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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국회의원, 그리고 국민

  • 작성자 겨울 나그네
  • 작성일 2005-07-13
  • 조회수 475

대통령, 국회의원, 그리고 국민


 

 정치란 무엇일까? 사전 속에는 '국가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기 위하여 벌이는 여러 가지 활동' '통치자나 위정자가 국민을 위하여 시행하는 여러 가지의 일'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그런데 이런 의미가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사전에도 있을까?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사전에는 가령,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일' '썩어빠진 것' '더러운 것' '혼란스러운 것' '비리를 일삼는 직업'과 같은 부정적 의미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국민들이 괜히 사전에 이런 의미를 담아두는 것은 아니다. 2004년 최대 이슈인 대통령 탄핵사건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 탄핵안 가결이라는 것은 우리 국민들에게 또 한번 큰 실망은 가져다 준 정치 현실일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은 왜 탄핵이라는 그릇에 올라야만 했을까? 대통령이 잘못을 했다면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을까? 그리고 국회의원들은 대통령이 이런 상황으로 올 때까지 무엇을 하고, 대통령에게 책임만 물으려는 것일까?

 국회의원들은 조목조목 따져가며 대통령의 잘못들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대통령을 탄핵이라는 궁지에까지 몰아넣을 근거가 될까? 물론, 대통령이 잘못은 했지만, 탄핵안이 가결되기까지 가장 큰 잘못을 한 사람은 다름 아닌 국회의원들이다. 국회의원들이 탄핵을 주도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일까? 자신들과 의견이 맞지 않거나, 자신의 이익에 방해되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의 이익을 최대로 하는 그들에게는 최후 수단인 탄핵이라는 도구를 사용했어야만 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대통령이 이런 상황이 오기까지의 잘못이 마냥 국회의원들에게만 있다고 할 것인가? 몰론, 그렇지도 않다. 여기에 오기까지 가장 큰 몫을 한 것은 바로 우리 국민들이다. 국민들은 요즘 정치에 너무 무관심하다. 말로만 부르짖을 뿐이다. 70년대 80년대 그 시민들의 정신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이 땅에 청년들은 어떤 개혁의 의지도 왜 없는 것일까? 옛날과는 너무 다르다. 그 정신도 의지도 우리에겐 모두 사라져 버려 이런 상황이 오게 된 것이다.

 지금의 정치 현실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어둡고 칙칙하게 변해버렸다. 국회의원들이 국민에 의해서 뽑혔지만,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의견은 전혀 반영하지 않고, 권력이라는 권력은 모조리 행사하면서 의무라는 의무는 모두 피하고, 사사로이 자기 주머니 챙기기에 바쁘고, 국민들은 이에 반항할 정신이나 의지도 모두 사라져 버렸다. 그렇다면 이런 어두운 공간에서 빠져나갈 방법은 정말 없단 말인가? 어떠한 빛도 없단 말인가? 이렇게 좌절하고 말아야 할 것인가?

 

 신라 향가 중에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노래라는 제목의 「안민가」에 이렇게 적혀 있다.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백성은 백성답게 처신한다면 나라 안이 태평할 것입니다.' 그렇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 이처럼 각자의 위치에 서서 최선을 다하면 지금과 같은 현실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각자의 위치에 서서 해야할 일은 무엇일까?

 먼저, 대통령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어느 하나의 당에 치우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조선시대에 수많은 당쟁('당쟁'이라는 말이 일제의 지배를 합리화시키는 당파성의 하나라는 것을 알지만, 딱히 표현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이것으로 씁니다. 이해해 주십시요.)들이 일어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여파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말이다. 대통령은 이를 알고, 편파적인 정치를 해서는 안될 것이다. 당뿐만 아니라 지역에도 차이를 두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리고 국민들의 마음을 읽어내는 능력을 키워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국회의원들이 전하는 말의 옳고, 그름을 파악해 진정으로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판단하는 능력이 필요할 것이다.

 

 대통령의 역할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 국회의원이다. 국회의원은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내 기억 속에는 일그러진 모습이다. 그러나, 그들도 그들이 할 일만 똑바로 한다면 좋은 모습으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들이 가져야 할 태도는 무엇인가? 간단하다. 희생이다. 자신의 권력을 개인의 이익을 만끽하기 위해 사용하기보다는 국민들을 위해서 최대한 사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해야할 임무도 다 해야할 것이며, 국민들이 뽑아준 만큼, 국민들의 의견을 잘 반영해야 할 것이다. 개인의 이익을 반영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무엇보다도 선거에 출마할 때는 '나'라는 존재를 철저히 기억 속에 지우고, 그 자리에 '국가', '국민'을 채워 넣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보다도 더, 국회의원보다도 더 중요한 사람은 바로 국민이다. 그만큼 국민의 역할도 중요하다. 국민에게서 권력이 나올 수 있고, 국민이 있고서야 대통령, 국회의원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국민들이 우리 사회에서 해야할 역할은 무엇일까? 국회의원들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면 되는 것이다. 잘못한다 싶으면 그들에게 올바른 것을 깨우칠 수 있도록 옆에서 가르쳐 주면 되는 것이다. 자신이 소시민이라는 것도 모른 채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현실을 비판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도 안되면 적극적으로 그들에게 대항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우리의 현재 정치 현실은 너무도 어둡고, 비참하다. 그러나 마냥 언제까지나 두고볼 수만은 없다. 우리 스스로가 노력해야 할 것이고, 적극적인 개혁정신과 불의에 저항하는 불타는 의지를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 국회의원, 국민이 모두 힘을 합친다면 우리의 정치는 탄탄대로를 걸을 것이다.

겨울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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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겨울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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