포 김만중, 조선 숙종)에서 사정옥은 부덕婦德을 갖추고 있으며 유교적 가치관에 부합하는 인물로 전형적인 선인으로 묘사되었고, 교채란은 간악한 인물로 사정옥을 곤경에 빠뜨리는 역할을 하는 전형적인 악인으로 묘사되었다. 그리고 교채란의 악행과 사정옥의 선행을 대비시켜 사정옥의 인격을 강조하고 있다. 양승민은 <사씨남정기>를 단호하고 엄중하며 적극적이고 철두철미한 이성적 판단이 뚜렷한 여성인 사정옥을 통해 이를 본받게 하려는 유교적 측면이 강한 통속소설이라 평가하면서 사정옥을 이성적 여성으로 평가하였다.

 

윤동주는 대표적인 원초아(id)와 초자아(superego)가 충돌하는 작품들을 써 낸 작가이다. 이는 윤동주가 살았던 시대상과 관련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만주 북간도에서 태어나, 만주에서 독립운동가들의 독립운동을 지켜보고 자랐던 그는 일본 도쿄의 릿쿄立敎대학 영문과와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영문과에 진학했다. 자신의 조국을 떠나 타지, 그것도 조국을 식민지로 지배하고 있는 침략국에서 삶을 살아가며 끊임없는 자아 성찰의 과정에서 원초아와 초자아가 대립하며 충돌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윤동주의 <쉽게 씌어진 시>를 보자.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 6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 대학 노우트를 끼고 /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들 / 하나, 둘, 죄다 잃어 버리고 // 나는 무얼 바라 /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 부끄러운 일이다. // 6첩방은 남의 나라 /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쉽게 씌어진 시> 全文

 

‘나’와 또 다른 ‘나’가 대립한다. 이 작품은 윤동주가 일본에서 유학 중일 때 쓴 작품이다. 원초아의 ‘나’는 좁고 낯선 육첩방에 있다. 육첩방은 조선인으로 일본에 유학 온 사람이 느끼는 정신적 부자유와 답답함을 은유한다. 소극적인 삶에 대한 괴로움 또한 시인을 슬픈 천명이라고 표현하는 부분에서 드러난다. 자책하는 윤동주, 이것이 윤동주의 원초아이다. 모두 내려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싶은 마음은 아마 낯선 땅에서 조국을 배반했다는 생각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본능은 위험을 피하고자 발버둥 친다. 윤동주의 본능, 그러니까 원초아 또한 그러했을 것이다.

 

그러나 윤동주의 초자아는 서서히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씩 몰아냄으로서 아침의 시대가 올 것을 기대한다. 이러한 기대를 갖는 자신을 ‘최후의 나’라고 표현한다. 독립의 시대를 염원하는 윤동주의 초자아는 굳은 의지를 가지고 있다. 결국 윤동주는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가진 긍정적 자아, 즉 초자아로 하여금 자책에 빠진 현실에 순응하고 싶어하는 또 하나의 부정적 자아, 즉 원초아를 위로하여 최초의 악수를 통해 화해하게 만든다. 결국 이 시는 원초아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삶을 반성하는 부끄러운 정서에서 조국이 광복을 맞는 아침이 올 것을 기대하는 극복의 의지로 나아가 초자아가 현재 존재하는 원초아를 보듬고 있다.

 

윤동주의 거의 모든 시에서는 이러한 자아의 분열, 즉 초자아와 원초아의 대립이 목격되는데, <또 다른 고향>에서는 윤동주가 세 갈래로 분열된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명명되는 명칭은 원초아, 자아, 그리고 초자아이다.

 

고향에 돌아온 날 밤에 / 내 백골이 따라와 한 방에 누웠다. //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 어둠 속에 곱게 풍화 작용하는 / 백골을 들여다보며, /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 백골이 우는 것이냐 /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 지조 높은 개는 /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 어둠을 짖는 개는 / 나를 쫓는 것일 게다. // 가자 가자 /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 백골 몰래 /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또 다른 고향> 全文

 

주목할 부분은 백골, ‘나’, 그리고 아름다운 혼이라는 세 시어이다. 백골은 내내 순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저항이 없이 어둠 속에서 곱게 풍화작용하고 있으며,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다. 백골은 ‘나’에게 슬픔으로 인식되는 존재이다. 보며 눈물짓는다는 시구에서 이를 알 수 있다. 백골은 윤동주의 원초아이다. 갑갑한 현실에 그저 순응하고 일본에서의 힘든 삶 속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지닌 원초아 또한 또 다른 나이기에 ‘나’는 슬픔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감정을 지닌 ‘나’는 자아이다. 초자아적 사고가 어떻게 구현되는지알고 그것이 마땅히 옳다는 것 또한 인지하고 있으나, 초자아, 그러니까 이상세계로 가는 길은 너무도 멀고도 험해 원초아, 즉 본능대로 행동하고 싶다는 갈등상황에 고립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혼은 초자아이다. 자신이 원하는 이상향이자 조국의 독립 상황을 뜻한다. 그래서 윤동주가 원초아와 함께 한 방에 누워 있을 때, 자아는 무기력한 상태에 빠져 있고, 그것을 초자아가 애써 끌어올리는 것이다. 지조 높은 개 또한 초자아를 돕는 조력자라고 볼 수 있다. 원초아를 몰아내고 그 자리에 초자아를 끌어다 놓는 것이다.

 

이 시 또한 원초아 몰래 초자아로 향하는 길로 향함으로서 긍정적인 결말을 보여내고 있다. 윤동주의 시에서 볼 수 있듯 언뜻 보면 개인만의 문제로서 해석할 수 있지만, 실은 사회적 상황에서 고립되어 갈등하고 있는 원초아와 초자아의 대립은 동양문학에서 상당히 많이 발견된다. 윤동주뿐만 아니라 이상의 <자화상>, <거울>이나 최인훈의 <광장>, <구운몽>에서도 이러한 상황을 맞닥뜨릴 수 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에서 보여주었던 지극히 개인적인 원초아와 초자아의 대립과는 다소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공동의 고민을 자신의 고민으로 끌어와 자아를 분열시키는 것은 동양에서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 유교儒敎사상과 성리학性理學의 특성이다. 충효와 공동생활을 강조한 두 사상은 선조들로 하여금 공동체의 일을 당신의 일처럼 간직하게 하였고, 그것이 서양과 비교하여 두레나 품앗이 같은 공동체주의가 발달한 이유이다. 이는 이상적 인간상, 다시 말해 초자아의 방향성을 서양과 달리 개인이 아닌 공동체로 설정하는 사회적 배경이 되었다. 협동, 나눔, 베풂을 당연시하고, 겸손과 겸양, 희생을 미덕으로 여기고, 나서는 행위와 자화자찬自畵自讚을 부덕으로 여겨 비방하는, 결국 자신의 의견보다는 타인의 의견을 더 중요시 여기는 이타적 인간이 초자아의 방향성으로 성립된 것이다.

 

 

 

IV. 결론

동, 서양의 자아 충돌이 일어난 문학작품을 선정, 비교한 결과, 서양의 문학작품은 권선징악의 흐름이 보이지 않으며, 오히려 초자아로 묘사되었던 존재가 원초아에 굴복하며, 원초아에 의해 목숨을 끊는 극현실주의적 사고방식을 보이고 있다. 또한 개인 스스로가 만들어낸 원초아와 초자아 사이의 갈등 상황에서 고립되는 상황을 표현함으로서 개인을 강조하는 서양의 개인주의적 면모를 알 수 있겠다. 동양의 문학작품은 대조적으로 권선징악의 흐름으로서 초자아가 원초아를 극복하는 결말이 대부분이다. 더불어 사회와 개인 사이의 큰 갈등 상황을 자신의 내적 갈등으로 끌어들임으로서 동양의 공동체적인 사고방식을 알 수 있겠다. 확장하면 서양의 자본주의의 도래와 동양의 유교/성리학의 영향을 받은 보수주의의 지속 원인까지 구명할 수 있다. 이상 상기 문학작품의 분석과 정신분석학을 접목시켜 비교, 분석함으로서 동, 서양의 가치관의 차이를 증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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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현대 심리학 입문 < 학지사, 2008 > Chapter 10. 성격과 개인차 제 3절 성격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283-286

뮤지컬 'Jekyll and Hyde' 中 <지금 이 순간> 한국어 ver.

양승민, 문명권 문학으로 본 『김병매』와 『사씨남정기』,『고소설학회』 제13권,한국고소설연구,2002.

강지영, 쟁총(爭寵)형 가정소설 <謝氏南征記>의 정념 연구 : 교씨의 질투를 중심으로, 기호학연구 제45집 (2015년 12월) pp.119-142

 

윤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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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 수감생활 ─미나토 가나에, 『고백』, 비채, 2007         우주의 탄생   저는 두 사람 우유에 오늘 아침에 갓 채취한 혈액을 섞어두었어요.(58p) 빅뱅(Big Bang)이란 어쩌면 이런 것을 뜻할지도 모른다. 또 하나의 우주가 탄생하는 순간. 1학년 B반의 선생님을 맡았던 모리구치 유코의 고백이 시작되는 순간. 모든 시간은 정지한 것만 같았고, 모두가 공포에 질렸던 순간. 유코의 딸, 마나미의 아버지가 HIV 감염자라는 사실을 유코 스스로 밝혔을 때, 학생들이 뒤늦게나마 HIV에 감염될 수 있는 경로를 차단하려고 숨을 멈췄던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자신의 딸을 죽인 두 소년 A와 B에게 직접적으로 HIV 감염을 조장했다는 유코의 고백은 반 전체가 도망치려고 할 정도로 충격일 수밖에 없었으니까. 유코는 끝까지 덤덤하고 잔인하다. 학급 교체는 없을 것이라는, 일종의 사형 선고를 내리면서 연쇄적인 폭발을 일으킨다. 공포와 두려움, 경악만이 뒤섞였던 초기 우주에서 교실 전반을 감돌던 에너지는 급격하게 팽창하며 눈에 띄는 행동으로 이어지기 시작한다. “여러분도 유익한 봄방학을 보내세요.”(59p) 말을 끝맺은 순간 유코는 우주의 반을 성공적으로 탄생시킨 셈이었다.   유코는 의도적으로 우주를 전부 생성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기껏 엔딩 화면에 나오는 몇 학년 몇 반 학생들이라는 자막이 고작인, 그 외 수많은 학생들의 입장은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15p) 나머지 절반을 만들어내는 건 이듬해, 2학년 B반이 된 학생들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B반은 착실하게 그 역할을 이행해간다. 폐쇄적인 반은 정보 공유가 빠르다. 누구도 소년 A와 B의 이름을 입밖으로 내지는 않았으나, 모두가 소년 A가 와타나베 슈야이고 소년 B가 나오키 시모무라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 둘이 취할 수 있는 행동의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학교에 나와 따돌림을 감내하거나, 등교를 거부하거나. 전자를 택한 슈야가 새 학기 첫 날 학교에 나옴으로서 입자들 사이에 반입자가 생성되었고, 우주를 만들 충분한 조건이 갖추어진 것이었다. 입자들이 결합하면서, 교실에는 기묘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 분위기는 점점 주류가 되고, 동참하지 않는 자는 가차 없이 배제해 슈야와 함께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사회적 소멸과도 같은 일이었다. 등교를 하지 않는 나오키에게 보낸 평범한 롤링페이퍼가 사실은 죽음을 강요하는 메시지였다는 걸 고백하던, B반의 반장 미즈키가 했던 말처럼. “다들 비정상적인 공기를 즐기기 시작했던 겁니다.”(81p)       블랙홀: 자그마한 거품이 하나, 톡 터지는 소리가 났다(232p)   그러나 모리구치 유코는 가해자가 아니다. 오히려 원시 우주의 중심을 차지하는 블랙홀 안에 갇힌 가장 큰 피해자이며, 그 블랙홀은 소년 A와 B, 즉 슈야와 나오키로부터 만들어졌다. “살의는 있었지만 직접 죽이지는 않은 A. 살의는 없었지만 직접 죽이게 된 B.”(57p) 블랙홀은

  • 윤별
  • 2018-12-30
재능의 입증과 분류

재능의 입증과 분류 ─On point 기사에 대한 반박을 바탕으로   Abstract 우리는 재능이 존재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바로 옆을 둘러보면 그것이 극명하게 나타난다는 사실이 보인다. 재능이 전부는 아니지만, 전부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재능의 영향은 크다. 그러나 On point에서는 재능보다는 노력을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며 오히려 재능을 믿는 것을 부정적인 눈으로 바라본다. 이 소논문에서는 그러한 기사들 두 개를 선정하여 논리적 허점을 파헤치며, 그 후 이상적인 재능분류의 모델을 설정하고 나아가 그렇다면 재능을 인정하면서 모두가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하여 소고한다.   I. 서론 1. 연구동기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목표를 향한다. 성공과 실패의 여부에 관계없이 각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경쟁을 기반으로 구축되어 있는 인프라가 기본 토대가 되어 있기 때문에, 성공의 기준이 개개인마다 다르다고 해도 사회의 시선에 따른 성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제한되어 있다. 그것은 이 사회가 사회주의를 받아들여 모든 사람이 똑같은 대우를 받지 않는 이상 어쩔 수 없이 생겨나는 일종의 계급이다. 모든 사람들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같은 노력을 해도 누군가는 훨씬 발전해 있고 누군가는 아래에 머물러 있다. 완벽히 같은 실력을 가진 두 사람을 임의추출하여 연구해도 둘의 연습시간이 완벽히 똑같을 수는 없다. 노력이 전부라고 주장한다면, 노력하고도 실패한 모든 사람들의 실패원인이 노력의 부재로 이어지는 문제점이 생긴다. 그러나 우리는 실패의 원인이 다양하다는 것을 안다. 소위 재능이 노력한 방향으로 발달해 있지 않을 수도 있고, 재능은 있으나 환경이 뒷받침해주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On point에서는 ‘노력한다면 뭐든 이룰 수 있어’ 따위의 허황된 이상을 제시함으로서 독자들-특히 독자들의 연령층이 청소년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객관적으로 성인에 비해 전두엽이 발달되어 있지 않아 자신의 주관보다 타인의 의견에 쉽게 휘둘린다-의 판단력을 저하시키고, 성공하지 못한 이들의 원인이 전부 노력이라고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비하한다. 이것은 마땅히 비판받아야 할 문제점이다.   2. 연구목적 이 소논문에서는 On point에 실린 재능에 관련된 기사들을 비판하고 그들에게서 배척되었던 재능의 기준을 바로 세운다. 선정한 기사는 On point 3에 실린 Are Malcolm Gladwell's 10,000 hours of practice really all you need(by Dan Vergeno, 2014, National Geographic Creative)와 The truth about talent: Can genius be learned or is it preordained?(Matthew Syed, 2011, the independent)로, 모두 재능과 노력에 관하여 직접적으로 의견을 제시하는 기사들이다. 이로서 인정해야 할 재능에 관한 이야기는 인정하고,

  • 윤별
  • 2017-12-31
우리는 더 이상 여름이 아니다

우리는 더 이상 여름이 아니다 ─ 김사과, 『천국에서』, 창비, 2013     0   “여기는 천국이야. 그런데 왜 나는 울지? 이건 결국 같은 얘기야. 모든 게 망가졌는데, 왜 아무것도 무너져내리지 않아? 왜 다 무너져내렸는데 아무것도 끝장나지 않지?”(천국에서, 337쪽)     1   <02>와 <미나>에 이르기까지 김사과의 작품들은 일관된 폭력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인물들은 하나같이 화를 주체할 수 없거나 무력하거나 슬프고 두려워하는 상태에서 각자의 외줄을 타고 결국에는 끊어지기에 이르렀다.   “머리가 아파. 우울해. 죽고 싶어.”(미나, 40쪽) “나는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절망에 빠졌습니다. 울었습니다.”(02, 98쪽) “안 죽은 거 다 알아! 일어나 이 씨발년아!”(미나, 292쪽) “우리는 슬프네. 자꾸만 슬프네. 날이 저물어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네. 아무것도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네. 그래서 우리는 기쁘네. 우리는 기쁘네.”(미나, 308쪽)   쉬어갈 틈조차도 주지 않고, 끊임없이 통증을 호소하는 인물들의 불안한 심리와 행동거지들은 지극히 명료하고 객관적인(척하나 굉장히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김사과 특유의 문체로 서술되곤 했다. 각 인물들이 주장하는 폭력의 당위성은 그럴듯하고 합리적으로 보인다. 어느 쪽에도 치중되지 않은 깔끔한 공연을 선보이는 것 같으면서도 실상 찬찬히 살펴보면 감정을 온전히 배제한 문장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미나>의 ‘이수정’이나 ‘김미나’, 혹은 <02>의 ‘이나’나 ‘나’가 문장 사이사이에 교묘하게 묻어 있다. 이야기에 매혹되어 김사과의 목소리를 따라가면 어떠한 모순도 없이 김사과가 의도했던 결말에 도달할 수 있는 이유이다.   그러나 정말 이것들이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인지 작품 밖에서 냉정하게 판단한다면 그렇지 않다, 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현실을 완벽에 가깝게 투영한 김사과의 작품 속 배경과 인물들의 빈틈없는 설정들과는 달리, 극단에 가까운 사건들은 대부분 인물의 (불안정하고 날카로운) 심리 상태에 주로 의지하여 전개된다. 각별했던 친구를 죽이고 그 친구의 손윗형제와 행복하게 웃어 보인다던가, 인물 자신도 이해하지 못할 정도의 충동으로 자신과 전혀 관계없는 사람 두 명을 연달아 죽이는 것은 이 세상의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김사과가 그토록 표출하던 분노에는 방향성이 결여되어 있었다. 화는 나는데 정확히 무엇에 대한 분노인지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도 모르니 인물의 갈등을 가장 폭력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정보만큼이나 빠르게 흘러가는 현대인들의 타자화된 감정이나, 전작들의 소설적 배경이 되었던 입시 사회의 답답한 현실에 울분을 터트린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그러면 김사과가 지향하는 세계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굳이 답한다면, 어차피 이 세계는 썩어빠졌으니 모조리 파괴하는 것만이 답이며 그

  • 윤별
  • 2017-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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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슈엘

    재밌게 읽었어요. 좀 어렵기도 했지만.. 제 관심 분야인 심리학과 문학을 서로 접목시킨 연구라 끝까지 재밌게 볼 수 있었네요. 그런데 서양 문학에서 더 다양한 사례가 나왔다면 좀 더 좋았을 것 같아요.

    • 2016-06-21 23:15:47
    슈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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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도 그 부분을 아쉽게 생각해요. 사실 조금 더 시간을 가지고 자료 모아서 더 공부해서 쓰고 싶었는데 지금 시험...이 코앞이고 제출 기한도 코앞이고 해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네요. 다음에 퇴고해 본다면 조금 더 공부해봐야겠어요. 감사합니다.

      • 2016-06-23 22:5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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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역

    잘 읽었습니다. 궁금한 점이 있어요. 1. '자아를 발휘한다'란 뜻이 어떤 뜻인지 -I.1 "자아(ego)를 발휘하여" 2. 이드와 초자아를 자아에 포함되는 개념으로 보시는지? -III.2 "이러한 자아의 분열, 즉 초자아와 원초아의 분열" '분열'보다는 '모순' 혹은 '대립'이란 표현을 쓰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아요.

    • 2016-06-19 06:52:16
    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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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사합니다. 1. 자아를 발휘하여...라는 건 자아에 의거하여, 쪽으로 수정하는 편이 좋을 것 같네요. 2. 저는 이드와 초자아 사이에서 외줄타기하는 것이 자아를 통해 잡힌다고 생각해요. 가역님이 말씀하신 어휘가 더 적합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2016-06-20 13: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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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aurie

    논문을 쓰셨군요! 글이 워낙 길어서 6월 월장원은 늦게 발표되겠어요 ㅠㅠ(그렇다고 들님 때문이라는 건 아닙니다 오해마시길^^;;)

    • 2016-06-17 14:30:40
    lau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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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교에 내려는 목적이라 논문 형식으로 작성했어요. 생기부만 아니었으면.

      • 2016-06-20 13: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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